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

일취월장7 2018. 5. 17. 10:34

교육의 이름으로 학생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다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④] 특성화고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김민수 씨
2018.04.20 00:56:43

<프레시안>은 작년 11월, 안산 반월공단에서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특성화고 학생의 '죽음'이 간단한 도식 구조 속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죽음의 이면에는 복잡한, 그리고 뒤섞인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①]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학생의 이야기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②] 투신 학생이 일한 업체의 이야기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③] 투신한 학생의 학교 이야기)

그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을 두고 여러 지적과 대안이 제기됐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둘러싼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특정 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하는 식의 단순계산으로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에 이어 특성화고 학생(졸업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자 한다. 그들은 왜 특성화고에 입학하게 됐는지,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되는지, 그들의 꿈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특성화고 교육구조, 그리고 그와 연계된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연합뉴스


게임에 몰두하다 성적이 곤두박질 

중학생 시절, 김민수(20) 씨에게 공부는 의미가 없었다. PC게임에 빠져 있었다. 게임 중독 수준이었다.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을 한 뒤, PC방으로 향하기 일쑤였다. 밤 10시 이후에는 집에서 개인 노트북으로 게임을 했다. 

어머니는 직장을 다녔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새벽 6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 김 씨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전원을 켰다. 하루의 시작을 게임으로 여는 김 씨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도보로 5분. 수업시간 직전까지 게임을 하다가 헐레벌떡 학교로 뛰어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학교는 빠지지 않았지만 수업 중에도 게임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가 절정이었다. 게임에 빠져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중간고사에서 수학 시험지를 받았는데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기둥을 세웠다. 그랬더니 18점이 나왔다.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생각했으나 쉽게 게임을 그만두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3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다시금 성적이 고민됐다. 바닥 친 점수를 보면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내가 이렇게 놀면 어머니는 누가 먹여 살리나' 현실적인 고민이 들었다.  

김 씨는 독자였다. 어머니와 단둘이 산지 오래됐다. 어머니가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퇴근 후 집에 오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김 씨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던 어머니였다. '형제라도 있으면 형제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게임을 하며) 이렇게 지내도 괜찮겠지만, 형제도 없으니...' 진짜 정신을 차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을 따라잡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그때 공부해서 겨우 올린 성적이 내신 백분율 71%였다. 50명 정원 교실에서 35등 쯤 하는 셈이다.    

인문계 갈 성적이 아니었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공업고등학교(특성화고)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반대했다. 터무니없이 의사가 되길 바랐다.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에게 성적표를 보여주며 이 성적으로는 의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에게 맞는, 돈은 못 벌어도 스스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후 어머니도 관련해서 특성화고를 꼼꼼히 알아봤다. 그리고는 며칠 뒤, 아들이 재미있으면 해도 좋을 듯하다고 수긍했다. "기술직이면 자기만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회사 취업도 쉬울 거 같아."  

김 씨는 고등학교에 가서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다. 김 씨는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에 매진했다.   

2학년 때는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기계과와 자동차과 중 김 씨는 자동차가 적성에 맞았다. 기계는 단순 외워야 했지만 자동차는 실습도 있어 재미있었다. 

▲ 서울 소재 모 특성화고의 실습실 모습. ⓒ프레시안(허환주)


5년의 인턴, 그리고 정식 채용 여부 결정 

그 결과, 김 씨는 현재 BMW 자동차 정비회사에서 일한다. 아직은 간단한 소모품인 필터나 오일 등을 교체한 일을 주로 한다. 현장실습제도로 이 회사에 취업한 김 씨의 신분은 아직 인턴이다. 정직원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김 씨에게는 '아우스빌둥'이라는 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독일에서 따온 아우스빌둥은 일과 학습을 동시에 하는 프로그램이다. 6개월은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6개월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식이다. 이렇게 총 5년 과정의 프로그램을 마친 뒤, 시험을 치른다. 여기서 합격하면 아우스빌둥 독일 자격증이 나온다.  

그럴 경우, 회사가 김 씨를 더 쓰겠다고 판단하면, 정식직원으로 채용한다. 김 씨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김 씨와 함께 총 다섯 명의 학생이 이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한독상공회의소 프로그램이다. 사실상 김 씨의 향후 5년 계획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김 씨는 그간 이 프로그램에 합격하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했다. 담당 선생 지휘로 방학 때, 따로 방과 후 프로그램 만들어 공부를 진행했다. 또한, 맞춤형 반을 만들어 면접 등을 준비했다. 그 결과, 김 씨는 2017년 7월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일은 두 달 뒤인 9월부터 시작했다.  

현재는 6개월 코스인 현장 교육 기간을 끝내고 3월부터 아우스빌둥 과정을 밟고 있는 90명과 함께 BMW와 교류하는 대학에서 공부 중이다. 대학교 교수와 트레이너를 포함한 특별반을 구성,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진행 중이다.  

김 씨는 이 교육과정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군대에 입대할 계획이다. 더 정확히는 아우스빌둥 과정에 있는 90명이 모두 군대에 간다.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에는 군대를 다녀오는 시기도 특정돼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다른 사회 

김 씨는 지금의 일에 매우 만족했다. 함께 일하는 선배들이 딱딱할 줄 알았는데, 잘 챙겨준다. 혼낼 때도 있지만, 그건 자기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잘되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로 생각한다.  

선배의 지적 사항을 통해 배운 것도 많다. 사실 회사 생활 초기에는 책임감이라는 것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언젠가 김 씨가 실수했는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러자 선배가 김 씨를 불렀다.  

"나는 너를 가르쳐줄 의무는 없다. 내 일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너를 불러 지적하는 것은 네가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책임감 없이 행동하면, 회사에도 피해가 가고, 너 자신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실수했다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는 실수를 한다 해도 선생에게 혼나는 정도가 전부였다. 자신의 실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더구나 선생과도 편하게 지내는 관계인지라 실수에 너그러웠다. 회사가 학교와는 다르다고 생각한 계기가 됐다. 

김 씨는 이 일을 시작한 뒤로는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다. 술은 조금 마시지만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무리한다. 술 마시고 지각하면, 자신의 이미지가 좋아 보이진 않으리라 생각하는 김 씨다. 술을 마셔도 지각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어했다. 그렇게 보여줌으로써 5년 뒤 정식 직원 계약을 하고자 했다.  

김 씨 업무는 하루 7시간.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인턴이라 최저임금인 약 150만 원을 받지만 자기 나이에서는 상당한 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 씨는 컴퓨터를 사지 않았다. 사면 다시 게임을 할까 두려웠다. 월급은 모두 어머니에게 드리고 용돈을 받는 식이다.  

장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연합뉴스

열심히 노력한 김 씨라서 그런 걸까.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냉정하다. 김 씨 친구 중에는 공부를 포기한 이도 상당하다. 그런 친구들은 취업이 거의 되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서는 학업 성적을 보는 게 당연하기에 그들의 취업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입장 바꿔 자신이 회사 사장이라도 그런 사람은 쓰지 않을 듯하다. 

그렇게 공부를 포기한 친구 이외에도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 BMW라는 좋은 브랜드 회사에 속해 있기에 주변 시선이 차갑지 않다. 아직은 특성화고 출신이라고 사회적 편견을 느껴본 적은 없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목표도 명확하다. 김 씨의 꿈은 장인이다. BMW 테이크션 레벨은 총 5개가 있다. '주니어', 그냥 '테크니션', '시니어 1, 2', '마스터 테크니션'. 이 중 마스터 테크니션은 따기가 매우 어렵다. 차근차근 하나씩 밟아나가는 과정을 생각하는 김 씨다.  

나름 살면서 느낀 게, 열심히 하면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BMW 하면, 자기 이름이 나오는 기술자, 장인이 되고 싶은 김 씨다. 그 시작은 5년 뒤 정식 직원 채용이다. 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특성화고 진학 학생의 상당수는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성적이 부진한 학생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라남도 소재 중학교 3학년(4개 학교 2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연구한 '중학생의 특성화고 진학의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최병덕, 전남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17년 8월)를 보면 중학생들은 학교 성적이 좋을수록 특성화고 진학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성적이 낮은(하) 학생들은 특성화고 진학의도가 48.5%, 학교성적이 조금 낮은(중하) 학생은 35.6%인 반면, 성적이 조금 높은(중상) 학생은 4.6%, 높은(상) 학생은 6.2%로 나타났다.  

또한, 가정의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특성화고 진학 선호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의 월 평균 소득이 한 단위 증가할 때 특성화고 진학 결정은 0.797배로 감소했다.  

실제 <프레시안>이 서울시교육청에 요청해 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으로 일반고(인문계)의 경우, 중식 지원학생 비율이 전체의 13%(2만7766명)인 것에 반해, 특성화고는 전체의 35%(1만6565명)나 차지했다. 중식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한부모가족보호대상자, 특수교육대상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 학생이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진학한 특성화고 학생 중 성적순으로 질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성적이 낮은 학생일수록 열악한 조건에 있는 기업에 취업한다. 성적순으로 공기업-대기업-대기업 1차 밴드-2차밴드-3차밴드. 이런 식으로 떨어진다. 자연히 작업환경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산업재해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는 못하는 학생들에게 발생한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생이 어느 도시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또 달라진다. 울산, 광주, 창원 등 대기업 공장이 모여 있는 도시의 경우, 그나마 학생들이 나름의 좋은 일자리에 취업을 하나, 경기도 지역이나 지역 중소도시 출신일 경우, 이 역시도 좋은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는 높아진다.  

학교나 사회에서는 이러한 아이들에게 공부를 못했기에 그런 일자리를 가지게 된다고 교육 내지 주입하지만, 전체 사회 틀에서 본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불안하고 열악한 일자리다. 더 정확히는 '나만 아니면 돼' 식의 임시방편으로는 결국, 또다른 누군가는 일하다 사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아무리 현장 감독을 강화한다 해도, 안전 교육을 시킨다 해도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우리는 어찌보면 교육, 그리고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MB가 만든 취업률의 그림자, 죽음을 가속화하다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⑤] 취업 대신 대학 선택한 성지민 씨
2018.04.20 18:27:22

▲ 서울 모 특성화고의 실습교실 모습. ⓒ프레시안(허환주)


그는 왜 취업이 아닌 대학을 택했나 

올해 특성화고를 졸업한 성지민(20) 씨. 그는 친구들이 하는 '현장실습에 이은 취업'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취업하는 건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주변 특성화고 선배들에게 들은 조언이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 졸업생 중 80%는 이름도 못 들어본 지방 기계건설 회사나 영세업체에 취업해 일하고 있었다. 상당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운이 나쁘면 일하다 다치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기에 성 씨가 현장실습을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을 통해 간접 경험은 많이 했다.  

"중소기업에 간 친구들이 학교 내에서 절반쯤 된다. 가정형편은 어려운데 공부를 못해서 좋은 곳은 못 가는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이 돈을 벌겠다고 갔다가 한 달 만에 돌아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자기는 '이거 아니면 길이 없다'며 각오를 다지고 갔는데도 그렇게 돌아오더라. 이유를 물어보니 시설이 안 좋은 것은 기본이고, 야간에 일을 시키면서 수당도 안 주고 굴린다고 했다, 더구나 한 달에 한 번 무료 봉사라면서 일을 시키고는 돈을 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보내진 학생들에게 학교는 노동법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학교는 1년에 한 번 외부강사를 불러 노동법 특강을 한다. 그나마도 재미가 없어 성 씨는 강의 내내 졸았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선생이면 그런 아이들을 깨우기라도 하겠지만 외부강사인지라 그러지도 않는다. 학생들이 자든 말든 그대로 강의를 진행한다. 

게다가 그렇게 진행되는 노동법 강의도 현장실습이 진행되는 3학년 때는 하지 않았다. 2학년 때 진행된 게 마지막이었다. 취업이 1년도 넘게 남은 상황에서 따분한 노동법 수업을 하니 학생들이 지루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독기 품고 간 친구들도 복교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가정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겠다며, 독기 품고 간 친구들이 모두 '태움'을 당해서 학교로 돌아왔다. 물론, 회사에서 돌려보내지는 친구들도 많았다. 일을 못한다며, 상사와의 관계가 안 좋다며 돌아왔다.  

"학교에서의 3년이라는 시간이 취업을 위한 시간으로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회사와 학교는 전혀 다른 공간이라는 게 문제인 듯했다. 학교에서는 선생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회사에서는 다 잘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예' 하고 다른 일을 해도 되지만, 회사는 '예' 하면 곧바로 그것을 해야 한다. 친구들이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성 씨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공기업이나 대기업 등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그런 곳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취업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학에 진학하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재차 확인했다.  

"주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창시절 13년을 아무 생각 없이 다녔다고 한다면, 중소기업에 취업해서 한 달에 130만 원 받고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깐.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여러 모로 노력했음에도 대기업 등에 가지 못한다면 아쉽지 않겠나. 나는 아쉽다. 그래서 대학 가는 것을 선택했다."

성 씨가 진학한 대학은 자동차를 전문으로 다루는 곳이다. 일명 '커스텀카(custom car)' 작업을 배운다. 커스텀카란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춰 개조한 자동차를 의미한다. 순정 상태의 스톡카(stock car)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성 씨는 여기에서도 도색을 전문으로 배운다. 전국에서 이를 가르치는 학교는 이 대학이 유일하다.  

성 씨가 진학한 대학 학과는 졸업률이 매우 낮다. 작년에는 5명만 졸업하고 나머지 35명은 중퇴하거나 휴학했다. 대부분 교과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다. 반면, 그렇게 졸업한 학생들은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성 씨는 그곳에서 버틸 자신이 있다. 졸업한 뒤에는 서울로 돌아와 취업할 계획이다.  

대학 한 학기를 마친 뒤, 군대를 다녀올 생각이다. 졸업 후에는 돈을 모은 후 결혼을 할 계획도 세워 놓았다. 

이미 학교 입학 때부터 나뉘는 진로 

특성화고를 다니는 학생들은 공부를 못 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지만 성 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선입견이다. 성 씨는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내신 백분율이 10%였다. 서울 지역 특성화고의 경우, 중학교 내신 성적 합격선은 평균 20~50% 이내다.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공고의 경우, 2015년  신입생 입학성적 백분율이 평균 26%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왜 특성화고에 입학했을까. 

"중학교 때, 영어 성적이 형편없었다. 2년 동안 한 달에 50만 원을 주고 학원에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학교 시험은 쉬우니 100점을 받았지만, 수능이 문제였다. 더는 늘지 않았다. 이 실력으로 인문계에 진학하면 다른 친구들과 경쟁을 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차라리 공고에 가서 1등을 하는 게 어떨까 싶었다." 

인문계고에 가면 대학 진학을, 특성화고는 기술직 취업이 일반적인 진로다. 하지만 성 씨는 특성화고에 진학하면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준비했다. 학교에서 학교장 추천을 받으면 서울의 중위급 4년제 대학교는 갈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이러한 계산은 중학교 때 다니던 수학 학원 강사의 조언 덕분이었다.  
 
물론, 부모는 성 씨를 인문계로 보내려 했다. 특성화고를 보내려 한 달 50만 원이나 들여 영어 학원을 보내지는 않았다. 선입견도 문제였다. 특성화고는 싸움이나 하고 나쁜 짓 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반대했으나 자식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내가 인문계고 가서 이도저도 아닌 학생이 되면 누가 책임질 거예요?" 

그렇게 진학한 특성화고에서 공부에 관심을 둔 시기는 1학년 때뿐이었다. 2학년 무렵, 본격적인 진로를 정했다. 자동차에 흥미가 생겼다. 그 길로 가보겠다고 결심했다. 교내대회에서 1등도 하고 금메달도 땄다. 관련해서 진학할 대학도 정했다. 지금의 대학이다. 이후 성 씨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성적만 만들어 놓자고 생각했다. 그가 공부에서 손을 뗀 이유다. 그런데도 성적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특성화고에서 공부를 못하면 대학에 진학한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성 씨의 학교에서 취업을 못해 대학에 간 학생은 두 명에 불과했다. 입학 때부터 이미 대학 갈 사람과 취업할 사람으로 나뉘는 식이다. 이미 스스로 계획을 하고 특성화고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 2011년 당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IP-MEISTER(마이스터) 아이디어 발표회'에서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MB가 만든 취업률의 그림자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은 3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9년 73.5%에 비해서 40%나 떨어진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취업률은 상승했다. 2009년 16.7%에 불과하던 취업률은 2016년 47.2%로 증가했다. 

이러한 수치의 변화는 MB 정부에서 고졸 취업 정책을 어느 정부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마이스터고의 개교, △ 선 취업, 후 진학 정책, △ 고졸적합 일자리 창출, △ 공공기관 및 대기업, 금융권에서의 고졸 채용정책 등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고졸신화'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정책이 지나친 단기적 실적위주의 밀어붙이기 정책이기에 강한 불만을 가지게 했다. 취업과 관련된 인프라 구축이 돼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아직 학벌 중시현상이 강해 학생과 부모들이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분위기도 팽배했기 때문이다. 

고졸자의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단기간에 변화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거기에 고졸자의 성공비전 제시와 임금 및 승진과 후생복지 등에서 대졸자와의 차별폐지, 병역문제 해결 등 고졸취업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정책적인 비전 제시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가운데 일선 학교에 목표치만 던져 놓고, 학교가 알아서 취업률을 높이라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보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자연히 학생을 기업에 주먹구구식으로 집어넣는 식이 됐고 그 결과, 점차 질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는 비율도 낮아졌다. 2012년 고용보험에 가입된 일자리에 취업한 비율은 79.6%인 반면, 2016년에는 58.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취업률은 높였는지 모르나, 여러 부작용을 발생하게 했다. 대표적인 게 현장실습 도중 사망·사고다. 

하인호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대표는 "MB 정부 이후, 우후죽순 학생들이 취업해 일선 현장에 나갔고 그들 중 상당수는 사회 내 차별이나 일하는 것의 어려움 등으로 그만뒀다"며 "단순히 취업률만을 높이기 위한 학생의 취업이 아닌, 그들이 취업 이후에도 잔존할 수 있는 질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MB가 만든 마이스터高, 새로운 서열을 탄생시키다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⑥] 마이스터고 선택한 정은수 씨
2018.05.08 23:00:45

나는 왜 마이스터고에 진학했나 

최근 현장실습 과정에서 학생들이 죽거나 다치면서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은수(가명, 21) 씨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여학생이 자살한 LG유플러스 같은 기업에는 가서는 안 된다고 교육했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곳, 즉 열악한 노동환경일 경우, 곧바로 나오라고 교육받았다. "제도가 나쁜 게 아니라 이를 잘못 운용하는 사람들이 나쁜데 애먼 제도 탓만 하는 듯하다" 

회사에서 막내인 정 씨는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청소는 고사하고 커피 한 번 타 본 적이 없다. 판교에 있는 회사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었다. 직원이 300명 넘는 IT업계 기업이다. 정 씨는 이곳에서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마이스터고 출신이다. 

중3 때 학교 성적은 백분위 10% 내에 들었다. 인문계고를 선택하지 않고 마이스터고를 간 이유는 전문성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인생을 전략적으로 짜보았다. 마이스터 졸업 후, 3년 동안 일하면, 대학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MB정부 때, 신설된 '선취업, 후공부' 제도의 일환이다.  

24살에 대학을 가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이스터고 입학 후, 만난 친구의 대부분은 정 씨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 씨가 다닌 마이스터고는 수원에 있었다. 정 씨가 입학할 때만 해도 경쟁률이 16대 1이나 됐다. 취업률이 좋은 학교였다. 보통 특성화고 취업률은 45%~50%였으나 이곳은 90%를 넘었다. 게다가 졸업 학생의 절반 이상이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했다. 나머지 학생들도 대부분 삼성 1차 밴드 회사에 들어갔다.  

여타 특성화고에서는 공기업 취업이 '하늘에서 별 따기'다. 전교에서 1명 내지 2명 정도 들어가도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만큼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그렇다 보니 학창 시절에는 늘 잠잘 시간이 부족했다. 온종일 공부를 해도 모자랐다.  

1학년 때는 국영수사과의 기본적인 과목들과 전공기초를 배웠다. 인문계보다 국영수사과 비중은 적었다. 대신 전공과목 비중이 높은 편이었다. 전공 내용은 생각보다 어렵고 생소한 내용이 많았다, 인문계고의 모의고사처럼 마이스터고에서는 국가기술 자격시험을 3개월에 한 번 치렀다. 각종 자격증과 토익 등 어학 점수도 노려야 하기에 여기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방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학연수를 가거나 대학에 가서 수업을 받았다. 좀더 다양한 세상과 환경을 겪어보라는 학교의 뜻이었다. 모두 마이스터고 자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학교는 각종 외부대회 참여도 독려했다. 학생들도 대회에 웬만하면 대부분 참여했다. 그것이 향후 취업할 때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었다. 정 씨도 마찬가지였다. 고3 초, 자신이 속한 기술연구반에서 로봇 이동 알고리즘 프로그램, 즉 로봇이 혼자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했다.  

쉽지는 않았다. 정 씨 전공은 전자회로. 여기에 프로그램까지 짜는 작업까지 하다 보니 방학 동안 두문불출해야 했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해 전국대회인 기능올림픽 모바일로보틱스 분야에서 동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마이스터고 생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만큼 친구들 간 견제도 치열했다. 학생들이 성적에 극도로 예민했다. 정 씨가 교실에 둔 책이 없어지는가 하면, 필기 노트도 사라지곤 했다. 없어진 책과 노트에는 중요한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을 뿐 아니라 주요 내용을 정리한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그렇게 사라진 책과 노트가 한 두 권이 아니었다.  

여러 번 없어진 뒤로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사물함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래도 없어졌다. 아침에 교실에 도착하면, 사물함 '도어키'는 부서져 있었다. 결국, 정 씨는 필기노트가 사라지는 것을 상수(常數)로 생각해야 했다. 필기한 노트를 복사해 따로 보관해두는 방법을 택했다.

팍팍한 학교생활이었지만 나름의 재미도 찾았다. 학교에서는 기숙사 학생들을 CCTV로 감시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사전에 차단했다. 

하지만 온갖 전자기술을 습득한 학생들에게 CCTV는 무용한 장치에 불과했다. 매일 기숙사 밥을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 그럴 때면 기계장치에 능통한 친구가 감시 CCTV 프로그램을 해킹, 평상시와 같은 정지화면을 실시간 화면 대신 내보내도록 한 뒤, 유유히 기숙사 정문으로 나가곤 했다. 그날은 평소 먹고 싶은 외부 음식을 마음껏 먹는 날이었다.  

여기서 한술 더 떠, 저녁 시간에 공부하기가 싫어지면, 기숙사 정문에 설치된 CCTV에 안면인식장치 프로그램을 설치해 두고는 마음껏 놀았다. 이 프로그램은 입력한 야간감독 교사 얼굴사진과 동일한 얼굴이 CCTV에 포착될 경우, 휴대전화에 설치된 앱으로 '푸시', 내지는 '알람'이 울리도록 했다. 한마디로 야간학습 '땡땡이'에 대한 '망'을 CCTV가 보도록 한 셈이다. 

온풍기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는 추운 겨울날에도 온풍기 가동을 최소한으로 한정했다. 전기료 때문이었다. 게다가 개인 온풍기는 화재 위험 때문에 금지됐다.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는데도 특정시간만 되면 곧바로 온풍기가 꺼지다 보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자구책으로 학생들이 학교 온풍기 시스템을 CCTV처럼 해킹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도 온풍기가 운영되게끔 했다.     

'아침 기상나팔'도 마찬가지였다. 2인 1실로 된 기숙사 방에는 소형 스피커가 있는데, 학교에서는 이를 통해 간단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스피커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침 기상시간에 울리는 군대 팡파르도 스피커를 조작해 거의 들리지 않도록 했다. 그러다 선생이 오면 다시 키우는 식이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여전히 존재하는 대졸과 고졸 간 차별 

정 씨는 그런 노력에도 졸업 후, 다른 친구들이 가는 공기업 내지 대기업에는 가지 않았다.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했다. 입사 초기에는 나이에 비해 많은 돈을 벌수 있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조직 속 하나의 부속품이 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대기업에서는 하나의 일만 배우고 그 일만 계속하는 식이라고는 이야기를 들었다. 

좀더 다양한 일을 배우고 싶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지금은 많은 일을 배우고 연마하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자기가 조직을 선택하지 않나. 내가 조직에 읍소하는 게 아니라 조직이 내게 읍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대기업 내 고졸과 대졸 간 차별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마이시터고 졸업 후, 각종 대기업에서 일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일은 똑같이 해도 대졸과의 연봉 차별은 상당했다.  

부당한 인사도 비일비재했다. 고졸은 일을 잘해도 조직의 필요에 따라 가장 먼저 부서 이동을 해야 했다. 설계가공을 잘하는 친구를 사무직으로 보내는가 하면, 전기전자를 전공한 친구를 기계 쪽으로 보내는 식이었다. 조직의 논리에 따라 사람이 배치되는 구조였다. 거기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직원은 마이시터고 졸업생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간접적으로 지켜본 정 씨가 대기업을 마뜩잖게 보는 건 당연했다. 지금의 IT회사를 택한 이유다. 건물 설계도 등으로 50년 후 미래 건물 모습을 예측하는 솔루션회사다. 건물 설계도를 분석, 시뮬레이션을 돌려 지진, 바람 등에 얼마나 안전한지, 어떻게 해야 최적의 설계를 하는지를 예측하는 회사다.  

여기에서 정 씨가 맡은 일은 '의료솔루션'. 사람의 뇌를 스캔한 뒤, 이를 통해 이 사람이 미래에 알츠하이머에 걸릴지 등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워낙 전문성을 요하기에 일은 쉽지 않다.  

고졸 출신은 이 회사에서 정 씨 혼자다. 대졸은 기본이고 석사·박사 과정을 밟은 이들도 상당하다. 그런 회사에 정 씨가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지금 회사 대표의 강연을 우연히 들은 게 계기였다. 대표의 비전과 생각이 매우 괜찮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이곳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회사에서는 경연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무작정 지원을 했고 우연인지 행운인지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했다. 그러자 임원들이 놀라워했다. 이 대회는 대학 졸업자 내지 석·박사들이 응시했다. 고졸은 정 씨 하나뿐이었다. 상은 받지 못했지만, 정 씨를 좋게 본 회사는 그를 특채로 뽑았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서 일한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3년 일한 뒤에는 재직 전형으로 대학에 갈 계획이다. 물론, 회사도 그대로 다닐 예정이다. 주말에 몰아서 수업이 진행된다. 좀 더 열심히 노력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아는 그였다.  

▲ 2012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충북 진천 한국바이오마이스터고에서 열린 제2회 마이스터고 합동 개교식에 참석한 후 교내 온실을 방문해 화훼 실습중인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MB가 만든 마이스터  

마이스터고. 미래의 명장을 기른다는 명분으로 MB정부인 2010년에 만들어졌다. 특성화고 중에 정부에서 선별한 학교다. 바이오, 반도체, 자동차, 전자, 기계, 로봇, 통신, 조선, 항공, 에너지, 철강, 해양 등 다양한 기술 분야의 학교들이 포진해 있다. 

MB정부에서는 마이스터고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입학식과 졸업식에 참여한 학교는 마이스터고 뿐이었다. 정부는 마이스터고 졸업생의 취업 강화를 위해 일선 특성화고와 예산도 차등했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취업률이 높은 마이스터고는 학교당 평균 82억여 원을 지원받은 반면, 특성화고는 36억여 원에 그쳤다. 

자연히 중학교 졸업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마이스터를 입학했고 그에 따라 좋은 인력도 갖추게 됐다. 그 결과일까. 기업들도 마이스터고 졸업생을 유치하려 혈안됐다. 대기업과 공기업은 좀 덜하지만 여타 기업들은 앞다퉈 학생 유치에 나서는 형국이다. 2016년 2학기 기준으로 전국 43개의 마이스터 학교와 산학협약을 맺은 기업수는 4403개다. 마이스터 학교 1개당 100개의 기업과 협약을 맺은 셈이다. 특성화고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기업수다. 

그렇다 보니 취업률은 매우 높다. 2013년 마이스터 첫 졸업생 3400여 명 중 90% 이상이 대기업 등에 취업한 이래 이 수치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특성화고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50.8%인 반면, 마이스터고는 93%를 기록했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간 격차는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모 특성화고 교사는 "마이스터고가 만들어진 뒤, 우리 학교에서는 공기업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삼성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학생들 대부분이 '해도 안 된다'는 열패감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이러한 구조가 된 배경을 두고 "상위에 있는 아이들이 전부 마이스터에 들어가다 보니 차순위 애들이 우리 학교에 들어오는 식"이라며 "그렇다 보니 기업 등에서는 마이스터고 출신을 더 선호한다. 게다가 재정 등이 마이스터고에 집중되다보니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계고의 경우, 특목고와 서열화가 되는 것처럼, 특성화고는 마이스터고와 서열화 돼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열악한 노동환경, 즉 질 나쁜 일자리는 특성화고로 몰리는 식이다. 


박근혜의 도제학교, 도제담당교사는 왜 극단적 선택을?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⑦] 도제학교 선택한 이명균 군
2018.05.16 18:29:21


<프레시안>은 작년 11월, 안산 반월공단에서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특성화고 학생의 '죽음'이 간단한 도식 구조 속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죽음의 이면에는 복잡한, 그리고 뒤섞인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그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을 두고 여러 지적과 대안이 제기됐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둘러싼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특정 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하는 식의 단순계산으로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에 이어 특성화고 학생(졸업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자 한다. 그들은 왜 특성화고에 입학하게 됐는지,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되는지, 그들의 꿈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특성화고 교육구조, 그리고 그와 연계된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기획연재 바로가기 반복된 학생의 죽음) 


인문계 가서 성적 깔아줄 바에는 차라리 공고가 낫다 

중학교를 전라북도 전주에서 졸업한 이명균(가명, 19) 군. 그는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내신이 좋지 않았다.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다. 대부분 시간을 PC게임 하면서 보냈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는지라 늦잠 자기 일쑤였다. 자연히 공부도 등한시했다. 이 군이 지금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유다.  

집안에서도 이 군에게 특성화고를 적극 추천했다.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 모두 공업고등학교 출신이다. 기능장인 큰아버지는 자신의 공장도 직접 운영했다.  

"어차피 그 성적으로 인문계 가봤자 다른 애들 (성적) 깔아주는 것 밖에 안 된다. 차라리 공고를 가서 기술을 배우는 게 이득이다."  

이 군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둘째 큰아버지 아들이 인문계를 나왔어요. 그런데 거기에 갈 때 큰아버지와 많이 싸웠어요. 큰아버지는 공고를 가라고 하고 형은 인문계를 간다고 고집을 부렸죠. 결국, 형은 전주의 모 대학교까지 나왔는데, 졸업 후에는 딱히 취업할 곳이 없다보니 가게 점장을 했거든요. 그렇게 취업하고 나서 그럭저럭 생활을 했는데, 그 형이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을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죠. 결혼을 하면 자기 혼자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이전에는 혼자 생활하니 가게 점장 월급으로도 감당이 됐는데, 결혼을 하니 그게 안 됐어요. 아기도 태어나고... 결국, 고민하다 큰아버지 공장에 들어갔어요. 그때 형이 제게 그런 말을 했어요.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면 인문계 가지 말고 공고에 가서 기술 배워라'고. 자기 경험에 따른 결론을 제게 말해준 거였죠."  

그렇게 들어온 특성화고에서 이 군은 '도제학교' 프로그램을 이행 중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2학기에 기업체 현장실습을 하지만, 도제학교 학생들은 2학년 1학기부터 학교와 기업체를 오가며 직업훈련을 받는다.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된 이 제도는 2017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당해 기준 전국 198개교가 도제학교를 운영 중이다. 

허드렛일 하기도...이럴거면 왜 도제학교를 하나 

ⓒ프레시안(허환주)

이 군이 도제학교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는 빨리 취업할뿐 아니라 병역특례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군대 대신, 취업한 기업에서 3년간 일하면 병역이 면제된다. 주변에서도 이를 독려했다. "쓸데없이 군대에서 시간 보내느니,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버는 게 낫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도로 중앙선 가드레인을 만든다. 정확히는 철을 용접해 가드레인으로 조립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이 군도 용접을 '배우고' 있다. 이 군이 하는 용접은 전기용접. 산소 등으로 하는 특수용접이 아니라 전기로 할 뿐만 아니라 간편하게 도구를 들고 다니기에 위험은 다소 낮다. 

이 군의 업무는 가드레인 내부 용접. 아무래도 용접이 서툰 이 군이기에 군더더기 없이 용접해야 하는 외부는 숙련된 직원들이 담당한다.  

기업에 가는 날은 일주일에 두 번, 나머지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 회사에서 이 군을 담당하는 사람은 현장 반장인데, 그렇다고 일하는 내내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반장은 반장대로 바쁘다. 용접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직원들이 틈틈이 지적을 해준다. 어떻게 하면 잘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식이다.    

"학교에서는 책에 나오는 기술만 가르쳐주잖아요. 용접할 때 무릎 각도는 어떻게 하고, 손 모양은 어떻게 하고... 그런데 여기에서는 선임들이 직접 용접하면서 배운 기술을 알려줘요.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들이에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이곳에서 배운다. 반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 공장 내에서 직원들은 이 군에게 함부로 일을 시키지 못했다. 미숙련자인 이 군이 행여 일하다 사고라도 날 경우, 책임은 온전히 기업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예 일을 안 하거나 허드렛일만 하는 날도 많았어요. 솔직히 도제학교하면서 느낀 건데, 이런 것(허드렛일)은 도제과정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굳이 도제과정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안 해도 달라지는 건 없는데... 하지만 이런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도제학교를) 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빨리 취업을 하려 했기 때문이죠." 

지금의 회사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이 군이 다니는 회사에는 16명의 직원이 일한다. 이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총 여덟 군데에 면접을 봤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회사를 제1지망으로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제2지망으로 써낸 회사가 현재 다니는 회사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회사는 노동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도제학교에 산학협력을 맺는 기업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아쉬울 게 없는 중견기업이 굳이 도제학교 등을 통해 특성화고 학생을 받을 이유가 없다. 건실한 중견기업은 너도나도 들어가고 싶어 한다. 자연히 인력수급이 잘 안 되는 중소기업이 도제학교에 몰리는 구조다.  

이 군은 현재 회사에서 병역특례 기간을 마치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려 한다. 이 군은 지금의 회사가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5년 뒤, 이곳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단다. 여기서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병역특례 기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경력도 쌓이기에, 지금보다 조건이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큰아버지 공장에 취업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찌됐든 20대까지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게 이 군의 현재 목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병역특례로 3년 동안 일하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생각 중이다. 도제학교의 취지인 '선취업, 후진학'의 일환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25살에 대학교 졸업장, 그리고 용접 관련 경력 및 그간 모은 월급 등이 이 군 손에 쥐어진다. 하지만 이는 '계획대로 된다면'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현재로서는 가장 시급한 게 자격증 취득이다. 전공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 병역특례 자격이 주어진다. 

이 군은 총 여덟 번의 자격증 시험을 치렀으나 모조리 낙방했다. 공부를 못 해 특성화고에 온 이 군에게 자격증은 멀기만 한 존재다. 공부와 담 쌓은 '습관'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 이 군이 5년 뒤, 자신이 계획한 방향대로 가고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6년 8월 도제학교를 운영 중인 특성화고를 방문, 학생들의 실습모습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된 도제학교, 결과는? 

도제학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1월 스위스 베른의 상공업직업학교를 방문한 뒤, 도입됐다. 독일·스위스의 중등단계 직업교육 방식인 도제식 교육훈련을 한국식으로 바꾼 게 도제학교다. 우수 기술·기능 인력 양성을 통한 고용률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러한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도제학교와 제휴를 맺는 기업이 영세하다는 게 문제다. 도제학교를 담당하는 전라북도 모 특성화고 교사는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중견기업(50~300명)의 경우, 병역을 마치고 현장 경험을 가진 대졸 경력자를 선호한다"며 "그렇다 보니 도제학교 프로그램에 이들 중견기업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성화고 교사는 "반면, 정책적으로 스펙을 쌓아야 하는 대기업은 고졸을 채용하지만 이들은 공부 잘하는 마이스터고 출신을 주로 뽑는다"며 "결국, 남는 것은 인력 수급이 필요한 중소기업이기에 그들이 대부분 도제학교와 제휴를 맺는다"고 말했다.   

자연히 도제학교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서울시교육청이 2016년 하반기 서울시 도제학교 10곳, 16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도 이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설문조사 결과, 실습교육 내용과 사업체에서 교육훈련의 연관성이 없다는 응답이 43.8%(70명)에 달했다. 학생들은 기업에서 전공 관련 업무가 아닌 청소, 잡일 등 한 것으로 나왔다. 

안전관리도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하다 다칠 수도 있겠다’는 응답이 65.8%나 됐지만, 안전장비로는 목장갑, 작업복 등 단순 작업도구만을 지급한 경우가 다수였다. 자신이 산업재해를 당했거나 함께 일한 친구가 산재를 겪은 경우도 10%에 달했다. 

도제담당 교사의 고민도 깊다.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학교가 직접 도제학교에 참여할 업체를 발굴하고 학생과 연결해줘야 한다. 또한, 이를 매년 평가해 예산에 반영하기에 학교별로 관련 실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고스란히 도제담당 교사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 지난해 9월 8일 강원도 소재 한 공업고등학교 도제업무 담당교사가 학생을 받아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도제학교의 애초 취지인 '우수 기술·기능 인력 양성을 통한 고용률 확대'는 말 그대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된 셈이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특성화고 아이들은 갈피를 못 잡고 괴로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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