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약값 일괄인하, 어떻게 볼것인가

일취월장7 2012. 3. 10. 09:10

 

약값 일괄인하, 어떻게 볼것인가

입력: 2012-03-09 17:45 / 수정: 2012-03-10 04:11
보건복지부가 최근 약값을 일괄 인하하는 방안을 관보에 고시하면서 제약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환자가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약은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약값을 정부가 규제해 왔던 이유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에 건강보험 대상 의약품 1만3814개 중 절반(47.1%)에 달하는 6506개의 가격을 다음달부터 일괄적으로 떨어뜨리기로 했다. 평균 인하폭은 14%. 그러나 해당 품목만 놓고 보면 인하폭이 최대 40%에 달하는 품목도 있다.

복지부가 이처럼 강력한 카드를 빼든 것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 의식에서 비롯됐다.
건강보험은 2010년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적자를 낸 뒤 지난해부터 개혁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 결과 특허기간이 끝난 약의 보험 가격을 특허만료 전 수준의 53.55%(기존 68~80%)로 일괄적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약가제도 개편안이 지난해 8월 마련됐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연간 건강보험 재정 1조2000억원, 환자 본인 부담금 5000억원이 절감될 것으로 내다봤다. 

약가 인하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국민들의 약값 부담이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그동안 정부 보호 아래 안일한 경영을 해왔던 제약업계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가격 인하폭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자칫 토종 제약산업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항변한다.

김성옥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위원과 전인구 동덕여대 약학과 교수의 논쟁을 게재한다.

이준혁/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외래 약제비 18년새 554% 증가…건보재정 안정위해 인하 불가피

입력: 2012-03-09 17:45 / 수정: 2012-03-10 04:11
찬성

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 24%…OECD 평균의 1.5배 수준
오스트리아·덴마크 등 유럽이어 일본도 2년마다 약가 인하
최근 몇 년 새 급속한 인구고령화, 삶의 질 향상 및 신의료기술 도입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 가계의 진료비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국민들의 건강욕구 및 보건의료서비스 향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건강보험 지출은 앞으로도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1년 건강보험진료비는 17조8000억원에서 2010년 43조7000억원으로 145% 증가했다. 2020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급여비는 약 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지출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이 2020년에 8.55%로 인상돼야 건강보험제도가 지속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건강보험진료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약품비는 2001년 23.46%에서 2010년 29.25%로 크게 늘어났다. 약품비에 약국 조제료를 합산한 약제비를 고려할 경우 그 비중이 2010년 35.55%에 달한다. 총액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만은 2008년 약품비가 1250억대만달러(4조6000억원)로 진료비 대비 약품비 비중이 24.8%였다. 대만의 약품비 비중은 1998년 이후 10년간 25% 내외에서 꾸준히 지켜왔다. 총액예산제란 정부와 관련 의료단체가 사전 협의를 통해 약품비 총액을 미리 정해두고 이에 따라 약품비를 지급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약제비 증가속도는 지나치게 가파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자료에서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대비 외래 약제비 비중은 2007년 24.5%였다. OECD 평균인 16.3%의 1.5배 수준으로 매우 높다. 지금 당장 약품비 지출 억제 방안을 내놓아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보험재정에 큰 위협이 될 뿐 아니라 건강보험제도의 미래 지속가능성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된다.

앞서 약가 규제의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20여년 이상 앞선 선진국에서도 약가 인하 조치를 통해 단기적 재정안정화를 모색해왔다. 특이할 만한 것은 선진국 사례에서 대부분 의료주체 간 협의를 통해 약가 인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제약사들이 약가 인하에 대해 합의해 온 배경은 무엇일까. 선진국 제약사들은 수익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와 선진국 간 사회·문화·역사적 맥락이 상이함에도 선진국의 제약사와 보험자(건강보험공단)는 보험재정 안정화를 통해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목표를 공유했다. 국내 제약사는 건강보험제도 도입 이후, 특히 의약품 급여가 본격화된 의약분업 이후 약제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제약사 매출액도 급성장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외래약제비는 1991년 2조4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01년 8조7000억원, 2008년 15조9000억원으로 18년간 554.8%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이 11.7%나 된다. 특히 의약분업 이전 1995~1999년 외래약제비 연평균 증가율은 9.1%였으나 의약분업 이후 2001~2005년 외래약제비 연평균 증가율은 9.7%로 증가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는 의약품의 건강보험급여 확대를 통해 제약사 매출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제약사가 약가 인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재정이 악화돼 건강보험제도의 안정화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약가 인하 조치는 국내에서 처음 시행되는 게 아니다.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경기침체기에 시행됐다. 대다수 선진국들이 단기적으로 재정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해왔던 경험이 있고, 현재도 재정안정화 조치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약가 인하 조치는 약품비 지출 안정화 혹은 감소를 목적으로 경기침체기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빈번하게 시행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는 1997년 사회보험과 제약사의 협의 아래 약가 인하를 단행했으며, 덴마크는 1993, 1996, 1997년 3차에 걸쳐 가격 동결 및 인하 조치를 시행했다. 제약사와 협의를 통해 국가예산 범위 내에서 공공약품비를 감소하려는 목표에서 이뤄진 조치였다. 독일은 1993~1994년 제약사와 협의, 처방의약품에 대해 5%, 일반의약품(OTC)은 2% 인하했다. 세계 굴지의 제약사들이 포진한 영국도 1993년 제약업계와의 협의를 통해 2.5% 약가를 내렸다. 선진국은 현재도 다양한 방식으로 약가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제네릭(복제의약품)을 보험급여대상 의약품 목록에 새로 등재하면서 가격을 내리는 방식이다.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이다. 경제성 원칙에 따라 제네릭 등재 가격이 점차 낮게 책정되는 형태다. 3차 제네릭이 등재되면 오리지널 최초 약가의 39.8% 수준에서 약가가 정해진다. 이 경우 오리지널 의약품과 1·2차 제네릭이 모두 3차 제네릭 약가수준과 동일하게 약가를 인하해야만 보험 상환이 이뤄진다. 

이웃나라 일본은 후생노동성이 실거래가를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2년마다 약가를 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1981년 18.6%, 2008년 5.2% 각각 약가를 내렸다.

결국 우리나라만 파격적인 약가 인하를 단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발표한 보건복지부의 약가 인하 조치는 2000년 이후 적극 시행해 온 약가 사후관리방식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약가사후관리 방식으로 실거래가 조사와 가격사용량 연동제에 따른 약가 인하 등을 시행해왔다. 지난 10년간 시행해온 실거래가 조사를 통해 약가가 떨어진 의약품 품목 수는 1만8165개에 달하지만 이에 따른 재정절감 추정액은 4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지출한 보험약품비 80조8000억원의 0.49% 수준이다. 또한 2007년부터 시작된 ‘사용량-약가 연동제’를 통해 2011년까지 191개 품목의 가격이 재조정됐고 200억원이 절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또한 인하율이 10% 내외로 제한됐다. 약가사후관리 성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약가 인하 조치는 기존 약가사후조정 조치의 미비점을 전면 개편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여진다. 특히 이를 통해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율보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약품비 증가율을 억제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옥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원

△이화여대 약학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건강관리약제연구팀장

 

 

제약업체 연 손실 1조7000억…약값 일괄인하는 정부의 `폭거`

입력: 2012-03-09 17:43 / 수정: 2012-03-10 04:11
반대

1인당 의료비 지출 397弗…OECD 평균 503弗보다 낮아
FTA 앞두고 엎친데 덮쳐…인하조치 일정기간 유예를
최근 정부가 6506개 의약품에 대해 일괄적인 약가 인하 조치를 단행했다. 오는 4월1일부터 적용되는데, 제약사마다 수십억원에서 최대 1000억원 이상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 국내 제약산업 10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제약업계에선 당장 연간 1조7000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현재 우리나라 약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종전까지 의료계 리베이트가 20% 정도였기 때문에 전체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인하해 약값의 거품을 빼야 한다는 게 정부 측 주장이다.

그럼 우리나라 약값은 과연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인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약값은 환율 기준으로 주요 16개국에서 하위권에, 구매력지수(PPP)를 기준으로 하면 상위권에 속한다. 정부는 구매력지수를 적용해 우리나라 약값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의 약가정책이 ‘환율’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값은 환율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보건계정에서 약제비는 어느 계정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약값 수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약제비는 국민의료비 대비 2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2%)보다 높지만 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하면 1.5% 수준이다. 이는 OECD 평균이며 1인당 지출은 397달러 정도다.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만 놓고 보면 OECD 평균인 503달러보다 낮다. 국민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이 21.1%로 OECD 평균인 16.2%보다 높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국내 약값이 높다고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약제비의 비중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료비가 얼마인데 그 중에 약제비로 얼마를 쓰느냐’ 하는 것이다. 통상 국민의료비는 의료수가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높고, 약제비는 선진국이나 저개발국 간 격차가 크지 않다. 결국 약제비 비중은 선진국일수록 낮고 저개발국일수록 높게 나타난다.

앞서 정부는 2006년 5월6일 약값을 인하하기 위해 보험의약품의 가격제도를 포괄등재제도(신규 의약품을 보험의약품으로 신청하면 모두 받아주는 제도)에서 선별등재제도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2007년부터 보험에 등재되는 신약 가격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 9개국 평균가격의 40~60%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 정부는 또 2011년 8월12일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보험등재제도를 계단식에서 일괄인하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특허가 만료되는 신약과 제네릭 의약품은 1년 유예기간을 거쳐 모두 53.55%로 낮아진다. 이 같은 일련의 약가정책 변화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약값은 더 이상 높다고만 주장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정부의 전면적인 일괄 약가인하 조치로 제약업계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총액만 놓고 보면 일시에 의약품 가격을 1조7000억원이나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등재 의약품의 목록정비 사업에서는 7800억원을 내린 바 있다. 7800억원도 제약업계의 수용력을 감안, 향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반면 이번 4월에 단행되는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일괄 약가인하는 제약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는 약가 인하의 명분으로 리베이트 근절을 내세우고 있다.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만큼 약값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20%는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파악한 리베이트 규모다. 리베이트로 적발된 품목 대부분은 경쟁이 치열한 제품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전 품목에 적용해 리베이트가 매출의 20%라고 일반화하고 있다. 학회나 학술활동 지원, 영업사원 판촉활동 등 공정경쟁 규약에 의거한 합법적인 마케팅 행위까지 불법 리베이트로 적용하는 실정이다. 이를 과다하게 부풀려 약가 인하의 근거로 삼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더불어 4월1일 일시에 단행되는 약가 인하는 제약업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제약산업을 둘러싼 관련업체는 물론 학계, 연구계 등에 걸쳐 건전한 생태계의 위축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FTA 발효 이후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국내 제약업계는 연간 수천억원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FTA 최대 피해산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산업정책적 지원과 대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인데도 대대적인 약가 인하로 ‘이중고’를 겪게 된 것이다.

제약업계는 건강보험재정의 안정을 위해 약값 인하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7800억원의 약값을 인하하는 정부 방침을 수용했고, 이번 1조7000억원의 약가 인하도 일괄이 아닌 유예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대안을 수차례 관계당국에 건의했다. 하지만 정부의 일방주의적 정책 집행은 여지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현실적으로 국내 제약사들이 다국적 외자 제약사들에 비해 연구·개발(R&D) 능력이 아직 한참 떨어진다고 볼 때, 통상 신약 하나 만드는 데 15년 걸리는 업계 특성을 감안한 정책 배려가 필요하다.

따라서 약가 인하의 유예기간을 두고 R&D 등에 지원할 수 있는 제약사별 여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단계적인 약가 인하가 제약산업과 건보재정 안정을 가져오는 ‘솔로몬의 지혜’라고 판단된다.

국내 제약업계는 그동안 값이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해 국민건강과 보험재정에 기여해왔다. 선진 의약품제조관리기준(cGMP)에 부합하도록 꾸준히 투자해왔고 그 결과 의약품의 품질은 거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100년 제약사에서 그동안 모두 18개의 신약을 개발했다. 현재 세계 열 번째 신약개발 국가로 평가받는다. 미국 영국 일본 스위스 등 세계적인 의약 선진국을 맹렬하게 뒤쫓고 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사태 당시 국내 제약사가 생산한 백신이 위기 극복에 기여한 사례만 보더라도 토종 제약사의 육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케 한다. 토종 제약산업이 쇠퇴하면 국가적인 손실이다. 국내 제약산업이 몰락하게 되면 오히려 고가 의약품의 수입에 의존하게 되고 머지 않아 보험재정의 안정적 관리도 어려워진다. 국내 제약산업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건강보험재정의 건전화에 필수불가결한 국가기간산업이다. 제약업계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유연하고 경쟁력 있는 약가정책이 펼쳐져야 할 시기다.


전인구 동덕여대 교수

△서울대 약학과 △대한약학회 회장 △한국약학교육평가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