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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한테 외면 받은 김성근의 개입주의

일취월장7 2015. 10. 16. 15:13

 

팬들한테 외면 받은 김성근의 개입주의

<시사IN>은 아르스 프락시아와 함께 야구 커뮤니티의 김성근 감독 관련 게시글 2만8475개를 분석했다. ‘모두를 위한 일부의 희생’이라는 김성근 감독의 논리가 빛을 잃었다. 야구팬의 시야가 좀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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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승인 2015.10.16  08:34:43

 

김성근(사진)은 아이콘이다. 프로 야구팀의 감독 한 명이 스포츠 전문지를 넘어 일반 언론매체를 뒤덮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5년 한화 이글스는 단연 화제를 독점한 팀이었다. 마약 같은 야구를 한다는 의미로 ‘마리한화’라는 별명도 붙었다. 한화그룹은 김 감독을 그룹 이미지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김성근은 리더십의 아이콘이다. 약체 팀을 맡아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이미지야말로 김성근 고유의 캐릭터다. 2011년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맡으며 이미지는 더 공고해졌다. 김 감독이 낸 책 제목은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이다. 영향력은 야구판을 훌쩍 뛰어넘었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문재인 대선후보가 앞다투어 고양 원더스를 찾았다. 한화 이글스 감독 선임 직후 그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리더십 강연을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  
ⓒ연합뉴스

 

 

2015년은 김성근식 리더십이 극적인 반전을 겪은 해이기도 하다. 전반기 84경기에서 44승40패(+4)로 돌풍을 일으킨 한화 이글스는, 후반기 60경기에서 24승36패(-12)로 추락했다. 성적보다 내용이 나빴다. 핵심 불펜 투수 권혁은 112이닝을 던졌다. 39세 노장 박정진은 부상으로 마지막 한 달을 쉬고도 96이닝이다. 144경기 리그에서 불펜 투수가 기록해서는 안 되는 수치다.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는 스무 살 유망주 김민우와 혈행장애 이력이 있는 송창식은 선발과 구원을 오가는 하중을 감당했다. 야구팬의 여론은 7월을 고비로 폭발했다. ‘김성근’과 나란히 붙는 단어가 한때는 ‘강훈련’과 ‘성적’이었다. 이제는 ‘혹사’다.

그래서 김성근은 ‘질문’이다. 그를 이 시대 리더의 표상으로 끌어올린 정서는 무엇이었고, 한 시즌 만에 거부 정서가 폭발한 이유는 또 무엇이었나. 우리는 어떤 리더십에 열광하고, 어떨 때 등을 돌리나. 2015년의 김성근은 ‘우리에게 리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김성근 리더십을 관통하는 핵심 서사는 두 축이다. 성과주의, 그리고 비주류 코드. 개요는 이렇다. 재일 동포 출신의 ‘비주류’ 김성근은 가는 팀마다 ‘기득권(구단)’의 미움을 받지만, 가는 곳마다 꼴찌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거나 연속 우승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뽑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득권은 그를 몰아낸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LG 트윈스 감독에서 경질되고 4년간 3회 우승을 거두고도 2011년 SK 와이번스 감독에서 물러나면서, 핍박받는 ‘비주류’와 탁월한 ‘성과주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서사가 구성됐다.

묘하게도 두 개의 축은 수요층이 다르다. 비주류 코드에 열광하는 수요는 야구장 밖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진보 성향 언론이나 야당 인사들이 김성근 감독에게 열광하는 장면이 드물지 않다(2016년 김성근, 몰락인가 반전인가 기사 참조). 하지만 야구판으로 범위를 좁히면, 김성근 리더십의 핵심은 성과주의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김성근 감독에 대한 여론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 추적했다. 여론이 폭발하기 시작한 올 7월을 기준으로 전기(<그림 1>)와 후기(<그림 2>)로 나누었다. 전기의 핵심 키워드는 ‘훈련’이었고, 후기의 핵심 키워드는 ‘혹사’였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김성근 감독에 대한 여론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 추적했다. 여론이 폭발하기 시작한 올 7월을 기준으로 전기(<그림 1>)와 후기(<그림 2>)로 나누었다. 전기의 핵심 키워드는 ‘훈련’이었고, 후기의 핵심 키워드는 ‘혹사’였다.

 

 

 

<시사IN>은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회사 ‘아르스 프락시아’와 함께 유력 야구 커뮤니티인 ‘엠엘비파크’에서 김성근 감독에 대한 여론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를 추적했다. 김 감독 영입 청원 릴레이가 벌어진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김성근 감독 관련 게시글 2만8475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여론이 폭발하기 시작한 올 7월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를 나누었다. 그 결과가 위 <그림 1>과 <그림 2>다. 동심원의 안쪽에 있을수록 핵심적이거나 등장 빈도가 높은 키워드다.

전기 김성근 여론(<그림 1>)에서 핵심 키워드는 ‘훈련’이었다. 야구팬 사이에서 김성근 감독은 무엇보다도 ‘훈련’과 동의어였다. 김 감독의 지옥훈련은 강도와 훈련량 모두 악명이 높지만, 그런 훈련 덕분에 SK 와이번스가 최강팀이 될 수 있었다고 믿는 야구팬이 많다.

김 감독도 훈련을 본인 야구의 중요한 축으로 생각한다. 책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강한 훈련만이 훌륭한 선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그는 훈련량이 적은 몇몇 팀에 은근히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반기에도 야구팬들은 김 감독 특유의 ‘투수’ ‘혹사’ 문제를 알고 있었다(바깥 원 오른쪽 상단).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워낙 ‘성적’이 나쁘고 ‘문제’가 많은 팀이었다(바깥 원 오른쪽). 강훈련으로 대표되는 김성근식 야구는 어느 정도 혹사를 감수하더라도 매력 있는 대안으로 보였다.

훈련은 사실상 ‘노력’과 동의어다. 성적이 나쁜 것은 재능이나 시스템의 합리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력을 하지 않아서다. 그러니 노력하도록 개입하고 채근하는 엄한 아버지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30대 가장을 “아이”라고 부르며 탈진할 때까지 굴리는 리더에 팬들은 열광했다. 이 ‘엄한 아버지’는 때로 일부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가혹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비난에는 말 대신 성적이라는 결과물로 답한다. 리더의 뜻을 모르고 거치적거리던 반대파는 결국 드러난 성과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이렇게 풀어놓고 보면 한국 사회에 무척 익숙한 리더십 모델이다.

이 모델은 7월부터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다가 8월에 결국 고장이 났다. 한화 이글스는 8월 한 달 동안만 9승16패로 무너졌다. 이때부터 여론도 따라서 폭발한다. 월 100단위를 넘지 않던 관련 게시글이 9월에는 1만5000건을 넘어간다. <그림 2>는 7~9월의 김성근 여론이다. 이때는 핵심 키워드가 ‘혹사’다. 주변적이거나 감수할 만한 희생 정도로 간주되던 문제가 이제는 담론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모두를 위한 일부의 희생’이라는 방어 논리는 빛을 잃었다.

‘내년’이라는 의미심장한 키워드

특히 두 가지가 문제였다. 첫째, 모두를 위한다고 선수 개인을 희생시켜도 되는가. <그림 2>에는 한화 투수인 ‘송창식’과 ‘권혁’이 담론지도의 주요 단어로 등장한다. 둘 다 혹사당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기록을 남겼다. 두 번째 질문이 더 중요한데, 일부를 희생시키는 게 과연 모두를 위한 일이기는 한가. ‘야구’ ‘올해’만 하고 ‘내년’에는 안 할 거냐는 질문이 한화 이글스 팬들을 괴롭혔다.
 

 

   


 

 

‘내년’은 특히 의미심장한 키워드다. 야구와 같이 ‘장기로 가면 평균으로 수렴하는 세계’에서는, 시야가 단기적인가 장기적인가는 때로 성패를 가르는 문제가 된다. 보통은 당장 눈앞의 승패가 중요한 야구팬이 단기 성과를 추구하곤 하지만, 8월 이후 팀의 추락을 지켜본 팬들은 반대 방향으로 결집했다. 시즌은 길고, 그런 식의 총력전 공세를 1년 내내 펼칠 수는 없으며, 언제고 평균 회귀의 법칙이 청구서를 보내올 것이다(마리한화 김성근이 빠진 6가지 착각 기사 참조).

야구팬의 시야가 좀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김성근식 개입주의 모델은 예전만큼 잘 작동하지 않았다. 길게는 30년씩 프로 야구를 보아온 야구팬들은 더 이상 눈앞의 한 경기를 투수의 팔꿈치와 맞바꿀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수술 경력이 있는 스무 살 유망주 투수 김민우가 불펜 등판 후 하루를 쉬고 선발(금기에 가까운 투수 운용이다)로 예고되던 날, 한화 팬들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이것은 성과주의를 기각한 것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여론의 폭발 시점과 한화의 성적 추락 시점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분석에 잡힌 야구팬의 주류 정서는 오히려 이런 것이었다. 리더가 일일이 개입하고, 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자원을 집중하는 ‘요소투입형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확신, 그러니까 성과를 위해서라도 개입주의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공감대였다.

최근 리그 상위권을 형성하는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넥센 히어로즈는 모두 감독의 개입주의 야구와는 거리를 둔 모델로 성공하고 있다. 이들 팀은 평균을 이기려 드는 ‘엄한 아버지’가 아니라 평균 자체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둔 ‘합리적인 시스템 관리자’ 모델로 더 잘 설명된다. 야구팬은 이제 대안 모델에도 충분히 익숙한 상황이었다. 2015년 가을, 한국 야구에서 기각된 것은 성과주의가 아니었다. 요소투입형 개입주의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이 기각됐다.

 

 

마리한화 김성근이 빠진 6가지 착각 

 

사람은 착각하는 동물이다. 리더라고 예외는 아니다. 리더의 착각은 조직 전체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착각에도 패턴이 있다. 인지과학·행동경제학·경영학 등에서는 인간이 왜, 어떤 식으로 착각하는지를 밝히는 연구가 제법 축적되어 있다. 2015년 ‘김성근의 야구’에 적용해봤다.


1. 손실 회피 편향

동전 던지기 도박이 있다. 앞면이 나오면 100만원을 잃는 반면 뒷면이 나오면 150만원을 얻는다. 확률과 기댓값 계산은 이 도박에 “참여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하지 않겠다고 답하는 게 보통이다. 같은 값이라도 사람은 이득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를 ‘손실 회피 편향’이라고 부른다.

야구인들과 야구팬이 단연 싫어하는 것이 경기 종반에 당하는 역전패다. 손실 회피 편향이 작동하기 때문에, 손에 들어왔던 승리를 놓치는 것을 보통의 1패보다 훨씬 아프게 받아들인다. 역전패를 두려워하는 감독일수록 좋은 구원투수를 혹사할 가능성이 높다. 7월28일 한화-두산전은 상징적이다. 김성근 감독은 8점 차로 넉넉히 앞선 9회에 이미 피로 누적 징후가 짙던 핵심 불펜 투수 권혁을 올렸다. 야구팬들은 경악했다.

한화의 주력 불펜 투수들은 2015년 기록적인 투구 이닝을 기록했다. 손실 회피 편향은 눈앞의 손실에 민감하게 해주고 팽팽한 경기에 전력투구하게 만들지만, 그렇게 동력이 고갈되면 맥없이 놓치는 경기가 쌓여간다. 한화는 후반기에 24승36패로 추락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  
ⓒ연합뉴스

2. 터널링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과 인지과학자 엘다 샤퍼가 <결핍의 경제학>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위기를 맞이할 때, 우리 뇌는 눈앞의 과제에만 집중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스위치를 꺼버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다 보면 당장의 문제는 해결하더라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면서 그 너머를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당신이 전쟁터에 떨어져 있다면 터널링 상태는 꽤 유용하다. 당장 살아남지 못하면 내일도 없고 다음 과제도 없기 때문에, 눈앞의 숙제에 모든 자원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1년에 144경기를 치르는 경기의 감독이라면, 대체로 터널링은 독이다.

3. 기술 착각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의 틀을 정립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다. 그는 주식시장을 연구하면서 ‘기술 착각’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개인투자자의 거래 16만3000건을 분석한 결과 사들인 주식보다 팔아치운 주식의 수익률이 평균 3.2%포인트 높았으니,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오랜 기간 예측 가능하게 시장 평균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는 믿음은 ‘착각’이다.

야구는 주식시장을 닮았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운이 좌우하지만 장기적으로 평균이 지배하는 세계다. 둘째, 그럼에도 평균을 이길 특별한 기술이 있다는 믿음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세계다. 김성근 감독은 평균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개입주의’의 아이콘이다.

한화는 선발투수 평균 이닝이 5이닝이 안 되는 두 팀 중 하나다(나머지 한 팀은 전력이 갖춰지지 않은 신생 팀 KT 위즈다). 투수 교체가 잦다. 희생번트는 10개 팀 중 가장 많이 댄다(139개). 선수보다는 감독이 풀어나가는 경기를 한다. 시장 수익률을 훌쩍 상회하는 뮤추얼펀드가 있듯 ‘평균을 뛰어넘는 마법’도 한두 시즌은 등장할 수 있다. 인간은 그 결과를 특별한 기술의 힘으로 해석하고 싶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평균 회귀의 법칙이 이긴다.

4. 지속 성공의 망상

경영학자 필 로젠바이크는 성공의 비결을 찾았다는 경영학 베스트셀러들을 해부해서, 거기 등장하는 성공 모델 회사들의 시장가치가 책 출간 이후 평균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래 지속되는 ‘마법’은 없었다. 로젠바이크는 ‘과거의 성공이 미래에도 성공을 보장한다는 믿음’을 ‘지속 성공의 망상’이라고 불렀다.

김성근 감독 부임 시절 SK 와이번스는 리그의 지배자였다. 네 시즌 중 세 시즌을 우승했다. 이 눈부신 성공은 김성근의 이름에 후광효과를 덧씌웠다. 과거의 성공이 그대로 재현된다고 보장하려면 꽤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데, 인간은 대개 검증 과정을 생략하고 성공이 재현되리라 믿어버린다.

5. 확증 편향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이 1960년에 제시한 확증 편향이란, 정보가 복잡하고 불분명한 가운데 자기 신념에 맞는 정보만 골라 신념을 강화하는 태도를 말한다. 기후변화가 과장되었다고 믿는 보수주의자는 극우 매체 <폭스뉴스>를 보고,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는 <뉴욕 타임스>를 보는 식이다.

확증 편향은 성공 사례를 여럿 쌓아둔 리더일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자신이 옳다는 증거를 구하기가 대단히 쉽다. 김성근 감독의 책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성공 사례 모음집처럼 구성되어 있고, ‘제자’ 야구선수의 헌사가 곳곳에 채워져 있다. 과거 맡았던 팀에서 혹사로 선수 생활이 끝나거나 위기에 처했던 투수들의 이야기는 “그 선수의 투구폼이나 방탕한 생활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나는 알지만 밖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도로만 지나간다.

6. 악마의 변호사

똑똑한 사람만 모인 조직도 멍청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상대가 나보다 잘 알겠거니 생각하고, 책임을 회피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법학자이자 행동설계 이론가인 캐스 선스타인은 조직의 오판을 방지하는 방안 중 하나로 ‘악마의 변호사’를 추천한다. 일부러라도 조직 내에 반대 의견을 장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성근 감독에게는 ‘야구는 감독이 전권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하다. 책에서 그는 “한 팀에 태양이 두 개일 수는 없다”라고 썼다. 그의 감독 생활에서 이 정도 전권을 확보한 것은 2015년 한화 이글스가 처음이다. 하지만 그가 늘 추구하던 전권을 얻는 순간, 조직에는 반대 의견이 증발해버렸다. 올해 한화 이글스는 투수 혹사 외에도 ‘미래와 현재를 맞바꾸는’ 트레이드와 외국인 선수 교체 문제로도 구설에 올랐다.

 

 

2016년 김성근, 몰락인가 반전인가

 

언론은 ‘김성근 신화’를 만들고, 대중은 기꺼이 소비했다. 한때 김성근은 동시대 인물 중 가장 앞선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야구가 지금 얼마나 유효한지는 다른 문제다. 위기 앞에서도 그는 예전 방식을 고수했다.

  조회수 : 2,423  |  최민규 (<일간스포츠> 기자)

  

김성근의 감독 인생사, 혹은 야구사에는 극적인 요소가 있다. 김성근 감독은 2002년 LG 트윈스에서 경질된 뒤 2007년 SK 와이번스에서 5년 만에 1군 감독으로 복귀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야구계에서는 ‘김성근은 단기전에 약한 감독’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그해를 포함해 SK 와이번스에서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우승 3회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프로 야구에서 가장 불행했던 인천 팬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그리고 2011년의 드라마틱한 해고, 이어진 벤처사업가 허민씨의 투자에 기반한 고양 원더스 감독 취임은 김성근을 ‘야구’ 이상의 인물로 만들었다. 언론은 신화를 만들고, 대중은 기꺼이 소비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유력 후보는 모두 고양 원더스를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는 그를 불러 강연을 부탁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4월 <한국일보> 칼럼에서 “우리 정치는 김 감독의 리더십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라고 썼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한화 신드롬’이 한창이던 지난 7월 김성근 감독을 빗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최근 SNS에 “(한화 이글스 구단이) 김 감독님께 뭐라 하면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OB 베어스를 시작으로 여러 프로야구팀 감독을 지냈던 김성근 감독(현 한화 이글스)은 고양 원더스 감독 취임으로 ‘신화’의 자리에 올랐다.  
ⓒ연합뉴스
OB 베어스를 시작으로 여러 프로야구팀 감독을 지냈던 김성근 감독(현 한화 이글스)은 고양 원더스 감독 취임으로 ‘신화’의 자리에 올랐다.
 

특히 SK 와이번스에서의 해고 이후 김성근 감독에게는 ‘권위에 저항하는 외골수’ 이미지가 더해졌다. 이른바 ‘진보’ 쪽에서 호감을 느낄 법한 캐릭터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을 한국 사회에 대입하면 오히려 반대쪽에 더 가깝다.

감독으로서 김성근이 성공한 이유는 동시대 인물 중 가장 앞섰기 때문이다. 박용민 OB 베어스 초대 단장은 그에게 프로야구 감독 지휘봉을 처음 맡겼고, 처음으로 해고한 인물이다. 그는 “김성근 감독은 ‘이기는 법’을 안다. 노력에서 나왔다.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방법을 찾았다”라고 회고했다. 변변한 한글 야구 교본도 없던 시절, 김 감독은 독학으로 일본 야구책을 파고들며 자신의 야구관을 정립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한 노력을 강조한다. 훈련량은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언제나 투수를 혹사한 감독이기도 했다. 한 프로야구단 단장이 김 감독에게 스프링캠프 때의 과도한 투구 개수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답은 이랬다. “그 정도를 못 시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단장은 “부상 관리라는 면도 있지 않느냐”라고 재차 물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팀에 투수가 수십명이다. 몇 명 다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선진적인 집단이었던 군부의 쿠데타, 요소투입형 경제성장, 성장 과정에서의 반칙, 타인의 희생을 전제하는 비정한 성공지상주의…. 누군가는 김성근 감독을 소재로 야구판 <국제시장>을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다. 지난 현대사를 부정할 필요가 없듯,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김성근을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그 시절 선수를 혹사하지 않은 감독은 드물었다. 과거 타이완에도 뒤졌던 한국 야구는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야구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 김성근 감독도 분명 기여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야구가 지금 얼마나 유효한지는 다른 문제다. 세상이 변했고, 과거 성공의 방법은 낡은 것이 된다.

한화그룹은 올해 야구단으로 큰 홍보 효과를 얻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성공하는 공연이 드물다’는 연고지 대전·충남에서 홈 관중 만원사례가 21차례나 나왔다. 그럼에도 김성근 감독의 2015년 시즌을 실패로 규정한다면, 이유는 그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1984년 OB 감독을 맡은 이후 언제나 프런트와 불화를 일으켰다. 김성근 감독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승리, 그리고 성공이다. 1980년대 구단의 프런트 직원이라고 해봐야 15명 안팎, 경험과 전문성도 떨어졌다. 사이가 틀어질 경우, 그에게 프런트란 승리에 걸림돌이거나,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하거나, ‘공을 가로채는’ 존재였다. 올해 한화 이글스는 프로야구 사상 유례없이 감독 1인이 지배하는 구단이었다. 트레이닝, 스카우팅, 전력 분석 등 프런트의 핵심 업무까지 감독이 관장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김성근 감독은 2007년 SK 와이번스로 1군 감독에 복귀했다. 당시 SK 와이번스는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을 일궈냈다.  
ⓒ연합뉴스
김성근 감독은 2007년 SK 와이번스로 1군 감독에 복귀했다. 당시 SK 와이번스는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을 일궈냈다.

그나마도 기록적인 투수 혹사에 기댄 결과

마침내 원하는 것을 이룬 시즌. 하지만 한화 이글스의 시즌 순위가 6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구단 관리자로서 감독의 역량이 아니었다. 딱 하나를 꼽으라면 에스밀 로저스 투수의 두 달 고용에 들인 (이적료 포함) 200만 달러에 가까운 지출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늘 ‘혹사’라는 비판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올해가 가장 큰 비난을 받은 시즌이었다. 그저 “사람에겐 한계가 없다” “투수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라는 궤변 아래 몸을 숨길 따름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훈련에 지친 선수들은 “한계를 극복하라”는 김성근 감독의 말에 좌절을 느껴야 했다. SK 와이번스 시절 범접할 수 없던 권위에도 금이 갔다. 김성근 감독 자신이 시즌 뒤 “선수단에 나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라고 털어놓았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를 보는 눈이 넓고 깊은 사람으로 꼽힌다. 이효봉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김 감독의 눈에는 플레이의 흐름이 선으로 그려질 것이다”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올 시즌 후반기에는 야구 전문가 사이에서 “예전의 김성근이 아니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선수 기용과 작전에서 실패가 많았다.

한 점을 막고, 한 점을 내려는 ‘지키는 야구’는 타고투저(타력 우세, 투수력 열세) 시대에 맞지 않았다. <동아일보> 황규인 기자는 “김성근 감독은 성공했던 시즌엔 상대를 저득점 환경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실패한 시즌에는 반대였다”라고 분석했다. 올해 한화 이글스의 팀 평균자책점(5.11)은 지난해(6.35)보다 크게 낮아졌다. 그래도 10개 구단 중 9번째로 높았다. 그나마 기록적인 투수 혹사에 기댄 결과다.

과거 김성근 감독은 누군가의 좋은 방법을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 후반에는 위기에 빠질수록 과거 자신이 성공했던 방법에 기대려 했다. 하지만 그에겐 조력자가 많지 않았다. 원래부터 코치의 직언을 용납하지 않던 인물이다. 감독에게 권한을 빼앗긴 프런트와의 관계는 구조적 갈등이 잠재돼 있었다. 거장의 몰락을 지켜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명장이 그래왔다.

그래도 김성근 감독은 아직 현직이다. 야구의 미덕은 다음 날 경기가 열리고, 기약할 수 있는 다음 시즌이 온다는 데 있다. 김 감독은 2017년, 길게는 2019년까지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을 수 있다. 여기에서 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김성근의 2015년은 그의 야구에 처음부터 내재된 필연적인 몰락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달라진 환경에 적응이 늦었거나, 개인과 조직의 기능 저하로 인한 한 시즌의 실패일 뿐일까. 김성근은 이제 시한 만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올드 타이머’일까, 예전에 그랬듯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야구 감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