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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슬픈 자화상 - 홍장표 “빈곤 해결 위해 한시적 ‘핀셋 복지’ 필요”

일취월장7 2019. 3. 19. 10:07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슬픈 자화상

[복지국가SOCIETY] 복지국가일수록 신뢰지수 높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5일 사상 최초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4/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349달러(원화 기준 3449.4만 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일반 시민들의 감정을 어땠을까? 연합뉴스에 의하면, 1인당 소득 3만 달러 기사에 화가 난다는 표시를 한 사람이 86.7%를 차지했다고 한다. 국민소득 3만 불이라는 숫자가 주는 비현실감에 더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상대적 빈곤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국민총생산(GNP) 자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토목·건설로 4대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도 GNP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과연 GNP가 보통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지표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다. 때문에 살림살이의 가치가 들어있지 않은 GNP 대신에 GNH(국민총행복) 지표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어쨌든 대다수 국민에게 국민소득 3만 달러 뉴스는 우리 사회의 팽배한 불신에 새로운 불신을 하나 더했을 뿐이다.  

우리는 타인과 사회를 얼마나 믿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행복이나 삶의 질 수준은 경제력에 비해 낮다. 2017년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국가 중에서 한국의 경제력은 11위, 행복순위는 29위로 나타났으며, 청년 행복순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경제력과 행복감 간 불일치의 이면에는 '사회 불신'이라는 원인과 '사회 갈등'이라는 결과가 내포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한국인들은 좀처럼 타인이나 사회를 믿지 못한다. OECD가 35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사회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26.6%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74.9%의 국민이 긍정적인 답변을 해 OECD가 35개 회원 국가들 중 사회신뢰도 1위를 차지한 덴마크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신뢰도 성적은 3분의 1일 수준에 그친다. 

세계의 사회과학 연구자 네트워크인 세계가치조사협회(World Value Survey Association)는 1981년부터 5년마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가치조사는 세계 50여 개 국가에서 240여 개의 질문이 담긴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세계인들의 가치와 믿음을 조사하는 학술 프로젝트다. 세계가치조사의 질문에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관계에서 조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라는 항목이 있다. 이 문항에 대해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수 있다"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중에서 대답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믿을 수 있다" 응답률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응답률을 뺀 후 100을 더한 수치를 일반신뢰지수로 사용한다. 때문에 100이 넘으면 신뢰가 불신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100보다 낮으면 불신이 더 높다는 뜻이다.

2005년 5차 조사 결과를 보면, 총 59개 국가에서 조사가 진행됐고 평균은 54.1%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전체 응답자 1200명 중 "대부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8%,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71.1%로 나타나서 일반 신뢰지수 56.9을 기록하며 30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체 평균보다 근소하게 높은 수치이나 상위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매우 낮은 것이다. 

상위 10개 국가를 살펴보면, 1위 노르웨이(148.0), 2위 스웨덴(134.5), 3위 중국(120.9), 4위 핀란드(117.5), 5위 스위스(107.4), 6위 베트남(104.1), 7위 호주(92.4), 8위 네덜란드(90.6), 9위 캐나다(85.9), 10위 벨라루스(85.2)의 순서였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등 주로 중·북부 유럽 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이 포함됐다. 사회주의 국가의 전통이 있는 중국과 베트남을 제외하면 상위권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 복지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왜 신뢰지수가 높을까? 복지국가에서 신뢰지수가 높은 것은 국가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해주고, 설령 경쟁에서 밀려난다고 하더라도 낙오되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 일본 같은 신자유주의 국가는 경제력이 높더라도 사회적 신뢰 수준이 높지 않다. 즉 경제성장이 사회구성원들의 신뢰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지수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유럽 복지국가들은 복지의 증대와 함께 사회적 신뢰가 증가했지만, 영국, 미국, 일본은 정체 상태에 있거나 하락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삶의 불안에서 벗어나야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가치조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신뢰와 갈등의 사회경제학 

그렇다면 이런 신뢰와 불신이 빚어내는 경제적 효과와 비용은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의 갈등 비용은 최대 246조 원에 달한다고 보고되며, 이는 국민총생산(GDP)의 2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개인들이 매년 약 1000만 원을 사회갈등 비용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갈등이 많고, 그래서 많은 비용을 치루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지수가 낮고 통합과 갈등조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0.71로 OECD 평균인 0.44를 한참 상회하고 있으며, OECD 회원국 중에서 4번째로 사회갈등이 심한 국가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갈등 수준이 OECD 평균 갈등지수인 0.44로 완화될 경우, 1인당 GDP는 27%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 실태와 대응 과제 연구'(2016, 대한상공회의소)에 의하면,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는 27%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 수준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 수준인 69.9%로 향상되면, 경제성장률은 1.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서 신뢰 구조만을 제대로 구축하더라도 환경 부하나 별도의 재정 투입 없이도 4%대의 경제성장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왜 이렇게 신뢰가 부족하고 갈등이 많이 일어날까? 위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의 감성적 기질과 특성, 단기간의 압축 성장, 식민지와 독재 정권의 경험, 정치인들의 무능과 부패, 남북 분단, 민주주의의 부족 등 다양한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다. 또 위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가운데 1위로 '정치인의 무능과 부패'(41.4%)를 꼽았으며, 2위로 '서로 배려하는 민주적 시민의식의 부족'(21.0%), 3위로 압축적인 경제성장(17.3%)을 꼽았다. 결국, 민주주의 부족과 정치의 실종이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할 정치권과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인 것이다. 국회의 신뢰도는 15%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언제나 기록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2018) 

한 손에는 복지, 다른 한 손에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갈등이 많고, 신뢰가 낮은 것은 제대로 된 복지국가 시스템과 민주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는 새의 양 날개 혹은 이와 입술의 관계와 같다. 복지국가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디딤돌이라면, 민주주의는 복지국가를 강화하는 촉매제이다. 북유럽에서 복지국가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하는 것은 이 둘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시스템과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지 않아 다양한 형태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화 이전에는 지역 갈등이 심했으나, 이후에는 이념 갈등(87%), 빈부 갈등(82%), 노사 갈등(76%), 세대 갈등(64%), 종교 갈등(59%), 남녀 갈등(59%)의 순으로 갈등이 나타났다. (한국행정연구원, 2018) 

문제의 핵심은 한국 사회의 갈등이 이렇게 중층화·다양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조정하고 통합하지 못하는 정치와 언론의 무능이다. 언론은 사회 갈등을 적절한 방식으로 공론화하고, 정치는 이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를 통합해야 할 국회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당사자로 전락했다. 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언제나 압도적으로 꼴찌를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 검찰과 법원이 낮은 신뢰를 보였다. 그나마 특별한 변화는 그동안 검찰이나 법원과 비슷한 신뢰도를 보였던 중앙행정부처가 45%의 신뢰도로 지난 5년간 약 10% 정도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국행정연구원, 2018)

결국, 문제를 풀 핵심은 시민들의 민주주의 역량이다. 기성의 입법, 사법, 행정의 기득 권력들이 스스로를 반성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권력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소환하는 시민의 민주주의 능력,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제도화 없이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에서 벗어나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민주주의와 제도적 복지의 강화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촛불 시민 혁명을 일구었던 깨어있는 시민들의 복지국가를 향한 기대와 열망, 그리고 용기 있는 혁신적 상상력이 지금 다시 절실하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http://www.podbbang.com/ch/10579)


[단독 인터뷰] 홍장표 “빈곤 해결 위해 한시적 ‘핀셋 복지’ 필요”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8 17:00
‘소득주도성장’의 돌풍과 역풍, 홍장표에게 이유를 묻다

이제 모두 안다. 문재인 정부의 성패는 ‘경제’에서 갈린다는 것을. 위기 때마다 문재인 정부를 구해 주던 대북 이슈는 숨고르기에 돌입했다. 국민들의 시선은 평양과 워싱턴, 그리고 하노이에서 국내로 돌아왔다. 국민들의 눈높이도 ‘내 삶을 바꿔줄’ 민생과 경제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는 위기이자 기회를 맞았다. 

승부처는 역시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브랜드다. 혁신성장·공정경제가 함께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 방향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소득주도성장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내놓은 대안이 바로 소득주도성장이다. 그만큼 찬반이 갈리고 논쟁이 뜨겁다. 결국 소득주도성장의 성공 여부가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높다. 

한동안 소득주도성장은 ‘돌풍’을 일으켰다. ‘가계소득 증대, 가계지출 경감, 사회안전망과 복지 강화’로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동시에 소득분배를 개선한다는 성장론은 진보진영에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오랫동안 진보진영에 성장담론은 아킬레스건이었다. 분배정책과 달리 성장담론에 있어서는 유의미한 정책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해 ‘대안이 뭐냐’는 비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2014년 당시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 신상품을 대안적 경제체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끌어올렸고 대선공약으로 적극 추진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기존 야권이 추진하던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와도 잘 맞았다. 때마침 박근혜 정부에서도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 정치권에 소득주도성장론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소득주도성장‘론’은 이론에서 국가적 정책으로 승격돼 다각도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돌풍은 대한민국에 상륙했지만,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혁신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저항이 많은 법’이라고 치부하기엔 부작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일자리’ ‘성장잠재력 확충’ ‘소득분배 개선’과 같은 소득주도성장의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지 않고 있다. 고용 부진 속 양극화·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일자리는 전년 대비 9만7000개 증가하는 데 그쳐 금융위기 때인 2009년(-8만7000명) 이후 최소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은 9.5%로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소득 최하위 20%(1분위)와 최상위 20%(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3만8200원, 932만4300원으로 7배 넘게 차이가 났다. 반면 1분위와 5분위 가구의 공적이전소득 차이는 13만8700원에 불과했다. 공적이전소득이란 국민연금, 기초연금, 실업급여, 세금환급금 등 정부가 가구에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소득 격차(808만6100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역풍’을 맞은 소득주도성장의 냉정한 현주소다. 

한쪽에서는 ‘폐기하라’고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제대로 하라’고 지적하는 소득주도성장. 양측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고 있지만 계속해서 소득주도성장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홍장표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의 돌풍은 왜 역풍이 됐을까’라는 질문에 가장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장본인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설계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경제 실정’을 제기하고 있다. 그 핵심 고리에 역시 소득주도성장이 있다. 국민들도 묻고 있다. ‘언제쯤 정책효과를 체감할 수 있냐’ ‘틀린 정책이 정말 아니냐’고. 홍 위원장을 만나야 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2018년 9월6일 출범했다. ⓒ 연합뉴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2018년 9월6일 출범했다. ⓒ 연합뉴스

현안부터 묻자. 무디스가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낮췄다. 

“민간 부문에서 성장률을 하향 전망하는 이유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중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게 반영된 결과라 본다. 대외 리스크 요인을 제외한 대내 리스크 부분은 이미 다 반영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성장률 전망치를 가장 잘 맞힌 곳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이었다. 올해 성장률도 이들의 전망치(2.6%) 정도가 될 거라 예상한다.”

총 24조원이 넘는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논란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 정책’이라 봐도 되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 보진 않는다. 일자리 대책이라면 성과가 바로 나야 하는데, 이들 사업은 향후 10년간 연차적으로 추진된다. 이번 예타 면제 결정은 일종의 반성이다. 그동안 SOC 예산을 너무 줄였다. 실제로 건설업이 위축됐다. 예타 면제는 지역균형발전 대책의 일환이다. 지금껏 지역에서 불만이 많았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목표가 불평등·양극화 해소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 보나.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간 지속된 불균형 성장모델 때문이다. 한국은 후발주자였다. 제한된 자원을 가진 추격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다. 그게 더 이상 안 되는 상황이다.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투자와 소비 등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과거의 성장모델 속에 운동장이 기울어졌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바로잡으려는 게 바로 이거다.”

문 대통령이 특위를 구성하며 특별히 주문한 게 있나.

“두 가지 특명을 받았다. 먼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밑그림을 탄탄히 그리라는 것이다. 세부 정책 개발을 통해 빈틈이 없도록 하라는 주문이다. 다른 하나는 현장과의 소통 강화다. 다양한 경제주체들과의 채널을 확보하고 민생 현장과의 접점을 늘려 정책 개발 등의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라는 당부가 있었다. 매달 정책토론회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넘어 정책 개발도 함께 하려고 노력 중이다.”

소득주도성장이 혁신성장에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과거 정부들은 혁신성장에만 초점을 맞췄다. 창조경제, 녹색성장 등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왜 성공하지 못했느냐’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게 소득주도성장이다. 두 개의 성장엔진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도 성공하려면 혁신성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뭔가.

“가계지출 경감 측면에서 보면, 문재인 케어로 대표되는 의료비 경감이 있다. 의료보험 보장성 강화, 치매국가책임제 등은 국민들이 체감하시는 부분이라고 본다. 가계소득 증대 부분에서 보면, 기초연금 인상과 아동수당 지급을 꼽을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가계소득이 확실히 늘었다. 작년 우리가 달성한 2.7% 성장률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힘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그간 우리의 성장 패턴은 수출이었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으로 성장엔진을 하나 더 달았다. 세계 경제의 영향에 좌우되는 ‘수출 외끌이’ 성장 모델은 한계가 분명했다. 작년에 기록한 2.7% 성장률의 기여도를 분석해 보면 소비가 1등, 수출이 2등이다. 정부 지출은 평년작 수준이었고 가장 안 좋았던 게 민간 투자였다. 투자가 안 좋은 상황에서도 2.7% 성장률을 달성한 것은 소득주도성장의 긍정적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다는 증거다.”

홍장표 위원장이 2월26일 열린 ‘포용국가로 한걸음 더, 주거비 경감 및 주거복지 확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장표 위원장이 2월26일 열린 ‘포용국가로 한걸음 더, 주거비 경감 및 주거복지 확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고용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용 부진의 정의에 혼돈이 있다. 다들 고용 부진이라 하면 고용 감소라고 이해한다. 실제로는 고용 증가세가 예년에 비해 줄어든다는 의미다. 고용 대란과는 사실 무관하다. 그럼에도 고용 증가세는 분명 부진했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우선 인구구조 변화, 특히 경제활동인구의 감소가 있다. 한국 경제의 주력인 자동차, 조선, 해운업의 부진이 있었고 이게 용역 등 서비스업의 고용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도소매업의 경우 온라인 쇼핑과 같은 산업 전반의 구조 변화가 매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최저임금의 영향이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없었다는 주장인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은 최대치와 최소치 그 사이에 있을 거라고 본다. 분명 고용 부진에 최저임금의 부정적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고용 부진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그건 일종의 과장이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직격탄을 맞았다고 호소한다.

“저희도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 또 반대 측 이야기도 듣고 있다. 역시 긍정적·부정적 영향이 동시에 있다. 종합적으로 파악해 보면, 전반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도 부담이지만 장사가 안 되는 점이 지금 자영업자분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본다. 소비가 늘고 있지만 골고루 골목상권까지 그 온기가 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요인으로는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 이 부분에 대한 어려움 해소가 급선무다.”

정부가 최저임금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이미 대통령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던 부분이다. 작년과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은 예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의 긍정적·부정적 영향 모두를 고려하는 동시에 한국 경제의 수용성을 감안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본다.”

한정된 자원을 고려하면 보편적 복지로는 현재의 심각한 빈곤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도 최근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한다. 기존 보편적 복지라는 기조를 무너뜨릴 수는 없지만 최근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적잖은 국민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고령층의 빈곤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장기적으로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해야겠지만, 절대적 빈곤 문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국가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선별적 복지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국가의 책임을 다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분명 ‘타기팅 복지’ ‘극빈층 복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와 관련된 정책 건의를 계속하고 있다. ‘핀셋 복지’가 필요하다. 관련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하고 있다.”

향후 집중할 정책과제는 무엇인가.

“세부 정책과제(총 43개)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올해는 국민들이 체감하실 수 있는 과제에 집중하려 한다. 소득격차 해소, 특히 빈곤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비 경감 문제에도 집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업 문제다. 실업뿐만 아니라 낮은 임금에 허덕이는 계층에 정부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즉 올해 경제상황이 작년보다 약한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분들에게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극빈층에게 기초연금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부분 등을 해결해야 한다.” 

홍장표 위원장은 누구? 
‘J노믹스’ 밑그림 그린 ‘소득주도성장’ 주창자

홍장표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 ‘J노믹스’의 핵심 기반인 ‘소득주도성장론’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인물이다.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부경대에 둥지를 틀었다. 학부(사회과학대학)를 수석으로 졸업하며 대통령상을 받았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을 맡다 작년 6월말 물러났다. 하지만 곧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을 맡으며 ‘소득주도성장’의 든든한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세수 예측 실패 뼈아파…올해 예산은 반드시 확장 편성”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8 16:55

‘노무현의 당부’ 못 지킨 문재인 정부의 뒤늦은 반성문

“모든 정책은 재정으로 통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서거 직전 마지막까지 몰두했던 저서 《진보의 미래》를 통해서다. 노 전 대통령의 회한이 담긴 이 책에 유독 강조된 대목이 바로 재정이다. 그는 재정이 큰 나라가 진보의 나라며 이를 위해 과감히 복지를 늘리고 세금도 올렸어야 했는데 자신은 못 하고 물러간다고 했다. ‘진보의 나라’를 꿈꾸며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던 그가 강조한 부분이 바로 재정의 역할인 것이다. ‘노무현의 마지막 당부’였던 셈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의 당부’를 잘 이행하고 있을까? 정부가 지난해 계획보다 더 거둬들인 세금은 25조4000억원이다. 정부 수립 이후 최대 규모다. 무슨 뜻일까. 정부 곳간이 풍성해졌다는 얘기다. 세금이 남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우선 미세먼지 사태처럼 예기치 못한 지출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국가채무도 갚고, 재정상황이 넉넉지 않은 자치단체도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에게 묻는다면,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할 초과세수가 “반갑지 않다”고 답할 거다. 오히려 정부가 어려운 국민 살림은 외면한 채 ‘곳간’만 채웠다고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홍장표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유독 ‘뼈아프다’고 한 대목이 바로 재정 관련 부분이다. 그는 “세수 추계의 잘못으로 정부의 의도와 달리 긴축이 됐다”며 “뼈아프다.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무슨 의미일까.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작년 한국 사회의 양극화·불평등은 심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곳간’에 쌓아두지 않고 복지 확대와 일자리 등을 늘리는 데 썼다면 고용 문제나 계층 간 격차는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 위원장은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며 “국민들에게 (초과 세수를) 되돌려 주지 못하고 나라 빚 갚는 데 다 써버렸다.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도 큰 폭의 오차를 낸 세수 추계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하셨다”며 “올해부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당부도 하셨다. 사실상 기획재정부에 대한 질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반드시 확장적 기조에 맞는 예산 편성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증세와 관련해선 “증세를 위한 증세는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는 공평과세를 지향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가게 한다는 원칙부터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조세형평성’이란 표현을 썼다. 부동산으로 많은 수익을 거뒀으면 응당 그에 따른 누진과세를 하는 식의 조세 재분배로 ‘조세 균형’을 맞추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