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한반도 극적 반전, 국내 정치용? - 박근혜 말 바꾸기, 긴장 속의 한반도 구했다!

일취월장7 2015. 8. 26. 16:49

한반도 극적 반전, 국내 정치용?

[한반도브리핑] 남북 고위급 회담 이후 더 불안해진 한반도
 
8월 25일 오전 2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남북 공동 보도문을 발표하며 북한이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 있는 자세가 북한과 회담에서 승리를 가져왔다는 식의 말도 나돌았다. 반면에 이번 회담에 참석한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조선중앙TV에서 "(남한이)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이라고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남북합의, 긴장완화인가? 국내정치용인가?

이번 모든 회담이 그렇듯이 이번 회담 합의도 쌍방의 입장이 반영된 윈윈(win-win) 회담의 성격이었다. 쟁점이 됐던 사과에 대해 표현한 것은 보도문 2항이다. 2항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한다"고 되어 있다.

▲ 남북 고위급접촉 공동 보도문 발표에 합의한 이후 접촉 장소였던 판문점 평화의 집 회담장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 ⓒ통일부


이 구절에서 주어는 '북측'이다. 그리고 '북측'이 꾸미는 것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것이다. 즉 부상을 시킨 주어가 '북측'이 아니다. 이 합의문에 따르면 어떤 원인에 의해 남측 군인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북측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이다. 문맥상으로 볼 때 지뢰도발로 남측 군인들의 부상을 입힌 주체가 '북측'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 국내의 보수세력들은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사과도 아니고 '유감 표명'을 한 것에 대해서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여론도 있다. 또 북한이 14.5mm 고사총과 76.2 mm 직사포를 발사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반면에 '북측'이라는 주체를 사용함으로써 주어가 없는 유체이탈 화법을 피했다는 것은 남한이 거둔 성과임이 분명하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관진 실장의 발표보다 3분 먼저 공동 보도문을 발표했다.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왜 아무런 도발도 하지 않은 북한 당국이 남한과 회담을 해서 유감을 표명했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해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TV에 출연해 '근거 없는 사건'이라고 해명한 것이다.

남북 합의를 이끌고 난 후 남과 북은 모두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합의문을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합의문 해석은 모두 양측의 국민들을 향한 것이다. 어떤 협상이든 합의 이후에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를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합의문 자체의 성격과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합의문은 분명 어느 일방이 유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쌍방의 이해를 조절한 최대공약수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남한 정부는 유감의 주체를 명시하였고, 북한은 유감 표명과 확성기방송 중단을 교환했다. 그렇기 때문에 윈윈(win-win)하는 협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지만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북한은 지난 8월 4일 지뢰 도발 이후 발생한 모든 사건을 부정하고 있다. 남한 정부는 모두 북한 소행이라고 밝혔지만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목함지뢰 폭발과 관련한 동영상을 확보하지 못했고 남쪽 야산에 떨어진 14.5mm 고사총 탄피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 떨어진 76.2mm 직사포탄의 궤적 추적을 하지 못했고, 낙탄지점과 탄피를 발견하지 못했다.

정황으로 볼 때 이 세 가지 도발은 북한의 소행이 명백하다. 군사분계선 남측 지역 추진철책 통문에서 터진 목함지뢰는 북한제이다. 지형상 폭우에 유실된 목함지뢰가 남측 철책 아래에 매설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14.5mm 고사총 한 발과 그 직후 발사된 76.2mm 직사포 3발은 북한이 '근거 없는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북한이 한 의도적 행위임이 분명하다. 상황의 흐름은 이러하다.

목함지뢰 사건(8.4)→ 확성기 방송 재개(8.10) → 북한 14.5mm 고사총 발사(8.20) → 북한 76.2 mm 직사포 발사(8.20) → 북한 김양건 대화제기(8.20) → 북한 48시간 이내 확성기 중단 요구(8.20) → 남한 155mm 자주포 29발 발사(8.20) → 북한 준전시상태 선포(8.20) → 박근혜 대통령 3군단 방문(8.21) → 북한 김양건 회담제의(8.21) → 한국 회담 역제의 및 수용(8.22) → 2+2 회담 시작 (8.22) → 합의(8.25)

이 흐름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8월 20일 두 차례의 포격 이후 남한의 대응사격이 있기도 전에 이미 김양건 대남비서의 대화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북한은 남한의 대응이 없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48시간이라는 시한을 정하고 남한을 압박했다. 만약 두 차례의 포격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한다면, 남한이 대응사격을 하기도 전에 김양건 비서의 제안을 통해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를 제시했던 상황이 뒤따를 수 없다.

▲ 북한이 운용중인 고사포(위)와 자주포 ⓒ연합뉴스


결국 북한이 8월 20일 두 차례의 포격으로 노리고자 하는 것은 확성기 방송의 중단이다. 확성기 방송에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 대한 비난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헌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는 ‘주체사상 체계확립 10대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원칙이 북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이른바 최고 존엄을 몸 바쳐 사수해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확성기 방송 자체가 가지는 황색 바람의 확산보다는 최고 존엄 모독에 목숨을 걸고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와 남한의 맞대응

확성기 방송 중단을 위해 북한이 선택한 것이 고사총 1발과 직사포 3발의 발사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포격 도발 이후 곧바로 김양건의 대화제기가 뒤따른 것이 이를 증명한다. 북한의 목적이 확성기 방송 중단이었기 때문에 북한은 확전을 원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사총은 연속발사를 할 수 있는 기관총인데 딱 한 발만 남측 지역 야산에 발사하였다. 이를 통해 남한의 군대를 긴장시킨 후 3발의 직사포를 쏘았다. 직사포는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 떨어졌다. 남한의 시설이나 인명피해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북한이 초저강도 도발을 감행하면서 대화제안을 병행한 것은 긴장 수위를 조절하면서 협상을 통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세를 보더라도 북한의 긴장 고조 전술이 확전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북한이 포격도발을 한 8월 20일 밤 유엔사는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유엔사는 연평도 포격 때는 대응을 묻는 한국 군부에 대해 이렇다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 작전통제권에 따른 교전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군대의 자위권에 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DMZ 관리는 유엔사의 권한이기 때문에 유엔사는 신속히 북한과 대화를 제의했다.

미국은 현 긴장상태를 방치하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때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유엔이 제재에 착수하고,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의 위협이 관리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서 임계점에 도달한다면 오바마 정부 임기말에 북한과 골치 아픈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9월 3일 전승절을 앞두고 한반도 긴장해소를 강하게 주문할 것이다. 이같은 국제정세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북한은 이같은 국제정세가 자신들의 긴장 고조 후 상황관리라는 화전양면전술 구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군사적 수단을 사용해 협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군사적 모험주의다. 군사적 위협과 긴장조성이 상시화될 수 있는 새로운 남북대결구조가 마련됐다. 물론 남북은 군사적 긴장을 이후의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하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한반도의 위기발생 가능성이 손쉬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평화의 길

북한은 협상을 유도하기 위해 군사적 수단 사용과 준전시상태 선포를 손바닥 뒤집 듯, 아무렇지 않게 쉽게 해버린다. 이러한 북한에 대해 그 의도를 파악하기 보다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자세로 전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남한의 대응이다. 이번 고위급접촉이 합의됐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더 불안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합의 이후 합의문을 편리하게 해석하면서 쌍방의 국민을 상대로 명분쌓기에 급급해 하는 남북당국의 태도도 불안정의 한 이유가 된다. 남북 양쪽 여론을 호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에 담긴 대화와 협상의 정신을 바탕으로 당국과 민간을 비롯한 다양한 남북대화와 교류를 진행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로 전환,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평화의 길이다.

 

 

박근혜 말 바꾸기, 긴장 속의 한반도 구했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아침에 한 말 저녁에 바꾼 박근혜, 잘했다"
이재호 기자 2015.08.26 16:57:50
 
남북이 44시간에 걸친 고위급접촉을 통해 최근 한반도에 조성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합의하고 6개 항으로 구성된 공동 보도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북한의 목함지뢰 폭발 사건과 관련, 북한의 명확한 사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이 보도문에서 유감 표명의 주체를 '북측'으로 명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도문이 나오기 전날인 24일 오전, 박 대통령은 북한의 지뢰 도발을 비롯한 도발 행위에 대한 사과,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고 이를 받아내는 것이 회담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보도문에는 이전과 유사한 북한의 '유체이탈' 화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 전 장관은 "만약 박 대통령이 아침에 언급했던 원칙을 지키려면 '북한은 자신들이 매설한 지뢰 폭발로 인해 부상자가 생긴 것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약속했다' 정도의 문구가 나왔어야 했다"며 "이는 결국 박 대통령이 오전에 지키려던 원칙을 심야에 스스로 바꿔버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원칙을 벗어나 아량 있는 자세로 북한과 협상에 임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긴장 고조와 군사적 충돌을 예방할 수 있었다"며 "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아량을 베풀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이번처럼 아침에 했던 이야기를 저녁에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은 남한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사고 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반면 남한은 사고 칠 수 있는 배짱은 없지만, 사고를 수습할 능력은 있다"며 "그렇다면 북한이 하는 것 봐가면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대의 행동에 따른 대응만 하고 있으면 남북관계 주도하기 어렵다. 어떤 분야에서 비교해봐도 우리가 북한보다는 위에 있는데, 왜 스스로 수준을 떨어뜨려서 북한과 일대일로 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남한 주도적인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남북이 장장 44시간의 고위급 접촉 끝에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뢰 폭발로 인해 남한 군인이 부상을 입었다는 점에 유감을 표명했는데요.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이 진심으로 사과한 것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정세현 : 과거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도발 사건을 수습할 때와 똑같은 수준으로 정리된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도발을 저질렀다고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996년 강릉 잠수정 침투 사건과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사건 때도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동해 상에서 불상사가 있었다는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 서해 상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 뭐 이런 정도였습니다. 마치 남 말 하듯이 말이죠.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겁니다.

실제 남북이 25일 합의한 공동 보도문에는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정부는 여기서 '북측은' 이라고 문장이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북한이 주체를 명시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지뢰 폭발'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면서 북한이 지뢰 도발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우선 문법적으로 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정부는 이 조항을 보고 "박근혜 대통령이 일관되게 유지했던 원칙이 통했다"는 식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에 굽히고 들어왔다는 식으로도 이야기하고 있구요. 그런데 박 대통령이 정말 원칙을 지킨 것이었다면 공동 보도문에 "북한은 자신들이 매설한 지뢰 폭발로 인해 부상자가 생긴 것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약속했다" 정도의 조항이 보도문에 들어갔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공동 보도문 발표 전날인 24일, 공개적으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 북한의 지뢰 도발을 비롯한 도발 행위에 대한 사과,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고 이를 받아내는 것이 회담의 목적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2시간 뒤에 나온 공동 보도문은 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결국 박 대통령이 오전에 지키려던 원칙을 심야에 스스로 바꿔버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바로 이 '원칙론'에서 벗어나 아량 있는 자세로 북한과 협상에 임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긴장 고조와 군사적 충돌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번 접촉은 박 대통령의 원칙론이 통했다는 데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박 대통령이 아량을 베풀었기 때문에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평가해야 합니다. 청와대가 이번 접촉에 대해 "박 대통령이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가기 위해 지뢰 도발에 대한 북한의 시인·사과,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부문에서 유연성을 발휘했고, 북한은 여기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박 대통령이 제시한 여러 사업들을 추진하자고 약속했다"라고 설명했다면 어땠을까요? 언제 어떤 경우든 원칙만 고집하는 '불통' 대통령을 넘어, 때로는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열린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또 현시점에서 북한이 우리 원칙론에 끌려왔다든지, 북한이 드디어 굴복했다든지 라는 여론을 조성하면 앞으로 계속 이런 문구 가지고 북한과 실랑이하게 돼있습니다. 그런 식의 평가보다는 우리가 아량있는 자세로 북한을 상대함으로써 앞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향후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의 유감 표명에 대해 정부는 "북한이 우리에게 사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과로 보기엔 미흡하다는 점을 인정할 경우, 자신의 지지기반인 국내 보수강경파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 같은데요.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박근혜 정부가 지지기반의 눈치를 보는 것과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을까요?

정세현 : 이게 본인이 본인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해서 국내 보수층의 눈치를 보고 대통령이 계속 보수 여론의 포로가 되면 남북관계에 기대할 것 없습니다. 이번 접촉에서처럼, 아침에 했던 이야기를 저녁에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막판에 아량을 베풀었더니 북한이 드디어 우리 품에 들어왔다고 솔직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결국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시한 협상 목표를 수정한 셈인데요. 물론 남북 간 군사충돌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급박한 현실적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당장의 임기응변에서 더 나아가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에 나서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즉, 임기 반환점을 돈 상태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을 남기겠다는 의도였을까요?

정세현 : 우선 원칙을 고수하다가 위기가 올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북한과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하고 이 국면을 넘겨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업적을 남기기 위해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이라면 남은 2년 반을 기대해볼 만 합니다. 제발 업적을 챙기기 바랍니다. 이번에 북에 대한 아량을 베풀었던 점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앞으로도 이런 자세로 북한과 하나씩 일을 추진해나간다면 남북관계도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 남북 고위급접촉 공동 보도문 발표에 합의한 이후 접촉 장소였던 판문점 평화의 집 회담장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 ⓒ통일부


프레시안 : 어쨌든 남한은 이번 접촉으로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일정 부분 사과를 받아 냈고 이산가족 상봉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원하는 바를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의 성과로 확성기 방송 중단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당면해서는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켰다는 성과가 있지만, 북한에는 숨어있는 성과가 있습니다. 바로 5.24조치와 연계된 천안함 문제입니다.

남한은 이번 접촉에서 북한이 지뢰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선례를 지난 2010년 발생한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가령 '2010년 봄 서해 상에서 잠수함으로 인해 또는 서해 상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많은 인명이 살상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는 식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대표단이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고 협의를 진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은 조만간 이런 식으로 5.24 조치 해제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남북이 합의한 당국 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도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보도문에는 "앞으로 계속하기로 하였으며" 라고 명시했는데요.

정세현 : '계속'이라는 단어를 보고 북한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잘 추정해봐야 합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계속하려면 일정한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즉, 북한의 의도는 이산가족 상봉이 인도적 사업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한 인도적 지원을 계속 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에게 쌀과 비료를 지원해달라는 겁니다.

노무현-김대중 정부 때 16회에 걸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이때 북한 정권의 책임자들이 인도주의자들이라서 이산가족 상봉이 지속된 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우리한테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이 인도적일 수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도주의라는 명목으로 추진되는 이산가족 상봉 현장이 북한에게는 남북 간 체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가슴 아프고 속상한 현장입니다. 이걸 상쇄할 수 있었던 것이 쌀과 비료였습니다. 북한은 남북 당국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쌀, 비료 지원을 상호 연관시키는 구도를 짜고 싶어 할 것입니다.

고위급접촉 합의,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나

프레시안 : 남북은 이번 접촉에서 당국회담 개최와 이산가족 상봉, 교류 확대 등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합의가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지금까지 행태를 봤을 때 북한이 이런 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모처럼 만에 무박 4일 협상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냈다면, 이것이 이행될 수 있도록 상황을 조성하고 끌고 나가는 것은 우리 책임이고 능력의 문제입니다.

북핵 문제를 돌이켜보면, 이 문제의 책임 당사자 중 하나인 미국이 사사건건 철저한 일대일 상호주의를 견지했기 때문에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합의 이후에 남한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니까 대범하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북 인도적 지원도 넉넉하게 하고, 금강산 관광도 재개해서 북한이 남한과 경제·사회·문화적 교류 협력을 포기할 수 없도록 판을 짜야 합니다. 이후에 정치·군사적 상황을 풀어나가는 겁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북한 '선(先)행동론'과 같은 프레임을 남북관계에 적용하면 관계 개선은 어려워집니다. 북한이 하는거 봐가면서 지원해주겠다, 경제협력 속도 조절하겠다는 식의 북한 선행동론보다는, 남북관계만큼은 남한이 선도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사업을 추진하면 북한은 분명 협조적으로 나올 것입니다. 특히 북한에게 남북 간 합의 사항을 이행해 나가면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북한은 사고 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반면 남한은 사고 칠 수 있는 배짱은 없지만, 사고를 수습할 능력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하는 것 봐가면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남한이 상황을 주도하고 선도해나간다는 자세를 가지고 합의 이행을 위해 필요한 여건을 우리가 사전에 주도적으로 조성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북한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묶어 놓기 위해서라도 여건 조성이 중요합니다.

사실 이번 접촉만 해도 북한이 긴장을 한껏 고조시킨 이후에 대화를 제의했고, 우리가 이를 수긍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북한의 페이스에 끌려 들어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의 행동에 따른 대응만 하고 있으면 남북관계 주도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 큰 그림을 그려놓고 그 정책 기조하에서 구체적인 전략·전술을 가지고 북한을 상대해야 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비교해봐도 우리가 북한보다는 위에 있는데, 왜 스스로 수준을 떨어뜨려서 북한과 일대일로 놀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대로 이번에 고위급 접촉에 이르는 과정만 보더라도 결국 북한이 남한을 대화의 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끌려나간 남한 정부가 선도론의 입장에서 "지금부터 남북관계 잘해보자"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인지 의문입니다.

정세현 : 물론 이번에는 끌려나간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합의 이후에는 상황을 주도해야겠다는 자세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번 공동 보도문 1항에 명시한 남북 당국 회담을 정례화해야 합니다. 과거 장관급 회담 격으로 당국 회담을 복원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고 가장 적당한 방안입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10.4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 회담을 총리급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런데 남북 총리 모두 남북관계보다는 경제 분야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총리급 회담이 있고 그 밑에 장관급 회담을 여러 개 만들겠다는 계획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기적 회담은 장관급으로 가져가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이번 접촉의 경우 군사적인 충돌 위험이 있었고 군사·안보문제였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회담 수석대표로 나온 것이지만 이는 특수하고 일회적인 경우입니다. 이후에 이뤄질 정기적인 당국 회담은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가 돼서 회담을 책임지고 끌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회담 수석대표의 '격'(格)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수 있습니다. 지난 2013년 장관급 회담인 당국 회담을 하려다가 중간에 이 문제 때문에 엎어지지 않았습니까? 남한은 통일부 장관의 카운터파트로 통일전선부장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북한은 그렇게 못하겠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무산됐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통전부장과 통일부 장관이 맞는 짝은 아닙니다. 남북 정부 구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 통일부 장관이 통전부장을 만나겠다고 하면 북한에서는 통일부 장관이 아니라 국정원장 나오라고 받아칠 겁니다. 통전부장은 대남 공작 업무도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통전부장은 당 비서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으로 따지면 부총리급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부 장관과는 소위 '급'이 맞지 않는 겁니다.

통전부 산하에는 영역별로 다양한 단체가 있습니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모자는 여러 개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우리의 통일부와 같은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조평통 당국자들과 회담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굳이 안된다고 통전부장을 나오라고 하니, 북한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번 고위급접촉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마주 앉으면서 일부에서는 통일부-통일전선부 라인이 부활된 것이냐는 분석도 내놓았던데, 이는 좀 지나친 해석입니다. 김양건 부장이 고위급접촉에 나오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이러한 해석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김양건 부장이 당 중앙위원회 비서 명의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회담을 제의했습니다. 그런데 남한은 국가안보실장의 카운터파트는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라면서, 총정치국장이 회담에 나오라고 역제의를 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황병서 총정치국장만 내보낼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김양건 부장을 옆에 붙여놓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려면 남한과 모양새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통일부 장관도 나오라고 다시 제의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향후 통일전선부-통일부의 단독회담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과 같은 2+2 접촉 형태를 계속 끌고 갈 것이 아니라면 통일부 장관과 조평통 서기국장, 또는 내각 책임참사의 모자를 쓰고 나오는 것을 인정해주고 장관급 회담을 당국 회담으로 정례화시켜야 합니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조평통이 당 외곽 단체라면서 우리의 장관과 만날 '급'은 아니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지난 1990년 9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개최했던 남북 총리급 회담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 7명 중에 2명이 조평통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하는 이야기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남북 모두 어렵게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것이라면 이러한 형식 논리보다는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 방안을 찾는데 더 힘을 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어차피 북한은 누가 회담 대표로 나오든 간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결심해야 합니다. 누가 마이크를 잡고 있든, 설사 통전부장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정권 가지고 있는 사람이 회담에 나와야 한다면, 김정은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프레시안 : 그런데 사실 이번 남북 고위급접촉은 지뢰 폭발과 포사격으로 촉발됐는데요. 그렇다면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군사회담을 열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세현 :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군사 회담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남북한 간에 군사적 긴장을 해소해야 서로가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먼저 조성돼야 군사회담이 성사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있었던 국방 장관 회담도 그랬습니다. 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면 이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나오게 됩니다. 이럴 때 군사회담을 제안했더니 북한은 바로 받았습니다. 즉, 군사 회담을 열면 기존의 교류 협력이 더 활성화되고 남북 체제 모두 여러 가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군사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고 실제 합의에도 도달할 수 있습니다.

▲ 지난 2010년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조치의 일환으로 대북 심리전 재개를 결정했다. 사진은 당시 중동부전선을 지키는 백두산부대 최전방 GOP 장병들이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장성급 회담입니다. 당시 회담에서 서해 상에서 남북 함정 간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상호 협력, 무선 교신 등이 합의됐습니다. 이후 군사 실무 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는 것까지 합의했습니다. 이처럼 군사적 문제에 대해 원활한 협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남한에 협조하지 않으면 쌀·비료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북한 군부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이번 접촉 이후에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구요.

정세현 : 정상 차원에서 큰 합의를 하고 이를 아래로 내리는 방식도 나쁘진 않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이런 방식의 접근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북한은 '대통로', 즉 정상회담을 열어서 새 판을 짜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남한은 민생·환경·문화적인 분야의 교류와 접촉을 하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길을 열어가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남북 간 화해 협력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다가 나중에 정상회담, 정치·군사적 회담까지 이어가자는 입장입니다. 반면 북한은 전통적으로 일괄적인 타결, 정치·군사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 남한은 70년대 기능주의적인 접근을 이야기했고,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는 1998년부터 대대적으로 민간 교류를 활성화시켰습니다. 북한이 남한에 품고 있는 저항감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후 북한이 남한과 교류협력을 하는 것이 득이 된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 때 정상회담이라는 정치적인 접근을 이뤄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러한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북한의 이번 도발이 한국과 중국을 이간질하기 위한 시도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9월 3일로 예정된 중국의 세계 2차대전 전승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건데요

정세현 : 만약 북한이 그럴 생각이었다면 계속 버텨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북한은 우리보다 먼저 현 상황에 대해 대화하자고 제의했고, 고위급접촉을 통해 우리와 합의도 이끌어냈습니다.

북한의 목함 지뢰가 폭발한 것이 지난 4일입니다. 9월 3일까지는 한 달이나 남았는데, 그걸 내다보고 긴장을 조성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정말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이번 전승절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한반도에 군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중국이 이걸 그냥 보고만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판문점 합의의 진짜 주인공은 펜타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박근혜 정부, 유연하게 대처한 진짜 이유
 
8.25 판문점 합의로 일단 전쟁 위기를 넘겼다. 참 잘 된 일이다. 남북 당국 모두가 진지하게 노력했다.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을 일이다. 판문점-서울과 판문점-평양 사이의 핫라인은 지난 22일과 23일, 그리고 24일 몹시 붐볐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판문점-평양만 바빴을까. 미국 발 뉴스는 워싱턴도 덩달아 몹시 바빴음을 알려준다. 물론 워싱턴이 동맹국 남한을 지원하기 위해서만 바빴던 건 아닌 것 같다.

"확실히 그들(북한)은 하와이나 태평양의 미국 시설물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a missile)을 갖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바다."

마크 웰시 미국 공군참모총장이 미국 공군 주간지 <에어 포스 타임즈 Air Force Times>에 말한 내용이다. 기사에서 웰시 총장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 능력을 걱정하는데, 물론 남한이 아닌 미국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이다.

인터넷 기사가 올라간 시간은 워싱턴 시각으로 8월 24일(월요일) 저녁 9시 16분, 서울 시각 8월 25일(화요일) 아침 10시16분이었다. 9시간 전인 한국 시간 25일(화요일) 새벽 0시 55분, 워싱턴 시간 8월 24일(월요일) 오전 11시 55분에 판문점 합의가 이뤄졌다.

물론 미국 군부의 걱정은 남북 합의로 상황이 종료된 이후 아홉 시간 동안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지난주부터 이어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상태, 특히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인공위성과 첩보망을 통해 확인하면서 생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매체 <CNN>의 펜타곤 (미국 국방부) 담당기자 바바라 스타의 기사도 흥미롭다. 기사는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부분적인 병력 동원이 펜타곤을 깜짝 놀라게 했고, 그 결과 미국의 고위 지휘관들은 북한의 전쟁 개시 징후가 있을 경우 남한 방어를 위한 미국의 전쟁 계획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전했다.

기존 전쟁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말은 새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계획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새 것을 만들려는 욕구가 생긴다. 8월 25일 새벽 1시에 이뤄진 판문점 합의 전에 미국 국방부가 이미 한반도 전쟁 계획 재검토에 나선 것은 전시 작전 지휘권을 청와대가 아닌 백악관이 보유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판문점 합의 직후인 홍콩 시간 8월 25일 02시 46분(한국 시간 03시 46분)에 보강된 바바라 스타의 <CNN> 기사에 따르면, 미국 당국자들은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김정은이 남한의 선전용(propaganda) 확성기 중단의 최종 시한을 정한 이후 북한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고 밝혔다.

북한의 예상치 못한 방식의 군사력 증강에 놀란 미국 군부는 자신들끼리 긴급 논의를 연이어 진행했으며, 남한 군부와도 전쟁 계획을 상의했다. 또한 남한 정부를 향해 위기를 고조시키지 말고 상황을 진정시키라고 요구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 미사일의 타격 능력과 더불어 미국을 특히 놀라게 한 것은 북한 해군 함정과 잠수함의 움직임이었다. 미국 국방부의 한 관리는 "전례가 없다는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이것은 그들(북한) 해군에게서 지금껏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고 <CNN>에 말했다.

미국 군부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B-52 폭격기를 출격시키려던 계획을 취소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신호를 평양에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8.25 합의 이전에 한미연합훈련은 이미 중단됐던 것이다.

22일부터 25일까지 43시간 동안 진행된 남북 회담의 주인공이 김관진-홍용표 팀을 지휘한 박근혜 대통령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외신이 들려주는 펜타곤의 급박한 움직임은 또 다른 주인공, 즉 오바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가 8.25 판문점 합의의 실질적 배후였음을 암시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남한 정부, 그리고 서청원 의원 등 새누리당의 친박 핵심들이 북한이 표명한 유감을 사과로 받아들인다면서 재발방지 문구가 없는 데도 '전례 없이' 유연하게 대처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음 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또한 유엔 창립 70주년이자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9월 28일 오마바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유엔총회에서 연설한다. 이들이 논의할 '신형대국 관계'에 한반도 정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장기판에서 8.25 판문점 합의를 전후한 한반도 정세는 어떤 의미를 차지하게 될까.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