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사회] ‘대한민국’은 어떻게 움직이나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3:00
1996년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비행기를 탄 도로시(러네이 젤위거). 일반석에 탄 그녀는 우연히 1등석 승객들의 행복한 대화를 듣게 된다. 그러곤 곧 침울해한다. 아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1등석이 부러워서 그래. 예전에는 1등석에 더 나은 기내식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더 나은 인생이 있네.”
2019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조국 대란’에 흔들린 상당수 한국인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만 존재하는 ‘코리안 드림’이 있었다. 그렇게 한국인들의 마음에는 ‘세습사회’라는 네 글자가 무겁게 자리 잡았다. 금수저·흙수저로 대변되는 ‘수저계급론’은 대한민국을 가장 잘 설명하는 ‘진리’로 회자됐다.
비약일까. 데이터를 보면 이런 여론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사저널이 9월16~1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 10명 중 9명은 한국이 부와 지위가 대물림되는 세습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는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이동을 하기 어렵다’는 의견에 전체의 82%가 동의했다. ‘우리 사회의 세습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의견에도 84% 이상이 공감을 표했다. 여론은 펄펄 뜨겁게 끓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여론은 펄펄 끓고 있을까? ‘조국 대란’으로 촉발된 세습사회 논란은 왜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화나게 만들었을까? 너무 뻔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렇게 쉬운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세습사회라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기 때문이다.
공정성이라는 역린 건드린 ‘조국 대란’
이미 재벌들은 2세를 거쳐 3세와 4세로까지 세습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적이고 전사적인 노력이 투입된다. 대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견기업은 중견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부와 지위를 대물림한다. 이 세습에 어떤 명분이나 공정성은 없다. 핏줄만이 있을 뿐이다. 재계만의 문제일까. 물론 아니다. 정계, 문화계, 연예계 등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슷한 일은 계속 반복 중이다.
그런데 왜 유독 여론은 이번 ‘조국 대란’에 ‘튀게’ 반응했을까? 기울어진 언론의 탓일까? 왜 우리는 ‘어떤 세습을 유독 불공정하다고 느낄까?’ 시사저널은 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간단하지 않은 질문을 쫓다 보면 ‘세습사회 대한민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해 볼 수 있다고 봤다. 또 더 중요하게는 우리가 ‘세습사회 대한민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추적해 볼 수 있다고 여겼다.
‘조국 대란’의 핵심은 ‘공정성’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청문회 과정에서 사모펀드 문제, 웅동학원 문제 등 각종 의혹이 확산됐지만 여론이 폭발적으로 움직일 때는 늘 ‘공정성’이라는 한국 사회의 역린을 건드릴 때였다. ‘내로남불’ 논란이 그랬다. 정의와 공정을 외치던 그가 알고 보니 자신의 삶을 그렇게 꾸려오지 않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비판적 여론은 강하게 형성됐다.
여기에 주목할 지점이 있다. 왜 여론은 야당 국회의원의 자녀 취업 특혜 의혹 때와 다른 강도로 반응했을까?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KT 딸 부정채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대학만큼 취업은 한국 사회에서 예민한 문제다. 하지만 비판 여론의 강도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달랐던 대중의 기대치가 여론 차이를 가져온 것으로 해석된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여론은 조국이, 문재인 정부가 더 정의롭고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높았던 기대만큼 실망과 배신감이 컸던 것이다.
조국 대란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삼키기 시작한 순간은 그의 딸 논문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는 병역 문제와 함께 가장 ‘공정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단일대오를 유지하던 문재인 정부 지지 진영이 쪼개지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부터다. 조 장관의 딸은 한영외고에 다니던 2008년 단국대 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인턴으로 2주간 활동하며 의학 실험을 도왔다. 장영표 단국대 의대 교수는 이 실험으로 의학 논문을 쓰고 제1저자에 조 장관의 딸을, 자신의 이름은 책임저자에 올렸다.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여론은 폭발했다. 2030 청년층이 강하게 반발했고, 그들의 부모 세대도 연이어 흔들렸다.
여론은 왜 다른 이슈가 아닌 자녀의 교육 문제에 폭발했을까? 지금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측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해 제기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의혹도 역시나 ‘교육 문제’다. 나경원 원내대표 아들이 미국 고등학교 재학 시절 대학 실험실에서 3주 정도 실험을 하고 의공학 관련 논문 포스터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의혹이다.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교육 문제가 여론의 향배에 중요한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들만의 ‘교육 사다리’…믿음이 깨졌다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에게 교육은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라는 신화, 일종의 ‘코리안 드림’을 꿈꿀 수 있게 해 주는 유일무이한 ‘사다리’였다. 출신 배경도 상관없었다. 수능시험이나 사법고시와 같은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졌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유일하게 공정한 기회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육이라는 운동장에서 벌어진 승패에 승복했다. 또 여기에 권위를 부여했다.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분명한 ‘능력’이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한 차별은 ‘나쁜 차별’이 아닌 ‘정당한 대우’라는 대원칙에 합의했다. 즉 교육 사다리는 공정하며, 경쟁을 통해 위로 올라간 이가 더 많은 과실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에서 시험에 합격한 ‘공채 출신’들이 ‘비공채 출신’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강한 반감을 보이는 것은 이런 맥락에 기인한다.
물론 교육 사다리가 공정하다는 인식은 많이 희석됐다. 오히려 대중은 이제 교육이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기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대학 입시가 초등학교 때 결정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기다. 영어유치원이라는 말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여기엔 모두 부모의 부와 지위, 가용 시간과 같은 자원이 요구된다. 고등교육으로 가면 부모의 능력은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된다. 해외 유학과 석·박사 학위라는 황금 티켓은 ‘노력으로 인한 능력’보다는 선택된 이들에게 주어진 한정된 기회처럼 여겨진다.
분명히 대중은 부의 정도에 따라 교육 사다리 진입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서울 대치동처럼 사교육 1번지에서 더 좋은(?) 사교육을 받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 외고와 같은 특목고를 다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별했다. 그럼에도 대중은 최소한 공정성의 서사를 믿었다. 대중에게 교육 사다리는 마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과 비슷했다. 출발선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노력하면’ 그래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고, ‘죽도록 노력하면’ SKY(서울·고려·연세대)라는 왕관을 손에 쥘 수 있다고 믿었다.
‘교육 계급에 따른 세습 문제’ 두고두고 논란 부를 듯
그런데 이번에 그 믿음이 깨졌다. 대중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대중의 상상력은 드라마 《SKY캐슬》에서 그려진 정도였다. 부자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 ‘입시 코디’라고 불리는 ‘입시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24시간 맞춤형 관리를 하고, 자기들끼리 독서 토론을 하고, 그 모임을 현직 로스쿨 교수가 주도하고, 그래서 SKY를 많이 보내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드라마 속 설정만으로도 한국 사회는 적잖이 놀랐는데, 이번 조국 대란에서 드러난 ‘고등학생 논문 제1저자’는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대중은 이런 ‘사적 네트워크’로 이뤄진 ‘기회의 불평등’이 존재하는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이 놀라움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1등석에는 더 나은 기내식이 있는 것 정도로만 알았던 대중이 그곳에 ‘더 나은 인생’으로 가는 ‘특급 티켓’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특급 티켓은 그들만의 리그인 사적 네트워크에서만 나오고, 자신들은 그런 기회를 영영 가질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왕관을 갖기 위해 버티는 무게, 내 자식이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그 무게를 그들의 자식들은 가뿐히 피해 가고 있음을 목격했다. 그리고 훗날 사회에서 그들은 더 많은 능력을 인정받아 갑(甲)으로, 내 자식은 을(乙)로 살아가게 될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과 다름없다. 조국 대란이 벌어진 이유다.
조국 대란은 ‘그들만의 리그’를 다층적으로 분화시켰다. 서민들의 박탈감과 중산층의 박탈감이 서로 달랐다. 청년층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의 학내 촛불집회가 불러온 논란이 그렇다. 그들에게도 이번 논란은 충분히 충격적인 일이었을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마저도 사치로 보였다.
지난 8월31일 청년 노동운동 단체인 ‘청년 전태일’이 마련한 공개 대담회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행사에는 구의역 김군의 동료로 함께 일했던 정주영씨가 참석했다. 정씨는 무대에 올라 “사실 이번 논란이 불편하다. 이마저도 있는 사람들끼리의 논란이라는 생각이 든다. 형편상 공고에 들어가 졸업하기도 전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죽는 동료를 지켜봐야 했다. 우리와 엘리트 인생 사이에 어찌 출발선이 같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조국 대란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 분명히 존재했지만,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많은 문제를 끄집어 올렸다. 특히 교육 계급에 따른 세습 문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대한민국은 알아버렸다. 역사는 뒤로 갈 수 없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0:00
‘조국 사태’는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였다. 숱한 의혹 가운데 가장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안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을 둘러싼 ‘입시 특혜’ 논란이었다. 조국 장관 가족이 사회적 지위와 인적망을 이용해 딸의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의 ‘스펙’을 만들었고, 이를 대학 진학과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에 활용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그것은 ‘공정’과 ‘정의’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가 됐고, 한국 사회에서 ‘수저론’으로 대표되는 격차에 대해 분노하는 계기가 됐다. 높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길을 열어주는 ‘기회의 세습’은 ‘불평등’이라는 대못이 돼 대한민국에 박혔다.
세습의 사전적 의미는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는다’는 뜻이다. 이미 세습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을 둘러싼 세습 문제는 많고 많았다. 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경영 세습과 경제적 부의 세습, 정치적 권력의 세습, 종교계 세습 논란까지, 여러 방면에서 세습은 활용됐고 계속돼 왔다. 그럼에도 이번 조국 사태를 통해 떠오른 ‘기회의 세습’에 특히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80의 법칙’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전체 인구 중 20%가 전체 부(富)의 80%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 법칙은 이제 신분 차별과 사회적 격차를 설명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세계적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 리처드 리브스는 그의 저서 《20 vs 80의 사회》에서 상위 20%가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80%가 넘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진단했다. 이 싸움에 동원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20%가 누리는 삶을 배타적으로 물려줄 상속재산이 ‘교육’이라 했다. 그는 기부금 입학, 동문 자녀 우대제도, 청탁 등을 불공정 카르텔을 만드는 ‘기회 사재기’라고 표현했다.
‘조국 사태’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이전에 있었던 세습의 그것과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로 향할 수 있는 공정한 사다리에 대한 접근이 ‘기회 사재기’ 혹은 ‘기회 세습’에 따라 차단됐다는 것에 대한 분노, 또한 공정과 정의, 평등을 강조해 왔던 정부에 대한 배신감 때문일지 모른다. 시사저널은 이 시점에 국민 1000명에게 물었다. 대한민국은 세습사회인가. 세습은 심화되고 있는가. 대한민국을 개혁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84.7% “세습 현상 심화되고 있다”
불공정 대한민국, 세습사회, 특권과 반칙 사회. 노력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없는 사회.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이렇게 판단했다. 시사저널이 ‘포스트데이터’에 의뢰해 9월16~17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우리나라가 부와 지위 등이 대물림되는 세습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90.1%가 ‘대한민국이 세습사회’라고 응답했다. 세대별로 살펴보면 20대 92.2%, 30대 92.6%, 40대 95.2%, 50대 91.1%의 응답률을 보였다. 대한민국이 세습사회라고 생각하는 비중은 60대 이상이 82.8%로 가장 낮았다.
또한 국민은 세습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데도 동의했다. ‘우리 사회의 세습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84.7%가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0대가 87.6%로 가장 높았다. 이어 50대 87.4%, 40대 87.1%, 60대 이상 81.8% 순이었다. 20대가 80.5%로 응답률이 가장 낮았다.
세습 현상이 가장 심화됐다고 꼽힌 분야는 재계다. ‘한국에서 세습 현상이 가장 심화된 분야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국민의 41.1%가 ‘재계’라고 답했다. 정치계가 27.7%로 그 뒤를 이었고 법조계(12.3%), 학계(7.6%), 언론계(5.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세대별로 살펴보면 20~50대에서는 ‘재계’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고, 60대 이상에서는 다수가 ‘정치계’를 꼽았다.
국민 10명 중 4명은 보수진영에서, 3명은 진보진영에서 세습 현상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세습 현상이 보수와 진보 진영 중 어디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40.1%가 ‘보수진영’이라고 답했고, 28.6%가 ‘진보진영’이라고 답했다. ‘둘 다 심하다’는 응답이 26.9%나 된 점도 눈에 띈다. ‘둘 다 심하지 않다’고 답한 비중은 단 1.1%였다. 20~50대는 보수진영의 세습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고 답했다. 20대 39%, 30대 46.6%, 40대 50.5%, 50대 36.9%였다. 그러나 60대 이상의 세대는 진보진영의 세습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35.4%)고 응답했다.
82% “한국 사회, 계층 이동하기 어려워”
노력의 사다리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가. 국민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이동을 하기 어렵다’는 의견에 82%가 동의했다. 20대 83.9%, 30대 82.1%, 40대 82.3%, 50대 84.4%로 모두 80% 이상의 응답률을 보였고, 60대 이상은 78.8%가 동의했다. 또한 국민의 80.5%는 우리 사회에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특권과 반칙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20~40대는 80% 이상의 응답률을 보였고, 50대는 76.6%, 60대 이상에서는 74.3%가 동의했다.
‘법’ 역시 국민의 불신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모든 국민이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가 지켜지고 있다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국민의 67.8%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공정하다’고 대답한 비율은 30.9%에 그쳤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법이 공정하다고 응답한 비중은 60대가 39.3%로 가장 높았고, 20대가 33.4%로 그 뒤를 이었다. 법의 공정성을 가장 불신하는 연령대는 30대였다. 30대의 경우 ‘법이 공정하다’고 응답한 비중은 20.5%에 그쳤다.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을 지낸 이명웅 변호사는 이번 ‘조국 사태’에서 문제로 지적된 교육 특혜 역시 단순한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상 평등의 원칙과 교육법에 위배되는 문제라고 봤다. 차별 취급을 금지하고,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취급을 요구하는 것이 ‘평등의 원칙’인데, 이 과정에서 나타난 불공정과 자의성이 많은 국민의 분노와 비난을 초래했다면 그 행위를 법이 규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가 특혜로 세습되는 사회는 허울뿐인 민주주의 국가”라며 “기회의 균등과 과정의 공정성, 결과의 정당성은 법의 핵심 본질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정한 법질서 확립과 사법 개혁 바란다”
그렇다면 국민은 ‘세습사회’ 개혁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판단했을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사법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공정한 법질서 확립과 사법 개혁’이 27.7%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조국 사태’에 대한 비판을 떠나, 결국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선행돼야 하는 것은 법질서와 사법 개혁이며, 이것이 다른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은 것이다.
‘선거제 개편을 비롯한 개헌 등 정치 개혁’이 22.5%, ‘공정방송 등 언론 개혁’이 20.1%로 그 뒤를 이었고, 대학 입시 등 교육 개혁(14.9%), 경제민주화로 상징되는 재벌 개혁(10.5%) 순으로 나타났다.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은 교육에 가까운 20대 연령대에서 높았고, 세대가 높아질수록 낮았다. 20대는 22.3%가 응답한 반면, 60대 이상은 9.9%만이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무선 RDD(무작위 임의걸기) 방식에 의한 ARS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0.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통계보정은 2019년 5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에 따른 성·연령·지역별 림가중 방식으로 이뤄졌다.
- 차윤주 정치전문 프리랜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3:00
2·3세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정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란 긍정적 시선도 없지 않지만, 권력 대물림과 불공정 세습이란 따가운 눈초리가 우세한 게 사실이다. 아직 우리 정치현실이 일본의 만성화된 세습 정치 행태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계급사회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어 곧 일본 정치현실을 따라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부분 아버지 지역구 그대로 물려받아
올해 3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장남 안아무개씨가 민주당 이후삼 의원실 인턴비서로 채용됐다. 안씨는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의 비서 성폭행 사건 1심 판결 직후 SNS에 피해자를 조롱하는 글과 사진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안씨 채용에 대해 “능력이 있고 본인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있다”고 했지만, 안 전 지사의 아들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고려됐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충북 제천·단양이 지역구인 이 의원은 안 전 지사의 정무비서관을 지낸 측근이다.
지금 20대 국회에서 2·3세 정치인으로 금배지의 꿈을 이룬 의원은 15명이다. 총 국회의원 정원의 5%인데,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역대 국회보다 많은 수준이라 2016년 20대 총선이 끝난 뒤 언론은 한국도 ‘2세 정치인 전성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진단한 바 있다. 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4명(이종걸·노웅래·김영호·김정우), 자유한국당 7명(김무성·정우택·정진석·김세연·이종구·장제원·김종석), 바른미래당 3명(유승민·이혜훈·김수민), 우리공화당(홍문종) 1명 등이다.
노웅래 의원의 아버지는 5선 국회의원과 재선 마포구청장을 지낸 ‘마포 터줏대감’ 노승환 전 의원이다. 3선인 노 의원은 아버지의 지역구(서울 마포갑)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김세연(부산 금정), 정진석(충남 공주·부여·청양), 홍문종(경기 의정부을), 장제원(부산 사하) 의원 등도 아버지 지역구에서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6선의 ‘정치 거물’ 김상현 전 의원의 아들인 김영호 의원은 아버지(서울 서대문을)가 뿌리내렸던 지역구가 여의치 않자 옆동네(서대문갑)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의원 본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자원이 없었다면 이들이 지금의 자리에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에선 정치 명문가 출신이 유력 정치인의 필수 조건이 된 지 오래다. 전후 일본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와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이 정치 금수저의 선봉에 있다. 최근 개각에서 최연소(38) 각료로 임명된 고이즈미는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후광을 업고 2009년 28세의 나이로 중의원에 당선돼 내리 4선을 했다. 아버지 개인비서를 하는 등 인생의 경로마다 금수저 혜택을 받았다는 비판이 따라다니지만 일본 내 대중적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계에선 선거마다 당선인 중 세습 정치인이 20%가 넘고, 이는 당 지도부나 내각 각료 등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비중이 더 커진다. 보수 성향의 세습 정치인들이 정계 주류가 되면서 대내외 정치가 우경화하는 요인으로 지목되지만, 제도를 통해 세습이 강화되고 있다. ‘후원회’와 투표 방식이 대표적이다. 의원 후원회를 통해 받은 후원금은 비과세로 자식에게 물려주고, 용지에 직접 지지 후보를 적는 주관식 기표 방식도 정치 가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이런 노골적인 제도는 없지만, 2·3세 정치인이 유리한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선거라는 게임에 참여하려면 유력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재력과 인맥, 조직 등이 뒤따라야 한다. 정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은 부모로부터 자산을 넘겨받아 경쟁자들보다 출발선 앞쪽에 선다. 여권 한 관계자는 “다른 분야와 달리 정치를 하는 데 필요한 자원은 대부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것들”이라며 “정치자금은 물론이고 선거판을 좌우하는 조직 등 정치 신인이 몇 년간 바닥을 굴러도 얻기 힘든 정치적 자산을 2세 정치인들은 거의 공짜로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기초·광역의원까지 합하면 세습 비율은 훨씬 높을 것”이라고 했다.
세습 정치의 폐해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부녀 대통령’ 시대를 연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들 손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왔다. 정치인으로서 스스로 이뤄낸 성취보다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권력 정점까지 올랐기에 그의 몰락은 2·3세 정치인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내년 21대 총선엔 15명의 현역 2·3세 정치인을 비롯해 다수 원외 인사들이 출정을 벼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문 의장의 아들 문석균씨를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이 호남 지역 또는 비례대표 출마자로 거론된다. 정대철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아들 정호준 전 의원(민주평화당, 서울 중구),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자녀인 김성동 전 의원(바른미래당, 마포을)과 김숙향 한국당 동작갑 당협위원장, 도영심 전 의원의 아들 이재영 한국당 강동을 당협위원장, 서청원 무소속 의원의 아들 서동익씨 등이 채비를 하고 있다. 2·3세 정치인들의 약진은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세습 정치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은 가업 정치인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일본을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여의도에도 서서히 세습 정치의 그림자가 크고 짙게 어른거리고 있다.
- 임명묵(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0:00
[기고] 90년대생이 본 ‘세습사회 대한민국’
2007년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이후 세대론은 한국에서 끊임없는 의제로 논의됐다. 고도성장기에 기득권을 확립한 기성세대가 새로이 진출할 청년세대의 앞날을 가로막는다는 이야기였다. 곧이어 세대론은 ‘청년 담론’과 ‘586론’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즉 무능력한 꼰대에, 고도성장기 사회에서 꿀만 빨아온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세대인 586이 그저 세상에 던져졌을 뿐인 청년들을 계속 착취하고 수탈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2007년에 본격화된 이런 논의는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인 2013년에도 이어졌고, 해를 거듭하며 더 거세졌다. 예컨대 ‘청년이 정치의 주역으로 떠올라야 한다’ ‘청년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등의 이야기 말이다. 특히 청년들이 힘겨운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런 식으로 20대와 30대 청년들을 위로하는 수많은 칼럼이나 기고문이 쏟아졌다. 물론 가시적인 변화가 따라오지는 않았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문제의 진단부터 잘못되었는데 해결이 잘될 리가 만무했다.
‘20대 청년론’이라는 틀린 진단
나는 약 4년 전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이런 식의 ‘20대 청년론’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게 됐다. 당시 서울대에 입학해 2학년까지 마쳤던 나는 휴학한 후 고향에 내려와 있었다. 그때 잠시 천안시 구시가지의 한 PC방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그간 나름 ‘범생이’로 살아왔고, 새벽 PC방은 손님으로만 갔던 내게 당시의 경험은 꽤나 색다르게 다가왔다.
작은 동네의 야간 PC방에 있다 보면 매일 보던 사람들을 똑같이 볼 수 있다. 대체로 시키는 메뉴까지 늘 같다. ‘조지아 커피에 신라면 하나’ 이런 식이다. 내 또래의 많은 20대 청년들이 그렇게 PC방에 와 새벽밤을 매일 지새우고 갔고, 아르바이트생인 나와는 얼굴도 서로 익히고 가끔 짧은 대화도 주고받곤 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PC방 죽돌이, 죽순이들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애초에 대한민국 PC방 문화가 태동할 때부터 생겨난 인간 군상이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구태여 하는 이유는 이때 청년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벽을 느꼈기 때문이다.
PC방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쉬는 날, 서울에 가서 종종 대학 친구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소식을 듣곤 했다. 그럴 때마다 서울대에 다닐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어떤 이질감을 느꼈다. 어제까지 보고 온 친구들은 하루하루 돈 벌며 PC방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었으며, 그들의 삶에서 부모의 긍정적 영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만나는 친구들은 서로가 힘들다고 말은 하지만 미래에 대한 번듯한 계획도 있고, 사회 이슈에 대해 각자 생각을 갖고 토론할 줄 알며, 인턴이나 어학연수 등으로 각종 경험을 쌓고 부모가 제공하는 유무형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PC방 죽돌이’와 ‘엘리트 서울대생’이라는 양극단으로 나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양극단은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 무엇 하나 공유할 수 없는, 서로 다른 경험을 쌓았다. 그들의 미래는 당연히 겹칠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사이에 있는 청년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이런 식의 상하층으로 분류될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수많은 ‘청년 담론’은 대체로 이런 차이를 무시하곤 했다. ‘청년 담론’에서 로스쿨을 나와도 막막하다는 이들과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는 이들은 똑같이 ‘요즘 살기 팍팍해진 청년들’로 묶인다. 진단부터 틀렸으니 대안이 이상하고, 자연스레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온라인에서 자생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수저론’은 본질을 훨씬 잘 짚어낸 분석이었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물려주는 수저가 어떤 재료로 이뤄져 있냐는 것이지 나이가 몇 살이냐가 아니었다. 평소 사람들이 느끼던 직관과 너무나 잘 부합하는 구도였기에 수저론은 폭풍 같은 기세로 대중의 정서를 사로잡았고 공식적인 논의의 장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이미 이런 정서와 불만이 조성되어 있었기에 ‘조국 사태’가 던진 파문이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던 것 아닐까 싶다. 부유층이 자녀에게 따뜻한 아랫목에만 있게 해 주는 것을 그 전이라고 누가 몰랐겠는가? 하지만 그게 이런 치밀하고 세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처음 알게 된 사람은 아주 많을 것이다. 즉 말만 무성했던 수저 계급이 어떤 식으로 대물림되는지, 마치 구름이 걷히자 태양이 나오는 것처럼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각각 입시와 불평등을 건드려 대흥행을 한 《SKY캐슬》이나 《기생충》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리얼리티쇼의 재미까지 더해서 말이다.
결국 이번 조국 사태는 사람들이 다들 어렴풋이, 아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던 것을 그저 확인해 준 사건이었다.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그러는 자유한국당은?” 이렇게 반문하지만 사실 소용없는 이야기다. 나와 함께 새벽 PC방을 지키던 친구들에게 묻는다면 “나경원이 조국보다 나쁘구나”가 아니라 “다 똑같은 놈들이네요”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가 상대방 자녀의 논문을 가지고 공격하는 것부터가 촌극이다. 그런 일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청년이 태반인데 말이다.
정치권의 촌극, 그리고 남겨진 이들
씁쓸한 것은 이들을 대표해 주겠다는 정치인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이 정부부터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야심 차게 출범했지만 결과는 어떤가? 소득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개혁적’이라는 정권의 핵심 인사는 계층 대물림을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던 게 드러났다. 집권 초 논의라도 됐던 불평등 문제는 어느새 대일 관계나 검찰 개혁 등에 밀려 의제에서도 사라진 것 같다. 아마 현 정부는 이제 강력한 사회적 프로그램을 추진할 의사도, 비전도, 역량도 없을 것이다.
이번 정권의 의의는 불평등 해결을 들고 왔지만 역설적으로 계층 문제를 사람들에게 정말 제대로 인식시켰다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해결은 오히려 다음 정권을 기약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한국이 이미 계층사회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그 문제의식 위에서 이전과는 차별화되는 정책적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세력, 그리고 타인을 도덕적으로 훈계하기보다는 먼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성찰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국 장관 딸 논문과 장학금 지급은 헌법과 교육법 위반
이명웅 변호사(법학박사·전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 (sisa@sisajournal.com)
헌법은 제11조에 평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재판소는 “평등의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로서 국가가 입법을 하거나 법을 해석 및 집행함에 있어 따라야 할 기준인 동시에, 국가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이 불평등한 대우를 하지 말 것과 평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국민의 권리”라고 규정했다(헌재 2001. 8. 30. 99헌바92등).
일반적으로 차별이 정당한지 여부는 자의성으로 판단한다(헌재 2011. 2. 24. 2008헌바56). “무릇 법 운영에 있어 객관적인 자의성을 주는 것은 법치주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고 결국 법의 집행을 받는 자에 대한 헌법 제11조의 평등권 침해가 되는 것이다.”(헌재 1990. 4. 2. 89헌가113). 이러한 평등 원칙은 교육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이를 구체화한 교육기본법 제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혜, 누군가에게는 부당한 차별과 불공정 초래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들에 관한 특혜와 입시 부정 문제는 폭이 매우 넓지만, 여기서는 초기에 드러난 의학논문 제1저자와 장학금 문제만 가지고 살펴본다. 조국 장관의 딸 조민이 의학논문의 제1저자가 될 실체적 능력과 자질이 없고, 그것이 부당한 이유(외국대 입시용)와 조작(조민의 소속 및 사전심의 위조)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밝혀졌다. 대한병리학회는 그런 이유로 이 논문의 게재를 취소했다. 조민이 제1저자가 된 것은 객관적으로 자의적인 것이었음이 명백하다. 조민은 그 의학논문의 저자가 된 것을 고려대 입시 자기소개서에 기재했다.
자기소개서의 자의적인 특혜는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가점이 됐을 것이다. 흔히 1~2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고려대 입시에서 그녀가 합격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 대신 누군가는 탈락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이나 서울대 환경대학원 장학금도 그녀의 성적이나 수강 상황을 볼 때, 그리고 다른 학우들의 경우와 비교할 때 객관적으로 자의적인 특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특혜들은 결국 조국 장관과 부인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 등과 연관돼 있다. 조민 자신만의 능력이나 자질, 혹은 지위 때문에 그러한 특혜가 주어지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의학논문의 주임교수와 부산대 장학금 수여 교수가 그녀의 부모를 알고 있었으며, 그 인식의 정도는 조민에 대한 특혜를 고려해 줄 만큼 강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나 사회통념과 경험칙에 부합할 것이다. 조민 자신도 누구보다 그런 특혜의 본질과 불공정성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본다. 또 그러한 특혜로 말미암아 누군가는 차별을 받아 입시에서 떨어지거나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조민이 받은 이러한 특혜들은 제로섬 게임으로 조민에게는 부당한 이득을 준 반면, 누군가에게는 부당한 차별과 불공정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한 특혜는 정당한 이유 없는 차별취급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민을 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만들어준 교수와 장학금을 수여하면서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한 부산대 의전원 교수, 서울대 환경대학원은 교육기본법 제4조 제1항을 위반한 것이다. 조민 부모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행위를 한 것이다.
조국, 헌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에 대한 사실상 ‘공범’
조민과 함께 자의적인 특혜를 야기하고 그 혜택을 기꺼이 받아들인 그녀의 부모 역시 차별행위에 대한 사실상의 ‘공범’이라고 볼 수 있다. 조국 장관과 부인 역시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 등을 이용해 자녀의 차별취급을 의욕하고 실현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가 헌법상 평등 원칙의 정신과 교육기본법 제4조 제1항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가.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며, 사회생활의 중요한 문제를 규율하고 정서한다. 사실에 대한 당위를 설정하고 현실을 이에 부합시키고자 이끈다. 평등의 원칙은 차별취급을 금지하고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취급을 요구한다. 조국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 사건에서 보듯, 입시와 교육 과정에서 나타난 불공정과 자의성은 많은 젊은이와 국민의 분노와 비난을 초래했다.
그것은 단순히 도덕성의 훼손과 해당 입시제도의 잘못된 관행의 문제인가? 아니면 하나의 중요한 법적 문제인가? 그러한 국민적 분노와 비난을 야기하는 행위를 법이 규율하고 정서하고 있지 않다면 심각한 법의 흠결이 될 것이다. 필자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이에 대해 규율하고 있다고 본다. 비록 그 규정들이 추상적이고 가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 어느 실정법(형사법)보다 가볍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회의 균등과 과정의 공정성과 결과의 정당성은 단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핵심과 본질에 해당하는 문제다. 정의는 법 규정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모든 법의 목적을 구성한다. 법의 그물이 느슨한 것이 아니라, 법의 정신과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 등이 교육에 있어서 특혜로 세습되는 사회는 허울뿐인 민주주의 국가다. 교육과 입시가 중요할수록 그에 상응하게 형평과 공정성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준수돼야 한다. 조국 장관의 자녀에 관한 사안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실효화를 위한 우리 사회의 명백한 과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도덕이나 불찰의 문제가 아닌, 법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가족 예능’ ‘인맥 예능’ 비판 속 ‘연예계 금수저’ 논란 확산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2019.09.24 13:00
연예인 2세들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건 2014년이다. MBC 《아빠 어디가》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이 막 들어오던 시기부터다. 당시 《아빠 어디가》에 출연했던 윤민수의 아들 윤후나 성동일의 아들 성준, 이종혁의 아들 준수, 송종국의 딸 지아, 김성주의 아들 민국은 모두 연예인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2세들이 모두 방송에 진출한 건 아니다. 하지만 훌쩍 자란 윤후가 최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2》 《나의 외사친》 《우리 집에 해피가 왔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조금씩 얼굴을 보이고 있는 건 향후 행보를 가늠하게 한다. 이후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연예인 2세들의 방송 출연 배턴을 이어받아 송일국의 삼둥이는 큰 인기를 얻었다. SBS도 연예인 2세 예능에 뛰어들었다. 2015년 방영된 《아빠를 부탁해》에 이경규의 딸 이예림, 조재현의 딸 조혜정, 고 조민기의 딸 조윤경, 강석우의 딸 강다은이 출연했다. 50대 아버지와 20대 딸의 소통과 공감 과정을 담는다는 콘셉트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당시 꽤 인기가 있었다.
《아빠 어디가》 같은 관찰 예능이 본격화되면서 연예인 2세들의 방송 출연이 늘어나게 된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관찰 예능이라는 형식의 불편함을 일정 부분 상쇄시키기 위해 가족 코드를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등장시킨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또 그들이 나오는 걸 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또 보통 사람들은 화제성도 작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연예인 가족이라는 대안이다. 연예인 2세는 연예인과 보통 사람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연예인 2세 출연이 많아지며 생겨난 불편함들
사실 연예인 2세들이 대를 이어 연예계로 진출하는 사례는 오래전부터 흔했다. 이를테면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딸 정재은도 일찍부터 가수로 활동했고, 배우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나 악역 전문배우로 이름 높았던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도 배우로 활동해 지금은 어엿한 중견이 돼 있다. 이들의 대를 이은 연예활동은 부모의 아우라가 작용했다기보다는 그 영향을 받은 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가까이서 부모의 활동을 보며 자란 2세가 자연스럽게 그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대를 이은 연예계 활동은 대중의 비판을 받기보다는 화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최근 연예인 2세의 연예계 진출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물론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나 정을영 감독의 아들 정경호처럼 아버지의 후광을 오히려 가리고 자신만의 노력으로 그 영역에서 입지를 넓힌 연예인의 경우는 비판보다는 박수가 더 크다. 하지만 갑자기 가족 예능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별다른 노력 없이 얼굴을 알리고 연예계 활동을 하게 된 경우 비판을 넘어 논란이 생겨나기도 한다.
《아빠를 부탁해》로 얼굴을 알린 조재현의 딸 조혜정은 그 후 《처음이라서》 《연금술사》를 거쳐 《상상고양이》에서는 주연으로 연기를 했고, 그 후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역도 요정 김복주》 《고백부부》 등에 연달아 출연했다. 그 코스가 보통의 신인배우들에게는 결코 허락될 수 없다는 점에서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이경규의 딸 이예림도 마찬가지다. 이경규와 함께 《예림이네 만물트럭》 같은 예능을 했고 그 후에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신입사관 구해령》 등 드라마에 출연해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아직 단역이나 조연에 머물고 있어 논란이 크지 않을 뿐 이들 연예인 2세의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불편함이 만들어지는 건 일종의 세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들만의 꽃길’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현실은 훨씬 더 경쟁적이고 어렵지만 저들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부모의 후광으로 잘나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박탈감이다.
연예인 2세들의 연예계 활동에 대한 불편한 정서들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그 빌미를 제공하는 연예인 가족 관찰 예능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빠 어디가》를 만들었던 김유곤 PD는 tvN으로 이적한 후 연예인 2세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둥지탈출》을 내놨지만 혹평을 받았다.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은 《스타 골든벨》로 얼굴을 알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니 2014년 브랜뉴뮤직과 전속계약을 맺고 MC그리로 래퍼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화제가 됐지만 《아빠본색》 같은 가족 관찰 예능에 김구라와 함께 출연하면서 이른바 ‘연예계 금수저’ 비판이 솔솔 나오고 있다.
연예계에서 도드라지는 ‘수저계급론’
흥미로운 점은 최근 이런 특혜 논란이 연예인 2세만이 아니라 연예인 가족(이를테면 부부나 부모 같은)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연예인 2세의 방송 출연이 출발선 자체가 다른 보통 사람들의 박탈감을 만들어낸다면, 연예인 가족 또한 별 특별한 노력 없이 혈연으로 너무 쉽게 방송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미운 우리 새끼》 《동상이몽2》 《아내의 맛》 같은 프로그램 등이 연예인 가족 방송 출연의 불편함으로 논란이 생겨나는 단적인 사례다. 게다가 이제는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도 특별한 목적이나 메시지 등이 등장하지 않을 경우 저들만의 ‘홍보’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인식까지 생겨나고 있다. 어디서 봤던 연예인 조합이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그렇다. 이는 혈연은 아니지만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인맥 예능’으로 불리며 지탄을 받는다.
연예계는 대중의 정서가 그 어떤 분야보다 극명하게 투영되는 지대다. 최근 들어 연예인 2세, 연예인 가족, 나아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내는 연예인 조합의 프로그램에 대중이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건 현재 우리네 사회가 가진 태생적 세습 구조에 대한 대중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이른바 ‘수저계급론’은 그래서 연예계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 현실에서야 이 세습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연예계에서는 모든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문화만큼 한마디씩 쉽게 보탤 수 있는 지대도 없다. 그러니 논란은 의외로 커져 심지어 연예인 프리미엄이 아니라 ‘역효과’를 토로하는 이들까지 등장한다. 우리네 아픈 세습사회가 가져온 또 하나의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 우석훈 《88만원 세대》 저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0:00
한 시대가 끝났다. 최소한 1987년 이후로 방어하려는 사람과 공격하려는 사람이 한국에서는 명확했던 것 같다. 익숙한 좌우의 개념보다는 막으려는 보수, 공격하려는 진보, 그렇게 우리는 움직여왔다. 그건 몇 번에 걸친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집권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속에는 최소한 ‘구체제’ 혹은 기득권에 대한 공격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변화를 희망하는 세력이 더 커진다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 시절의 20대가 50대가 되는 동안, 새로운 청년들은 그래도 보수 쪽은 아니었다. 막연하게나마,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 정점에 촛불집회가 놓인 것 같다. 작게 보면 이명박 정부 이후의 보수 정권에 대한 반대 흐름이었지만, 길게 보면 1987년 이후 사회 변화에 대한 갈망이 그 순간에 터져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신호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은, 이런 한 시대가 좋든 싫든, 이제는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와 같다. 만약 조국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까? 조금 늦춰질 수는 있더라도,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권은 사회적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뭔가 해소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하려고 했는데 못 한 것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하는 척만 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그 구체적인 결정의 메커니즘을 알기는 어렵다. 어쨌든 결과는 같다. 좋게 해석하면, 내년 총선 때 개혁 세력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얻고 그 힘으로 개혁을 하기 위해 움츠리는 기간이 지금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경제보다 더 큰 개념이다. 그리고 사법 개혁보다 더 큰 개념이다. 사법 개혁에 사회 개혁의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아마 자유한국당(한국당)이 ‘천막당사’ 혹은 그 이상의 뭔가를 하지 않으면 20대가 대거 한국당을 찍는 일은 여전히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투표 독려’를 할 염치를 가진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남았을까? 아니, 그들이 귀 기울일 만한 원로나 스타가 한국에 얼마나 남았을까? 지난 몇 년 동안 당시 야당의 ‘투표 독려’는 사실상 정치에 덜 관심 있는 청년들을 선거장으로 불러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다음 총선은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10대들에게서 생겨날 것 같다. 지금 불만이 있는 20~30대는 그래도 대학교에서 집회도 하고, 나름 매스미디어에서 목소리도 경청한다. 정말 화가 난 10대들의 경우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여론조사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불만에 마이크를 대는 경우도 거의 없다.
1987년 이후로 이어져 온 개혁파의 명분은 이제 끝났다. 10대, 20대가 그것을 명분으로 인정하지 않는 순간, ‘87년 체계’의 명분은 끝났다. 남은 건 법무부를 비롯한 행정 절차였고, 결국 조국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그 행정의 방향을 위해 10대와 20대를 ‘우리’ 속에서 버린 것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다음 흐름은 어떨까? 다음 총선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대혼란이 올 것인데, 이 혼란이 괴로운 것은 미래가 담보되지 않은 혼란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20대의 마음은 더 떠나고, 10대들의 관심은 더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지금의 60~70대인 ‘유신 세대’가 청년과 멀어지면서 고립되듯이, 현 정권의 실세인 ‘386 세대’들의 미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좋든 싫든, 한 시대가 끝났다. 다음 시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아쉬운 것은, 조국에게 들인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사회적 격차,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교육 부조리에 썼더라면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한국 정부는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커졌을 것이다.
조국 이후의 시대, 이 시대의 특징은 명분이 없는 시대라는 점일 것이다. 격차 해소, 불평등 완화, 그런 건 ‘당위성’이지만 그런 정도의 당위성은 이명박 전 대통령도 얘기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얘기했다. 당위성이 있다고 그냥 명분이 생기지는 않는다. 대중, 특히 청년의 지지가 없는 당위성에는 명분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는 어때야 할까? 명분 없는 시대,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엘리트 50대, 이들을 대체할 더 많은 30~40대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 개혁이라면 그게 ‘1번 개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진짜로 이 부조리하고 위선적인 사회를 완화하기 위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더도 말고, 조국 임명을 위해 썼던 힘만큼이라도 격차와 불평등 해소를 위해 쓴다면,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혼동 속에서 뭐라도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미 계급사회를 넘어 완성형 세습 자본주의로 굳어가는 이 시스템을 흔들어야 한다. 한 시대가 끝났지만, 다음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혼동의 가을과 겨울, 그 시기에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10대들을 볼 면목이 없다. 지금은 기뻐할 때도, 슬퍼할 때도 아니다. 대혼동을 맞아 두 눈 크게 뜰 때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0:00
1981년생 동양철학자 임건순. 그 흔한 석·박사 학위는 없다. 대학·연구소 같은 제도권에 속해 있지도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 출간한 동양철학 분야 책만 11권이다. 11권. 확실한 고정 독자층이 없다면 불가능한 수치다.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 불법체류자’라 정의하는 이 돈키호테 같은 남자는 최근 386 세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며 주목받고 있다. 그는 왜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명칭 정리부터 하자. 386을 어떻게 정의하나.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전부가 나쁘다, 1980년대 대학 다닌 사람 전부가 나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제가 이상한 사람이다. 386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이고, 기득권 계급이자 지배계급이다. 386을 도덕 자본과 발화권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내부자들, 이중구조의 핵심 수혜자들로 본다. 거기에 똑같은 이해관계를 가졌거나 그들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386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특정 자본을 독점한 사람들이다. 독점한 자본을 무기로 해서 정치권력까지 장악했다. 그들이 가진 자본을 도덕 자본 내지 정의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민주화 투쟁을 했다. 군사독재와 싸웠다. 친일파와 군사독재 후손들이 우리 사회 부당한 기득권이었고 우리는 그들과 맞섰다. 그래서 우리는 옳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그러니 우리가 정치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게 당연하다’라는 서사를 갖고 있다고 본다.”
왜 이들을 기득권 계급으로 보나. 어느 사회나 50대는 사회의 허리 세대로 중추 역할을 하지 않나.
“단순히 기득권자 정도가 아니라 나쁜 기득권자들이고 나쁜 지배세력이라 그렇게 본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386은 세대 문제가 아니다. 계급 문제다. 이들은 도덕 자본과 정의 자본만이 아니라 발화권력도 장악하고 있다. 각 신문사 칼럼난을 보면 386 놀이터다. 문화·예술·출판 카르텔은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전형적 386들이다. 독점적으로 가진 자본(정의 자본)과 힘(발화권력)이 있고 그것들로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사회·문화권력까지 장악한 사람들이 그런 현상과 구조를 국민이 별 거부감 없이 용인하게까지 성공했다. 그들은 지배계급이 맞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세습’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받고 있다. 이번 사태를 총평한다면.
“민주화 인사들, 특히 386의 위선과 거짓이 폭로됐다고 본다. 평등이니 정의니 하면서 자기 자식들은 ‘유리 사다리’ 태워서 위로 보냈다. 여러 의혹과 문제에도 합법적이었다는 소리를 하는데, 자신들은 야당과 산업화 세력들을 비판할 때 불법적인 사항만 꼬집었는지 되묻고 싶다.”
386이 비겁하다는 지적인가.
“저는 386들의 위선과 거짓, 그들이 남몰래 많이 해 온 유리 사다리 만들기만이 아니라 386 식자(識者)들의 양심과 이성의 마비도 주목해야 할 본질적 문제라고 본다. 진영논리만 남은 추한 그들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386이 이제는 이념공동체에서 이익공동체로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다. 이익공동체로 완전히 바뀌었는데 그렇기에 더욱더 저열한 이념 공세를 펼 거라고 본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계속 자유한국당 지지자, 일베, 극우 등 저열한 딱지를 붙일 거다.”
386이 조선시대 사대부와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386은 정책적 유능함에 있어 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서, 혹은 대외적으로 경쟁을 통해 뭔가를 벌어오고 가져올 역량이 있어서 지도층·지배층이 된 사람들이 아니다. 과거 투쟁했고 친일파와 군사독재 부역자들과 싸운 우리가 옳으니, 우리가 정의로우니, 즉 우리가 군자니 정치사회적 특권을 쥐는 게 당연하다는 자의식은 전형적인 사대부적 자의식이다. 우리는 군자 너희는 소인, 우리는 정의 너희는 적폐, 그러니 거래·타협·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청산의 대상이라는 서사. 역시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우리는 깨끗한 사림 너희는 타락한 훈구, 우리는 군자당 너희는 소인들의 파당. 조선시대 부패하고 무능한 지배집단과 386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이들이 민주화에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 아닌가.
“도덕과 윤리는 자기 삶의 방향성과 준칙으로 한정돼야만 한다. 타인을 찌르는 창과 칼로 활용하고, 정치사회적 지대와 특권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 되는데 386은 그러고 있다. 이런 삐뚤어진 모습은 나름 역사가 유구하다. 조선조 때 많이 보던 모습인데 사대부들의 추한 모습, 추한 권력경쟁의 모습이다. 그때와 흡사하게 윤리와 도덕을 갖고 권력을 쥐려고 하고 소유한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은 ‘조선시대 망령’ 말고는 다른 이름을 붙여주기 어렵다.”
도덕을 무기로 편을 가르는 정치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자유한국당 같은 경우는 답이 없고 사라지는 게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어쨌든 저들은 이제 이 나라의 지배세력이 아니다. 386 정치인들이 이제 주류다. 그런데 그들은 계속 산업화 세력을 악마화한다. 저들이 우리 사회의 나쁜 기득권이자 실질 지배권력이라고 지목한다. 386은 이 나라의 실질 지배세력이면 가명등기, 차명등기 하지 말고 실명등기 하고 당당히 비판도 받고 책임도 져야 한다.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 권력은 쥐고 흔들면서 기득권은 야당과 언론, 재벌 탓이라고 하는 건 대체 무슨 말이냐. 이런 식의 호도가 그들에겐 참 유용하다. 자신들에게 올 비판과 비난을 희석해 준다. 386은 이런 식으로 아주 장시간 자신들에게 도착할 청구서를 막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다.”
구조적 얘기도 해 보자. 심화하는 불평등으로 사회적 분노가 폭발 직전처럼 보인다.
“한국은 복지가 지나치게 역진적이다. 중산층 위주로 편향돼 있다. 복지는 하층민과 서민, 차상위 계층을 도와야 하는데 사실상 상위 10%인 중산층 위주로 돼 있다. 당장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통합 등 연금 개혁을 통해 복지가 하층민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복지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고 있지 못하다.”
학계에 만연한 세습 고리는 어떻게 끊어야 할까.
“한국에서 지식인이라는 존재는 사교육과 유학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세상 물정 모르는 지식인들만 생겨나는 게 현실이다. 특히 교수들의 기러기 아빠 문제와 자녀 유학 문제는 정말 큰 문제다. 교육자라는 분들이 ‘남의 자식은 한국에서, 내 자식은 외국에서’로 사는 게 말이 되나. 정작 우수한 학생들 우리 학교에 오라고 하면서 말이다. 힘들게 일해 학부형들이 낸 등록금으로 억대 연봉 받고 자신들 연금 국민 세금으로 떠받쳐주는데 자기 자식들은 조기유학 보내고 있다. 교수 신규 채용 때 영어 강의 가능자로 한정하는 것은 세습을 위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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