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합니까
[우리는 행복합니까①] 한국 행복 57위, 개인 행복 50점
먹고 살만하지만 행복엔 물음표 붙이는 국민…행복의 조건 고민할 시점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1(화) 16:55:57
[편집자주]
과거보다 국가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국민 개인의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노후 설계는 언감생심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보다 오래 일합니다. '우리는 행복한가?' 이 의문을 가지고 시사저널은 행복을 생각해보는 연말 특집 [우리는 행복합니까]를 6회에 걸쳐 마련합니다.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어린이들이 비눗방울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했고 30세에 결혼한 사람이 있다. 돈을 벌 목적이든 성공을 위해서든 그는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열심히 일했다. 40대 중반에 퇴직하고 회사를 옮겼다. 집과 차를 소유했고, 가족은 건강한 편이다.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탓에 고등학생 자식은 부모와 교감하지 않았고, 어른이 된 후 부모의 슬하를 떠났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이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세계 각국의 행복 정도를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자료는 유엔이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다.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부패에 대한 인식, 사회의 너그러움 등을 기준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산출한다. 2018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5.875점으로 156개국 중 57위다. 2016년 58위, 2017년 55위 등 최근 50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한국 전체 국민의 행복도가 세계 57위라면, 개인이 느끼는 행복 정도는 얼마나 될까. 남들이 보기에 부와 명예를 충분히 거머쥔 것 같은 사람이어도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그는 불행하다. 이 같은 행복의 척도를 ‘주관적 안녕(subjective well-being)’이라고 말한다. 행복을 객관적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가 아닌 주관적 잣대로 결정짓는 것이다.
카카오 소셜임팩트팀과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가 225만여 건의 데이터를 분석한 평균 '안녕 지수'는 50점으로 나타났다. 안녕지수는 2017년 9월부터 현재까지 11개 항목(삶의 만족, 삶의 의미, 스트레스, 정서 밸런스, 즐거움, 평안함, 행복, 지루함, 불안함, 짜증, 우울)에 0부터 10까지 척도로 응답한 사람의 행복도를 의미한다. 남성의 평균 안녕 지수는 56점이고, 여성은 53점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측은 “행복 차이는 나이와 시간의 영향이 아닌 성장 환경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경험한 베이비부머 세대에선 성별 차이가 크지 않은데, N포 세대의 심리적·사회적 특성이 남녀 간 격차를 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이 느끼는 불행과 행복의 조건
국내·외 지표로 본 한국인의 행복도는 한국의 경제력에 어울릴 만큼은 되지 않는 것 같다. 대다수 국민은 "매우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개인이 느끼는 불행과 행복의 이유를 찾기 위해 취재진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8년째 주방 보조로 받는 월급 220만원으로 살아가는 60세 여성은 첫째 아들 혼수와 막내 취업이 막막하다. 직장생활 3년 차인 30세 남성은 5년째 연애 중이지만 돈이 없어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4세 여성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화가 난다. 짧은 순간 행복하다가도 현실은 늘 허탈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경제적 불균형이 불행의 원인으로 보인다.
행복하다는 사람은 무엇에서 행복감을 느낄까. 생후 18개월 때 끓는 물을 뒤집어써 얼굴에 3도 화상을 입은 40대 여성은 가족이 있어서 불행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핀란드의 한 여성은 자신이 1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친구들과 춤을 출 때가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개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달라 보인다.
'응답하라 2018'은 30년 후 '소환'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거의 우리는 행복했을까.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과거 민초의 삶이 녹아있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던 이유 중 하나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크게 불행하지도 않았던 당시를 '소환'하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고속 성장기에 국민은 '열심히 일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안고 살았다. 쥐꼬리만한 월급이었지만 가족 부양에 큰 문제는 없었다. '행복의 분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30년 후인 2048년에 '2018년'은 응답하라는 소환을 받을 수 있을까. 돈과 권력을 좇은 탓에 경제력은 성장했다. 그러나 입버릇처럼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본인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불행한 것이다.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국민은 한국인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탄의 행복이 우리가 추구할 모델인가
세계 각국은 행복의 기준을 찾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제대국 중 하나인 프랑스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8년 국가의 총체적 발전과 국민 삶의 질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GDP(국내총생산) 대신 국민의 행복을 계량화 한 국민행복지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제안에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경제 성과 및 사회적 진보 측정위원회’를 설립하고 스티글리츠 교수를 위원장으로 위촉해 GDP의 한계를 극복할 새 지표를 찾았다. 그 결과로 GNH(국민총행복)라는 국민행복지수를 개발됐다. 삶의 만족도·평균 수명·주거 공간·에너지 소비량 등 다양한 지표를 취합해 GNH를 산출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현재, 우리도 행복을 생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후 부탄 국민행복지수(GNH)를 한국식으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은 부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인식한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타이틀은 국제사회가 부탄에게 부여한 게 아니다. 부탄 정부가 스스로 주장하는 바다. 부탄 국왕은 1972년 경제 발전을 평가하는 지표인 GDP를 대체할 목적으로 국민행복지수 개념을 도입했다. 행복의 조건은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탄은 2015년 국민 7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발표에서 국민의 91.2%가 행복하다고 밝혔다.
국제 사회가 부탄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유엔이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2016년 84위였던 부탄은 2017년 97위로 하락했다. 또 부탄은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망명자가 많은 국가로 꼽힌다. 불교국인 부탄은 1990년대 힌두교 신자를 추방하기 시작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07~15년 사이에 부탄 정부의 압력으로 쫓겨난 부탄 국민이 10만 명을 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탄은 '마지막 샹그릴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국제 사회는 부탄 국민이 행복하다는 데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부탄을 행복의 나라라고 칭송할 이유도 없지만, 낙후된 국가라고 판단할 필요도 없다. 다만, 부탄을 높이 평가할 점은 정부가 최우선 목표에 국민의 행복을 뒀다는 부분이다. 단순하게 보면, 한국은 ‘물질적 풍요’를, 부탄은 ‘정서적 안정’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았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프랑스처럼 행복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지 고민할 시점이다.
[우리는 행복합니까②] 불행의 조건 ‘소확행·미세먼지·취업난’
6명의 뇌 구조로 살펴본 한국인의 불행 3대 요소
조문희 기자 ㅣ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2(수) 14:00:00
그래픽 = 시사저널 양선영
※ 생동감을 위해 아래 6인의 말은 구어체로 전달하겠습니다.
한국인은 불행하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50위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2018년 한국은 156개국 중 57위였다. 2013년 최고 41위에 도달한 뒤로 16단계나 곤두박질쳤다. 우리는 왜 불행한 걸까.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는 6인을 만났다. 살면서 한 번쯤은 만나 봤을 평범한 사람들이다. 20대 취업준비생 2명, 직장인 2명, 40대와 60대 주부다. 이들은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불행한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이들은 왜 행복하지 않다는 걸까. 6인의 생생한 말을 통해 평범한 한국인들의 불행을 살펴봤다.
그래픽 = 시사저널 양선영
불행1. 불황과 취업난에 아등바등…결국 지치다
6명은 돈벌이를 가장 걱정했다. 취업했든 안 했든 지갑 사정을 고민하는 건 똑같았다. 취업준비생은 취업이 안 돼 힘들어했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고통스러웠다. 일하는 엄마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돈을 버는 만큼 빠져나가는 게 많아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들에게 돈 걱정은 상수였다.
“돈 걱정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지금은 더 불안해요.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 건지 감이 안 잡히니까…. 몸은 하나둘씩 망가지고 있는데 자식새끼들은 커서 시집․장가간다고 하지…. 난 벌어둔 게 없는데 혼수는 어떻게 마련해줘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고…. 막내는 아직도 취업 못 해서 난리지…. 웬만해선 참겠지만 지금은 탈출구가 안 보이니까 답답하죠. 주방 일해서 버는 푼돈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싶고….”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는 60세 여성 이미옥씨의 얘기다. 이씨는 “아등바등 살기도 지쳤다”면서 연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아진 이후 8년째 주방 보조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쉬고 받는 월급은 220만원 정도다. 그사이 무릎이 망가져 걸음걸이가 불편해졌다. 이씨는 얼마 전 첫째 아들의 상견례를 마쳤다. 이미 아들 내외의 뱃속엔 손주가 자라고 있다. 아들은 혼수가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다르다. 이씨는 “빚을 내서라도 아들 결혼 자금을 보태고 싶은 게 엄마의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8년 전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 막내아들은 아직도 취업 준비 중이다. 그는 해외로 유학을 할 테니 지원을 해달라며 매일 밤 이씨를 괴롭힌다. 이씨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할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고 한다.
반대로 결혼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30세 직장인 김승율씨가 있다. 유통업계에 취직한 지 3년 차인 김씨는 5년째 연애 중이다. 집안에선 하루빨리 결혼하라고 난리지만, 김씨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결혼하고 애 낳으려면 지금 연봉으론 안 돼요. 여자친구랑 서로 쥐꼬리만 한 월급 합쳐봤자 애 하나도 잘 못 키울 거예요. 연봉 올리려면 승진을 신경 써야 하지만 상사 비위 맞추는 거 정말 못하겠어요. 지금 삶도 나쁘지 않은데 양가 집안에서 워낙 뭐라 하시니까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김씨와 학교 선후배 사이인 27세 남성 박지훈씨는 오히려 김씨가 부럽다. 박씨는 대기업에서 2개월 인턴 근무 후 정직원 전환 여부가 결정된다. “선배(김씨)는 그대로 취업하셨지, 저는 목숨이 간당간당한 처지잖아요. 어떻게든 이번에 취업하려고 어찌나 애썼는데요. 동기들과 경쟁해야 해서 피곤에 절어 있는 참이었는데, 잘 만나던 여자친구와도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자기보다 일이 먼저인 게 싫대요. 나름 행복한 미래를 꿈꿨는데, 사랑도 일도 제 마음대로 안 되네요.”
불행2. ‘소확행’에도 상대적 박탈감…진짜 행복 아니다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유윤진씨(24)는 “삶의 의미를 못 느낀다”면서 운을 뗐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유행한다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화나는 거예요. 저한테는 소확행이 유튜브에서 재밌는 영상 보는 건데, 화면 끄고 나면 얼마나 허탈한지 아세요. 그저 짧은 시간 안에 최대 행복을 누리려고 소확행을 찾는 거잖아요. 근데 그 순간이 끝나면 더 허무해져요. 나중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한다고 하는데, 그 나중이란 게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할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예요.”
스스로 ‘SNS 중독자’라고 표현한 조아름(21․여)씨의 생각도 같다.
“일상의 고통을 잊으려고 SNS를 자주 하는 편인데 그게 오히려 저를 옥죄는 느낌이에요. 처음엔 좋다, 맛있다, 재밌다고 느끼는 것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그걸 집착하고 탐닉하면서 제 눈은 충혈돼요. 이걸 SNS에 올려야지, 댓글 확인해야지 하고서 또 남들이 올린 거 보면 허무해져요. 그들이 저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아서…. ‘역시 돈 쓰는 게 최고야’라고 자위하면서도 ‘에이 다 이러고 사는 거지’라고 결론 내리는 이 찜찜함….”
불행3. 미세먼지와 폭염·한파…어쩔 수 없어 더 고통스럽다
6인은 모두 “날씨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바람 잘 날 없는 미세먼지 공습과 50도가 넘는 연교차에 바깥 활동을 할 수 없어 더 괴롭다는 것이다. 산뜻한 공기와 맑은 하늘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릴 수 있는데, 그런 날은 손에 꼽는다.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또 돈이 든다. 고통이 풀릴 새 없이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는 박지은(44․여)씨는 더 힘들어했다. 기관지가 안 좋은 첫째 아들은 미세먼지가 조금만 나빠져도 하루 종일 기침을 했다고 한다.
“미세먼지 심했던 지난 겨울과 봄엔 정말 한국을 탈출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폭염 때문에 떠나고 싶고요. (박씨를 만난 건 폭염이 절정에 다다른 지난 8월 초였다.) 날씨만 좋아도 살만할 것 같은데 이건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문제잖아요. 한국에서 태어나게 해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할 따름이에요.”
[우리는 행복합니까③] 그래도, 행복은 있다
사소하지만 작지 않은 ‘행복의 방법’
공성윤 기자 ㅣ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3(목) 11:00:00
“인터뷰 한번 하시죠?”
“아니요. 전 행복하지 않거든요.”
행복한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답을 구하려면 ‘행복한’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일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 이태원의 한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 한아무개씨(30)는 만날 때마다 늘 웃음을 짓고 있었다. 멋진 수염을 기른 그의 목소리엔 항상 힘이 넘쳤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본인은 아니란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별로 없어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행복이 헌법적 가치로 보장된 권리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법률이 그것을 충족할 방법까지 안내해주진 않는다.
누군가에겐 돈이 행복의 조건이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20년 사이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연구는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외모’와 ‘가족’을 행복을 결정하는 1차 요인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이들 조건이 모든 사람의 행복에 기여하는 건 아니었다.
'행복의 조건' 부족해도 행복한 사람
이효진(44) 예인건축연구소 대표는 태어난 지 18개월 때 얼굴에 끓는 물을 뒤집어썼다. 진단 결과는 얼굴 전체 3도 화상. 피부조직이 괴사되는 최악의 단계다. 게다가 그가 28살 때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외모와 가족 등 학계에서 보는 행복의 요소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대표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나도 빨리 세상을 떠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슬픔을 극복해 왔다. 외모에서 부족한 점을 극복한 지는 오래됐다. 최근 화상치료 기술이 좋아져서 레이저 시술로 피부조직을 복원하는 게 가능하단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냥 이 모습으로 살기로 했다. 지금도 내 외모에 충분히 감사하기 때문이다.”
감사. 이 대표와 만나서 나눈 1시간여의 대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다. 그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남편과 아이들이 채웠다”면서 “지금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8살 딸과 7살 아들을 두고 있다.
하루는 아들이 5살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정말 잘생겼어.” 그 말을 들은 이 대표는 아들을 부둥켜안은 채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고 그는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예쁘다고 말해주는 데 내가 외모에 더 욕심 부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 조건을 다 갖춰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감사하지 못하면 한평생 위쪽만 쳐다보면서 끊임없이 비교하게 될 따름이다.”
6월8일 오후 서울 방배동 예인건축연구소에서 이효진 소장을 만나 행복의 조건과 태도, 행복으로 다가가는 방법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종현 기자
“감사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비교만 할 뿐”
의문이 들었다.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며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울까. “핀란드 사람들은 욕심이 크지 않은 것 같다. 평범한 것에도 쉽게 만족한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 같다.” 한국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핀란드 출신 따루 살미넨(42)의 말이다.
핀란드는 행복지수를 말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라다. 올해 유엔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조사에서 핀란드는 156개국 중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혔다.
따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핀란드엔 서울의 강남이나 한남동처럼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많지 않다”며 “그래서 빈부격차가 특별히 드러나지 않고 부자를 딱히 부러워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저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다. 좋은 직장이나 직업을 얻어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거의 못 봤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 배경엔 문화적·경제적 차이도 깔려있을 수 있다. 따루에 따르면, 핀란드에선 개인주의가 일반적이어서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데 거리낌이 없다. 또 갑자기 회사에서 잘려도 불행해지지 않는다. 복지 제도가 탄탄해 ‘플랜B’를 마련할 여유가 있어서다. 게다가 주 38시간이란 짧은 근로시간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준다.
세계 행복지수 1위 핀란드…“안정적이고 욕심 없어”
“어떻게 보면 심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안전망이 견고해서 사회에 굴곡이 심하지 않으니까. 남들과 비교하는 데 관심이 없다 보니 경쟁도 그다지 치열하지 않다. 그런데 그 자체가 어떻게 보면 행복일 수 있다.”
결국 주변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행복을 찾는 방법에 다가가는 도중 또 다른 장벽을 만난 느낌이다. 이에 대해 묻자 따루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나는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 진심으로. 한국은 정말 다이나믹한 나라 아닌가.”
그는 10년 이상 한국에 머무르다 2014년 핀란드로 돌아갔다. 결혼과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현지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따루는 “핀란드의 행복지수가 높은 점을 의아하게 보는 사람도 많다”며 “경제적으로 불행을 겪는 사람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주변 환경이 행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란 뜻으로 풀이된다.
핀란드에 거주 중인 따루 살미넨이 이제 막 한살이 된 딸 아르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 따루 살미넨 제공
감사도 연습해야…삶에서 작은 의미도 중요
따루는 “한국 사람은 본인이 불행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에서 정말 행복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춤은 그의 행복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 춤을 출 때만큼은 힘든 기억도 다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따루의 막걸리 사랑은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막걸리를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단다. 따루는 “환경을 떠나 본인이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고민하는 게 우선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이효진 대표는 행복을 위해 ‘감사 훈련’을 해 보라고 조언했다. 하루에 딱 하나라도 좋으니 감사하다고 느낀 대상을 찾아 기록하라는 것. 그는 “나는 전체 화상을 입었지만 눈이 멀쩡하고, 왼손을 다쳤지만 오른손은 멀쩡한 데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새 가족이 생겼다”며 “주변에 사소하지만 감사할 부분이 넘쳐나기 때문에 불행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사소하지만 소소한 행복.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를 ‘소확행(小確幸)’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서울대가 뽑은 2018년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이기도 하다.
나아가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최인철 심리학과 교수는 “세상엔 소확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확의(小確意)도 있다”고 주장했다. 작지만 확실한 의미란 뜻이다. 최 교수는 “가벼운 운동이나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미의 의미를 이렇게 넓히면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는 행복합니까④] 30년 뒤 ‘응답하라 2018’ 외칠 수 있을까
‘행복’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오종탁 기자 ㅣ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4(금) 17:00:00
“진짜 잘한 선택 같아.” 31살 직장인 최미주씨(가명·여)는 얼마 전 엄마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느 30대 신혼부부가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세계 일주에 나선다고 하더라는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정신 나간 짓’이라고 할 줄 알았던 엄마는 호평을 쏟아냈다.
엄마는 미주씨가 취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극성맘’이었다. 미주씨와 동생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따가워지도록 했다. 그랬던 엄마가 최근 들어 많이 달라졌다. 미주씨는 “엄마가 자식들을 어느 정도 다 키워놓고 나니 옥죄던 것들에서 해방된 것 같다”며 “이제 악착같이 노력해서 남에게 인정받는 것보다는 스스로 행복한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미주씨 생각도 같다. 돈이 모이면 자기계발보다는 여행 등 여가생활에 아낌없이 쓴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걸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여기지 않는다.
굴곡진 1980년대, 그래도 가끔은 향수의 대상
30년 전, 엄마가 미주씨 나이였을 때는 어땠을까. 1988년으로 돌아가 보자.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이 두 명 이상은 기본으로 낳던 시절, 각 동네에선 거의 모두가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했다. 건국 이래 최대 행사인 ‘88 서울 올림픽’이 열렸고, 나라 경제는 고속 성장기였다. 사람들은 ‘나도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실제로 찢어지게 가난하던 1960~70년대에 비해 급격히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있었다. 직장에서 주는 월급이 좀 적어도 가족 부양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행복의 분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포스터 ⓒ tvN
이 프로그램의 소개 글은 그 시대의 행복을 이렇게 설명한다. ‘월급날 아버지가 사 오던 누런 통닭 봉투. 이불 깊숙이 아버지의 밥공기를 넣어 놓던 어머니. 온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보던 한 지붕 세 가족. 앞집·옆집·뒷집 너나없이 나누고 살았던 골목 이웃들을 기억한다. 지나온 추억은 아련히 떠올라 밤잠을 뒤척이게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발판이 된다.’
한편 《응답하라 1988≫은 2015년 방영 당시 모순된 1980년대 사회상은 외면하고 좋은 면만 그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1980년대 서민의 삶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군사 정권의 폭압적인 통제 속에서 인권은 심심찮게 유린 당했다. 국민의 삶엔 ‘3S’(스크린, 스포츠, 섹스) 정책이 침투해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방해했다. 사회 전반에 ‘뒷돈’이 만연하고 불법·탈법으로 부를 일구는 데는 서민·재벌 할 것 없었다. 입시 지옥은 갈수록 심해지고 학벌·재산·혼인 등에 따른 계급사회가 심화하는 시기였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콘텐츠, 영화 《박하사탕≫은 《응답하라 1988≫ 등장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표정의 주인공을 조명한다. 주인공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군인으로, 1984~87년 형사로 엄혹한 1980년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점점 자기 본모습을 잃어간다. 이어 1999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기차 철로 위에 서서 외친다. “나 다시 돌아갈래!” 유명한 이 대사는 주인공이 순수했던 1979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 대학 졸업생들 뒤로 월세 전단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응답하라 2018'을 외치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어떨까. 1980년대에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사람들이라도 있다. ‘2018년’이 30년 뒤인 2048년에 ‘응답하라’는 소환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나의 불행을 물려주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한국의 2010~15년 평균 합계출산율은 1.3명으로 세계 198개국 중 196위였다. 전 세계(2.5명), 아시아·태평양(2.2명), 유럽(2명)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엔 역대 최저인 1.05명이었는데, 올해는 1명대 사수도 힘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가임기 여성(15~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가 1명도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출산에 영향을 주는 혼인 건수 역시 감소 추세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대라면 열 가지도 제시할 수 있는 요즘 젊은 세대다. 결혼 정보회사 듀오의 2018 출산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 남녀 10명 중 2명꼴로 결혼 후 출산 계획이 없다. 듀오는 보고서 작성을 위해 지난해 11월6일부터 20일까지 전국 25~39세 미혼남녀 총 1000명(남성 489명·여성 51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들은 저출산의 원인으로 ‘육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29.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28.5%), ‘결혼의 지연과 기피 의식’(14.9%), ‘실효성 없는 국가 출산 정책’(9.7%) 등의 대답이 다음으로 많이 나왔다.
“없으면 없는 대로 결혼해서 같이 재산을 늘려가는 게 행복이다.” 지금 결혼적령기 남녀에게 이런 말을 섣불리 꺼냈다간 ‘꼰대’ 소리를 듣는다. 30년간 물가는 폭등했으나 월급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경제는 연 3.0% 성장하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서민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집을 장만하려면 은행 대출을 무리하게 받아야 한다. 과거에 부동산 등으로 재산을 바짝 불려놓은 집안 정도는 돼야 3·4대가 풍족하게 산다.
이제 ‘한국은 계급사회’라고 하는 데 누구도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는다. 살기 팍팍한 가운데 이기주의에 가까운 개인주의가 만연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직장 동료가 요즘 어떤 상태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2018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고 싶을 듯하다. “나 그냥 혼자 살래!”
물론 한국이 30년 전보다 못 산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토종 기업들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공룡으로 성장해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각종 제도와 재화는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다.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국민은 왜 ‘꿈의 나라’에 사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긴 노동시간, 가장 낮은 출산율, 가장 높은 우울 지수에 대해선 우리 자신도 별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실제로 한국에서 일부 사회 취약계층을 제외하고 대부분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오히려 너무 잘 먹는 데 치중하고, 일부는 과시형 혹은 충동적 소비를 일삼기도 한다. 현 시대를 반영한다는 TV 드라마는 십중팔구 재벌가 등 부잣집을 배경으로 한다.
이와 관련해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8월 출간한 칼럼집 《선망국의 시간》에서 군부가 주도한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한국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질문하는 윤리적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출세와 돈벌이에 골몰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후진국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그럭저럭 물질적 풍요는 이뤘지만, 돈과 권력만 좇게 됐다는 것이다. 책 제목 중 ‘선망국’은 선망하는 국가가 아닌 먼저(先) 망한(亡) 나라라는 의미다. 조한 교수는 “쓰나미처럼 몰려온 물신(物神)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아프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괴물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하니까 애써 행복을 찾는 모습도 나타난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나 혼자 산다’(1인 가구) ‘자발적 고립’ ‘비혼’ ‘딩크’(Double Income No Kids)…. 불행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행복’이란 주제에 따라오는 키워드들이다. 기저에는 ‘최선이 아닌 차선’이나 ‘외로움’과 같은 이미지가 깔린 것이 사실이다. 직장 생활 3년 차 강인선씨(가명·28·여)는 “억지로라도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변에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인선씨가 행복을 위해 택한 방법은 여행이다. 주말 혹은 휴가를 맞을 때마다 국내외로 훌쩍 떠난다. 그렇게 해도 맘 속에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고 인선씨는 말했다. 그는 “평소에 힘들고 희망 없는 ‘마이너스’ 삶을 살다 보니 주말에 여행을 다녀온다고 행복감이 ‘플러스’되진 않는 느낌”이라며 “그냥 ‘0’이 될 뿐이다. 그러곤 다시 마이너스와 제로 베이스를 반복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외국인, 특히 우리가 부러워해 마지않는 유럽 사람들은 한국을 찾았다가 ‘행복 신드롬’에 놀라움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 어디를 가봐도 한국처럼 행복, 행복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행복한 나라에서 왔군요. 나는 힘들게 살고 있는데. 당신 나라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한국인의 질문에 유럽인들은 당황하기 일쑤다.
때때로 이런 행복 추구가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SNS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선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추억 등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더 큰 행복을 찾는다. 문제는 SNS의 바다에선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과거엔 개개인이 자신의 동네나 지역사회에서 어떤 것 하나쯤은 내세울 게 있었다. 이를테면 ‘훌라후프 하나는 내가 제일 잘한다’고 말하는 게 가능했다. 과거엔 그런 것도 행복이었다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회상했다. 현대 사회는 아니다. SNS상에 훌라후프 천재, 달인, 도사들이 즉각 나타나 ‘동네 스타’는 고개를 들 여지가 없다. 더 비싼 차를 타고 예쁜 집에 살고 좋은 곳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을 숨 쉬듯 접한다. 최 교수는 “SNS 시대를 맞아 전 세계 70억 명이 70억 명을 상대로 경쟁하고 있다”며 “비교 대상이 무한대로 커지면서 삶의 재미가 없어지고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 된다”고 했다.
30년 뒤는 디스토피아?…‘행복路‘ 찾아갈 수 있을까
슬슬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대로 가다간, 30년 뒤는 모든 사람이 불행한 ‘디스토피아’라도 되는 게 아닌가 싶다. 30년은커녕 10년 안에 패닉 사회가 올 수 있다고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측한 바 있다. 장 교수는 2016년 희망제작소 창립 1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앞으로 숙제할 시간은 7~8년밖에 안 남았다. 이후에는 어떤 정책 수단도 소용없게 된다”고 진단했다. 저출산 고령화와 계급 양극화, 민주주의 훼손 등 얽히고설킨 문제를 시급히 해소하지 않으면 불행의 나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의 부산물인 노인부양률 증가는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트리거다.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에서 참가자들이 부스를 돌아보는 모습 ⓒ 연합뉴스
장 교수가 2023~24년을 임계점으로 잡은 근거도 노인부양률이다. 예측상 노인부양률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지금은 학자들만 그래프를 보며 큰일 났다고 하지만, 그때는 길에 나서면 두 명 중 한 명이 노인일 테니 보통 사람들도 느낄 거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계산하기 시작한다. ‘힘들게 일해서 소득 절반을 노인에게 쓰느니 이민을 가 버릴까?’ 하고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30여 년 후인 2050년 한국의 노인부양률은 72.4%에 달할 전망이다. 2015년 19.4%의 3.7배다. 근로 인구(20~64세) 100명에 의존하는 노인(65세 이상) 수가 2015년 19명에서 2050년 72명으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해당 35년간 한국의 노인부양률 상승 폭은 1.9배인 OECD 평균의 2배 수준에 달해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행복한 사회, 아니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상(正常)으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변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 켜진 ‘빨간불’을 보다 선명하게 느끼는 학자들은 ‘안 변하면 그럼 어떻게 할 거냐’고 반문한다.
국가와 국민 모두 해야 할 일이 있다.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의 틀을 만들고 국민 행복과 직결된 장기적인 문제에 손을 대야 한다고 장덕진 교수는 강조했다. 최재천 교수는 개개인을 향해 “모든 것에 다 자기를 비교하지 말자.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관에 기반을 둔 이들의 호소는 희망이 남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조한혜정 교수는 국가 최고 권력자를 파면시킨 촛불 집회처럼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 사회의 역동성에 희망이 있다고 했다. 조한 교수는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 시민들은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안락한 지대’(comfort zone)에 익숙해진 나머지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며 부러움을 표시했다. 현 시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첨예하게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말을 전했다”며 “자기들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물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안락하게 죽어가는 개구리 꼴이지만, 한국 시민들은 급하게 뜨거워진 물을 감지한 개구리처럼 튀어 올라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비유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 늦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충동적인 삶을 살아온 ‘우리’ 모습을 바라볼 때가 왔다”며 “그간 인간·현세대·성장·국가 중심으로 굴러온 근대의 시간을 넘어 이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미래 세대·지속가능성·지구마을 중심의 탈근대의 시간으로 이동할 때”라고 말했다.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미래의 삶에서 행복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99세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중국 철학자 린위탕(林語堂) 박사가 1968년 한국을 찾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의 한국은 가난과 고난의 시련을 겪는, 가장 살기 힘든 나라였다. 린위탕 박사는 서울 광화문 시민회관에 모여든 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진국의 젊은이들은 장관이나 사장의 아들딸 같아서 부모의 혜택을 받고 태어났다. 부(富)나 보람의 측면에서 다 올라가 있으므로 앞으로는 내려오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아시아와 한국의 여러분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딸로 태어났기에 더 내려갈 곳이 없다. 위로 올라갈 길만이 주어져 있다. 그 높은 희망과 가능성이 곧 행복인 것이다. 불평과 원망스러운 마음을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과 용기를 갖고 새 출발을 해주길 바란다.”
딱 50년이 지난 지금, 린 박사의 지적은 옳았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김 교수는 “희망은 행복을 안겨주며,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과 공존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책에 적었다. 과거와 다른 차원일지언정 희망은 아직 있다. 앞으로 30년, 50년 뒤 우리는 감사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행복합니까⑤] “52시간 근로조차 ‘안 된다’는 사람들, 잔인하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인터뷰
오종탁·조문희 기자 ㅣ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7(월) 17:00:00
[편집자주]
과거보다 국가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국민 개인의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노후 설계는 언감생심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보다 오래 일합니다. '우리는 행복한가?' 이 의문을 가지고 시사저널은 행복을 생각해보는 연말 특집 [우리는 행복합니까]를 6회에 걸쳐 마련합니다.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헬(Hell) 조선’을 살아가는 한국인 중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는 인터뷰 중 몇 번이나 그냥도 아닌 ‘지극히’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40년 넘게 자연과 동물을 관찰하며 살아온 그지만, 연구를 통해 행복을 이해할 순 없었다. 삶을 살아내면서 고집스레 자신을 지켜가자 행복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왔다. 최 교수는 세계적인 석학인 동시에 시대 상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한국인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에 행여 ‘박쥐’처럼 되진 않을까 걱정한다. 연구비 지원 태부족 등 스트레스도 늘 따라다닌다. 그래도 ‘행복하다’는 전제엔 변함이 없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아울러 불행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대해선 지지를 보냈다. 정책 추진 가정에서 난관이 있다면 극복해 나가야지, 막아서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답답한 현실 속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연구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실 (나 같은) 진화생물학자에겐 행복이란 주제가 너무 어렵다. 행복은 진화의 수수께끼다. ‘자연선택’이란 매커니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무리 (생전에) 불행해도 자식만 많이 나으면 그 유전자가 후세에 남는다. 그러니 행복은 진화의 결과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는 행복에 목을 매야 하나. 거의 모든 우리 삶에서 관심의 끝은 행복해지려는 것이다.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참 묘한 일이다.
1980년대 중반에 코스타리카에서 연구했다. 당시 코스타리카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런데 국민 평균 수명은 그 당시 세계에서 최고 높은 수준이었다. (현지 연구 당시) 시골에 가면 우리나라 1960년대보다도 더 낙후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결같이 깔깔거리면서 웃고 살더라. 참 신기했다. ‘돈하고 행복이 꼭 관련 있는 게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코스타리카 산호세 시내에 짜장면을 파는 중국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한국에 살다가 코스타리카로 이사 간 화교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식당 주인이 나한테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하더라. 한국에서는 짜장면을 배달하다가 어깨너머로 만드는 법을 배워 골목 어귀에 중국집을 열어 경쟁자가 된다는 거다. 반면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짜장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아무리 붙들어도 ‘그냥 난 그릇 닦는 게 좋다’면서 안 배운다더라. 어떤 때는 그냥 안 온단다. 한 달 동안 번 돈을 쓰러 갔다는 거다. 일주일쯤 후면 또 가게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와서 그릇을 닦고 있단다. 중국집 주인 얘기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래서 이 모양 이 꼴’이란 거다. 이미 그때 산호세 시내 건물 절반이 중국인들 소유였다. 중국인들은 늘 코스타리카 사람들을 향해 ‘바보같이 일도 안 하고 저게 뭐냐’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과연 누가 더 행복한 것일까’ 생각했다. 이렇게 열심히 돈 버는 중국집 주인이 행복한지, 한 달 그릇 닦아 번 돈으로 놀러 간 코스타리카 사람이 행복한지.”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못 살던 시절이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는 시각이 있다.
“설마 지금 삶이 한국전쟁이 끝난 당시의 삶보다 불행할까. 하지만 행복은 어떤 기준이 있는 게 아니고 당사자가 ‘나는 불행하다’고 하면 그런 거다. 우리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옛날에 굶던 때에 비하면 너희들은 다 잘 먹고 사는데, 뭔가 불행하다고 그러냐’는 얘기는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본인이 불행하다고 얘기하고 느끼면 그건 불행한 거니까. 그래서 지금 젊은 세대가 불행하지 않나. 불행하다, 내가 봐도…….”
이런 한국을 개발도상국 등 외국의 많은 사람이 동경한다.
“이화여대 석사를 마친 태국인 학생이 찾아와 상당히 충격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 동네에서는 또래들의 평생 꿈이 한국 땅을 한 번 밟아보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땅(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니, 이걸 자기가 태국에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 말을 들으니 말문이 막히더라. 그 친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서. ‘행복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곳의 사람들이 자살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본인이 얘기하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목숨 끊지 않을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 참…….
미국에서 15년간 살았는데, 1970년대 말에 갔을 때 곧바로 느낀 게 있다. 거의 모든 미국 사람들이 일본을 동경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아이들이 일본을 너무 좋아하더라. 알고 보니 일본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아이들에게 ‘게임의 나라’ ‘환상의 나라’가 됐다. 또 일본은 미국에서 외면받던 일식을 고급 요리로 탈바꿈시키면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어느덧 한국이 그런 나라(동경의 대상)가 됐다. 외국에 가서 만난 동료의 자녀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 자기를 좀 데려가면 안 되느냐고 말한다. 한국말을 일부러 배우기도 한다. 외국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엄청 좋아하는 거다. 그럼 우린 행복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을까.”
물론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한국인도 있다. 주변에서 믿지 않거나 안 행복할 거라 의심하니 문제지만.(웃음)
“난 내가 생각해도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지극히 행복하다. 굶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어느 정도 지위도 얻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주변의 나 같은 사람들을 보면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많은 한국인들이 행복의 분모를 너무 크게 설정하는 탓에 불행한 측면도 있을까.
“그렇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 대부분은 ‘무조건 삼성전자에 들어가야 된다’는 식이다. 그들에게 무작정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해선 설득을 못 한다는 걸 안다. 현명한 논리가 필요하다. 대기업에 목을 매고 들어가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사는 삶, 자기 삶을 그런 시나리오에 대입해보고, 또 그와 다른 삶을 구상해보면 충분히 더 행복한 삶을 그려낼 수 있다. 누가 더 끝에 가서 성공하겠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과거엔 평생직장 하나를 얻어 살다가 은퇴하고 조금 이따 사망하는 식이었다. 지금은 95세 정도까지 살게 된다. 미래학자들은 한 사람의 직업이 7~8번 바뀔 거라고 예상한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40대 중반이면 대부분 퇴직한다. 아직 (사망까지) 50여 년이 남았다. 그래서 다른 직장을 구하러 다녀야 한다. 이런 삶에서 첫 직장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를 한 번 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 첫 직장이 결코 인생 전체를 담보하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 젊은 세대가 살게 됐다. 자신이 어떤 길로 가는지, 첫 직장 외 나머지 6~7번의 이직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백세시대를 맞아 내 삶의 시나리오를 그려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가 나올 것 같다.
‘성공’이란 차원에서 봐도 그 길이 반드시 평생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결혼을 서른 살에 했다고 치자. 15년의 결혼생활이 어떨지를 상상해 본다. 집에 잘 못 오고 야근하다 40대 중반에 퇴직해 다른 회사로 옮긴다. 결혼 후 곧바로 아이를 낳았다면 고등학생일 것이다. 아이는 부모와 교감이 별로 없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있으면 아이는 집을 떠난다.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연구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개개인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개성, 주체성 등을 발휘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뚫은 본인만의 비결이 있나.
“내 인생을 돌이켜 보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 아니더라.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1970년대 말은 우리나라에서 미국 유학 붐이 불던 때다. 대학 동기 중 절반 이상이 해외 유학을 했다. 환송회를 할 때 나에겐 아무도 축하를 안 해주고 돌아가면서 저주스러운 얘기만 늘어놨다. ‘동물의 왕국’ 하러 미국 간다고 했더니 전부 ‘그런 걸 하러 왜 미국까지 가냐’고 하더라. 교수님들도 다 한마디씩 했다. 오죽 화가 났으면 내가 일어나서 한마디를 했단다. 나중에 그걸 잊어버렸는데 서울대 교수가 되고 나서 후배들이 얘기해 주더라. 내가 ‘두고 봐라. 너희들은 서울대 교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겠지만, 나는 경쟁자가 없으니 무혈입성할 거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확하게 그렇게 됐다.
그냥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건 아니다. 나는 고집이 있었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 두 명은 각각 개미 연구의 세계 일인자, 이인자였다. 두 사람이 같이 있으니 그곳이 개미 연구의 메카가 됐다. 전 세계에서 개미를 연구하는 사람은 다 찾아왔다. 거기서 나는 개미 연구를 안 하겠다고 우겼다. 개미가 어떻게 사회성 곤충이 됐는지에 대해선 좋은 이론이 많았다. 그러나 흰개미에 관한 것은 없었다. 나는 ‘흰개미의 사회성 진화 과정을 밝히고 싶다. 이를 위해 흰개미의 사촌격인 민벌레를 들여다보겠다’고 지도교수에게 말했다. 지도교수는 ‘어디 사는지 잘 모르고 잡아본 적도 없는 민벌레 연구를 왜 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하고 싶다’며 1년을 매달렸다. 지도교수는 드디어 연구를 허락하며 ‘너처럼 고집이 센 놈은 처음 봤다’고 했다. 연구 허락을 받는 순간 나는 민벌레 연구의 세계 일인자가 됐다.
나는 살면서 남들이 다 해야 된다는 것, 잘 나가는 것 등을 과감하게 거부할 줄 알았다. 민벌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 미국곤충학회에서 젊은과학자상을 나에게 주기로 결정했다고 연락 왔다. 상을 받아 그해 연례 학회에서 강연할 기회도 얻게 됐다. 강연장에서 내가 ‘살아있는 민벌레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딱 2명이 들더라. 그 정도로 잘 모르는, 별 볼 일 없는 걸 연구하는 바람에 나는 오히려 주목받았다. 개미 연구를 했으면 ‘수십 명 중 한 명’에 머물렀을 거다. 영예로운 상을 받고, 그때부터 일도 잘 풀려나갔다. 세상일이란 게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더라. 요즘에도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다 그렇게(유망한 길로 가라고) 얘기한다. 과감히 ‘난 그런 거 안 할래’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더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육십 평생을 살면서 무지무지 좋아하는 일을 무지무지 열심히 하면서 굶어 죽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삶을 명확하게 보자. 돈을 엄청나게 벌었는데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평범하게 밥 먹고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더 행복하다. 남들이 뭐라 하는지에 상관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늘 행복해할 것을 찾아야 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 시사저널 임준선
젊은 세대 중에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이들을 만나면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꿈을) 뒤져라’고 말한다. 책 읽고 묻고 현장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나는 외교관, 앵커, 성우, 운동선수, 연극배우 등등 별의별 분야를 다 찾아 가봤다. 내 삶을 한번 그려본 것이다. 그 덕에 평생 직업으로 동물행동학이란 걸 선택했을 때 후회가 없었다. 내가 이런 삶을 살겠다고 결정한 뒤엔 지금까지 한 번도 곁눈질해본 적이 없다. 그냥 이 길을 너무나 신나게 달렸다. 달리면서 행복하다. 악착같이 찾아라. 그러면 어느 순간 보일 거다. 신기할 정도로 넓은 길이 눈앞에 보인다.
지금 젊은 세대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하는,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은데, 더 좋은 일 하며 사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만큼 안 될까’ 생각한다. 이게 SNS의 죄다. 옛날엔 내 동네에서 어떤 것 하나는, 이를테면 ‘제기차기 하나는 내가 제일 잘한다’는 게 있었다. 그것도 행복이다. 그런데 SNS 시대가 되다 보니 70억 명(전 세계 인구)이 70억 명을 상대로 경쟁하고 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걸 찾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비교 대상이 무한대로 커지면서 재미가 없어졌다. 인터넷에 보면 나보다 잘살고 잘하는 사람이 넘쳐흐른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쟤는 부모를 어떻게 잘 만났기에 매일 좋은 곳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지. 나는 한 번도 못 가봤는데’라고 생각하는 게 불행의 시작이 된다.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 이런 압박을 어떻게 견뎌내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됐다. SNS를 안 할 수도 없다. 하기는 해야 하는데,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나만의 뭔가를 자꾸 찾아 나가야 한다. 모든 것에 다 나를 비교하면서 살면 아무도 못 산다.”
행복 사회를 위해 개인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의 국민 행복 대책도 필요하다. 현 정부에서 부작용과 비판 여론을 딛고 소득주도 성장, 일·가정 양립 정책 등을 끌고 가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6월27일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방한해 작심하고 말했다. 한국이 7월1일부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고 전하자 크루그먼 교수는 ‘52시간도 길다. 한국이 선진국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일하고 사느냐. 말도 안 된다’며 놀라워했다. 미국이나 프랑스 기준으로 볼 때 주 5일제에 하루 8시간 일하는 게 원칙이다. 그럼 주 40시간이다. 그런데 지금 52시간 근무를 놓고 싸우고 있는 거다. 현 정부가 (국민 행복 증진을 위해) 하는 일들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지, 그걸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잔인하게 얘기하는 거다.
소득도 마찬가지다. 지금 전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가 미국이고 2위가 우리다. 버는 이들은 너무 많이 번다. 그 사람들은 돈을 다 쓰고 죽지도 못할 텐데 끊임없이 거머쥔다. 남보다 잘사는 것 좋지만, 적당히만 잘 살면 되지 않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내가 혼자 많이 움켜쥐었다? 절대 자랑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부끄러워야 하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사람들에게 ‘신진대사가 지나치게 빠른 박쥐처럼 살지 말고 느릿느릿한 나무늘보처럼 살라’고 조언한 바 있다. 지금도 유효한가.
“쑥스럽게도 내가 지금 박쥐 같은데…….(웃음)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사실 좀 여유롭게 산다. 우선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낮에는 바쁜데 저녁엔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거의 매일 오후 6시면 집에 온다. 저녁 먹고 책 보고 글 쓰고 논문도 읽는다. 이어 자정이나 새벽 1시쯤 잔다. 또 다음날 정신없이 일하며 바삐 산다.
그래서 박쥐인 듯 보이지만 나무늘보의 모습도 내 삶엔 끼어 있다. 내가 이런 삶을 누구에게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해보니까, 그러고도 살만하다. 대한민국에서 저녁 자리를 가져야만 성공하는 건 아니다. (교수실 책꽂이를 가리키며) 1999년 첫 책 《개미제국의 발견》 이후 내가 관여한 책이 100권이 넘는다. 저녁 약속에 다녔다면 결코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행복합니까⑥] 세계 돌아보고 찾은 행복 조건 3가지
행복 찾아 떠나는 오소희 여행작가 "작은 행복 추구, 멈추고 음미하기, 미리 걱정하지 않기"
[편집자주] 과거보다 국가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국민 개인의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노후 설계는 언감생심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보다 오래 일합니다. '우리는 행복한가?' 이 의문을 가지고 시사저널은 행복을 생각해보는 연말 특집 [우리는 행복합니까]를 6회에 걸쳐 마련합니다.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아이를 둔 사람은 "내 자식은 나보다 행복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예전보다 불행하다"고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터다. 오소희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다른 나라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은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지를 알고 싶어 10년 전부터 여러 나라를 찾아다녔다. 돈이 많아 팔자 좋게 여행을 다닌 게 아니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아프리카 오지 등을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게다가 쇼핑몰보다 농촌 흙길을 걸었고, 화려한 호텔보다 싸구려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한 이유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였다.
행복을 찾아 세계 각국을 여행한 오소희 작가 (최준필 사진기자)
어떻게 그 많은 나라를 다니게 됐나.
"나는 행복하지 않아서 여행을 떠났다. 행복한 사람은 그냥 살면 된다. 뭔가를 찾기 위해 떠난다는 것은 뭔가 결핍돼 있다는 얘기다. 그 무언가가 대체로 '행복'일 때가 많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여행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를 열심히 봤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바닥까지 보여주며 소통했다. 여러 나라를 돌아본 결과, 행복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었다. 물론 환경도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여행을 떠났다."
왜 행복하지 않았나.
"나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삶을 살았다. 입시를 겪었고, 적성이나 인생을 탐구할 겨를이 없었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갔다. 그때까지 배운 것은 타협하는 것이었다. 이것만 참으면 무엇을 가질 수 있다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게 있으리라 생각했다. 첫 직장은 광고사였는데, 내 상사 그러니까 나의 20년 후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25살의 젊은이에게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밤마다 술친구를 찾고 아침에 사우나 다녀오는 상사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언제까지 남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야 할까라고.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를 선언했다. 그 무렵 남자 친구와 결혼했고, 남편이 군대 생활을 할 때 부대 근처 계룡산에서 3년을 살았다. 청소년기에 가져야 할 자신의 탐구 생활을 그 시기에 충분히 가졌다. 읽고 싶은 책을 읽었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러고 나니 자기애가 생겼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30년이 지났어도 변함없이 아이들은 자기애 없이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교육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끊어 놓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대신 계속 목표를 주장한다. 그 목표를 꾸준히 추구하다가 20살이 되면 시쳇말로 '여긴 어디? 나는 누구?'가 된다. 자기애가 없었던 시기에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애를 낳아서 뭐해'라고 생각했다. 자기애가 생기자 사랑할 수 있었고 아이를 갖고 싶었다. 아이가 36개월쯤 되니 아이에게 한글 공부는 왜 안 시키냐는 등의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에게 '1등으로 달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라고 말할 수 없는 엄마였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3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이 사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엄마에게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와 같은 말이다. 그때 다른 나라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36개월 된 어린아이를 데리고 떠난 게 여행의 시작이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나처럼 그렇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여자를 보질 못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살까로 출발한 여행이기에 그에 대한 답을 줄 만한 나라를 골라 다녔다. 그랬더니 점점 최빈국을 찾게 됐다. '베트남 사람은 벼를 심는다. 캄보디아 사람은 벼가 자라는 것을 본다. 라오스 사람은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라는 문구를 보고 라오스로 향했고, 마지막엔 아프리카 우간다를 다녀왔다. 많이 불행한 사람도 봤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자살률이 높냐면 그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의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은 왜 불행한가를 반분했다. 이는 나는 왜 불행한가와 연결된다."
우리는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는 모두 아는 것처럼 속도다. 세계에서 뭔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한 나라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은 보통의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속도는 아니다. 올림픽에서 100m를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의 속도를 누가 따라잡을 수 있겠나. 비정상적이다. 전쟁의 트라우마든 무엇이든 우리는 초인적인 힘으로 그것을 이뤘다. 그런 속도감 속에서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길을 걸을 때도 어느 속도까지는 사유(思惟)할 수 있다. 주변과 호흡도 한다. 그 속도가 빨라지면 두서없고, 주변을 관찰할 겨를이 없다. 목적지에 도달해서 뒤를 보면, 멀리 온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을 전혀 즐기지 못했고, 과정에 대한 추억도 없다. 우리 부모가 우리를 그렇게 키웠다. 내 아버지는 내 입학식 졸업식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늘 술을 마시거나 회사 일을 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엄마에게 내가 뭔가를 좋아하거나 보여주면 좋다고는 하면서도 그럴 시간에 공부하라며 혀를 찼다. 우리는 그런 속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행복의 정의도 잘 못 내렸다. 행복은 멈추고 음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가 버린다. 어떻게 보면 일회용일지 모른다. 어떤 것은 오랜 시간 인내하며 쌓아 올려서 느끼는 행복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성취라고 한다. 한국 사회는 그 성취만을 행복과 동등하게 봤다. 이를 모두에게 세뇌시켰다."
지금까지 몇 개국을 여행했고, 왜 가난한 나라를 찾았나.
"한 50곳 정도 다녔다. 이곳저곳 빨리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에서 한 달 정도 사는 여행이다. 주로 제3세계를 다녔다. 이도 행복과 관련이 있다. 선진국은 책으로 치면 사회과부도나 화보 같다. 제3세계는 철학책 같다. 그곳에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아이를 주렁주렁 안고 있던 20대 필리핀 엄마는 아이들이 자기 행복의 기원이라고 했다. 그 집안을 들여다보면 세간살이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돈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다고 하지 않나. 시클로로 돈벌이하는 인도의 한 아빠는 온종일 굶고도 아이에게 줄 슬리퍼를 사서 집으로 갈 때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은 무엇일까. 여건 속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매일 물을 주고 키워내는 것인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다녔다."
그 답을 찾았나.
"한국은 떠나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점차 여기서도 행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답한다. 그 행복이 영롱하고 반짝이는 것이어서 누구에게나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다. 매일 가꾸는 조금 둔탁한 빛을 내는 행복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선, 세계를 여행하면서 본 그들의 행복은 작았다. 행복을 잘게 썰어야 한다. 이는 자족이다. 우리는 자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더 큰 것을 추구하도록 교육받았다. 두 번째 이유는 멈추고 음미해야 한다. 멈추고 음미한다는 것은 만족지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가오지 않는 것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를 보면 모두 어떤 일이 닥치면 생각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아이를 두고 대학 걱정을 한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그렇다. 세계 여행 후 남은 단어는 균형이었다. 인생에서 없는 것은 더 채우고, 많은 것은 덜어내면 된다. 육아도 그렇다. 아이에게 많은 것은 덜어내고 없는 것을 주면 된다. 여행한 나라 중에 완벽한 나라는 없었다. 각자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의 균형이었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될수록 불행했다.
우리는 거대한 토목공사식 성취를 행복이라고 배웠고, 그것을 이뤘을 때 박수받았다. 우리 세대가 끝물이라고 본다. 이런 식의 행복 강요는 더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발전속도가 늦춰졌다. 요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라는 신조어가 나오지만, 예전엔 한 단어로 정리했었다. 카르페디엠(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이런 어휘가 우리에게 없어서 다른 나라의 것을 가져다 쓰지만, 어쨌든 그런 어휘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런 의식이 늘었다는 얘기다.
다행히 아빠의 퇴근 시간이 조금 빨라졌다. 다음은 아이들이 집으로 일찍 와야 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집과 부동산에 집착하는 나라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집은 항상 텅 비어있다. 식구란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인데 우리에겐 식구가 없다. 법적 가족이라는 부양의 관계만 남았다."
속도가 빠른 세상에서 나만 다르게 산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은 개인적이다. 기아나 질병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에이즈에 걸린 엄마가 그 상태에서 임신하고 출산했다. 남편은 죽었고, 그 엄마는 하루 1달러를 번다. 우리가 보기엔 행복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 엄마는 희망을 품고 산다. 특정 국가의 제도에 대한 이해, 문화 특수성, 역사까지 버무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집에 유난히 집착하는데, 집이란 행복의 조건일까.
"한국인에게 집은 동아줄 같은 것이어서 '한 채 있으면 거리에 나앉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한다. 돈의 개념일 뿐이다. 누구는 가만히 있어도 하루아침에 몇 억 원이 생기고, 누구는 집이 없다는 이유로 열심히 일해도 허덕인다. 집이 없어서 안정감을 못 느낀다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말이다. 직장의 수명이 짧아지고, 재취업이나 재교육이 이뤄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교육이나 노후가 모두 개인의 어깨에 올라있다. 그래서 부동산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것이 복지국가처럼 해결되면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하고 많은 이자를 내면서 집을 소유하고 싶어 할까. 필요 없을 것이다."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게 버는 만큼 적게 쓰면 행복할 수 있다. 아플 때 병원에 못 가거나 쌀을 못 사는 정도는 벗어나야 한다. 내가 계룡산에서 살 때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 자연이 있었고, 내가 주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가난하거나 원하지만 못 가진다는 느낌은 없었다."
여행 중 만난 사람 가운데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는가.
"너무 많다. 결혼하지 않은,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마취 간호사가 있었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면서 모은 휴가를 소말리아로 가서 봉사하는 일에 쓴다.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있는지 몰랐던 한 일본 대학생은 안데스 전통음악을 듣고 매혹됐다. 20살 초반에 편도 비행기 표로 볼리비아로 가서 식모살이 등을 하면서 돈을 모아 전통음악을 배웠다. 결국 안데스 음악가가 됐고, 지금 40대가 됐을 그는 볼리비아 여성과 결혼해 아이 낳고 볼리비아에서 잘 산다. 이처럼 국가나 사회의 지원 없이도 자신의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자신의 생으로 들여놓는 사람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