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망친 대북정책, '과거 회귀'도 어려워
[김근식의 남북관계 중년부부론] <1> 아무도 가지 않은 남북관계 모색해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한반도 브리핑' 필자이자 대표적인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새로운 연재 '남북관계 중년부부론'을 시작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 10년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 5년, 그리고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가 된 현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풀어야 할지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습니다.
김 교수는 남북 간 한창 가까웠던 김대중·노무현 시기가 서로 죽고못사는 '신혼과 연애의 남북관계'였다면, 이명박 정부 때는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증오와 권태의 남북관계'였다고 규정합니다. 그는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덤덤한 중년의 부부사이'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중년부부는 다소 무덤덤하더라도 관계 자체를 파탄내지 않고 서로 대화하면서 가능한 합의 지점을 찾아간다는 측면에서 신혼부부와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지점에 착안하여 남북 역시 앞으로는 끈질기게 마주 앉아 결국은 합의를 도출해내는 '고진감래'의 관계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김 교수의 말대로 남북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만들어 내고, 그 합의사항을 하나씩 이행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까요? 김 교수의 '중년부부론'이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 경남대학교 김근식 교수 ⓒ김근식
남북관계가 어렵다. 대화도 안 열리고 관계도 경색되고 상황도 좋지 않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본래 어렵다. 남북관계가 잘 풀리지 않아서 어려운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몰라서 더 어렵다.
사실 상황이 어려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려운 남북관계를 제대로 풀기 위한 정답을 몰라서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를 풀기 위해 과거의 답을 대입하는 것은 당장은 쉬운 길이 될 수도 있으나 '해답'은 아니다.
남북관계 해법 찾기가 어려운 지금의 사례를 간단히 들어보자.
1.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시간> 이라는 회고록을 내놨다. 평소 얼굴이 두꺼운지는 알았지만 이처럼 자기 정당화가 심한 줄은 몰랐다. 회고록에는 임기 동안 북이 정상회담을 하자고 애걸을 했지만 옳지 않은 길이라 여겨 당당하게 거절했다는 자기변명이 절절하다. 천안함과 연평도로 두들겨 맞으면서 한반도 평화관리와 북한관리에 실패한 이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거부가 매우 잘한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차있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북과는 마주앉지 않겠다는 단호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런데 북측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은 이 전 대통령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이번 회고록을 두고 북측은 '2MB(메가바이트)의 저능아'와 '인간 오작품'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이미 남북관계는 최악의 감정싸움에 돌입해있다. 이 마당에 무슨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2.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8:1의 압도적 차이로 가결시켰다. '종북'이라는 정치적 주장을 헌법재판소가 수용하면서 통합진보당의 정당 활동을 법으로 중단시킨 것이다. 이석기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이제 이른바 '종북' 세력과의 선거연대나 정책연합은 하지도 않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활발했던 남북관계 개선과 각종 민족공동행사 등이 사실상 당시 민주노동당 인사들과 스스럼없이 진행되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남북의 화해협력과 다방면의 교류접촉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과거처럼 쉽게 주장하기도, 실현하기도 어렵게 됐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던 시기는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화해증진이 대세였고 남북관계는 상호 이해와 존중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관계 개선과 화해 협력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마저도 싸늘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다. 이 상황에 과거와 같은 남북관계로의 복원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탈냉전 이후 십 수 년을 지나면서 남북관계는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었고 관계 개선을 위해 이것도 저것도 하기 어려운, 마땅한 답을 찾기 힘든 시절이 돼버렸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채택했던 대북 강경 기조와 압박 정책은 북을 변화시키지도, 굴복시키지도, 혼내주지도 못한 채 상대를 도저히 용서 못할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어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북의 조기붕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관계 개선이나 대화 재개가 오히려 북의 수명을 연장시켜준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기다림의 전략'이었다. 특히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중단과 대북 압박이야말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자 해법이라고 간주했다. 그런데 북한은 오히려 이명박 정부 시기를 지나면서 남북관계를 통한 남쪽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맹목적인 대북 강경이 돌이키기 힘든 감정의 상처만 남긴 채 아무런 성과도 없이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과거 진보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으로 돌아가기도 어렵게 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속적인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선의의 낙관론에 기반했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수십 차례의 장관급 회담이 개최되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그리고 경의선·동해선 연결 등 굵직한 경협사업이 진전됐으며, 각종 교류협력이 지속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남북관계는 취약했다.
핵실험이 계속되면서 핵 문제는 악화됐고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결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다. 화해협력의 끈질긴 인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쉽게 강경 대결 분위기로 돌아섰고 국제 정세 변화와 남쪽의 정권교체로 남북의 화해협력은 모래성처럼 무력화되었다. 이후 강경 대 강경의 맞대결이 심화되고 서로의 감정싸움이 악화되면서 이젠 남이나 북이나 과거 진보 정부의 순수한 화해협력 시대로 되돌아가기 힘들게 돼버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의 근본적 변화를 견인하지 못한 채 보수 진영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지금은 그 정당성마저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북 강경과 대북 포용이 모두 한계에 봉착했던 핵심적인 원인은 둘 다 자기만의 '주관적 희망'(wishful thinking)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루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들며 유별난 특성을 지닌 북한이라는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 게임'이다. 혼자 결정하고 결과를 예측하고 마무리하는 독자 플레이어 게임이 아닌 것이다. 상대의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겪어야 하고 예기치 못한 수많은 변수와 변화들에도 충분히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준비하며 대응해야 하는 매우 역동적인 게임이다. 과거 회귀적 대북 강경과 과거 지향적 대북 포용은 또 다시 '주관적 희망'만을 앞세운 단독 게임으로 승부를 보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이 무식하고 비현실적인 이유는 압박하고 봉쇄하고 관계를 중단하면 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굴복하고 변화하고 기어 나올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에 쉽게 들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은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상대이기에 오로지 압박과 봉쇄만이 '악당'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의 연장이었다. 이번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그 관점에서 조금도 교정되지 않았다.
진보 정부의 대북 포용이 적잖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시로의 복귀 주장이 쉽지 않음도 교류하고 협력하고 관계를 개선하면 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변화하고 나아질 수 있다는 '주관적 기대'에 쉽게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진보 정부 시절의 남북관계로 무조건 돌아가자는 일부 주장은 여전이 이러한 관점에 머물러 있다.

▲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을 북한 김정을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영접하는 모습 ⓒ연합뉴스
결국 2015년 지금 남북관계는 진보 정부의 화해협력 시대로 돌아가기도, 그렇다고 보수 정부의 대북 강경 시대로 돌아가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강경과 대결, 포용과 화해를 겪었던 우리 국민들도 이제 일도양단의 단순한 취사선택이 쉽지 않음을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변화된 정세와 환경 그리고 조건에 걸맞는, 그야말로 '변화된 대북 접근'이 필요하고 '새로운 남북관계'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맹목적인 대북 강경으로의 '과거 회귀'는 성공할 수도, 효과를 볼 수도 없음이 이미 입증됐다.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대북 포용으로의 '과거 지향' 역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지난날의 화려했던 추억으로 무작정 돌아가자고 주장하기가 어려운 현실이 됐다. 대북 강경과 대북 포용의 한계를 담담하게 수용하고 변화된 현실에 맞는 새로운 남북관계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무도 가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남북관계의 여정을 시작해보려 한다.
남북관계,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라!
[김근식의 남북관계 중년부부론] <2>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엄정한 평가 (1)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과거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현재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초해야 미래의 새 전략과 비전이 도출된다.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에 대한 성찰적 평가와 변화된 조건·환경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하고 나서야 올바르고 현실 가능한 미래 남북관계의 방향과 전략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엄정한 반성적 평가를 해보자.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우여곡절'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의 첫 번째 특징은 진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대화가 잘되어 관계가 나아지다가도 돌발상황이나 쟁점부각으로 인해 다시 역으로 후퇴하는 경우가 오히려 다반사였다.
노태우 정부 때 남북은 오랜 협상 끝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문건의 내용은 지금 봐도 손색없는 남북관계 미래 모습의 '모범 답안'이었다. 그러나 합의서 잉크도 마르기 전에 북핵문제가 대두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말았다. 김영삼 정부도 민족이 동맹보다 낫다며 대북 쌀 지원을 결정했지만 정작 쌀 지원 과정은 인공기 게양문제와 선원 억류 사건이 불거지면서 상호 불신과 적개심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본격적인 화해협력이 시작되었던, 역사적인 관계 개선을 이뤘던 김대중 정부 시기조차도 2001년 초 장관급 회담이 결렬되어 남북관계가 일시중단됐고, 급기야 대북 특사 방북을 통해 관계 정상화가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역시 북핵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지속되었지만 2004년 해외 탈북자 대거 입북 문제로 북이 반발하면서 장관급 회담이 중단되었다가 2005년 6.17 면담으로 가까스로 재개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전반적인 관계 경색의 와중에서 2009년 하반기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고 임태희-김양건 회동을 통해 정상회담 합의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합의 번복과 금강산관광 회담 결렬 이후 북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을 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완전 중단됐다. 지금의 박근혜 정부 역시 개성공단 중단 등 기싸움을 벌이다가도 결국은 공단 재가동에 합의하는가 하면 2014년은 고위급 접촉 성사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도 성사되었지만 황병서 일행의 방남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합의한 2차 고위급 접촉은 성사되지 못했다. 화해협력을 중시하는 정부든, 대북강경을 불사하는 정부든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한 번도 순탄하게 관계 개선을 지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두 번째 특징은 화해협력과 불신대립이 병행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민족화해가 증진되고 경제협력이 증대되고 사회문화적 교류가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금강산과 개성을 제외하더라도 평양과 백두산 등 북한을 10여 차례 넘게 방문했다.
그러나 동시에 상호 불신과 갈등도 지속됐다. 민족공동행사를 위해 매번 우리가 평양을 방문하고 북측이 남측을 방문했지만 6.15와 8.15를 기념하기 위한 남북공동행사는 항상 막판까지 줄다리기 협상과 밤샘 버티기, 그리고 티격태격의 연속이었다. 동포를 만나는 설렘과 가슴 벅참도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측에서는 매번 지침과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만날수록 북측과의 이질감이 커지고 서로 체제를 지키려는 완고한 정치의식이 불거져 나오면서 남북의 만남은 감동과 기쁨보다는 오히려 기싸움의 성격이 강하기도 했다.

▲ 지난 2007년 10월 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 증폭이라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냉전 시대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거나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 내부에 대북정책을 둘러싼 팽팽한 이념대립과 노선갈등을 유발시키고 말았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세 번째 특징은 합의와 불이행의 롤러코스터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이에 대한 온전한 이행은 한 번도 없었다. 역사적인 드라마였던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태어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합의 사항은 실제로 이행되지 못했다. 남북 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등 굵직한 남북 합의는 지금은 휴짓조각이 되었거나 되살리기 힘든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각종 실무회담에서 합의된 수많은 다양한 합의서와 문건들은 고스란히 통일부 자료집에 부록으로만 정리되어 있을 뿐이다. 합의해놓고 이행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설적 현실이 바로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의 남북관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따라서 이제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하지 않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합의해놓고 불이행하지 않는 그런 관계가 돼야 한다. 미래의 남북관계는 지속성과 불가역성과 합의이행을 담보하는 이른바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가 절실하다.
우여곡절과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지속되는 남북관계, 가다 서다가 아니라 더디고 느리더라도 한번 진전되면 역행되지 않는 불가역의 남북관계, 합의해놓고 휴지조각이 되는 남북관계가 아니라 합의하면 반드시 이행을 담보하는 안정적인 남북관계. 지속성과 불가역성과 합의이행을 담보하는 남북관계의 '제도화'가 절실하고 절박하고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북과의 만남이나 대화를 그저 순진하게 설렘과 감동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무리한 감성이 아닌, 화해협력의 가능성과 현실성에 토대해서 철저히 지속가능하고 이행 가능한 화해협력의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이 마치 잘못된 것이라든가 북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북 강경과 압박만으로 접근하는 것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 대북 강경과 고집도 또 다른 의미의 매우 감정적인 접근이다. 주관적 희망과 근거 없는 기대만을 내세운 채 압박 위주의 대북강경이 우리가 원하는 남북관계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감정적 고집에 불과한 것이다.
화해와 협력, 대화와 합의만이 남북관계의 능사가 아니다. 또 압박과 봉쇄, 원칙과 고집만이 남북관계의 해법도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사실은 지나치게 북을 선의로 대하거나 악마로 간주하는 극단적 감정주의 접근이다. 남북관계가 항상 진전되어야 한다거나 남북관계는 항상 경색될 것이라는 지나친 희망과 과도한 실망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항상 개선될 것이라는 최대목표도 아니고 동시에 매번 경색될 것이라는 최소목표도 아닌, 즉 지나친 기대와 지나친 포기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여곡절의 남북관계를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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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본질은 힘의 관계다"
[김근식의 남북관계 중년부부론] <3> 남북, 원래 갈등 관계라는 걸 인정해야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것은 왜 어려울까? 왜 이렇게 남북관계의 제도화는 힘든 걸까? 비가역적이고 지속적이고 합의하면 이행이 보장되는 안정적 남북관계는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나아졌다. 수많은 회담을 개최했고 적잖은 합의를 도출했으며 꽤 많은 문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여전히 경색·정체됐고 전망마저 오리무중이다. 지나친 낙관과 성급한 비관을 넘어서서 실현 가능한,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이루기 위해선 우선 남북관계의 근본 속성에 대해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남북관계에 깊이 내재하고 있는 '구조적 딜레마'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이 되지 않고서는 향후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모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이 관계 진전과 대립을 반복하는 데는 행위자의 주체적 요인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더 고질적인 것은 남북관계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딜레마적 속성 때문이다. 이는 바로 남북관계가 '힘'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본질은 힘의 관계다. 남북관계는 결코 선의의 관점, 즉 화해와 협력과 존중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는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에 가까움을 인정해야 한다. 엄연한 현실이 힘의 관계인데도 이를 경시하거나 도외시한다면 지나친 감상주의로 흐르게 되고, 반면에 힘의 관계에 매몰된 나머지 관계개선이라는 가능성을 포기하고 힘으로만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면 이 역시 지나치게 단선적인 접근이 된다.
냉전시기 상호 적대와 대결의 남북관계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힘으로 상대방에게 제압당하지 않으려는 힘의 관계였다.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이 당시 힘의 우위에 있던 북이 열세에 놓인 남을 공산화하려는 것이었다면 탈냉전 시기 한국의 대북포용정책도 근본은 화해협력을 통해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북한을 변화시켜 결국은 우리가 주도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다.
하지만 탈냉전시기의 화해협력도 사실은 남북관계의 근본속성이 힘의 관점에서 작동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전히 힘의 우위에 있는 측이 힘의 열세에 놓인 측을 흡수하려는 것이었다. 햇볕정책의 창시자인 김대중 대통령도 사석에서는 햇볕정책을 '트로이의 목마'로 비유한 적이 있었다.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비난하며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 역시 힘의 우위 입장에서 북을 굴복시키려는 압박과 봉쇄의 접근방법이었다. 접근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상대를 제압하고 흡수하려는 최종 목표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남북은 원치 않는 분단으로 인해 남과 북은 상대방을 타도와 적대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를 자신의 내부 통치에 활용해왔다. 강요된 분단이었기에 남과 북은 언제나 상대방을 자기 체제로 인입하고 흡수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일관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체제 우위에 있는 쪽은 언제나 열세에 놓인 상대방을 통일하려 하고 반대로 힘의 열세에 놓은 쪽은 어떻게든 우위의 상대방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 할 수밖에 없다. 분단의 속성상 힘의 우열관계는 우위의 체제가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고 열세의 체제는 안간힘을 다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근본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티격태격 우여곡절의 힘겨루기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북한에게 남북기본합의서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체제위기를 맞아 어떻게든 자신의 체제를 흡수통일로부터 지켜내려는 전략적 발로였고 반대로 남한에게 기본합의서는 화해협력을 내세워 북한을 변화시켜 남한과 동일한 체제로 흡수하기 위한 전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본합의서라는 모범답안을 만들어놓고도 결국 현실의 남북관계에서는 휴지조각이 된 것도 힘의 관계라는 본질적 속성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도 힘의 우열관계에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고 옷을 벗겨서 한국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것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힘에서 밀리는 북한은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를 내세우지만 이 역시 전략적 의도는 한국으로부터 얻을 것은 얻되, 북한체제를 위험하게 하는 체제영향력을 최대한 차단하면서 남측의 흡수통일 공세를 막아냄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남북 공동선언이 도출돼도 힘의 우위와 열세 사이에 기본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길항관계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고, 한쪽은 끌고 가려 하고 다른 한쪽은 결코 끌려가지 않으려는 속성 때문에 화해협력의 시기에도 남북관계는 항상 순탄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결국 남북관계는 흡수하려는 한쪽과 절대 흡수당하지 않으려는 한쪽의 힘의 작용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힘에 의해 한쪽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한, 대화를 통해 관계개선이 순탄하게 이뤄지기 힘든 구조적 딜레마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본질은 힘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현실주의일뿐만 아니라 갈등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남북, 커지는 증오
[김근식의 남북관계 중년부부론] <4> 분단체제와 정전체제의 결합
힘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남북관계, 즉 일방이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고 반대로 상대는 결단코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역관계가 바로 남북관계의 본질임은 결국 갈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힘의 우위와 열세의 딜레마 속에서 상호 갈등을 내재적 속성으로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같은 남북의 길항성(rivalry)을 구조화하고 재생산하는 토대는 바로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라는 시스템이다.
한반도가 갈등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음은 바로 정전체제라는 군사적 대치 상황이 극적으로 입증한다. 남북은 전쟁을 공식종료하지 않고 일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정전체제 하에서는 언제라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고 국지전이 재개될 수 있다.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남북의 군사적 충돌과 북의 도발 역시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다. 서해교전과 연평해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등은 사실상 전투행위였다.
김대중 정부 시기부터 이른바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워 정치·군사적 갈등과 상관없이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진행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군사적 긴장과 충돌은 남북관계를 교착시키고 경제협력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2013년 봄의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극적으로 입증한다. 대결 상황에서도 온전하게 지켜질 것이라 믿었던 개성공단마저도 군사분계선 입·출경 제한이라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폐쇄 위기를 맞게 됐다는 점은 곧 정전체제 하에서 정경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줬다.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물인 것이다.
남북은 서로 원치 않는 분단을 겪었고 따라서 상대방은 결코 태어나서는 안될 정부였다. 즉, 상대방의 정치적 부인에 기초해서 각각의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유엔이 승인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한반도의 유일 정통성을 자처하고 있다. 강요된 분단으로 탄생한 남과 북인 만큼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부정하고 향후 통일은 반드시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만 했다. 적화통일과 흡수통일은 각각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소거하는 통일 노선일 수밖에 없었다. 분단체제하의 남북관계는 결국 남과 북의 정치적 적대와 대립을 구조적 토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동안 북한이 제기했던 4대 근본문제는 남북관계가 아무리 진전되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숙제들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군사훈련 중단, NLL 재설정 등은 원래 어려운 이슈라 치더라도 북이 제기한 4대 근본문제 중 그나마 상대적으로 용이한 이슈였던 참관지 제한 철폐마저도 사실은 남북의 오랜 정치적 적대관계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남북 간 경협이 가속화되고 사회문화 교류가 증대되어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여전히 남북관계에서 풀기 힘든 장애물이다.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근본적 구조하에서 남북 간 경제와 사회문화는 진전될 수 있을지언정 정치적으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북을 정치적으로 부인한 토대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평양에 있는 혁명렬사릉과 애국렬사릉, 금수산기념궁전 참관을 허용할 수 있겠나?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와 분단체제의 정치적 갈등은 결국 남북관계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절름발이 현상을 낳게 됐다. 대북 포용정책의 시기에 남북관계의 현상적 문제점으로 매번 지적되었던 영역별 불균등 발전의 문제, 즉 정치·군사적 차원의 진전은 부진한 반면 경제와 사회문화 분야의 관계개선은 상대적으로 활발한 것도 바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상호 윈-윈하는 경제협력과 상호 필요에 의한 일회성 교류는 그나마 진행될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관계개선을 위한 정치적 화해협력과 군사적 긴장해소는 힘과 힘이 부딪치는 남북관계의 속성상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런데 정전체제와 분단체제라는 정치·군사적 대립은 분단을 지속해오면서 개선되기보다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전쟁을 종료하지 못한 정전체제가 남북관계에 악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최대의 요인은 바로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 문제의 악화이다.
한국전쟁 당시 교전 당사자였던 북한과 미국은 정전체제에 머물러 있는 조건에서 상호 적대관계를 지속하고 있고 북·미 적대관계의 최악의 발현이 바로 북핵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북한은 적대관계의 해소를 요구하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자위적 억제력으로서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하고 있고, 반대로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과 핵 보유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줄다리기가 바로 북핵 문제의 본질이다.
그 북핵 문제가 이제는 북한의 사실상 핵무기 실전배치와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로 치닫고 있고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도 모자라 사드 도입까지 논의하고 있다. 정전체제가 북핵 문제를 낳고 그 북핵 문제로 인해 지금 한반도는 사상 최대의 군비경쟁 모드에 돌입하고 있다, 상대의 군비증강과 자신의 군비증강이 상호 악순환되는 이른바 '안보딜레마'의 덫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잘 풀릴 수 없음은 당연하다.
정전체제가 북핵 문제로 곪아 터지듯이 분단체제 역시 '역적패당'과 '종북몰이'라는 각기 최고조의 정치적 증오와 대결로 심화되고 구조화되고 있다. 북한을 원수로 간주하고 타도와 적대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정치적 적대성은 이제 북한도 모자라서 한국 내부의 특정 세력마저도 종북과 친북으로 끈질기게 연결시키고 있다. 상대를 부정해야만 하는 분단체제의 정치적 대결이 북에 대한 증오를 넘어 이젠 우리 사회 안에서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석기 사건과 통진당 사태 이후 진보 진영과 야당까지도 이제는 종북의 흔적을 의심받게 된다.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아줌마의 평양방문 경험담도 종북을 때려잡는 사냥꾼에겐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만다. 자폐적 운동권 인사의 개인적 돌출행위도 배후의 종북 세력 운운하며 더 많은 종북 마녀를 사냥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을 인정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는 주장도 정치적 사냥에 당하기 십상이다.
북한 역시 남북관계 악화를 거치면서 남쪽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남한 대통령을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비하하고 폄하하는 것은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다. 식량 지원과 인도적 지원이 중단된 이후로 북한 주민들까지도 남쪽에 대해서는 원망을 넘어 적개심이 충만하다. 눈곱 만큼 쥐어 주면서 온갖 멸시와 모욕감을 주었다는 게 최근 북한 주민들의 심정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정치적 대결이 상호 증오의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전단 문제야말로 정치적 대결이라는 분단체제와 군사적 대치라는 정전체제가 상호 결합되어 남북관계의 개선이 얼마나 힘든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것이다.
상대체제를 타도하고야 말겠다는 전단살포 측의 살기 어린 대북 적개심과 살포 즉시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원점 타격하겠다'는 북한 군부의 날 선 경고야말로 군사적 대치와 정치적 대결이라는 남북관계의 구조적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정치·군사적 적대성을 근본적으로 완화시키지 못하는 한 남북관계는 구조적 딜레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개선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한반도가 갈등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음은 바로 정전체제라는 군사적 대치 상황이 극적으로 입증한다. 남북은 전쟁을 공식종료하지 않고 일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정전체제 하에서는 언제라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고 국지전이 재개될 수 있다.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남북의 군사적 충돌과 북의 도발 역시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다. 서해교전과 연평해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등은 사실상 전투행위였다.
김대중 정부 시기부터 이른바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워 정치·군사적 갈등과 상관없이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진행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군사적 긴장과 충돌은 남북관계를 교착시키고 경제협력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2013년 봄의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극적으로 입증한다. 대결 상황에서도 온전하게 지켜질 것이라 믿었던 개성공단마저도 군사분계선 입·출경 제한이라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폐쇄 위기를 맞게 됐다는 점은 곧 정전체제 하에서 정경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줬다.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물인 것이다.
남북은 서로 원치 않는 분단을 겪었고 따라서 상대방은 결코 태어나서는 안될 정부였다. 즉, 상대방의 정치적 부인에 기초해서 각각의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유엔이 승인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한반도의 유일 정통성을 자처하고 있다. 강요된 분단으로 탄생한 남과 북인 만큼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부정하고 향후 통일은 반드시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만 했다. 적화통일과 흡수통일은 각각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소거하는 통일 노선일 수밖에 없었다. 분단체제하의 남북관계는 결국 남과 북의 정치적 적대와 대립을 구조적 토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동안 북한이 제기했던 4대 근본문제는 남북관계가 아무리 진전되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숙제들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군사훈련 중단, NLL 재설정 등은 원래 어려운 이슈라 치더라도 북이 제기한 4대 근본문제 중 그나마 상대적으로 용이한 이슈였던 참관지 제한 철폐마저도 사실은 남북의 오랜 정치적 적대관계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남북 간 경협이 가속화되고 사회문화 교류가 증대되어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여전히 남북관계에서 풀기 힘든 장애물이다.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근본적 구조하에서 남북 간 경제와 사회문화는 진전될 수 있을지언정 정치적으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북을 정치적으로 부인한 토대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평양에 있는 혁명렬사릉과 애국렬사릉, 금수산기념궁전 참관을 허용할 수 있겠나?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와 분단체제의 정치적 갈등은 결국 남북관계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절름발이 현상을 낳게 됐다. 대북 포용정책의 시기에 남북관계의 현상적 문제점으로 매번 지적되었던 영역별 불균등 발전의 문제, 즉 정치·군사적 차원의 진전은 부진한 반면 경제와 사회문화 분야의 관계개선은 상대적으로 활발한 것도 바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상호 윈-윈하는 경제협력과 상호 필요에 의한 일회성 교류는 그나마 진행될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관계개선을 위한 정치적 화해협력과 군사적 긴장해소는 힘과 힘이 부딪치는 남북관계의 속성상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런데 정전체제와 분단체제라는 정치·군사적 대립은 분단을 지속해오면서 개선되기보다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전쟁을 종료하지 못한 정전체제가 남북관계에 악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최대의 요인은 바로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 문제의 악화이다.
한국전쟁 당시 교전 당사자였던 북한과 미국은 정전체제에 머물러 있는 조건에서 상호 적대관계를 지속하고 있고 북·미 적대관계의 최악의 발현이 바로 북핵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북한은 적대관계의 해소를 요구하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자위적 억제력으로서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하고 있고, 반대로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과 핵 보유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줄다리기가 바로 북핵 문제의 본질이다.
그 북핵 문제가 이제는 북한의 사실상 핵무기 실전배치와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로 치닫고 있고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도 모자라 사드 도입까지 논의하고 있다. 정전체제가 북핵 문제를 낳고 그 북핵 문제로 인해 지금 한반도는 사상 최대의 군비경쟁 모드에 돌입하고 있다, 상대의 군비증강과 자신의 군비증강이 상호 악순환되는 이른바 '안보딜레마'의 덫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잘 풀릴 수 없음은 당연하다.
정전체제가 북핵 문제로 곪아 터지듯이 분단체제 역시 '역적패당'과 '종북몰이'라는 각기 최고조의 정치적 증오와 대결로 심화되고 구조화되고 있다. 북한을 원수로 간주하고 타도와 적대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정치적 적대성은 이제 북한도 모자라서 한국 내부의 특정 세력마저도 종북과 친북으로 끈질기게 연결시키고 있다. 상대를 부정해야만 하는 분단체제의 정치적 대결이 북에 대한 증오를 넘어 이젠 우리 사회 안에서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석기 사건과 통진당 사태 이후 진보 진영과 야당까지도 이제는 종북의 흔적을 의심받게 된다.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아줌마의 평양방문 경험담도 종북을 때려잡는 사냥꾼에겐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만다. 자폐적 운동권 인사의 개인적 돌출행위도 배후의 종북 세력 운운하며 더 많은 종북 마녀를 사냥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을 인정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는 주장도 정치적 사냥에 당하기 십상이다.
북한 역시 남북관계 악화를 거치면서 남쪽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남한 대통령을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비하하고 폄하하는 것은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다. 식량 지원과 인도적 지원이 중단된 이후로 북한 주민들까지도 남쪽에 대해서는 원망을 넘어 적개심이 충만하다. 눈곱 만큼 쥐어 주면서 온갖 멸시와 모욕감을 주었다는 게 최근 북한 주민들의 심정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정치적 대결이 상호 증오의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전단 문제야말로 정치적 대결이라는 분단체제와 군사적 대치라는 정전체제가 상호 결합되어 남북관계의 개선이 얼마나 힘든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것이다.
상대체제를 타도하고야 말겠다는 전단살포 측의 살기 어린 대북 적개심과 살포 즉시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원점 타격하겠다'는 북한 군부의 날 선 경고야말로 군사적 대치와 정치적 대결이라는 남북관계의 구조적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정치·군사적 적대성을 근본적으로 완화시키지 못하는 한 남북관계는 구조적 딜레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개선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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