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희호 방북 때 '박근혜 메시지' 기대"
[정세현의 정세토크] 이희호 방북, 남북관계 반전 마지막 기회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방북 일정이 8월 5일로 결정됐다. 하지만 북한은 몇몇 남한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으며 방북이 '허사'가 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은 16일에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열자는 데 합의하며 1년 만에 회담 테이블에 나오라는 남한의 요구에 호응해왔다.
북한이 다소 엇갈리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관련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 이사장의 방북으로 남북관계를 잘 풀어보자는 신호를 북한이 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16일에 공동위를 시작하면 광복 70주년인 8.15 전까지 밀고 당기면서 양측이 접촉할 시간이 있다"며 "북한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남한 정부의 움직임이나 반응을 살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이사장의 방북 일자가 8월 5일인 것도 이같은 속내가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이 여사 방북을 통해 8.15를 계기로 북한이 남북 간에 뭔가를 해보자는 사인을 준 셈"이라면서 "그런데 이건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남한에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메시지를 보내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이 이사장 방북을 남북관계 개선의 중대한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박근혜 정부가 이 타이밍을 활용하지 못한 채 이 여사 방북을 그저 단순한 방문쯤으로 취급하고 기계적으로 대처한다면 임기 후반 남북관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번 기회에 주원문 씨를 비롯해서 김국기, 최춘길, 김정욱 씨 모두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이 여사 방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방북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이사장의 방북을 협의했던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의 대변인이 8일 남한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으면서 방북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다음날인 9일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열자는 남한의 제안에 1년 만에 호응해 왔습니다. 북한의 메시지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데 의도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북한이 이희호 여사 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잘 풀어보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6일 개성공단 공동위에 응하겠다는 것도, 지난해 12월부터 문제가 됐던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이긴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남쪽에 주는 일종의 시그널이기도 합니다.
16일에 공동위를 시작하면 광복 70주년인 8.15전까지 밀고 당기고 하면서 양측이 접촉할 시간이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남한 정부의 움직임이나 반응을 살필 겁니다. 그러면서 8.15 때 기대할 만한 것이 있는지를 가늠해볼 것입니다.
여기에 이희호 여사 방북은 8.15를 열흘 앞둔 8월 5일로 잡혀 있습니다. 이 날짜가 의미하는 바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여사 측은 7월에 방북하기를 원했지만 북한의 내부 일정상 7월 방북이 어려웠을 겁니다. 지난 8일이 김일성 사망 21주기였고 오는 19일에는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27일은 북한이 한국전쟁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는 날입니다.
하지만 사실 북한이 7월에 이희호 여사를 초청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3박 4일의 일정이기 때문에 8월로 넘기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친서를 통해 이 여사에게 좋은 계절에 오라고 했습니다. 8월 초순은 중복에서 말복 사이로 가장 더울 때인데, 이게 좋은 계절입니까?
이 여사는 원래 5월 방북을 타진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군사 훈련 때문에 시기가 좋지 않다고 했죠. 장마 중에도 해 뜰 날 있다고, 남북 간에 험한 말이 좀 오간다고 해도 이 여사 만큼은 김 제1위원장이 약속한 대로 좋은 계절에 다녀올 수 있음에도 북한은 5월 방문에 끝내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날짜가 이렇게 나온 데에는 북한이 8.15를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사 방북을 통해 8.15를 계기로 북한이 남북 간에 뭔가를 해보자는 사인을 준 셈입니다. 그런데 이건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에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메시지를 보내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부가 8.15 열흘 전에 방북하는 이희호 여사한테 문서나 친서를 들려 보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여사의 수행원이나 관계자들이 남한 정부의 메시지를 들고 오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결국 북한의 이런 행보는 행간을 읽어내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잘해보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이 여사의 방북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잘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억류돼있는 주원문 씨를 인터뷰한 것도 북한이 나름의 포석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 씨는 인터뷰에서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길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건 남한이든 미국이든 북한에 올라와서 잘 이야기하면 돌려보내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지난 6.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 기념 행사가 무산되는 것을 보니 북한이 광복 70주년에 맞춰 이희호 이사장을 이용해 대외적인 선전 효과를 노리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북한에 이용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인데요.
정세현 : 북한이 그런 계산을 전혀 안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식 방북 일정이 8.15를 열흘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선전 효과를 노리기에는 시간이 살짝 애매합니다. 예를 들어 이 여사가 8.15 직전에 북한을 방문해서 대규모 군중집회 같은 곳에 참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요.
이 여사가 북한에 이용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것보다 박근혜 정부가 이번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지는 않을지 염려됩니다. 이번 기회에 주원문 씨를 비롯해서 김국기, 최춘길, 김정욱 씨 모두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이 여사 방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여사가 이들을 데리고 나오면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될 수 있는데요.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과감한 시도를 통해 이 여사 방북을 남북관계 개선의 중대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이 타이밍을 활용하지 못한 채 이 여사 방북을 그저 단순한 방문쯤으로 취급하고 기계적으로 대처한다면 임기 후반 남북관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통일준비위원회 집중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이 보건 의료 협력을 하겠다고 했다는데 이를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좋은 카드입니다. 이 여사가 억류자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지원만 잘해주면 30% 초반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지지율도 올릴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보더라도 북한과 관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이제 뻔한 수준입니다. 남한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소위 '북한 특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중소기업이 개성공단에 진출해서 돈을 벌게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물꼬만 조금 터주면 그리스 채무 문제, 중국 증시 등등 세계 경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를 비껴갈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북한과 관계개선이 우리 경제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5.24조치 풀고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길만 열어두면 중소기업에서 먼저 살아나서 고용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 특수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집권 후반부의 남북관계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1970년대 초 닉슨 대통령은 중국, 소련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 등 해외에 너무 많은 군사 개입을 하다 보니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무역적자, 재정적자가 커진 것입니다. 게다가 군사 개입이 실패하면서 미국의 국제적 위상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미·중 화해, 미·소 간 데탕트 등을 실현시킨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외교적 지위를 회복하고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닉슨이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련, 중국과 화해를 해도 의심받지 않을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도 닉슨 대통령과 같은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희호 방북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남북 여전히 '냉랭'
프레시안 :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희호 이사장의 방북이 성사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북관계의 긴장과 갈등 요인도 존재합니다. 북한이 실제로 언론 보도를 핑계로 이 이사장의 방북이 '허사'가 될 수 있다면서 엄포를 놓기도 했구요.
정세현 : 북한이 마음을 접을 만한 요인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이희호 여사 방북을 부정적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거나 대통령 또는 고위 관료들이 북한을 자극할만한 돌출 발언을 할 수도 있죠.
게다가 최근에 민간단체에서 대북 전단을 또 날려보내지 않았습니까? 정부는 헌법상 보장돼있는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면서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9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한 윤병세 장관은 올해 하반기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데 이 기회에 북한 문제에 관한 중요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합의'는 대북 압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5월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는 서울에서 만나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권 문제를 이야기했구요. 인권 문제로 압박을 해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도록 한다는 건데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논리입니다. 압박을 위한 압박일 뿐이지요. 정부가 최근 독자적 대북제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압박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종합했을 때 지금은 분명 이희호 여사가 방북하기에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위기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경제적인 이유든, 정권의 지지율 차원이든 간에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기회는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이나 중국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남한에서는 북한 고위 관료 탈북설, 북한 내부 관료 총살설 등 북한을 자극할만한 이슈들만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탈북 인사가 있다는 것을 언급한 이후로 관련 보도도 많아졌고 정부에서도 북한 내부의 숙청이나 처형을 언급하는 고위 관료들이 많습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까지 나서서 북한 내부 이야기를 할 정도입니다.
정세현 : 윤 장관이 관훈토론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기자들한테 설사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북한 내부 문제는 통일부에 문의하라고 했어야 합니다. 물론 6자회담이 외교부의 소관이지만, 주무부처도 아닌데 70명이 처형됐네, 김정일 때보다 10배가 많네 등등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부처의 주요 업무에 간섭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통일부 장관이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본 내부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면 외교부 장관은 가만히 있을 겁니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이 정부 내에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희망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정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원하는 대로 해석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에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 겪었던 일이 있습니다. 당시 평양 대동강 남쪽에 있는 외교단지에 반(反) 김정일 삐라가 뿌려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독일 <한델스 블라트>라는 신문이 보도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대신해서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했는데, 다른 수석실에서 이 보도를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수석비서관들이 눈이 커지면서 빨리 대통령에게 보고하자고 하더군요. 드디어 북한 안에서 들고 일어나고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 저는 언론 보도만 나왔고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니 대북 심리전을 하는 쪽에 먼저 알아보고 보고하는 것이 어떠냐고 건의했습니다. 그쪽에서는 기록도 있으니까 확인해보고 정확한 보고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서관들은 "이제 (북한에서도) 이런 것 나올 때 됐어"라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날 오찬 행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평양에서 이런 삐라가 발견된 것을 보면 북한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죠.
김영삼 정부는 대통령이 북한의 붕괴를 믿고 있었습니다. 북한 붕괴론이 힘을 발휘하던 때니까 붕괴를 믿고 있던 사람들은 이 언론 보도가 붕괴를 뒷받침하는 물증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 삐라는 북한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북한 붕괴로 방향을 잡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면 이런 참사가 발생하는 겁니다. 북한 붕괴를 믿든 체제 존속을 믿든 간에 정보는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수를 제대로 놓을 수 있는 겁니다.
북한이 다소 엇갈리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관련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 이사장의 방북으로 남북관계를 잘 풀어보자는 신호를 북한이 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16일에 공동위를 시작하면 광복 70주년인 8.15 전까지 밀고 당기면서 양측이 접촉할 시간이 있다"며 "북한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남한 정부의 움직임이나 반응을 살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이사장의 방북 일자가 8월 5일인 것도 이같은 속내가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이 여사 방북을 통해 8.15를 계기로 북한이 남북 간에 뭔가를 해보자는 사인을 준 셈"이라면서 "그런데 이건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남한에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메시지를 보내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이 이사장 방북을 남북관계 개선의 중대한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박근혜 정부가 이 타이밍을 활용하지 못한 채 이 여사 방북을 그저 단순한 방문쯤으로 취급하고 기계적으로 대처한다면 임기 후반 남북관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번 기회에 주원문 씨를 비롯해서 김국기, 최춘길, 김정욱 씨 모두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이 여사 방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방북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이사장의 방북을 협의했던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의 대변인이 8일 남한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으면서 방북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다음날인 9일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열자는 남한의 제안에 1년 만에 호응해 왔습니다. 북한의 메시지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데 의도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북한이 이희호 여사 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잘 풀어보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6일 개성공단 공동위에 응하겠다는 것도, 지난해 12월부터 문제가 됐던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이긴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남쪽에 주는 일종의 시그널이기도 합니다.
16일에 공동위를 시작하면 광복 70주년인 8.15전까지 밀고 당기고 하면서 양측이 접촉할 시간이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남한 정부의 움직임이나 반응을 살필 겁니다. 그러면서 8.15 때 기대할 만한 것이 있는지를 가늠해볼 것입니다.
여기에 이희호 여사 방북은 8.15를 열흘 앞둔 8월 5일로 잡혀 있습니다. 이 날짜가 의미하는 바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여사 측은 7월에 방북하기를 원했지만 북한의 내부 일정상 7월 방북이 어려웠을 겁니다. 지난 8일이 김일성 사망 21주기였고 오는 19일에는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27일은 북한이 한국전쟁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는 날입니다.
하지만 사실 북한이 7월에 이희호 여사를 초청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3박 4일의 일정이기 때문에 8월로 넘기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친서를 통해 이 여사에게 좋은 계절에 오라고 했습니다. 8월 초순은 중복에서 말복 사이로 가장 더울 때인데, 이게 좋은 계절입니까?
이 여사는 원래 5월 방북을 타진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군사 훈련 때문에 시기가 좋지 않다고 했죠. 장마 중에도 해 뜰 날 있다고, 남북 간에 험한 말이 좀 오간다고 해도 이 여사 만큼은 김 제1위원장이 약속한 대로 좋은 계절에 다녀올 수 있음에도 북한은 5월 방문에 끝내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날짜가 이렇게 나온 데에는 북한이 8.15를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사 방북을 통해 8.15를 계기로 북한이 남북 간에 뭔가를 해보자는 사인을 준 셈입니다. 그런데 이건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에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메시지를 보내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부가 8.15 열흘 전에 방북하는 이희호 여사한테 문서나 친서를 들려 보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여사의 수행원이나 관계자들이 남한 정부의 메시지를 들고 오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결국 북한의 이런 행보는 행간을 읽어내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잘해보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이 여사의 방북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잘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억류돼있는 주원문 씨를 인터뷰한 것도 북한이 나름의 포석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 씨는 인터뷰에서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길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건 남한이든 미국이든 북한에 올라와서 잘 이야기하면 돌려보내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지난 6.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 기념 행사가 무산되는 것을 보니 북한이 광복 70주년에 맞춰 이희호 이사장을 이용해 대외적인 선전 효과를 노리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북한에 이용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인데요.
정세현 : 북한이 그런 계산을 전혀 안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식 방북 일정이 8.15를 열흘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선전 효과를 노리기에는 시간이 살짝 애매합니다. 예를 들어 이 여사가 8.15 직전에 북한을 방문해서 대규모 군중집회 같은 곳에 참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요.
이 여사가 북한에 이용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것보다 박근혜 정부가 이번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지는 않을지 염려됩니다. 이번 기회에 주원문 씨를 비롯해서 김국기, 최춘길, 김정욱 씨 모두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이 여사 방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여사가 이들을 데리고 나오면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될 수 있는데요.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과감한 시도를 통해 이 여사 방북을 남북관계 개선의 중대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이 타이밍을 활용하지 못한 채 이 여사 방북을 그저 단순한 방문쯤으로 취급하고 기계적으로 대처한다면 임기 후반 남북관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통일준비위원회 집중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이 보건 의료 협력을 하겠다고 했다는데 이를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 지난해 12월 24일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이 김양건 북한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초청으로 개성을 방문했을 때 받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서를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박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좋은 카드입니다. 이 여사가 억류자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지원만 잘해주면 30% 초반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지지율도 올릴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보더라도 북한과 관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이제 뻔한 수준입니다. 남한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소위 '북한 특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중소기업이 개성공단에 진출해서 돈을 벌게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물꼬만 조금 터주면 그리스 채무 문제, 중국 증시 등등 세계 경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를 비껴갈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북한과 관계개선이 우리 경제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5.24조치 풀고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길만 열어두면 중소기업에서 먼저 살아나서 고용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 특수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집권 후반부의 남북관계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1970년대 초 닉슨 대통령은 중국, 소련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 등 해외에 너무 많은 군사 개입을 하다 보니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무역적자, 재정적자가 커진 것입니다. 게다가 군사 개입이 실패하면서 미국의 국제적 위상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미·중 화해, 미·소 간 데탕트 등을 실현시킨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외교적 지위를 회복하고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닉슨이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련, 중국과 화해를 해도 의심받지 않을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도 닉슨 대통령과 같은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희호 방북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남북 여전히 '냉랭'
프레시안 :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희호 이사장의 방북이 성사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북관계의 긴장과 갈등 요인도 존재합니다. 북한이 실제로 언론 보도를 핑계로 이 이사장의 방북이 '허사'가 될 수 있다면서 엄포를 놓기도 했구요.
정세현 : 북한이 마음을 접을 만한 요인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이희호 여사 방북을 부정적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거나 대통령 또는 고위 관료들이 북한을 자극할만한 돌출 발언을 할 수도 있죠.
게다가 최근에 민간단체에서 대북 전단을 또 날려보내지 않았습니까? 정부는 헌법상 보장돼있는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면서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9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한 윤병세 장관은 올해 하반기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데 이 기회에 북한 문제에 관한 중요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합의'는 대북 압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5월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는 서울에서 만나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권 문제를 이야기했구요. 인권 문제로 압박을 해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도록 한다는 건데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논리입니다. 압박을 위한 압박일 뿐이지요. 정부가 최근 독자적 대북제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압박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종합했을 때 지금은 분명 이희호 여사가 방북하기에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위기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경제적인 이유든, 정권의 지지율 차원이든 간에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기회는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이나 중국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남한에서는 북한 고위 관료 탈북설, 북한 내부 관료 총살설 등 북한을 자극할만한 이슈들만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탈북 인사가 있다는 것을 언급한 이후로 관련 보도도 많아졌고 정부에서도 북한 내부의 숙청이나 처형을 언급하는 고위 관료들이 많습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까지 나서서 북한 내부 이야기를 할 정도입니다.
정세현 : 윤 장관이 관훈토론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기자들한테 설사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북한 내부 문제는 통일부에 문의하라고 했어야 합니다. 물론 6자회담이 외교부의 소관이지만, 주무부처도 아닌데 70명이 처형됐네, 김정일 때보다 10배가 많네 등등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부처의 주요 업무에 간섭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통일부 장관이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본 내부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면 외교부 장관은 가만히 있을 겁니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이 정부 내에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희망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정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원하는 대로 해석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에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 겪었던 일이 있습니다. 당시 평양 대동강 남쪽에 있는 외교단지에 반(反) 김정일 삐라가 뿌려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독일 <한델스 블라트>라는 신문이 보도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대신해서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했는데, 다른 수석실에서 이 보도를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수석비서관들이 눈이 커지면서 빨리 대통령에게 보고하자고 하더군요. 드디어 북한 안에서 들고 일어나고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 저는 언론 보도만 나왔고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니 대북 심리전을 하는 쪽에 먼저 알아보고 보고하는 것이 어떠냐고 건의했습니다. 그쪽에서는 기록도 있으니까 확인해보고 정확한 보고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서관들은 "이제 (북한에서도) 이런 것 나올 때 됐어"라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날 오찬 행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평양에서 이런 삐라가 발견된 것을 보면 북한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죠.
김영삼 정부는 대통령이 북한의 붕괴를 믿고 있었습니다. 북한 붕괴론이 힘을 발휘하던 때니까 붕괴를 믿고 있던 사람들은 이 언론 보도가 붕괴를 뒷받침하는 물증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 삐라는 북한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북한 붕괴로 방향을 잡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면 이런 참사가 발생하는 겁니다. 북한 붕괴를 믿든 체제 존속을 믿든 간에 정보는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수를 제대로 놓을 수 있는 겁니다.
北 김정은, 박근혜 나가기만 기다린다?
[한반도 브리핑] '안'에서부터 무너진 정치, 망가지는 '밖'의 정치
우리는 흔히 정치를 '안'의 정치(국내 정치)와 '밖'의 정치(대외 정치)로 나눠서 생각한다. 그리고 둘 다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때로는 '밖'의 정치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대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국가가 자신과 국민의 생존과 안녕, 번영, 위신의 제고를 위해 국제 사회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 소프트 파워 등 각종 국력을 지혜롭게 행사하여 나라와 국민을 구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안'의 정치다. 내부 정치가 잘돼야 국력이 쌓이고 또 국력이 있어야 나라도, 국민도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의 정치는 '안'의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밖' 정치를 보면, 대표적으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가 무너졌다. 남북 관계는 더 이상 어떤 새로운 진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 있으며, 한일 관계는 일본으로부터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우리가 갖고 있는 외교 자산을 하나씩 잃어가고만 있는 모습이다. 한미 관계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든지 심각하게 터져 나올 수 있는 문제들이 가득하다.
우선 남북 관계를 보면, 현재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한미 양국에 대해 어떤 의미 있는 정책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며, 북한도 한미 양국을 마찬가지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한미 양국이 소위 '진정성'을 갖고 대화와 협상에 나온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한-미-일 3국과 관계가 끊어져 이들로부터 오는 여러 요구와 압력이 없어진 현재의 상황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핵과 미사일로 국제 정치판을 강력히 흔들어 자신들이 핵 보유국과 미사일 강국이라는 점을 기정사실로 한 후에, 그 방향에서 국제 정치판을 안정화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은은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질적으로 임기 제한이 없는 김정은이 느끼는 '시간'의 개념은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한미 양국의 지도자들이 갖는 개념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과 그의 가계를 공격하는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날리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막지 않으면서, 낮은 수위의 소위 '작은 통일'에 관련된 여러 제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금처럼 '상대방이 있는' 북한과 관계를 '상대방이 없는' 관계로 취급한다면, 남북관계의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대북 전단 날리기 허용이 상징하듯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또 그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면, 즉 지도자 차원의 높은 수위에서 남북 관계가 막히면, 낮은 차원에서의 '작은 통일' 관련 제안들이 의미를 갖기 힘들다.
한일 관계도 참담한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관계에서 역사교과서 개정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본의 근대 산업 시설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조선인 강제 노역 표기 문제에서도 뒤통수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일 외교의 경우 우리 정부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같은 편향된 가치를 추구하는 지도자와 소위 '정상 국가'를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그동안 '상대방이 있는' 관계인 한일 관계에 대해 마치 '상대방이 없는' 관계인 것처럼 취급해온 박근혜 정부의 비상식적인 외교 정책으로 우리는 여기서도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한편, 동맹국들을 동원하여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 안보·통상 체계를 만들어내려는 미국은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들의 군사적, 물질적 자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미국에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중요하다. 더구나 한미 관계에는 한국 정부가 미·중 양국 간 균형 외교 정책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감을 비롯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용인,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박근혜 정부의 대일 정책과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불만,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계획, 미국의 오산기지 실험실에 탄저균 반입과 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문제 등 다양한 시한폭탄들이 있다. 이것들은 지금은 박근혜 정부의 한미 동맹 협력 강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지만,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 국면이 시작되면 모두 폭발적인 이슈들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 정부 하에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 등 '밖'의 정치가 무너졌는가? 답은 간단하다. '안'의 정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안이든 밖이든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람이 무너지면, 즉 지도자에서부터 주변 핵심참모들, 핵심 국가기관 사이에서 공유되어야 할 핵심 가치와 추구해야 할 핵심 목표가 무너지면, '안'의 정치가 우선적으로 무너지고 '밖'의 정치도 자연히 무너지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이며, 일본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북한과 어떤 관계를 맺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다중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북한은 상호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 화해, 평화 정착, 통일을 이뤄나가야 할 파트너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궁극적으로 함께 협력하면서 살아가야 할 가장 근거리에 있는 이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이 모든 가치와 목표가 청와대와 정부의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무너졌다.
그동안 국정원이 '5163부대'라는 이름으로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까지 모두 도청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이탈리아 보안업체에서 구입하여 선거 때마다, 또 새로운 스마트폰 기기가 나올 때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해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맞지만, 연구용으로 갖고 있었고 국민들을 상대로 해킹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현 국면은 정부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상대로 해킹과 사찰행위를 하면서 그 동안 뼈대만 겨우 남은 한국의 민주 정치 체제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팎을 따질 것도 없이 국가와 민주정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이번 국정원의 대국민 해킹 사찰 사태를 보면서 지도자든 국민이든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무엇을 기대하는 어렵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상과 가치, 철학이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구성하고 있는 정부의 정체성과 이익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바탕 위에서 '안'의 정치가 바로 서고, 그에 따라 '밖'의 정치 또한 바로 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안'의 정치다. 내부 정치가 잘돼야 국력이 쌓이고 또 국력이 있어야 나라도, 국민도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의 정치는 '안'의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밖' 정치를 보면, 대표적으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가 무너졌다. 남북 관계는 더 이상 어떤 새로운 진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 있으며, 한일 관계는 일본으로부터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우리가 갖고 있는 외교 자산을 하나씩 잃어가고만 있는 모습이다. 한미 관계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든지 심각하게 터져 나올 수 있는 문제들이 가득하다.
우선 남북 관계를 보면, 현재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한미 양국에 대해 어떤 의미 있는 정책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며, 북한도 한미 양국을 마찬가지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한미 양국이 소위 '진정성'을 갖고 대화와 협상에 나온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한-미-일 3국과 관계가 끊어져 이들로부터 오는 여러 요구와 압력이 없어진 현재의 상황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핵과 미사일로 국제 정치판을 강력히 흔들어 자신들이 핵 보유국과 미사일 강국이라는 점을 기정사실로 한 후에, 그 방향에서 국제 정치판을 안정화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은은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질적으로 임기 제한이 없는 김정은이 느끼는 '시간'의 개념은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한미 양국의 지도자들이 갖는 개념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과 그의 가계를 공격하는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날리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막지 않으면서, 낮은 수위의 소위 '작은 통일'에 관련된 여러 제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금처럼 '상대방이 있는' 북한과 관계를 '상대방이 없는' 관계로 취급한다면, 남북관계의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대북 전단 날리기 허용이 상징하듯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또 그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면, 즉 지도자 차원의 높은 수위에서 남북 관계가 막히면, 낮은 차원에서의 '작은 통일' 관련 제안들이 의미를 갖기 힘들다.
한일 관계도 참담한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관계에서 역사교과서 개정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본의 근대 산업 시설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조선인 강제 노역 표기 문제에서도 뒤통수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군함도에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이 강제 노동을 했던 해저 탄광이 있으며 1974년 폐광돼 현재는 무인도다. ⓒ연합뉴스
물론 대일 외교의 경우 우리 정부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같은 편향된 가치를 추구하는 지도자와 소위 '정상 국가'를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그동안 '상대방이 있는' 관계인 한일 관계에 대해 마치 '상대방이 없는' 관계인 것처럼 취급해온 박근혜 정부의 비상식적인 외교 정책으로 우리는 여기서도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한편, 동맹국들을 동원하여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 안보·통상 체계를 만들어내려는 미국은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들의 군사적, 물질적 자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미국에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중요하다. 더구나 한미 관계에는 한국 정부가 미·중 양국 간 균형 외교 정책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감을 비롯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용인,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박근혜 정부의 대일 정책과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불만,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계획, 미국의 오산기지 실험실에 탄저균 반입과 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문제 등 다양한 시한폭탄들이 있다. 이것들은 지금은 박근혜 정부의 한미 동맹 협력 강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지만,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 국면이 시작되면 모두 폭발적인 이슈들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 정부 하에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 등 '밖'의 정치가 무너졌는가? 답은 간단하다. '안'의 정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안이든 밖이든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람이 무너지면, 즉 지도자에서부터 주변 핵심참모들, 핵심 국가기관 사이에서 공유되어야 할 핵심 가치와 추구해야 할 핵심 목표가 무너지면, '안'의 정치가 우선적으로 무너지고 '밖'의 정치도 자연히 무너지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이며, 일본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북한과 어떤 관계를 맺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다중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북한은 상호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 화해, 평화 정착, 통일을 이뤄나가야 할 파트너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궁극적으로 함께 협력하면서 살아가야 할 가장 근거리에 있는 이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이 모든 가치와 목표가 청와대와 정부의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무너졌다.
그동안 국정원이 '5163부대'라는 이름으로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까지 모두 도청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이탈리아 보안업체에서 구입하여 선거 때마다, 또 새로운 스마트폰 기기가 나올 때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해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맞지만, 연구용으로 갖고 있었고 국민들을 상대로 해킹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현 국면은 정부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상대로 해킹과 사찰행위를 하면서 그 동안 뼈대만 겨우 남은 한국의 민주 정치 체제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팎을 따질 것도 없이 국가와 민주정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이번 국정원의 대국민 해킹 사찰 사태를 보면서 지도자든 국민이든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무엇을 기대하는 어렵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상과 가치, 철학이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구성하고 있는 정부의 정체성과 이익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바탕 위에서 '안'의 정치가 바로 서고, 그에 따라 '밖'의 정치 또한 바로 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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