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TPP에 무얼 바랄까?

일취월장7 2015. 10. 22. 13:07

 

TPP에 무얼 바랄까?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지역을 포괄한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됐다. 미국과 일본을 양대 축으로 한 TPP는 GDP로 보면 전 세계 40%를 점유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TPP와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살펴봤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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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 승인 2015.10.21  15:52:39

미국 애틀랜타에서 10월5일 타결된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은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지역을 포괄한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을 양대 축으로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브루나이·캐나다·칠레·말레이시아·멕시코·페루·싱가포르·베트남 등이 참여했다. 인구로 따지면 8억명, GDP로 보면 전 세계의 40%를 점유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TPP를 주도하는 미국은 앞으로 회원국을 계속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중국은 협상 참여의 뜻을 거듭 밝혔는데도 사실상 거부당했다. 한국은 아직 참여하지 않았지만, 필리핀·타이 등과 함께 TPP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상당수 국내 언론은 ‘경제영토를 잠식당했다’며 정부의 늑장 대응을 성토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정말 가입 시기를 놓친 것인지’부터 시작해 TPP 관련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본다.

 

한국 정부는 TPP 협상을 서둘러야 했나? 한국은 TPP 12개 나라 중 일본,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나라(10개국)와 이미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관세 인하에 따른 수출 증진’ 측면에서 본다면, 설사 TPP에 들어갔다고 해도 그 효과가 크지 않다. 한·일 관계에서는 오히려 손실로 귀결될 수도 있었다. 한국 제품을 일본에 수출할 때 부과당하는 관세율보다 일본 제품을 수입할 때 부과하는 관세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일 무역 관계에서 TPP의 효과는, 한국의 일방적 수입 개방인 셈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0월5일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여한 12개국 대표단이 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5일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여한 12개국 대표단이 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관세 이외의 TPP 협의 내용 중에는 불투명한 사안이 너무 많았다.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자유무역협정으로 평가되는 한·미 FTA보다 한층 강화된 ‘서비스 시장 개방’ 및 ‘지적재산권 보호’ 방안, 그리고 국유기업(공기업)과 환율에 대한 공통 기준 등 새로운 협의 사항까지 추가되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이익은 적고 불투명한 비용은 큰 데다, 한·중 FTA 등 이른바 ‘경제영토’를 넓힐 수 있는 다른 방안까지 등장했으니, TPP 협의에 선뜻 나서지 않은 것을 한국 정부의 전략 실패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TPP 가입은 가능할까? TPP는 미국의 ‘중국 포위망’이기도 하다. 글로벌 최대 규모의 경제를 운용하는 미국이 세 번째인 일본과 연대해서 두 번째 경제국(중국)을 견제하는 형국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TPP 타결 직후 발표한 백악관 성명에서 이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미국의 잠재 고객 중 95% 이상이 해외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중국 같은 나라들에게 글로벌 경제의 규칙을 정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 미국의 새로운 시장을 열려면, 미국 스스로 글로벌 경제의 규칙을 써야 한다.” 중국이 TPP 협상에서 배제된 이유다.

그러나 TPP의 주요 회원국들이 아시아에 위치한 상황에서 중국만을 ‘외과수술’적으로 제외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의 글로벌 경제에서는, 한 제품의 생산에 여러 나라의 크고 작은 기업이 참여한다. 특히 TPP의 아시아 회원국들이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 그 ‘공급 사슬(supply chain)’의 핵심부에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 있다. 결국 중국의 TPP 참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거론될 수밖에 없고, 미국 역시 끝까지 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국이 TPP에 가입하려면, 자국의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이행할 수 없는 규범들(투자자·국가 소송, 국유기업 우대 철폐, 환율조정 금지 등)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0월12일 TPP-FTA 대응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10월12일 TPP-FTA 대응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TPP의 진정한 목표는? TPP의 12개 회원국들은 일단 관세 인하 및 철폐 부문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이 타결 직후 발표한 ‘TPP 팩트 시트(Fact Sheet)’에 따르면, 이런저런 형태의 관세를 무려 1만8000개나 제거했다. 특히 자동차에 대해서는 최고 70%까지 관세율을 낮췄다. 다만 지난 20여 년 동안 개별 국가들의 관세율이 이미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TPP의 관세 인하 폭 역시 각국의 수출입에 현실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관세율의 인하 속도 역시 “한탄스러울 정도로 느리다(lamentably slowly)”.

일본은 쌀과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자동차의 무관세 수출을 얻어냈다. 그러나 일본의 화물트럭이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되기까지는 무려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다수의 경제 전문가와 유력지들은 TPP의 핵심을 관세보다 훨씬 예민한 사안인 ‘서비스 산업의 수출’로 본다. 예컨대 미국의 은행·증권사·보험사·소매업·미디어·의료업·통신업 등 서비스 부문의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서비스 수출이 예민한 항목인 이유는, ‘수입국’의 기존 제도는 물론 더 나아가 주권을 위협할 가능성 때문이다. 예컨대 사실상 국유 금융회사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우정국은 매머드급 보험사이기도 하다. 일본에 진출하는 미국 보험사가 국가 지원을 받는 우정국과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일본 정부에 대해 국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편 지적재산권 측면에서는 미국이 상당한 양보를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제약 산업의 경우, 신약 개발에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다. 이에 성공한 제약사들은 자기 회사만 수년 동안 해당 약품을 비싼 가격으로 제조·판매할 권리(특허보호)를 누린다. 특허보호 기간이 지나면, 다른 회사들도 이미 알려진 성분을 활용해서 복제 약을 출시할 수 있고, 약품 가격은 대폭 인하된다. 제약산업 강국인 미국이 특허보호 기간을 12년으로 요구했던 이유다. 그러나 TPP 타결 관련 정보들을 종합하면, 특허 보호 기간이 5년(최대 8년)으로 합의되었다.

 

국유기업 및 환율 등에서의 ‘주권’ 문제 지금까지 TPP 관련 논란에서 가장 낯설고 뜨거웠던 부분이 바로 국유기업(SOE) 및 환율 관련 조항이다. 국유기업(공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보조금·저금리 자금 지원·정부의 국유기업 제품 매입), 국민경제적 필요성(물가·수출실적)에 따른 환율 조정 등을 불공정한 시장 개입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국제 기준을 만들어 각국 정부에 강제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 주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타결 직후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TPP 팩트 시트’에 따르면, 국유기업 관련 조항은 TPP에 정식으로 포함되었다. 해외 나라들이 자국의 국유기업에 보조금 등 부당한 혜택을 제공해서 미국 기업(과 노동자들)에 피해를 주는 사태를 중단시키겠다고 한다. 환율 관련 조항이 TPP에 포함되었는지는 좀 애매하다. 로이터 통신(10월5일자)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적절한 공개토론들(fora)을 통해 환율 문제 등 거시경제 부문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냈다. 어떤 형식으로든 TPP의 정식 조항으로 명기했다는 것인지 혹은 앞으로 논의해서 포함시키겠다는 것인지, 아직까지는 불명확하다.

 

TPP는 언제부터 본격 시행될까? 국가 간 협정은 타결되더라도 ‘공식 문안’으로 정리되어 나오기까지는 몇 개월이 더 걸린다. 또한 최종 협정문이 나오더라도 각국의 국내에서 검토한 뒤 국회에서 비준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최종 협정문이 나온 뒤 3개월 동안의 논의를 거쳐 의회에서 표결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TPP의 정식 발효 시기는 빨라도 2017년 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더욱이 미국만 해도 여야의 주요 대선 후보들이 하나같이 TPP에 비판적이다. 캐나다에서도 오는 10월19일 선거에서 집권당이 바뀌는 경우 TPP의 비준 자체가 불확실해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