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통신 기술 발달로 이제는 PC나 스마트 폰을 너머 일상적 사물까지도 모두 정보 통신 단말기로 이용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 중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는 형태의 정보 단말기, 웨어러블이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웨어러블 단말은 인간 중심의 컴퓨팅과 시공간 제약을 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형태라고 말해져 왔다. 초기의 많은 웨어러블 단말기는 특수 목적용으로 개발되거나 한정된 시장만을 대상으로 했던 반면 이제는 보다 일상적인 용도로 보통 소비자가 쓸 수 있는 형태로 속속 개발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수 년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웨어러블 단말이라 할 수 있는 상용 제품은 아직 그 수와 종류가 제한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크기와 무게 같은 기본적인 사양은 물론 고객 가치, 이용 방법과 같은 측면에서도 웨어러블은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많은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웨어러블이라는 개념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하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웨어러블의 의의는 크다. 웨어러블은 인간의 본질적 니즈에 대응하고 있으며, 나아가 정보통신 단말이 발전해 나가야 할 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더군다나 웨어러블은 대표적 컨버전스 기기인 스마트폰의 시장 지배력을 해체할 가능성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기능을 각기 분산된 기기가 수행하는 다이버전스 방식으로 개발된 웨어러블은 지금까지 스마트폰이 통합시켜 온 많은 기능들을 다수 다종의 웨어러블로 해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은 시장 형성 초기에 있지만 기존 스마트폰의 기능과 생태계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웨어러블은 정보통신 산업의 주요 제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 목 차 >
Ⅰ. 웨어러블 시대의 개막 Ⅱ. 대중화의 주요 이슈 Ⅲ. 고객 가치의 재확인 Ⅳ. 다이버전스의 귀환
Ⅰ. 웨어러블 시대의 개막
웨어러블은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말 그대로 “입는” 또는 “몸에 걸치는” 형태의 컴퓨터를 뜻한다. 그러나 컴퓨터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책상 위에 올려 놓는 그 컴퓨터 즉, PC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도 넓게 보면 컴퓨터의 일종이듯 연산, 저장 등 컴퓨터 기능을 수행하는 단말기는 모두 컴퓨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웨어러블 컴퓨터란 곧 어떤 특정 형태의 단말기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몸에 걸치고 다닐 수 있는 형태로 설계된 정보 기기 전부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라고 부르기도 한다.
웨어러블 컴퓨터의 과거
웨어러블 컴퓨터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 가면 1950년대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웨어러블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구글 글래스가 출시된 영향이 크다. 여기에 더하여 애플은 아이워치라 불리우는 새로운 형태의 단말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스마트폰 이후의 정보통신 단말로 웨어러블이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초기의 웨어러블은 상당한 덩치를 가지고 있던 컴퓨터를 옷이나 몸에 부착 가능한 작은 크기의 모듈로 분해하여 그것을 몸의 이곳 저곳에 분산하는 형태로 구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분해된 각 모듈은 기능에 따라 시계 형태로 손목에 가는 경우, 안경 형태로 얼굴에 끼워지는 경우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박스 형태가 되어 허리에 차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등에 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다수의 모듈로 분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모듈은 여전히 부피와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이런 식의 웨어러블은 실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용 제품은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것은 상당한 정도 크기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예전의 PC 정도의 성능은 이미 손바닥 크기 정도의 단말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모듈 개념의 웨어러블은 이제 큰 기술적 어려움 없이 간단히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구글 글래스와 아이워치라 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개발 철학의 차이
그런데 웨어러블과 스마트폰은 모두 항상 갖고 다니는 정보통신 단말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큰 차이를 갖고 있다. 그것은 각종 기능의 융합과 분산,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라는 전혀 다른 제품 개발 철학을 가졌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단말에서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지향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자 소형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줄어들었고, MP3나 휴대용 전자 사전, 전자 계산기 등의 시장은 거의 소멸해버렸다. 그런 기능을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이처럼 대표적인 컨버전스 단말이다.
반면 웨어러블은 기본적으로 기능의 분산을 원칙으로 한다. 애초에 하나의 컴퓨터가 수행하던 기능을 다수의 모듈로 분해하는 것에서 웨어러블이 만들어졌다. 지금 나와 있는 제품을 봐도 통신, 정보처리, 저장 기능은 박스 형태로 허리나 주머리로 가고, 이미지 정보 획득은 안경 형태로 얼굴로 가고, 생체 정보는 손목, 음성 정보는 귀로 가는 등 기본적으로 다수의 단말이 다양한 기능을 나누어 가지는 식으로 되어 있다.
주요 사업자 동향
지난 5월 중순에 공개한 구글 글래스는 최신 기술이 만들어낸 안경 형태의 모듈형 웨어러블로 실제 상용 가능한 형태로 구현된 첫 제품이다. 만약 구글 글래스가 충분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면 기존 스마트폰은 조작을 위한 작은 창을 가진 통신 모듈의 기능만을 수행하고 나머지 UI 부분은 구글 글래스가 모두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입출력 기능은 구글 글래스 모듈이, 통신 및 처리 기능은 스마트폰 또는 다른 무엇이라 불릴 박스 모듈이 수행하는 형태의 모듈형 웨어러블이 구현된 것이다.
애플 아이워치 또한 아이폰과 연동되는 모듈형 웨어러블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 기능이 충분하지 않다면 완전한 모듈형 웨어러블은 아니라도 액세서리 형태의 웨어러블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직 애플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한 정보가 없어 확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애플이 보여준 제품 개발 행태를 참조해 보건대, 아이워치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 기존 애플 제품을 대체하는 제품이 될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연동해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적으로 수행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각광받는 손목형 웨어러블
애플은 아직 제품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 손목에 자리하는 스마트폰 연동형 웨어러블은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어 있다. 소니 스마트 워치나 LG의 라이프 그램, 모토롤라의 모토워치는 독자적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스마트폰과 연동될 경우 더 강력한 기능을 수행하는 대표적 웨어러블 기기이다.
손목은 스마트폰 기능의 분담이 아닌 추가적 기능을 수행하는 웨어러블이 주로 위치하는 자리이다. 나이키 퓨얼밴드(Fuel Band)나 조본(Jawbone) 업(Up) 밴드의 경우 건강 및 운동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저장하고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24시간 이용자와 접촉하고 이용자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으로는 불가능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의복형 웨어러블
모듈형 웨어러블과 달리 궁극적인 형태의 웨어러블을 추구하는 흐름도 있다. 그것은 의복 형태의 웨어러블이다. 최근에는 전도성 섬유, 직물 센서 등 새로운 소재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가 입는 옷 그 자체에 전자 기판을 구현해서 의복을 하나의 컴퓨터로 만드는 시도 또한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이런 시도가 성공한다면 옷을 만들면 그 옷이 바로 컴퓨터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진정한 의미의 웨어러블 컴퓨터가 구현되는 셈이다. 물론 의복 형태의 웨어러블의 경우 기술적으로는 앞서 말한 모듈 방식에 비해 더 어렵고 더 먼 미래에나 구현 가능하겠지만 의복 형태야 말로 웨어러블의 궁극적인 형태가 구현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직 기술적 장벽이 높고 짧은 기간 내에 구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이 글에서는 의복형 웨어러블은 다루지 않기로 한다.
Ⅱ. 대중화의 주요 이슈
각광받고 주목받는 제품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시도는 화려했으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신기술, 신제품을 우리는 이미 여럿 알고 있다. 웨어러블 또한 역사적인 시도들과 최근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잊혀진 제품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높아진 관심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입출력, 무게, 부피, 전력 등 실로 다양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이슈는 물론이고 고객 니즈 관점의 이슈나 규제 문제 또는 문화적 거부감에 대한 이슈까지, 웨어러블의 대중화에 장애가 될 요소들이 전방위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의미있고 해결되어야 할 이슈인 것은 맞지만 그 중에서 세 가지 이슈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고객 가치에 대한 의구심, 상업적 생산 가능성, 그리고 생태계 구성 가능성의 문제이다.
고객 가치에 대한 의구심
웨어러블과 관련된 여러 이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웨어러블이 어떤 고객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웨어러블을 과연 필요로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면 웨어러블은 시장에서 더 이상 의미있는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원래 웨어러블이라는 개념은 이용자와 늘 함께하는 형태의 컴퓨터이며 동시에 양손이 자유로운 형태의 컴퓨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늘 함께 한다는 것은 노트북을 거쳐 스마트폰에서 확실히 구현되었다. 하지만 양손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스마트폰으로도 아직 구현되지 못한 니즈이며 이 부분에서 웨어러블은 확실한 고객 가치를 보여 줄 것이 기대된다.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에 의하면 단지 양손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대표적인 웨어러블인 안경과 시계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멋으로 안경을 쓰는 사람도 가끔 있지만 늘 안경을 쓴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왜 수 많은 사람들이 매일 소독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콘택트 렌즈를 끼는지, 나아가 더 큰 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수술을 받는지 생각해 보면 그것은 명백하다. 시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손목은 손가락, 목과 함께 대표적으로 악세서리가 자리잡는 장소이다. 시계의 경우를 보면, 단지 시간만 잘 맞는 시계로 만족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 시계를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구글 글래스를 끼고 아이워치를 차고 그리고 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느니 차라리 그냥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것을 소비자들은 더 편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만약 그러하다면 웨어러블은, 스마트폰 이상의 가치를 주지 못할 것이며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상업적 생산 가능성의 문제
앞서 제기한 문제, 고객 가치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으로 반드시 등장할 문제가 바로 상업적 생산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구글 글래스를 비롯한 다수의 제품에서 이미 그 기술적 가능성은 증명 되었다. 문제는 과연 얼마에 그것을 시장에 공급할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이다.
웨어러블이 시장 트렌드를 바꿀 정도의 의미 있는 제품이 되려면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에 판매되어야 한다. 현재 출시된 제품들의 경우 손목 밴드들이 저가격대인 대략 10만원선에서 공급되고 있고 최고 가격으로는 1,500달러짜리 구글 글래스가 있다. 가격 격차가 엄청나지만 단순 기능의 밴드 제품에 비해 다기능의 구글 글래스가 훨씬 비싼 것은 당연하다. 구글 글래스나 기타 고가의 웨어러블의 경우 본격적인 대량 생산이 된다면 분명 가격은 많이 낮아질 것이다. 시계 형태의 웨어러블은 200달러, 안경 형태의 웨어러블은 500 달러 이하로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아무리 저렴해 진다고 해도 모듈형 웨어러블은 스마트폰 가격에 부가되는 제품, 추가적 지출을 요구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소비자들은 “내가 굳이 이 기능을 위해 수 십 만원을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기존의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독립형 웨어러블의 경우에도 가격이 부담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추가 지출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형 웨어러블은 같은 가격의 일반적 스마트폰에 비해 성능이 낮을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듈형이건 독립형이건, 웨어러블은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가격 저항을 극복하지 못하면 웨어러블은 결국 대중적인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니치 제품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생태계 구성 가능성
스마트 기기는 그 자체보다는 그 기기를 이용하여 어떤 서비스와 어떤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활용 가치가 결정된다. 우리는 이들 서비스와 컨텐츠를 제공해 주는 사업자들과 해당 스마트 기기 제조업자들 그리고 기타 연관 사업자들을 하나로 묶어 생태계라고 부르고 있다.
웨어러블은 기존의 스마트폰 또는 PC와 전혀 다른 입출력 방식을 가질 것이며 전혀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와 새로운 컨텐츠를 필요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메일이나 메신저의 경우를 보자. 허공에 화면을 띄워야 하는 안경형 웨어러블 또는 작은 디스플레이를 가진 손목형 웨어러블을 이용할 때 사용자들이 긴 문장을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형태가 될 지 모르지만 웨어러블에 적합한 형태의 새로운 서비스, 어플리케이션, 컨텐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을 누가 공급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 즉 웨어러블 생태계가 구성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생태계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수익 확보와 깊은 관련이 있다.
PC 시절과 같이 단품으로 직접 판매하거나 또는 광고 기반의 수익 확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 광고의 경우 웨어러블보다 훨씬 더 큰 화면을 가진 스마트폰에서조차도 효과적이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더 불편한 화면을 가진 웨어러블에서 단순한 노출형 광고로는 수익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직접 판매를 통한 수익 확보 또한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지난 5월, 애플이 500억 다운로드 기념으로 발표한 역대 인기 앱 순위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등에서 5등까지가 모두 게임이며, 1등에서 10등 중에서 무려 8개가 게임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웨어러블은 스마트폰보다 더 게임에 최적화된 단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소한 캐쥬얼 게임이 아니라 온 몸을 움직이는 하드코어 게임일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지적을 감안한다면 웨어러블은 단지 비싼 리모컨 정도로 치부되어 버릴 가능성도 있다.
결국 웨어러블은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의 수익 모델을 고안해 내어야 한다. 컨텐츠와 광고가 합쳐진 형태라거나 또는 기기 가격에 컨텐츠 가격을 포함시킨 시장의 양면화 등이 언급되고 있으나 아직 시장에서 증명된 수익 모델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웨어러블이 고유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만약 그렇다면 웨어러블은 기존 스마트폰 생태계에 기생해야 하며 이는 곧 웨어러블이 스마트폰과 동등한 모듈이 아니라 스마트폰에 종속된, 좀 비싸고 특이한 기능의 악세서리 이상으로 취급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고객 가치의 재확인
고객 가치가 명확하지 않고, 납득할 만한 수준의 가격으로 공급할 수도 없으며, 독자적이고 차별적인 서비스와 컨텐츠를 공급할 생태계가 구성되기 어렵다면 웨어러블은 결국 시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는 하나의 뿌리로 연결된다. 그것은 명확한 고객 가치의 확보 가능성이다. 만약 웨어러블만의 차별적이고 독자적인 고객 가치가 분명하다면 그에 합당한 가격을 소비자들이 받아 들일 것이고, 또한 생태계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웨어러블이 제공할 수 있는 본질적 가치를 재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 본연의 욕구에 대응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그것을 본격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왔다. 도구를 통해 타고난 근력과 체격과 지능을 넘어서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었다. 인류학자에 의하면 인간이 도구를 이용해서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고 한다. 그리고 모름지기 도구란 것은 더 쓰기 쉽고 더 강력하면 더 좋은 도구이다.
근육을 대신하는 도구는 많다. 그러나 지능을 대신하는 도구는 많지 않다. 인간의 역사로 보면 매우 최근에 이르러서야 필기구나 주산 수준이 아닌 제대로 된 지능 대응 도구가 개발되었다. 바로 컴퓨터이다. 그런데 지적 활동이 어떤 특정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 도구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사람들이 본인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도구를 이용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바로 이 부분, 인간의 자연스러운 활동을 뒷받침하는 보조적 두뇌활동 역할이야말로 웨어러블이 충족시켜야 할 진정한 고객 가치이다. 상시 착용이나 간편한 입출력 방식이나 또는 긴 배터리와 같은 것은 모두 본질적 고객 가치가 아니라 기술적 요구 사항에 불과하다.
엑소브레인 시대의 필수 단말
필자는 정보통신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엑소브레인’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엑소브레인이란 나를 대신하여 학습하고, 기억하며, 필요 정보를 적절히 가공하고 선별해서 나에게 필요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 주는 기기를 말한다. 학습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두뇌의 역할인데 그것을 실시간으로 외부에서 진행해 주는, 그래서 마치 내가 스스로 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도구를 몸 바깥의 두뇌 즉 엑소브레인이라고 불렀다.
웨어러블은 바로 엑소브레인 시대에 걸맞는 단말이 될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도 상당한 수준에서 엑소 브레인을 위한 단말로 작동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거의 항상 갖고 다니는 단말이고, 거의 항상 켜져 있어서 필요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으며, 내장된 다양한 센서를 통해 이용자의 현재 상황에 대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거의’ 웨어러블 수준에 이르렀을 뿐 진짜 웨어러블은 아니다. 스마트폰은 의식적으로 들고 다녀야 하고, 한 손 또는 심지어 두 손을 이용해서 조작해야 작동하며, 나에 대한 정보 중에서 많은 부분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직 개선의 여지가 크다.
웨어러블은 스마트폰이 가진 그나마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다양하게 제시된 개념 그대로 웨어러블이 개발될 수만 있다면 그 웨어러블은 항상 나의 몸에 붙어있을 것이고, 늘 켜져 있을 것으며, 내가 특별한 조작을 하지 않아도 바로 작동할 것이다. 나의 눈과 귀와 입을 대신하여 내가 보고 있는 화면에서 바로 정보를 파악하고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직접 보여주거나 들려 주는 등 능동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게다가 요즈음 주목을 받고 있고 많은 종류가 시판 중인 건강 보조 또는 운동 보조 웨어러블의 경우를 보면 심지어 자연 상태의 개인으로서는 쉽게 파악하기 힘든 정보, 예를 들어 심박수, 체온, 이동 거리, 도보 수, 온습도 등과 같은 상세 정보까지도 스스로 파악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있는 인간의 감각과 지능을 넘어선, 새로운 감각 기관인 셈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웨어러블은 엑소브레인 시대에 딱 맞는 정보통신 단말이라 할 수 있다.
Ⅳ. 다이버전스의 귀환
정보통신이란 것이 결국 인간의 지적 활동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웨어러블은 언젠가 정보통신의 지배적 단말 형태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그 미래에 많이 미치지 못한다. 당장의 실용적 가치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고 기술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제품 개발도 쉽지 않다. 웨어러블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래와 현실 사이에 놓인 이러한 간격을 최소화 하고 신속히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즉, 현실의 시장을 최대한 이용하여 소비 시장을 만들고, 필요 자원을 축적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인 셈이다.
당분간은 독자 생태계 보다는 종속형 모듈
그런 점에서 웨어러블 관련 업계는 다음과 같은 움직임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지금 당장의 실용적 용도와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 중심의 개발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나이키가 제공한 단순한 칩 하나만으로 소비자들은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소비 경험을 한 바 있다. 이제는 상당히 많은 손목 밴드형 웨어러블 제품들이 간단하지만 확실한 기능과 용도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단순하지만 확실한 용도와 가치를 가진 웨어러블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고 상업적으로도 비싸지 않게 생산이 가능하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성공을 축적하는 것은 결국 미래 더 큰 변화를 위한 토양이 될 것이다.
둘째, 상당 기간 동안은 스마트폰의 대체품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악세서리로 팔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간단하고 상업적으로 가능한 제품 개발을 위한 조건이 될 것이다. 통신 기능과 연산 기능은 비싸고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반면 필요한 개수는 1개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굳이 그것은 자체적으로 내장하지 않고 이미 소비자가 갖고 다닐 것으로 예상되는 스마트폰의 것을 빌어쓰는 것이 가격이나 전원 관리나 또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사실 웨어러블 이라는 것 자체가 다수의 모듈을 연결한 컴퓨터라는 개념도 포함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통신 및 연산 모듈, 웨어러블이 센싱 모듈로 작동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어느 부분을 어떤 모듈이 수행할 것인지 하는 것은 사실 소비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십분 활용하여 기술적, 상업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 매우 현명한 대처라 하겠다.
셋째, 스마트폰에 부가된 악세서리 또는 종속형 모듈로서 스마트폰이 이미 구축한 강력한 생태계에 편승하는 경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처음부터 독자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렵고 실패의 위험도 큰 반면 이미 있는 생태계에 편승하는 것은 고객 기반을 확보하는 것도, 수익을 만드는 것도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웨어러블과 같이 아직 시장 자체를 만들지 못한 제품의 경우 기존 산업에 부가되어 소비될 수 있다면, 산업 형성 실패의 위험, 소위 캐즘에 빠질 위험을 쉽게 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다이버전스 시대 개막 가능
웨어러블은 기본적으로 다이버전스를 추구한다. 비록 부족한 상업성, 미성숙한 시장, 난이한 생태계 형성의 문제로 스마트폰에 편승하여 성장을 도모하고 있지만 결코 스마트폰에 통합될 가능성은 없다. 웨어러블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오히려 스마트폰 쪽이 웨어러블의 한 형태로 포섭될 가능성도 있다.
스마트폰은 우수한 통신 기능,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진 단말이다. 반면 제한된 크기, 제한된 용도의 웨어러블이 스마트폰과 유사한 수준의 통신, 정보 처리 능력을 보유하는 것은 아직은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스마트폰 악세서리 형태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웨어러블이 제공하는 고객 가치가 압도적으로 유용하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웨어러블 쪽을 주요 단말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즉 내 마음에 드는 웨어러블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면 스마트폰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웨어러블은 스마트폰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모듈로 간주될 것이고, 스마트폰 또한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웨어러블 모듈로 간주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준비가 필요
웨어러블이 지향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엑소브레인 단말이지 단순한 통신 단말, 건강 또는 운동 보조 단말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웨어러블이 위치할 수 있는 곳도 손목과 안경이 전부가 아니다. 매우 다양한 형태의 기기로 분화가 가능하다. 그 형태와 기능은 모두 우리들의 상상력과 기술력의 몫이다. 따라서 좀 더 과격하고 이상적인 미래 제품을 구상해 볼 필요도 있다. 상상해 보자면, 만약 세상이 센서로 뒤덥히고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가 구현된다면 단 하나의 기기도 실제 소유하지 않고도 웨어러블의 철학이 구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이 발달하고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지금부터 웨어러블의 미래 모습에 대해 더 과감하고 파괴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볼 시점이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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