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시끄러워지고 있다. 그 중심에 복지 논쟁이 자리 잡고 있다.

한편에서는 ‘보편적 복지’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복지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망한다고 핏대를 세운다. 앞으로 과정과 결과가 어떠하든 이제 복지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중심 이슈이고, 집권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가늠자가 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복지가 중요 시책이 되었고 예산의 절반 이상이 복지 분야에 편성되어 있다. 우리 구의 예산 역시 전체의 51.4%가 사회복지 분야에 배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보건의료 예산의 일정 부분, 동사무소 운영 경비의 일부, 각종 사회단체에 대한 보조금 등도 사실상 사회복지 성격이 들어 있다. 이런저런 항목을 합하면 ‘복지 예산’이 거의 60% 수준에 이르지 않을까 여겨진다.

숫자로 보면 얼핏 복지 천국(?)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 만하다. 그런데 이런 수치에도 불구하고 왜 서민에겐 복지 문제가 여전히 갈증과 불만의 대상이 되는 걸까.


   
ⓒ시사IN 양한모


예산 명세서를 들여다보니 이해가 됐다. 기초단체마다 대동소이하겠지만 복지만을 담당하는 부서가 우리 구의 경우 사회복지과·노인장애인복지과·여성아동복지과로 세 개 있다.

사회복지과는 주요 업무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사업을 관장한다. 예산 420억여 원 가운데 360억원이 기초생활 수급자 등에 대한 지원이다. 노인장애인복지과 예산은 455억원인데 이 중 기초노령연금 지급에 180억원, 경로당 운영 지원과 경로당 증·개축 등 지원에 24억여 원, 그리고 장애인 시설운영 지원에 107억원 등이 쓰인다. 여성아동복지과는 전체 예산 498억원 가운데 민간 영·유아 보육시설 지원에 320억원이 지출된다. 이들 사회복지 예산의 절반 이상은 중앙정부의 보조나 광역단체의 지원금으로 이뤄진다. 이는 예산 가운데 큰 가닥만 나열한 것이다. 나머지 예산은 소액으로 자잘하게 나뉘어 있어 연중 12개월로 나누면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예산이 적지 않다.


복지 문제는 이념 대립의 문제 아니다


우리 구 사회복지 예산 편성에서 보여주듯 우리나라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저소득 취약 계층에 대한 극히 기본적인 부조 영역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초생활 수급자나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그리고 장애인 시설 구성원들은 대개 스스로 생존할 능력을 사실상 상실한 계층이다. 지자체 예산의 절반 이상을 투입하지만 이런 계층이 갈수록 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들 계층에 대한 실효적 지원은 줄어드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반면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이하 서민층은 보육·교육·일자리·주택·노인 부양·장애아 문제 등 갈수록 열악해지는 환경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특히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로 일컬어지는 50대 초·중반 서민층의 미래에 대한 공포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직장에서 퇴출과 구조조정의 파고를 맞은 데다 사회적 비용 지출은 이제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가정경제를 분담해야 할 20대 자녀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경제적 불구나 다름이 없다. 자영업자들도 경쟁의 심화와 경기침체, 대규모 유통업의 상권 침탈로 생존 환경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 물가는 뜀박질이다. 이렇기 때문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서민 계층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경제 기반이 취약한 지방은 이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복지나 경기 대책을 취할 수 있는 영역은 협소하거나 여력이 없다. 여생은 30년, 40년으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남의 일로 여기던 복지 문제가 자신의 문제로 성큼 다가왔지만 막막할 뿐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 의제로 떠오른 복지 문제는 더 이상 이념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민 생활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왜 복지 문제가 대다수 서민의 관심사로 급부상하는지 국정 운영의 근본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