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김영철 만난 사람을 미국에 먼저 보내라"

일취월장7 2018. 3. 3. 10:31

"김영철 만난 사람을 미국에 먼저 보내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김영철은 할 말 다 했다. 이제 우리가 움직일 때"
2018.03.01 13:02:53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할 고위급 대표단으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선택했다. '천안함 사건의 주동자' 꼬리표가 붙은 그의 방남 자체가 남한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임을 북한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김영철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영철이 지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을 때부터 남북대화에 참석했던 이른바 '회담꾼'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강령적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경험이 많은 김영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정 전 장관은 "'강령적 지시'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다. 이건 북한의 관료들이 관철시켜야만 하는 지시"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최종적으로는 북미 관계를 풀어가기 위해 누군가를 남한으로 내려보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김영철이 예전에 경험도 있기 때문에 적절한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봤다.  

이어 "김영철은 한국이 나서면 미국을 좀 변화시켜서 자기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인지, 자기들이 미국에 어떤 선물을 주면 남한이 미국을 설득하기가 좀 더 쉬워지는지 등등을 학인하러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영철이 현황 조사 차 내려온 것"이라면서 "그런데 아마 답이 금방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도 어떤 선택지를 꺼내 들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대북특사를 보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고위급이 남한을 방문한만큼, 답방 형식으로라도 직접 북한을 찾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고 이를 통해 북한의 생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우리가 북한에 특사를 보내려면 미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아 내야 한다. 미국이 북한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확답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특사가 북한에 간다고 한들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오히려 김영철과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미국에 알려주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김영철과 직접 만났던 사람이 미국에 가서 북한이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보장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입장인데, 북미 간 접점을 찾으려면 미국 입장의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을 설득하고 이후에 대북 특사가 미국의 이야기를 전달하러 북한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27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남한을 찾았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주동자라는 이유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에서는 그의 방남을 극렬 반대했는데요. 경력을 보니까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왔을 때도 참여했을 정도로 남북관계에서 상당히 잔뼈가 굵은 인물인 것 같습니다.  

정세현 : 1990년 시작된 총리급 회담에서 북측 대표 7명이 있었는데요. 당시에 대표단 중 일원이었습니다. 이에 앞서서 총리급 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1989년부터 1년 반 정도 이어졌는데 이 회담에도 인민무력부 부국장 자격으로 참여했었습니다. 예비회담의 진행 과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합의서 합의문 작성할 때도 관여했습니다. 2014년 10월 박근혜 정부 때 있었던 군사회담에서도 수석 대표로 나왔고요.  

김영철은 군인 신분이고 정찰총국장을 지내긴 했지만 사실 대남 협상을 상당히 많이 해본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은 김양건 사후에 공백이 생긴 통일전선부장이라는 직책을 김영철에게 맡길만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이번에 김영철을 대표단 단장으로 내려보낸 것 같습니다.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남한에 내려왔는데요. 이들이 올라간 다음날인 12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이들의 방남 결과 보고를 들은 이후 "북남 관계 개선 발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해당 부문에서 이를 위한 실무적 대책들을 세울 데 대한 강령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강령적 지시'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닙니다. 이건 북한의 관료들이 관철시켜야만 하는 지시입니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최종적으로는 북미 관계를 풀어가기 위해 남한이 미국과 자신들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해줄 것인지, 최종 목표인 북미 관계를 위해 남한과 어느 수준까지 협조해야 할 것인지 등등을 알아보기 위해 누군가를 남한으로 내려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예전에 경험도 있었던 김영철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또 북한이 상당히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의지도 있어 보입니다. 김영철 본인은 상당히 부담을 가질 만한 상황인 셈이죠.  

김영철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참여했을 때와 지금 북한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1989년 당시는 북한의 체제가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체제가 존속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본합의서뿐만 아니라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협조했던 건데요. 2018년 현재 북한도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핵‧미사일 프로그램 때문에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고통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대로 핵‧미사일 프로세스를 계속 진행하게 되면 제재는 더 강화될거고 그러면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11월 29일 북한은 신형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인 화성-15형을 발사했는데요. 이를 기점으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습니다. 실제 기술적으로 완성됐는지 여부에 대해 미국도 인정하지 않지만 북한도 기술적 문제보다는 선언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북한의 미사일이 대기권 재진입에 성공했고 미국도 이걸 인정해버리면 북한은 소위 '레드라인'을 넘어가는 것이고 그건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불러올 수 잇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북한이나 서로 긍정도 부정도 안하는 식으로 일단 넘어간 겁니다.

어쨌든 북한 입장에서는 국가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이제 대화국면으로 넘어가자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대화국면을 준비하고 이후 신년사에서 대화 의지를 상당히 강하게 밝혔죠. 여기에 남한이 호응해주면서 1월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서 미북 관계 개선으로 넘어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게 그런대로 잘 진행돼온 셈입니다.  

▲ 25일 평창 동계올림픽 페막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 앞줄에는 트럼프 이방카(오른쪽에서 네 번째) 백악관 고문이, 뒷줄에는 김영철(오른쪽 첫 번째) 통일전선부장이 자리했다. ⓒ청와대


그러면 이게 북한에만 좋은 일을 해준 것일까요? 그렇게 만은 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북한이 협조적으로 나오는 지금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태도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여기에 협조하면서 미북 관계 개선까지 나아가겠다는 계산인 겁니다.  

김영철 역시 이런 부분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 정부가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한국이 나서면 미국을 좀 변화시켜서 자기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인지, 자기들이 미국에 어떤 선물을 주면 남한이 미국을 설득하기가 좀 더 쉬워지는지 등등을 확인하러 내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철이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 25일 만났는데, 당시 문 대통령은 김영철에게 동결을 입구로 하고 비핵화를 출구로 하는 구상을 밝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영철 일행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 만남이 끝난 이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과 만나면서 동결에 이은 비핵화를 추진하게 되면 미국이 우리를 상대해줄 것 같냐, 우리가 미북 수교까지 받아낼 수 있겠냐, 동결을 어떤 식으로 하면 좋겠느냐, 핵보유국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 등등을 물어보면서 상황을 타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핵 동결에 대한 가능성도 시험해봤을 겁니다. 사실 북한은 지난 2015년부터 이 안을 제시해왔습니다. 중국이 '쌍중단'이라면서 이를 제안했지만 원조는 북한인데요. 당시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불법이고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합법인데 어떻게 이 두가지를 교환하냐며 바로 걷어 찬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방법론적인 차원에서의 문제도 이야기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북미 대화를 시작해서 큰 틀을 짜고 6자회담으로 넘어가느냐 아니면 북미 대화를 계속 밀어붙여서 미국에 수교까지 받아내느냐의 문제인데요. 우리 입장에서는 6자든 북미 양자든 북한의 핵 문제가 풀리고 최종적으로 3차 정상회담까지 갈 수 있는 정세만 조성되면 꼭 6자회담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북 간 합의한 사항을 이행해 나가는데 관련국들이 이 합의를 깨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데는 6자회담이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이야기했을 겁니다. 북한은 틀림없이 경제적인 부문의 지원을 언급했을 겁니다. 그동안 국제적인 제재 때문에 자기들 경제가 나빠졌다며 여기에 대해 보상하라고 요구했을 겁니다.  

핵 문제 해결과 맞물린 경제지원이 각 국가들이 분담할지 아니면 우리가 좀 더 많은 몫을 가져갈지 아직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미국은 아마 각 국가에게 청구서를 들이밀 겁니다. 절대로 자기들 혼자는 하지 않을 겁니다. 이럴 때를 위해서라도 미국은 6자회담 방식으로 북핵 문제 협의를 마무리하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명분상으로는 북한이 약속을 어기지 않도록 감시하자는 것이지만, 실제는 공동으로 경제 부문 책임을 지자는 것이죠.

이러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영철은 현황 조사 차 내려온 겁니다. 그리고 아마 답이 금방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북한도 어떤 선택지를 꺼내들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 김영남‧김여정이 돌아간 뒤에 바로 다음날 이들과 만나서 강령적 지시를 내린 것과는 양상이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김영철이 내려온 뒤에 남한이 중재하는 북미대화가 이뤄질 것이냐는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북한에 특사를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정세현 : 우리가 북한에 특사를 보내려면 미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아 내야 합니다. 미국이 북한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확답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특사가 북한에 간다고 한들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김영철과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미국에 알려주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북한이 어떤 이야기를 했고 뉘앙스는 어땠는지 등등을 미국에 알려줘야 합니다. 따라서 김영철과 직접 만났던 사람이 미국에 가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보장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입장인데, 북미 간 접점을 찾으려면 미국 입장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미국을 설득하고 이후에 대북 특사가 미국의 이야기를 전달하러 북한을 찾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돼서 남한의 이야기를 들었던 그 상황에 있었던 사람이 직접 미국에 가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담할 때 보면 같은 말을 해도 뉘앙스 차이라는게 있습니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말이 있거든요. 그건 현장에 있는 사람 아니면 설명을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 지난 12일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한 고위급 대표단을 만났다. 왼쪽부터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위원장,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노동신문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북한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고위급 회담이나 장관급 회담을 평양에서 하자고 제의할 수도 있습니다. 군사 당국 회담은 실무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거기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문제를 논의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두 번이나 남한에 방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남한이 올라오라고 이야기할 만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북한은 남한 인사를 불러다가 구체적 방식을 설명할 수도 있고 비공개 자리에서는 자기들 입장을 상세히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할까 

프레시안 :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고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적절한 조건'에서만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적절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정세현 :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비핵화'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설득해서 미국에 북핵 동결부터 시작하자고 했을 때 미국은 이게 적절한 조건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좀 더 확실하게, 그러니까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면서 핵 동결의 의지를 보이라고 요구할 수 있죠.

북한은 미국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겠다고 버틸 수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 활동 동결도 쉽지 않은 선택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이보다 더 강한 요구를 할 경우 북한은 북미 대화에 희망을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미국에 설명해야 합니다. 북한이 북미 대화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면 다시 핵과 미사일 시험을 이어갈 것이라고 미국에 말해야 합니다. '적절한 조건' 안에 많은 지뢰가 포함돼있지만, 이 적절한 조건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핵심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 26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들과 연례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 차 한국에 왔을 때 북미 접촉을 하려다가 결국은 무위로 돌아갔는데, 이걸 보면 미국도 분명히 대화 의지는 있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북미 대화에 대한 미국의 자세가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랑 만날 수는 있어. 그런데 나를 만나려면 니가 먼저 인사도 하고 다가와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는 '어차피 만날 텐데 목례나 눈인사라도 해야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개막식 당일 리셉션 장에서 펜스 부통령은 리셉션 장소에 들어와서 5분도 되지 않아 나가버렸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하고는 인사를 했지만 김영남 상임위원장하고는 인사도 하지 않았죠.  

그걸 보면서 김영남 위원장은 내일 펜스 부통령을 만나봐야 별게 없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여기에 개막식에 가서 김여정 역시 본인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았는데 미국이 부른다고 쪼르르 나가면 미국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나. 더 고압적으로 나올 거다'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보고가 올라갔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김영철을 내려 보냈습니다. 아마도 한국 정부를 좀 더 설득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북미 대화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놓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우리한테 일방적으로 해결해 달라고만 이야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북한에 최소한 해야 할 조치를 말했을 거고요. 김영철은 아마 북으로 올라가서 남쪽의 대통령과 국정원장, 통일부장관 등을 만났는데 최소한 북한이 해야 할 초지들을 보고할 겁니다. 남쪽이 미국과 협의해서 답이 나오면 움직이면 좋을 것 같다고도 이야기하겠죠. 그래서 아예 판이 깨지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라면 김영철 이후 북한의 반응이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재개될 4월 이전에는 일정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패럴림픽이 끝나고 유엔 휴전 결의안에 명시돼있는 기간 안에 뭔가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는데요. 북한은 이미 이야기를 다 했고, 우리도 북한으로부터 들어야 할 이야기를 김영철을 통해 파악했기 때문에 핵심은 미국과 어떻게 입장을 조율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북한이 미국에 숙이고 들어가야 되는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세현 : 현실적으로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실질적으로 숙이고 들어갈지언정, 자신들은 마냥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뭔가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북한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잘 달래야 일이 풀린다는 것을 미국에 설명해줘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 와중에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한반도 문제가 한창 무르익고 있던 와중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라서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정세현 : 본인은 스스로 관두는 것이라고 한 것 같은데, 트럼프 입장에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뜻일 수 있습니다. 조셉 윤은 오바마 정부 때 그 자리에 임명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트럼프는 6자회담을 하든 미북 직접 접촉을 하든 트럼프 정부와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을 내보내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한국이 거의 10년 만에 한반도 문제에서 운전자 비슷한 위치에 와있는데요. 자유한국당은 어떻게 하면 이걸 방해할 수 있을지에 혈안이 돼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아마 6월 지방선거까지는 저런 식으로 행동할 겁니다. 100% 국내 정치용으로 보입니다. 3~5월까지 보수를 결집하는 분위기를 끌고 가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북핵 문제가 풀리는 국면으로 진입하면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9년 동안 했던 대북정책이 적폐로 몰릴 수 있습니다. 즉 문재인 정부가 주선하는 북미 관계 개선은 자유한국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국제환경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성과를 가능한 한 감소시키려는 정치적 노림수를 가지고 이같은 행태를 벌이고 있는 겁니다.  

[안보브리핑] 짧은 시간에 강력 화력 선보인 北 열병식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ICBM급 화성 14·15형 등 전격 공개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 대응센터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1(목) 15:00:00 | 1480호


대한민국에선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있었던 2월8일, 북한에선 열병식이 열렸다. 과거 여러 외신을 초청해 생중계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외신 초청도 생중계도 없었다. 그러자 일부 전문가와 언론들은 북한이 우리 정부를 배려해 열병식을 간소하게 치렀다고 평가했다. 과연 북한은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 눈치를 살피며 열병식을 간소하게 치른 것일까.

 

원래 북한 열병식은 외신 매체를 부르지 않는 게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이다. 외신을 부르는 것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오직 필요한 만큼만 외부에 공개한다.

 

북한은 2017년 11월 발사에 성공한 화성 15형 ICBM까지 등장시켜 핵무기를 내려놓을 뜻이 없음을 과시했다. © 북한공식매체

북한은 2017년 11월 발사에 성공한 화성 15형 ICBM까지 등장시켜 핵무기를 내려놓을 뜻이 없음을 과시했다. © 북한공식매체

 

참가 인원 줄였을 뿐 성능은 대대적 과시

 

또한 언제나 생중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중계하면 장비의 고장과 같은 치부를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중계방송을 하는 경우가 많고 필요에 따라 편집도 한다. 단순히 중계방송을 했다고 해서 북한의 열병식 강도가 약해졌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참가 병력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열병종대에 참가하는 부대들도 줄고 행렬도 짧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거의 모든 부대들이 참가했겠지만 올해 행사엔 군종을 대표하거나 군단급 부대, 병종을 대표하는 부대만 참가했다. 지상행렬에 육군과 전략군만이 참가한 것이나 해군과 공군 장비는 빠진 것도 특징적이다. 그렇다 보니 열병식 자체에 소요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2~3시간은 족히 걸렸을 열병식이 올해는 1시간40분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참가 병력 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결코 북한이 ‘간소한 열병식’을 치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병력 축소가 열병식 자체의 축소가 되지 않도록 행사 곳곳을 진지하게 배려했다. 공격임무나 중요 지역 작전을 담당하는 핵심 부대들은 강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전연군단(우리의 전방군단에 해당)인 1·2·4·5군단 부대원들은 전원이 헬리컬 탄창을 장착한 98식 보총에 야시경과 방탄조끼를 착용하는 등 과거 특수작전군 수준의 장비를 과시했다. 특수작전군은 전원이 우리 군의 K11과 유사한 신형 복합소총으로 무장하고 행진했다. 재래 전력이 정예화·첨단화됐다고 암시한 것이다.

 

장비행렬도 지난해 김일성 생일 105주년 열병식에 비하면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선군호 전차와 6륜 및 8륜 차륜형 장갑차가 기갑종대를 구성했고 포병은 130mm 자주포와 170mm 주체포, 대공미사일 장갑차, 122mm·240mm·300mm 방사포 3총사를 동원했다. 다만 공군과 해군 장비의 열병종대 참가는 생략됐다. 대공미사일이나 대함미사일, 그리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빠졌지만 작년과 구성과 규모가 동일했다.

 

지난해 열병식은 전략군의 열병식이라고 부를 만했다. 전략군 종대는 김정은의 친애를 받는 리병철 대장과 김락겸 대장이 동시에 행렬을 이끌기까지 했다.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신무기를 무려 2종이나 공개했던 것도 압권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기조는 올해도 계속됐다. 일부에선 북한이 대화 분위기를 감안해 전략군의 핵무기들을 열병식에 등장시키지 않거나 혹 등장시켰더라도 방송으로 내보내진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지만 이런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북한은 전연군단 부대원들에게 특수작전군과 유사한 장비까지 제공하면서 강해진 모습을 과시했다. © 북한공식매체

북한은 전연군단 부대원들에게 특수작전군과 유사한 장비까지 제공하면서 강해진 모습을 과시했다. © 북한공식매체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공개, 공격의지 과시

 

올해 전략군의 행렬은 시작부터 강렬했다. 북한이 그간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신형 전술탄도미사일을 이날 공개한 것도 특징적이다. 새롭게 공개된 미사일은 7m 정도의 길이로 추정되며 8륜 발사차량에 2발이 장착되는 형식이다. 전반적인 형상과 꼬리날개 위치 등으로 볼 때 북한의 신형 미사일은 러시아의 9K720 이스칸데르 미사일(NATO명 SS-26)과 유사했다. 더 이상 단거리 미사일을 액체연료 방식의 구세대 스커드에 의존하지 않고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차세대 미사일 계열을 주력으로 삼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원형인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무려 2m급의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탄도비행 도중에도 미사일방어시스템 요격을 피하기 위해 20~30G에 이르는 급격한 자세변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참조해 만든 국산 미사일이 ‘현무2’다. 북한이 이스칸데르 계열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면 남북한 모두가 이스칸데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게다가 북한의 신형 탄도미사일이 이스칸데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군이 추구하는 미사일 방어체계를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등장했던 북극성 2형과 화성 12형은 그대로 나오면서 새롭게 바뀐 중거리 미사일 전력도 과시됐다. 등장하지 않은 무기도 있다. 단거리 미사일로는 정밀타격이 가능한 스커드VTO, 북한이 2006년부터 실전적 미사일로 자랑하던 무수단, 작년 4월 첫 등장했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발사관 운반차량은 열병식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를 대신해 등장한 것이 성공적 시험발사를 마친 ICBM 2종인 화성 14형과 화성 15형이었다. 이제 ICBM 전력까지 갖춤으로써 북한군의 핵 능력이 이미 성숙했음을 과시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듯 올 2월8일 북한군 열병식은 간소화된 것도, 우리 정부를 배려한 것도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공개한 유일한 신무기가 한반도를 타격할 수 있는 최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강력한 공격의지를 과시한 셈이다. 우리가 평창올림픽으로 저들에게 마지막 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순간에도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겨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남북, 북·미 간 대화를 원한다면 한·미 연합훈련을 정상적으로 실시하고 대북제재를 강하게 추진하는 등 우리도 우리의 페이스대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평양 Insight] 돈줄 마른 북한 사회 ‘고난의 행군’ 또 시작

체제 선전지 ‘노동신문’ 60만 부에서 20만 부로 축소 발행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8(수) 13:00:00 | 1480호

북한군 관련 동향을 담당하는 한·미 정보 당국자들은 최근 몇 달간 포착된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동계훈련이 한창이어야 할 시기에 북한 전후방 부대에 걸쳐 별다른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위성촬영 등 대북감시망을 통한 첩보 등을 분석해 보면 예년보다 동원 병력이나 장비 등 훈련 규모가 줄어든 게 확연히 나타난다는 군 당국의 판단이다. 한 관계자는 “특히 미그기를 주축으로 한 북한 공군 전투기들의 소티(sortie·출격 횟수를 의미하는 군 용어)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판단은 미군 당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월29일자 보도에서 “북한군의 동계훈련 규모가 예년보다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미 관리와 전문가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통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동계훈련을 실시하는데, 이번의 경우 시기도 늦게 시작한 데다 훈련 규모도 줄어든 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김정은의 군 관련 행보가 줄어든 점도 지적했다.

 

실제 통일부가 분석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군부대 방문 등이 거의 없고, 국가과학원과 제약공장·교원대학 등 민간시설에 치중됐다. 특히 1월 한 달간 김정은이 군부대를 방문하거나 군 관련 통치행보를 벌인 건 한 차례도 없다. 2월에도 2·8 건군절 군사퍼레이드 외엔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건군 70주(周)를 맞았다며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군부대 방문을 자제하고 훈련 규모도 줄였다는 건 특이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김정은은 지난해엔 탱크와 장갑차 보병연대의 동계 도하(渡河) 훈련을 참관하는 등 활동을 펼쳤다.

 

최근 북한은 체제 선전지 역할을 하는 노동신문 발행부수를 60만 부에서 20만 부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민이 2017년 4월14일 평양의 한 지하철역에서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 © 사진=EPA연합

최근 북한은 체제 선전지 역할을 하는 노동신문 발행부수를 60만 부에서 20만 부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민이 2017년 4월14일 평양의 한 지하철역에서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 © 사진=EPA연합

 

유류 봉쇄로 동계 군사훈련 대폭 축소

 

김정은의 군 관련 활동이 부쩍 줄고 동계훈련이 위축된 분위기를 보이는 걸 두고 한·미 당국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북제재의 약발이 본격적으로 먹혀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항공유를 포함한 대북 유류지원 축소 등이 공군기 출격 훈련 등에 직격탄이 됐다는 진단이다. 유엔 안보리는 정유제품과 원유의 대북 수출을 연간 각각 50만 배럴, 400만 배럴로 제한하는 결의(2397호)를 채택해 강도 높게 시행 중이다.

 

대북제재의 불똥은 북한이 절대 성역으로 여기다시피 해 온 노동당의 선전·선동사업에도 튀었다. 최근 60만 부 정도 찍던 신문 부수를 20만 부 수준으로 크게 줄인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탈북단체를 포함한 대북 소식통들은 올 들어 노동신문 발행부수를 대폭 줄이고 개별 가정에 보급하던 물량은 거의 없앴다고 전한다. 정부 당국자는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신문용지 조달에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며 “노동신문에까지 손을 댄 건 북한에 대량 아사 사태가 발생했던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처음으로 보여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훈련과 노동신문 발행 축소 사태는 북한 정권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사안이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군사 우선주의 노선을 걸어온 김정은 체제가 외부의 압박 요인에 의해 훈련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점에서다. ‘혁명의 선전·선동 참모부’라고 주장해 온 노동당의 기관지 노동신문에 손을 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동신문은 단순한 뉴스 전달이 아니라 북한 체제의 주축인 300만 노동당원을 교양하고 동원토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이 같은 고육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건 그물망 같은 촘촘한 제재가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유엔 주도로 국제사회는 교역과 금융 분야에서 대북제재를 펼쳤다. 하지만 중국 등이 미온적 태도를 취한 데다 동남아·유럽연합(EU) 등을 통한 거래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2012년 이후 사정이 확 달라졌다. 잇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도발에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김정은 체제를 압박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했다. 무엇보다 김정은의 핵 도발 노선에 불쾌감을 갖고 있는 중국의 유엔 제재 참여가 결정타였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0월 북한 유조선 예성강 1호가 해상에서 몰래 다른 선박으로부터 원유를 옮겨 싣는 장면을 포착한 위성사진을 공개하는 등 북한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대북제재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북한은 지난해 9월 ‘제재 피해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민생문제를 거론하는 등 방어에 나섰다. “어떤 제재에도 끄떡없다”던 입장에서 태도를 바꾼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대북제재와 압박의 파고가 더 거칠어질 것이란 점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월21일 국회 외통위 보고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 이후 미국의 제재 강화 움직임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미 ‘포괄적 해상차단’(Maritime Interdiction)을 포함한 초강력 대북제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EU도 평창올림픽이 끝난 후 강력한 대북제재를 동맹국과 함께 이행할 것이란 입장을 밝힌 상태다.

 

김정은이 올 신년사를 통해 도발에서 평화공세 쪽으로 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도 대북 압박의 여파로 보인다. 더 이상 도발행보를 벌였다가는 경제제재를 주축으로 한 압박을 견뎌내기 힘든 데다, 자칫 트럼프 행정부에 대북 군사타격의 빌미까지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가 북한 선적 유조선이 해상에서 타국 선박과 ‘환적(換積)’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장면을 포착했다며 관련 사진을 2월20일 공개했다. © 사진=뉴시스

일본 정부가 북한 선적 유조선이 해상에서 타국 선박과 ‘환적(換積)’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장면을 포착했다며 관련 사진을 2월20일 공개했다. © 사진=뉴시스

 

국제사회 압박에 경제난…지도층도 불안

 

올림픽을 무대로 한 대남 유화책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물밑으로는 미국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은 극도로 조심하는 형국이다. 자칫 제재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국제적으로는 물론 내부 통치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김여정 특사가 문재인 정부의 주선으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의 비공개 만남을 시도하다 막판에 포기한 것도 아직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채비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올림픽 이후 북·미 간 본격 대화에 나서기보다는 남북대화 진전을 통해 대북제재의 틈을 벌리고, 한·미 공조를 흔드는 쪽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절정을 향해 치닫는 대북 압박의 격랑 속에서 ‘올리브 가지’를 흔들고 나온 김정은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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