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건설 등

"바보야, 지금 강남 아파트 사면 10년 후엔 …"

일취월장7 2015. 10. 23. 10:53

"바보야, 지금 강남 아파트 사면 10년 후엔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①] 부동산 신화의 탄생과 몰락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 2015.10.22 11:23:52
 
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시의 풍경은 어떨까요? 대한민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모습 속에는 지난 시기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그런데 우리는 정작 현재의 모습만 확인할 뿐, 그 안에 어떤 역사가, 아픔이, 욕망이 숨어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임동근 박사(서울대학교 지리학과 BK교수)가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반비 펴냄)을 펴낸 것은 이 때문입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멀리는 일제 강점기 농촌 풍경부터 지금 이 순간의 '메트로폴리스 서울'까지, 이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를 정치지리학의 시선으로 추적합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은 경제 개발을 위해서 전국에서 동원된 사람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야 하는 '지배하는 자'의 욕망과,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하고 말겠다는 '지배받는 자'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빚어낸 공간입니다. 당연히 이 두 가지 욕망은 대립하고, 타협하고, 융합하면서 무수한 사건을 만들어냈죠.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동사무소의 출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한 서울의 확장, 그린벨트의 등장, 아파트의 등장, 아파트 분양과 중산층의 탄생,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탄생, 지방자치제, 청계천 복원, 버스 전용차로, 뉴타운, 디자인 서울 등의 사건을 통해서 바로 이 욕망들의 맨얼굴을 추적합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서울 사람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정치가 보통 사람의 삶을 어떻게 빚어내는지 그 생생한 사례를 보면서, 삶에 각인된 정치의 힘에 전율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 이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진전시킬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여러분이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을 읽기를 권합니다. <프레시안>과 반비 출판사는 이 책을 먼저 읽은 여러분의 독후감을 매주 목요일 공개합니다. 첫 번째 독후감은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입니다. 최 기자는 '여전히' '지금도' '서울의 아파트를 사는 것'이 최선인지를 묻습니다.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임동근·김종배 지음, 반비 펴냄). ⓒ반비

한 살 위 형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할 때쯤이었으니까 1987년쯤이었을 게다. 서울 반포에 살던 이재에 밝은 고모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여기 반포에 주공 아파트 하나 사놔요, 오빠. 얘들 대학 간다고 서울로 올라오면 아파트 하나는 있어야지. 조금만 은행에서 대출하면 지금 몇 천만 원 있으면 살 수 있어요."

몇 천만 원. 그때는 그랬다. 반포에 있는 조그마한 주공(주택공사) 아파트 가격이 1억 원이 채 안 되는 시절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재력 수준이 어느 정도 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그 아파트를 사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3년도 지나지 않아 여수항 근처에 있던 우리 집도 당시 새로 조성된 여천 신도시의 한 신규 분양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그 가격이 1억 원 가까이 됐었기 때문이다. 은행에 빚 지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하셨던 소도시 중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기존의 주택 판 돈과 예금 등을 합해 100% 현금으로 그 아파트를 사셨다.

근 30년이 흘렀다. 아버지는 당시 분양받은 그 아파트에 여전히 사신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여수 바다가 한 눈에 보일 만큼 위치도 좋고 집도 넓지만 형에게 물어보니 아파트 가격은 1억200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명목상 2000만 원 올랐다고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아파트 연식에 따라 여수의 아파트는 철저히 감가 상각돼 왔던 것이다.

반대로 당시 서울 고모들이 '사놓으라고' 했던 서초구 반포 주공 아파트는 재건축을 거쳐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가운데 한 곳이 됐다. 몇 년 전 재건축을 할 때 34평형 아파트를 당첨 받은 기존 소유자들은 부담금 없이 몇 억 원을 돌려받은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투자 수익률로 따지면 대략 2000% 정도는 될 것으로 추산된다. 워렌 버핏도 울고 갈 수익률이다. 이러니 한국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좌우간 빚 내서라도 강남에 집 사놓으면 돈 된다.'

과연 그럴까? 2004년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창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던 때였다. 나는 당시 한국방송(KBS) 다큐제작국에 파견돼 <그들만의 리그, 강남의 부동산>이라는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고 있었다.

당시 부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강남구 대치동 타워팰리스였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미분양이었던 이 주상복합 아파트는 당시 부동산 거품의 광풍을 타고 순식간에 한국 최고가 아파트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이 타워처럼 요상하게 생긴 주상복합건물을 찍고 있을 때, 여대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지나치며 한 마디 툭 던지고 간다.

"왜 남의 아파트 찍고, 또 투기네 뭐네 하려고 그러죠. 우리 아파트 찍지 말아요!"

워낙 갑자기 당한 상황이라 뭐라 대꾸도 못해 몹시 억울했던 기억이다. '아니 카메라가 있던 곳은 길거리고, 내가 찍은 것은 밖에 나와 있는 건물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화가 났지만 잽싸게 한마디 던지고 간 얄미운 부잣집 따님을 쫓아가 언쟁 벌이는 것도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10년이 조금 더 흘렀다. 뇌리에 부정적 이미지로 가득했던 타워팰리스는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2006~7년 최고점에 비하면 한때 절반가 이하로 떨어졌다가 최근에야 조금 가격이 회복됐다. 아직도 최고점 수준에서는 60~70% 수준이란다. 일반 아파트에 비해 실제 주거 공간도 좁은데다 관리비도 많이 나오고 환기도 잘 되지 않는 구조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입주자들은 그런 소리 밖으로 나가면 아파트 가격 떨어진다고 아직도 얼굴을 붉힌다고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아무리 막강한 강남 아파트 부녀회라도 시장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잘못하면 사람이 아니라 건물에 대한 명예 훼손이 들어올 수도 있는 나라이니 나도 이쯤해서 타워팰리스에 대한 악평은 멈추고 한 가지의 팩트만 제시하고자 한다. 한 때 서울 최고가의 아파트라도 절반가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는 게 시장이다.

'좌우간 강남에 집을 사놓는다고 해서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사적 욕망'의 영역이다. 잘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대상이다. <서울 메트로폴리스>는 그런 욕망의 변곡점들을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도시화되어 가는 역사 속에서 꿰뚫고 있다.

실화고 현대사이니만큼 등장인물도 리얼하고 다양하다. 팟캐스트에 출연한 내용을 풀어 구어체로 쓴 것이라 읽기도 편하다. 재미있어 술술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경제부 기자류'들이 쓰는 '강남 부자들 이렇게 돈 벌었다' 같은 책들과는 내공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인문서로도 손색없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당신의 '사적 욕망'을 거세하고 이른바 '주거의 공공적 가치'를 강요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꼰대'같은 책은 아니다. 그저 흥미롭게 도시화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몇 가지의 통찰을 던져 주리라 믿는다. 책을 읽다 내게 문득 떠오른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도 있었다.

'사실은 이런 게 돈이 된다.'

언론인들에게 늘 숙제처럼 따라붙는 것은 '욕망'과 '공익'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언론은 대중이 보고 싶은 바,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잘 팔수 있지만, 언론이 잘 팔리는 것에만 신경 쓰다 보면 당초 보여주려던 공익적 가치는 자주 퇴색되고 만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땅, 도시화, 아파트의 역사)는 욕망에 관한 것이기도 하면서 또 공공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욕망과 공익을 잘 '콜라보'했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이다. 끌어들이면서도 절대 지르지는 않고 암시만 주려고 하는 부분들은 언론인 김종배의 타고난 역량일수도, 아니면 도시학 학자 임동근의 깊은 내공일수도 있겠다.

앞으로는 과연 이 도시가 어떻게 변할까? 역사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 1세대 도시학 학자로 소개된 손정목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1960년대 영동택지개발지구 당시 서울시 도시개발과장)는 필자가 2004년 3시간여의 매우 긴 인터뷰를 했던 분이고 또 필자에게 큰 영감을 준 분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방송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 책 전체의 주제일 수도 있는 이 분의 혜안을 어렴풋한 기억으로 재구성해 보는 것으로 이 책이 주는 미덕을 요약해보자.

손 : 당신 같으면 60~70년대 강남에 땅을 샀겠어, 안 샀겠어요?

최 : 아니, 당연히 사지요. 그거 샀으면 나중에 벼락부자 되는 건데….

손 : 아니, 안 샀을거야. 당시 대부분 공부 좀 잘해서 서울로 올라온 지방 출신 관료, 대기업 직원들은 당시에는 서울도 아니었던 송파구 뽕밭이나 반포 습지대를 잘 사려고 하지 않았어. 그 때는 거기가 서울도 아니었고. 게다가 아직 농경 사회였거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렇고, 특히 사람들 생각이…. 서울 가서 돈 벌면 고향 주변에 논이나 밭 마지기 사는 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었어. 그래서 안 산 게 아니라 못 샀던 거야.

이 책은 그 때 손정목 교수로부터 받은 영감을 다시 일깨워 줬다. 과거의 경험은 자주 상상력의 족쇄가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아파트값이 오르는 것만을 경험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서울 도시화의 역사는 분명 상상력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때라면 난 고향의 땅을 샀을까 아니면 강남의 아파트를 샀을까? 만약 지금 똑같은 선택을 한다면 어떤 선택을 무엇을 근거로 하게 될까? 과연 앞으로 10~20년 뒤에는 이 도시의 아파트 값이 오를까? 시대는 변하지만 시대에 갇힌 사람들은 대부분 변하지 않는다. 자기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그래서 좋은 역사서는 언제나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