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크라우드소싱으로 헬스케어 산업이 새로 깨어나고 있다

일취월장7 2013. 10. 10. 10:36
크라우드소싱으로 헬스케어 산업이 새로 깨어나고 있다
김은지 | 2013.10.08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커지고 있지만 헬스케어를 대표하는 제약산업은 성장과 혁신의 정체를 겪어왔다. 그러나 오픈 이노베이션이 헬스케어 산업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하기 시작하면서 헬스케어 산업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크라우드소싱과 같은 보다 개방적인 시도들이 관찰되고 있다.


①컨테스트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며 제약 등 헬스케어 업계에서 일찍 시도된 방식이다. 일라이릴리, 머크 등 제약기업들이 이노센티브, 캐글 등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기반을 갖춘 기업들을 통해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들을 컨테스트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②그러나 제약업계의 본격적인 크라우드소싱 시도는 GSK가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방대한 데이터 공개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GSK에 이어 다른 거대 제약사들도 내부 연구개발 및 임상시험 자료의 공개에 서서히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헬스케어 산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채 폐쇄되어온 데이터들이 상호 공유되기 시작함으로써 방대한 데이터와 수많은 연구자들의 아이디어들이 만나기 시작하고 있다. ③최근에는 게임적 요소를 첨가하여 유저의 흥미와 참여를 유발함으로써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게임화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의학과 제약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유전자 염기서열을 비교하고 암세포를 찾아내며 바이러스의 3차원 구조를 유추하게 함으로써 소수의 연구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방대한 양의 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지고 있다. ④페이션츠라이크미, 큐어투게더와 같은 SNS 건강관련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질병 경험, 치료법에 대한 의견 등의 잠재적인 활용가치도 커지고 있다. 방대한 연구 및 임상 데이터, SNS 데이터, 컨테스트, 게임 등을 통한 대중의 경험과 지식, 지혜는 헬스케어 산업을 이전과는 다른 국면으로 발전시킬 잠재력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현상이다. 데이터 과학의 선두주자인 캐글, 게임 프로그래밍 업체인 주유니버스, 컴퓨터 업체인 IBM 등은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으로 헬스케어 산업의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구글까지 노화와 생명연장 연구를 위한 헬스케어 업체 캘리코 (Calico)를 설립하면서 헬스케어 산업에 나서고 있다. 향후 헬스케어 산업은 더 많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의 참여로 한층 다이나믹하게 변화할 것이다.


내재적인 폐쇄성 때문에 오픈 이노베이션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었던 산업분야인 헬스케어 분야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의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는 것은 오픈 이노베이션이 IT나 컴퓨터 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생각의 틀을 바꾼다면 더욱 다양한 산업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목 차 >


Ⅰ. 헬스케어, 대중의 지혜로 혁신 시동
Ⅱ. 헬스케어에서의 크라우드소싱 유형 4가지
Ⅲ. 헬스케어 산업의 새 바람

 


Ⅰ. 헬스케어, 대중의 지혜로 혁신 시동

 


위기의 헬스케어 산업


현재 헬스케어 산업은 위기에 처해 있다. 대표적인 산업인 제약산업의 경우, 연구개발 비용은 1995년 150억 달러에서 2012년 480억 달러로 약 3.2배 증가한 반면 승인되는 신약의 개수는 1996년 56개에서 2012년에는 39개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생산성의 저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만료 이후 쏟아져 나오는 값싼 복제약으로 인한 매출감소에 제약산업이 더욱 휘청이게 만들었다. 오리지날 약물의 특허만료로 제약사들은 2011년 한 해 52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입었고 이는 2016년 까지 무려 2,76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제약사들은 생산성 감소의 원인이 지난 10여년간 바이옥스 (Vioxx) 사태와 같은 대형 보건의료 위기를 겪으면서 극도로 보수적으로 변해 온 미국과 유럽의 의약품 규제 때문이라고 하소연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쉽게 개발할 수 있는 많은 약물 타겟들이 대부분 소진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동안의 블록버스터급 성공을 이어갈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생산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 동안 제약업계는 각종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였다. “오믹스(-omics)”로 대변되는 지노믹스 (Genomics),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기술이나 고속대량 스크리닝(High throughput screening)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술들은 제약 R&D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보다는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을 강화하는데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지금 제약업계에 필요한 것은 신기술보다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찾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즉, 혁신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헬스케어 산업에서의 오픈 이노베이션


오픈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헨리 체스부르 (Henry Chesbrough) 교수가 2003년에 주창한 이 개념의 핵심은 기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전 과정을 기업이 모두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존의 폐쇄적인 혁신을 벗어나 외부와 내부 조직 사이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자유롭게 흐르는 개방형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다양한 산업에서 지지를 받았지만 제약산업은 그 적용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대표적 분야인 컴퓨터 산업과 비교했을 때 제약산업은 벤처 캐피탈 커뮤니티가 약하고 제품개발 기간이 길며,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젠자임(Genzyme) 같은 제약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면서 점점 더 많은 제약사들이 개방적이며 협력적인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다. 제약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주로 연구소나 다른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제휴나 인/아웃 라이센싱 등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2010년 화이자(Pfizer)는 중개연구 활성화를 위해 대학병원과의 협력을 책임지는 연구조직을 새롭게 만들고 캘리포니아 주립대(UCSF)와 신약개발 촉진을 위해 5년간 8,500만 달러 규모의 전략적 제휴를 결정했다. 프랑스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 (Sanofi)는 스크립스 연구소(Scripps Institute),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등과 수평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화이자와 GSK(GlaxoSmithKline)는 HIV 치료제 개발을 위해 2009년 조인트 벤처 ViiV를 설립하고 각 사가 보유하고 있던 관련 과학적 자산을 공유했다. 인라이센싱(in-licensing) 활동도 활발해져 영국의 다국적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의 경우 2013년 현재 보유한 파이프라인 물질 중의 40%는 외부에서 소싱하여 개발하고 있다. 주로 개발 초기 단계에서 전략적으로 선택된 파트너와의 협력은 이제 제약산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 지적 재산 침해 가능성, 영업비밀 노출, 산업의 내재적 배타성 등을 이유로 폐쇄적이었던 제약산업에서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로 혁신적이며 또한 그만큼 혁신의 부재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보다 개방적인 시도


제약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탄력을 받으면서 최근에는 보다 개방적인 시도가 관찰되고 있다. 2006년 와이어드(Wired) 매거진의 편집자 제프 하위(Jeff Howe)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은 군중이라는 뜻의 Crowd와 발주한다는 의미의 Outsourcing이 합쳐진 말로,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외부 네트워크에 열린 발주의 형태로 특정 업무나 기능을 맡기는 것이다. 크라우드소싱은 리눅스 개발 사례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 외에도 델(Dell)의 아이디어스톰(IdeaStorm)이나 스타벅스의 마이스타벅스아이디어(MyStarbucksIdea)가 성공적으로 사용된 예이다. 산업의 특성과 소싱하고자 하는 기능의 차이로 산업간의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헬스케어 산업은 다른 기술집약적인 산업과 비교 했을 때조차 크라우드소싱을 사용하는 비중이 현재 매우 낮다(헬스케어 1% vs 기술집약적 타산업 18%). 고도의 전문기술과 지식이 요구되고 지적재산 보호에 민감한 헬스케어 산업에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아이디어를 찾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간 크라우드소싱은 헬스케어 산업에서 다양한 형태로 부상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헬스케어 산업에서의 크라우드소싱을 통한 혁신의 트렌드를 4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고 그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Ⅱ. 헬스케어에서의 크라우드소싱 유형 4가지

 


1. IT 기술로 재무장한 21세기형 컨테스트


컨테스트, 가장 전통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상금을 내건 컨테스트는 가장 전통적이며 단순한 방식의 크라우드소싱이다. 컨테스트의 주체는 상금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전문가 혹은 아마츄어들은 최고의 해결책을 찾아 경쟁한다. 최초의 컨테스트는 18세기 초에 영국 의회가 해양에서의 경도 측정법을 공모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을 만큼 이러한 접근법은 아주 오랫동안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21세기의 컨테스트 크라우드소싱을 바꿔놓았다. 컨테스트를 디자인하고, 관리하는 도구는 더욱 편리하고 강력해졌다. 웹 기반의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을 갖춘 이노센티브 (InnoCentive), 캐글 (Kaggle), 탑코더 (TopCoder) 등의 업체들은 크라우드를 모집하고, 상금지불을 처리하며 지적재산권 이전을 조율하는 시스템화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기업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군중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까지 담당하는 셈이다.


가장 대표적인 업체인 이노센티브는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내부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기술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 2001년에 설립한 이래 현재까지 1,600여개의 컨테스트를 진행하였고 35% 이상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이노센티브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기업들은 주로 제약, 화학, 소재 기업들로, 일라이 릴리, GSK, 피앤지 (Proctor & Gamble), 다우 (Dow Chemical Company) 등이 있다. 또 다른 서비스 업체인 캐글 (Kaggle)은 데이터 과학을 통한 크라우드소싱에 특화되어 있는데 2010년에 시작하여 현재 전 세계 100여국에서 수천 명의 수학자, 통계학자, 물리학자, 컴퓨터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크라우드를 보유하고 있다. 클라이언트가 분석하고 싶은 빅데이터와 이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질문을 제시하면 다양한 분야의 박사급 데이터 과학자들이 가장 정확한 예측모델 알고리즘을 찾아낸다. 최근 다국적 제약사 머크 (Merck)는 캐글에 의약품의 화학적 구조에 기반하여 약물타겟에 대한 활성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 알고리즘 개발을 의뢰하였는데, 두 달만에 머크가 내부적으로 보유한 것보다 더 우수한 알고리즘이 개발되어 실제 R&D에의 적용가능성이 테스트되고 있다.


컨테스트의 효과와 장점


컨테스트를 통한 크라우드소싱의 효과는 입증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이노센티브를 이용한 기업들은 평균 20배의 R&D 생산성 증가를 경험했다. 그렇지만 컨테스트형 크라우드소싱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에 적절한 것은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암 치료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열린 질문에 대한 해법은 컨테스트를 통해 얻기 쉽지 않다.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며 명확히 정의되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하나의 질문을 여러 개의 작은 질문으로 나누어 해결사가 접근하기 쉽게 제시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제약 R&D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많은 경우 그 원인을 알 수 없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특정 기술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컨테스트는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보다 짧은 시간에 더 적은 비용으로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컨테스트는 짧으면 몇 주, 길어도 2~3개월을 넘기지 않지만 접수되는 제안서는 수백, 수천 개에 이른다. 앞의 사례에서, 머크가 캐글을 통해 선정한 알고리즘을 개발한 과학자에게 지급한 상금은 고작 2만 2천불이었다. 이노센티브의 경우 컨테스트 당 상금은 대략 5천불에서 100만불 사이지만 창출해내는 가치는 평균적으로 상금의 20배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컨테스트 크라우드소싱의 가장 큰 장점은 그 해결책이 실제로 내부적으로 개발한 것보다 더 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13년 현재 전세계 200여개 국가에서 30만명 이상의 일명 해결사들이 이노센티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에 따르면 등록된 해결사의 40% 이상이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이들의 참여동기는 상금의 액수보다 도전정신과 호기심이다.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에서 박사급 인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시장은 과학적 전문성과 재능뿐만 아니라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인재들로 넘쳐난다. 기업 내부 인력과는 다른 이들의 참여동기는 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성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또한 마지막에 하나의 제안이 최종 선택 된다 하더라도 수많은 제안서들을 검토하면서 얻게 되는 다양한 기술적인 아이디어는 분명 내부 R&D에서 얻을 수 있는 그것보다 풍부하고 다채롭다. 내부R&D가 실패할 시에 발생하는 금전적 손실을 고려했을 때 초기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컨테스트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2. 봇물 터진 데이터 공개 : 거대 데이터와 무수한 두뇌의 만남


GSK, 변화의 물꼬를 트다


개개의 제약기업과 연구소가 보유한 방대한 양의 연구개발 데이터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했지만 실패한 약물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으면, 다른 기업들은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아도 되고 또한 전혀 새로운 방법과 용도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산업 혁신의 관점에서 큰 이익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외부에서 기업이 생산해 낸 데이터에 접근하기가 불가능했다. 데이터는 기업의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개발에 성공한 경우라도 관련 데이터의 일부만 공개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10여년 간의 유전공학 기술의 비약적 성장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의학 관련 데이터는 다방면에 활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이나 연구소 단위로 폐쇄적으로 관리되어 획기적인 개발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몇 년간 폐쇄적인 헬스케어 산업에서 자발적인 데이터 공유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데이터 공개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인 GSK의 CEO 앤드류 위티(Andrew Witty)는 방대한 데이터가 기업 내부에서 한두 개의 가설을 테스트하는데 쓰이고 난 후에는 이용가치가 떨어져 사장되기 때문에 그 잠재력이 충분히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데이터 공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위스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의 연구 분야 책임자인 마크 피쉬먼(Mark Fishman) 박사는 “제약사 내에서 생성된 데이터들을 새로운 의약품의 개발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한다. 진정 획기적인 치료법의 개발을 위해서는 경계가 사라진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여기저기 흩어진 채 방치되어온 데이터를 한 곳으로 모으고, 기업의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에 제약기업, 규제기관, 비영리 기관, 학계가 뜻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영국 소재의 다국적 제약사 GSK는 데이터 공유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GSK는 2012년 10월에 자신들이 보유한 임상시험 데이터를 온라인에 공개하여 내부적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롭고 혁신적인 데이터 패턴을 외부의 아이디어를 통해 찾아내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이 데이터에는 실패한 임상시험의 데이터도 포함되어 회사의 치부를 노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발표 당시 업계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GSK의 CEO 앤드류 위티는 발표문에서 “과학의 내재적인 복잡함과 현대 의학이 당면한 위기는 리소스, 지식, 전문성을 모두 보유했다 하더라도 하나의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파트너십, 협동, 열린 혁신에 기반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공개의 이유를 밝혔다. GSK는 이에 앞서 2010년에는 노바티스, 세인트 쥬드 소아연구 병원(St. Jude Childeren’s Research Hospital)과 함께 20,200개의 말라리아 치료제 데이터를 일반에 공개하여 누구든지 자유롭게 추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스위스 비영리 기관인 말라리아 의약품 벤쳐 (Medicine for Malaria Venture)는 여기서 400개의 물질을 추려내어 말리리아 박스(Malaria Box)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신청하는 누구에게나 제공하고 있다. GSK는 여기에 더해 최근 약 200여개의 폐결핵 관련 약물의 데이터도 공개했고 다른 질환의 자료 공개도 검토 중이다.


테바, 노바티스 등도 내부자료 공개에 동참


GSK의 파격적인 행보에 우려를 표명했던 다른 거대 제약사들도 서서히 동참하기 시작했다. 최근 테바(Teva), 노바티스, 사노피 등의 제약사들은 흔히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연구를 위해 각 사가 보유하고 있던 임상시험 자료를 하나로 통합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일반에 공개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이끈 비영리 단체 Prize4Life는 루게릭병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여러가지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규제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FDA가 의약품과 의료기기 개발을 혁신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연구소인 크리티컬 패스 연구소(Critical Path Institute)는 화이자, 일라이 릴리 등의 제약사에서 기증받은 6천여 명의 알츠하이머 환자의 데이터를 공개하였고, 학계, 연구기관, 제약사, 규제기관 등이 참여하여 경도 알츠하이머 질환을 테스트하기 위한 새로운 임상시험 시뮬레이션 도구를 개발하였다.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임상시험 단계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질환에 가장 최적화된 임상시험 디자인이 중요한데, 이 시뮬레이션 모델을 사용하면 임상시험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을 방지할 수 있음이 인정되어 최근 미국과 유럽의 규제기관으로부터 의약품 개발 도구로서는 처음으로 승인을 받았다.


데이터 공개가 시작되면서 바이오 의학 연구분야에서 대규모 협력을 유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유 모델들이 가동중이다(10페이지 참조). 2007년에 노바티스가 과거 3년간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진행한 2형 당뇨병의 유전자 연구의 모든 데이터를 인터넷에 공개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을 때 업계가 깊은 우려를 나타냈던 것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데이터 공유 행진은 놀랍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참여하기를 망설이고 있다. 데이터 소유권과 특허가 기업의 이익과 직결되는 제약산업에서 기업이 기존의 지적재산 관리방식을 버리기는 쉽지 않으며 심지어 내부적으로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더라도 경쟁자의 손에 자신들의 데이터가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그러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주장한 헨리 체스브로(Henry Chesbrough)는 2012년에 발표한 글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보유한 지적재산의 10%도 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며 나머지 90%의 잠재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리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GSK의 과학환경개발 부문(Science Environment Development) 부사장 재키 헌터(Jackie Hunter)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이 기업의 지적재산을 위협할 것이라는 세간의 믿음과는 달리 오히려 이의 생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적재산권보다는 협력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집착을 넘어 서로 협동할 때 개별 기업의 이익이 창출될 가능성은 이미 포착되었다. 2004년 미국 국립보건원, FDA, 제약 및 의료기기 기업들, 대학, 비영리 기관들이 함께 알츠하이머 질환의 진행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Biomarker)를 찾아내기 위해 보유 데이터를 공유하는 협동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참여기관 그 누구도 데이터를 소유하지 않으며 결과물에 대해 특허 신청을 하지 않는 것에 합의하였는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펜실베니아 대학의 트로야노스키(Trojanowski) 교수는 이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시도였다고 말하며 “이것은 우리가 기존에 행해왔던 과학이 아니다. 우리가 각자의 이익추구와 특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으면 과학적 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ADNI는 1차 단계에서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이해와 진단, 임상 디자인에서 중요한 진전을 보였으며, 400개가 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고 이에 기반하여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을 위한 임상시험인 2차 단계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여기서 얻어진 중요한 과학적 진전을 기초로 이후 개별 기업은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개발초기 데이터나 질환 연구에 필요한 도구 등은 특허를 얻기도 힘들 뿐 아니라, 관련 질환을 연구하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단기적인 시각이 아니라 의료 혁신의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창고에 버려진 데이터를 공유하고 새로운 활용법을 찾아내는 것이 개별 기업에게도 오히려 이득이 될 수 있다. 물론 공유 이전에 지적재산권, 로열티, 상업화 계획에 참여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3. 게임화 크라우드소싱 : 게임도 하고 과학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과학자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대중이 푼다


앞서 살펴본 크라우드소싱의 경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군중은 해당분야 전문가나 응용 가능한 분야의 지식을 가진 집단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헬스케어 산업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는 크라우드소싱은 게임에 연관된 개념을 활용하여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게임화(Gamification)이다. 게임화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웹사이트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에 게임 점수, 레벨, 커뮤니티와의 공유 등 온라인 게임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유저의 흥미와 참여를 유발한다. 많은 기업에서 주로 마케팅이나 직원 업무능력 향상 등의 용도로 게임화를 활용하고 있는 반면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수수께기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이용되고 있다. 게임화가 시도되고 있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와 10여 분의 시간만 있으면 누구라도 유전자 염기서열을 비교하고, 현미경 이미지에서 암세포를 찾아내며, 바이러스의 3차원 구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2008년 미국 워싱턴 대학 (University of Washington) 연구팀이 만든 폴딧 (Foldit)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퍼즐처럼 풀 수 있는 게임들을 제공한다. 여기서 얻어진 단백질 고차원 구조에 대한 실마리는 특정 유전자를 타겟팅하는 의약품 개발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폴딧 게임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5년 만에 24만여 명의 유저를 확보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과학적 문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아마추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명망있는 과학자들도 풀지 못한 난제를 아마추어들이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성공 사례들이 이어지면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10년 동안 과학자들이 풀 수 없었던 HIV 관련 바이러스의 구조가 폴딧의 게이머 커뮤니티를 통해 밝혀지고 실제 HIV 약물개발 적용가능성을 높이 평가 받아 주목을 받았다. 또한 기능 개선을 위해 수년간 과학자들이 연구해 온 특정 효소의 구조를 단 3주 만에 폴딧 유저들이 밝혀내기도 하였다. 일련의 성공사례에 힘입어 폴딧은 단백질 구조에서 나아가 저분자 합성물질의 구조를 퍼즐로 푸는 게임을 개발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보다 광범위하게 의약품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캐나다의 맥길 대학 (McGill University) 연구진에 의해 2010년에 개발된 파일로(Phylo)는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테트리스 게임의 형식으로 복잡한 DNA 염기서열을 푸는 게임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보존되어 온 중요한 기능을 가진 유전자를 찾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이종(異種)간의 DNA 염기서열을 비교하지만, 그 방법이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 보다 세심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의 과학 데이터 수집과 종합을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적절한 안전장치가 확보되고 업무가 단순화될 수만 있다면 그 인력이 반드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맥길 대학의 게임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염기서열을 퍼즐처럼 단순화한 파일로를 개발했다. DNA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네 개의 염기는 각각 다른 색깔로 표시되며 유저는 블록의 위치를 바꿔 여러 종의 유전자 사슬의 배열에서 일직선상으로 동일한 색깔의 블록이 배치되도록 해야 한다. 계통발생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비교하여 계통수(系統樹)를 작성하는 것은 종간의 진화 과정과 특히 질환 관련 유전자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파일로는 3년여 동안 등록된 3만여 명의 유저를 활용하여 무려 60만 개의 질환 관련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했으며 최고의 점수를 올린 유저의 알고리즘은 기존의 알고리즘을 대체하면서 점점 완벽한 알고리즘으로 진화한다.


또 다른 성공적인 예로 셀슬라이더(CellSlider)를 들 수 있다. 셀슬라이더는 이미 갤럭시주(Galaxy Zoo)라는 은하계 분석 게임으로 새로운 은하계와 행성을 발견하는 성공을 거둔 주유니버스(ZooUniverse)가 영국의 암연구소(Cancer Research UK)와 합작으로 만든 게임으로, 유저는 유방암이 의심되는 환자의 현미경 조직 이미지를 분석한다. 이 조직 샘플들은 특수 시약으로 염색되어 특정 분자의 발현 정도에 따라 다른 색깔을 나타내게 되는데, 분자의 존재 여부, 혹은 발현 정도에 따라 어떤 항암제를 쓸 것인가가 결정된다. 컴퓨터를 이용하게 되면 아주 명확한 패턴을 제외한 미세한 차이나 불규칙적인 패턴은 놓치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골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개발에 참여한 폴 파로아(Paul Pharoah) 교수는 셀슬라이더를 사용하여 방치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암 치료제 개발에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슬라이드 이미지 분석을 통해 암을 세부적으로 분류하여 맞춤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셀슬라이더 유저들은 6개월 동안 76만개 이상의 이미지를 분석하였는데, 이는 소수의 종양 병리학자들이 몇 년에 걸쳐 분석할 양이다. 셀슬라이더를 통해 크라우드소싱의 잠재력을 확인한 영국 암 연구소는 이번에는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과 손잡고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진런 (GeneRun)이라는 새로운 게임을 곧 출시할 예정이다.


비전문가가 생성한 정보 신뢰할 수 있나


게임화를 통한 크라우드소싱에서 우려되는 점은 비전문가가 생성해내는 데이터나 정보를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들은 이러한 점을 이미 염두에 두고 안전장치를 포함하도록 개발되었다. 셀슬라이더의 경우 이미지들의 일부는 전문가들에 의해 이미 분석되어 있으며, 유저가 생산해낸 데이터 값이 전문가의 분석결과와 확연히 동떨어졌을 경우에 그 데이터나 유저의 점수는 제외된다. 또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류는 상당 부분 통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데이터 생성에 참여하는 유저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차값은 줄어들고 정확도는 향상된다.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이러한 게임화가 큰 스케일에서도 가능할 것인지 여부이다. 지금까지의 게임들은 기업이 아닌 학교나 연구소의 주도로 기초과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되어 왔으며 실제 의료산업에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단계로 보인다. 그러나 유저의 수가 증가할수록 유저가 생산하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유저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고정된 전문가 인력의 확보가 불가피하다. 이는 학계나 비영리 기관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데이터의 단순화를 필요로 하는 만큼 헬스케어 산업의 복잡한 이슈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주유니버스처럼 게임화 개발에 전문성을 가진 업체와 헬스케어 산업과의 협력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기대해 볼만 하다.


4. 건강 관련 SNS 커뮤니티의 부상


정보를 SNS에 의존하는 사람들


전통적으로 혁신의 주체는 생산자였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사용자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혁신을 소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컨텐츠 생성에 직접 참여하고 관여하기를 원하며, 궁극적으로는 컨텐츠를 만들어내기를 원한다.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움직임을 더욱 촉진하고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SNS를 통해 소비자들은 전통적으로 정보를 얻는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 상에서 정보 생성에 직접 참여하고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과 생성된 정보를 주고받는다. 주목할 것은 SNS의 발달이 우리가 정보획득에 있어 신뢰하는 대상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닐슨(Nilson)사의 조사에 따르면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 시 사람들은 친구, 가족, 동료들의 추천을 90% 정도 신뢰한다. 온라인에서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는 반면 전통적인 기업이나 브랜드에 대해서는 신뢰가 약해지는 현상도 감지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헬스케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의료 전문가들의 우려와는 별개로, 건강이나 의학에 관한 전문적인 정보를 얻을 때 조차 많은 사람들이 SNS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의사가 단순 인두염이라고 진단한 자녀의 사진과 증상을 페이스북에 올린 한 여성이 희귀 자가면역질환인 가와사키병이 의심된다는 페이스북 친구의 조언으로 아들의 생명을 구하게 된 사례 등은 SNS 지인에 대한 신뢰를 더욱 합리화하고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상에서 정보를 교환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환자들이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의 투병 경험을 공유하고 질환 정보와 치료법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온라인 검색을 통해 전문 의학정보를 쉽게 획득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러한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웹사이트에서 건강정보 찾는 사람들 급증


웹엠디(WebMD), 인텔리헬스(intelihealth.com) 메이요클리닉(mayoclinic.org) 등의 웹사이트에서 건강정보를 찾아보는 환자의 수는 급증하고 있다. 웹엠디 한곳만 해도 매달 8천만 명 이상의 방문자가 있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의 데이터에 의하면 2010년 전체 성인의 50% 이상이 인터넷에서 건강 정보를 검색했다. 의사를 만나러 가기 전에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의학정보를 검색해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의료 정보와 SNS의 결합은 의료 서비스의 수혜자이면서도 소외되어 있던 환자들이 의료산업의 혁신에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인터넷과 SNS에 기반한 의료 정보의 민주화는 의료 전문가들에게는 우려할 만한 현상이지만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


페이션츠라이크미 (PatientsLikeMe)는 이러한 트렌드를 대표하는 사이트이다. 루게릭병에 걸린 동생의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그의 두 형들이 만들 웹사이트로 2012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의해 세계 50대 혁신적인 기업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현재 약 20만명 이상의 환자들이 유전병, 암, 만성질환, 희귀질환 등에 대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복용하는 약의 종류와 용량, 받고 있는 치료법, 부작용, 크고 작은 질병에 대한 경험을 나눈다. 2008년에 만들어진 큐어투게더(CureTogether)는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은 만성질환자 스스로가 바이오-IT 기술자와 공동 창립한 온라인 기업으로 3개의 질환군으로 시작하였으나 현재는 6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질병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으며, 현재 112개국에서 1만 5천명 이상의 환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페이션츠라이크미와 큐어투게더는 환자들이 건강 관련 데이터를 추적하고 비교하며, 스스로의 건강을 더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정보에 입각하여 치료적 결정을 내리고, 연구에 도움이 되는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임상시험에서 발견 못한 부작용, 온라인 커뮤니티로 추적


제약사들과 연구소들은 이러한 건강관련 커뮤니티가 보유한 데이터의 무궁무진한 상업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그 양도 방대하거니와, 개인적인 SNS에서의 주고 받는 정보와는 달리 조직적이며 정량화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자 정보가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는 약물 부작용 추적이다. 이미 임상시험을 거쳐 승인을 받은 약물이더라도 시장에 출시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 임상에서 미처 발견되지 못한 부작용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임상시험처럼 환경이 통제되고 변수가 제한된 상황에서 벗어나면 이러한 부작용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특정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가 온라인에 올라는 건강관련 정보를 면밀히 추적하면, 어떤 환자가 어떠한 부작용을 보이는지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맞춤의학에의 적용이다. 개인의 유전자 정보에 맞는 치료법을 사용할 수 있어 각광받고 있는 맞춤의학은 임상시험을 위해 특정 유전자를 가진 환자모집을 요한다. 수천 명의 환자를 필요로 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특정 질병과 유전자를 보유한 환자를 찾아 등록시키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보를 활용한다면 적절한 카테고리에 속하는 임상시험 참여자를 보다 빠르게 모집할 수 있다. 실제로 큐어투게더는 개인 유전자 정보 분석업체인 23앤미 (23andme)에 최근 인수되어 환자 유전자와 건강 정보를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미 이러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기반을 두고 루게릭병에서 리튬(Lithum)의 효과를 테스트하거나, 편두통에서 이미트렉스(Imitrex)의 반응을 예측한다던가 하는 등의 임상시험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의견의 객관성 및 개인정보의 노출 문제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제약사가 특정 질환연구에 참여하고자 하는 환자들과 직접 접촉하고 그들의 건강정보까지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혁신적인 기회이며 제약 연구개발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커뮤니티들이 기업들에 의해 통제되거나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실제 페이션츠라이크미는 회원들의 건강정보를 제약사나 의료기기 업체에 판매한 수익으로 운영되는 영리기업이며 이러한 사실을 숨기지 않지만, 이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질병에 관한 개인적 경험들을 아무 대가 없이 공유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제공한 정보가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치료제 개발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 희망한다. 그러나 실제 제공된 정보가 기업의 신약 R&D에 사용되는지 혹은 마케팅 전략에 사용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의 건강정보가 내가 원치 않는 곳에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또한 기업이 고용하였거나 기업의 후원을 받는 회원들이 커뮤니티의 순수성을 해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커뮤니티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제약사들은 이미 이러한 사이트에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활동 중에는 커뮤니티를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마켓 리서치도 포함되는데, 참여자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리서치에 참여했던 회원들이 커뮤니티에 올리는 의견들의 객관성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개인정보의 노출이다. 페이션츠라이크미는 회원들의 활발한 정보 공유를 권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할수록 개인정보 노출의 가능성이 많음을 경고한다. 페이션츠라이크미와 큐어투게더의 성공으로 유사한 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공개하는 것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스스로 공개수위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환자들의 의료정보의 가치가 큰 만큼 환자들의 선량한 의도가 악용되는 경우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와 안전한 개인정보 관리 시스템의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

 


Ⅲ. 헬스케어 산업의 새 바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크라우드소싱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은 헬스케어 산업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관찰되고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컨테스트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스템화하며, 방치되었던 빅데이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게임을 통해 과학적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혁신의 전면에 나서게 해주고 있다. 개발기간이 오래 걸리는 헬스케어 산업의 특성상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크라우드소싱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분명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접근법이며 헬스케어 산업을 이전과는 다른 국면으로 발전시킬 잠재력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헬스케어 산업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현상이다. 데이터 과학의 선두주자인 캐글, 게임 프로그래밍 업체인 주유니버스, 컴퓨터 업체인 IBM 등은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으로 헬스케어 산업의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구글까지 노화와 생명연장 연구를 위한 헬스케어 업체인 캘리코 (Calico)를 설립하면서 헬스케어 산업에 나서고 있다. 향후 헬스케어 산업은 더 많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의 참여로 한층 다이나믹하게 변화할 것이다.


헬스케어는 그 내재적인 폐쇄성 때문에 오픈 이노베이션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었던 산업분야이다. 그렇지만 대중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가능성이 확인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오픈 이노베이션이 IT나 컴퓨터 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기존의 생각의 틀을 버린다면 더욱 다양한 산업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내에서 크라우드소싱 활동은 아직 미미하다. 인식과 홍보가 부족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이나 이목을 끌만한 대규모 프로젝트도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높은 보급률은 인터넷 기반 비즈니스인 크라우드소싱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크라우드소싱은 모든 산업의 이슈를 해결할 수도, 유일한 혁신의 방법이 될 수도 없다. 그렇지만 크라우드소싱의 적절한 활용으로 내부적으로 혁신을 추구할 때보다 적은 비용과 짧은 시간 내에 더 나은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은 사례에서 나타나고 있다. 크라우드소싱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이 혁신에 목마른 헬스케어 산업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이를 기업의 전략에서 배제시킨다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