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온라인 ‘여성혐오’의 원인은 무엇일까. <시사IN>은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회사 ‘아르스프락시아’와 함께 일베에서 드러나는 ‘여성혐오 지도’를 그렸다. 게시글 43만 개를 원자료로 삼아 여성 관련 논의를 추출했다. 여성혐오의 탄생지로 ‘연애’와 ‘결혼’이 지목되었다.
|
[418호] 승인 2015.09.17 01:05:10 |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메갈리안’…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여성 향한 외침, “왜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
온라인 공간 일부의 소동처럼 여겨지던 여성혐오의 물결이 이제는 현실 세계를 덮치고 있다. <시사IN>은 2015년 한국 사회의 첨예한 단층선인 여성혐오에 관한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호(제417호)에서는 여성혐오 담론의 구조와 확산 동력을 입체 해부한다. 다음 호(제418호)에서는 여성혐오의 언어를 그대로 남성들에게 돌려주는 ‘미러링’ 전략을 구사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는 반(反)여성혐오의 거점 메르스갤러리를 살펴본다.
❶ ‘여성혐오 지도’ -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
2015년은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이 시민권을 획득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유명 칼럼니스트가 자기 칼럼의 파장으로 진행하던 방송에서 하차하고,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래퍼가 여성혐오 랩을 쏟아내 문제가 되고, 개그맨이 팟캐스트에서 여성혐오 개그를 하다가 사회적인 논란까지 불거져도, 여성혐오는 수그러들기는커녕 온라인과 현실 세계에 공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남성지 <맥심 코리아> 9월호는 여성 납치 범죄를 연상시키는 표지 사진을 내걸었다가 여성혐오라는 집중포화를 받고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맥심 코리아>는 미국 <맥심> 본사가 규탄 메시지를 내는 등 외신으로 문제가 확산되자 9월4일 뒤늦게 사과문을 냈다.
![]() |
||
그런 걸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여성혐오만큼 희한한 전략도 흔치 않다. 이 ‘전략’을 쓰는 남성은 여성과 데이트할 확률이 극히 떨어지는데, 젊은 남성이 이런 손실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는 아주 불투명하다. 그러니까 여성혐오란 거의 ‘자해적인 전략’이다. 그런데도 여성혐오의 깃발 아래 갈수록 많은 남성이 줄을 선다.
이 기묘한 현실을 이해하려면 당사자에게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여성혐오 담론을 날것 그대로 전시하는 쇼윈도를 알고 있다. ‘일베’다. 일베는 폭넓게 퍼진 여성혐오 담론 구조의 원형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훌륭한 전시장이다.
STEP 1:데이터가 그려낸 여성혐오 지도
<시사IN>은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회사 ‘아르스프락시아’와 함께 일베에서 확인되는 ‘여성혐오 지도’를 그렸다. 2011~2014년 3년 동안 일베에 올라온 게시글 43만 개를 원자료 삼아 여성 관련 논의를 추출했다. 그 결과가 아래 <표 1>이다.
우선 깨져나가는 통념이 있다. ‘군대’는 핵심이 아니다. 여성혐오 담론지도에서 군대 문제는 주변부에 고립되어 있고(표 위쪽 회색 블록), 담론지도의 핵심부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지도 않다. 단어의 등장 빈도로도 732회에 불과해 20위권 밖이다. 분석을 진행한 아르스프락시아 김학준 연구원은 “데이터 분석 결과로 보면 군대는 담론 형성에서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여성혐오가 먼저다. 군대는 ‘더 본격적으로 미워하기 위해’ 사후에 가져다 붙인 명분에 가깝다. 군가산점이나 여성부도 핵심이 아니라 사후 명분이라는 점이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담론지도에서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김치녀’다. 일베에서 이 말은 사실상 ‘여성’의 대체 단어일 정도로 자주 나온다. ‘여성’(‘여자’ 등 유사 단어 포함)이 1만159차례 등장하는 동안 ‘김치녀’는 8697차례 등장한다. ‘김치녀’는 한국의 여성혐오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일베의 여성혐오 담론지도는 ‘김치녀’가 탄생하는 곳을 정확히 지목한다. 데이트 경험이다. 지도에서 ‘남성’을 둘러싼 키워드들을 보자(표 가운데 초록색 블록).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호구’다. 여성은 평소에는 남녀 ‘평등’을 외치다가도 정작 남자를 고를 때는 ‘능력’을 따지는 이기적인 존재다. ‘더치페이’하는 남자는 데이트 상대로 쳐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나랑은 자주지도 않는다(‘섹스’). 데이트의 좌절은 여성혐오의 원체험이다.
![]() | ||
![]() |
||
일베의 여성혐오 담론지도는 하나의 결론으로 달려간다. 짝짓기 시장, 그러니까 결혼까지 포함해서 ‘연애 시장에서의 환멸’이 여성혐오의 뿌리다. 여성혐오 담론에서 ‘김치녀’란 무엇보다도 ‘연애 시장에서 반칙을 하는 여자’를 뜻한다.
반칙이란 뭘까.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자의 능력을 따지는 여자’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데이트 비용은 남자에게 물리는 여자’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여자’ ‘자기 외모는 성형으로 과대 포장하면서 남자의 능력은 칼같이 따지는 여자’다. 포괄적으로 정의 내리면 이렇다. ‘연애 시장에서 (사람 됨됨이나 사랑이 아니라) 남자가 보유한 자원을 따져서 분수 이상으로 한몫 잡으려는 여자.’ 한국의 젊은 남성을 사로잡은 여성혐오 담론이 내놓는 ‘김치녀’의 원형이다.
이것은 지독한 역설로 이어진다. 담론지도의 ‘남성’과 ‘여성’ 사이 붉은 블록에 낯선 키워드가 있다. ‘사랑’이다. 이 여성혐오자들이 보기에 사랑이야말로 연애 시장에서 유통되어 마땅한 유일한 화폐다. ‘김치녀’는 연애 시장의 화폐를 사랑에서 남자의 경제력으로 바꿔놓는 시장 교란자다.
![]() |
||
ⓒ연합뉴스 개그팀 ‘옹달샘’은 팟캐스트에서 여성혐오 개그를 해 논란이 되자 사과했다. |
![]() |
||
ⓒMnet <쇼 미 더 머니> 화면 갈무리 온라인에서 여자를 때리는 ‘상남자 만화(왼쪽)’가 퍼졌고, 래퍼 송민호씨(오른쪽)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여성혐오 랩을 쏟아내 문제가 되었다. |
이렇게 해서 극적인 가치 전도가 일어난다. 여성혐오는 이 시장 교란자를 단죄하는 정의로운 분노이자, 사랑에 충실한 순수한 남성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숭고한 경지가 된다. 여기까지 오면 여성혐오는 숨겨야 할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다. 차라리 자긍심의 원천이다. 여성혐오는 연애 시장에서 최하층에 위치하는 ‘루저’의 정서를 뛰어넘어 ‘멀쩡한 젊은 남성’도 공유하는 집단 정서로 진화한다. 이제 페이스북 김치녀 페이지에 실명을 걸고 ‘좋아요’를 누르는 남자들이 탄생한다.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거의 병리적인 자아도취를 드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연애 시장에서 좌절을 느끼고 그 분노를 여성 일반에게 겨누는 남성 집단이 왜 이리도 대규모로 쌓여가고 있는가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우리가 30년도 더 전부터 묻어둔 폭탄을 꺼내야 한다.
STEP 2:연애 시장에 들어온 남성잉여세대
자연 상태에서 신생아의 성비는 남아가 조금 더 많은 수준으로 나온다. 대체로 여아 100명당 남아 비율이 103~107명 사이에서 형성되면 ‘자연 성비’라고 부른다. 남성의 수명이 더 짧고 조기 사망 확률도 조금 더 높기 때문에, 자연 성비 범위에서는 신생아가 성장해갈수록 성비는 1대1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성비 불균형 국가다.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시점인 1975년에도 이미 출생 성비는 112.4로 붕괴 수준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인구 억제 정책으로 산아제한을 강력히 추진했는데, 이것이 남아 선호 문화와 만나자 ‘여아만 골라 떼는’ 성감별 낙태의 대유행으로 귀결되었다.
몇 번 들쭉날쭉하던 출생 성비는 1983년 들어 107.3으로 다시 자연 성비 범위를 벗어난다. 이후 성비 왜곡이 그야말로 폭주했다(<표 2>). 2006년까지 무려 24년 연속으로 남아 비율이 자연 성비를 초과한다. 가장 심했던 1990년에는 성비가 116.5까지 치솟았고, 성비가 110을 넘긴 해도 13번이나 된다. 남자 10명 중 1명은 짝이 없는 거대한 남성잉여세대가 탄생했다.
![]() | ||
![]() |
||
1983년생은 올해로 32세이다. 남성 평균 초혼연령이 32.4세이니, 이 남성잉여세대의 맏형도 아직 연애 시장에 머물러 있다. 이후로도 4반세기 동안 남성잉여세대가 연애 시장에 진입할 것이고 잉여 남성은 시간이 갈수록 누적된다.
통계청 인구총조사는 2010년판이 최신판이다(올해 총조사가 예정되어 있다). 2010년 조사에서 각 연령대에 5년을 더해보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최근 5년 동안의 사망 등이 반영되지 않는다) 대략의 연령대별 잉여 남성 숫자를 알 수 있다. 그 결과가 <표 2-1> 그래프다.
![]() |
||
남성잉여세대의 맏형 그룹이 포함된 30~ 34세(2010년 조사에서는 25~29세)에서는 남자가 6만7000명이 남는다. 이 연령대 남성 인구의 3% 정도다. 그다음 세대부터가 본격적인 잉여 축적 세대다. 25~29세에서 남자는 19만5000명이 남는다. 남성 인구의 12%다. 20~24세 그룹에서는 21만4000명, 11.7%가 남는다. 연애 시장의 핵심 연령대인 20~34세에서 잉여 남성 숫자가 47만명이다. 그나마도 이 수치는 과소평가되어 있다. 인구총조사에서는 25~29세 구간에서 남성 인구가 갑자기 줄어드는 현상이 1990년 이후로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인구학 연구자들은 대체로 이 세대 남성 인구의 이동성이 높아 총조사에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잉여 남성 인구가 실제로는 47만명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기자 마라 비슨달은 세계 곳곳의 성비 붕괴를 취재한 논픽션 <남성과잉사회>를 썼다. 이 책에서 비슨달은 상상하기 힘든 곳까지 영향을 주는 성비 붕괴 효과를 소개한다. 얼핏 듣기에 황당한 얘기지만, 성비가 무너지면 저축률이 높아진다. 1자녀 정책을 강제해 성비가 무너진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성비와 저축률은 어떻게 이어질까. 신붓감이 부족해지면, 아들을 둔 부모는 필사적으로 저축을 늘린다. 부모가 물려줄 자산이 클수록 아들이 연애 시장에서 살아남을 확률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성비가 무너지면, 남성의 연애 시장 입장권이 비싸지는 것을 사람들은 경험으로든 직관으로든 알아챈다. 입장권 가격이 오르면 남성이 좌절할 가능성도 따라서 올라간다. 비슨달은 성비가 1% 높아지면 범죄율이 5~6% 올라간다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홍콩 중문대학 공동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중국의 젊은 남성이 늘어난 것만으로 전체 범죄 증가의 3분의 1을 설명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더해 ‘문화적 성비 붕괴’ 현상도 관찰된다. 여자보다 남자가 결혼에 더 적극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2012)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와 ‘하는 편이 좋다’를 합친 비율이 남자는 67.5%였던 반면 여자는 57%에 그쳤다. 한국의 연애 시장에서는 생물학적 성비 붕괴 위에 ‘문화적 성비 붕괴’ 10%포인트가 추가로 붙는다.
결혼 회피의 성별 격차를 만들어낸 범인은 가부장제의 압력일 가능성이 높다. ‘시댁 또는 처가 중심의 결혼 생활이 부담스러워서 결혼을 회피한다’라는 설명에 비혼 여성 중 72.2%가 찬성했다. 비혼 남성 중 찬성 비율은 49.4%였다.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이중 공급과잉 상태다.
남성잉여세대의 선배 그룹인 1970년대 이전 출생 세대도 남초 성비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선배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았던 ‘덕’을 보았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결혼을 더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남성잉여세대는 선배들이 겪지 않았던 새로운 환경에 놓여 있다. 오늘날 연애 시장에서 좌절한 남성들은 웹과 모바일이 제공한 초연결사회에 살며 대단히 간편하게 서로를 발견하고, 여성혐오를 배양하고 증폭해낼 공간을 온라인에서 확보했다.
STEP 3:결혼경제학, 연애 시장을 해부하다
시카고학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게리 베커(1930~2014)는 화폐경제를 넘어 범죄 등 인간 행동 전반에 경제학을 적용하는 시도로 유명했다. 결혼을 경제학으로 해석한 최초의 시도도 그가 1973년에 내놓았다. 이후 경제학자들은 연애 시장에서 남녀의 전략을 예측하는 일련의 모형을 발전시켰다.
‘결혼시장 탐색모형’은 다음과 같은 모델을 제안한다. 구혼하는 성은 남성이고 승낙과 거절을 선택하는 성은 여성이다. 이때 여성은 남성이 가진 자원(대표적으로 소득수준)을 평가해 기준선 이상이면 받아들이고 이하라면 거절한다. 이 모델은 낭만이라고는 없는 데다 지독히 단순하지만 현실을 그럭저럭 보여준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 모델은 흥미로운 예측을 내놓는다. 설사 소득의 평균값에 변화가 없다고 해도, 소득 불평등이 커질수록 결혼은 줄어든다. 불평등이 커지면 여성이 설정한 ‘기준선’을 넘지 못하는, ‘자원 없는’ 남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력이 올라가도 결혼은 줄어든다. 여성이 설정하는 ‘기준선’이 따라 올라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금융경제연구(2010년 12월)에 실린 논문 ‘저출산·인구고령화의 원인에 관한 연구:결혼 결정의 경제적 요인을 중심으로’(이상호·이상헌)는 남성의 임금 불평등이 증가할수록 여성의 결혼율이 하락한다는 기존 연구가 한국에서도 타당하다는 결론을 낸다. “임시직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결혼율은 15~39세 인구 1000명당 0.23~0.40건 감소하는데, 이는 임시직 비율이 높아지면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결혼경제학은 한국의 여성혐오 진영에 희소식처럼 들린다. 여성이 남성의 경제력을 평가해 결혼 여부를 선택한다는 결혼경제학의 모델은 ‘순수한 한국 남성 대 계산적인 김치녀’ 구도를 뒷받침하는 듯하다. 데이터도 있다.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에서 배우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경제력’을 꼽은 응답자가 남성은 9.8%, 여성은 30.3%였다.
희소식은 여기까지다. 여성이 남성보다 배우자의 경제력에 민감한 경향은 존재한다. 다만 한국 특유의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본성에 더 가깝다. 남성은 여성의 외모에 더 민감하고, 여성은 남성의 자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진화심리학은 예측한다. 두 성의 속성상 번식 전략이 다르게 진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경향성만은 일관되게 관찰된다.
![]() | ||
![]() |
||
한국의 노동시장은 성별 임금 격차가 크기로 악명 높다. <표 3>은 남성과 여성의 연령별 임금 곡선을 한데 모아 그린 것이다. 아래의 붉은색이 여성의 생애임금 곡선, 위의 푸른색이 남성의 생애임금 곡선이다. 남성이 40대 후반에 임금곡선 정점에 도달하는 반면, 여성은 30대 후반에 정점을 찍고 이후로 계속 떨어진다. 출산을 전후한 경력 단절의 흔적이다. 정점의 높이도 여성이 남성보다 터무니없이 낮다. 그 결과,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져서 50대 전반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1.9배를 더 번다.
연애 시장에 뛰어든 한국 여성의 관점에서 보자.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기대소득은 남성의 절반 남짓밖에 안 된다. 노동시장 퇴출도 더 빠르다. 반대로 연애 시장에서는 생물학적·문화적 이중 성비 붕괴 덕에 여성이 더 많은 자원을 쥐고 있다. 서로가 쥔 패를 따져보면, 한국 여성이 더 많은 자원을 연애 시장에서 요구하는 전략도 등장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자원 추구형 전략’이 일부 여성의 전략이라 해도 상관없다. 남성혐오 진영에서는 일단 사례가 수집되면 축적되고, 공유되고, 증폭되며, 결국 일반화된 혐오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혐오는 자기강화의 경로에 올라탄다.
이제 결정적인 질문이 남았다. 대기업 입사 경쟁은 경쟁률로 보면 연애 시장에서의 구애 경쟁보다 훨씬 치열하지만, 취업준비생 대부분은 대기업을 혐오하기보다는 선망한다. 연애 시장에서 여성이 더 희소한 자원이 되었다면, 남성은 왜 ‘더 많은 호의’가 아니라 ‘더 많은 혐오’를 택하나. 여성혐오에 젖은 남자를 데이트 상대로서 매력을 느끼는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연애 시장의 논리로 보면 거의 자해 전략인 여성혐오가 어떻게 해서 연애 시장에서 탄생할 수 있을까.
STEP 4:혐오, 절망적인 가격 흥정 전략
진화심리학의 기틀을 다진 연구자로 평가받는 데이비드 버스 교수(텍사스 대학)는 책 <이웃집 살인마>에서 “왜 어떤 남자들은 연인을 학대하는가”라는 독특한 질문을 던진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으로 보면, 남성에게 여성 배우자는 대단히 귀중한 자원이다. 그런데도 왜 남성은 배우자를 때리고 모욕하고 특히나 외모를 폄하할까. 더 황당하게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자신을 학대하는 배우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그녀를 도우려던 지인들을 속 터지게 만든다.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까.
![]() |
||
논란이 된 남성지 <맥심 코리아> 9월호의 사진(왼쪽). <맥심 코리아> 측은 외신으로 문제가 확산되자 9월4일 뒤늦게 사과문을 냈다(위). |
버스의 설명은 이렇다. 외모 폄하에서 폭력까지, 남성의 학대는 여성의 자긍심을 손상시킨다. 자긍심이란 연애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재는 도구로, 그러니까 일종의 가격 측정 센서다. 이 자긍심 센서가 망가지면 여성은 자신의 시장가치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남성은 여성에게,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을 테니 자신과 함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주지시키려 하는지 모른다. 강력한 배우자 감시 전략인 학대와 고립은 여성을 손상된 관계에 잡아매는 극악한 기능을 수행한다.”(<이웃집 살인마> 165쪽)
남성이 스스로 선택해서 이런 전략을 고른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이런 전략적 옵션이 진화 과정에서 유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심리에 내장되어 있고, 특정 상황이 되었을 때 무의식중에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주장이다.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대란,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 배우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가격 흥정 전략이다. 마치 중고차를 고르며 이리저리 트집을 잡고 사고 기록을 따져 묻듯, 학대는 배우자 여성의 가치를 줄여 잡아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다. 이 전략은 분명 자기파괴적이고 위험하지만,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은 어차피 떠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배우자보다 뒤처진 남성에게는 이판사판으로 해볼 만한 도박이 된다.
이 논리를 여성혐오에 적용해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 연애 시장에서 남성의 시장가치가 주저앉는 메커니즘을 여럿 확인했다. 바꿔 말하면, 여성 집단의 시장가치가 남성 집단보다 올랐다. ‘뒤처진 남성’이 대규모로 축적되는데, 이때 여성혐오는 마치 저강도 학대와 같은 효과를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게 가한다. 남성들의 머릿속에는 연애 시장에서 협상력이 딸릴 때에는 여성의 자긍심을 손상시키라는 전략이 내장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것은 절망적인 전략이다. 1대1 관계에서는 학대를 통한 흥정에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도 있는 반면, 온라인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저강도 학대는 애초에 협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서 가격 흥정이 될 수가 없다. 1대1 관계에서 써먹으라고 진화가 내장해놓은 전략이 엉뚱한 장면에서 스위치가 켜진다. 더욱이 여성혐오는 연애 시장에서 그 남성의 시장가치를 더 떨어뜨린다. ‘가격 격차’는 더 커질 것이고, 가격 흥정도 따라서 다시 절박해진다. 막다른 골목이다. 남성잉여세대의 맏형들이 이 막다른 골목에 이제 막 들어섰다. 그 뒤로도 25년 동안 동생들이 줄을 서 있다.
‘메갈리안’…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메르스갤러리는 여성혐오에 대한 독특한 반격이 시작된 곳이다. 메갈리안은 여성혐오를 거울에 비쳐 돌려주는 ‘미러링’ 전략을 택했다. 미러링은 기획된 패러디일까, 혐오의 악순환일까. 개념글에 오른 게시물 전체를 분석해봤다.
‘김치남’ 또는 ‘씹치남’이라고 있다. 이제는 여성혐오 정서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된 ‘김치녀’의 대응 단어다. ‘김치페이’도 있다. “먹을 땐 8대2, 돈은 5대5, 계산은 남자가 해야 가오가 산다는 김칫국식 더치페이”라는 뜻이란다. 역시 원본이 있다. 여성혐오 담론의 본진 격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더치페이’는 여성혐오를 부르는 도깨비방망이 키워드다. ‘갓양남’은 뭘까. “김치남에 비해 모든 것이 뛰어난 서양남”이라는 의미다. 원본은 ‘스시녀’다. 일베에서 ‘김치녀’와 대조해 일본 여성을 거론할 때 쓴다.
여성혐오 폭발의 원년이라 할 만한 2015년(<시사IN> 제417호 연속기획 ❶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기사 참조)은, 또한 아주 독특한 반격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메갤)’를 거점 삼아, 여성혐오를 거울에 비쳐 돌려주는 전략을 채택한 여성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남녀의 성 역할과 권력이 뒤바뀐 세상을 묘사한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스테디셀러 <이갈리아의 딸들>에 빗대어 자신들을 ‘메갈리안’이라고 부른다(<시사IN> 제410호 ‘메갈리아의 딸들 여성혐오를 말하다’ 기사 참조). 8월에는 같은 이름의 홈페이지도 생겼다.
메갈리안은 등장하자마자 크게 두 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첫째, 이것은 ‘미러링’(거울에 비추듯 되돌려주기)인가, 남성혐오인가? 메갈리안이 구사하는 공격적인 언어는 전략적으로 기획된 여성혐오의 패러디인가, 그저 혐오의 악순환인가? 둘째, 설사 그것이 미러링이라고 해도, 혐오의 언어를 그대로 빌려와 혐오에 대응하는 전략은 제대로 작동할까? 구경꾼을 질리게 만드는 역효과는 없을까?
<시사IN>과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회사 아르스프락시아는 메갤 담론 지도를 그렸다. 6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메갤에서 10건 이상의 추천을 받아 ‘개념글’이 된 게시물 전체(2만7888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온라인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맞서 여성들이 구축한 ‘역공의 거점’ 메갤을 데이터로 분석한 최초 시도다. 그 결과가 <그림 1>이다.
![]() | ||
![]() |
||
<그림 1> 메르스갤러리 담론 지도 |
메갤 담론 지도의 기본 뼈대는 삼각 구도다. 삼각형의 세 꼭짓점은 각각 ‘여성’ ‘남성’ 그리고 ‘씹치남’이다. 일단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왼쪽 위 ‘씹치남’을 중심으로 하는 남색 대륙이다. ‘이중잣대’와 ‘이기야’는 일베의 패러디다. ‘미개’와 ‘클래스’도 패러디 성격이 강하다. 메갤이 주장하는 ‘미러링’이다.
메갈리안이 보기에,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사고체계 근간에는 ‘데이트 비용’ 문제가 있다(왼쪽 아래 푸른색 대륙). 여성이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것을 여성혐오의 동력으로 삼고,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역차별’을 받는다고 믿으며(역차별의 대표 사례로 ‘군대’가 있다), 여자들이 남자를 고를 때 ‘사랑’이 아니라 ‘능력’을 본다고 믿는 남자. 이것이 메갈리안이 그리는 여성혐오 남성의 원형질이다.
오른쪽 초록색 ‘여성’ 대륙은 이런 현실에서 한국 여성이 처한 상황에 대한 메갈리안의 현실인식이다. 전방위 ‘여성혐오’에 둘러싸인 한국 여성은 ‘처녀’가 아니면 ‘걸레’라는 식의 공격에 시달린다.
삼각형 구도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분석을 진행한 아르스프락시아 김학준 연구원은 오히려 삼각형 내부의 작은 대륙 셋에 주목했다. “흥미롭네요. 셋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가 있습니다.” 일관된 정서란 뭘까. 공포다. 범죄 공포, 결혼 공포, 그리고 시선 공포. 세 축으로 구성되는 공포는 메갤 담론지도의 속살을 이룬다.
<시사IN>과 아르스프락시아는 세 공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상세 지도를 그려봤다. <그림 2>는 ‘범죄 공포’ 지도다. 여성은 일상적으로 ‘성폭행’ ‘성희롱’ ‘모욕’ ‘데이트 강간’ ‘살인’ 위협에 노출된 존재다(노란색). 이 구도에서 ‘남성’은 범죄 ‘가해자’이거나 ‘성매매’ 구매자로 배치되는 반면(푸른색), 여성은 ‘피해자’이면서도 ‘걸레’라고 ‘비하’되거나 ‘편견’에 시달리며 ‘차별’받는다(붉은색).
![]() |
||
<그림 2> 범죄 공포 |
‘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이전부터 간간이 쓰였으나 메갤 등장 이후 사용 빈도가 급증했다. 연애 관계를 정리할 때 여성은 스토킹부터 물리적인 위협까지 온갖 위험을 짊어진다고 느끼는데, 이 때문에 ‘이별은 만나서 통보해야 한다’라는 남성이 생각하는 불문율이 전복된다. 문자나 메신저 등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당하는 남성의 관점에서 보면 ‘못 배우고 싸가지 없는’(그래서 여성혐오의 논거로 쓰이는) 행위가, 메갤에서는 무엇보다 안전 이슈다. 뿌리 깊은 범죄 공포는 남성지 <맥심 코리아> 9월호 화보 사건으로 그야말로 폭발했다.
< 그림 3>은 ‘시선 공포’다. 외모로 대상화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가 잘 드러난 지도다. ‘여성’은 늘 남성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고, 시선은 ‘골반’ ‘가슴’ ‘얼굴’ ‘몸매’ 식으로 여성의 외모를 마치 부위별로 등급 매기듯 ‘평가’한다(붉은색). 이 구도에서 ‘남성’은 보는 존재다. 이 남성 시선의 극단적인 형태가 ‘몰카’다(푸른색).
![]() |
||
<그림 3> 시선 공포 |
몰카 이슈는 메갤 초창기 최대의 승전보였다. 6월부터 메갤은 ‘소라넷’ 등 유명 음란 사이트에 들어가 몰카 공유 사례를 확보하는 등 이슈화에 나섰다(온라인 용어로, 소라넷을 ‘털었다’). 몰카 문제는 시선 공포와 범죄 공포의 접점에 있고, 메갈리안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를 사회 의제로 띄우는 경험을 공유했다.
<그림 4>는 ‘결혼 공포’다. 로맨스는 온데간데없고 격한 키워드가 ‘결혼’을 둘러싸고 있다. ‘기피’ ‘자살’ ‘이혼’ ‘포기’ ‘독신’ 등이 줄줄이 나온다.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라는 인식이 확고하고, ‘시댁’은 코앞의 부담으로 다가온다(붉은색). ‘남편’은 도움이 될까? 그럴 리 없다. ‘집안일’과 ‘육아’는 ‘아내’에게 떠넘길 것이다(푸른색). 시댁의 무리하거나 뻔뻔스러운 태도를 응징하는 며느리의 경험담은 메갤에서 단골로 히트하는 인기 콘텐츠다.
![]() |
||
<그림 4> 결혼 공포 |
외모를 평가하는 시선, 범죄의 위협, 그리고 결혼 회피. 담론 지도에서 드러난 공포의 세 축은 메갈리안이라는 ‘무서운 언니들’에게 고유한 이슈가 아니다. 한국 여성 일반이 공유하는 공포에 가깝다. 그러나 메갈리안은 여성혐오의 언어를 비트는 방식으로 이 보편적인 공포에 반격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 그림 1>의 회색 ‘시선 공포’ 대륙을 보자. 메갈리안은 여성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는 남자를 끄집어내 역으로 평가 대상으로 세워버린다. 그것도 남자들이 단연 공포를 느끼는 방식으로 돌려준다. 두 키워드가 눈에 띈다. ‘고추’ ‘작다’. 이 ‘무서운 언니들’이 왜 온라인 공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키워드다.
이것은 미러링인가 남성혐오인가? “메갤의 담론 구조가 일베의 그것과 지나칠 정도로 유사하다.” 분석을 진행한 김학준 연구원의 논평이다. ‘지나칠 정도’라니, 무슨 뜻일까. “원본이 존재하고, 그 원본의 맥락을 이해하며, 그에 맞춰 의도적으로 패러디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메갤 이용자들이 원본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건 자연발생적인 혐오의 분출이라고 보기 힘들다.” 여기서 ‘원본’이란 일베로 대표되는 여성혐오의 기본 문법을 가리킨다.
< 그림 5>는 일베와 메갤에서 추출한 담론의 중심 키워드를 대칭으로 배열한 결과물이다. ‘이기야’(일베 특유의 문장 종결 표현 중 하나. 메갤에서도 널리 쓰인다), ‘삼일한’(여자는/남자는 삼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 등의 키워드는 일베와 메갤이 아예 함께 쓴다.
![]() |
||
그다음으로는, 분명히 패러디를 노리고 배치한 키워드가 줄줄이 등장한다. 거의 모든 여성혐오 용어에 일대일 대응 용어가 태어나다시피 했다. 특히 상징적인 키워드는 ‘탈김치녀’ 대 ‘코르셋’이다. 일베가 소수의 ‘각성한 여성’을 ‘탈김치녀’로 찬양하는 동안, 메갈리안은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흔히 쓰이는 ‘코르셋’을 일베와는 정반대 의미의 ‘각성한 여성’으로 쓴다.
혐오의 유탄이 미러링 밖으로 튀지 않도록 관리
메갤의 혐오 발화는 일베식 여성혐오의 거울상이라는 목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계산이 따라붙는다. 메갈리안 홈페이지의 용어사전 ‘갓양남’ 항목을 보자. 한껏 ‘김치남’을 조롱한 후에(“김치남에 비해 모든 것이 뛰어난 서양남”) 작성자는 이 단어에서 인종혐오의 혐의는 차단하려 시도한다. “백인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닌, 흑인과 라틴 계열 등, 서양 국적과 성평등 사상을 가진 남성들을 아우르는 의미.”
하반기에 떠오른 키워드인 ‘맘충’을 메갈리안 용어사전은 “엄마가 없으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김치남”으로 뒤집는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애비충·파피충 등의 대응어가 등장했으나, 육아는 특정 성의 역할이 아니라 부모의 영역이므로 사용을 부정적으로 본다.” 혐오의 유탄이 미러링 밖으로 튀지 않도록 관리하는 계산이 있다. 자연발생형 혐오에서는 보기 힘든 중요한 차이다.
이 의식적인 계산이야말로 메갈리안의 강점인 동시에 위험 요소가 된다. 미러링이란 여성혐오의 문법에 익숙하고 충분히 갖고 놀 수 있으면서도 과속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능한 외줄타기다. ‘탄생 정신’을 공유하지 않는 신규 유입이 이어지고 혐오 발화가 자체로 놀이코드로서 매력을 갖게 된다면(일베가 정확히 이렇다), 그때도 섬세하게 지금 궤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더 중요한 질문도 있다. ‘혐오를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은 습관적으로 여성혐오 언어를 써왔던 남성에게는 충격요법으로 먹혀들기도 했다. 하지만 맥락 없이 접해야 하는 온라인 공간의 다수 구경꾼에게 메갤발 혐오 발화는 그저 ‘여자 일베의 등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전략은 얼마나 유효할까. 메갈리안에서도 그를 둘러싼 논쟁이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외부의 시선이야 어떻든, 오랫동안 온라인 공간의 여성혐오에 시달리며 단련된 이 ‘무서운 언니들’은 당분간 충격요법을 유지할 생각이다. 메갈리안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에 걸린 한 문답이 위 질문을 다룬다. “좀 더 성숙하게 논리적인 분위기로 바꾸자? 그 짓 10년 넘게 했다. 돌아온 거 없다.”
여성 향한 외침, “왜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
일베와 메갤의 데이터 노이즈를 걷어내고 핵심을 보면 남은 것은 혐오보다 연민이었다. 남녀가 서로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들 모두 기존 경제체제와 헤게모니가 제시하는 공허한 평가가치를 대체로 수용한다.
요즘 주변에서 “우리가 어쩌다 이 꼴이 됐지?” 하고 자탄하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 사회가 팍팍해지면서, 남자와 여자들의 언어도 거칠어졌다. 이번 작업에서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와 ‘메르스갤러리(메갤)’의 언어를 들여다보았다. 데이터의 노이즈를 걷어내고 핵심 구조만 바라보니, 남은 것은 혐오보다는 연민이었다.
그간 일베 폭력성의 핵심이 주로 조롱과 조소였다면, ‘여성혐오’ 담론에서는 유독 분노가 두드러졌다. 자못 마초적인 관심사와 인식, 그리고 내재된 폭력성을 걷어내고 나서 마주한, 여성에게 보내는 외마디 외침은 이런 것이었다. “넌 날 왜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니.”
대한민국 수컷의 분노에는 남자의 상향혼을 가로막는 경제 문화적 현실이 배경으로 자리한다(반대로 여자의 계층 내 결혼, 상향혼 선호 경향이 뚜렷하다). 수컷이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격언에 묶여 있을 만큼 용기와 깜냥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의 암컷이 스펙을 위주로 짝짓기를 하는 지대(rent) 추구 게임 플레이어여서 그렇다, 하고 남자들의 텍스트는 말한다.
기성세대는 ‘돈’과 ‘가족’을 넘어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회의 최소 단위인 남자와 여자가 만났을 때 섹스만 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남녀가 서로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들 모두 기존의 교환 게임을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관계로 뛰어들기에는 겁먹고 공허해 보인다. 그 점은 여성주의 담론도 자유롭지 않다. 메르스갤러리에서 살펴본 그들 언어는, 기존 경제체제와 헤게모니가 제시하는 공허한 평가가치를 대체로 수용한다.
![]() |
||
ⓒEPA 기성세대는 돈과 가족을 넘어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
이론과 경험적 연구는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짝짓기의 피상적이고 의존적인 교환 현상이 크게 두 가지에서 비롯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1)학력과 소득 사이의 불평등과 불균형 2)노동시장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현저한 기회 불평등.
이런 면에서 외견상 남녀 대립은 사회 구성원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은 채 개인을 소외시키고 굴종시키는 힘의 작동 원리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혐오 담론과 갈등은 근본적으로 자립 능력을 박탈당한 사람들 간의 상호 혐오이며, 이는 여성-남성의 대립 구도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 병리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한편, 컴퓨터가 제대로 분석해내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일베(남자)와 메갤(여자) 모두에서 좀 더 순수한 방식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쉬움의 행간을 읽어낼 수 있었으나, 컴퓨터의 알고리즘은 이를 통계물리학적 기준을 넘지 못한 노이즈로 걸러냈다. 하지만 유능한 데이터 분석가·사회과학자는 버려졌거나 외곽에 소외된 데이터의 잠재적 의미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노이즈로 주변화되어버린 사랑의 가치는 무엇일까. 아이가 곤히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 땅에서 좀 더 나은 아버지로 버텨나갈 길을 고민한다.
30대 여성의 욕망 "혼자가 좋다!"

▲ 이홍 출판기획자(좌)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우)가 세 번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위즈덤하우스 : <잡담이 능력이다>와 비슷하게 남성 독자가 절반 이상이 되리라고 봤습니다. 대체로 자기 계발서 분야의 독자는 남성이 더 많으리라는 판단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40대 남성 독자를 주요 대상으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책은 초반부터 여성의 구매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 <혼자 있는 시간의 힘>과 자기 계발서 전체의 남녀 독자 비율. 여성의 비중이 더 큼을 알 수 있다. ⓒ프레시안
위즈덤하우스 : 처음부터 확실히 구매층을 남녀로 나눈 건 아닙니다. 이 책은 '혼자'를 강조한 기존의 여성적 책보다는 실질적 필요성을 조금 더 강조했습니다.저희가 처음 고려한 카피는 "무리 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였습니다. '성공'이라는 키워드의 힘이 여전히 조금 있으리라고 봤습니다. 불황 시대고, 사람들은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성공의 가치를 얻고자 하는 욕구도 있으리라고 봤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주요 독자 타깃을 40대 남성으로 잡았습니다.실제로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반응하자,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이메일, 소셜 계정 등을 통해 누리꾼이 자발적으로 그 제품을 홍보하도록 만드는 기법)을 실시할 때 남성과 여성에게 선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남성을 타깃으로 할 때는 '성공'을, 여성을 대상으로는 '고독'이나 '외로움'의 키워드를 보다 활용해 페이스북 등에 알렸습니다.
위즈덤하우스 : 자체적으로 확보한 높은 수준의 자료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서점 등) 유통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고 후 어떤 경로를 통해서 독자가 책을 샀는지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싶지만 어려움이 많습니다.
위즈덤하우스 : 온·오프라인 카페를 운영하고, 출판사 블로그 등을 운영하면서 소수의 독자 데이터는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저희 출판사의 충성 독자이지, 대중적 지표가 되어 주실 독자는 아닙니다.이분들의 의견을 반영해 책의 제목이나 내용을 만들어보기도 합니다만, 오히려 실패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의견이 저희와 너무 같습니다. (웃음)
위즈덤하우스 : 해당 자료는 없습니다.
위즈덤하우스 : 기존 자기 계발서의 특성인 성공의 욕구, 발전 욕구를 자극하고자 하는 생각을 쉽게 버리긴 힘듭니다. 그래서 저희는 책의 두 번째 카피로 '혼자 있는 시간에 인생의 기회가 온다'를 뽑았습니다.

▲ 장은수 "저자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책 많이 읽고, 공부 많이 하라는 겁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위즈덤하우스 :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나온 제목입니다.

▲ 이홍 "좋은 제목은 그 안에 책의 모든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위즈덤하우스 : 초기 일주일간 독자 반응을 본 후,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팝업 광고를 띄워 홍보했습니다. 띄우자마자 바로 반응이 왔습니다.
위즈덤하우스 : 초기에 페이스북을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을 꾸준히 실시했습니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자주 보는 시간대인 밤 10시에 맞춰, 매일 담당자가 관련 이미지를 올렸습니다.이와 더불어 페이스북 광고 상품을 활용했습니다. 페이스북 내에서 구매하기가 가능해졌죠. 이를 이용하는 독자를 분석해서 8월 둘째, 셋째 주부터 모바일 광고를 집행했습니다. 그리고 8월 둘째 주부터는 JTBC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출판물 광고를 시작했습니다.주요 타깃은 모두 혼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혼자 있을 만한 시간대에 광고를 집중했고, 페이스북에서는 레고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레고 역시 혼자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취미니까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프레시안
위즈덤하우스 : 책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한겨레>에 '아이들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희도 욕심이 납니다. 앞서 두 분이 말씀하신 2차 시장, 즉 기업, 공공 도서관에서 혼자 있는 시간의 의미를 고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회, 문화,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이 자선단체는 아니잖아? - ‘승리자가 옳은’ 사회는 정당한가? (0) | 2015.10.01 |
---|---|
덕후가 추천하는 ‘극한 와식’ 명절 가이드 (0) | 2015.09.26 |
'헬조선', '일베'와는 다르다 (0) | 2015.09.16 |
어떤 ‘페이’로 결제해드릴까요 (0) | 2015.09.15 |
"나는 창비도 삼성도 그릴 수 없었다" (0) | 2015.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