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금리는 묶었지만 불안은 못 묶었네

일취월장7 2015. 10. 8. 16:23

 

금리는 묶었지만 불안은 못 묶었네

9월 중순에 진행된 미국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2008년 12월부터 6년6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사실상 0%로 유지해왔다. 금리 동결의 전후와 향후 전망을 짚어보았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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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 승인 2015.10.08  02:59:51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금리)정책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지난 9월17~18일 진행한 회의는 전 세계가 주목했다. 연준은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6년6개월 동안 미국의 기준금리를 사실상 0%(0~0.25%)로 유지해왔다(<표 1> 참조). 지난 3월부터는 ‘올해 내로 금리를 올리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끊임없이 타전해왔다. 연준이 실제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장 유력한 시기가 바로 지난 9월이었다. 그러나 연준은 9월 FOMC에서도 금리를 ‘사실상 0%’로 동결하기로 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중국의 경기둔화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금리를 동결했다고 말했다.

사실 미국 연준은 세계의 중앙은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준이 결정하는 미국 금리를 기반으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과 금융시장이 움직인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세계적 영향력은 역설적으로 더욱 거대해졌다. 미국의 초저 기준금리(사실상 0%)는, 미국 투자자(각종 금융기관)들이 사실상 ‘공짜’로 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조달된 ‘싼 돈’은 주로 미국 주식시장 및 해외 이머징마켓의 ‘불안정적이지만 수익성 높은’ 금융상품들(정부채·회사채·주식 등)에 운용되었다. 연준의 저금리 정책 덕분에 미국의 거대한 자금이 이머징마켓으로 흘러들어가 그 나라의 자산(주식·채권·부동산)과 통화 가치, 경기를 잔뜩 부풀려놓았던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9월17일(현지 시각) 재닛 옐런 미국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준은 ‘세계경제 환경’을 금리 동결의 이유로 제시했다.  
ⓒAP Photo
9월17일(현지 시각) 재닛 옐런 미국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준은 ‘세계경제 환경’을 금리 동결의 이유로 제시했다.
 
미국의 금리가 상승한다(혹은 상승할 예정이다)면, 투자자들로서는 위험한 이머징마켓에 더 이상 자금을 묻어둘 필요가 없게 된다. 이머징마켓 입장에서는 ‘자금 유출’로 자산 및 통화가치가 대폭 떨어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머징마켓 국가들의 주요 수입원인 원자재 수출 가격은 폭락 중이다.

그동안 ‘세계의 공장’ 중국은 이머징마켓 국가들로부터 수입한 원자재를 완제품으로 가공해서 수출해왔다. 중국이 수출을 많이 할수록 원자재 수요도 많아지고 그 가격도 오른다. 이 덕분에 중국과 이머징마켓 경제는 동반 성장했다. 그러나 2012년께부터 흐름이 반전된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수출 위축) 원자재 수요 역시 줄어들었다. 원자재 가격은 따라서 떨어진다. 이머징마켓 국가들로서는 ‘들어올 돈(원자재 수출 대금)’은 감소하는데, ‘나갈 돈(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 이탈)’은 급증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통화가치 역시 하락하면서 외채 부담이 불어나게 된다. 예컨대 ‘1000원=1달러’인 시기에 100달러를 빌렸는데 그 환율이 상환 시점까지 유지된다면, 외환시장에서 10만원으로 100달러를 사서 갚으면 된다. 그러나 ‘2000원=1달러’로 원화 가치가 떨어져버렸다면, 상환금 100달러를 마련하는 데 20만원이 필요하다.
 
   


 
단지 미국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지난 9월18일 연준의 금리 동결은 이 같은 ‘세계경제 환경’을 감안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연준의 이날 결정으로 세계경제는 안정을 되찾았을까?

연준의 금리 동결 이후 세계경제는 안정되었나?

그렇지 않다. 이머징마켓의 통화가치는 계속 하락 추세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브라질 레알화의 경우, FOMC 직전인 9월16일에는 3.832레알로 1달러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9월30일 현재 3.988레알을 줘야 1달러를 받을 수 있다. 연준의 금리 동결에도 아랑곳없이 브라질에서 자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1월1일까지만 해도 2.657레알이면 1달러와 바꿀 수 있었다. 지난 2011년 7월엔 1달러는 1.529레알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레알화의 가치가 불과 4년여 만에 3분의 1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다른 이머징마켓 국가들의 통화들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34쪽 <표 2> 참조).

원자재 가격도 계속 내리고 있다(34쪽 <표 3> 참조). 구리 가격은 1t당 5350달러(9월16일)에서 9월30일 현재 5093달러로 떨어진 상태다. 구리는 5월12일에는 1t당 6448달러에 거래되었다. 2011년 2월에는 1만148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4년6개월여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찬양받은 중국과 이머징마켓 국가들이 지금은 세계경제를 새로운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도화선으로 전락해버렸다.

연준의 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가 안정되지 않는 까닭은?

지난 시기엔 세계시장의 불안이 격화되다가도 미국 연준이 금리 동결을 선언하면 곧바로 진정되곤 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이 사라졌다. 가장 큰 이유는 연준이 수개월 내에 미국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월의 FOMC 회의에서는 표결권을 지닌 위원 중 9명이 금리 동결을 지지했다(금리 인상은 한 표). 그러나 ‘금리동결파’ 중 대다수도 ‘연내’ 혹은 조만간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애틀랜타 연준 의장인 데니스 로커는 금리를 올리면 중국과 이머징마켓, 나아가 세계경제의 동요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금리 동결은 긴급피난(close call)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준 의장 역시 “금리 동결은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연준이 무제한으로 금리 인상을 뒤로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올해 내로 금리 인상에 들어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연준의 금리 동결 자체가 불안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지난 9월18일 연준은 금리 동결 결정 직후 낸 성명을 통해 ‘세계경제 환경’을 그 이유로 제시했다. 이는 연준의 최고위급 정책 결정자들마저 중국과 이머징마켓의 경제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연준의 ‘립서비스’ 자체가 시장을 안심시키기보다 일종의 경고로 간주되어 이머징마켓으로부터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추락에 대한 공포가 일정 기간 추가로 ‘싼 돈’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압도해버렸다.

연준은 언제 금리를 인상할까?

연준이 이번처럼 ‘해외 경제에 대한 충격’을 이유로 금리정책을 결정한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법률상 연준의 양대 의무는 미국의 ‘물가 관리’와 ‘최대 고용’이다. 미국의 물가와 고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하기 위해서만 금리 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연준은 2011~2012년, ‘물가인상률 2% 이상’과 ‘실업률 6.5% 이하’를 통화(금리)정책의 목표로 선언했다. ‘세계경제에 대한 배려’ 따위는 공식 목표로 제기된 바 없다.
 
   


 
이렇게 볼 때, 미국 경제는 금리 인상이 필요한 시기일 수 있다. 물가인상률에서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올 들어 7월까지 0.5% 내외에 그쳤다. 그러나 실업률은 5.3%까지 내려갔다. 고용 측면에서는 당초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연준 처지에서는 미국 경제의 회 복이 본격화되었다고 생각할 만하다. 경기회복 국면이라면 금리 인상은 필수적이다. 조금 거칠게 정리하자면, 미국의 통화량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4배로 불었다(연준의 자산이 7000억~8000억 달러에서 4조5000억 달러로 증가). 만약 지금이 본격적 경기회복 국면으로, 그동안 숨죽여온 기업과 가계가 일제히 대출과 지출(투자·소비)에 나선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 인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 좀 극단적 견해지만, 통화량과 물가가 비례한다면, 물가인상률이 400%에 이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고용보다는 물가 관리에 무게중심을 두었던 연준 위원들로서는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초저금리로 대출된 돈이 자본시장으로 유입되어 ‘자산 거품’을 만들고 있으므로 미래의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경기회복이라는 현상은 물가 인상과 실업률 하락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목표치인 2%에 턱없이 모자라는 미국의 물가인상률과 고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률이 지체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정말 경기회복 국면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금리가 실제로 인상되는 경우, 회복 국면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미국 경제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금리가 오르면 해당국의 통화가치 역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미국 수출기업의 실적 악화로 이어져 모처럼의 고용 증가를 하향 압박할 것이다. 더욱이 실업률이 개선되었다 해도 임금 상승은 미미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경기회복에 필요한 만큼 수요가 창출될지도 의문이다. 자칫 저조한 물가인상률이 더욱 하락해서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미국 금융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의 주가지수는 틀림없이 하락할 것이다. 그동안 미국 주식시장의 활황은 투자자들이 초저금리로 마련한 자금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금융기관들은 그동안 막대한 자금을 이머징마켓의 정부나 기업에 빌려준 상태다.

지난 8월 나온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은행 및 투자기관이 해외에 제공한 자금 규모가 2조3000억 달러에 달한다. 채무자 중 상당수가 이머징마켓의 정부와 기업인 것으로 보인다. 이머징마켓에서 국가부도가 발생하면,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투자금을 상환받지 못해 경영위기나 도산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자칫 제2의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

연준은 1년에 8회 열리는 FOMC 회의에서 금리정책을 결정한다. 올해는 10월과 12월에 FOMC가 예정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10월 FOMC에서 금리가 0.25% 인상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런데 연준은 큰 결정을 내리는 경우 반드시 기자회견을 연다. 이를 통해 시장에 일정한 신호를 주는 방법으로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10월 FOMC 회의 때는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리는 12월16일과 내년 3월6일의 FOMC에서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