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유권자는 후보를 어떻게 선택할까? - “교수님은 ‘또’ 대선캠프 출장 중!”

일취월장7 2017. 4. 18. 11:40

유권자는 후보를 어떻게 선택할까?

문재인 후보 열성 지지층의 행태가 다른 민주당 후보 지지층의 이탈에 영향을 미쳤을까? 유권자 행동과 정치 제도 설계를 연구하는 정치학자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조석주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를 분석했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7년 04월 17일 월요일 제500호

데이터를 다루고 예측 모델을 만드는 사회과학자의 문장에는 보통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가정이 생략되어 있다. 물론 어떤 연구자도 현실에서 ‘다른 조건’들을 고정시킬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물리학이 가정하는 ‘마찰 없는 표면’과 비슷하다. 울퉁불퉁한 변수가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모델을 만든다. 모델이 만들어지면 그때 현실의 울퉁불퉁함을 반영한다. 박원호 교수(서울대)와 조석주 교수(성균관대)는 유권자 행동과 정치제도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다. 다른 모든 조건을 고정시켜놓고 하나의 변수를 움직여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따지는 접근법이 이들의 핵심 전략이다.

다른 모든 조건은 실제로 같지 않으며, 시점도 방향도 예측 불가능하게 변한다. 그럼에도 유권자 지형이나 경선 결과나 문자폭탄이나 후보 단일화나 텔레비전 토론과 같은 특정 변수의 위력과 방향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외의 나머지 조건을 고정시킨 채로 해부해야 한다. 이런 ‘비현실적 가정’에 기반한 엄밀하고 제한적인 접근법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전체 현실을 더 잘 예측하게 해준다. 두 연구자와 함께 ①5당 대선 후보 확정 ②본선 텔레비전 토론 ③본선 당일 개표 등 대선의 세 변곡점을 지켜본다. 첫 대담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확정된 4월3일 진행했다.

ⓒ시사IN 윤무영
박원호(왼쩍)
미시간 대학 정치학 박사.
플로리다 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를 거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유권자 투표 행태, 한국정치, 연구방법론이다.

조석주(오른쪽)
로체스터 대학 정치학 박사.
예일 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를 거쳐
성균관대 경제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학, 비교정치제도다.

민주당 경선에서 어떤 대목을 주목했나?


박원호:원론 차원에서 투표 절차 문제를 짚어두고 싶다. 누구한테 투표했는지 자기는 확인이 되면서도 남들에게 그걸 알려줄 수는 없어야 잘 만든 투표절차다. 내가 누굴 찍었는지 ‘투표 구매자’에게 증명하면 내 표를 팔 수 있으므로 결국 ‘투표 매수’가 쉬워진다. 모바일 경선에서는 이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투표 절차 설계가 어렵다. 내가 누구를 찍었는지 확인 멘트를 줄 수밖에 없는데, 그거 녹음하면 끝이니까. 이번 경선은 별 문제가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경선이 박빙이면 투표 매수의 유혹도 커진다.

조석주:막판에는 2위 싸움이 오히려 치열했다. 안희정 후보의 2위가 문재인 후보에게도 더 낫다. 안희정 쪽 주요 인사를 대거 흡수한다거나, 아예 안 후보가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선거운동에 뛰어들 경우 벌어올 수 있는 ‘오른쪽 표’가 ‘왼쪽 표’보다 더 많다.

박원호:문재인 캠프 처지에서는 안희정 후보의 도움 없이 이길 수 있으면 가장 좋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캠프는 ‘최소승리연합’을 꾸리고 싶어 한다. 이길 수 있을 정도로는 동지를 모아야 하지만, 너무 많은 동지가 있으면 승리의 보상이 줄어드니 딱 이길 만큼만 연합하고 싶어 한다.

조석주:그래서 문재인 캠프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경선을 그런 태도로 임했던 것 같다. 그 결과 당내 경쟁자 표의 흡수력이 떨어졌다. 당내 이재명·문재인·안희정 세 후보의 지지율 합산이 60%까지 간 적이 있는데 이걸 최종 승자가 대부분 흡수하지 못했다는 건 경선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굉장히 논란이 많은 주제가 있다. 문재인 열성 지지층은 문 후보의 확장성을 제약할까?

조석주
:실제로 측정된 데이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모델을 만들어볼 수는 있겠다(26쪽 <그림 1>). 유권자 A가 있다. 이 유권자는 각 대선 후보들의 집권 후 통치노선을 대략 짐작하지만 정확히 알지는 못하며(상식적인 가정이다), 후보의 통치노선을 확률적으로 추측한다. 최초에 유권자 A는 문재인 통치노선 확률이 곡선 1, 안철수 통치노선이 곡선 2로 분포한다고 추측했다. 이 경우라면 유권자 A는,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자신의 선호와 더 가까울 확률이 높은 문재인 후보를 찍는다. 여기에 열성 지지층 변수를 넣어보자. 문재인 열성 지지층이 B지점에 몰려 있고, 이들이 충분히 눈에 띈다고 하자. 그러면 유권자 A는 이 정보를 집어넣어 자신의 추측을 업데이트한다. 첫째, 새로 추가된 정보에 근거해 문재인의 통치노선 곡선이 사실은 곡선 1′라고 기존 추측을 수정할 수 있다. 둘째, 강성 지지층 그룹 B의 견인 효과로 인해, 집권 이후 문재인 통치노선 곡선이 1′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기존 추측을 수정하든 견인을 예측하든 결과는 같다. 이제 유권자 A의 선호와 더 가까울 확률이 높은 후보는 안철수 후보다.



문재인 지지층에서 나오는 반론은 이런 것 같다. “선거는 후보를 평가해서 하는 것이다. 지지층을 보고 후보를 판단한다는 것은 그 유권자가 비합리적이거나, 원래 후보를 싫어하면서 핑계를 대거나, 둘 중 하나다.”

조석주:제3의 가능성으로 ‘징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열성 지지층이 싫은 나머지 그들이 불행해지길 원해서 투표 후보를 바꾼다고 하자. 이건 자신의 선호와 더 먼 대선 주자를 뽑는 것이니 합리적 선택으로 보기는 어렵다. 만약 이 ‘징벌’이 전부라면, 그 반론이 맞다. 하지만 ‘추측 수정’과 ‘견인 예측’으로 곡선 1이 곡선 1′로 이동하는 건 합리적이다. 기본 논리는 ‘영입 효과’와 같지 않을까? 2012년에 박근혜 후보가 김종인을 영입해서, 그 결과 유권자들이 박근혜 후보에 대한 추측을 수정하거나 견인을 예측했다. 정치세력의 노선이란 지지자 구성에 따라 영향을 받고, 대통령이 추진할 정책도 지지층의 판단과 반응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투표 의사 결정에서 지지층 정보를 고려하는 것과 영입 인사 정보를 고려하는 것은 비슷한 이유로 합리적이다.

4월3일 문재인 캠프의 임종석 비서실장이 ‘문자폭탄’이나 ‘18원 후원금’을 자제하자는 호소문을 썼다.

조석주:만약 호소와 사과로 그 문제가 풀린다면, 그건 오히려 문제가 감정 차원의 ‘징벌’이었다는 뜻이다. 합리적 유권자라면, 사과와 호소로 곡선의 이동(곡선 1에서 곡선 1′로)을 되돌릴 이유가 없다. 이 문제를 풀려면 이 열성 지지층이 통치노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문자폭탄이나 18원 후원금은 문재인을 지지하는 태도가 아니다”라며 절연하는 식이다. 이건 열성 지지층 B가 자제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가 아니다. 유권자 A와 열성 지지층 B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전략적 선택 문제다. 문 후보가 유권자 A의 판단을 다시 바꿀 정보를 줄 필요와 열성 지지층 B에 줄 상처 중에 어느 쪽을 더 크게 보느냐의 선택인데, 현실에서는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박원호:여기에 네트워크 효과를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 요즘 선거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네트워크 결속이 상당히 강하게 이루어지고, 외부 네트워크에서 내가 속한 네트워크로 오는 충격이나 공격에 훨씬 민감하고 적대적으로 반응한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시대 이전에는 유권자들 사이에 이 정도로 의견 교환이 활발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럴 경로가 상당히 많다. 개념도로 그리면 <그림 2>(26쪽)가 된다. 원래 곡선 1처럼 분포하던 민주당 지지층이, 경선이 진행되면서 곡선 1-1, 1-2, 1-3으로 무리지어 분화된다. 특정 후보의 열성 지지층이 내는 효과를 <그림 1>이라고 한다면, <그림 2>는 네트워크 효과로 후보의 열성 지지층 규모가 커지는 현상을 묘사한다. 열성 지지층의 규모와 결집도가 커진다면, <그림 1>에 나오는 곡선의 이동 폭도 더 커질 수 있다.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지지자들에 대한 굉장히 공격적인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네트워크 효과가 서로를 밀어내는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다.

광주 경선 때까지만 해도, 문재인 캠프 일각에서는 “2위는 홍준표다. 최종 대결은 ‘문재인 대 홍준표’다”라는 분석도 나왔다.


조석주:‘문재인 대 홍준표’ 구도를 예측하는 분들은 이른바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놓고, 아무리 망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진보 대 보수’ 대결이라는 그림으로 읽는 것 같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거의 탄핵 반대파만 남아 있는 당이다. 다 긁어모아서 15%가 지지 기반인 당의 후보가 양강 구도를 만든다는 건 과도하다.

ⓒ연합뉴스
3월31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맨 왼쪽)가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자 영남권역 선출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뒤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원호:그렇다고 홍준표 후보를 과소평가하기도 어렵다. 대선을 이길 가능성은 낮다 해도 현실적인 목표인 탄핵 반대파 15% 정도는 유지할 개인기가 있다. 홍 후보가 강경 보수표를 이 정도로 묶어두는 데 성공하면 안철수 후보는 좀 더 어려워진다.

‘문재인 대 안철수’ 양강 구도로 대선이 개막됐다. 양자 구도까지 갈까?

박원호:우선 ‘양자구도’라는 말이 좀 혼란스럽게 쓰인다. 반(反)문재인 단일화나 후보 사퇴로 ‘문재인 대 안철수’ 일대일 구도가 되는 것과, 5자 구도가 유지되면서 보수 유권자들이 안철수로 쏠리는 전략투표 상황은 구분해야 한다 .

조석주:일단 안철수·홍준표 단일화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단일화는 이기려고 하는 건데 탄핵 반대 세력과 손잡는 순간 정권교체 세력이 될 수가 없고, 그러면 알기 쉽게 진다. 전략투표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모든 유권자가 내 선호에 더 가까운 승자를 만든다는 하나의 목표만 갖는다면, 모든 홍준표 후보 지지자는 안철수 후보에게 투표한다. 하지만 유권자는 당선 가능성이 낮더라도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지지층 크기를 보여주려는 목표도 있다. 현실에서는 두 동기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후보 확정 이후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지지율 추이가 아주 중요해진다. ‘문재인 대 안철수’ 지지율이 선거 막판까지 박빙이라면 홍준표 후보 지지자 중에 안철수 후보로 이탈하는 표가 많을 테고, 둘의 차이가 좀 난다면 홍준표 후보 득표가 올라갈 것이다. 유권자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아가면서 내 투표 전략을 조정한다.

박원호:보수 언론이 안철수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기류는 느껴진다. 그런데 홍준표 후보가 15%만 가져가도 결국은 뒤집기 어려운 차이 아닌가? 이건 조 교수가 데이터를 열심히 보니까.

조석주:5자 구도의 이전 조사들을 보면 대략 흐름은 이랬다. 대체로 모름·무응답 여론이 15%, 문재인과 심상정 후보를 합친 지지율이 40%를 좀 넘는다. 모름·무응답층을 빼고, 의사결정을 한 그룹 중 거의 절반을 문재인·심상정 조합이 가져갔다는 의미다. 이 상황에서 안철수 후보가 박빙을 만들려면 홍준표·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을 거의 모두 당겨와야 하니 결국 탄핵 반대파의 표를 대거 얻어야 이길 수 있다.

문재인·심상정 후보 지지율을 합쳐서 보는 이유는 뭔가?

조석주:전략적 결집은 대항결집을 부른다. 보수의 전략투표를 가정하면서 진보 성향 표와 중도 표가 제자리에 있다는 건 맞지 않다.

박원호:그래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양자대결을 가정하는 여론조사가 좀 맥락이 없다. 이번 대선에서 양자 대결이 나오려면 원내 정당 후보 5명 중 3명이 단일화를 하거나 알아서 사퇴해야 한다. 이 사건이 유권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맥락을 생략하고 단순히 양자 대결을 가정해서 물어보면, 그 결과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연합뉴스
3월31일 자유한국당 대선 주자들이 전당대회에서 함께 손을 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 쪽에서는 바로 그 결과, 단일화는커녕 어떤 연대 제스처도 없이 보수 후보들이 알아서 무너지는 그림을 최선으로 생각할 텐데.

조석주:그래서 안철수 캠프는, 마치 예전의 민주당 후보들이 민주노동당(민노당) 지지자를 압박하듯 홍준표 지지자를 압박할 것이다(대담 사흘 뒤 4월6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홍준표를 찍으면 문재인이 된다”라고 보수 유권자를 압박했다). 하지만 지금 탄핵 반대파 15% 중에 소신 투표자가 과거의 민노당 소신 투표자보다 적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탄핵 반대파의 아이콘 김진태 의원은 대선 주자 지지율 6%까지 나온 적도 있다.

단일화가 어렵다면 홍준표 후보 사퇴는 가능성이 있을까?


조석주:마찬가지 이유로 안철수 후보가 사퇴 명분을 줄 수가 없다.

박원호:사퇴도 어렵지만, 가능하다 해도 그게 안철수 후보에게 득인지도 분명치 않다. 보수가 완전 궤멸 상태도 아니고 어쨌거나 홍준표 후보를 세운 상태에서 그 후보가 사퇴한다? 중도가 이걸 어떤 의미로 읽겠느냐가 문제다. 이 상황에서 안철수 후보가 중도 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결국 안철수 후보는 탄핵 반대 표를 끌어오면서, 홍준표 후보 득표는 최소로 묶고, 문재인 대항 결집은 막아야 이긴다?

조석주: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간단하지 않다. 기대할 만한 시나리오는 문재인 후보가 큰 실수를 해서 중도 표를 까먹어주는 건데, 그건 ‘다른 조건’이 달라지는 거니까.

박원호
:‘박근혜 심판 찬성-심판 반대’만이 이슈라면, 유권자의 성향과 후보자의 포지션은 <그림 3>(27쪽)처럼 분포한다. 축이 하나다. 이 그림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박근혜 심판 찬성표와 반대표를 묶어내는 매우 어려운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다른 축 하나가 더 있어서, <그림 4>(27쪽)처럼 포지션이 사분면에 분포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안철수 후보가 자기 자리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안 후보로서는 축이 될 만한 제2의 이슈를 만들어서 <그림 4> 구도로 옮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기존 이슈가 원체 세서 뭘 내놓더라도 <그림 3>으로 되돌아가기 쉽다.




안철수 후보는 2012년 대선에서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내걸었다. ‘진보냐 보수냐’ 단일축 모형에서 축을 하나 더 추가해서 ‘경제-안보 사분면’ 모형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박원호:바로 그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자리가 비어 있었고, 안철수 후보의 파괴력도 거기서 나왔다고 본다. 그런데 안 후보는 2012년보다는 지금 좀 더 모호하다. 국민의당이 호남 기반 세력이므로 ‘안보 보수’를 내걸기가 어정쩡하다. 이 세력 기반과 노선의 불일치를 안 후보가 조화시킬 수 있을까? 이를테면 사드 배치 이슈에서 안 후보의 포지션과 호남 여론의 포지션이 갈릴 수 있다(대담 사흘 뒤인 4월6일 안철수 후보는 관훈클럽 초청토론에서 ‘사드 배치 반대’ 당론에 맞서 사드 찬성으로 돌아섰다). 안철수 후보가 급상승을 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자기 잠재 지지율에 비해 좀 적게 나왔던 것도 있다. 사분면 모형에서 보면, 안 후보가 가져갈 ‘선거 시장’이 분명 있다. 의석수에 가려서 간과되는 경향이 있는데, 2016년 총선에서 의석으로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득표 3당이었고, 국민의당이 정당 득표로 26.7%, 제2당이었다. 이게 각종 이슈에 휘청거리며 흩어졌다가 복구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안철수 지지 연합이 이질적이어서 홍준표 후보가 파고들 지점도 있을 것 같다.

박원호:홍준표 후보는 대선 승리가 아니라 보수 표 복원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 목표다. 문재인 후보보다 오히려 안철수 후보를 먼저 때릴 수 있다(대담 나흘 후인 4월7일 홍준표 후보는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를 향해 “뒤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고 밖으로 안 나오는 것을 보면 무서운 분이야”라며, 박지원 대표에게 갖는 불안감을 자극했다). 우리가 후보의 개인 기량 얘기를 거의 안 했지만, 선거는 유권자 지형만큼이나 후보 등 행위자 변수도 크다. 텔레비전 토론이나 후보의 위기 대응이나, 이런 장면에서 구도가 뒤흔들릴 수 있다. 그것을 완전히 빼놓고 얘기했다. 우리 2회 대담 주제가 텔레비전 토론이라는 홍보성 마무리 발언이다(웃음).


2회 대담은 유권자 지형을 ‘다른 모든 조건’에 포함하고, 행위자 변수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본격 선거전을 다루는 2회 대담은 제503호에 게재된다.



반공, 반독재, 그리고 반문?

[사회 책임 혁명] 안철수만의 'to'의 정치를 기대한다


19대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네거티브다, 마타도어(흑색선전)다, 혹은 단일화다 하며 복잡하고 당사자들에겐 절박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데, 좀 한가하게 옛날이야기나 해보려고 한다. 1945년 8·15와 함께 미국과 소련은 남북한을 분할 점령하고 이후 자연스럽게 각각 자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한다. 그렇게 한반도 남쪽에 출범한 정권이 이승만 정권이다. 당시 민족적 열망에 근거한 통일된 민족정부 수립이 하나의 정언명법이기에 현실적인 선택을 내려 권력을 장악한 이승만을 주축으로 한 분단세력은 시대정신에 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를 쓰면, 반(反)제국주의 민족해방이란 공통의 의제가 이념과 민족 간의 프레임 대립으로 치환된 데는 그 치환, 즉 '민족'이 '이념'으로 '네다바이'('네다바이(ねたばい)'는 '사기'를 칭하는 일본식 은어다. 이 문장에서는 '뒤바뀐'으로 해석된다. 편집자)된 데에는 친미·친일·기득권 보호라는 매우 핵심적이고 사활이 걸린 동기가 결부되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정상적인 통일국가에서라면 대통령이 되기 어려웠을 이승만이나, 마찬가지로 정상국가라면 척결대상이 되었을 해방 당시의 친일 기득권 세력은 이념을 매개로 분단된 국가에서 생존과 번성의 길을 확보하였다. 우리가 다 아는 '대한민국 건국잔혹사'이다.

여기서 당시 이승만 등의 친미·친일·우파세력의 이념이란 것이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고 하는 정통적 이념대립 구조에 포함된 이념과는 다르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한의 지배세력이 된 이승만 등의 친미·친일·우파세력에게 이념적 자각이 있었다기보다는 역설적이게도 '민족' 의제를 좌파(와 김구 등 반일 우파)가 주도하게 된 상황에서 좌파에 맞서 생존 차원에서 뭉쳐 대항하게 보니, 미국의 세계전략에 조응하여 '반공'을 이념의 정점에 위치시킨 것이다. 정상적인 이념이란 무엇을 반대만 한다기보다는, 예컨대 사회주의적인 민족공동체라든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승만 일파는 생존을 위해 반대만으로 이념 전선을 구축하였다. '무엇으로(to)'와 '무엇으로부터(from)' 중에서 'from'만으로 무장한 이념이란 사실 이념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였다. 

2차 대전 후 반공과 냉전을 기조로 한 세계전략을 추진한 미국은 실현의 수단으로, 공산주의와 생사를 건 투쟁만이 '자유세계'의 유일한 선택이 되어야 하며 반공 이념은 민족이라는 존재와 가치를 넘어서서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가치관을 한국을 포함한 이른바 '자유세계'에 확산시켰다. 따라서 반공이 통치체제라는 동전의 앞면이었다면 친미가 그 뒷면이었으며, 정경유착에 근거한 친일세력을 포함한 기득권의 보호와 확대가 앞면이라면 한국적 자본주의가 그 뒷면을 이루게 된다. 

결론적으로 반공은 사상으로서 아무런 체계가 없는 것이지만, (세계지배를 위하여 미국이 표방한) 공산주의와 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지켜내야 한다는 논리에 덧씌움으로써 반공은 이념적 성격을 짙게 지니는 전략적 수단으로 격상된다. 종국에는 최상위 가치로 등극하여 우리나라 역대의 독재자들이 통치에 전가의 보도로 수용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 와해과정에서 보듯, 친일청산 세력에게 붙인 '빨갱이'란 무모한 호칭은 실제로 친일청산 세력을 빨갱이로 만들거나 취급하면서 유효한 낙인이 되었고 급기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념적 배제수단으로 가장 강력한 지위를 갖게 된다. 반면 친일파는 빨갱이를 때려잡는 명분에 의해 애국자로 변신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제에 의하여 빨갱이란 이념의 낙인은 강화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친일세력이 대한민국이란 근대국가(nation)의 설립을 주도하면서 배제와 증오를 근간으로 한 이념체계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국민의 형성도 민족이 아닌 이념, 그것도 반공이란 기이한 이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정부는 한민족 중에서 대한민국의 경계선 안에 있는 민족을 남한의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같은 민족이지만 남한 밖의 민족을 적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동시에 남한 내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기준으로 '빨갱이=비(非)국민'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였고 이 기준은 아직도 통용된다.

한국 정치가 전술한 왜곡된 구조화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 아는 얘기를 길게 하였다. 이제 간략하고 빠르게 논의를 전개하면, 대한민국이란 반공국가에서 북한과 빨갱이를 배제한 이념지형 속에서 민주화 진영의 정치 혹은 정치운동은 정확하게 반(反)독재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왜 문제냐는 반론이 예상되는데, 간단히 답하면 반독재 투쟁은 'from'의 정치를 고착시킨다. 반독재 또한 '무엇으로부터(from)'만 있을 뿐 '무엇으로(to)'는 부재하였기에 겉으로 통일된 반독재전선에 다양한 이념지향을 포괄하는 듯 보였으나, 반공이 내부적으로 억압과 폭력의 기제로 작동하였듯, 선거 국면에서 '반독재'는 '비판적 지지'나 정권교체를 위한 '사표 방지' 등을 강요하게 된다. 'from'에 매몰돼 'to'의 지평을 전망할 기회를 갖지 못한 셈이다.  

새삼 강조하자면 반공은 대외적인 기치이면서 동시에 대내적인 억압과 배제의 기제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면화한다. 같은 맥락에서 반독재는 오랫동안 민주화 진영 내에 지상의 가치로 내면화하여 다양한 이념의 분기와 발전을 가로막았다. 선거는 늘 'from'으로 이루어졌고, 'to'가 제대로 표명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왜곡이 잘못된 최초 설계에 따라 불가피하였다는 점이 응당 인정되어야 한다. 

이제 현실 정치에 눈을 돌려보자. 해방 7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반공이나 반독재(세력) 같은 기존 'from'의 정치보다는 명시적 가치를 표방하고 실현을 역설하는 'to'의 정치가 등장해도 되지 않을까. 계보 상으로 소위 민주화 진영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정치세력들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from'의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박근혜의 역설이다. 여전히 반공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반시대적 집단은 예컨대 종북좌파 세력 집권 저지 같은 여전히 'from'의 정치에 기댈 테지만, 소위 진보 진영은 과감하게 미래를 보며 'to'의 정치를 시현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19대 대선의 이른바 정치공학의 핵심 키워드인 '반문연대' 또한 전형적인 'from'의 정치이다. 이상적인 선거라면, 다른 대선 후보와 정치세력들은 문재인에 반대하는 데 힘 빼지 말고 자신들의 지향점(to)을 보여주어 유권자들로부터 심판받아야 한다. 반문이란 용어는 반공, 반독재 등 다양한 '반(反)의 정치 기제'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코미디이며 동시에 같은 함의를 갖는다. '반문연대'라는 말은 좀 지겹고 남루하다. 차라리 영화 <타짜>의 대사처럼 "쫄리면 뒈지시던지." 

다행히 양강구도를 형성한 안철수는 진즉에 반문연대가 아니라 자강론을 천명하였다. 안철수만의 'to'의 정치를 기대한다. 홍준표나 유승민도 종북좌파세력 운운하지 말고 'to'의 정치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심상정 또한 (다른 관점에서) '쫄리지' 말고 끝까지 자기 정치를 펼치기를 응원한다. 문재인에게는 '반문'이 아니라 '친문'이 더 독이 될 수 있음을 (듣거나 말거나) 지적하고자 한다. 19대 대선의 대세론의 주인공 문재인이 만일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면 반문 때문이 아니라 친문 때문일 것이다. 지난 1월 31일 자 ''친문'에게 고언함문재인은 아직 대통령이 아니다'란 제목의 기고에서 밝혔듯, 문재인은 아직 대통령이 아니다.(☞관련 기사)



'反문재인 정서'를 넘어서

[민교협의 정치시평] 정권교체의 의미를 생각할 때다
2017.04.15 09:26:16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이 이루어지고 짧은 일정의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면서 한국 사회는 큰 변화의 와중에 있다. 이 같은 정치 상황 자체가 지난겨울 촛불을 들고 나선 대다수 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입은 것이지만,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선거가 야당의 두 후보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강 구도로 형성되고 있어 불확실성이 커졌고 논란도 분분하다. 촛불로 정권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면서 제1야당의 후보가 유력 주자로 부상한 것은 당연한데, 갑작스럽게 대세론이 무너지고 양강 구도가 형성된 것이 여론조사상의 혼선인지 실제인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집권세력 후보들을 멀찍이 제친 야당 후보들 사이의 각축 자체는 크게 보아 촛불민심의 반영이고 장래 한국의 정치지형의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라고 읽을 여지가 있다.

야당 후보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처럼 상호 경쟁을 벌인 것은 과거 김대중 김영삼이 함께 나선 87년 대선 이후 처음이다. 당시 6월 시민항쟁에 힘입은 대통령 직선제 쟁취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가 높았으나 두 유력 주자의 동시 출마로 인한 야권 분열로 노태우 정권이 탄생한 바 있다. 군사독재의 연장을 막아낸 시민혁명의 의미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를 통해서 왜곡되면서 실질적으로 기득권 구조가 연장되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이번 대선도 정치권 내부가 아니라 시민들의 직접적인 개입과 실천이 기존 정치지형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선거는 촛불시민혁명으로 표출된 국민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배신이 되풀이될 것인가? 

87년 대선과 다른 점은 보수정치세력이 정권 재창출은 꿈꿀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이든 바른정당이든 지지율이 바닥권을 맴도는 것은 이 두 정당의 뿌리인 새누리당의 행태가 국민의 징벌을 받은 결과다. 그런 점에서 야당 후보 양강 구도로의 대선 구도 재편은 한국 정치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87년 체제 아래서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치집단은 냉전 이념을 등에 업고 기득권 구조를 대변하는 수구세력으로 권력을 행사해왔다. 말하자면 '가짜' 보수가 정치적 보수를 참칭하면서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더 심화시키고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태를 일삼아왔으며 그 폐해가 결국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초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한편으로 보수를 제자리에 세우는 이중의 과정이기도 하다.

'반문재인 정서' 허상이면서 실존하는 그것을 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당면 문제는 과연 어떤 정권교체가 촛불시민혁명이 요구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인 가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의원 수 40명에 불과한 소수 정당인 국민의당 후보 안철수가 부상하게 된 것이 스스로의 경쟁력이나 정당의 위상과는 무관하게 현재의 정치지형의 소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언필칭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자칭해온 정치세력이 몰락하면서 갈 곳을 잃은 표심이 상대적으로 보수에 가까운 안철수 후보로 모인 것이 그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일부 정치권이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반문재인 정서'라는 현상과 결합하면서 이 같은 구도를 창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반문재인 정서의 정체는 무엇인가? 

반문재인 정서를 형성하는 원천은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과거 보수집권세력을 앞장서서 뒷받침해온 냉전적인 수구집단, 즉 '태극기' 집회로 대변되는 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기득권 질서의 큰 변화를 원하지 않는 지배 블록 내의 다수 보수세력이다. 이는 정치권이든 재계든 언론이든 대다수 기득권 엘리트 집단이 가지는 근본적 변화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경계의식과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유형 외에 우리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입장에서도 반문재인 정서가 자리 잡고 있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문재인 후보로 대변되는 정치세력이 과거의 낡은 이념에 매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사회에 맞서는 새로운 전망이 요구된다는 것이며, 그것이 안철수 후보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흐름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두 유형이 촛불민심에 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국정 농단 세력에 대한 분노가 촛불시위를 촉발했기도 하거니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켜온 기득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여망이 국민들을 광장으로 나오게 한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반문재인 정서다. 과연 이 같은 정서가 얼마나 근거 있는 것이며 역사적 관점에서 의미를 가지는가?  

친문이니 패권주의니 하는 레테르를 씌우는 것이 정치공학적인 전략의 소산인 점은 있지만, 문재인 진영 내부에 근대주의적 발상에 기반을 둔 '낡은' 이념의 요소가 혼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니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내세우는 새로운 탈근대적 대안을 찾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안 모색은 그 자체로 필요하고 앞으로도 추구되어야 하겠지만 당면한 선거에서는 정치지형이 어떻게 배치되고 있는지 고려해야 하고, 정권교체의 현단계적 의미가 무엇인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부류의 고민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을 법하다. 87년의 시민항쟁의 의미가 이어진 대선을 통해서 왜곡된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은 무엇인가?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87년의 시민항쟁은 분단체제에 기생해서 남한 사회를 지배해온 세력들의 주도권을 회수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새로운 민주정권을 창출하라는 국민 여망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시민항쟁이 탄생시킨 87년 체제는 군부세력의 재집권과 개혁의 유보로 귀결되었다. 이후 일정한 민주주의의 진전이 있었으나 87년 체제에 뿌리박은 유신잔재가 힘을 발휘하면서 시대역행이 일어나고 결국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게 된 것이다. 

이번 대선이 촛불시민혁명의 원 뜻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치러져야 하는 것은 이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다. 과연 정권교체로 촛불에 깔려 있는 민심이 제대로 반영될 것인지가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개별 후보에 대한 선호도와는 무관하게 어떤 정치집단이 기득권 구조 혁파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두 가지 미완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엄정한 판단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87년 대선도 그랬지만 선거가 민의를 왜곡하는 폐해를 감수하기로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지난 대선의 경험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지난겨울 혹한에서 촛불을 들고 주말마다 모여든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 그 진정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아야 할 시점이다. 

“교수님은 ‘또’ 대선캠프 출장 중!”

文 캠프 1000명, 安 캠프 800명…정치 계절마다 논란 빚는 폴리페서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6(일) 15:53:41 | 1435호


서울에 위치한 A대학교 무용학과에 재학 중인 김주희씨(가명·23)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담당 교수 B씨로부터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문재인 후보가 무용계를 위한 공약을 냈으니 다 같이 밀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과 학생들이 모두 포함된 단체 채팅창에 해당 메시지를 보낸 B교수는 “지금 바로 전화로 선거인단 신청한 후 인증번호를 올려 달라”고 말하며 학생 개인만이 아닌 가족들의 인증번호까지 요구했다. 김씨는 “교수님이 인증번호를 올릴 때까지 계속 재촉했고 가족이 많은데 왜 3명밖에 못했냐며 타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대학 무용학과에 비해 인증번호 수집 실적이 좋지 않다며 걱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B교수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그룹인 ‘더불어포럼’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와 여의도 정가(政街)에 양다리 걸치는 폴리페서로 인한 1차적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 된다. 본업인 수업 준비보다 부업인 정치 활동에 집중하는 교수들 때문에 학교마다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 일러스트 정찬동

학교와 여의도 정가(政街)에 양다리 걸치는 폴리페서로 인한 1차적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 된다. 본업인 수업 준비보다 부업인 정치 활동에 집중하는 교수들 때문에 학교마다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 일러스트 정찬동


폴리페서 역대급 규모…수업권 침해 우려

 

서울의 C대학교는 정치권에 발을 들인 교수들이 유독 많은 학교 중 하나다.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이 대학 D교수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특정 대선후보 지지에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지지하는 인물이 바뀌어 ‘철새 교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D교수는 현재 학교에서 3시간짜리 강의 1개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수업 중에 정치색을 드러낸다는 말이 나올까봐 한마디 할 때마다 극도로 조심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수업 중에 “중립적으로 말하자면…”이라든가 “특정 이념적 입장에서 말하는 게 아니다”와 같이 조심스러운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해당 수업을 듣는 3학년 이은희씨(가명·22)는 “원래 ‘진보와 보수’에 대해 논하는 수업인데 ‘진보와 진보’ ‘진보와 복지’를 논한다는 강의평이 많다”며 “언론 기사에서 교수님 이름을 볼 때마다 ‘수업 내용에도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워했다.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 ‘폴리페서(polifessor)’.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폴리페서’는 대학교수 100여 명이 대거 출마했던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대학교수들의 무분별한 정치참여를 비판하는 의미로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정치권에 선거판이 짜이면 어김없이 ‘한자리’ 차지하려는 이들의 줄서기 행렬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폴리페서들의 ‘정치 활동’이 활발하다. 이에 대해 권상집 동국대 교수는 “리스크 대비 효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교수 활동을 상당부분 포기하면서 1년을 투자해야 했던 과거 대선과 달리, 이번엔 단 3~4개월만 활동해도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교수들의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실제 캠프에 참여한 주요 교수들 중 80% 이상이 휴직계를 내지 않고 교수직을 유지한 채 캠프 활동에 임하고 있다.

 

3월15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캠프에 영입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 김광두 서강대 교수(가운데), 김상조 한성대 교수(오른쪽)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15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캠프에 영입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 김광두 서강대 교수(가운데), 김상조 한성대 교수(오른쪽)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와 여의도 정가(政街)에 양다리 걸치는 폴리페서로 인한 1차적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 된다. 본업인 수업 준비보다 부업인 정치 활동에 집중하는 교수들 때문에 학교마다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서울 소재 모 사립대학에 다니며 현재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한 교수의 수업을 수강 중인 조형우씨(가명·25)는 “교수님이 선거 때마다 정치에 참여해 오신 걸로 아는데 그 때문인지 수년째 수업 내용에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조씨는 “시험 문제도 매년 비슷하게 출제돼 ‘자다가 학점만 따가는 수업’으로 유명하다”고도 덧붙였다.

 

양다리 교수들의 부실한 수업 준비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휴직계를 내거나 수업을 줄이는 것이 해법이 되진 못한다.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 한 대선후보의 자문기구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아무개 교수는 안식년을 제외하고 매 학기 진행해 온 전공수업을 이번 학기에 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당 학과 한 학생은 “열릴 줄 알았던 수업이 안 열려 화가 났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서울 신촌 일대 대학생들을 만나 물어본 결과, 10명 중 4명은 “정치 참여 자체가 교수 본분에 어긋난다”고 답했으며, 나머지 6명은 “교수 개인의 자유이므로 참여 자체가 문제될 건 없다”고 했다. 다만 이로 인해 수업에 소홀하거나 정치색을 강요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폴리페서에 대한 학교의 시각은 학생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서울 소재 사립대 소속의 한 교수는 “학교에선 해당 교수가 공직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면 그만큼 학교에 든든한 ‘빽’이 하나 생기는 격이기 때문에 되레 묵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 학교는 왜 보이스 파워를 가진 폴리페서가 없느냐’고 말하는 교수들도 있다”고 밝혔다.

 

 공직 전문성 부족·조직 부적응 문제

 

폴리페서 문제는 비단 교정(校庭)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이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후 발생하는 문제 또한 적지 않다. 우선 각자가 ‘개인 사업자’에 가까운 교수 생활과는 확연히 다른 조직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이들은 주로 단계적 승진이 아니라 단번에 장·차관 등 고위직에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 조직을 리드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수 출신으로 보기 드물게 실무직을 맡아 재직 중인 강병구 국가기술표준원 표준정책국장은 “교수는 누구와 협업할 일이 거의 없고 자기 스케줄대로 주로 움직인다”면서 “기본적인 출퇴근부터 의사결정 하나하나까지 처음엔 어렵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례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초기 청와대 수석들 상당수가 교수 출신이었는데 ‘새벽형’인 이 전 대통령 패턴에 맞추느라 꽤나 힘들어했다는 전언이다.

 

공직에 오른 교수들 중 맡은 자리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기보다 오히려 정권의 하수인 역할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등 교수 출신 관료들이다. 사태 초기 이들이 소속된 학교에는 ‘교수님이 부끄럽다’ ‘복직을 반대한다’ 등의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대학교수들의 활발한 공직 진출은 우리나라 고유한 특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해외에선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다. ‘폴리페서’라는 용어 자체도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교수 출신들이 행정부 내각 요직을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다. 장관 등 고위직에 곧장 임명되는 일은 더욱 드물다. 오바마 정부에서도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을 비롯한 교수 출신 장관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 학교를 떠나자마자 장관이 된 경우는 없다. 모두 이전에 국장, 차관보 등의 자리를 단계적으로 거치며 충분한 실무 경험을 쌓는다.

 

2월23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교수·전문가들로 이뤄진 지지그룹 ‘전문가광장’ 출범식에 참석해 교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23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교수·전문가들로 이뤄진 지지그룹 ‘전문가광장’ 출범식에 참석해 교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수 사회에서도 자성 목소리 나와

 

현재 트럼프 정부에서 교수 출신을 찾기란 더더욱 어렵다.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에 참가했던 피터 나바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유일하다. 이들이 정치권을 나와 학교로 돌아갈 때도 경력과 업적에 대한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권상집 동국대 교수는 “미국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학문과 정치를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 본다”면서 “교수들도 스스로를 어드바이스해 주는 존재로 여기지, 우리나라 폴리페서처럼 정계 진출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 계절마다 폴리페서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다 보니 교수 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3년 교수신문이 대학교수 6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수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 ‘교수들의 무분별한 정치 참여’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폴리페서의 학교 복귀 규정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진 학교나 정치권 어디에도 이들을 규제할 장치가 없어 폴리페서 수는 해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이번 대선만 봐도 각 후보 캠프에 참여한 폴리페서 규모는 가히 ‘역대급’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는 출범과 동시에 500명 이상의 교수들이 합류했다. 현재는 1000명을 훌쩍 넘긴 상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교사’였던 김광두 서강대 교수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를 도왔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캠프 산하 자문기구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수장을 맡아 문 후보의 경제 구상을 총망라한 ‘J(제이)노믹스’를 만들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캠프 역시 800명 이상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안 후보 개인 싱크탱크인 ‘정책 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상용 고려대 교수는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경제 분야를 이끌고 있는 박원암 홍익대 교수는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후보와 함께하며 당시 안 후보의 핵심 정책인 ‘혁신경제론’ 내용을 채우는 역할을 했다. 안 후보 캠프는 지난 2월 전국 교수들이 결집한 외곽조직 ‘안철수와 함께하는 전문가 광장’을 출범시켜 문 후보 측과 ‘폴리페서’ 세(勢)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대선 후 원하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여의도를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돌아갈 곳은 명확하다. 수업이 진행 중인 교수들은 그대로 하던 수업을 이어 가고, 휴직했던 교수들도 아무런 절차 없이 복직해 다음 학기를 준비하면 된다. 학교가 사실상 ‘보험’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이들의 정계 진출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막고자 19대 국회 당시 이완영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대학교수가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명되는 경우 휴직이 아닌 사직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폴리페서 방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 의원은 “정치 활동을 하는 교수들의 신분 공개를 의무화하고 이들이 학교로 복직할 때 보다 엄격한 제한을 두는 법안을 다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권상집 교수는 “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수마다 자신의 가장 기본적 역할이 개인의 명예와 영광을 높이는 일이 아닌 강의와 연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접민주주의는 포퓰리즘으로 흐른다는 오해!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개헌 통해 직접민주주의 도입해야
2017.04.17 13:17:38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촛불집회에서 핵심적인 구호의 하나였다. 국민이 뽑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안전과 복리는 뒷전이고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거래하는 것에 대한 절망적인 외침이다. 국가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수십만, 수백만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수 개월간 외칠 수는 없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권력엘리트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법률이나 헌법을 제정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투표권). 권력엘리트들이 국민 다수의 요구를 외면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국민발안을 통해 필요한 법률이나 헌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국민발안권). 권력자가 국민의 의사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것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때 국민은 임기전이라도 그를 파면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소환권).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를 통하여 국민은 비로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서 비로소 대표제도는 국민 다수의 의사와 일치되는 민주성을 회복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헌법 개정을 통해서 도입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헌법 개정의 과제는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이다.(필자)  

ⓒ프레시안(최형락)


Ⅰ. 문제의 제기  

국민들은 오랫동안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를 요구한다. 공정한 검찰권의 행사가 가능하도록 검찰의 개혁을 요구한다. 죽은 표를 줄이고 소수도 대표를 낼 수 있도록 선거제도의 개정을 요구한다. 오직 주장만 있을 뿐이고 실천이 없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모두 국회가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사항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임을 선언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지배하는 나라, 국민 다수의 의사가 실현되는 국가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국민 다수가 요구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법률이 제정되기도 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한다. 국민 다수가 최종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회가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법률을 제정하여도, 국민 다수가 요구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고 외면하여도 국민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광장에 모여서 외쳐보기도 하고 선거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해보기도 하지만 국민의 의사가 무시되고 외면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민 다수가 권력기관의 선처를 바라고 쳐다보고만 있어야 한다면 그러한 국민을 주권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다수의 의사가 실현되는 민주국가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 지,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Ⅱ. 대표제도는 민주적인가? 

민주주의는 원래 직접민주주의를 의미했다. '대표민주주의'라는 말은 18세기 말의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헌법제정과정에서 대표제도와 민주주의의 결합을 시도하는 이론적 조작을 통해서 비로소 등장하였다. 국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하고, 선출된 엘리트가 법률을 비롯한 정책을 결정하면 대표기관의 의사는 국민의 의사와 일치하게 된다고 간주하였다. 이렇게 등장한 대표민주주의를 통하여 광범위한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선거를 매개로 국민 의사와 대표기관의 의사를 동일시하는 이론은 현실에서 맞지 않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1860년대 스위스에서는 대표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당시 스위스에서는 철도 자본과 금융 자본이 의회를 포위하여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국민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와 자영업자, 농민들의 의사와 이익은 외면되었고 그 생활은 비참하였다. 이에 스위스 국민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왜 국민 다수의 의사가 무시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들은 대규모 집회를 통하여 국민이 직접 법률을 제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여 헌법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되었다. 1900년을 전후하여 미국에서도 주의회가 금융자본과 철도자본에 포위되어 국민 다수의 이익이 외면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였고 결실을 맺어서 여러 주에서 헌법을 개정하여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였다.

대표제도는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이 국민 다수의 의사에 합치되는 경우에만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 확보되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기관의 의사와 국민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비록 대표기관이 선거로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비민주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표제도는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이 국민의 의사와 상이한 경우에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장치가 강구되어야만 대표민주제도라고 할 수 있다.  

Ⅲ. 대표제도의 보완을 위한 직접민주주의 

20세기 민주주의는 선거권을 확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제한선거에서 보통선거로, 차등선거에서 평등선거로 선거권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선거제도만 개선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처럼 선거권확대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제한선거와 차등선거를 극복하는 것만으로는 국민의 의사에 의한 권력행사가 보장되지 않았다. 선거방식의 개선 노력도 있었다. 예컨대 선거구와 대표제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대표민주주의는 국민은 대표자를 잘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고 보았다. 국민의 역할은 대표자를 잘 뽑는데 그쳐야 하고, 정책 결정은 선출된 엘리트에게 맡겨야 좋은 정치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대표제 하에서 일반 국민은 주어진 선거권을 주기적으로 행사하여 권력자를 통제하는 방법 외에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권을 국가의사의 최종적인 결정권이다. 대표민주제하에서는 선출된 대표기관이 최종적으로 국가의사를 결정을 한다는 것은 선거를 통하여 임기 동안 주권이 대표기관에게 백지 양도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선거 시에 잠깐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주권은 대표자의 손에 있게 된다. 이를 두고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영국의 대표제 하에서 국민들이 자유로운 것은 선거를 할 때뿐이며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된다고 비판했다.  

선거는 주권의 양도행위가 아니다. 주권은 양도될 수 없다. 대표자를 선거를 통하여 뽑더라도 주권은 여전히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있어야 한다. 대표기관이 정한 법률이 국민 의사와 불일치되는 경우에 국민은 국민투표를 통하여 이를 거부하여 폐기하는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국민의 의사와 대표기관의 의사가 합치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표기관이 국민 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경우에 국민은 직접 법률을 발안하여 국민투표를 통하여 이를 최종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양자의 불일치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발안과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를 통하여 대표제도는 비로소 민주성을 회복하게 된다. 이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대표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제도를 민주적이 되도록 보완하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실질화한다. 대표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는 상호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게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한다고 해서 대표민주주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를 연간 수십 건씩 실시하는 스위스에서도 의회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접민주주의는 대표기관에 대한 비상통제장치가 된다. 대표제도는 국민발안이나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적 통제장치를 갖춤으로써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성능이 좋은 브레이크를 장착한 자동차를 안심하고 탈 수 있는 것과 같다.

우리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입법권이 국회에 속한다면 국회가 주권자가 되고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게 된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국민이 입법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입법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입법권이 국회에 속한다는 헌법 제40조는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1조와 모순된다. 국민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40조를 '입법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직접 또는 그 대표자를 통하여 입법권을 행사한다'라고 개정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IV.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 

일반인은 물론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직접민주주의는 작은 나라에서나 가능하다거나, 포퓰리즘에 휩쓸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렵다면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그 오해를 드러내고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1. 직접민주주의는 작은 나라에서나 가능하다는 오해 

흔히들 직접민주주의는 인구가 작고 면적이 좁은 국가에서나 실현가능하고 인구가 많고 면적이 넓은 국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얼핏 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적 논거를 제공한 루소조차도 직접민주주의는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 문제를 논의하는 작은 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규모가 큰 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장소적인 한계는 오늘날 제도적 발전으로 인해 이미 해소되었다. 직접민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전통적인 직접민주주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집회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과거 아테네의 민회가 그 대표적인 형태로 꼽힌다.

하지만 프랑스혁명 이후 발전된 오늘날의 직접민주주의는 투표소에서 표결을 통해 안건을 결정하는 형태로 실시된다. 실제로는 투표소에도 가지 않고 우편을 통해 표결에 참여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전자투표를 통한 표결이 보편적으로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발전된 현대적 직접민주주의를 '표결민주주의'라고 한다. 오늘날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스위스에서는 작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집회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중요한 안건은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표결로 결정하는 표결민주주의를 별도로 실시하고 있다. 규모가 큰 지방자치단체와 대부분의 칸톤(주 정부)과 연방에서는 집회민주주의로서의 직접민주주의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표결민주주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직접민주주의는 표결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다. 

표결민주주주의로서 직접민주주의는 국가의 규모와 상관없이 실현할 수 있다. 이미 스위스 연방과 같이 800만 명이 넘는 공동체에서도 시행되고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같이 인구가 4000만 명에 가까운 곳에서도 큰 문제 없이 시행되고 있다. 오히려 국민과 대표기관 간의 거리가 먼 규모가 큰 국가일수록 표결민주주의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는 더욱 필요하게 된다. 표결민주주의는 집회민주주의의 한계인 장소적 제약을 정치제도의 발전을 통해 극복하였다. 또한 표결민주주의로서 직접민주주의는 비밀투표를 보장함으로써 표결의 비밀과 자유가 보장되고, 투표율이 집회민주주의 참여율보다 훨씬 높다. 예컨대, 집회민주주의인 스위스의 지방자치단체 마을총회의 참석률은 3~10% 정도인데 비해, 표결민주주의인 투표소의 투표율은 40~70%에 이른다.  

직접민주주의는 작은 국가에서나 실시 가능하다는 것은 오해이며 표결민주주의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는 국가의 면적이나 규모와는 상관없이 실시할 수 있다. 규모가 큰 국가에서도 직접민주주의는 실시할 수 있다.  

2. 직접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좌우된다는 오해 

직접민주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은 독일의 나치정권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정권, 그 밖의 독재정권 하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던 경험을 얘기한다. 국민투표는 그 효과가 부정적이며 국민의 의사를 조작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든다.

국민이 실시하는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가 있고, 권력자가 국민들에게 물어보는 위로부터의 국민투표가 있다. 전자를 가리켜 '레퍼렌덤(Referendum)'이라고 한다. 후자를 '플레비시트(Plebiscite)'라고 한다. 레퍼렌덤만이 여기서 말하는 직접민주주에 속한다. 플레비시트는 비민주적이고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 예컨대 독일의 나치정권이나 한국의 유신정권에 의해 실시된 국민투표는 최고권력자에 의해 국민투표가 발의되었고,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플레스비시트는 대통령 등 권력기관에 의해 제기되고, 주된 목적이 국회나 여론에 의한 비판이나 반대를 차단하기 위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함으로써 포퓰리즘적으로 통치기반을 강화하려는 데 있다. 국민들 간의 자유로운 토론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플레비시트는 권력자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을 거수기로 동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국민투표 중에서 국민이 아래에서 제기하는 국민투표인 레퍼렌덤만 직접민주제도라고 할 수 있다. 플레비시트는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비민주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플레비시트를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직접민주주의가 포퓰리즘에 약하다는 비판은 플레비시트에 대한 것이며 국민 간의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국민들이 결정하는 레퍼렌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민주주의 하에서 표를 의식한 선거공약이 더욱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이러한 대표자들의 포퓰리즘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 헌법 제72조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플레비시트로서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신헌법에 의하여 처음 도입된 이래 극복하지 못한 채 현행 헌법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헌법 제130조에서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는 경우에 플레비시트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통령의 헌법개정 제안권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신 유신헌법 이전처럼 국민을 헌법개정 발안자로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발안은 대표기관인 국회가 헌법개정을 외면하여 헌법개정안을 제안하지 않는 경우에 하는 비상가동장치이므로, 이를 다시 국회에서 심의하여 의결하도록 하는 것은 제도취지와 모순된다.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발안은 국회의 의결을 거침이 없이 국민이 직접 국민투표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제도취지에 부합한다.  

V. 헌법개정의 최우선 과제로서 직접민주주의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광장민주주의는 위정자의 잘못을 국민이 묵과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광장에 모여 시민들은 권력을 남용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고, 그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응하여 국회는 탄핵을 소추했고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파면을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에는 헌법개정의 요구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는 촛불집회에서 핵심적인 구호의 하나였다. 국가가 국민들을 지키지 못하고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국민이 뽑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안전과 복리는 뒷전이고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거래하는 것에 대한 절망적인 외침이다. 권력자가 공권력을 남용해도 바로잡을 길이 없는 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권력을 남용한 권력자를 파면하고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1987년 헌법체제 하에서 제왕처럼 등장했던 6명의 대통령은 한결같이 식물정부로 마감하면서 초라하게 퇴장하였고, 국민들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이게 나라냐고 아픔을 호소하고 하는 것이다. 환자가 아픔을 호소할 때 유능한 의사는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 현행 헌법체제 하에서 역대 정부가 모두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면 대통령 한 사람을 파면하고 처벌하는 인적청산만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대증적인 요법은 될지 몰라도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지는 못한다. 모든 정부의 정치를 실패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국가 활동과 권력 행사의 내비게이션인 헌법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적신호를 읽고 헌법개정을 위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국가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수 개월간 외칠 수는 없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권력엘리트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법률이나 헌법을 제정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거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국민투표). 권력엘리트들이 국민 다수의 요구를 외면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국민발안을 통해 필요한 법률이나 헌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국민발안). 권력자가 국민의 의사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것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때 국민은 임기 전이라도 그를 파면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소환). 이를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헌법개정을 통하여 국민은 비로소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다.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선거법개정을 거부하는 경우에 국민들이 스스로 선거법개정안을 발의하여 결정하면 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선거법개정이 그렇게 실현되었다. 1848년 이래 스위스에서는 다수대표제 하에서 60년 이상을 자유당이 난공불락으로 의회의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여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헌법개정에 관한 국민발안제도가 헌법에 도입되자 1918년에 비례대표도입을 위한 헌법개정안이 국민발안으로 제안되었고,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 이렇게 헌법에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된 후 1919년에 실시된 의회선거에서 자유당의 의석은 전체 189석 중에서 종전에 절대다수인 103석이던 것이 60석으로 감소하여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국회의원 특권폐지도, 검찰개혁도 국회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나서서 개혁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재벌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 다수가 직접 나서서 결정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투표권, 국민발안권, 국민소환권을 헌법에 보장하기 위한 헌법개정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헌법개정의 과제는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이다.



오늘의 60대, 어제의 60대와 다르다

60대에 전쟁 이후 출생자 진입…“안보보다 경제 불안감이 더 크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8(화) 10:44:01 | 1435호


나이 60이 넘으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기 힘들다고 하지만 이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과거 60세 이상 고령층의 보수 정치 세력에 대한 충성도는 절대적이었다. 보수 정당의 든든한 ‘믿는 구석’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식들 위해 일터로 나가는 어버이처럼 보수 정당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문제가 있든 없든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견고한 지지를 보냈다. 보수 정당은 이들 60대의 호응을 기반으로 경쟁 세력에 대항할 동력을 확보하곤 했다. 2012년 대선에서 60대 이상은 무려 72.3%의 지지를 보수 후보에게 몰아줬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오늘의 60대는 어제의 60대와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전의 40대, 50대들이 이제 60대가 된 것이다. 지금 60세는 40대에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경험했다. 이전 60대들과는 다른 사회를 경험한 세대들이 60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3월10일 헌법재판소 인근에 모인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3월10일 헌법재판소 인근에 모인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달라진 정치 환경, 新60대가 온다

 

이전 60대는 한국전쟁 세대였다. 전쟁과 기아를 경험했다. 당연히 안보 이슈에 민감했다.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는 적으로서의 북한이 존재하고 있고, 이로부터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안보에서 미심쩍은 정치 세력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표출했고 선거에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적대 세력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 자체에 대해서 무척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최근 60대에 전쟁 이후 세대들이 진입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부머들이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보 민감도가 이전 세대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들은 산업화를 거치고 비교적 풍요로운 한국 사회를 건설하는 주역이었다. 경제적 풍요를 건설하면서도 그 풍요를 일정 부분 누렸다. 경제적 문제에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이다. 이들은 은퇴를 했거나 눈앞에 은퇴를 앞두고 있다. 노후는 길어졌다. 북한의 체제 위협에 대한 불안감보다도 당장 경제적 생활 유지와 관련한 불안감이 더 클 수 있다.

 

최근 60대에서 실리적 특성이 발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화된다’는 이른바 연령효과(age effect)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으나 그 강도는 과거 60대에 비해 상당히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사상보수, 생활실리’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각종 데이터 관리에서도 60대와 70대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60대와 70대의 의식 차이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더 이상 60대와 이전 60대였던 70대는 한 그룹이 아닌 것이다.

 


60대와 70대 의식 차이도 존재

 

과거에 비해 지금 60대는 학력수준도 높다. 정보습득 역량도 뛰어나며 사회 비판의식도 내재하고 있다. 단순히 정서에 의해서 의식이 규정되는 게 아니라 실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각 정치 세력의 정책이나 입장에 대해 판단하고 이에 따라 반응할 여지가 커졌다. 고령층의 증대와 이들의 정치영역에서의 실리적 행동으로 인해 정치적 파워그룹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실버정치(silver politics)’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외국처럼 우리나라에도 은퇴자협회 등 고령자 단체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보수 신화’의 붕괴도 60대의 유동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간 보수 정치 세력이 60대의 절대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주요한 3가지 신화가 있었다. 첫째, ‘경제는 보수가 낫다’는 것이다. 산업화 주도 세력이 보수 세력이었기 때문에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진보 세력에 비해 경제를 더 잘 알고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보수 정권들이 이를 증명하지 못했고, 경제지표는 더 악화됐다. 둘째, ‘안보는 보수가 절대적으로 더 낫다’는 것이다. 여전히 진보 정치 세력의 안보관을 의심하지만 보수가 안보에 유능하다는 인식은 최근 북한의 도발에 무력하기만 한 보수 정권을 보면서 역시 약화됐다. 대중의 기대에 보수 정치 세력이 안보 영역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절대적 우위에서 상대적 우위로 바뀌었다. 셋째, ‘사회의 안정에는 보수가 더 낫다’는 인식이다. 보수 정당이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둘러싼 극한 대립을 보이고,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정권 게이트로 나라가 흔들리고, 또 이를 놓고 친박(親박근혜)과 비박(非박근혜)의 갈등을 넘어 당이 쪼개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보수 정치 세력이 사회의 안녕을 강화하고 혼란을 수습하는 능력을 지녔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고령층으로 하여금 당당히 보수임을 자임하게 하면서 보수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강력한 근거로서 작동해 온 보수의 우월성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바뀐 정치적 환경도 이들의 정치적 선택의 유동성을 강화하고 있다. 선택지가 진보와 보수 양당으로만 제시될 경우 진보에 대한 반감이 작동해 보수 정당에 대한 선택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중간지대 정당도 존재한다. 반대쪽으로 넘어가지 않으면서 기존 관성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기 쉬워진 것이다.

 

실제로 최근 60대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과연 이들이 지난 대선에서 보수 후보에게 70% 이상 표를 몰아준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에 20%를, 바른정당엔 9%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반면 반대쪽의 민주당엔 20%를, 중도 정당인 국민의당엔 22%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60대에서 제1당은 보수 정당이 아닌 결과다.(한국갤럽, 2017월 3월28~30일)

달라진 정치 환경에 신(新)60대가 출현한 셈이다. 60대의 유동성이 높아진 만큼 이번 대선에서 이들의 선택은 전체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60대의 유연성이 확인되면 각 정치 세력의 실버 정책 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절대다수를 점하는 실버층에 대한 정당의 구애가 경쟁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60대의 유동성을 더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론조사 속 문재인-안철수의 강점과 약점

<시사IN>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적폐 청산’은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이슈이고, 홍준표 지지자는 안철수 지지로 바꿀 가능성이 있으며, 북한 이슈는 안철수 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7년 04월 17일 월요일 제501호


두 ‘37%’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사IN> 대선 여론조사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한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와 안철수 후보(국민의당)는 각각 37.5%와 37.2%를 얻었다. 오차범위 내의 접전이다. 같은 ‘37%’ 안에 담긴 다른 의미를 읽으면 여론이 판단하는 두 후보의 강점과 약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투표일까지 두 후보의 선거 전략도 여론 지형도에 따라 맞춰갈 가능성이 높다. 여론 지형도에 드러난 전략적 변수들을 풀어본다.

■ ‘적폐’ 전선은 안철수의 영토?


문재인 캠페인의 핵심 키워드는 ‘적폐 청산’이었다. 민주당 경선의 최대 전선은 ‘문재인의 적폐 청산 대 안희정의 대연정’이었다. 본선에서 문재인 캠프는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고 하지만, 캠페인에도 관성이 작동한다.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 후보를 ‘적폐 연대’라고 불렀다. 전략이든 관성이든 적폐 키워드를 본선 무대까지 끌고 왔다.

적폐 전선은 문재인 후보를 고립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사에서 <시사IN>은 “차기 대통령이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보나?”라고 물었다. 응답자의 56.8%가 ‘국민 통합’의 손을 들어줬다. ‘적폐 청산’은 39.1%에 그쳤다(아래 <표 1>).

ⓒ시사IN 이명익


적폐 청산은 전형적인 ‘진영 내의 열광과 진영 외의 냉소’를 부르는 이슈로 고립되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만 따로 보면 적폐 청산 59.5%, 국민 통합 38.8%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 화두가 힘을 발휘했던 이유다. 그 결과 문재인 지지층에서도 적폐 청산 62.1%, 국민 통합 36.4%로 비슷한 추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경선의 관성이 본선을 집어삼키고 있는데, 문재인 후보의 방향 전환은 기민하지 않다.

문재인 캠프가 적폐 전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이유는 있다. 안철수 지지층의 구성은 이질적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민주당 계열 지지층과,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한 보수층의 전략적 지지가 만난 위태로운 조합이다. 이 조합을 깨트릴 수 있다면 대선은 문재인 후보가 이긴다. 적폐 공세는 이질적인 안철수 지지층을 깨트릴 무기라는 가설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론 지형은 이 가설을 기각했다. 적폐 청산 자체가 민주당 진영 이슈로 고립되고 있고, 국민 통합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다수파들이 안철수 후보로 결집했다. 안철수 후보 지지층에서는 국민 통합 72.9%, 적폐 청산 23.5%다. 적폐 청산론이 먹혀들기 쉽지 않은 지형이다.

결정적으로, 적폐 청산론은 ‘밀어내는 이슈’다.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내가 적폐란 말이냐”라고 반발하기 쉽다. 이질적인 안철수 지지 연합에 결집력을 더해주는 꼴이다. 물론 문재인 지지층의 결집력도 올려준다. 하지만 서로 결집력이 올라가는 방향으로 갈 경우 대선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접전 양상이 지속될 수 있다.

문재인 후보 관점에서는, 안철수 지지층의 이질성이 부각될수록 승리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적폐 이슈가 부각될수록 안철수 지지층의 이질성은 가려진다. 이것은 마치 대북정책의 고전적인 ‘봉쇄론’ 대 ‘관여론’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적폐 청산론은 말하자면 ‘봉쇄론’이었다. 강한 압박으로 상대 진영이 허물어지도록 밀어붙이는 이슈다. 하지만 압박이 내부 결집을 강화하는 대북 봉쇄론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반복됐다. 안철수 지지층의 이질적 연합은 깨러 들어갈 때 결집하고 느슨하게 만들 때 풀어헤쳐진다. 봉쇄·긴장보다 침투·이완이 효과적이라는 햇볕정책의 접근법과 비슷하다. 적폐 청산론으로 전선을 크게 긋고 몰아치기보다는, 차라리 안철수 후보의 자격을 따져 묻는 검증 공세가 견고하지 않은 안철수 지지층을 이완시킬 가능성이 높다.

ⓒ시사IN 이명익


이렇게 보면 안철수 캠프도 할 일이 분명해진다. 문재인 후보와 문재인 캠프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적폐 청산론에 묶어놓아야 한다. 4월13일 대선 후보 초청 토론에서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저를 적폐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고 비판했는데, (저를 지지하는) 국민 모독 아니냐”라고 말했다. 적폐론으로 두들겨 맞을수록 지지층 결집이 강화된다고 보면 안 후보로서는 이 전선을 계속 활성화해야 한다. 문 후보는 ‘적폐 정치세력’과 ‘일반 국민’을 구분하면서 응수했다. 정론일지는 몰라도 직관적이지는 않았다. 적폐 청산론이라는 전장 자체가 불리한 구도에 문 후보 자신을 가둔다.

■ 홍준표는 잊어라, 둘 다


두 캠프 모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변수는 없는 셈으로 치고 전략을 짜야 하는 구도다. 홍 후보의 선전은 문재인 후보에게는 호재다. 홍 후보가 두 자릿수 득표율만 기록해도 안 후보의 승리는 쉽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층은 전체 응답자 중 80.8%다. 이들의 대선 주자 지지율만 따로 떼어보면, 문재인 45%, 안철수 36%로 차이가 제법 난다. 만약 홍 후보가 탄핵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전체 응답자 중 13.1%)를 대부분 표로 가져간다면, 이 45% 대 36% 격차를 메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홍준표 후보의 선전 여부는 문재인 캠프가 개입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라 홍 후보 자신에게 달려 있다. 문재인 캠프로서는 외부 변수에 기대어 전략을 세울 수는 없다. ‘탄핵이 잘못한 결정’이라고 응답한 13.1%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홍준표 40.6%, 안철수 41.1%로, 모름·무응답을 제외하면 거의 반반씩 가져간 상태다. 그 결과가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 7%다.

이 7%도 견고하지 않다. “반대하는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현재 지지 후보 외에 다른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홍 후보 지지자의 41.9%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지지층의 40% 이상이 전략 투표로 지지를 바꿀 의향이 있다는 것은 지지층 충성도가 낮다는 의미다. 그리고 홍 후보 지지층이 ‘당선을 막고 싶은 후보’는 문재인 후보일 가능성이 높다. 홍 후보 지지층의 추가 붕괴와 안 후보 지지율의 추가 상승 여력도 남아 있는 셈이다. 문재인 캠프는 ‘홍준표의 보수 표 잠식’을 상수보다는 불확실한 변수로 생각하고 일단 잊는 편이 낫다.

안철수 캠프는 홍준표 변수를 잊어야 할 이유가 더 확실하다. 적폐 청산론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안 후보가 그 구도에 가둬지지 않기 때문이다. 안철수 지지층 중 40.8%는 ‘가장 대통령으로 적합하지 않은 후보’로 홍준표 후보를 꼽았다. 안 후보가 홍 후보 쪽으로 접근하는 순간, 지지층의 40%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

홍준표 지지층 7% 중에서도 전략 투표를 고려하는 41.9%는 구애가 아니라 압박에 반응한다. 굳이 과도한 구애를 하지 않아도, 문재인 대 안철수 양강 구도가 박빙으로 흐를수록 보수 표 추가 유입이 가능하다. 오히려 보수 표에 과도한 구애를 할수록 최대 위협 요소인 지지층의 이질성이 두드러질 위험이 있다. 압박의 성공 가능성은 양강 구도를 유지하는 데 달려 있다. 본격 시작된 검증 공세를 버티면서 투표일까지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다.

■ ‘찍으러 나갈 이유’를 누가 먼저 줄까


비슷한 지지율이라도 현실에서는 투표 동기가 더 강한 쪽이 이긴다.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라고 답한 적극 투표층은 85.5%다. 적극 투표층만 따로 놓고 보면 대선 후보 지지율은 문재인 41.5% 대 안철수 38.1%로 전체 여론 대비 문 후보 쪽으로 기운다. 문재인 지지층이 ‘찍으러 나갈 이유’를 좀 더 강하게 느낀다는 징후다. 안철수 지지층의 높은 이질성은 ‘반(反)문재인’이라는 접착제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특정 후보에게 반대하는 전략 투표는 진심 투표보다 투표장에 갈 동기부여가 더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선거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투표율이 크게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20대의 적극 투표 의향이 이례적으로 높다(81.2%). 각 세대의 적극 투표 의향은 최저 81.2%(20대)에서 최고 87.4%(40대)로 큰 차이가 없다. 60세 이상 세대가 눈에 띄게 높지도 않다(85.9%). 2040 세대와 5060 세대의 지지 성향이 각각 문재인 대 안철수로 갈린 세대 투표 현상이 뚜렷한 이번 대선에서 세대별 적극 투표 의사가 ‘평탄화’된 것은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는 후보에게 희소식이다.


정치권 인사들은 이번 대선을 박근혜 탄핵이라는 정치 이슈가 압도하는 대선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적폐 청산이냐, 국민 통합이냐’라는 전선도 거기서 파생됐다. 하지만 여론 지형은 여전히 고전적인 주제에 더 주목한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위쪽 <표 2>). 응답자의 25.6%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문제의 해법이 있는 후보’를 꼽았다.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할 후보’를 꼽은 응답이 18.9%로 뒤를 이었다. 성장·일자리·불평등이라는 먹고사는 문제가 여전히 핵심 관심사였다. ‘국민 통합을 이뤄낼 후보’ 15%,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할 후보’ 14.2%, ‘투철한 안보관을 가진 후보’ 7.9%, ‘권력기관을 개혁할 후보’ 7.5% ‘한반도 평화와 남북 협력을 추진할 후보’ 3.8%였다. 전반적으로 경제 관련 이슈가 대내외 정치 이슈를 압도했다.

성장·일자리 이슈를 꼽은 응답층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상대적 강세였다(안철수 지지 46.5% 문재인 지지 29.8%). 불평등·사회안전망 이슈를 꼽은 응답층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상대적 강세였다(문재인 지지 48.5%, 안철수 지지 28.8%). 먹고사는 문제에 뚜렷이 강세를 확보한 후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4월14일자 한국갤럽 조사를 봐도, 먹고사는 문제는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은 고지다. “경제 문제를 가장 잘 다룰 것 같은 후보”를 묻는 질문에는 문재인 26%, 안철수 29%, 없음·유보 29%였다. 없음·유보 응답이 상당히 높다. 각 후보 지지자들도 경제 문제가 나오면 확신이 크지 않다. 문재인 지지층에서 ‘문 후보가 경제 문제를 가장 잘 다룰 것’이라고 답한 응답은 61%, 안철수 지지층에서 ‘안 후보가 경제 문제를 가장 잘 다룰 것’이라고 답한 응답은 60%였다. 두 후보 지지자 중에서도 약 40%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경제 문제의 최적임자로 꼽기 망설인다는 의미다.

‘박근혜 정권 심판’은 분노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갈 동기로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대선 구도가 ‘문재인 대 안철수 양강 구도’로 재편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등 심판 이슈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다. 다시 ‘찍으러 나갈 이유’를 놓고 경쟁이 벌어질 공간이 열렸다. 먹고사는 문제는 가장 근본적 과제인 동시에 가장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 북한, 보수의 뜨거운 감자?


여론은 북한 문제 해법으로 제재와 교류 중 무엇을 선호할까. 거의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제재 강화’ 46.1%, ‘교류 강화’ 44.5%로 팽팽하게 나왔다(아래 <표 3>).

문재인 지지층은 비교적 갈등 요소가 적다. 문재인 지지자만 따로 보면 제재 강화 27.7%, 교류 강화 66.6%다. 그런데 안철수 지지층은 사정이 복잡하다. 제재 강화 57%, 교류 강화 34.7%로, 제재론에 기울어 있기는 하지만 교류론도 크기가 만만치 않다.

안철수 지지층의 이질성 문제는 북한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지지층의 한 축을 이루는 보수층은 제재 강화 71.1%, 교류 강화 23.5%로, 확고한 제재파다. 그런데 또 다른 축인 호남은 제재 강화 36.1%, 교류 강화 57.7%로, 전국에서 교류 강화 지지세가 가장 높다. 교류 지지가 절반이 넘는 광역권은 호남밖에 없다. 두 축이 연합한 결과, 안철수 지지층은 대북 정책 노선에서 위태로운 이질성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보수·진보 양강 구도에서 안보 이슈는 진보 후보의 약세 전장으로 간주되곤 했다. 제재론과 교류론의 여론 기반은 비슷하다 하더라도, 안보 문제를 이유로 투표장에 가는 유권자는 보수가 더 많아서다. 하지만 2017년 대선의 독특한 양강 구도에서, 안보 이슈는 좀 더 복잡한 문법에 놓이게 되었다. 안보가 쟁점으로 떠오를 경우, 오히려 양강 중 보수에 더 가까운 후보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지지층의 이질성 문제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이슈인 데다가, 대북 정책의 특성상 중도적인 해법을 제시하기도 간단치 않다.

안철수 후보는 가능한 ‘왼쪽’의 표를 붙들어두면서, ‘오른쪽’ 표는 구애보다는 압박을 통해 당겨와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대북 문제는 여론이 양자택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교류론으로 접근하는 순간 제재론 세력의 용인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 이러면 보수의 전략 투표는 작동하지 않고, 이질적 지지 연합은 해체될 수 있다.

안철수 캠프 관점으로 보면, 북한 문제가 지지층의 이질성을 끌어올릴 위험을 피해야 한다. 핵심 이슈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이슈에 따른 개별 대응을 이어가면서 전반적으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 배치 문제와 같은 각론에는 찬성으로 선회하면서 “대북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 평화를 만든다는 궁극적인 목표가 중요하다”(4월13일 대선 후보 초청토론)는 식으로 전체 기조를 가져가고 있다. 안 후보의 지지층 구성을 고려하면 사실상 외길에 가깝다. 좌우 양쪽에서 끊임없이 추궁당할 길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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