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IMF-김영삼'을 닮아가고 있다
[주간 프레시안 뷰] 위기를 부채질하고 장기화하는 정부
마르크스주의 위기, 케인스주의 위기, 피셔 위기
숫자와 도표가 가득 차 있어 재미없는 글, 따분한 자료를 시원하게 꿰뚫어 핵심을 짚어주지도 못하는 '뷰'를 계속 읽어온 분들은 "참을성 짱"인 조합원이 틀림없습니다. 그 분들이라면 눈치 챘을 겁니다. 제가 요즘 '장기 침체'라는 용어 (저는 2009년 세계 경제 위기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 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계속 사용했습니다) 대신 '위기'라는 낱말을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을 진정한 학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감'에 의해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비웃습니다. '점성술사'나 하는 일이라는 거죠. 역대 경제학자 중 최고의 현실 감각을 지니고 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5년 뒤의 영국 경제"를 맞추는 일은 "확률 관계 0"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무딘 감각과 케케묵은 통계, 더구나 구시대의 모델로 '과학적인' 엉터리 예측을 하는 건 죄악이요, 그게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직무 유기, 또는 무능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요즘 제 '느낌'은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 속에서 한국 경제가 수렁에 깊이 빠져 들어, 공황(패닉) 상태로 급전직하할 수도 있고, 서서히 침몰할지라도 심각한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더 나쁜 건 우리 모두 체념해 버리는 겁니다. "헬 조선"을 바꾸려 하는 게 아니라 탈출을 꾀하거나 그도 안 돼서 집 안에, 자기 안에 틀어박히는 상태가 되는 거죠. 최악입니다.
해서 모델이나 수치로 '증명'하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이번 주에는 위기의 논리적 가능성을 짚어 놓으려고 합니다. 세간의 선입견과 달리 제가 이렇게 위기를 말하는 건, 30년 가까운 현상분석의 이력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외환 위기 전후 4년 동안은 외국에 있었습니다).
경제학에 위기론은 많이 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주의의 과잉 생산 이론, 케인스의 유효 수요 부족이론, 어빙 피셔의 부채-디플레이션 이론,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 이론 등을 들 수 있겠죠. 하나의 거대한 현상을 각각, 생산, 수요, 금융 측면에서 바라 본 것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폴 새뮤얼슨이 "과잉 생산과 과소 소비가 뭐가 다른가?"라고 물은 것처럼 각 이론이 강조하는 바는 서로 얽혀 있는 현상입니다.
다만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모델이 달라질 것이고 따라서 해결책도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겠죠. 예컨대 케인스는 국가가 복지를 통해 소비를 늘리거나 인프라 건설을 통해 투자를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총수요 관리만 제대로 하면 자신의 손자 시대에는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죠. 반면 마르크스는, 과잉 생산이란 자본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투자를 늘린 결과이기 때문에 미리 막을 방법이 없고 단지 공황에 의해 "폭력적으로 조정"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겠죠.
어느 쪽이 본질인가를 제쳐두고 이들 위기론의 준거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면 실제로 위기가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우선, 과잉 생산 위기는 중국의 경기 침체와 함께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발발한 세계 금융 위기는 2010년 유럽의 재정 위기로 번졌고, 그 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어 왔던 중국 등 신흥 경제의 위기로 확대됐습니다.
지난 뷰에서 얘기했듯이 저는 중국이 '경착륙'할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률이 5%까지 떨어질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워낙 덩치가 큰 경제이기 때문에 세계의 각 경제 주체는 중국 경제가 확실히 회복된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투자나 소비의 모든 행동을 멈추게 될 겁니다. 해서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원자재를 수출하는 신흥 경제는 이미 위기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중국과 동남아에 전체 수출의 40% 이상을 의존하는 한국의 제조업 역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철강, 석유 화학 산업이 문제가 될 겁니다. 해외 수요 부진에 따라 이미 위기에 허덕이는 조선 산업, 정부의 온갖 정책으로 약간 숨을 돌린 건설 산업에 이어 한국 '중후장대형' 중화학 공업들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겁니다.
이번 국정 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제시한 다음 표는 "범 4대 재벌을 제외한 여타 재벌의 경우 셋 중 하나는 (잠재) 부실 상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아래 관련 기사를 보십시오). 여기에 더해서 철강과 석유 화학 대기업의 수치까지 빨갛게 변하는 표를 상상해 보십시오. (☞관련 기사 : "현대·동부·한진 등 구조조정 시급")

두 번째, 케인스주의의 위기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단기 경제 정책은 건설 경기 부양 정책이 알파요, 오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온갖 부동산 규제 완화에 이어 임대 주택 건설, 그리고 백두대간에 테마파크 건설하기 까지 있을 수 있는 모든 정책을 내 놓은 거죠. 아래 기사가 미리 보여주듯, "서민 주거 안정 대책"으로 내 놓은 민간 임대 주택도 결국 분양 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판명날 겁니다. (☞관련 기사 : 임대 주택 꼼수에 혈세 줄줄 샜다)
중장기 정책 기조로 정부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재벌의 서비스 산업 진출의 문을 연 겁니다. 각종 민영화 정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경제 혁신'의 대단원은 최근 "노사정 타협"으로 일단락된 '노동 개혁'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경제 민주화와 4대 개혁을 일단락했으니 내년(2016년)부터 성장률이 치솟을 거라고 믿고 있을 테고, 현실이 이 백일몽을 부정하면 임기를 마칠 때까지 국회 탓만 할 겁니다.
일부 학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케인스적이라고 규정합니다만, 규제 완화나 노동 개혁은 전형적인 공급 사이드 정책입니다. 금융 규제를 완화해서 부동산 수요를 부추긴 정책들을 케인스주의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 정책의 핵심은 "기업들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자" 입니다. 그래서 잡종 정책이 나온 거죠(잡종이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닙니다).
과거에 한국의 공급 사이드 정책이 먹힐 수 있었던 건 해외 수요가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외환 위기 때가 대표적이죠.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당시 'IT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미국 등을 향한 수출이 두 자릿수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 상황입니다. '일반 해고'와 '취업 규칙 변경'을 활용해서 기업이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하면 할수록, 경제는 더 나빠집니다. 대량 해고와 소비 축소로 인해 국내 수요마저 급격하게 줄어들 테니까요.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강화될수록(세계 경제가 획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한) 오히려 경제는 더 나빠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아래 기사를 읽으면 이번 '타협'에서 정부와 재계가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관련 기사 : 노동 개혁 합의 핵심 내용은?)
외환 위기 때를 떠올리면서 '노사 대타협'을 찬양하고, 이어서 국회도 화답하라고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는 만큼, 그들의 '경제적 문맹'도 한껏 드러나고 있습니다. 총수요가 부족한 시점에 오히려 현재의 미미한 수요마저 줄이겠다는 거니까요.
정부도 소비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자들 밖에 소비할 여력이 없다는 겁니다. 해서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고령화 진전으로 구조적인 소비 부진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로의 부의 이전이 필요하다"는 발상까지 나오게 된 거겠죠. (☞관련 기사 : "부의 이전 필요" 상속·증여세 인하 논란)
하지만 저소득층의 복지를 위해 쓸 세금은 더욱 줄어들 테고 고소득층의 소비 성향이 낮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소비는 더욱 감소할 겁니다. 부의 불평등이 전체 소비를 줄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어떻게든 성장률을 끌어 올리려는 정부의 근시안이 더욱 위기를 부추기는 거죠.
세 번째는 피셔의 부채-디플레이션 위기, 그리고 민스키 시점(Minsky moment)의 도래입니다. 1929년 대공황 발발 일주일 전에 "지금은 주식을 사야할 때"라고 말하는 바람에, 미국 최고 경제학자로서의 명성에 똥칠을 한 피셔가 자기반성으로 내놓은 이론이 부채-디플레이션이론입니다.
버티고 버티다 원리금 상환을 위해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려고 내 놓으면 가격이 폭락할 테고 이에 따라 다시 부채 상환의 부담이 더 커지는 현상이죠. 이런 현상을 기업 부채까지 확대해서 체계화한 것이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 이론입니다. 최근의 "대차대조표 불황" 이론도 유사합니다. 민스키 시점이란 위기가 발발하는 때를 말하는 겁니다.
이미 가계 부채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얘긴 여러 번 했습니다. 특히 최경환 부총리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중산층이 "돈 빌려 집사라"는 말을 실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 정부 들어 가계 부채의 증가 속도는 소득 증가 속도의 두 배에 이르렀죠. 시간이 갈수록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는 얘깁니다.
물론 남아도는 돈을 통해 계속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희망을 계속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민스키 시점을 뒤로 미룰 수 있고, 세계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소득의 증가 속도가 부채 증가속도를 앞지르게 된다면 문제가 사라질 수도 있겠죠.
저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만 현재 상황으로 봐선 가능성 제로의 희망입니다. 시작은 준재벌급 기업의 파산일 겁니다. 어쩌면 외환 위기 때처럼 반도체 가격 하락이나 자동차 수출의 급감부터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자산 가격의 폭락이 먼저 올 수도 있고, 정부가 "선제적 구조 조정"을 한다며 노동 개혁을 한 것이 화근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 경제는 심지와 도화선이 여러 가닥으로 연결된 대형 폭탄 위에 놓여 있습니다. 또 인화성 물질은 나라 안팎에 가득 차 있죠. 어디서건 심지에 불이 붙으면 다른 도화선으로 옮겨 붙어서 결국 폭탄이 터질 겁니다.
'뷰'와 '데자뷔'
앞으로의 '뷰'는 우선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겁니다. 하지만 반대 방향이 옳다고 정부와 기업(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믿고 있는 한, 우리의 노력은 부질없는 일이 되겠죠. 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도 앞으로 고민하려고 합니다.
과연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 조직의 금전적 이익 때문에(아래 기사를 보시죠), 또 이렇다 할 대안도 갖지 않은 채 들러리를 선 한국노총을 비판해 봐야 우리의 앞날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 한국노총 '돈줄' 쥐고 흔들었다)
과연 민주노총은 "무늬만 총파업"을 뛰어 넘어 '임박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요? 외환위기 발발 한 해 전, 1996년 말의 상황은 여러 모로 '데자뷔'입니다. (☞관련 기사 : 총파업 부른 노동법 개악)
위기가 눈앞에 닥쳐왔는데도 집안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당이 과연 최소한 오바마의 노동 개혁(아래 기사를 보십시오) 정도라도 관철시킬 각오로 국회 안에서 노동법 개악을 둘러싼 싸움을 할 수 있을까요? 동시에 길거리에 나서는 것도 절체절명의 해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관련 기사 : 99%를 위하여…'오바마의 노동 개혁'은 달랐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가을, 같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야 할 화두입니다.
숫자와 도표가 가득 차 있어 재미없는 글, 따분한 자료를 시원하게 꿰뚫어 핵심을 짚어주지도 못하는 '뷰'를 계속 읽어온 분들은 "참을성 짱"인 조합원이 틀림없습니다. 그 분들이라면 눈치 챘을 겁니다. 제가 요즘 '장기 침체'라는 용어 (저는 2009년 세계 경제 위기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 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계속 사용했습니다) 대신 '위기'라는 낱말을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을 진정한 학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감'에 의해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비웃습니다. '점성술사'나 하는 일이라는 거죠. 역대 경제학자 중 최고의 현실 감각을 지니고 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5년 뒤의 영국 경제"를 맞추는 일은 "확률 관계 0"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무딘 감각과 케케묵은 통계, 더구나 구시대의 모델로 '과학적인' 엉터리 예측을 하는 건 죄악이요, 그게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직무 유기, 또는 무능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요즘 제 '느낌'은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 속에서 한국 경제가 수렁에 깊이 빠져 들어, 공황(패닉) 상태로 급전직하할 수도 있고, 서서히 침몰할지라도 심각한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더 나쁜 건 우리 모두 체념해 버리는 겁니다. "헬 조선"을 바꾸려 하는 게 아니라 탈출을 꾀하거나 그도 안 돼서 집 안에, 자기 안에 틀어박히는 상태가 되는 거죠. 최악입니다.
해서 모델이나 수치로 '증명'하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이번 주에는 위기의 논리적 가능성을 짚어 놓으려고 합니다. 세간의 선입견과 달리 제가 이렇게 위기를 말하는 건, 30년 가까운 현상분석의 이력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외환 위기 전후 4년 동안은 외국에 있었습니다).
경제학에 위기론은 많이 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주의의 과잉 생산 이론, 케인스의 유효 수요 부족이론, 어빙 피셔의 부채-디플레이션 이론,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 이론 등을 들 수 있겠죠. 하나의 거대한 현상을 각각, 생산, 수요, 금융 측면에서 바라 본 것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폴 새뮤얼슨이 "과잉 생산과 과소 소비가 뭐가 다른가?"라고 물은 것처럼 각 이론이 강조하는 바는 서로 얽혀 있는 현상입니다.
다만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모델이 달라질 것이고 따라서 해결책도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겠죠. 예컨대 케인스는 국가가 복지를 통해 소비를 늘리거나 인프라 건설을 통해 투자를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총수요 관리만 제대로 하면 자신의 손자 시대에는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죠. 반면 마르크스는, 과잉 생산이란 자본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투자를 늘린 결과이기 때문에 미리 막을 방법이 없고 단지 공황에 의해 "폭력적으로 조정"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겠죠.
어느 쪽이 본질인가를 제쳐두고 이들 위기론의 준거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면 실제로 위기가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우선, 과잉 생산 위기는 중국의 경기 침체와 함께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발발한 세계 금융 위기는 2010년 유럽의 재정 위기로 번졌고, 그 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어 왔던 중국 등 신흥 경제의 위기로 확대됐습니다.
지난 뷰에서 얘기했듯이 저는 중국이 '경착륙'할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률이 5%까지 떨어질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워낙 덩치가 큰 경제이기 때문에 세계의 각 경제 주체는 중국 경제가 확실히 회복된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투자나 소비의 모든 행동을 멈추게 될 겁니다. 해서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원자재를 수출하는 신흥 경제는 이미 위기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중국과 동남아에 전체 수출의 40% 이상을 의존하는 한국의 제조업 역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철강, 석유 화학 산업이 문제가 될 겁니다. 해외 수요 부진에 따라 이미 위기에 허덕이는 조선 산업, 정부의 온갖 정책으로 약간 숨을 돌린 건설 산업에 이어 한국 '중후장대형' 중화학 공업들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겁니다.
이번 국정 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제시한 다음 표는 "범 4대 재벌을 제외한 여타 재벌의 경우 셋 중 하나는 (잠재) 부실 상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아래 관련 기사를 보십시오). 여기에 더해서 철강과 석유 화학 대기업의 수치까지 빨갛게 변하는 표를 상상해 보십시오. (☞관련 기사 : "현대·동부·한진 등 구조조정 시급")

두 번째, 케인스주의의 위기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단기 경제 정책은 건설 경기 부양 정책이 알파요, 오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온갖 부동산 규제 완화에 이어 임대 주택 건설, 그리고 백두대간에 테마파크 건설하기 까지 있을 수 있는 모든 정책을 내 놓은 거죠. 아래 기사가 미리 보여주듯, "서민 주거 안정 대책"으로 내 놓은 민간 임대 주택도 결국 분양 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판명날 겁니다. (☞관련 기사 : 임대 주택 꼼수에 혈세 줄줄 샜다)
중장기 정책 기조로 정부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재벌의 서비스 산업 진출의 문을 연 겁니다. 각종 민영화 정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경제 혁신'의 대단원은 최근 "노사정 타협"으로 일단락된 '노동 개혁'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경제 민주화와 4대 개혁을 일단락했으니 내년(2016년)부터 성장률이 치솟을 거라고 믿고 있을 테고, 현실이 이 백일몽을 부정하면 임기를 마칠 때까지 국회 탓만 할 겁니다.
일부 학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케인스적이라고 규정합니다만, 규제 완화나 노동 개혁은 전형적인 공급 사이드 정책입니다. 금융 규제를 완화해서 부동산 수요를 부추긴 정책들을 케인스주의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 정책의 핵심은 "기업들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자" 입니다. 그래서 잡종 정책이 나온 거죠(잡종이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닙니다).
과거에 한국의 공급 사이드 정책이 먹힐 수 있었던 건 해외 수요가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외환 위기 때가 대표적이죠.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당시 'IT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미국 등을 향한 수출이 두 자릿수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 상황입니다. '일반 해고'와 '취업 규칙 변경'을 활용해서 기업이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하면 할수록, 경제는 더 나빠집니다. 대량 해고와 소비 축소로 인해 국내 수요마저 급격하게 줄어들 테니까요.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강화될수록(세계 경제가 획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한) 오히려 경제는 더 나빠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아래 기사를 읽으면 이번 '타협'에서 정부와 재계가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관련 기사 : 노동 개혁 합의 핵심 내용은?)
외환 위기 때를 떠올리면서 '노사 대타협'을 찬양하고, 이어서 국회도 화답하라고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는 만큼, 그들의 '경제적 문맹'도 한껏 드러나고 있습니다. 총수요가 부족한 시점에 오히려 현재의 미미한 수요마저 줄이겠다는 거니까요.
정부도 소비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자들 밖에 소비할 여력이 없다는 겁니다. 해서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고령화 진전으로 구조적인 소비 부진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로의 부의 이전이 필요하다"는 발상까지 나오게 된 거겠죠. (☞관련 기사 : "부의 이전 필요" 상속·증여세 인하 논란)
하지만 저소득층의 복지를 위해 쓸 세금은 더욱 줄어들 테고 고소득층의 소비 성향이 낮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소비는 더욱 감소할 겁니다. 부의 불평등이 전체 소비를 줄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어떻게든 성장률을 끌어 올리려는 정부의 근시안이 더욱 위기를 부추기는 거죠.
세 번째는 피셔의 부채-디플레이션 위기, 그리고 민스키 시점(Minsky moment)의 도래입니다. 1929년 대공황 발발 일주일 전에 "지금은 주식을 사야할 때"라고 말하는 바람에, 미국 최고 경제학자로서의 명성에 똥칠을 한 피셔가 자기반성으로 내놓은 이론이 부채-디플레이션이론입니다.
버티고 버티다 원리금 상환을 위해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려고 내 놓으면 가격이 폭락할 테고 이에 따라 다시 부채 상환의 부담이 더 커지는 현상이죠. 이런 현상을 기업 부채까지 확대해서 체계화한 것이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 이론입니다. 최근의 "대차대조표 불황" 이론도 유사합니다. 민스키 시점이란 위기가 발발하는 때를 말하는 겁니다.
이미 가계 부채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얘긴 여러 번 했습니다. 특히 최경환 부총리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중산층이 "돈 빌려 집사라"는 말을 실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 정부 들어 가계 부채의 증가 속도는 소득 증가 속도의 두 배에 이르렀죠. 시간이 갈수록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는 얘깁니다.
물론 남아도는 돈을 통해 계속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희망을 계속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민스키 시점을 뒤로 미룰 수 있고, 세계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소득의 증가 속도가 부채 증가속도를 앞지르게 된다면 문제가 사라질 수도 있겠죠.
저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만 현재 상황으로 봐선 가능성 제로의 희망입니다. 시작은 준재벌급 기업의 파산일 겁니다. 어쩌면 외환 위기 때처럼 반도체 가격 하락이나 자동차 수출의 급감부터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자산 가격의 폭락이 먼저 올 수도 있고, 정부가 "선제적 구조 조정"을 한다며 노동 개혁을 한 것이 화근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 경제는 심지와 도화선이 여러 가닥으로 연결된 대형 폭탄 위에 놓여 있습니다. 또 인화성 물질은 나라 안팎에 가득 차 있죠. 어디서건 심지에 불이 붙으면 다른 도화선으로 옮겨 붙어서 결국 폭탄이 터질 겁니다.
'뷰'와 '데자뷔'
앞으로의 '뷰'는 우선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겁니다. 하지만 반대 방향이 옳다고 정부와 기업(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믿고 있는 한, 우리의 노력은 부질없는 일이 되겠죠. 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도 앞으로 고민하려고 합니다.
과연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 조직의 금전적 이익 때문에(아래 기사를 보시죠), 또 이렇다 할 대안도 갖지 않은 채 들러리를 선 한국노총을 비판해 봐야 우리의 앞날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 한국노총 '돈줄' 쥐고 흔들었다)
과연 민주노총은 "무늬만 총파업"을 뛰어 넘어 '임박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요? 외환위기 발발 한 해 전, 1996년 말의 상황은 여러 모로 '데자뷔'입니다. (☞관련 기사 : 총파업 부른 노동법 개악)
위기가 눈앞에 닥쳐왔는데도 집안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당이 과연 최소한 오바마의 노동 개혁(아래 기사를 보십시오) 정도라도 관철시킬 각오로 국회 안에서 노동법 개악을 둘러싼 싸움을 할 수 있을까요? 동시에 길거리에 나서는 것도 절체절명의 해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관련 기사 : 99%를 위하여…'오바마의 노동 개혁'은 달랐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가을, 같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야 할 화두입니다.
박근혜와 김정은, 복지 철학은 닮았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복지 국가인가 전쟁 국가인가?
지난 8월 20일 휴전선에서 남북 간 포격전이 벌어지고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남한도 진돗개 1호를 발령하면서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8월 25일 남북 고위급 회담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우리는 전면전 위협 속에서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와 가족은 물론 많은 국민이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분단이 이루어졌다고 보면 70년간 분단되어 온 한반도의 실체를 간을 조리면서 실감했다. 한국 전쟁 이전에도 남과 북이 국지전을 벌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참으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이에 대한 정치적 뒷담화와 해석들은 차치하고라도 참으로 악몽 같은 며칠간의 시간이었다.
전쟁의 위협을 겪으면서 지난 대선 때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는 잠시나마 복지 국가의 꿈을 꿨다. 맞춤형 복지(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격돌했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는 복지 국가를 하게 될 줄 알았다. 다만, 증세 없는 복지 국가를 제시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미심쩍기는 했으나 아무튼 복지 국가 논쟁에 불을 붙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복지국가의 미몽에서 깨어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워낙 강력하게 복지 국가를 제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지 않아 깨지게 되었다.
전쟁과 복지의 미묘한 관계
역설적이게도 복지는 전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너무나 전폭적이어서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 자체가 비극이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가족 관계와 사회관계가 파괴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 낸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게다가 범죄와 질병의 창궐로 사람들의 삶은 지옥 같은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는 해당 국가든 국제 사회든 기본적인 복지를 제공하도록 만든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복지 국가'를 천명했던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에 근거하여 전쟁으로 인한 빈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 보장 제도의 확충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 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또한 리처드 티트머스가 지적하였듯이 전쟁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유대감을 갖도록 하여 평등주의와 집합주의(collectivity) 국가 개입의 확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복지 국가를 가능케 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전쟁 중 방임적 상황의 혼란과 공포보다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더욱 안전하다는 경험과 전쟁 피해에 대한 반대 급부의 기대 심리 등이 복지 국가 건설에 전제적 요건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복지 국가'라는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 측에서 독일을 '전쟁 국가(warfare state)'로 규정하면서 연합국은 평화를 추구하는 '복지 국가(welfare state)'로 규정하는 정치적 선전을 펼쳤다는 것은 명백히 알려진 사실이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조국에 바칠 것을 요구했고, 조국(영국)은 국민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복지 국가를 만들어서 보답하겠다고 했다. 물론, 처칠은 베버리지 보고서의 대안을 거부하여 전후 노동당에게 전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복지 공약으로 국민의 충성심을 자극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복지는 내부 국방
국방(national security)과 사회 보장(social security)의 관계는 밀접하다. 전자가 대외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대내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평화 시에 보훈 복지와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를 충분히 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는 전쟁 국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 보장을 중심으로 국가 복지를 튼튼히 하는 것이 곧 국방이다.
그런가하면, 양자는 대립적 관계에 있기도 하다. 특히 국가 예산 분배에서 국방비를 우선할 것인가, 복지비를 우선할 것인가가 긴장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영국이 한국 전쟁에 거액의 군사비 부담을 지게 되자 무상 의료 복지 제도인 국민 보건 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예산을 삭감하였다. 이에 영국 노동부 장관이 사회 보장 예산 삭감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 군비와 사회 보장비 지출 논쟁이 벌어져 '총이냐 버터냐(guns or butter?)'는 유명한 질문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 예산과 복지 예산이 동반하여 상승했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분단국가이며 내부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선택했던 현명한 정책 노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평소의 복지체계가 국방의 초석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통일을 위한 복지 국가
전쟁과 복지의 관계는 밀접하면서도 대립적인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니라 복지라는 점이다. 야만적인 전쟁 국가보다는 평화를 지향하는 복지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복지 국가는 민간의 자선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제도화된 장치를 통해 국가의 책임 아래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객관적 욕구(need)에 따라 분배되는 제도적, 체계적 장치를 마련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2008년 1월에 채택되고 그 해 10월과 2012년에 수정 보충된 북한의 사회보장법을 보면 제2조에서 대상자를 노인, 장애인, 아동에 국한하고 있다. 전형적인 선별주의적 복지 체계이다. 아마도 교육, 의료, 주거 등은 사회주의 방식으로 제공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와 노선이 유사하다. 또한 같은 법 제4조에서는 보훈 대상자들에 대한 우대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보다 앞선 규범으로 볼 수 있다. 국가를 위해 생명을 담보하거나 희생한 사람들과 가족에 대해서는 국가가 일차적, 우선적으로 보호와 보장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남한과 북한이 전쟁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한 통일은 어렵다. 통일이 되더라도 오히려 재앙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평화적인 복지 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에 있는 금강산을 한민족이 공유하려면 일단 서로 잘 먹어야 한다. 그게 통일을 위한 복지 국가를 구축하는 길이다.
남한도 북한도 평화를 추구하는 복지 국가 건설을 약속하자. 더 이상 공포 마케팅은 사절이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분단이 이루어졌다고 보면 70년간 분단되어 온 한반도의 실체를 간을 조리면서 실감했다. 한국 전쟁 이전에도 남과 북이 국지전을 벌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참으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이에 대한 정치적 뒷담화와 해석들은 차치하고라도 참으로 악몽 같은 며칠간의 시간이었다.
전쟁의 위협을 겪으면서 지난 대선 때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는 잠시나마 복지 국가의 꿈을 꿨다. 맞춤형 복지(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격돌했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는 복지 국가를 하게 될 줄 알았다. 다만, 증세 없는 복지 국가를 제시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미심쩍기는 했으나 아무튼 복지 국가 논쟁에 불을 붙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복지국가의 미몽에서 깨어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워낙 강력하게 복지 국가를 제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지 않아 깨지게 되었다.
전쟁과 복지의 미묘한 관계
역설적이게도 복지는 전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너무나 전폭적이어서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 자체가 비극이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가족 관계와 사회관계가 파괴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 낸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게다가 범죄와 질병의 창궐로 사람들의 삶은 지옥 같은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는 해당 국가든 국제 사회든 기본적인 복지를 제공하도록 만든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복지 국가'를 천명했던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에 근거하여 전쟁으로 인한 빈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 보장 제도의 확충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 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또한 리처드 티트머스가 지적하였듯이 전쟁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유대감을 갖도록 하여 평등주의와 집합주의(collectivity) 국가 개입의 확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복지 국가를 가능케 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전쟁 중 방임적 상황의 혼란과 공포보다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더욱 안전하다는 경험과 전쟁 피해에 대한 반대 급부의 기대 심리 등이 복지 국가 건설에 전제적 요건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복지 국가'라는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 측에서 독일을 '전쟁 국가(warfare state)'로 규정하면서 연합국은 평화를 추구하는 '복지 국가(welfare state)'로 규정하는 정치적 선전을 펼쳤다는 것은 명백히 알려진 사실이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조국에 바칠 것을 요구했고, 조국(영국)은 국민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복지 국가를 만들어서 보답하겠다고 했다. 물론, 처칠은 베버리지 보고서의 대안을 거부하여 전후 노동당에게 전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복지 공약으로 국민의 충성심을 자극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복지는 내부 국방
국방(national security)과 사회 보장(social security)의 관계는 밀접하다. 전자가 대외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대내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평화 시에 보훈 복지와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를 충분히 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는 전쟁 국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 보장을 중심으로 국가 복지를 튼튼히 하는 것이 곧 국방이다.
그런가하면, 양자는 대립적 관계에 있기도 하다. 특히 국가 예산 분배에서 국방비를 우선할 것인가, 복지비를 우선할 것인가가 긴장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영국이 한국 전쟁에 거액의 군사비 부담을 지게 되자 무상 의료 복지 제도인 국민 보건 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예산을 삭감하였다. 이에 영국 노동부 장관이 사회 보장 예산 삭감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 군비와 사회 보장비 지출 논쟁이 벌어져 '총이냐 버터냐(guns or butter?)'는 유명한 질문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 예산과 복지 예산이 동반하여 상승했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분단국가이며 내부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선택했던 현명한 정책 노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평소의 복지체계가 국방의 초석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통일을 위한 복지 국가
전쟁과 복지의 관계는 밀접하면서도 대립적인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니라 복지라는 점이다. 야만적인 전쟁 국가보다는 평화를 지향하는 복지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복지 국가는 민간의 자선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제도화된 장치를 통해 국가의 책임 아래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객관적 욕구(need)에 따라 분배되는 제도적, 체계적 장치를 마련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2008년 1월에 채택되고 그 해 10월과 2012년에 수정 보충된 북한의 사회보장법을 보면 제2조에서 대상자를 노인, 장애인, 아동에 국한하고 있다. 전형적인 선별주의적 복지 체계이다. 아마도 교육, 의료, 주거 등은 사회주의 방식으로 제공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와 노선이 유사하다. 또한 같은 법 제4조에서는 보훈 대상자들에 대한 우대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보다 앞선 규범으로 볼 수 있다. 국가를 위해 생명을 담보하거나 희생한 사람들과 가족에 대해서는 국가가 일차적, 우선적으로 보호와 보장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남한과 북한이 전쟁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한 통일은 어렵다. 통일이 되더라도 오히려 재앙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평화적인 복지 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에 있는 금강산을 한민족이 공유하려면 일단 서로 잘 먹어야 한다. 그게 통일을 위한 복지 국가를 구축하는 길이다.
남한도 북한도 평화를 추구하는 복지 국가 건설을 약속하자. 더 이상 공포 마케팅은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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