한국 경찰에게 총을 줘서는 안 되는 이유
[서리풀 논평] 시위 진압과 시민의 생명
시위 진압과 시민의 생명
'폭력' 시위와 '과잉' 진압을 둘러싼 시비는 익숙하다. 대규모 시위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된 논란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불행한 사건, 2009년 1월의 용산 참사는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한국에서 "과격한 폭력 시위"는 관용어가 된 것처럼 보인다. 평화로운 시위라고 불릴 만한 사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찾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번 '총궐기'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이 다쳤고 농민 한 분은 아직도 위중한 상태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고 생각한다. 예측으로 치자면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충분히 예상되었던 경과(經過)였고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예방과 상황 관리, 문제 해결 모두 마찬가지다. '공(公)권력'이 아니라면 다른 누가 평화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시위 그 자체의 시비는 미뤄두고, 오늘 우리의 관심사는 생명과 안전이다. 먼저, 경찰이 과격한 진압으로 시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강조한다. 의도했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모르고 그랬다 해도 책임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생길지 모르고 했다면 무능함을 고백한 것일 뿐.
어떤 사람들은 과격 시위가 폭력 진압을 불러왔다고 할지도 모른다. 정확한 경과는 둘째 치고라도, 우리는 이런 책임 전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찰은 그야말로 공권력을 수행하는 주체로, 치고받는 패싸움의 한쪽 당사자가 아니며 시위대를 적으로 삼아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공권력이 불가피하게 폭력을 사용할 때는 마땅히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과 같은 "급박한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것. 중심 가치는 명확하다. 특정 정권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위임 받은 것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도덕적 의무를 진다. 시위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도 당연히 이 범주에 속한다.

지금 시위 진압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위험도 크다. 시위 진압에 쓰인 파바(합성 캡사이신의 일종)와 캡사이신의 위험에 대해서는 보건의료단체연합이 이미 경고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최루액 난사, 박근혜 정부의 '인체 실험'") 한 마디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폭력이자 공권력 남용이다. 마침 세계의사협회가 지난 10월 폭동 통제용 물질 사용에 대한 성명서를 채택했다('시위'가 아니라 '폭동'임을 유념할 것). (☞관련 자료 : WMA Statement on Riot Control Agents)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폭동 통제용 물질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대상자와 노출된 사람의 생명에 위해를 초래하고 인권을 침해한다. (…) 각 나라는 폭동 통제용 물질을 사용함에 있어 개인에게 미칠 심각한 위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해야 하며, 특히 어린이, 노인, 임산부 등 취약 집단이 있는 경우에는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세계의사협회는 각국 정부가 (…) 폭동 통제용 물질을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사용하도록 경찰과 안전 요원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에는 고농도의 물질에 노출되어 고통 받는 개인들을 신속하게 대피시키고, 사람에 조준하지 않으며,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시위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사람을 어떻게 치료하고 이송했는가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번 시위에서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한 의과대학 학생이 대자보로 알렸다는 사실은 이렇다. (☞관련 기사 : 의대생 대자보 "전쟁터에서도 구급차는 공격 안합니다")
"경찰은 호송되고 있는 환자와 열려 있는 구급차 뒷문 안을 향해 최루액이 담긴 강한 수압의 물대포를 직사로 쏘았다. 물대포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직사는 1분여가량 지속되었다. 경찰이 구급차를 조준하여 사격한 것이다. 해당 환자는 현재 뼈뿐만이 아니라 인대까지 끊어져 수술 중이다."
기본 중의 기본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전쟁 때도 구급차는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굳이 꺼내야 할까. 정부와 경찰도 공식적으로는 인정할 것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시위 현장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경찰이 지키는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있다면 이와 관련된 내용이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 앞으로도 시위가 일어나고 이를 통제하려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시위가 무엇인가? 이해관계를 달리하면서 권력과 충돌하는 것이 본질이다. 수백 년 동안 민주주의를 몸으로 익혀온 사회라고 다를 바 없다. 익숙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나 2010년 영국에서 벌어진 대학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도 평범한 사례에 속한다. (☞관련 기사 : 英 대학생 학비 인상 반대 과격 시위)
갈등과 충돌이 시위의 본질이라면, 그 과정은 거칠고 험해질 가능성이 크다. 생명과 안전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균열과 갈등이 클수록 위험도는 더 커진다.
시위가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그만 두더라도, 시위를 '관리'하는 데에서 정부(공권력)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생명을 존중하고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힘(권력)을 가진 '유일무이'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폭력' 시위와 '과잉' 진압을 둘러싼 시비는 익숙하다. 대규모 시위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된 논란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불행한 사건, 2009년 1월의 용산 참사는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한국에서 "과격한 폭력 시위"는 관용어가 된 것처럼 보인다. 평화로운 시위라고 불릴 만한 사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찾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번 '총궐기'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이 다쳤고 농민 한 분은 아직도 위중한 상태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고 생각한다. 예측으로 치자면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충분히 예상되었던 경과(經過)였고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예방과 상황 관리, 문제 해결 모두 마찬가지다. '공(公)권력'이 아니라면 다른 누가 평화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시위 그 자체의 시비는 미뤄두고, 오늘 우리의 관심사는 생명과 안전이다. 먼저, 경찰이 과격한 진압으로 시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강조한다. 의도했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모르고 그랬다 해도 책임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생길지 모르고 했다면 무능함을 고백한 것일 뿐.
어떤 사람들은 과격 시위가 폭력 진압을 불러왔다고 할지도 모른다. 정확한 경과는 둘째 치고라도, 우리는 이런 책임 전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찰은 그야말로 공권력을 수행하는 주체로, 치고받는 패싸움의 한쪽 당사자가 아니며 시위대를 적으로 삼아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공권력이 불가피하게 폭력을 사용할 때는 마땅히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과 같은 "급박한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것. 중심 가치는 명확하다. 특정 정권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위임 받은 것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도덕적 의무를 진다. 시위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도 당연히 이 범주에 속한다.

지금 시위 진압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위험도 크다. 시위 진압에 쓰인 파바(합성 캡사이신의 일종)와 캡사이신의 위험에 대해서는 보건의료단체연합이 이미 경고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최루액 난사, 박근혜 정부의 '인체 실험'") 한 마디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폭력이자 공권력 남용이다. 마침 세계의사협회가 지난 10월 폭동 통제용 물질 사용에 대한 성명서를 채택했다('시위'가 아니라 '폭동'임을 유념할 것). (☞관련 자료 : WMA Statement on Riot Control Agents)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폭동 통제용 물질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대상자와 노출된 사람의 생명에 위해를 초래하고 인권을 침해한다. (…) 각 나라는 폭동 통제용 물질을 사용함에 있어 개인에게 미칠 심각한 위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해야 하며, 특히 어린이, 노인, 임산부 등 취약 집단이 있는 경우에는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세계의사협회는 각국 정부가 (…) 폭동 통제용 물질을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사용하도록 경찰과 안전 요원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에는 고농도의 물질에 노출되어 고통 받는 개인들을 신속하게 대피시키고, 사람에 조준하지 않으며,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시위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사람을 어떻게 치료하고 이송했는가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번 시위에서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한 의과대학 학생이 대자보로 알렸다는 사실은 이렇다. (☞관련 기사 : 의대생 대자보 "전쟁터에서도 구급차는 공격 안합니다")
"경찰은 호송되고 있는 환자와 열려 있는 구급차 뒷문 안을 향해 최루액이 담긴 강한 수압의 물대포를 직사로 쏘았다. 물대포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직사는 1분여가량 지속되었다. 경찰이 구급차를 조준하여 사격한 것이다. 해당 환자는 현재 뼈뿐만이 아니라 인대까지 끊어져 수술 중이다."
기본 중의 기본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전쟁 때도 구급차는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굳이 꺼내야 할까. 정부와 경찰도 공식적으로는 인정할 것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시위 현장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경찰이 지키는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있다면 이와 관련된 내용이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 앞으로도 시위가 일어나고 이를 통제하려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시위가 무엇인가? 이해관계를 달리하면서 권력과 충돌하는 것이 본질이다. 수백 년 동안 민주주의를 몸으로 익혀온 사회라고 다를 바 없다. 익숙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나 2010년 영국에서 벌어진 대학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도 평범한 사례에 속한다. (☞관련 기사 : 英 대학생 학비 인상 반대 과격 시위)
갈등과 충돌이 시위의 본질이라면, 그 과정은 거칠고 험해질 가능성이 크다. 생명과 안전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균열과 갈등이 클수록 위험도는 더 커진다.
시위가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그만 두더라도, 시위를 '관리'하는 데에서 정부(공권력)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생명을 존중하고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힘(권력)을 가진 '유일무이'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12월 5일, 우리 모두 복면을 씁시다!
[편집국에서] 박근혜, 독재자의 길
유럽에서 가장 민주화가 덜 된 국가 가운데 하나인 벨라루스에서 2006년에 있었던 일이다. 1994년부터 이 나라를 지배하던 독재자 알렉산더 루카센코의 3선이 조작 선거로 확정되자,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물론 독재자는 수백 명의 시민을 체포하고, 제1야당의 후보를 감금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플래시 몹(falsh mob)'을 제안했다. 경찰은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을 연행했다. 몇 개월 지난 후, 이번에는 광장에서 '서로 미소를 보이며 걷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역시 경찰은 웃으며 걷는 시민을 연행했다.
2011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2010년에 루카센코가 4선에 성공하자, 이번에 시민들은 광장에서 손뼉을 치는 저항을 계획했다. 그러자 그는 공공장소에서 박수치는 것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박수를 쳤다며 한 남자를 체포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팔이 하나뿐인 장애인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미소 짓고 또 박수를 치는 시민을 연행하는 경찰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에 올라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물론 아이스크림을 먹다, 또 미소를 보이며 웃다 심지어 하나뿐인 팔로 박수를 치다 경찰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은 벨라루스 시민에게는 정말로 끔찍한 일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루카센코는 올해 5선에 성공했다!)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듣고서 벨라루스에서 벌어진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떠올랐다. 외국만 한 번 나갔다 오면 "혼이 비정상"이라도 되는 듯 날선 거친 말을 쏟아내는 대통령이 이번에도 무서운(!) 얘기를 쏟아 냈다. 그는 "특히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자국민을 끔찍한 파리 테러로 전 세계의 공적이 된 테러 집단 IS에 비유한 것도 모자라, 이참에 아예 복면 시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벌벌 기는 여당의 행태에 염두를 두면, 정말로 연내에 '복면 금지 법'이라도 통과될 모양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모습이 딱 그렇다. 그는 YS로부터 도대체 뭘 배운 걸까?)
박근혜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읽어봤을지 의문이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이어서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굳이 헌법에서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를 명시적으로 금지한 까닭이 무엇일까? 법에는 과문하지만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박정희)를 비롯한 과거의 독재자들이 집회, 결사를 제한한 데 대한 반성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허가를 받지 않고서 집회, 결사를 할 수 있도록 헌법이 보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집회를 하면서 얼굴에 복면을 쓰는 행동은 어떤가? 박근혜 대통령은 얼굴에 복면을 쓰고서 집회에 나서는 건 테러리스트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가진 듯하다. 그렇다면 모자는 어떤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후드는? 상반신을 전부 가리고 때로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우산은? 복면과 다를 게 없는 마스크는? 때로는 180도 사람이 달라 보이는 화장은?
만약 복면 시위를 막는다면, 시민이 모자 후드 우산 심지어 마스크를 쓰는 일도 더 나아가 화장을 하는 것까지 금지해야 한다.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게 헌법이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중요한 나랏일을 논해야 할 국무회의에서 바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목소리 높여서 내뱉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통령에게 민주 시민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마침 한 누리꾼(@rainygirl)이 멋진 제안을 했다.
"대통령의 의지로 복면 시위 금지가 추진된다 하니, 오는 12월 5일 집회 때는 베네치아 카니발처럼 온갖 종류의 탈과 가면을 쓰고 나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그렇다. 우리 모두 오는 12월 5일 집회 때 갖가지 가면을 준비해서 전 세계인이 주목할 만한 한 편의 난장을 광화문에서 펼쳐 보자. 복면을 쓰고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궁금합니다" 따위의 손팻말까지 가지고 나선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미처 복면을 준비하지 못한 시민 200명에게는 선착순으로 <프레시안>에서 복면을 대신할 멋진 손수건도 나눠줄 예정이다. 이참에 복면 시위에 대한 대통령의 '편견'을 확 깨주자!
참, 그리고 그날은 청와대로 가는 행진 따위는 하지 말자. 도대체 반기지도 않는 청와대에 가서 뭐하게? 물론 복장이 터질 정도로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마음은 안다. 오죽하면 나라 밖의 <뉴욕타임스>까지 나서서 "북한 꼭두각시 체제와 한국을 구분시켜준 민주주의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키려는 것처럼 보여 우려스럽다"고 걱정을 했겠나?
하지만 12월 5일은 복면 퍼포먼스를 통해서 여전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임을 또 한심한 대통령의 행태를 더 이상 대한민국 시민이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면 충분하다. 청와대 접수는 2년 후인 2017년 12월 19일로 미루자. 이제 2년 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와대 시계는 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플래시 몹(falsh mob)'을 제안했다. 경찰은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을 연행했다. 몇 개월 지난 후, 이번에는 광장에서 '서로 미소를 보이며 걷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역시 경찰은 웃으며 걷는 시민을 연행했다.
2011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2010년에 루카센코가 4선에 성공하자, 이번에 시민들은 광장에서 손뼉을 치는 저항을 계획했다. 그러자 그는 공공장소에서 박수치는 것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박수를 쳤다며 한 남자를 체포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팔이 하나뿐인 장애인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미소 짓고 또 박수를 치는 시민을 연행하는 경찰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에 올라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물론 아이스크림을 먹다, 또 미소를 보이며 웃다 심지어 하나뿐인 팔로 박수를 치다 경찰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은 벨라루스 시민에게는 정말로 끔찍한 일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루카센코는 올해 5선에 성공했다!)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듣고서 벨라루스에서 벌어진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떠올랐다. 외국만 한 번 나갔다 오면 "혼이 비정상"이라도 되는 듯 날선 거친 말을 쏟아내는 대통령이 이번에도 무서운(!) 얘기를 쏟아 냈다. 그는 "특히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자국민을 끔찍한 파리 테러로 전 세계의 공적이 된 테러 집단 IS에 비유한 것도 모자라, 이참에 아예 복면 시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벌벌 기는 여당의 행태에 염두를 두면, 정말로 연내에 '복면 금지 법'이라도 통과될 모양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모습이 딱 그렇다. 그는 YS로부터 도대체 뭘 배운 걸까?)
박근혜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읽어봤을지 의문이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이어서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굳이 헌법에서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를 명시적으로 금지한 까닭이 무엇일까? 법에는 과문하지만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박정희)를 비롯한 과거의 독재자들이 집회, 결사를 제한한 데 대한 반성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허가를 받지 않고서 집회, 결사를 할 수 있도록 헌법이 보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집회를 하면서 얼굴에 복면을 쓰는 행동은 어떤가? 박근혜 대통령은 얼굴에 복면을 쓰고서 집회에 나서는 건 테러리스트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가진 듯하다. 그렇다면 모자는 어떤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후드는? 상반신을 전부 가리고 때로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우산은? 복면과 다를 게 없는 마스크는? 때로는 180도 사람이 달라 보이는 화장은?
만약 복면 시위를 막는다면, 시민이 모자 후드 우산 심지어 마스크를 쓰는 일도 더 나아가 화장을 하는 것까지 금지해야 한다.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게 헌법이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중요한 나랏일을 논해야 할 국무회의에서 바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목소리 높여서 내뱉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통령에게 민주 시민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마침 한 누리꾼(@rainygirl)이 멋진 제안을 했다.
"대통령의 의지로 복면 시위 금지가 추진된다 하니, 오는 12월 5일 집회 때는 베네치아 카니발처럼 온갖 종류의 탈과 가면을 쓰고 나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그렇다. 우리 모두 오는 12월 5일 집회 때 갖가지 가면을 준비해서 전 세계인이 주목할 만한 한 편의 난장을 광화문에서 펼쳐 보자. 복면을 쓰고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궁금합니다" 따위의 손팻말까지 가지고 나선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미처 복면을 준비하지 못한 시민 200명에게는 선착순으로 <프레시안>에서 복면을 대신할 멋진 손수건도 나눠줄 예정이다. 이참에 복면 시위에 대한 대통령의 '편견'을 확 깨주자!
참, 그리고 그날은 청와대로 가는 행진 따위는 하지 말자. 도대체 반기지도 않는 청와대에 가서 뭐하게? 물론 복장이 터질 정도로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마음은 안다. 오죽하면 나라 밖의 <뉴욕타임스>까지 나서서 "북한 꼭두각시 체제와 한국을 구분시켜준 민주주의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키려는 것처럼 보여 우려스럽다"고 걱정을 했겠나?
하지만 12월 5일은 복면 퍼포먼스를 통해서 여전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임을 또 한심한 대통령의 행태를 더 이상 대한민국 시민이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면 충분하다. 청와대 접수는 2년 후인 2017년 12월 19일로 미루자. 이제 2년 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와대 시계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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