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메르스 확산으로 인한 경기 둔화 리스크 방역도 시급

일취월장7 2015. 6. 11. 11:37

메르스 확산으로 인한 경기 둔화 리스크 방역도 시급
배민근 조영무 | 2015.06.08

메르스(MERS; 중동 호흡기 증후군)는 높은 치사율 기록과 빠른 확산 속도,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으로 인해 200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유행한 그 어느 전염병보다 큰 파장을 우리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아울러 그 확산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쳐 국내 실물경기의 개선 흐름을 저해할 가능성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거시경제 정책을 포함한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불안심리의 과도한 확산을 막고 우리경제의 회복동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메르스(MERS-CoV; 중동 호흡기 증후군 코로나 바이러스) 국내확산의 조기 차단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질병확산에 대한 공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6월 첫 주 코스피 지수는 2% 넘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다른 주요국들보다 부진한 모양새다(<그림 1> 참조).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는 금융시장뿐 아니라 교육기관 휴업, 여가활동 감소 등 일상적 활동의 위축으로 나타나면서 실물경기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경제적 파장 이미 가시화, 지역사회 감염 여부가 분수령


일반적으로 전염병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게 감염, 치료 및 격리, 사망 등으로 인한 인적자원의 손실과 감염을 회피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활동의 위축에서 나타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1억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는 스페인 독감(1918~1919년)을 비롯한 과거의 대규모 전염병 사례에서는 인적자원의 직접적 피해가 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질병회피 노력이 유발하는 유·무형의 비용과 경제활동의 위축이 경제적 피해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최근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신종 전염병들의 경우 확산속도나 치사율 등에 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경제활동의 위축이 더 심할 수 있다.


6월 초 현재의 국내 메르스 발병 양상에 대해 질병관리본부는 ‘주의(Yellow)’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주의’ 단계는 해외에서 발병한 메르스가 국내로 유입되어 환자가 발생한 상황을 의미한다. 국내 유입 후 타 지역으로 전파가 이뤄질 경우 한 단계 위인 ‘경계(Orange)’로 격상된다. 현재 상황은 수도권에서 충청, 호남권까지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주의 단계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09년에 제시한 전염병 확산단계 분류에서 4단계와 5단계가 혼재된 상태로 판단되며, 머지 않아 ‘경계’ 단계로의 격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메르스 확산의 중대 분수령은 3차 감염이 만연하는 ‘지역사회 감염’ 여부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파악된 3차 감염자들의 잠복기(최대 2주 정도로 추정)가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6월 중순 이후의 발병 양상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의 변이 여부도 확인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 메르스는 최초 발병지인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다른 발병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치사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확산속도는 더욱 빠르다. 이 때문에 인체감염과 전파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두고 국내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과거 발생한 외래 전염병들보다 큰 파장 예상


이번 메르스 확산 사태가 우리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은 과거 발생한 다른 외래 전염병들의 사례에 비해 한층 클 것으로 판단된다. 비교적 높은 치사율 기록과 국내로 전파된 후 나타난 빠른 확산속도, 현재로서는 치료제가 전무하다는 점, 그리고 바이러스 변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공포와 두려움을 양산해내고 있다.


지난 2003년 발생한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질환)의 경우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전세계 8,273명의 감염자 가운데 775명이 사망함으로써 전파력도 강하고 치사율도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국내로 본격 확산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홍콩과의 교역 및 인적 이동이 소폭 둔화되는 정도를 제외하면 그 영향 또한 크지 않았다.


2013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출혈열(Ebola hemorrhagic fever)의 경우도 24,554명이 발병하고 10,111명이 사망해 40%가 넘는 치사율을 나타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발병 사례가 서아프리카 국가들에 국한되고 국내로는 아직 전파된 사례가 없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간헐적으로 발병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의 경우 인체감염이 대규모로 확산되면서 사망자가 발생한 사례는 아직 없다. 따라서 아직 인체감염 및 사람간 감염이 본격화된 단계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2009년 발생한 신종 플루(H1N1 Influenza A)의 경우에도 WHO가 대유행 경보를 발효하는 등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감염자 수에 비해 사망자 수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타미플루와 같은 대응약이 있다는 점이 차이점으로 평가된다(<표 1> 참조).


서비스 및 자영업에 부정적 영향, 중국으로부터의 관광객 유입도 급감


향후 사태가 비교적 조기에 진정된다 하더라도 최소 1개 분기 정도에 걸쳐서 경제 주체들의 심리 및 소비 활동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상당한 정도로 증폭돼 있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소비심리가 저하되면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활동의 둔화가 예상된다. 대중밀집 시설 등에 대한 외출을 자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외출, 외식, 여행, 레저 활동이 위축되면서 요식업, 숙박, 운송, 엔터테인먼트 등 업종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 재래시장 상인 등 취약 부문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현 메르스 사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급격히 확산된 최초의 사례로 인식되면서 충격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수년간 지속된 심각한 내수 위축에도 불구하고 외국관광객이 빠르게 늘면서 여가 관련 산업이나 소매업종은 어느 정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외국인 입국자의 60%를 차지하는 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 사람들은 과거 자국에서 직·간접적으로 사스를 경험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메르스 확산 사태에 대해서도 여타 국가 관광객들에 비해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여행계약을 취소하는 움직임이 이미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호텔, 여행 등 관련 업계의 매출 감소 또한 불가피해 보인다(<그림 2> 참조). 결국 우리 국민들의 소비심리 위축에 더해서 외국관광객 수요까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내수서비스 산업과 자영업 충격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회복 조짐에 찬물


앞에서 열거한 세계적인 전염병의 대유행 사례들은 대체로 경기가 호조세를 나타내던 때에 발생했다. 사스가 발생한 2003년과 조류 인플루엔자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확산된 2005년 모두 국내외 경제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신종플루가 창궐한 2009년 하반기는 리먼사태의 충격으로 추락했던 경기가 다시 빠르게 반등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신종플루에 따른 불안에도 수요는 꾸준한 확대추세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경제는 수출과 내수 부진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 경제의 활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수출위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통관 기준 수출 증가율은 올해 들어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5개월째 감소 폭이 점차 확대되어 5월에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0.9% 감소했다. 하반기 경기에 대해 다소나마 기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저유가, 저금리 등에 힘입어 최근 내수경기가 다소 호전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4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생산과 투자는 전월 대비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지만,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6%, 전년동월대비 4.9% 증가하며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비자심리지수가 올해 3월 101에서 5월 105로 높아진 가운데, 4월 카드승인금액이 전년동월대비 15.4% 증가하고, 주요 유통업체들의 4월과 5월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증가세를 유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최근의 경기 움직임을 감안할 때, 메르스의 확산은 경기 측면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소폭이나마 개선되던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다시 위축될 경우 취약한 국내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다시 소비확대의 불을 지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메르스 사태는 2분기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며 소비회복의 흐름을 꺾었다는 점에서 하반기 이후에도 부정적 영향이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역사회 감염 현실화시, 사스 발생 당시 홍콩과 유사한 충격


6월을 지나면서 추가 발병 사례가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국한되어 불안감이 진정된다면 그나마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려되는 바이러스 변이와 그로 인한 3차 감염의 대규모 확산 및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화된다면 우리경제는 대단히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질병관리본부의 위기 경보 수준 분류에서는 ‘경계’와 ‘심각(Red)’이 혼재된 상황에 해당한다. 사람간 전염이 일상생활의 공간에서도 널리 확산되면서 경제활동의 제약이 한층 심화되고, 막연했던 공포와 두려움, 회피 노력이 한층 뚜렷해지고 현실화되는 국면이다(<표 2> 참조).


과거 주요 인플루엔자의 유행 기간들은 대략 1년 전후였다. 홍콩 사스의 경우에도 집중적인 발병이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지속된 바 있다. 이처럼 확산기간이 길어질 경우 경제적 충격이 특정 업종이 아니라 내수 서비스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성장저하 추세가 길어질 수 있다. 지난 2003년 사스가 창궐하던 시기에 홍콩의 민간소비는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세가 1년 넘게 이어졌다. 특히 2003년 상반기에는 4% 넘게 큰 폭으로 감소했다(<그림 3>, <그림 4> 참조).


이러한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현실화될 경우, 외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 기피 또한 전면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사스 발생 당시, 홍콩을 방문하는 외국인 수(중국 제외)는 평소의 절반 이하인 20만명 내외로 줄었다. 그 여파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외국인 관광객 수도 일시적으로 전년 대비 40%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사스 사태의 중심이 홍콩 및 중국 남부였던 것과 달리 이번 메르스 사태의 경우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비중동 대규모 발병지이다. 게다가 최근 엔저로 인해 우리나라로 유입되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일본으로 발길을 돌리던 상황임을 감안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의 감소 폭 확대 및 그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과거 사스 발생 당시를 상회할 수 있다.


메르스 대유행시 공급능력 감소 본격화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WHO 등은 전염병 확산 양상에 있어 더 나쁜, 최악의 경우도 상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염병이 만연한 상태가 장기화하고, 국제적으로도 대유행 하면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 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피해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의 공급능력이 감소한다는 점이다. 인명피해가 커질 뿐만 아니라 조업일수 감소로 인한 생산 차질이 장기화되고,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 등이 전면 유보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다. 감염에 대한 공포로 인한 휴업 또는 부분 조업이 일상화되고, 사람들은 출근 등을 적극적으로 기피하게 된다. 이전 단계까지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주로 수요활동의 부진에 국한됐다면, 전염병의 대유행 단계에서는 공급활동도 함께 부진해지면서 생산의 급속한 위축에 직면하게 된다.


지난 2013년 말 서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다시 창궐하기 시작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최근 그 확산 속도가 줄었지만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2만 6천명 이상이 감염되어, 1만 1천명 이상이 사망한 바 있다. 지난해 기니, 라이베리아 경제의 성장률은 2013년의 2.3%와 8.7%에서 각각 0.4%, 0.5%로 주저앉았다(<그림 5> 참조).
이 경우 외국인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의 국내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외국에서 한국인에 대한 입국 심사가 강화되고 한국인 접촉 기피 및 한국산 제품에 대한 거부 현상까지 나타난다면 국내 기업들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메르스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확산되고 변종 바이러스의 계속적인 출현 등으로 인명 손실이 계속된다면 세계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는 가운데 교역이 위축되면서 경제의 충격이 가중될 수 있다.


소비 둔화로 인한 경기 하방 리스크에 대응할 필요성 높아져


향후 사태가 비교적 조기에 진정된다 하더라도 최소 1분기 정도에 걸쳐서 경제 주체들의 심리 및 소비 활동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감염자가 확대되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경제적 충격이 지속될 경우 수출 부진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내수마저 다시 둔화됨에 따라 경기 회복세가 크게 약화되거나 성장률이 하락할 수도 있다.


감염자 관리를 강화하고 방역을 강화함으로써 질병의 확산을 막고 예방하는 것이 급선무이겠지만, 이와 함께 우리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경제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 직후, 국가적 재난 상황을 맞아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급격히 악화되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8월에 가서야 금리가 인하되는 등 초기에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살아나는 듯 하던 경기가 다시 둔화되고 이후 상당 기간 미약한 경기 흐름이 이어진 경험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그림 6> 참조).


우선 메르스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관련 업종 및 업체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산업 및 금융 측면의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거시경제 정책 측면에서는 메르스 사태 이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되던 추가 금리 인하를 검토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현 시점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는 미시적 분석을 바탕으로 부실화 위험이 높은 계층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대출 심사, 금융감독당국의 관리 강화 등 미시적 수단으로 대응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와 소비, 투자 등 경제활동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금리정책은 높아지는 경기의 하방 리스크와 낮아진 물가상승률에 대응하여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금융완화 만으로 그 효과가 충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거나 시차가 존재하는 금융완화의 효과를 기다리기 전에 대응이 시급하다면 재정의 조기 집행 및 추가적인 재정 집행 등을 통한 재정의 역할 제고 방안 역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끝>

 

 

바이러스, '의사'가 아니라 '권력'이 싸워야

[창비 주간 논평] 메르스 대응, 왜 실패했나
 
'방역(防疫)'은 근대 국가의 핵심적 기능 중 하나다. 1849년 존 스노(John Snow)가 콜레라 예방을 위한 방법론을 개발하여 적용한 이후, 근대 권력은 깨끗한 식수의 공급, 하수 시설 개편 등 위생 개혁과 항생제, 백신 등 의학 혁신으로 '역병(疫病)'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대중에게 입증해 보였다. 이를 통해 주기적이고 상시적이었던 대중의 전염병 '공포'를 관리할 수 있었고, 근대 권력은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방역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권력이 우월성을 보이는 분야였다. 방역을 위해서 중앙 집권적 권력 행사, 방역 기관에 의한 정보 독점, 일사불란한 지휘·집행 체계의 운용,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제약 등의 수단이 사용되었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권력은 방역 대책에 능했다. 또한 방역은 '국민 국가' 개념, '국가 안보' 이념과 조응한다. 미국은 전통적 자유주의 국가이면서도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권력과 자원을 가진 방역 시스템을 운영한다. 생물학적 테러 등의 위험에 대비하여 국가 안보·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다.

국가의 기본인 방역조차 실패한 정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관리 대책에서 박근혜 정부는 실패했다. 대중의 공포를 해결하지 못했고, 질병의 확산을 막지 못했으며, 국가의 위신과 안전을 지켜내지도 못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정권이 자신의 주특기인 방역 영역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보수 언론이 연일 메르스 관련 소식을 전하며 우려를 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염병 예방 관리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영역이다. '의료'나 '의학'의 영역이기보다 자원 배분 및 권력 행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감염병의 전파와 확산은 불확실성이 크고, 개인의 행동으로 이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객관적 문제의 크기 및 심각성과 상관없이 대중적 공포를 동반한다. 그러므로 효과적 예방 관리를 위해서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신속하고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중의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수도 있으며,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공포를 관리해야 한다. 원칙에 따르되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취합·분석·종합함으로써 경우에 따라 예방 관리 대응의 큰 줄기를 바꿀 수 있는 실용주의도 필요하다. 정해진 매뉴얼이 있지만 매뉴얼에 빈 공간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채워나갈 판단력과 결단, 그리고 그로 인한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결의가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 예방관리와 관련하여 이러한 정치의 영역을 '기술적 합리성'을 내세운 '관료주의'와 '전문가'에게 내맡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이번에도 아무런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치를 하려 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그만의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정치가 사라졌고, 그 틈을 타 메르스는 기술적 합리성과 전문주의에 근거한 예측을 보기 좋게 뒤집으며 세를 넓혔다. 물론 메르스 확산의 1차적 원인은 국내에 처음 들어온 메르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 전반적으로 허술했던 병원 감염 관리 체계, 민간 의료에 내맡겨져 무정부성이 극에 달한 국내 보건의료 제도 등이다. 하지만 정치의 문제가 면책될 수는 없다.

어떤 대응이 필요했나

메르스는 불확실성이 매우 큰 바이러스다. 초기에 방역 당국은 기존 문헌 자료에 근거해 예방 관리 대책을 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치명률은 높지만 사망자는 주로 다른 질병 등으로 면역이 저하된 이들로 한정되며, '공기 감염'은 없고 감염력은 낮으므로 밀접 접촉자에 한해 격리·관찰하면 된다는 것이 기존 데이터에 근거한 예방 관리 대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원칙은 기존 데이터와 맞지 않는 현실상황이 발생했을 때 빨리 수정되어야 했다. 기존 데이터상 확률이 적었던, 2미터 이내 근접 접촉하지 않은 이들의 감염이 확인되었다. 병원이 주된 감염 경로로 추측되었고, '슈퍼(super) 전파자'를 비롯한 감염 의심자들이 방문한 병원이 여러 곳임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감염 관리 대책에 빠른 변화가 필요했다. 재빨리 병원 명단을 공개하고, 병원 등 밀폐 공간에서는 공기 감염에 준하는 감염 예방 관리 대책을 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변화는 속도, 넓이, 강도 면에서 신속하게, 광범위한 대상에 대해, 강도 높은 예방 관리 대책의 변화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방역 당국은 여러 차례 시기를 놓쳤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책임질 수 있는 이의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이를 미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앙 정부의 정치 공백 상태를 메우려는 시도를 했다. 선제적으로 행동하며 지방자치단체와의 정보 공유 및 공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는 감염인의 개인 행적을 공개하며 낙인 효과를 낳았다는 논란과, 메르스 방역에 있어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병원 명단 공개 등 감염 예방에 필요한 정보의 공유 및 공개는 중앙 정부가 먼저 했어야 했다. 논란이 되더라도 그 필요성을 설득하고 논란에 대응하는 것도 정부의 일이었다. 정부는 박원순 시장의 대응으로 병원 정보 공개에 따른 책임 부담은 덜었을지 모르나, 추가 감염 예방의 시기를 놓쳤고 정치적으로도 이니셔티브를 상실했다. 그 이후 서울시가 행한 대책이 메르스 방역에 실효성이 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적절한 시기에 정부 대책의 미비점을 드러내 정부가 다른 방식의 의사 결정을 하도록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있었을 뿐 같은 병실에 있지 않았는데도 메르스 감염으로 확진된 6번 환자 발생시, 즉시 평택성모병원의 이름을 공개하고 해당 시기 이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 전원에 대한 추적에 나섰어야 했다. 그게 5월 27일 즈음으로 추정되니 그랬더라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집단 감염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최소한 5월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하고 5월 30일 확진된 14번 환자의 존재가 인지된 후에는 바로 삼성서울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응급실을 방문한 이들에 대한 추적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행되지 못했고, 그에 따라 병원과 국민들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감염된 이들에 의한 추가 감염 가능성을 염려하게 되었다.

이대로 위기는 봉합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자. 메르스 관리를 위해 관료제나 전문주의가 아니라 '카리스마적 권력'이 필요했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초반부터 병원 정보를 다 공개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도 무시한 대책이 필요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전문적 지식을 원용하고 활용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소통적 권력, 민주주의적 권력, 인권을 존중하는 권력이었다.

국민을 믿고 정보를 공개하되 이로 인한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러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결단이 필요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고려한, 보다 소통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감염 관리 체계가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가장 잘해야 하고 잘할 수 있는 방역조차 책임지지 못한 보수 정권이라. 아마도 현 정권은 보수 세력 안으로부터의 내파(內破)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기근과 역병은 종종 민란을 불렀다.

 

 

“정부의 비밀주의가 사태 악화시켰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 정책을 조율하는 사회정책수석을 역임했다. 김 의원은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정부가 메르스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김동인 기자  |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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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승인 2015.06.11  08:59:44

 얄궂은 인연이다. 국회의원이 된 스승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제자의 ‘초동 대처 미흡’을 질책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의 스승이 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의료 정책통인 김용익 의원(전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이다.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줄곧 관련 정보 공개를 주장했던 김 의원은 인터뷰 내내 정부의 비밀주의와 권위주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의 긴급 브리핑을 어떻게 봤나?
메르스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가 너무나 축소 지향적이고 관료주의적이다. 같은 당 소속이라서가 아니라, 박 시장이 기민하고 결연하게 메르스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김용익 의원은 대표적 의료 정책통이다.  
ⓒ시사IN 이명익
김용익 의원은 대표적 의료 정책통이다.
35번째 감염자가 1500여 명이 모인 자리에 참석했다며 구체적인 숫자를 공개했다. 오히려 불안감을 키웠다는 비판도 있는데.
감염 확인된 사람이 다수 대중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을 거라면 몰라도, 이를 밝히고 대책을 세우려면 숫자를 안 밝힐 수가 없다. 서울시가 직접 대책을 세우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접촉자 수가 많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정부가 박 시장에 대한 반박 성명을 냈다.
프레임을 진실 공방으로 전환하는 것에 불과하다. 확진 환자가 다수 대중과 접촉했다는 것과 이 사태를 지방자치단체 책임자가 컨트롤하겠다고 나선 것. 이게 핵심이다.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정 경기교육감,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조차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대립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신종 전염병과 같은 생물학적 재난 상태에 있으면 나라가 가진 총력을 동원해서 조기 진압해야 한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총력 동원이 불가능하다. 보건복지부가 지금까지 2주 넘도록 주요 정보를 비밀에 부치고 있으니 공조체제가 성립될 수 없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망한다는 위기감이 생기니까, 지자체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자가 격리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자가 격리’란 곧 ‘격리 포기’를 의미한다. 자가 격리라는 게, 가택연금처럼 내 공간 안에 화장실·욕실 다 있는 조건에서 당국이 꼼꼼히 살피고 허가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그 가족들에게 전파시키는 꼴이다. 얼마나 비인도주의적인 태도인가. 책임 회피나 마찬가지다.

지방정부의 이 같은 대응이 차후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현 사태는 야당보다 여당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된다. 사실 야당으로서는 이런 문제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메르스 사태는 지극히 기술적이고 행정적인 일이다. 원래는 매우 비정치적인 일인데,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김 의원은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투명한 정보공개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차후 정부가 제공해야 할 정보란 무엇인가.
정부에서 네 가지를 패키지로 제공해야 한다. 먼저 발병 지역과 감염자가 치료받은 의료기관을 밝혀야 한다. 이때 공개로 인해 의료기관이 입는 피해는 정부가 보상해줘야 한다. 공익을 위해 진료했다는 이유로 손해를 본다면 의료기관이 방역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메르스 환자를 돌보는 준칙을 제공하고, 일반 국민에게 이렇게 관리하고 있으니 병원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홍보해야 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합리적인 근거를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기관 손해도 줄고, 사회 전체 공포도 해소된다.

청와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보나.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좀 떨어져 있었으면 한다. 진심이다. 보건복지부에 청와대 입김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니까 정보를 제공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손 떼고 전문가들에게 맡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