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문재인, '트럼프주의' 이해하면 북한 문제 길 보인다"

일취월장7 2017. 5. 15. 14:51

"문재인, '트럼프주의' 이해하면 북한 문제 길 보인다"

[인터뷰] 고려대학교 임혁백 명예교수 ①
2017.05.12 02:39:49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길은 험난하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사드 배치 문제와 중국과 관계 회복 문제, 무엇보다 6차 핵실험을 앞둔 것으로 판단되는 북한 문제 등은 문재인호(號)의 앞날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역으로 생각해보자.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그는 국제 정치의 '문법'에서 자주 일탈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말부터 전문가들이 지겹게 입에 올려 왔던 수사는 바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다.  

예측은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간 국제정치는 셀수 없는 사건이 더께처럼 쌓여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이뤄왔다. 이 경험의 축적에서 여러 법칙들이 도출됐고, 그에 따라 국제정치의 문법이 생성돼 왔다. 우리는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자가 나타났다. 과거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툭툭 말을 내뱉는 인물, 외교적 수사라고는 도저히 사용할 줄 모르는 인물이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다면 '격변'도 가능할 수 있다. 물론 그 격변이 좋은 방향일지, 나쁜 방향일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격변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맞아 차기 정부의 과제 및 국제 정세와 관련된 조언을 듣고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인 임혁백 선생을 찾았다. 

임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미국 조지타운대·듀크대 초빙교수 등을 지냈고, 1998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경제론, 국가와 시민사회 등을 강의했다. '민주주의 이론'의 권위자로 미국의 정치 시스템 등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다. 다음은 임 명예교수 인터뷰 전문.편집자 

▲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박세열)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시급한 과제는 많지만 정부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으면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바로 북한 문제다. 북한 문제는 곧 미국 문제와도 같다. 

임혁백 : 문제는 외교다.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보좌관이 과거 1997년에 낸 책에 이렇게 언급돼 있다. "전쟁은 워싱턴에서 결정되었다" 존슨 대통령과 맥나마라 국방장관 등 수뇌부가 워싱턴에서 전쟁에 대한 정치인들간 의 컨센서스를 구축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려하지 않고 오만하게 전투 능력만을 믿고 밀어부친 결과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전쟁은 월남의 전장이 아니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결정된다"는 맥마스터의 주장을 받아 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대북정책, 한반도평화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전방위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맥마스터의 말은, 북한문제, 중국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워싱턴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경구다.  

단, 한국은 워싱턴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동맹국이 아니다. 워싱턴의 정치를 움직여 트럼프가 우리의 정책과 공조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드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 주장한 전략적 모호성 (strategic ambiguity)은 선거 시에는 훌륭한 정책이지만, 집권 후에도 유지해야할 정책은 아니다. 집권 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움직여 트럼프로 하여금 우리의 "창조적 포용정책"에 공감, 공조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한다.  

프레시안 : 사드 문제가 일단 걸림돌일 것 같다. 해법이 무엇일까?

임혁백 : 사드 문제를 언급하기에 앞서 우리가 인식해야 할 부분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미국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미동맹이다. 한미동맹 하에 사드 문제를 비롯해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를 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목표는 '제2기 햇볕정책' (Sunshine Policy II 또는 Neo-Sunshine Policy)을 통한 '한반도 평화 만들기'(Crafting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기본 수단은 한미동맹의 강화 또는 한미동맹의 재창조이다. 

선거 기간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 먼저 북한에 가서 김정은과 대화해서 북한 문제를 풀고 평화를 회복하겠다'고 했다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가급적 빠른 시일에 만나 한반도 문제 해법을 공동으로 찾겠다고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중요한 부분이다. 문재인 후보는 미국의 동의와 협조없이 북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을 먼저 추진하고 두 동맹국이 합의한 해법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선다는 '워싱턴 외교'를 최우선 순위를 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의 취임 선서 전, 대통령에 당선된 그날 트럼프는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미동맹은 "위대한 동맹"(great alliance)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가장 빠른 시일내에 워싱턴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했다. 지난 5년간 박근혜 정권이 경중안미(經中安美,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라는 이름 하에 중국 우대 정책을 펴면서 소원해졌던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를 푸는 것은 결국 미국에 달려있다, 이 명제에 대해서는 진보든 보수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국과의 관계를 설정해 북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이 남는다.  

임혁백 : 우리에게는 '서희의 외교'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도 그 점은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세력균형을 통해 자주와 자립을 달성하는 방법에는 "내적 균형" (internal balancing) 전략과 "외적 균형" (external balancing) 전략이 있다. 북한은 내적균형전략을 채택하여 자력갱생을 추구하고 있으나, 한국은 외적균형전략 즉 한미동맹이라는 외부의 힘을 빌리고 보태어 중국, 북한, 일본과 균형을 취하는 외적균형 전략을 취해서 안보와 번영을 만들어 냈다. 

한국이 외적균형전략을 통해 미국과 강력한 동맹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북한이 도발하지 않았고,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지 않았고, 중국이 북한을 옛 변방의 고토였던 고구려의 일부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한미동맹이 약해지고 이완될 때 마다 동북아의 이웃세력이 세력균형을 깨고 한국을 장기판의 졸로 여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한미동맹은 더욱 강력해져야한다. 미국으로부터 자립하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립을 해치는 것이고,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주를 부르짖는 것은 한국을 덜 자주적인 나라로 전락하게 만드는 길이다. 

따라서 트럼프 시대에 맞는 한미동맹의 혁신 (reinventing)이 있어야한다. 지금 한미정상회담이 6월에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마침 잘 된 일이다. 가치와 이념에 기반한 동맹 (value and interest based alliance)에서 이익에 기반한 실용적 동맹(national interest based alliance)으로 변환하여 한미동맹을 한국의 안전과 번영의 중심기둥으로 만들어야한다. 

프레시안 : 한미동맹의 새로운 전기를 맞기 위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  
 
임혁백 : 트럼프는 첫째, 21세기의 잭슨주의자 (Jacksonian)이다. 잭슨대통령은 보통평등선거권이 실시된 이후 당선된 첫 대통령으로 보통사람들의 표에 의해 선출되어, 그 이전의 워싱턴, 매디슨, 제퍼슨과 같은 엘리트주의 민주주의에서 대중 민주주의로 전환시킨 대통령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특징은 상인정신 (merchant leadership)과 실용주의다. 이념 보다 이익을 중시한다.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from Offshoring to Reshoring)와 고립주의 (isolationism)도 들 수 있다. 경제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정치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국 힘의 철수를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일 3각동맹은 오바마 정부 때보다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즉 다자주의보다 양자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바마가 하는 것은 안한다'는 성향이 강하다. 대중국 외교에서는 이른바 '중국외주전략(Outsourcing China)'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봉쇄, 억제 전략에서 실용주의적 거래외교(transactional diplomacy)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중국에게 북한비핵화를 비롯한 북한문제를 해결하라는 외주(outsourcing)를 주어서 중국이 자체 비용과 노력으로 북한문제 해결하게 한다는 것이다.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외주전략은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에서 확인됐다. 시진핑이 외주역할을 맞는데 대해 미온적이자 트럼프는 정상회담 런천미팅에서 시리아를 폭격함으로써 시진핑에게 '신호'를 주었다.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 다음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암시'다. 따라서 사드(THAAD)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고, 새로운 G2 관계설정이 주요 의제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백악관에서 만난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같은 '트럼프 정부'의 특성을 감안해 문재인 정부의 외교 목표는 어떻게 돼야 할까? 

임혁백 : 문재인 정부의 외교 목표는 트럼프주의(Trumpism)를 활용한 "한반도  평화만들기"가 돼야 한다. 용미주의(用美主義) 외교가 필요하다. 대미 외교의 방향은 거래형(transactional)동맹, 이익에 기초한 동맹이 돼야 할 것이다. '가치와 이념에 기초한 동맹'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공유)에서 '이익공유에 기초한 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이 트럼프주의에 맞는 동맹 정책이다. 그리고 트럼프식 빅딜 외교에 조응하여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대미 외교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유의할 점은, 부시정권 이래 ABC (Anything But Clinton)와 같은 형태가 부활했다는 점이다.  

전통적 미국 외교는 초당적이고 연속성을 중시했다. 2001년 부시 정권 등장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부시가 ABC 외교 정책을 전개한 이후 민주당의 오바마도 부시 정권 말기 한국과 북한간에 타결한 9.17선언, 2.13선언을 계승하지 않고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자신만의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8년동안 지속 시켰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폐기됐다. 일례로 사드 배치는 오바마의 정책이라는 이유로 폐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사드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의 문제만 남은 것이다. SM-3와 같은 대체제를 구하거나 중국과 '주고 받기'를 해서 미중간에 적당히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우리의 외교 정책을 대응시켜야 한다. 오바마의 한미일3각동맹 체제를 한미동맹 체제로 변환시켜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외교에서 무능을 보임으로써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레버리지를 상실해버렸다는 말이 있다. 트럼프가 남중국해를 중국에 양보하고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아웃소싱하는 거래를 이미 성사시키고 있고, 미중간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여기에서 제외된 이른바 '코리아 패싱 (Korea Passing)' 현상에 말려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임혁백 : 대한민국이 미중간의 세기적 거래에서 제외되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 박근혜 정권은 우리의 외교적 레버리지를 다 태워버렸다. 적폐 정권은 개성공단, 금강산, 대륙횡단철도, 나진개발 등 우리가 갖고 있던 레버리지를 트럼프가 등장할 것을 예측도 못한채 태워버리고, 오바마의 제재와 압박 정책 (전략적 인내)에 편승한 결과 현재의 외교 대회전에서 우리의 처지가 참으로 곤궁해졌다.  

정권교체기에 한국이 "협상 당사자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코리아 패싱이 발생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코리아 패싱에서 코리아 이니시에이팅(Korea initiating)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북정책은 스마트 포용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먼 나라 미국에서의 '워싱턴 외교'를 통해 중국과 일본을 제어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를 넓힘) 또는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 세도를 부린다) 전략을 통해 미국의 힘을 빌어서 중국과 일본과 외적균형 (external balancing)을 구축하여 대외적 자주국가를 달성하는 '동맹을 통한 자주'를 외교 목표로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대외 협상 레버리지를 키워야한다. 한국이 외교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이념을 초월하여 트럼프의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여 한미동맹을 미일동맹을 능가하고 미영동맹 수준으로 높여서 미국의 힘을 업고서 중국, 일본, 북한과의 협상할 수 있어야한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동아시아 안보지형이 '예측 불가능성'으로 빠진 것은 오히려,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새 대통령에게 하늘이 내려준 천시의 이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는 정통성이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국민적 지지는 대외 협상에서 어떤 다른 수단보다도 위력이 큰 레버리지가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쉽지 않은 일 같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방안은 어때야 할까? 

임혁백 :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동맹' (New Era New Alliance), 스마트한 동맹으로 재창조 (reinventing) 해야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드배치, 주한미군주둔비용분담, 한미FTA 재개정, 한일정보공유 없이 미국과 정보 공유 강화와 같은 현안을 패키지로 트럼프가 좋아하는 딜(거래)로 해결해야할 것이다. 사실 사드에 대한 대안은 많다.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사드배치 취소 그리고 사드를 해상요격미사일 (이지스함 발사 SM-3 요격미사일) 체제로 대체하는 딜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트럼프 시대의 미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임혁백 : 트럼프는 북한문제 해결을 중국에 외주를 주고 그대신 중국에 대한 무역제재를 완화시켜주겠다는 구상을 유세중에 밝힌 적이 있다. 지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는 중국이 외주를 맡아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문제의 중국외주 전략은 미국에게는 북한 핵폐기는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중국에게는 북한이 자신의 영향권하에 있다는 것을 확인받았다는 명분상의 이익이 있고, 러시아의 푸틴에게는 중국이 외주를 거부했을 때 중국으로 하여금 외주를 받아들이도록하는 회초리의 역할을 함으로써 동북아 정치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신정부에게는 북한문제 해결이라는 큰 짐을 중국 손을 빌려 해결할 수 있는 잇점과 중국에 북한문제해결을 맡겼을 때, 중국은 적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게 할것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이익이 있다. 그러므로 중국에게는 미국이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으로 권력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 정책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거대한 초승달" 전략 (Great Crescent, 중동에서 가라후토까지 거대한 초승달모양의 대 중국 포위선)의 공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게 된다. 

즉, NATO와 같은 미국이 참가하는 동북아지역안보공동체를 결성하여, 미국과 중국이 같이 동아시아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하여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데 한국이 앞장 서 준다면, 중국의 반한국 분위기를 누그려뜨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미일 간의 관계는 매우 좋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미일 3각동맹 구상이 약화될 수 있을까? 

임혁백 : 트럼프는 다자 관계가 아니라, 양자 관계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정을 했을 때, 트럼프가 오바마의 '재조정 정책'을 폐기하고 트럼프의 아시아에서의 철수가 가속화될 경우 한미일 3각군사동맹의 필요성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3각동맹을 구축하여 동아시아에서 맹주가 되려하는 아베의 꿈도 날아가 버릴 수 있다. 오바마는 이념에 기초한 동맹을 주장해서 사회주의 중국을 포위하는 냉전적인 재균형정책을 들고 나왔으나 트럼프는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 확대하면서도 이익에 기반한 실용주의적 딜(deal)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 만큼 일본의 중요성은 줄어들 수 있다.  

아베는 부인의 부패스캔들과 함께 이제 지는 해가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국제주의적 근린외교로 돌아가지 않으면 한일관계의 개선은 없다고 단호히 못박아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류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국수주의적 아베 정부와 한국을 사랑하는 한류 일본인들을 분리해서 다루겠다는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수상의 "한일 신시대 선언"은 아직도 유효하며 아베는 빨리 오부치 수상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 추진한 동아시아 이웃나라와의 국제주의적 근린정책으로 복귀하라고 선제적으로 압박해야한다.  



[인터뷰] "中 왕이의 '투트랙' 제안을 다시 주목하자"

[인터뷰] 고려대학교 임혁백 명예교수 ②
2017.05.12 16:16:04

프레시안 : 대북 정책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향후 문재인 정부는 어떤 대북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보나? 

임혁백 : '스마트 포용정책(Smart Engagement)'이다. 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와 번영정책'을 계승하되, 대북 포용정책을 새로운 한반도 안보환경 변화에 맞추어 스마트하게 재조정하여 '햇볕정책 2기' 또는 '스마트 포용정책'으로 변환하여 좀 더 실현가능하고 유효한 포용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정책은 미중이라는 경쟁하는 두 강대국으로부터 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실현 불가능한 모순적인 정책이었다. 이는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배제당하는 결과를 자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우리는 한미동맹을 기본 지주로 삼아서 안보를 보장받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러나 우리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경제분야에서 지속적인 협력과 교환을 원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하고, 그 바탕위에서 중국과 안보와 경제에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한다. 일본과는 공유된 이익(shared interests)에 기초한 근린외교를 펼쳐야 한다. 아베가 군국주의 외교 (위안부배상, 소녀상, 독도, 역사교과서 등)를 포기하는 것을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한다.  

이를 위해서 미국의 여론 주도층을 설득하는 워싱턴 외교를 펼쳐야한다. '전쟁은 워싱턴에서 결정되었다'를 항시 잊어서는 안된다. 아베가 군국주의 외교를 포기하면, 개방과 협력이라는 포지티브한 김대중 대통령 시대의 개방적 한일관계 정책을 부활시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한류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는 무력에 의한 북한체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 이른바 '통일대박'론을 폈으나 성과는 없고 남북 관계는 악화되기만 했다. 이를 폐기하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임혁백 : 북한 체제 붕괴론은 1989년, 혹은 1991년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근 30년동안 북한은 여전히 끈질긴 생존 능력을 과시하고 3대 세습을 성공시키고 핵능력을 키웠다. 앞으로도 북한 체제 붕괴론의 가정에 근거한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재인도, 트럼프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한다는 가정하에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워싱턴 외교를 통해 북한 붕괴론을 폐기하게 하고 스마트 포용 정책에 따라 실용주의적으로 북한과 미국간에 북미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교환하는 빅 딜을 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프레시안 : 스마트 포용정책이나 햇볕정책 2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임혁백 : 지금까지 대북 포용정책은 전략적이지 못했다. 무조건적, '묻지마 포용정책' (unconditional engagement)'은 이제 안된다. 하드 파워의 비중을 줄이고 소프트 파워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그것이 외교다. 북한의 체제를 고도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경제적 지원과 북한의 IT화 지원을 통하여 북한이 스스로 우리에게 달라붙어서 도와달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권력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지능정보사회 (intelligent information scoiety)의 외교는 스마트 외교가 되어야 한다. 똑똑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경분리가 필요하다. 정경연계, 즉 MB의 "비핵개방 3000달러"와 같은 전형적인 정경연계형 조건부적 포용 정책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실패로 판명됐다. 앞으로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문제 해결, 한반도횡단철도를 TSR과 TCR과 연결하여 유라시아 대륙횡단 철도를 완성하려는 프로젝트 등 정치, 군사적 변화에 상관없이 경제적 논리를 가지고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바탕에는 한미동맹 우선주의가 있어야 한다. 북한과의 협약도 한미동맹이 튼튼해야 준수, 이행될 것이다. 북한의 협약 이행은 미국의 협약준수와 한국의 추가 지원으로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동시에 워싱턴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일단 당장 문재인 정부의 눈앞에는 대미 외교 현안이 있다. 가장 큰 게 사드 문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앞서 언급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다면?

임혁백 :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차기 정부와 사드 배치를 유보하는 대신 주한미군 분담금의 획기적 증액과 국방비 증액을 교환하는 딜을 통해 해결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새로운 ABO(Anything But Obama, 오바마가 한 것 빼고 다)에 따라 오바마의 작품인 사드를 많은 비용를 지불하면서 추진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사드 문제는 정권 교체 후 미국과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주장은 트럼프의 외교의 특성을 파악한데서 도출한 혜안으로 볼 수 있다.  

일단 트럼프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해 만약 사드 배치 의지가 강하다면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피해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트럼프가 일단 사드 가동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에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철회하도록 설득해줄 것을 주문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사드가 완전 배치돼 가동되려면 한국에서 공론화과정과 국회 비준 절차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사드를 대체할 요격 미사일인 SM-3(레이더 탑재 이지스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로 사드보다 요격거리와 고도가 더 높음. 미국과 일본 이지스함에는 배치됐으나 우리나라는 SM-2만 장착돼 있음)도 협의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미사일방어체계로 사드보다는 SM-3 해상요격미사일체제를 선호한다는 신호가 있다. 따라서 사드는 배치냐, 철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상 발사 사드를 해상 발사 SM-3로 대체하고 한국은 미군 주둔비나 국방비를 인상하는 방향의 딜이 실용적이고 우리의 국익에도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SM-3가 배치되려면 지금부터 설계에 들어가 2023년부터 차기 이지스함 3척이 가동된다는 점에서 5년간의 공백이 있어 그 사이는 굳건한 한미동맹으로 커버해야 한다. 또한 SM-3로 대체하면 미사일방어체계가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완성되고 한국이 미일 미사일 방어체제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정리하면 사드 문제는 트럼프의 주요 외교 주제가 아니며, 사드는 기본적으로 미중간의 외교현안이라는 것 같다.  

임혁백 : 그렇다.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배치 지역 주민들의 인권, 재산권과 환경권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 배치하지 않을 수 있다면 배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입장은 중국과 미국이 사드를 해결하게 놓아두고 우리는 뒤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대신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맞다. 국가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일부 주민들의 이익은 희생되어도 된다는 인식은 매우 위험한 사고다. 하찮은 국민의 생명도 소중히 해야한다는 것이 세월호에서 우리가 배운 교훈이지 않나. 

왕이 중국 외교부장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근본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임혁백 : 오바마 정권 말기인 2016년 미국의 케리와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사실상 합의한 투 트랙 병행정책 (Two-Track)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한미가 받아들이도록 하면 좋다. 투 트랙 병행 정책은 북한이 원하는 미북 평화협정과 미국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를 동시에 병행추진한다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제안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정책을 고집함으로써 투 트랙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된 후 왕이는 계속 투 트랙의 유용성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투 트랙 협상이, 이제는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핵이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보에도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은 한국, 미국 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그런데 비핵화를 통해 북핵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전쟁, 압박, 제재 등의 방법도 있지만 협상, 타협, 빅딜 등 다른 방법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1975년~1978년 제5해역사 해군장교로 근무하면서 최근에 벌어진 것같은 연평도에서 충돌을 겪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유화주의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전쟁의 위험과 참상이 얼마나 큰지 몸으로 느꼈다. 우리에겐 강경론자로 알려진 박정희는 그러한 충돌때마다 판문점에서 협상으로 해결했고, 나포된 북한 선원과 수병, 장교를 판문점에 잘 차려입혀서 바로 북으로 보냈다. 전쟁까지 고려하면서 북한비핵화를 생각해 볼수는 있다. 그러나 루터와 동시대의 에라스무스가 이야기한바와 같이 "가장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경구를 상기해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필요하다면, 평화를 사라"고 권고했다. 평화를 돈 주고 사더라도 전쟁의 비용과 참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조언을 한다면?

임혁백 : 거듭 강조하지만 문 대통령은 먼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승격시켜야할 것이다. 한미동맹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동맹' (New Era New Alliance), 스마트한 동맹으로 재창조하고, 이를 지지대로 해서 북한문제, 중국문제를 해결하여 한반도 평화구축에 전기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이종석 “문재인 정부, 북핵 동결만 시켜도 큰 성과”

참여정부 통일부 장관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5(월) 14:00:00 | 1439호


‘준비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 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한 분야별 당면 과제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난 이후의 대한민국 현대사는 반목과 분열로 얼룩져왔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게 된 한반도의 이념·지리적 상황은 이념과 지역, 세대 간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런 갈등을 숙주 삼아 기생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났다. 한국 사회는 둘로 셋으로 쪼개졌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한 이후에는 빈부 격차까지 더해지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늘어만 갔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70년 동안 11명이 대통령직에 올랐다. 모두 “국민통합”을 외쳤다. 그럼에도 누구도 실패한 대통령이란 ‘오명’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대통령 개인의 역량 탓도 있을 수 있지만, 분열된 사회 속에서 대통령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성공적으로 ‘직(職)’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급기야는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혹자는 현재의 상황에서 어두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봤고, 혹자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힘을 봤다고 말한다. 이런 갈림길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압도적인 차이로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그가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준비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권자들의 기대가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를 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의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했다. 이를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참여정부는 ‘공’만큼 ‘과’도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남겨놓은 부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참여정부의 ‘과’를 반면교사 삼는 그는 어느 후보보다 준비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유권자들이 상상하는 가장 좋은 그림일 뿐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당장 그의 앞에 놓인 과제들이 적지 않다.

 

일단 청년실업·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민생고 해결이 시급하다. 여기에 정치·사법·경제 각 분야의 적폐를 이번에도 척결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지난 과거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기에 핵과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경직돼 있는 남북문제도 풀어야 한다. 자국 우선주의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도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모든 사안의 해법을 놓고 갈라져 있는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는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숙제다. 과연 문 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기로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첫발을 내디딘 문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취임 직후다. 그가 과연 어떤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어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많은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도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시사저널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길 바라며, 대통령이 특히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분야별로 짚어봤다.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시사저널 임준선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시사저널 임준선


‘달빛정책(Moonshine policy)’.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세계 주요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이같이 명명했다. 문 대통령의 성(Moon)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결합된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다수 인터뷰와 공약 등을 통해 자신이 진정한 햇볕정책의 계승자임을 공표하며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꽉 막혀 있던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강조해 왔다. 지난 1월 발간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도 문 대통령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북한과의 협력관계 유지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주장했다.

 오늘날 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단단히 꼬인 실타래 같다. 탄핵 정국으로 사상 최악의 상태로 치달아 있던 이들과의 정상 외교는 새 정부 탄생과 함께 서서히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6월로 추진 중인 트럼프와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부터 북핵 문제에 대한 협상은 당장 어려움에 부딪힐 거란 전망이 높다. 새 정부에 대한 허니문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달빛정책’은 혹독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산적한 통일·외교 과제와 관련,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역임하며 햇볕정책을 주도했던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5월12일 만났다.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을 오가며 베이징(北京)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는 “그전까지 문 대통령과 통일·외교·안보에 대해 전반적으로 한 번씩 의견을 나누곤 했는데 그때도 문 대통령이 상당히 많은 준비가 돼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이 전 장관이 그리는 대북 관계 청사진과 문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북 정책과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았다. 이 전 장관은 “대선 과정에서 외교·안보 사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스탠스가 조금씩 변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줄기는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최근 새 정부 내각 인선과 관련해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데 대해선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것도 아닌데 내각 인사로 이름이 거론되는 건 사실상 ‘가짜뉴스’에 가깝다”며 웃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시사저널 임준선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시사저널 임준선


문 대통령은 자신을 ‘햇볕정책 계승자’라고 칭하며 이를 보다 현실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정부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용어였고,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이 노무현 정부 ‘평화번영정책’이었다. 이를 일괄해 학문적으로는 ‘포용정책’이라 하는데 10년간 유지됐던 이 기조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철저히 거부돼 왔다. 그동안 우리 통일·외교·안보 환경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10년 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햇볕정책의 기본 정신을 지켜나가되 복잡한 정세 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외교 환경 10년 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화가 우선이다. 대화 자체를 불온시하는 태도가 이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0년 남북 대화를 결정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아웅산 테러가 있었음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지 않았나. 기본적으로 대화하지 않고는 대결 구도를 돌파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북한을 찍어 누르는 적대 관계로는 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이미 지난 9년 동안 충분히 증명됐다.

  

문 대통령 임기 5년이 부족하지 않을까.

북핵 문제가 진행된 게 벌써 25년이 넘었다. 해결하는 데 일제 치하 36년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는 문제다. 새 정부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물꼬를 막고 북한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놓는 일만 해도 성공이라고 본다. 물론 대북 관계에 있어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같은 야심 찬 구상을 하고 있을 순 있겠지만 그건 더 길게 봐야 할 미래 일이다. 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차기 정부에 그런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이번 정부의 우선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5년 동안 핵 동결만 확실히 이뤄도 큰 성과 아닌가.

  

무엇보다 남북 간 신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휴전선상에서 더 이상의 충돌은 없다’는 정도의 합의와 그 정도 신뢰를 형성하는 게 물론 우선돼야 한다. 국민들이 최소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의 위험성을 안고 칼날 위에 서 있는 듯 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균형외교가 필요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가 북핵이나 사드 문제를 다룰 때 ‘이건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우리가 당사자다’라는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2월10일 청와대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2월10일 청와대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반도 문제 우리가 당사자’ 인식해야”

 

사드 배치 때문에 균형외교가 이미 기울어진 상태로 시작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정부는 균형외교를 시도하지 않았다. 균형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율’이다. 양자택일을 요구받을 일이 없도록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 미국·중국이 지금처럼 앞다퉈 우리에게 ‘누구 편이야’라고 묻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부터라도 사드나 북핵 문제에서 모두 선택을 요구받는 게 아닌 주체적으로 조율점을 찾아가는 위치가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경제 협력도 강조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수년간 북핵 문제를 풀지 못했다면 이제 이 문제를 단순히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만 해결하지 말고 경제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금 마치 군사주의 노선을 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를 주변국과의 협력에 의한 경제적 번영을 통해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꿔준다면 북한의 태도가 지금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재개될 수 있을까.

남북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장치로 개성공단의 존재는 너무나 중요하므로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개성공단 임금의 상당부분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 지도부에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하며 문제 삼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통일부에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요구했지만 아직 어떠한 답변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가 지원한 돈과 쌀로 북핵이 개발된다는 주장은 오랜 논쟁거리 아닌가.

 잘못 알고 있는 거다. 내가 통일부 장관으로 있던 2006~07년 중 북핵 실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전인 2005년 9·19 공동성명 합의가 있었다. 그 합의 내용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시점에 미국 부시 정부에서 ‘북한이 미국 마카오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통해 달러를 위조하고 있다’며 북한을 강력히 제재하고 나섰다. 그 당시 우리가 미국 정부에 ‘당장 북핵 포기가 중요하니 BDA 문제는 그다음에 해결하자’했지만 미국이 물러나지 않았다. 이후 이 제재에 맞서기 위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쏘고 핵실험까지 한 거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9·19 공동성명 때문에 핵실험이 이뤄진 걸로 오해하고 있다. 이후 미국도 몇 개월 지나 대북 정책을 협상과 대화 체제로 180도 바꿨다. 이렇게 정책을 뒤바꾼 것만 봐도 당시 미국의 대북 태도가 잘못됐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나.

  

문 대통령의 대북 계획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라 부르며 ‘제재’에 방점을 두지만 사실 결의안 속엔 북한 민생과 인권에 있어 영향을 받지 않게 한다거나, 6자회담 등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포함돼 있다. 지금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꺼내들며 제재만 주장하는 건 우리 식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거다. 결의안에서도 ‘대화’가 기본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제재 강도만 높여가면 결국 전쟁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 보수 진영의 반대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참여정부 때도 대북 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대가 매우 심했다. 국내에서 하나 된 목소리를 갖고 미국 등 다른 나라와 협상을 해도 그게 이뤄질까 말까인데 내부에서도 입장이 갈리니 바깥에 나가서도 면이 안 서는 거다. 현존하는 정부 정책이 꼭 맘에 들지 않더라도 국익을 위한다면 일단 믿고 맡겨보자는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정부의 인내도 분명 필요하다.

  

새 정부에 당부 한마디 해 준다면.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 위원으로 내가 통일·외교·안보 관련 일을 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우리가 중심을 잡고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는 거다.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냐 하지만, 우리의 운명과 삶을 좌우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모든 국력을 짜내서라도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남북이 일단 대립 관계에 머물러 있으면 국제사회 어느 나라도 남북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남북 간 협력 관계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다.

  

일단 6자회담이 부활하는 게 우선인가.

그렇다. 대화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일단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 이전 9년 정권처럼 강한 제재만 계속 강조하면서 제재 강도만 높여간다면 결국 남는 건 전쟁밖에 없다. 우리가 전쟁하지 말자고 지금껏 힘들게 나라 지켜온 것 아닌가. 새 정부는 대화 협력을 강조하는 지금의 스탠스를 유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를 두고 ‘햇볕정책 2.0’이라고 할지 ‘평화번영정책 2.0’이라고 할지 ‘달빛정책’이라고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이름이 붙든 새 정부가 변화된 상황에 잘 적응해 과거 대북 포용 정책의 진화된 형태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