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의 리더십 3
본질에 대한 집착과 이를 통한 선택과 집중력을 키워라
리더로서 잡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제품과 일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이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을 파악하고 이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그는 항상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게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선택과 집중에 매달렸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잡스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20여 개로 불어난 애플 제품을 과감하게 네 개로 줄인 일이었다. 이후 잡스는 “당신과 같이 똑똑한 인재들이 시시하고 형편없는 제품에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애플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평생 동안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빌 게이츠조차도 “몇 가지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인력을 확보하면서 제품을 혁명적인 것으로 광고하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은 놀랍습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탁월한 선택과 집중력을 높이 샀다.
그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판단하기 위해 제품과 경영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는 그가 시장과 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데 중요한 근간이 됐다. 애플이 추구하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도 제품의 본질에 대한 잡스의 고민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진정으로 단순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본질에 깊이 파고들어가 제품에 대한 모든 것과 제조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역량을 집중하고 이를 통해 사고의 틀을 파괴하는 것은 잡스의 창의적 리더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며 이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혁신적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됐다.
잡스는 일을 할 때 우선순위를 정해서 거기에 관심을 모두 쏟았고 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 나타나면 단호하게 싸우거나 무시했다. 그러한 리더로서의 집중력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단호하게 “안 돼”라고 외칠 수 있었고 이는 애플의 조직 문화에도 잘 정착됐다. 애플에서는 “No”라고 이야기하는 게 “Yes”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중요했다. 상대방의 의견에 아무런 비판 없이 수긍하는 직원들을 잡스는 가장 혐오했다. 잡스의 집중하는 능력과 단순함에 대한 집착은 그의 선 수행에서 나왔으며 이러한 직관력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리더십에 있어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바로 명확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일이다. 리더의 명확한 우선순위가 중요한 이유는 이에 따라 조직의 자원(resource)이 배치되고 이는 전략의 효과적인 실행과 성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 못지않게 명확한 우선순위에 따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혹은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목표를 달성하고 위대한 성과를 창출하는 잭 웰치나 스티브 잡스 같은 리더의 비결이다. 직원들이 일은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부진하다면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일들에 대한 우선순위가 명확한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가장 유능한 인재와 예산이 집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잡스의 선택과 집중에 의한 탁월한 성과 창출의 리더십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의 리더십 4
일에 대한 명확한 책임 소재를 부여하고 디테일에 집중하라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서 배워야 할 뜻밖의 사항 중 하나는 명확한 책임 소재를 중요시 하는 태도와 디테일에 초점을 맞추는 리더로서의 행동이다. 필자는 혁신이 “직원들을 자유로운 초장에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 놀게 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고 굳게 믿었다. 엄격한 책임감과 명확한 책임소재, 그리고 성과에 대한 철저한 평가 없이 구글의 20% 룰 같은 방식을 시행하다가는 조직 전체가 혼란에만 빠지고 기대했던 혁신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가장 잘 간파한 사람이 바로 잡스다. 혁신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를 바탕으로 경쟁 기업보다 더 빨리 고객의 니즈를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 그러면서도 수익 창출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려면 명확한 책임소재를 부여하고 그 개발과정 하나하나마다 리더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잡스는 권한 위임을 하는 리더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중요한 것일수록 직접 참여해 그 과정 하나하나마다 자신의 철학을 불어넣었다. 아이디어 개발 단계부터 시작해 색상, 디자인, 질감, 광고, 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필요 이상으로 고집을 부려 직원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 명확한 책임소재와 책임감, 그리고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게 잡스 리더십의 핵심이다. 주요 프로젝트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라도 잡스는 종종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제품 개발의 근본적인 방향을 수정하곤 했다. 아이폰을 디자인할 때도 이런 잡스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발동했다. 처음 디자인은 알루미늄 케이스 안에 유리 스크린을 넣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어느 월요일 아침 잡스는 그의 수석 디자이너인 아이브를 찾아와 어제 그것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한 이야기를 한다. 아이폰은 디스플레이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기존 디자인은 케이스가 디스플레이를 배려하기는커녕 경쟁을 벌이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디자인하기 위해 9개월간 사투를 벌인 디자인팀에게 이것을 바꾸려면 앞으로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데 원한다면 총을 줄 테니 자신을 죽이든가, 아니면 디자인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든가 결정하라며 팀원들을 독려했다. 팀원들은 잡스의 말에 공감하며 열정을 보였고 잡스는 후에 “애플에서 경험한 가장 뿌듯한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잡스의 명확한 책임 소재에 대한 강조를 잘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애플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을 하면 잡스가 자기 사무실로 불러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통과 의례가 있다. 질문은 “사내 청소부와 부사장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다. 대답을 못하고 당황해 하는 신임 부사장에게 잡스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사내 청소부로부터 직급이 올라가면서 목표 달성을 실패했을 때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와 핑계를 이야기하곤 하지요. 그런데 조직 어느 시점에서인가부터는 그러한 변명이 사라지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조직이 성과를 창출할 수 있지요. 내 생각에 그 시점은 부사장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책임감이 강한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게 잡스 리더십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잡스는 매주 월요일부터 다양한 회의를 했다. 회의는 파워포인트를 바탕으로 한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슈들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이자 성과를 관리하는 자리였다. 따라서 애플의 회의 방식은 단순한 안건에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부여해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에 대한 혼란으로 업무가 등한시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애플에서는 그 흔한 매트릭스 방식이나 위원회(committee) 등의 제도가 전무했다. 애플의 조직 자체도 ‘Apple’s Core’라고 알려진 기능(function) 중심의 구조로 그 중심에 잡스가 위치해 조직 내 모든 것을 조정하는 방식이 잘 작동했다. 따라서 애플은 매출 100조 원에 직원 수 5만 명인 거대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제품 출시 48시간 전에도 가격 구조를 변경할 수 있는 민첩한(nimble) 조직을 유지하며 흡사 벤처회사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잡스의 리더십 5
최고의 인재를 뽑아 그들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주어라
스티브 잡스의 인재상은 아주 단순했다. 바보 멍청이 아니면 천재 혹은 영웅.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멍청이에 속했고 워즈니악이나 아이브 같은 이들이 천재에 속했다. 그는 애플에 ‘머저리’ 혹은 ‘이류 인재’가 넘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심지어는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뽑아 팀을 꾸린 J.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그의 롤 모델로 삼았을 정도였다. 아울러 그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다. 그리고 탐나는 인재를 설득해 애플에 입사하게 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마력적인 능력을 자랑했다.
창업 후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자 그와 함께 애플을 함께 경영할 능력 있는 경영자가 필요했고 그의 눈에 들어온 이가 당시 펩시에서 탁월한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던 존 스컬리였다. 잡스는 근본적으로 건방지고 안하무인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자신이 탐내는 인재를 ‘포섭’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무릎을 꿇는 파격도 서슴지 않았다. 스컬리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지면서 잡스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플로리다와 뉴욕으로 몇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정성을 기울인다. 그리고 마침내 잡스는 스컬리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연봉 100만 달러, 입사 보너스 100만 달러, 그리고 조기 퇴직금 100만 달러. 1983년 당시 애플의 매출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제 개인 주머니에서라도 꺼내서 드리겠습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스컬리는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거절의 뜻을 비쳤고 이에 좌절한 잡스는 고개를 떨구고 자기 발끝을 응시하다가 “한 평생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라고 그를 자극했고 결국 스컬리는 며칠 후 애플에 합류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공을 들인 스컬리에게 자신은 결국 애플에서 쫓겨나는 운명을 맞았으니 이 또한 잡스의 인생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다.
잡스에게 가장 중요한 직원은 그가 ‘톱 100’라 칭한 직원들이다. 그는 새로운 회사로 떠난다고 가정했을 때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꼭 태우고 싶은 사람들만 가려내 ‘톱 100’를 구성했는데 이들이 애플의 핵심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잡스는 이들을 일년에 한번씩 고급 휴양지에 데리고 가서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고 새로 개발해야 할 제품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애플의 미래를 결정하곤 했다. 그리고 개발 중인 제품의 모델도 미리 보여줌으로써 회사에 대한 몰입을 높이고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잡스는 톱 100를 애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며 물질적인 보상은 물론 세상을 바꾼다는 꿈과 목적의식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하지만 잡스는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뛰어난 인재를 뽑아 이들이 원하는 것을 주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줬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끊임없는 도전과 목표를 설정해주고 이를 통해 그들의 역량을 발전시켜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 리더는 부하들로부터 원망의 대상도 될 수 있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들의 역량개발과 성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높은 목표를 설정한다는 진정성이 있다면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데 모든 관심이 있고 이를 통해 인기 많은 리더가 되려 할 때 이는 포퓰리즘으로 변질되고 만다.
잡스는 부하들에게 “이거 쓰레기잖아”라고 이야기하며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이게 어떻게 최선의 방법이고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줬다. 그의 부하들에 대한 높은 기대수준과 견디기 힘들 정도로 버겁기만 한 과도한 책임감, 변덕 심한 성격,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폭언, 건방지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종합해보면 지옥 같은 직장과 악마 같은 상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정작 애플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애플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이었고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높은 기대치를 부여하는 잡스의 행동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지치게 만들었지만 견뎌내기만 하면 아주 좋은 결과를 발휘했고 스스로의 역량도 놀랍도록 향상되게 만들어 줬다. 그는 부하들을 위축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그들이 잡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해줬다. 그리고 잡스에게 한 번이라도 인정을 받게 되면 비로소 그를 따르는 ‘사도’가 돼 그에게 철저하게 종속되기에 이른다.
함부로 따라 하다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이유
위대한 기업을 세 번씩(두 번의 애플과 픽사)이나 세우고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며 21세기 가장 혁신적인 기업을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분석하면서 ‘함부로 따라 하다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라는 부제를 달아놓기로 한 이유는 그가 리더로서 보여준 행동들이 그냥 맹목적으로 따라 하기에는 너무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부하들의 약점을 공격해 위축되게 하고 이를 이용한 것.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전혀 없이 자기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했던 수많은 ‘또라이’ 같은 행동들. 감정 표출에 대한 절제가 전혀 없어 회의 중 탁자를 치며 폭발하고 때로는 눈물을 쏟아내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 목표 달성을 위해 공동 창업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워즈니악 같은 사람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배신했던 비윤리적인 행동들. 모든 것을 조정하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 완벽한 이기주의자같이 행동한 것. 공감능력이 결여돼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펼친 것. 필요하면 그 누구보다 더 냉정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했고 스스로를 시대의 반항아로 설정했지만 부에 대해선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하지만 잡스에게는 그가 지닌 이 모든 부정적인 면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카리스마와 재능, 그리고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조합이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만들어 냈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는 ‘위대한 리더’가 아니라 그냥 ‘또라이’가 될 확률이 훨씬 더 높기에 함부로 따라 하지 말라는 부제를 꼭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잡스 리더십의 다섯 개 핵심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해 성공한 리더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보편 타당한 원리라는 생각에 기꺼이 스티브 잡스라는 특정한 상황을 빌려 적어 보았다.
애플의 제품에는 왜 전원 스위치가 없을까?
스티브 잡스는 갔지만 그가 만든 영혼을 울리는 제품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산으로 남아 많이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애플의 제품에는 전원 스위치가 없다. 잡스는 신의 존재에 대해 항상 반신반의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그의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자신의 무엇인가가 살아남기를 원했다. 그래서 죽는다는 게 ‘딸각’ 누르면 꺼져 버리는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라고 그가 죽음 언저리에 도달했을 때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
잡스의 레가시
잡스는 어느 사물이나 본질적 역할이 있고 모든 사물은 자신의 본질적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한다고 믿었다. 그는 심지어 “만일 사물에도 감정이 있다면 물을 담는 게 본질적인 역할인 물컵은 물이 차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잡스는 자신의 본질적 역할이 부하의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친절하고 존경받는 리더가 되는 것보다는 인류에게 위대한 도구를 들려주는 일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타인의 말과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보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와 기준을 가지고 한 평생 ‘Stay hungry, stay foolish’하게 살다간 진정성 있는 리더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광기를 지닌 악마와 같았지만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큰 축복이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듯하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조직에 진정한 영혼이 될 수 있는 리더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벌써부터 그리워 진다. 영혼이 있는 리더에 대한 그리움. 이게 잡스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레가시(legacy), 즉 유산이다. 리더는 레가시를 남기는 존재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djung@yonsei.ac.kr
필자는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를 거쳐 2008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4년 미국경영학회 서부 지부로부터 ‘올해의 유망한 학자상’을 받았다. 2010년 리더십 분야의 최고 학술지인 <The Leadership Quarterly>의 ‘올해의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매일경제 선정 한국의 경영대가 30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주 연구 분야는 리더십과 조직행동론이다.
잡스의 리더십 3
본질에 대한 집착과 이를 통한 선택과 집중력을 키워라
리더로서 잡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제품과 일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이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을 파악하고 이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그는 항상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게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선택과 집중에 매달렸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잡스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20여 개로 불어난 애플 제품을 과감하게 네 개로 줄인 일이었다. 이후 잡스는 “당신과 같이 똑똑한 인재들이 시시하고 형편없는 제품에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애플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평생 동안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빌 게이츠조차도 “몇 가지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인력을 확보하면서 제품을 혁명적인 것으로 광고하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은 놀랍습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탁월한 선택과 집중력을 높이 샀다.
그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판단하기 위해 제품과 경영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는 그가 시장과 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데 중요한 근간이 됐다. 애플이 추구하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도 제품의 본질에 대한 잡스의 고민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진정으로 단순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본질에 깊이 파고들어가 제품에 대한 모든 것과 제조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역량을 집중하고 이를 통해 사고의 틀을 파괴하는 것은 잡스의 창의적 리더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며 이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혁신적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됐다.
잡스는 일을 할 때 우선순위를 정해서 거기에 관심을 모두 쏟았고 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 나타나면 단호하게 싸우거나 무시했다. 그러한 리더로서의 집중력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단호하게 “안 돼”라고 외칠 수 있었고 이는 애플의 조직 문화에도 잘 정착됐다. 애플에서는 “No”라고 이야기하는 게 “Yes”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중요했다. 상대방의 의견에 아무런 비판 없이 수긍하는 직원들을 잡스는 가장 혐오했다. 잡스의 집중하는 능력과 단순함에 대한 집착은 그의 선 수행에서 나왔으며 이러한 직관력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리더십에 있어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바로 명확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일이다. 리더의 명확한 우선순위가 중요한 이유는 이에 따라 조직의 자원(resource)이 배치되고 이는 전략의 효과적인 실행과 성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 못지않게 명확한 우선순위에 따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혹은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목표를 달성하고 위대한 성과를 창출하는 잭 웰치나 스티브 잡스 같은 리더의 비결이다. 직원들이 일은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부진하다면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일들에 대한 우선순위가 명확한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가장 유능한 인재와 예산이 집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잡스의 선택과 집중에 의한 탁월한 성과 창출의 리더십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의 리더십 4
일에 대한 명확한 책임 소재를 부여하고 디테일에 집중하라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서 배워야 할 뜻밖의 사항 중 하나는 명확한 책임 소재를 중요시 하는 태도와 디테일에 초점을 맞추는 리더로서의 행동이다. 필자는 혁신이 “직원들을 자유로운 초장에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 놀게 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고 굳게 믿었다. 엄격한 책임감과 명확한 책임소재, 그리고 성과에 대한 철저한 평가 없이 구글의 20% 룰 같은 방식을 시행하다가는 조직 전체가 혼란에만 빠지고 기대했던 혁신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가장 잘 간파한 사람이 바로 잡스다. 혁신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를 바탕으로 경쟁 기업보다 더 빨리 고객의 니즈를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 그러면서도 수익 창출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려면 명확한 책임소재를 부여하고 그 개발과정 하나하나마다 리더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잡스는 권한 위임을 하는 리더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중요한 것일수록 직접 참여해 그 과정 하나하나마다 자신의 철학을 불어넣었다. 아이디어 개발 단계부터 시작해 색상, 디자인, 질감, 광고, 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필요 이상으로 고집을 부려 직원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 명확한 책임소재와 책임감, 그리고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게 잡스 리더십의 핵심이다. 주요 프로젝트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라도 잡스는 종종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제품 개발의 근본적인 방향을 수정하곤 했다. 아이폰을 디자인할 때도 이런 잡스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발동했다. 처음 디자인은 알루미늄 케이스 안에 유리 스크린을 넣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어느 월요일 아침 잡스는 그의 수석 디자이너인 아이브를 찾아와 어제 그것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한 이야기를 한다. 아이폰은 디스플레이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기존 디자인은 케이스가 디스플레이를 배려하기는커녕 경쟁을 벌이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디자인하기 위해 9개월간 사투를 벌인 디자인팀에게 이것을 바꾸려면 앞으로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데 원한다면 총을 줄 테니 자신을 죽이든가, 아니면 디자인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든가 결정하라며 팀원들을 독려했다. 팀원들은 잡스의 말에 공감하며 열정을 보였고 잡스는 후에 “애플에서 경험한 가장 뿌듯한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잡스의 명확한 책임 소재에 대한 강조를 잘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애플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을 하면 잡스가 자기 사무실로 불러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통과 의례가 있다. 질문은 “사내 청소부와 부사장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다. 대답을 못하고 당황해 하는 신임 부사장에게 잡스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사내 청소부로부터 직급이 올라가면서 목표 달성을 실패했을 때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와 핑계를 이야기하곤 하지요. 그런데 조직 어느 시점에서인가부터는 그러한 변명이 사라지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조직이 성과를 창출할 수 있지요. 내 생각에 그 시점은 부사장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책임감이 강한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게 잡스 리더십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잡스는 매주 월요일부터 다양한 회의를 했다. 회의는 파워포인트를 바탕으로 한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슈들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이자 성과를 관리하는 자리였다. 따라서 애플의 회의 방식은 단순한 안건에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부여해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에 대한 혼란으로 업무가 등한시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애플에서는 그 흔한 매트릭스 방식이나 위원회(committee) 등의 제도가 전무했다. 애플의 조직 자체도 ‘Apple’s Core’라고 알려진 기능(function) 중심의 구조로 그 중심에 잡스가 위치해 조직 내 모든 것을 조정하는 방식이 잘 작동했다. 따라서 애플은 매출 100조 원에 직원 수 5만 명인 거대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제품 출시 48시간 전에도 가격 구조를 변경할 수 있는 민첩한(nimble) 조직을 유지하며 흡사 벤처회사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잡스의 리더십 5
최고의 인재를 뽑아 그들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주어라
스티브 잡스의 인재상은 아주 단순했다. 바보 멍청이 아니면 천재 혹은 영웅.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멍청이에 속했고 워즈니악이나 아이브 같은 이들이 천재에 속했다. 그는 애플에 ‘머저리’ 혹은 ‘이류 인재’가 넘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심지어는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뽑아 팀을 꾸린 J.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그의 롤 모델로 삼았을 정도였다. 아울러 그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다. 그리고 탐나는 인재를 설득해 애플에 입사하게 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마력적인 능력을 자랑했다.
창업 후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자 그와 함께 애플을 함께 경영할 능력 있는 경영자가 필요했고 그의 눈에 들어온 이가 당시 펩시에서 탁월한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던 존 스컬리였다. 잡스는 근본적으로 건방지고 안하무인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자신이 탐내는 인재를 ‘포섭’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무릎을 꿇는 파격도 서슴지 않았다. 스컬리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지면서 잡스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플로리다와 뉴욕으로 몇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정성을 기울인다. 그리고 마침내 잡스는 스컬리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연봉 100만 달러, 입사 보너스 100만 달러, 그리고 조기 퇴직금 100만 달러. 1983년 당시 애플의 매출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제 개인 주머니에서라도 꺼내서 드리겠습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스컬리는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거절의 뜻을 비쳤고 이에 좌절한 잡스는 고개를 떨구고 자기 발끝을 응시하다가 “한 평생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라고 그를 자극했고 결국 스컬리는 며칠 후 애플에 합류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공을 들인 스컬리에게 자신은 결국 애플에서 쫓겨나는 운명을 맞았으니 이 또한 잡스의 인생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다.
잡스에게 가장 중요한 직원은 그가 ‘톱 100’라 칭한 직원들이다. 그는 새로운 회사로 떠난다고 가정했을 때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꼭 태우고 싶은 사람들만 가려내 ‘톱 100’를 구성했는데 이들이 애플의 핵심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잡스는 이들을 일년에 한번씩 고급 휴양지에 데리고 가서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고 새로 개발해야 할 제품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애플의 미래를 결정하곤 했다. 그리고 개발 중인 제품의 모델도 미리 보여줌으로써 회사에 대한 몰입을 높이고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잡스는 톱 100를 애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며 물질적인 보상은 물론 세상을 바꾼다는 꿈과 목적의식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하지만 잡스는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뛰어난 인재를 뽑아 이들이 원하는 것을 주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줬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끊임없는 도전과 목표를 설정해주고 이를 통해 그들의 역량을 발전시켜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 리더는 부하들로부터 원망의 대상도 될 수 있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들의 역량개발과 성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높은 목표를 설정한다는 진정성이 있다면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데 모든 관심이 있고 이를 통해 인기 많은 리더가 되려 할 때 이는 포퓰리즘으로 변질되고 만다.
잡스는 부하들에게 “이거 쓰레기잖아”라고 이야기하며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이게 어떻게 최선의 방법이고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줬다. 그의 부하들에 대한 높은 기대수준과 견디기 힘들 정도로 버겁기만 한 과도한 책임감, 변덕 심한 성격,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폭언, 건방지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종합해보면 지옥 같은 직장과 악마 같은 상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정작 애플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애플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이었고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높은 기대치를 부여하는 잡스의 행동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지치게 만들었지만 견뎌내기만 하면 아주 좋은 결과를 발휘했고 스스로의 역량도 놀랍도록 향상되게 만들어 줬다. 그는 부하들을 위축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그들이 잡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해줬다. 그리고 잡스에게 한 번이라도 인정을 받게 되면 비로소 그를 따르는 ‘사도’가 돼 그에게 철저하게 종속되기에 이른다.
함부로 따라 하다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이유
위대한 기업을 세 번씩(두 번의 애플과 픽사)이나 세우고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며 21세기 가장 혁신적인 기업을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분석하면서 ‘함부로 따라 하다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라는 부제를 달아놓기로 한 이유는 그가 리더로서 보여준 행동들이 그냥 맹목적으로 따라 하기에는 너무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부하들의 약점을 공격해 위축되게 하고 이를 이용한 것.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전혀 없이 자기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했던 수많은 ‘또라이’ 같은 행동들. 감정 표출에 대한 절제가 전혀 없어 회의 중 탁자를 치며 폭발하고 때로는 눈물을 쏟아내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 목표 달성을 위해 공동 창업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워즈니악 같은 사람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배신했던 비윤리적인 행동들. 모든 것을 조정하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 완벽한 이기주의자같이 행동한 것. 공감능력이 결여돼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펼친 것. 필요하면 그 누구보다 더 냉정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했고 스스로를 시대의 반항아로 설정했지만 부에 대해선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하지만 잡스에게는 그가 지닌 이 모든 부정적인 면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카리스마와 재능, 그리고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조합이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만들어 냈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는 ‘위대한 리더’가 아니라 그냥 ‘또라이’가 될 확률이 훨씬 더 높기에 함부로 따라 하지 말라는 부제를 꼭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잡스 리더십의 다섯 개 핵심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해 성공한 리더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보편 타당한 원리라는 생각에 기꺼이 스티브 잡스라는 특정한 상황을 빌려 적어 보았다.
애플의 제품에는 왜 전원 스위치가 없을까?
스티브 잡스는 갔지만 그가 만든 영혼을 울리는 제품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산으로 남아 많이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애플의 제품에는 전원 스위치가 없다. 잡스는 신의 존재에 대해 항상 반신반의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그의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자신의 무엇인가가 살아남기를 원했다. 그래서 죽는다는 게 ‘딸각’ 누르면 꺼져 버리는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라고 그가 죽음 언저리에 도달했을 때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
잡스의 레가시
잡스는 어느 사물이나 본질적 역할이 있고 모든 사물은 자신의 본질적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한다고 믿었다. 그는 심지어 “만일 사물에도 감정이 있다면 물을 담는 게 본질적인 역할인 물컵은 물이 차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잡스는 자신의 본질적 역할이 부하의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친절하고 존경받는 리더가 되는 것보다는 인류에게 위대한 도구를 들려주는 일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타인의 말과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보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와 기준을 가지고 한 평생 ‘Stay hungry, stay foolish’하게 살다간 진정성 있는 리더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광기를 지닌 악마와 같았지만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큰 축복이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듯하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조직에 진정한 영혼이 될 수 있는 리더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벌써부터 그리워 진다. 영혼이 있는 리더에 대한 그리움. 이게 잡스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레가시(legacy), 즉 유산이다. 리더는 레가시를 남기는 존재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djung@yonsei.ac.kr
필자는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를 거쳐 2008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4년 미국경영학회 서부 지부로부터 ‘올해의 유망한 학자상’을 받았다. 2010년 리더십 분야의 최고 학술지인 <The Leadership Quarterly>의 ‘올해의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매일경제 선정 한국의 경영대가 30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주 연구 분야는 리더십과 조직행동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