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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인 의사결정, 직관에 대한 경계와 의심부터 - 가상현실의 시장 저변 확대

일취월장7 2015. 9. 24. 10:23

미래지향적인 의사결정, 직관에 대한 경계와 의심부터
황인경 | 2015.09.22

미래의 시장과 소비자를 주도할 창의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직관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많다. 하지만 때로 직관은 과거의 경험 법칙에서 나올 수도 있고, 인지적 오류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해 자신의 직관부터 의심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MIT 대학의 디지털 비즈니스 센터 책임자인 에릭 브린욜프슨은 ‘제 2의 기계 시대(The Second Machine Age)’라는 책에서 현 시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디지털화에 의한 기술과 사회 발전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할 초입 단계(Inflection point)이다(<그림 1> 참조). 컴퓨터라는 기계가 세상에 소개된 이후 꾸준히 성장해 온 디지털 기술이, 무인 자동차, 로봇, 3D 프린터, 인공지능 등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로 급속히 발전해 나갈 것이다. 둘째, 현재의 산업 형태도 극적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다. 예컨대, 제조업은 디지털화와 보다 적극적으로 융합이 되기 시작하여 조만간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의 형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즉 오랜 기간 조금씩 축적되어온 디지털 기술이 마침내 날개를 달고 세상을 급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는 예견이다. 얼마만큼 급진적인 변화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향후 미래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지금과는 아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외부 환경의 변동성이 커지는 경우,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해 판단하고 의사결정 하기가 어렵다. 돌발 변수가 많기 때문에 과거 경험의 법칙은 깨지기 쉽다. 언제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검은 백조가 날아들지 모른다. 요즘 수많은 기업체들의 신사업 책임자들은 “누가 언제 어떻게 현재의 시장을 뒤흔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다”라며 과거 경험만으로는 시장을 예측하거나 주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어, 미래의 시장과 소비자를 주도할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1. 나의 생각부터 의심해 보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틀릴 수 있어도, 자신은 옳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는 과거 자신의 경험, 특히 성공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경우들이 많아 새로운 미래지향적 사고를 하는 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2013년 테드 토크 대담에서 “당신은 테슬라, 솔라시티, 스페이스X 등 대담하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추진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머스크는 자신은 물리학을 배웠고, 그 덕분에 직관적으로 나오는 생각들을 모두 의심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생각을 의심한다는 것은 크게 1) 직관에 대한 의심과 2) 인지적 오류에 대한 경계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1) 직관에 대한 의심


직관적인 사고는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된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먼저 패턴 인지형 직관(Pattern recognition intuition)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과거 경험을 통해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된 여러 문제 해결 패턴 중 가장 적합한 하나가 즉각적이고도 자동적으로 제시된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사람들은 창의적 직관(Creative intuition)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창의적 직관이란 문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몇 일 끙끙대고 있다가 보면, 어느 순간 “아하”하며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토마스 에디슨이 말하는 1%의 영감에 의한 해결책이 이런 것이다. 창의적 직관은 하나의 생각이 다른 수많은 생각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자극하는 연상 작용을 통해 해답을 만들게 되는데, 이를 프라이밍 효과(Priming effect)라고 한다. 대부분의 직관 예찬론자들은 창의적 직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창의적 직관의 중요성을 폄하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반직관적 사고(Counter-intuitive thinking)를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할 때의 직관은 패턴 인지형 직관이다. 창의적 직관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적으로 사람들의 직관적 사고의 대부분은 패턴 인지형 직관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몇몇 문제들만을 창의적 직관의 영역으로 옮길 뿐, 일반적으로는 대부분 문제들을 패턴 인지형 직관으로 해결한다. 그 편이 답도 빨리 나오고, 힘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패턴 인지형 직관(이후 직관P)은, 수많은 반복 학습과 치열한 노력 끝에 체득한 전문가적이고도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예컨대 오랜 경험을 갖춘 소방관이 불길이 치솟는 긴급 상황에서 어떻게 진압 작전을 펼 것인지 짧은 시간 내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 체스 게임 선수가 자신의 다음 수를 순간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도 직관P에 따른다. 즉 전문가적 역량이 필요한 특정 분야에서는 매우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직관P는 본질적으로 과거에 묶여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한 과거 지식과 경험들을 반사적으로 조합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 구조가 잘 바뀌지도 않고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잘하려면, 우선적으로 자신의 직관에 대해 경계와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2) 인지적 오류(Cognitive Biases)를 경계


직관적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더라도,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에 인지적인 오류에 흔히 빠지곤 한다. 인지적인 오류란, 의사결정을 하는 가운데 무심결에 저지르는 판단상의 실수를 의미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많은 심리학자, 행동경제학자들은 사람의 인지적 오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한 과거의 이론들과 가르침에 싫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지적 오류는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살펴 보자.


● 피곤함이 판단 능력을 흐려 놓는다


사람은 주어진 모든 정보가 똑같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동일하게 의사결정을 할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피곤함이 누적될수록 편의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한 예로 가석방 심사 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자. 가석방 심사 위원들에게 가장 편의적이고 책임 추궁도 당하지 않을 의사결정은 가석방을 허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전혀 허가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판단이 애매한 경우에는 허가를 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식사와 휴식을 취한 직후에는 가석방 허가율이 65%로 높게 나타나지만 시간과 비례하면서 점점 하락하여 2시간 후 다음 휴식 시간 직전 무렵에는 0%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반복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났다. 사람들은 피곤할수록,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 무의식이 판단에 영향을 준다

 

영국의 한 대학에서 무의식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를 했다. 한 사무실의 휴게실에 음료수를 비치하고, 음료수 값은 자발적으로 내도록 ‘정직한 상자(Honesty box)’라고 이름을 붙인 작은 저금통을 옆에 준비했다. 음료수 가격표도 함께 내어 놓았다. 음료수 가격표 위에는 작은 배너 형태의 사진을 붙였다. 10주 동안 진행된 이 연구에서, 한 주는 사람의 눈이 담긴 사진을, 다음 한 주는 꽃을 찍은 사진을 번갈아 가며 붙였다. 사람의 눈은 평범하게 쳐다보는 눈에서부터, 유혹하듯 쳐다보는 눈, 의심스럽게 쳐다 보는 눈, 무섭게 째려 보는 눈 등 다양한 뉘앙스를 풍기는 사진을 붙였다. 사람들은 사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실험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재미있게도 정직한 상자에 모이는 돈은 매주 커다란 편차가 생겼다. 꽃을 찍은 사진이 붙은 기간에는 돈이 별로 모이지 않았고, 사람의 눈, 특히 의심스럽게 보거나 무섭게 째려보는 눈이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돈이 모였다(<그림 2> 참조).

● 쉬우면 더 잘 믿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나 말을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 보자.


A. 아돌프 히틀러는 1892년에 태어났다.
B. 아돌프 히틀러는 1887년에 태어났다.


두 문장은 모두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다. 하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A를 더 쉽게 믿었다. 다른 유사한 연구결과들을 보면, 글씨의 굵기, 폰트, 글씨체 등이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내용의 글이라도 쉽게 표현한 글을 더욱 신뢰한다. 목소리 크기도 판단에 영향을 미쳐, 목소리가 큰 사람의 말을 더 잘 믿는다. 반면 화려한 미사여구, 전문적인 어휘 등을 구사한 보고서나 연설에 대해서는 “정말일까?”라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미심쩍어 한다. 


이 외에도, 과도한 자신감(Overconfidence), 처음 들은 숫자나 보고서에 집착하는 고착화 현상(Anchoring),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보만 수집하는 확증 오류(Confirming) 등 다양한 인지적 오류들이 있다. 내 생각을 좀더 신뢰할 수 있으려면 이러한 인지적 오류들이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점검하고, 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취할 필요가 있다(<표 2> 참조).


2. 호기심과 질문, 해답 찾기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충실히 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생각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다시 살펴보는 것은 물론, 미래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 해답을 찾아 보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알려진 구글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을 회사에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구글의 창업자이자 CEO인 래리 페이지는 “실패한 기업들은 미래를 놓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질문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현상에 대한 의문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첫 발걸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 의미 있는 토론


토론이라는 방식은, 질문을 가진 사람과 답변을 제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1990년대 지식경영이라는 영역이 경영학에 확산된 이후, 지식근로자들에게는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무작정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주제 토론을 한다고 해서 의미 있는 생각들이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토론 주제와 관련하여 비슷한 수준의 정보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토론 주제 그 자체에 대한 기술적 지식을 포함하여, 해당 주제를 둘러싼 주요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 등 다각도의 인적/조직적 정보가 공유되어 있어야 한다. 예컨대, 특정 기술을 개발할 경우, 기술과 관련된 전문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우리 조직에서 그 기술을 왜 개발해야 하는지, 주요 포지션의 담당자들의 입장들은 무엇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토론자들이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임원들과 구성원들간의 허심탄회한 논의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적 지식의 격차도 있겠지만, 인적/조직적 정보의 격차가 크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둘째, 다양한 배경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서로 다른 사업, 다른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는 것이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람직하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똑똑한 사람들이면서 유사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집단과 똑똑한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지만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집단들을 비교해 보면, 과제 수행에 있어서 후자의 집단 성과가 더 우수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분야에서 해결하지 못하던 문제들을 다른 분야의 방법으로 풀 수 있는 경우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셋째, 토론자들이 각자 독립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면 굳이 다양한 사람들을 어렵게 모아놓을 필요가 없다. ‘반대(Dissent)’를 주제로 한 여러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단지 누군가가 반대의 의사를 내놓기만 하더라도, 의사결정의 질은 높아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들로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한 집단으로 받아 들여지기를 바란다.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외톨이가 되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고 집단에 순응하는 쪽을 택한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자주 거론되는 사례가 1978년에 남미 가이아나에서 일어난 짐 존스의 인민 사원(People's Temple) 사건이다. 천 명의 신도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독약을 먹이고, 자신들도 한 사람씩 독약을 마셔서 모두 죽음을 택한 사건이다. “한 두 사람도 아닌 천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자살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집단 동조화 현상의 결과로 빚어진 비극이라는 데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한다.
이렇듯 집단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립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토론자들이 자기 의견을 명확히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필요하다. 한 예로, 스포츠 의류 업체 오버마이어는 전통적으로 주요 임원 회의를 통해 당해 겨울철에 얼마만큼의 의류가 팔릴 것인지 수요를 예측/결정해 왔다. 하지만 임원간의 토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의사결정자의 견해를 따라가는 쪽으로 결론이 나곤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오버마이어는 회의 전에 참석 대상 임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각자의 수요 예측 수준을 먼저 확인했다. 독립적인 의견을 사전적으로 받은 이후, 이를 바탕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오버마이어는 이를 통해 의사결정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2) 작은 실험을 활성화 하자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보다 스마트하게 대비하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작은 실험들을 통해서 아이디어의 유용성을 테스트 해보는 것이다. 사림 이스마일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기업들(Exponential organizations)”이라는 책에서 요즘의 잘 나가는 기업들은 다양한 기술과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실험해 봄으로써 위험을 줄이고 새로운 사업들을 전개해 나간다고 말한다.


구글의 프로젝트 아라(ARA)를 보자. 구글은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를 모듈화하여 핵심 프로세서, 카메라, 액정, 배터리 등을 고객들이 바꿀 수 있는 오픈 하드웨어 사업을 고려하고 있다. 구글은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투자하여 벌여 나가기 보다, 2016년 중에 하나의 도시를 선택하여 시범적으로 운영한 후, 그 결과를 보고 확장해 나가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아도비 시스템은 최근 ‘재도약 혁신 워크샵(KickStart Innovaton Workshop)’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아도비는 참석 구성원들에게 1,000달러와 45일간의 시간을 주고, 검증되지 않고 말로만 떠돌아 다니던 혁신 아이디어들에 대해 실현 가능한 것인지 확인해 보라고 주문한다. 아도비는 이러한 활동 덕분에 사업적으로 의미 있는 아이디어와 그렇지 못한 아이디어들을 구분해 내고, 조직 전체적으로도 실험을 통해 검증된 아이디어들을 골라 빠르게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고객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실험/관찰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50여개의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시저스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인 하라스는 다양한 고객 실험을 통해 수익을 크게 개선시킨 기업이다. 하라스는 MIT 출신의 의사결정 모델링 전문가를 고용하여 기존에 막연히 “고객들이 좋아할거야”라며 이루어지던 관행들에 대해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두 개의 고객 집단을 구분한 후, 하나의 고객 집단에는 125달러 가치의 패키지 선물(무료 숙소, 두 사람 분의 저녁 식사, 30달러의 카지노 칩)을 보내고, 다른 고객 집단에는 60달러의 카지노 칩을 보냈다. 결과는 60달러의 카지노 칩을 받은 고객들이 카지노에서 돈을 훨씬 더 많이 쓴다는 것이었다. 하라스는 그동안 고객들에게 무료 숙소를 제공한 것이 비용만 들 뿐 사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후 무료 숙소 제공 패키지는 없앴다. 이렇듯 많은 기업들은 빨리 도전하고, 빨리 실험하고, 빨리 실패 혹은 성공하는 것이 쉼 없이 변하는 미래에 대해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3. 도덕적 블라인드 스팟을 주의하자


미래 지향적인 생각과 토론, 실험을 하다 보면, 자칫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 도덕적 이슈이다. 과거와 달리 도덕적 문제에 따른 기회 비용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크다. 최근 미국의 217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업들은 이러한 기회 비용을 우려하여 매년 매출 10억 달러당 평균적으로 1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기업 윤리 강화 활동을 실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다른 동료들과 몰입하여 새로운 사업 관련 이슈들을 논의하다 보면, 도덕적 이슈들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즉 도덕적 블라인드 스팟이 생길 수 있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사람들의 마음에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실험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험 대상자들은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동영상 속의 사람들이 농구공을 서로 몇 번 주고 받는지 세어 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동영상에는 농구공을 주고 받는 사람들 외에 고릴라가 등장한다. 고릴라는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가고, 심지어 정면을 보며 가슴까지 치는 대담한 액션을 보였다. 하지만 실험 후 동영상 속에서 고릴라를 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농구공에 집중하느라 고릴라를 놓친 것이다.


이렇듯 무언가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중요한 것들을 쉽게 놓칠 수 있다. 한 예로 포드 자동차의 소형차 핀토가 출시될 때의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 보자. 과거 핀토는 출시 이후 여러 건의 폭발 사고로 미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핀토는 작은 접촉 사고로도 연료가 새어 나와 커다란 폭발 사고로 이어지는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빠져나올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화재로 생명을 잃었다. 핀토의 결함에 대해 내부 개발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폭스바겐 등 경쟁자들과의 신차 출시 경쟁에 커다란 압박을 받고 있었고, 결함을 알았을 무렵에는 이미 생산 라인이 준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포드는 결함을 무시하고 신차를 제때 출시할 경우의 손익(결함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송 비용 등 포함), 결함을 보완하여 천천히 출시할 경우의 손익을 계산하여 비교했다. 사람의 목숨까지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요인들을 돈으로 환산하여 값을 매겼다. 결과는 사망 사고가 생긴다 하더라도 제때 출시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결과였다. 핀토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20명이 넘었다. 하바드 경영 대학의 맥스 베이즈만 교수는 이에 대해 “이 사건은 포드 관련자들이 지독히 비윤리적이어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순전히 비즈니스 관점에서만 신차 출시 이슈를 다루었기 때문에 생긴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윤리라는 관점에서 주의를 한번이라도 환기시켰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도덕적 블라인드 스팟은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매력적인 사업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발생 가능한 이슈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지향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출발점이 직관을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고대에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고 중요한 물리학의 법칙을 발견해 냈던 것처럼, 창의적인 직관(Creative intuition)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때로 직관은 그저 과거의 지식과 경험의 법칙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으며, 사람들은 언제든 인지적인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어떤 연구자는 “가장 나쁜 의사결정은 직관적으로 나온 아이디어에 막대한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자신과 주요 이해 관계자들의 직관을 한번쯤은 의심해 보는 것이 어떨까?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끝>

 

 

가상현실의 시장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홍일선 서기만 이우근 | 2015.09.23

최근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개념적으로는 오래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대중화되지 못했던 가상현실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미 발 빠른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의 가상현실 기기를 출시하고 있다. 가상현실 전용의 콘텐츠도 등장하고 있다. 게임은 물론 영화에서도 가상현실의 활용에 대한 논의가 벌써 시작되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가상현실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시장 조사 기관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가상현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가상현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콘텐츠 소비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전통적 콘텐츠인 게임이나 영화의 소비 방식을 바꿀 것이다. 나아가 지금까지 콘텐츠로 제공할 수 없었던 체험, 경험을 콘텐츠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서울의 내 방에서 해외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루브르박물관을 현장에 있는 것처럼 둘러볼 수 있게 되고 그랜드캐년을 날며 계곡 아래까지 둘러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가상현실이 고도화되면 커뮤니케이션의 양상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화자의 표정이나 몸짓은 물론 화자를 둘러싼 환경이나 상황에 대한 풍부한 정보까지 포함된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업 방식을 바꿀 뿐만 아니라 사람과 기계 사이의 협업까지 바꾸는 등 일하는 방식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이런 가능성은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기기의 가격이 합당한 수준으로 내려갔고, 기술 발전으로 인해 성능 자체도 많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센싱 기술의 발달로 사용 편의성도 대폭 높아졌으며, 가상현실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기가 대중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가상현실 콘텐츠에 대한 활용도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콘텐츠 공급이나 제반 비용 측면에서 제약도 있고,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인간 본연의 욕구에 대응하는 것인 만큼 향후 이런 이슈들은 어떤 방식으로건 해결될 개연성이 높다.


때문에 한국 기업들도 차세대 키워드가 될 잠재력을 가진 가상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은 가상현실이 뿌리내리기 쉬운 토양을 갖고 있다. IT 강국인 동시에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사용자를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상현실 자체가 아직 태동단계인 만큼, 노력 여하에 따라 가상현실이 또 한번의 성장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목 차 >

 

1. 가상현실의 잠재력
2. 지금 가상현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3. 앞으로의 과제들

 


최근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영역에서 한정적으로 활용되던 기술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품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상현실은 비행훈련이나 트라우마 치료처럼 상황을 재현하기 어려울 때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자, 전문가들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였다. 몇몇 기기들은 일반 사용자를 위해 출시되었으나, 그마저도 게임 아이템 중 하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나고, 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HMD(Head Mounted Display)가 등장하면서 일반 사용자들도 가상현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발빠른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의 HMD를 출시했다.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판매가 시작될 전망이다. 2012년 Kickstarter를 통해 처음으로 저렴한 HMD의 가능성을 선보인 오큘러스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이미 여러 차례 업그레이드된 시제품을 공개했다. 내년 초부터는 소비자용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이보다 앞서 게임용 HMD에 주목한 소니도 프로젝트 모피어스(Project Morpheus)를 발표했으며, 내년 상반기에 소비자용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HTC는 게임업체 Valve와 함께 새로운 HMD인 VIVE를 선보였으며, 구글의 카드보드(Cardboard)처럼 스마트폰을 넣어서 사용할 수 있는 보다 단순한 형태의 제품들도 이미 시장에 다수 출시되어 있다.


이와 함께 가상현실 콘텐츠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해 이미 오큘러스 쉐어에 등장한 콘텐츠가 500여개에 달했으며, 현재 900여개에 이른다. 또한 지난 6월, LA에서 개최된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에서는 개발 중인 가상현실 게임이 다수 소개되었으며, 오큘러스가 가상현실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만든 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Oculus Story Studio)에서는 2편의 가상현실 영화를 선보였다. 게다가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 탄탄한 게임 라인업을 가진 기업들이 가상현실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보다 다양한 기업들이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가상현실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Digi-Capital은 가상현실의 시장 규모가 2020년에는 3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BI Intelligence 역시 현재 3,700만 달러에 불과한 가상현실 기기의 시장 규모가 2020년 28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까지는 시작단계인 만큼 시장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기관별로 전망치도 상이하지만, 차세대 키워드 중 하나가 가상현실이 될 것이란 의견만큼은 동일하다.


1. 가상현실의 잠재력


사람들은 왜 가상현실에 주목할까? SF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상상의 산물이 현실이 된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최근 가상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지금까지 가상현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가상현실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볼 시점이다.


1인칭 콘텐츠의 등장

우선 가상현실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될 것이다. 전통적인 콘텐츠인 게임, 영화, 방송 등을 즐기기 위해 고화질 대형 스크린 대신 HMD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가상현실 기기들이 기존 콘텐츠 소비 기기들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상현실의 특성상, 주변 현실환경을 차단하여 콘텐츠에 대한 몰입감(Immersion)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소비기기 대비 콘텐츠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콘텐츠 소비 기기가 TV에서 모바일 기기로 확장됐던 것처럼, 향후 모바일 기기에서 HMD로 확장되는 것은 당연할 수순일 수 있다.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은 새로운 콘텐츠의 공급을 촉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1인칭 시점’의 콘텐츠가 주목받을 것이다. 가상현실 속에서는 사용자를 중심으로 3차원 가상공간이 창조된다. 때문에 가상현실 콘텐츠는 사용자를 중심으로 구성될 수 밖에 없다. 가상현실 영화라면 사용자의 주변에서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나눌 것이고, 가상현실 뉴스라면 사용자는 사건이 발생하는 한복판 혹은 사건의 진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서있게 될 것이다. 가상공간 속에서 어디에 있을지, 무엇을 볼 지, 심지어는 무엇을 보지 않을지 까지도 사용자가 직접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상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게임에서는 게이머의 시점과 게임 속 가상 캐릭터의 시점이 동일한 ‘1인칭 게임’을 중심으로 가상현실이 도입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올해 Electronic Entertainment Expo에서 발표된 가상현실 게임 중 대다수가 1인칭 게임이었다. 또한 지난 7월, 신생기업 NextVR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축구경기를 HMD로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 콘텐츠로 실시간 생중계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가상현실 속에서 임의로 자리를 옮기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어렵지만, 기존 방송이 제공하던 것 이상의 콘텐츠를 만들 개연성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게다가 가장 실감나는 형태로 진화해온 가상현실 인터페이스는 ‘1인칭 시점’ 콘텐츠에 대한 몰입감을 배가시킬 것이다. 이미 가상현실 인터페이스는 마우스, 터치스크린, 조이스틱 등을 넘어 몸짓, 고갯짓, 손짓, 발짓 등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기 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최근 출시되는 HMD는 머리, 손, 혹은 몸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상당수의 센서를 내장하고 있으며, 정확도를 높이고자 공간을 탐색할 수 있는 별도의 기기를 동원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용자에게 소리, 촉감, 향기 등을 가장 자연스럽게 되돌려주기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가상현실에서는 기존 매체가 제공하기 어려운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가상현실로 만들어진 공포영화에서 내 뒤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상상해보자. 그 오싹함은 오늘날 최첨단 영화관에서도 쉽게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시리아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젝트 시리아’는 내용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이라는 전달 방식으로 인해 화제가 되었다.  갑자기 옆으로 날아든 포탄, 눈 앞에 자욱한 연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이는 광경들, 사방에서 들리는 고함소리 등 재구성된 가상현실은 글이나 동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생함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시리아’의 감독 노니 데 라 페냐(Nonny de la Peña)는 가상현실과 언론을 접목한 가상현실 언론(Immersive Journalism)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도 가상현실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아바타’와 같은 3D 영화, 기계 장치로 의자를 흔드는 등 물리적 요소가 포함된 4D 영화, 영화 중간에 화면이 양쪽 벽면으로 확장되는 ‘스크린 X’ 등 몰입감을 높이는 동시에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스트롬버그(Robert Stromberg)를 포함해서 4명의 영화인이 설립하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Advisors로 참여하고 있는 신생기업 VRC(Virtual Reality Co.)는 영화를 포함해서 다양한 가상현실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오큘러스 또한 할리우드의 인재들을 영입해서 제작한 가상현실 영화를 선보였다.


궁극적으로 가상현실은 콘텐츠의 경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특히 영화와 게임의 구분이 어려워질 수 있다. 가상현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가상공간을 탐색하며 결말을 추리하는 즐거움을 높이기 위해 이스터 에그(Easter egg), 즉 여러 번 봐야만 찾을 수 있는 디테일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여기저기 숨어있는 단서를 찾아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게임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향후 영화와 게임을 어떻게 구분할지, 두 양식의 요소를 모두 갖춘 새로운 서사 구조는 가능할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체험의 콘텐츠화


가상현실은 콘텐츠의 범위를 넓힐 것이다. 지금까지 콘텐츠의 영역에 속하지 않던 것들을 콘텐츠로 전환시킬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여행, 교육, 부동산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는 직접 체험해야 했던 것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재구성되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콘텐츠가 될 개연성이 높다.


지금까지 디지털화되지 않은 정보들이 디지털화되면서 이런 변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그림, 사진, 도감 등 시각적 정보로 저장되던 영역은 가상현실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재구성될 것이다. 이미 루브르 박물관, 대영 박물관 등에서는 소장품을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하여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Google Cultural Institute은 40여개국의 박물관, 미술관 등과 함께 다양한 정보를 디지털 콘텐츠로 변환하고 있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현재의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고품질의 문화 콘텐츠를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더해 가상현실은 보다 실감나는 문화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처음 구글에서 카드보드를 창안한 사람이 Google Cultural Institute 소속이었던 것도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향후 HMD와 더불어 가상현실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줄 다양한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발전하면서 가상현실을 통한 가상체험의 설득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과거 비행조정 훈련에 비행조정 시뮬레이터가 결합된 것처럼, 향후 일반 대중들의 체험 콘텐츠에도 체험도구와의 결합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선댄스 영화제에서 선보인 ‘버들리(Birdly)’는 이용자가 하늘을 나는 새가 되는 느낌을 주기 위해 가상현실 콘텐츠와 기기를 결합한 시스템이었다.


가상현실을 스포츠와 결합하려는 시도도 생겨나고 있다. 신생기업 STRIVR Labs은 미식축구를 배울 수 있는 가상현실 콘텐츠를 선보였으며, 이미 일부 대학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기술적 완성도 및 사람들의 만족도를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가상현실 속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직접 어디론가 레포츠를 즐기기 위해 떠날지, 시간과 비용의 제약을 고려하여 간접체험으로 대신할지 고민하는 시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시도도 있다. 친구, 가족들과 함께 테마파크를 방문해서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는 대신, 여럿이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는 놀이기구를 체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게임 속 등장 인물이 되어 장난감 총이나 칼을 들고 전투를 벌이는 경험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신생기업 더 보이드(The Void)는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만들고자 한다.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전투기나 자동차를 탄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모션 시뮬레이터를 설치하고자 한다.


물론 소비자용 HMD가 보급된다고 해서 별도의 체험기기가 요구되는 가상현실 콘텐츠가 당장 보급될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가격, 품질, 안전성 등을 고려할 때, 당장 체험 기기를 구비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다양한 간접체험을 보다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골프존, 4DX 등에서 더 나아가 비용효율적으로 간접체험을 제공하는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늘날 비디오 게임의 주변기기들처럼 가상체험을 지원하는 주변 기기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


가상현실과 주변 기술이 결합하면 새로운 종류의 콘텐츠가 등장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문자와 음성을 넘어 사진과 동영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달하고 있는 맥락이 과거에 비해 풍부해진 것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가상현실은 ‘개인’을 둘러싼 360도 주변 정보 자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찌감치 이런 트렌드에 주목한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는 20억 달러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오큘러스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동시에, 새로운 커뮤이케이션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 7월의 2분기 실적발표에서도 가상현실이 비디오에 이어 차세대 화두(Next Big Thing)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올해 F8 Developer Conference에서는 페이스북 본사의 모습을 24대 카메라를 사용해서 제작한 실감나는 360도 비디오 콘텐츠(immersive, 360-degree video experience)을 선보였으며, 향후 이런 동영상들이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에 등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개인이 자신의 주변을 360도로 찍어서 SNS에 올릴 수 있다면 개인의 소소한 기록을 공개하는 수준을 넘어 지인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더 나아가 가상현실은 협업의 방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원격으로 업무를 진행할 경우, 맥락이 전달되지 않음으로 인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가상현실을 활용함으로써 물리적 맥락뿐만 아니라 생각의 맥락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글, 말, 사진 등 자료를 손쉽게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개인의 생각을 가상현실 속의 사물로 변환하여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가상 공간 상에서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제품 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이 손쉬워질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HMD의 일종인 홀로렌즈(Hololens), 가상공간에서 손쉽게 디자인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홀로스튜디오, 개인 생산도구로 발전할 잠재력을 가진 3D 프린팅을 조합하여 개인이 가상현실 공간에서 디자인한 드론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는 기업과 고객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바꿔놓을 수 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은 소비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브랜드와 관련된 콘텐츠를 전달하는데 가상현실을 활용하고 있다. Dior은 Dior Eyes를 통해 가상현실로 재구성된 무대 뒤의 모습을 보여줬고, 지난 월드컵에 코카콜라는 축구와 관련된 가상현실 체험 콘텐츠를 제공했다. 하지만 가상현실의 잠재력은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디자이너와 함께 직접 원하는 제품을 디자인 할 수 있다. 가상현실 속에서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3차원 가상의 물체의 형태로 제안하면, 고객이 직접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객과의 상담을 통해 최종 모습을 확정해가는 주택 리모델링 등에서는 이미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더 나아가 가상현실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로봇, 드론 등으로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개인용 드론, 서비스 로봇 등이 등장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가상현실과 이들 기기의 결합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들 기기와 결합된 가상현실은 진정한 의미의 개인 맞춤형 콘텐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봇이나 드론이 손과 발, 눈이 되어 생성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가상현실 속에 녹여낼 수 있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의 속도와 흐름에 따라 제각기 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신생기업 Parrot는 드론과 HMD를 조합했다. 원격화상회의를 위해 개발된 로봇 역시 가상현실과 결합된다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2. 지금 가상현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가상현실도 최근에서야 대중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일반 사용자들은 구글의 카드보드, 오큘러스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수많은 신생기업들이 가상현실과 관련된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반 사용자도 사용할 수 있는 가격과 성능을 갖춘 기기가 등장하고, 점차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문가나 매니아를 위한 가상현실이 정보통신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적인 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가격 혁신


지금까지 가상현실 기기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프로세서, 디스플레이, 센서 등 상당수의 부품이 특수 목적용으로 제작됐을 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성능 자체가 높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발표되던 HMD는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큘러스가 킥스타터를 통해 불과 300달러라는 낮은 가격에 개발자용 키트를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일반 사용자들도 호기심을 가질 만한 수준의 가격이 책정됐기 때문이다.


과거 대비 낮은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오큘러스는 HMD의 구동방식 자체를 재해석했다. 가상현실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사람의 시야각보다 넓은 영상을 HMD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HMD에서는 1인치 미만, 즉 아주 작은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나온 영상의 빛을 값비싼 렌즈로 축소하여 동공을 통과시키는 데 중점을 둔 반면, 오큘러스는 주로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5인치 정도의 디스플레이 패널와 값싼 렌즈와 결합시키되, 이로 인해 발생하는 왜곡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보정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지난 해, 구글은 이보다 저렴한 제품을 선보였다. 아예 디스플레이 패널 자체를 스마트폰으로 대체하고, 두꺼운 종이와 저렴한 볼록 렌즈, 그리고 기타 몇 가지 부품들이 추가된 가상현실기기 ‘카드보드’이다. 가격은 불과 20달러이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저렴해졌을 뿐만 아니라, 렌즈나 자석 등 주요 부품들만 1~2달러에서 구매해서 직접 제작할 수도 있다.


하드웨어 혁신


가상현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입출력 장치와 프로세서의 성능이 고도화되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는 FHD에서 QHD, UHD 등으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필수 요소인 사용자 움직임에 대한 ‘반응 시간 지연(Latency)’ 또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눈의 망막에 맺힌 시각 정보가 시신경을 타고 뇌의 시각중추로 전달되는 시간이 약 0.02초(20ms)이다. 만약 가상현실 기기의 반응 시간이 이보다 느릴 경우 어지러움이나 이질감을 느끼기 쉽기 때문에 반응 시간 지연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이다. 최근 들어 OLED와 같은 고속 응답 기반의 디스플레이가 발달하고 프로세싱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 문제가 점차 해결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오큘러스나 소니의 제품은 지연시간이 18ms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하여 오큘러스는 영상 중간중간에 사용자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검은 화면을 삽입하여 잔상에 의한 어지러움을 적게 느끼게 하는 등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더군다나 AMD의 ‘리퀴드 VR’이나 엔비디아의 멀티 GPU 기술 등 가상현실에 최적화된 프로세싱 기술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반응 시간 지연에 의한 어지러움 문제가 곧 의미 있는 수준으로 해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용편의성 혁신


더 자연스러운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 개발도 이루어지고 있다. 요즈음의 가상현실 기기는 이용자가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을 감지해 낸다. 스타트업 기업인 FOVE는 아이트래킹 기술을 VR기기에 도입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FOVE는 사용자 눈의 움직임에 따라 캐릭터가 이동하거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상 캐릭터에 아이 컨텍을 하면 반응을 보이게 하는 등 더욱 실감나는 콘텐츠 이용 환경을 구현해 보였다. 이런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향후 가상 세계 속에서도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로 눈을 맞추고 표정을 보며 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음성인식과 함께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이러한 UX/UI 고도화는 가상현실 기기가 외부 카메라, 센서 등 부가 장치와 조합될 경우 더욱 높은 수준으로 진행될 것이며, 관련 부가장치를 공급하는 생태계가 형성된다면 그 파괴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콘텐츠 생산 기기의 확산

가상현실이 대중화 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 재미와 가치를 가져다 줄 콘텐츠 확보도 중요하다. 가상현실 콘텐츠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주로 게임이고 양적으로 봐도 결코 다양하거나 많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360도 실사 공간을 담아내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반적인 영상 자료 기반의 가상현실 콘텐츠가 주목 받고 있다.


가상현실 영화 분야를 개척 중인 전트(Jaunt)는 자신들이 이용하는 360도 회전 입체영상 3D 카메라와 첨단 3D 사운드필드 마이크(sound-field microphones) 관련 특허를 직접 확보한 바 있다. 삼성은 기어VR을 위한 360도 카메라인 프로젝트 Beyond를 발표한 데 이어, 노키아도 최근 구형 본체 안에 8개의 렌즈와 마이크를 탑재한 오조(Ozo) 출시를 발표하면서 VR 콘텐츠 생산 기기는 더욱 다양해 질 전망이다.


한편 개인이나 기업이 콘텐츠를 생산해서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이미 파노라마 뷰와 같이 개인이 찍은 사진을 이어 붙여 360도 사진으로 재구성하는 정도는 스마트 폰에서도 가능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이를 넘어 한 번에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360도로 재구성하여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프로에 인수된 콜러(Kolor)의 경우,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합쳐 하나의 360도 콘텐츠를 만들어 준다. 이러한 시도는 공연 콘텐츠 제작 뿐만 아니라 기업의 홍보 영상에도 활용되면서 더욱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3. 앞으로의 과제들


가상현실 자체가 가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용적 대중화를 위한 많은 어려움이 기술 발전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인해 해소되고 있으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없지는 않다. 기술적인 과제는 물론이거니와 상업적으로도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있다.


상업적 대중성 확보 문제


가상현실 구현을 위한 핵심 단말인 HMD의 가격은 정말 놀랄 정도로 낮아졌다. 오큘러스가 촉발시킨 가격 경쟁의 결과 제법 근사한 것도 수 십 만원 안쪽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이 정도가 일반 대중 모두에게 저항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낮은 가격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HMD 말고도 또 다른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 대부분의 HMD는 단독으로 작동하는 기기가 아니고 PC나 게임기에 연결되어서 작동한다. 따라서 충분한 성능의 PC나 게임기가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오큘러스의 경우, 가장 사양이 낮은 경우에도 고성능 게임을 돌릴 수 있는 PC 수준의 사양을 요구한다. 최적 사양은 당연히 그보다 더 높을 것이고 더 비싼 PC를 필요로 할 것이다.


통신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상현실 콘텐츠는 일반 콘텐츠에 비해 수 배 이상, 어쩌면 몇 십 배 이상의 크기를 가지게 될 수 있다. 단지 정해진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라면 시간을 두고 다운로드하여 이용하면 되겠지만 게임 또는 실시간 반응이 중요한 가상현실 커뮤니티 활동의 경우라면 결국 스트리밍 방식으로 콘텐츠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통신 방식으로 몰입도가 높은 가상현실 콘텐츠를 이용하기는 부담이 된다. 만약 이동통신이라면 어마어마한 데이터 이용료가 부담이 될 것이다.
안전 문제


기술이 꽤 발달했다고 하지만 가상현실이 완전히 실제 현실과 같은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가상현실이 과연 안전한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다.


첫째, 생리적으로 안전한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아직 제시하지 않았다. 장시간 사용해도 과연 시각적으로 이상은 전혀 없을지, 3D 영상에서 나타났던 일종의 멀미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지 확실하지 않다. 현실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 계속 노출되는 것이 인간의 뇌나 또는 어떤 감각 기관에 아무런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둘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현상들이 생겨날 수 있다. 말하자면 리셋 증후군이라거나 리플리 증후군이 나타날 수도 있다. 너무나 사실성이 높은 나머지 가상현실에서 존재하는 내가 진짜 나이고 현실의 나는 가상의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가상과 현실의 반전 현상, 말하자면 가상 세계에서 구성된 자신의 가짜 이미지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현실 세계에서도 마치 그 가상의 인물인 것처럼 행동하는 일종의 사회 병리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커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갈 기회


그러나 가상현실은 단지 정보통신 기술의 한 종류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욕구에 충실히 대응하는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을 뜻하기 때문에 결코 사라질 주제가 아니다.


대중성 확보의 핵심은 가상현실이 과연 돈 값을 할 것인가에 있다. 자동차처럼 비싼 제품이라도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면 소비자들은 구매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상업적 콘텐츠의 공급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콘텐츠가 적절히 공급되는 순간 가상현실은 TV와 마찬가지로 대중성을 획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콘텐츠의 공급은 결국 시간 문제로 보인다. 콘텐츠의 상업성은 관련 단말의 이용자 수에 비례하여 개선될 것인데, 이용자 수는 결국 늘어날 것이다. 몰입도가 높은 게임뿐만 아니라 360도 카메라 등을 활용한 가상현실용 영상 촬영과 Youtube와 같은 플랫폼을 통한 공유 등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가상현실의 저변 확대를 촉발할 수 있다. 말하자면, 누군가의 투자에 기반한 기기 보급이 없더라도 게임이나 혹은 개인적 목적으로라도 가상현실 기기를 구매하는 고객의 증가와 이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자연스러운 공급 증가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성은 꾸준히 검증될 것이고, 대응 방안도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등과 같이 개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될 것이다.


가상현실은 인간이 가진 본연적 욕망에 대응하는 기술이다. 가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갈 수 없는 곳, 보고 싶지만 실제로 볼 수 없는 것, 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 그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가상현실이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 가능하게 되는, 그런 것이 가상현실이다. 인류가 고대로부터 발전시켜온 연극, 놀이 문화, 여행, 축제 등의 거의 대부분을 가상의 세계로 옮겨 놓을 수 있는 기술이 바로 가상현실이다.


한국은 가상현실이 뿌리내리기 쉬운 토양을 갖고 있다. 한국에는 혁신적인 기술 제품을 기꺼이 구매해 줄 수 있는 탄탄한 고객 층이 존재한다. 이미 세계적인 테스트 베드로 이용될 정도로 한국의 2-30대는 디지털 혁신을 잘 받아들인다. 당장 가상현실의 활성화에 중요한 관건이 될 통신 환경은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 한국에는 가상현실화 하기 가장 유리한 게임은 물론 상업성 있는 영상 콘텐츠 또한 비교적 쉽게 확보 가능하다. 특히 영상 콘텐츠의 경우 아시아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고정 수요층을 이미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다수 보급된 기기가 질 좋은 콘텐츠의 공급을 부르고, 좋은 콘텐츠가 다시 소비자용 기기 보급을 촉진하는 선순환 싸이클이 돌아가기에 적당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상현실 자체가 아직 태동단계인 만큼, 노력 여하에 따라 가상현실이 또 한번의 성장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