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대륙의 실수' 샤오미, '대륙의 실력'이 되다

일취월장7 2015. 11. 3. 13:12

'대륙의 실수' 샤오미, '대륙의 실력'이 되다

[샤오미 쇼크] '가성비 깡패'가 된 첫 번째 비결은 '비판적 모방'
성현석 기자 2015.10.28 11:33:38
 

중국 기업 샤오미(小米)의 약진이 눈부시다. 창업 5년째인 이 회사는 종종 '대륙의 실수'라고 불렸다. 중국 기업은 원래 값은 싸지만 품질은 조악한 '짝퉁'을 만들었다. 그런데 '실수'로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조롱 섞인 농담이다. 대충 찍었는데, 요행히 좋은 점수 받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요행이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봐야 한다. 샤오미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꺽은 게 2년 전이다. 지난해에는 삼성을 제쳤고, 올해 2분기에는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 스마프폰 시장에서 6%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소형 전동스쿠터(세그웨이), 고화질 텔레비전(UHD TV) 등을 내놨다. 드론(무인항공기) 시장에도 뛰어들겠다고 한다. 여전히 '가성비 깡패'다. 가격 대비 성능이 압도적이라는 뜻. 예컨대 샤오미가 지난 19일 발표한 소형 전동스쿠터 '나인봇 미니'는 1999위안이다. 우리 돈으로는 약 35만 원이다. 비슷한 사양의 기존 제품 가격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나인 봇 미니'가 발표되던 날, 한국 인터넷도 난리가 났다. '샤오미'와 '세그웨이'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 2위에 올랐다. 품질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소형 전동스쿠터 기업의 원조가 세그웨이다. 샤오미는 지난 4월 세그웨이를 인수했다. '나인봇' 제품군에는 세그웨이의 기술력이 녹아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이제는 '대륙의 실력'을 상징하는 샤오미의 약진. 어떻게 봐야 할까. 국내 전자업체 관계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초로 세 가지 키워드를 뽑아봤다. 첫 번째 키워드는 '비판적 모방'이다.

구글의 실패와 샤오미의 성공

샤오미 스마트폰 제품이 애플의 아이폰을 닮았다는 건, 다들 아는 이야기다. 샤오미가 모방에서 출발한 건 사실이다. 우선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雷軍)이 그렇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그가 대형 스크린 앞에 서서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된다.

잡스 흉내 내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샤오미는 약간 다르다. 선발 주자를 분석해서, 장점만 따라한다.

샤오미가 애플을 흉내 낸다고 흔히 말한다. 그건 겉만 본 평가다. 샤오미 사업 모델은 구글에 가깝다. 이 점에 주목하는 이들이 드물다.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이다. 하드웨어 제조 부문 경험이 전혀 없다. 이런 그가 스마트폰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구글이 지난 2010년 1월 내놓은 스마트폰 '넥서스원'을 떠올리게 한다. 구글은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데, 스마트폰 제조업에 도전했다. 샤오미와 닮은꼴이다. 판매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휴대폰 업체들은 방대한 오프라인 판매 조직을 갖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과 제조업체의 중요한 차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대부분 오프라인 판매 조직 운영 경험이 없다. 


구글은 '넥서스원' 출시 당시 온라인으로만 팔았다. 샤오미 역시 철저히 온라인 판매를 고집했다. 얼마 전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지만, 중심은 여전히 온라인이다.

그런데 구글의 '넥서스원'은 실패했다. 반면, 샤오미가 2011년에 처음 내놓은 스마트폰 '미원'은 성공했다. 샤오미가 그저 모방만 하는 기업이라면, 이런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생각 없는 따라쟁이'가 아니라 '비판적인 수용자'였으므로 가능했던 성공이다. 실제로 레이쥔은 '넥서스원'의 실패를 철저히 분석한 뒤에 '미원'을 출시했다. 소비자와의 스킨십이 없다는, 온라인 판매의 한계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구글 창업자인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어릴 때부터 수학, 과학 영재로 유명했다. 이런 이미지는 구글의 기술력을 보장하는 장치가 됐다. 하지만 '기술 천재' 이미지가 때론 질곡이 된다. 휴대폰처럼 늘 손에 품고 다니는 제품에 대해 소비자는 기술, 그 이상을 원한다. 기존 휴대폰 업체들이 바보라서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광고를 했던 게 아니다. '한번 만져보고 싶다'라는 막연한 느낌, 그게 중요하다. 구글의 '넥서스원'이 실패한 지점이다. 


그렇다면, 역시 유명 연예인을 출연시킨 광고가 답인가. 그래서는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 레이쥔은 다른 답을 찾아냈다.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다. 샤오미의 최대 자산은 천만 명이 넘는 '미펀'(米粉·샤오미 팬)들이다. 이들에 대해선 '샤오미 쇼크' 두 번째 글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반항아 잡스, 모범생 레이쥔


샤오미가 애플을 흉내 낸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동경했고, 그래서 흉내냈지만, 마냥 따라하지만은 않았다. 레이쥔이 중국 우한대학교 컴퓨터학과에 입학한 건 1987년이다. 신입생 시절부터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동경했다고 한다. 훗날 그가 잡스의 프리젠테이션 스타일을 따라한 건 그래서였다고.

하지만 그는 잡스와 전혀 다른 유형이다. 잡스는 반항아였다. 레이쥔은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수학, 과학 등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에만 열정을 쏟는 컴퓨터 영재 유형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문학, 수학, 역사, 과학 등 전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다. 


레이쥔은 대학을 마친 뒤 킹소프트에 개발자로 입사했는데, 상사와의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고속승진을 했고, 29살에 사장이 됐다. 킹소프트 상장 이후 퇴사해서 엔젤 투자자가 됐다. 유망한 벤처 기업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일이다. 그리고 마흔 살에 샤오미를 창업했다. 잡스의 좌충우돌 인생과는 확실히 다르다. 


 

▲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이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분간은 이익 낼 생각 없다"

사업 모델 역시 애플과 다르다. 애플은 제품을 팔아서 이익을 낸다. 마니아가 열광하는 제품을 만들고, 대신 높은 이윤을 챙긴다. 높은 이윤율은, 애플, 그리고 잡스의 자존심이었다. IT 기업들은 공짜를 뿌려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방식을 종종 쓴다. 잡스는 이런 방식을 경멸했다.

레이쥔은 이 대목에서 다르다. '공짜 경제'를 창피해하지 않는다. 지난해 말 <차이나 비즈니스>에 따르면, 애플은 스마트폰을 100만 원어치 팔아서 28만7000원 가량의 이익을 낸다. 삼성은 18만7000원이다. 반면, 샤오미는 2만 원이 안 된다. 이윤율이 너무 낮다는 지적에 대해 레이쥔은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에 텅쉰이 그렇게 돈을 벌었으면, 오늘날 샤오미도 벌 것입니다." 

 


텅쉰은 중국의 인터넷 포털 기업이다. 윈도우용 메신저 프로그램을 공짜로 뿌리면서 성장했다. 한국 포털 업체 역시 이메일 서비스 등을 무료로 제공했다.

샤오미 창업 초기, 레이쥔은 치밍벤처투자를 찾아가 투자 요청을 했다. 당시 그가 한 말.

"먼저 말해두는데 샤오미는 앞으로 3~5년 안에는 이윤을 낼 생각이 없습니다. 만약에 단기수익을 보고 투자할 생각이라면 재고하든지 아니면 투자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제로 샤오미는 아직 상장을 하지 않고 있다. 당장은 상장 계획이 없다고 한다.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이익률을 높이라는 압박이 들어온다. 레이쥔은 이익보다 시장 장악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인터넷 포털 업체의 성공 방정식을 따라하고 있다. 사용자가 늘어나고, 평판이 좋아지면 돈은 따라온다는 식이다. 실제로 레이쥔은 치밍벤처투자의 투자를 받는데 성공했다. 당분간 이윤 낼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샤오미 모델이 지닌 매력말고도 이유가 있다. 레이쥔의 '모범생' 이미지가 투자 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줬다. 레이쥔은 킹소프트 사장 직에서 물러나 투자자로 활동하면서, 중국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인맥과 평판은 여전히 중국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다.

'특허 약자' 샤오미, 후발 기업엔 '짝퉁' 공세

하지만 '공짜 경제'가 지닌 한계 역시 분명하다. 소프트웨어 산업과 제조업의 차이와도 관계가 있다.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비해 제조업 특허 규제가 더 엄격하다. '짝퉁'에 의지하는 '공짜 경제'가 제조업 분야에선 쉽지 않다. 아울러 이윤율이 낮다는 점은, 연구개발에 투자할 재원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다. 파괴적인 혁신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 흉내내기 제품에만 계속 머무를 경우, 같은 전략을 쓰는 후발 업체에게 뒤쳐지는 건 시간 문제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헐값으로 일하겠다는 엔지니어가 넘쳐난다. 낮은 인건비로 경쟁하는 시장에선, 승자가 없다. 

삼성전자 등 경쟁기업은 이 대목을 잘 알고 있다. '특허권 침해' 여부로 공격하면, 샤오미의 발을 중국 안에 묶어둘 수 있다. 실제로 샤오미가 쉽게 해외 진출을 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가 특허 분쟁 가능성이다.

하지만 '특허 공격'으로 발을 묶는 건, 결국 수세적인 전략이다. 1980년대 일본과 독일의 제조업이 도약하자, 미국이 프로 패턴트(Pro-patent) 전략을 썼다. 특허 기득권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후발 주자의 특허 침해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 방식이다. 문제는 그래서 미국 제조업이 성공했느냐, 라는 점이다. 미국 제조업은 꾸준히 경쟁력을 잃었다. 


또 샤오미가 앞으로도 '특허 약자'에 머무르리라는 보장도 없다. '세그웨이'를 인수해서, 파격적인 가격에 소형 전동스쿠터를 내놓은 사례가 보여준다. 일정한 성공을 거둔 뒤에 앞선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면, '특허 강자'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샤오미는 중국 국내에서 후발 기업들을 상대로 '짝퉁' 공세를 하고 있다. 선진국 기업으로부터 받았던 공격을 국내 후발 기업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런 공격을 한국 기업이 받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샤오미의 전략, 공산주의 전술 닮았다

[샤오미 쇼크②] "미펀이 있기에 샤오미가 있다"
성현석 기자 2015.11.03 11:36:11
 

"중국이야 정치 쪽이 막혀 있으니, 그런 쪽으로 열정이 뻗는 거겠지."

한 삼성전자 간부에게 '샤오미의 성공 비결'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그가 이야기한 "그런 쪽"이란, 1400만 명에 달하는 '미펀'(米粉)들의 활동이다. '미펀'은 샤오미의 팬을 가리키는 말인데, 확실히 유별나다. 예컨대 이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http://bbs.xiaomi.cn/)에는 '통청후이(同城會)'라는 게시판이 있다. 지역별 오프라인 모임이다. 1년에 300회, 사실상 매일 모임이 있다. 모임 참가자는 계속 불어난다. 지인들을 데리고 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함께 소풍을 가거나 봉사 활동을 한다. 이들을 위한 잡지도 있다. <빠오미화>라는 매체다.


애플 마니아와 미펀의 차이


특정 제품을 열렬히 좋아하는 이들은 어디든 있다.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도 있고, 가끔 오프라인 모임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별 조직을 꾸리고, 함께 봉사 활동까지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유별난 면모는 더 있다. '미펀'은 그저 소비자에 그치지 않는다. 제품의 기획 및 개발에 직접 참여한다. 샤오미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미유아이(MIUI)'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업데이트가 된다. '미펀'들의 지적을 일주일 단위로 반영하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에는 '미펀'들이 넘긴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주에 가장 사랑받았던 기능과 엉망이었던 기능을 각각 평가한다. 좋은 제안을 한 '미펀'에게는 상을 준다. '빠오미화상'이라는 상인데, 우리말로는 '팝콘 상'이다. 팝콘처럼 톡톡 튀는 아이디어라는 뜻.

- 샤오미 쇼크

<1> '대륙의 실수' 샤오미, '대륙의 실력'이 되다

이런 전략은 창업 초기부터 적용됐다. '미유아이(MIUI)'를 처음 개발할 당시인 지난 2010년, 고객 100명이 '알파 테스트'를 했다. '알파 테스트'는 원래 개발자들끼리 비공개로 진행한다.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기 때문. 그 단계를 거친 뒤 '베타 테스트' 단계에서 외부에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샤오미는 미완성 제품을 고객에게 공개했다. 당시 '알파 테스트'에 참여했던 고객들은 열혈 '미펀'이 됐다. 제품 개발에 참여한 경험 때문이다. 샤오미 역시 2010년 알파 테스트에 참가한 100명의 '미펀'들을 깍듯이 예우한다. 


애플 마니아와 '미펀'이 갈라지는 게 이 대목이다. 아이폰 등을 만들어낸 애플 역시 광범위한 마니아가 있다. 이들은 애플 제품의 독창적인 디자인과 기능에 열광한다. 그리고 애플 제품의 가치를 알아본 자신의 안목에 자부심을 갖는다. 애플 마니아는 딱 여기까지다.

'미펀'은 다르다.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매주 업데이트 되는 운영체제를 나름대로 평가하고 의견을 낸다. 이들이 모이는 온라인 게시판에는 A4용지 수십 매에 달하는 의견도 올라온다. 당연히 곳곳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이런 열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구를 끌어들인다. 종교, 또는 정치 집단의 확장 방식을 떠올리게 된다.


 

▲ '미펀'들의 오프라인 모임. 야외로 소풍을 갔다. ⓒ샤오미 홈페이지



"고객 서비스도 제품이다"

"정치 쪽이 막혀 있으니, 그런 쪽(기업 팬 클럽)으로 열정이 뻗는다"라는 평가는 그래서 일리가 있다. 중국에서 정치 논쟁은 아직 무리다. 정치적인 뜻을 같이하는 이들끼리 오프라인 모임을 할 수도 없다.

대중의 정치 참여 통로가 막혀 있으니, 기업 팬 클럽이 정치 조직을 닮아간다. '미펀'들의 활동은 확실히 중국 공산당의 초기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2010년 알파테스트에 참가한 100명이 천 만이 넘는 '미펀'으로 불어난 것처럼, 중국 공산당 역시 소수의 열성 당원으로 시작했다. 공산당이 핵심 당원을 챙기듯, 샤오미도 소수의 열성 '미펀'들을 잘 관리한다.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샤오미도 명예를 통한 인센티브를 적극 활용한다. 매주 수상자를 발표하는 '빠오미화상'이 대표적이다.

샤오미의 슬로건 가운데 하나가 "미펀이 있기에 샤오미가 있다"이다. 실제로 샤오미는 직원 8000여 명 가운데 3000여 명을 고객센터에 배치했다. 본사 건물 1, 2층에 고객센터를 뒀다. 상당수 기업들이 고객센터 업무를 외주 업체에 맡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창업자 레이쥔은 "고객 서비스 역시 샤오미의 제품"이라고 말한다. 샤오미 개발자들의 핵심 업무 역시 '미펀'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미펀의 요구에 맞춰서 서비스를 개선한다. 개발자는 '미펀'을 위해 복무한다. 역시 공산당을 떠올리게 한다. "인민이 있기에 당이 있다." "당은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

공산당은 초기 당원들을 '혁명 원로'로 우대한다. 창업자 레이쥔도 비슷한 생각이다. 오래된 고객이 신규 고객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의 말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기존 고객들에겐 유료, 신규 고객에게는 무료 정책을 실시합니다. 왜 기존 고객들에게는 무료, 신규 고객들에게는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을 쓰지 않는 걸까요? 이렇게 하면 제품의 확장 속도는 둔화될지 몰라도, 기존 고객들을 잘 관리함으로써 브랜드의 생명력이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을 텐데요."(<샤오미insight> 146p, 허옌 지음, 정호운·정세경 옮김, 예문 펴냄)

"젊은이들은 성취감을 소비한다충성도가 먼저, 지명도는 그 다음"

 


공교롭게도, '샤오미'라는 회사 이름 역시 중국 공산당과 관계가 있다. '샤오미(小米)'는 '작은 쌀', 즉 '좁쌀'이란 뜻이다. 중국 공산당의 홍군이 혁명 과정에서 먹었던 좁쌀밥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雷軍)이 창업 당시 동료들과 먹었던 좁쌀죽에서 따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어찌 됐건 레이쥔이 중국 공산당을 염두에 두고 회사 이름을 지었다는 건 분명하다. 레이쥔이 원래 생각했던 회사 이름은 '훙싱(紅星)'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상징, '붉은 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훙싱'이라는 이름을 쓰는 회사가 이미 있었다. 그래서 차선으로 택한 이름이 '샤오미'였다.

샤오미의 성공 비결 한 가지를 방금 살펴봤다. 초기 공산당원처럼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미펀'들의 존재다. 샤오미 공동창업자이며 마케팅 책임자인 리완창은 '참여감'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는데,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의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기능이나 브랜드를 소비하는 게 아니다. 참여를 통한 성취감을 소비한다. (샤오미는) 그 흐름에 올라탔다." 


'미펀'들이 '참여감'을 쏟아내는 통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입소문에 의지하는 샤오미의 마케팅은 초기부터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혁명 원로' 격인 초기 고객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전략은 SNS에서 더 잘 먹혔다. 영향력 있는 SNS 이용자는 어지간한 미디어보다 힘이 세다. 리완창은 "충성도가 먼저, 지명도는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소수의 열성 고객을 잘 챙기는 게 먼저라는 뜻이다. 이게 잘 되면, 홍보는 저절로 된다.

"최고가 될 필요 없다. 기대보다 잘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설명이 더 필요하다. 대중의 '참여감'을 쏟을 대상은 다른 기업, 다른 분야가 될 수도 있었다. 열정적인 소수가 힘을 발휘하는 SNS 시대의 특징에 주목한 기업은, 샤오미 말고도 많았다. 왜 하필 샤오미가 성공한 걸까. 그들은 어떻게 '참여감'을 독점할 수 있었나. 창업자 레이쥔의 '계산'도 함께 고려해야 설명이 완성된다.

샤오미 제품 중에는 아직 독창적인 게 없다. 애플 등 선진 기업 제품을 거의 베끼다시피 했다. 품질도 떨어진다. 싼 가격치고는 좋다고 할 뿐이다. 창업자의 '스토리' 역시 재미가 없다. 스티브 잡스의 삶처럼 파란만장하지 않다. 구글 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처럼 '천재' 이미지를 풍기는 것도 아니다. 레이쥔은 그냥 모범생, 우등생 정도의 이미지였다.

팬클럽은커녕 입소문이 날만한 조건도 없다. 레이쥔도 그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입소문'에 의지해 판매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대체 무얼 믿고? 그는 평판 관리의 요령에 정통했다. 평판은 실력의 절대치와 관계가 없다. 중요한 건 기대치를 관리하는 것이다. 가장 우수한 제품이 그만큼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는 건, 기대치가 그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설령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이라도, 기대치가 그보다 낮다면 평판은 오히려 좋아진다. 무조건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고 좋은 소문이 나는 게 아니다. 소비자의 기대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성공한다. 그러자면, 소비자의 기대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아울러 쓸데없이 기대치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 과장 광고는 그래서 바보짓이다. 창업자의 경력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짓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기대치가 기업의 역량 바깥으로 벗어나면, 망한다.

레이쥔이 이런 생각을 굳힌 건 지난 2009년이었다. 샤오미 창업 한 해 전이다. 당시 미국 아마존이 '자포스'라는 신발 판매 사이트를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자포스'는 대체 어떤 강점이 있기에 그토록 높은 값에 팔린 걸까. 레이쥔은 골똘히 궁리했다. 결론은, 고객이 끊임없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고객이 '자포스'에서 신발을 고르고 살 때, 마음에 품은 기대 수준이 있다. 모든 서비스가 그걸 살짝 넘어서게끔 설계돼 있다는 게다. 예정된 일자보다 늘 조금 일찍 배송한다. 반품해도 될까 싶었는데, 배송비도 안 받고 반품 처리 해준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고객은 탄성을 지르고, 결국 입소문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그대로 샤오미의 정책이 됐다. 애플이나 삼성 제품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샤오미 고객의 기대치는 애플, 삼성보다 낮다. 기대치가 높은 고객은 애플이나 삼성 제품을 쓰면 된다. 샤오미의 목표는 고객의 기대치를 늘 조금 더 채워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품질이 낮은 제품으로도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샤오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성공했다. 기대치에 거품이 끼는 걸 막기 위해 창업 이후 1년 동안은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울러 창업자 레이쥔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전혀 이름이 나지 않았던 제품을 써본 소비자들은 기대를 뛰어넘는 품질에 깜짝 놀랐다. 초기 샤오미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금방 뜨거워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무명의 저가 제품인데도 의외로 괜찮다"라는 탄성 속에서 묻혀 버렸다.

'기술 성장은 계단, 기대치는 직선'"그땐 어쩌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샤오미는 '낮은 기대치'를 지렛대 삼아 성공했다. 기대치를 늘 조금씩 뛰어넘으면서 평판을 쌓았다. 기술력 성장이 기대치 상승보다 늘 앞서갔다. 이런 상황이 영원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기술 대부분은 이미 첨단기술이 아니다. 그러니까 후발주자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는 순간, 한 차원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그건 발 빠르게 습득할 수 없다. 기술 습득은 직선을 따르지 않는다. 군데군데 계단이 있다. 산수에서 수학으로 넘어갈 때 계단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샤오미의 성장에 열광했던 '미펀'들이 이런 사정까지 고려할 리는 없다. 그들의 기대치는 직선을 따라 올라간다. 


기술이 계단에 부딪혔는데, 기대치는 계속 올라가는 순간이 곧 온다. 기대치가 실력을 추월하는 것이다. 샤오미의 성공 방정식은 그 순간부터 작동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샤오미 쇼크' 세 번째 글에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