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말고 대책이 있냐”라고 묻는 너에게
“사드 말고 대책이 있냐”라고 묻는 너에게
장수왕은 북위와 송나라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했다. 서희는 요나라가 송을 견제하는 상황을 활용해 국익을 극대화했다. 그들은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가상 대담을 엮어보았다.
| [464호] 승인 2016.08.11 16:58:00 |
우리 조상들은 항상 중국 대륙의 정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 유명한 <삼국지연의>의 첫 구절이 “무릇 천하대세는 나누어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라는 것은 너도 알 거야. 이처럼 중국 대륙에서 어느 나라 또는 민족이 갑자기 흥성하여 패권을 차지하고 호령할지, 또 어떻게 갈리고 어느 쪽이 우리와 맞닿는가의 문제는 작게는 이익의 대소를, 크게는 나라의 존망을 결정하기도 했어. 오늘은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국제 정세 속에서 살길을 찾아야 했던 조상님들 중 탁월했던 두 분을 모시고 가상 좌담회를 열어볼까 한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수왕(394~491년, 재위 412~491년)과 외교 담판으로 거란군을 철수시켰던 고려의 서희(942~998년)가 그 주인공이다. 주제는 “우리는 이렇게 외교를 펼쳤다”. 사회는 아빠가 보도록 하지.
사회:인사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고구려의 장수왕께 여쭙니다. 오랫동안 왕위에 계셨는데 어떤 식으로 외교를 펼치셨습니까.
장수왕:내가 즉위하던 무렵은 국제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였소. 중국이 5호16국 시대의 혼란기를 극복하고 대충 북쪽의 북위와 남의 송나라로 정리되던 때였지. 일종의 양강체제(兩强體制)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요. 아버지 광개토왕은 대륙의 혼란을 틈타 동서남북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가셨지만 나는 그럴 수만은 없었소. 나는 북위와 송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지. 국경을 맞댄 북위와 교류가 잦았지만 결코 남쪽 왕조 송에게도 소홀하지 않았다오. 그 한 예로 439년 송나라가 말 800필을 요구해왔을 때 나는 바다 건너까지 말들을 보내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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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장수왕은 균형 외교를 위해 송나라에 말 800필을 보내기도 했다. 위는 장수왕릉으로 추정되는 중국 지린성 지안에 위치한 장군총. |
말 800필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오? 유목민족인 선비족이 세운 북위는 기병이 주력이었지만 한족이 중심인 송은 그렇지 못했거든. 그들에게 말(馬)을 준다는 건 요즘으로 말하면 탱크 800대나 미사일 800기를 보낸 것과 같다고 보면 될 거요. 말 800필이 가면 그 말을 돌보는 사람은 또 얼마나 가야 하고, 그 말들이 먹을 건초는 얼마였겠소. 국력을 기울인 수송 작전이었지. 말만 보낸 게 아니라 우리 고구려가 쓰던 기병 전술까지 수출했다고 보면 될 거요. 그런데 이 439년은, 북위가 화북을 통일한 해이기도 했소. 나는 북위에도 사신을 파견했지. 심지어 11월, 12월 한 달이 멀다 하고 연거푸 보내서 친한 체를 했다오.
서희:장수왕께서는 북위와 송의 욕심과 약점을 동시에 이용하신 겁니다. 북위는 송나라와 맞서기 위해서 고구려와 무탈하게 지내야 했지요. 한편 송나라는 북위를 견제하기 위해서 고구려를 끌어들여야 했습니다. 요즘 청춘 남녀들의 연애 격언 중에 “잡힌 고기에게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지요? 장수왕의 비결은 바로 ‘잡힌 고기’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대국이 낚시꾼이라면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낚싯바늘을 피해 미끼만 잘라 먹는 얄미운 물고기였다는 거죠.
장수왕:좀 무엄하시군 서희 공. 나를 물고기에 비유하다니. 북위의 요구를 거부하고 북연의 왕 풍홍을 받아들였으며, 풍홍이 송나라를 끌어들여 우습게 놀자 그를 가차 없이 죽여버리기도 했거늘…. 어흠! 미끼 잘라 먹는 물고기라니.
서희:비유가 불쾌했다면 용서하소서. 그러나 대왕께서는 외교의 기본을 또 하나 보여주신 겁니다. 강대국의 욕심을 타고 넘어 도리어 약점을 찌를 수 있는 외교의 핵심은 곧 주체적인 자기 역랑입니다. 스스로 지킬 힘과 방책이 없는 나라라면 밖으로 다른 나라와도 사귈 수 없을 겁니다. 싫어도 미끼를 물어야 굶주림을 면하는 물고기가 될 뿐인 것이지요. 거란의 1차 침입 때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장수왕:그때도 대륙 남쪽의 송나라(장수왕 때의 송나라와는 다른)와 북쪽의 거란, 즉 요나라와 다툼이 치열했지요?
서희:그렇습니다. 요나라와 송나라는 오늘날 북경 지역인 연운 16주를 두고 다투었지요. 요나라는 송과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기 전에 배후의 위협이 될 수 있는 고려를 꺾어두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허장성세가 심했지요. “80만 대군을 몰고 왔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80만 대군이라면 왜 구태여 항복하라고 큰소리를 칩니까. 허세였죠. 물론 만약 안융진 전투마저도 고려군이 패했다면 그 허세는 실세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소손녕은 그 작은 성을 빼앗지도 못하면서 계속 폼만 잡았죠. 이거 ‘뻥이다’ 싶었습니다.
장수왕:그때 서경(평양) 이북을 거란에 떼어주자는 사람도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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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청 제공 경기도 이천시 서희테마파크 역사관에 설치된 서희 장군 담판 모습. |
서희:그랬습니다. 그러나 지렁이만 줘도 만족할 물고기에게 좋은 떡밥을 미끼로 쓸 필요는 없는 거지요. 실제로 거란은 고려 땅에 대한 욕심은 없었습니다. 저와 회담 중에 소손녕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바람에 춤을 출 뻔했습니다.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 송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까닭은 무엇이오?” 결국 이 말이 바로 거란의 속내이자 욕심이었지요. 후손들이 만든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명대사이던가요.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 쾌재를 부르며 제가 소손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진 때문에 길이 막혀서 압록강 건너기가 바다 건너기보다 힘든데 어떡합니까. 우리가 여진족 몰아내고 옛 땅을 찾아 요새를 만들고 길을 열면 (요나라와) 친하지 않으려고 해봤자 안 친할 수 없지 않을까요?” 소손녕은 길게 생각하는 친구가 아니더군요. 자기네 왕으로부터 잽싸게 허락을 얻은 뒤 제게 낙타 10마리, 말 100필, 양 1000마리에 비단까지 얹어 선물을 주고 철군해갔지요.
장수왕:하하하~. 그래서 고려는 요나라에게 뭘 해줬나요?
서희:송나라와 단교하고 요나라 연호를 사용하기로 하였답니다. 압록강변 280리를 우리 땅으로 공인받고 성 쌓고 길 닦는 대가로 말입니다. 하지만 요나라에는 그게 중요했던 겁니다. 얼마나 바보짓을 한 건지는 수만 목숨을 바치고 나서야 알게 되지만요.
사회: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번 정리해볼까요. 두 분이 살던 시대와 오늘날이 물론 같을 수는 없지만 양강 구도의 틈새를 경험하신 분들로서 후손들의 외교에 도움말을 주신다면요?
장수왕:우선 섣불리 한편에 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겠지요. 결단할 때는 분명히 있겠지만 드물 것이고, 섣불리 결단하여 한쪽의 적이 되는 일은 금기 중의 금기요. 그리고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빼낼 수 있는 패는 소매 속에 감춰둬야 하오. 고구려에 상륙하여 내 부하들을 살상한 송나라 장수를 내가 죽여버리지 않은 이유요. 왕가 사이의 혼인으로 양국(고구려와 북위)의 결속을 다지자는 북위의 요구를 애써 거절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또한 중심을 잘 잡아야 하지요. ‘판단은 강대국이 하고 우리는 수용할 뿐’이라는 자들에게는 외교고 국방이고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서희: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80만 대군을 떠벌리면서 협상하자고 으르댄 소손녕에게 속내가 있었던 것처럼 툭하면 미사일을 쏘아대는 이들에게도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들을 감싸는 이들도 마찬가지인 게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어느 정도 (또는 최소한으로) 배려해주는 것이 외교이고 협상입니다. 그 고민 없이 “적이 쳐들어왔다. 싸우자!”라고만 부르짖거나 “80만 대군이란다. 항복하자”라고 외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대조적이지만 사실은 둘 다 동일한 바보짓일 뿐이지요. 그러고 보니 후손 중에 누군가 이렇게 묻는 게 들리더군요. “사드 외에 무슨 대책이 있단 말이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소. 미국이라는 나라의 1992년 대통령 선거 구호를 조금 비튼 말이오. “바보야, 문제는 외교야(It’s the diplomacy, stupid!).”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대안은?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중국·러시아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이부영 (준)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대안으로 ‘코리아 프로세스’를 제안했다.
| [464호] 승인 2016.08.11 16:58:44 |
사드 배치로 뒤엉킨 동북아 정세를 풀 묘안 가운데 하나로 ‘코리아 프로세스’를 주목할 만하다. 이부영 (준)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은 지난 5월27일 제주국제포럼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대안으로 코리아 프로세스를 제안했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행보’에 가려 이 제안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드 배치 선언 이후 출구전략의 하나로 주목할 만하다. 코리아 프로세스는 단기·중기 전략을 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남북대화 복원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 교환 재개·확대 △6·15, 10·4 남북 공동선언 합의사항 이행 △이미 합의한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사업의 신속한 이행 등을 담고 있다. △서울과 평양에 남북대표부 설치 △미국과 일본의 대북관계 정상화 적극 찬성 △북핵 폐기 및 평화협정과 연계한 한·미 동맹의 재조정 △북한·러시아 당국과 시베리아 철도 및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사업 논의 △중국·러시아 합작 산둥 가스파이프라인의 한국 연결 논의 등이 중·장기 과정에 담겼다. 이부영 위원장을 만나 ‘코리아 프로세스’ 작동 가능성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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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코리아 프로세스’를 제안한 이부영 위원장. |
미국은 왜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려 했을까.
여러 전문가들 지적대로 중·러의 핵 기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유럽에서도 지난날 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 쪽에 배치했던 레이더 탐지 기지를 사드로 바꿔서 리투아니아·폴란드 그리고 루마니아에 배치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그리고 괌, 하와이, 알래스카에 있는데, 한국에 두면 500~600㎞ 전진 배치하는 꼴이 된다. 중·러는 유사시 제1의 타격 목표가 사드가 배치된 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기만 하면 한국의 안위 따위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미 당국의 사드 배치 발표가 너무 졸속으로 이뤄졌다.
미국 내에서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가 한국 내부의 극우·군부 세력과 더불어 박근혜 정부를 밀어붙였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너무 쉽게 강경파에게 밀린 것 같다. 한국 안에서도 외교부나 일부 군부 세력은 반대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무엇보다 정부 차원에서라도 논의와 토론을 깊이 있게 진행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사드 배치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 것이다. 우리 사회 갈등과 분열의 요인이 될 것이다. 또 사드 배치로 신냉전 구조가 한반도를 내리누르면 탈냉전 시대 우리가 유지해온 무역·수출,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 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 ‘코리아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과거 정부 대북정책은 북한의 조기 붕괴를 전제로 했다. 그런 차원에서 대북정책을 폈던 사람들 가운데 반성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서독처럼 장기적 안목으로 대북정책을 쓰지 못한 것이 결국 핵 개발의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반성만 해서는 안 된다. 반성을 계기로 다시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북한이 비록 지금 핵무장을 했더라도, 핵 폐기를 위해 장기적 구도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이 앞장서서 미국과 일본을 설득해 인도적 지원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남북 대화를 재개하며, 미국·일본과 북한 간의 대화를 중재해야 한다. 유엔 제재도 가능한 한 빨리 풀도록 한국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북한도 지난 5·7 당 대회를 마치고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해 대화 분위기 이끌어야 한다. 북한은 핵 활동의 현상 동결로 화답하고 한·미는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으로 맞장구를 쳐야 한다. 이런 것이 사드 배치의 기본 조건을 없애는 일이다. 더 나아가 일본 아베 총리의 개헌 명분을 없애는 길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까.
정부가 사드 배치를 선언했지만 지금 이와 관련한 목소리가 크지 않다. 외교부나 군 내부 일각에서도 사드 배치에 회의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재계나 대기업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기업들도 한결같이 후폭풍을 걱정한다. 경제적 실익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선 중국의 경제제재 가능성에 대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데, 역지사지해보자. 중국 처지에선 전략핵 균형이 무너지는 문제다.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군 출신과 법조계 인사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현재의 냉전 구조를 강화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인적 개편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 주변에 쓴소리를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드를 계기로 1980년대 유럽에서 일어났던 평화운동과 같은 동력이 시민사회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성주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번에 “성주뿐 아니라 한반도 어디에도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감동했다. 역시 김창숙 선생을 배출한 동네답다(성주 선비가 20년 만에 서울에 온 까닭 참조). 찬반으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는 건 대단히 협소한 접근이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서도 박 대통령이 남북대화에 나설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먼저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개성공단 재개, 5·24 조치 해제를 요구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오바마 대통령도 쿠바·이란 문제까지 해결했는데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 임기 말이더라도 북·미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 미국에도 북·미 회담은 탈출구가 될 것이다. 이걸 코엑시트(Ko-exit), 코리아-엑시트라고 불러도 되겠다. 왜냐하면 미국도 북한을 무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온 결과 적지 않은 예산을 쓰고 있다. 군사훈련을 자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리아 프로세스를 통한 남북대화나 남북정상회담은 사드 기지의 배치 명분도 없애고, 일본의 평화헌법 개헌 명분도 없애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사드 ‘출구전략’을 알아보자
사드 배치로 한반도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은 제3의 전선이 되었다. 미·중 간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터지는 화약고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 [464호] 승인 2016.08.11 16:59:41 |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선언 이후 분명해진 점이 있다. ‘주장’과 ‘팩트(사실)’ 사이의 괴리다.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 방어용이라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주장’과, 경북 성주에 배치되는 사드로는 수도권은 물론 중부권의 핵심 군사기지조차 방어할 수 없다는 ‘사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 또한 한반도에 배치될 사드가 여전히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와 무관하다는 우리 군 수뇌부의 ‘주장’과 미국 의회 회계감사원 자료 등을 통해 미국 MD의 핵심이라 할 ‘핵심지휘통제체제(C2BMC)’의 중앙컴퓨터와 연동된 최전선 국가의 레이더라는 ‘사실’ 사이에도 괴리가 있다. ‘성주에 배치될 사드가 미국 MD가 아니라면, 이는 마치 통신사에 가입되지 않은 최신형 스마트폰이라는 뜻이다’라는 연세대 최종건 교수의 지적(<한겨레> 7월27일자)처럼, 성주에 배치될 사드를 미국 MD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유일하다.
사드 배치는 한국을 넘어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사드 한국 배치를 서두른 이유에 대해 미·중 간 남중국해 대결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려는 분석이 제기됐다. 곤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 현대> 특별편집위원은 <월간중앙> 8월호에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9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친중국 노선을 접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미국은 제1열도선(‘열도선’이란 중국의 대미 군사방어선으로, 제1열도선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타이완-필리핀을 잇는 가상의 선을 말한다. 중국식 용어로는 도련선) 방어를 위해 한국을 반중국 전선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사드 배치를 서둘렀다고 곤도 다이스케 위원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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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2015년 10월27일 미국 해군 구축함인 라센함(위 사진 앞쪽 배)이 남중국해를 항해하는 가운데 중국이 자국 군함을 보내 미국 군함을 뒤쫓는 위기 상황이 조성됐다. |
이보다 더 깊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성역화하고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의 주력 무기인 중거리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려 한다. 미국의 공해전(AirSea Battle)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실제 중국은 중거리미사일의 정밀도를 오차범위 2~3m 이내까지 끌어올림으로써 미국 공해전 전략의 핵심인 MD를 이미 무력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또 난사 군도와 시사 군도 그리고 필리핀 앞바다에 있는 스카보로초 군도를 잇는 삼각편대(아래 지도 참조)가 완성되면 중국에 의한 남중국해 공역의 성역화가 이뤄진다. 그리고 중국이 매립 중인 파이어리크로스 등의 난사 군도 인공섬은 남중국해의 진입 수로를 장악하는 위치에 있다. 인공섬 매립이 완성되면 미·일 군함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공역과 영해의 성역화가 이뤄지면 하이난 섬 잠수함 기지가 미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난다. 미국 본토 타격용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쥐랑-2를 탑재한 중국의 전략핵잠수함이 자유롭게 서태평양을 거쳐 미국 본토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시사IN> 제422호 ‘제2의 닉슨 독트린 몰려온다’ 기사 참조).
사드 배치로 ‘반중국 네트워크’에 가입한 한국
이에 미국은 중국 인공섬 12해리(약 22.2㎞) 이내 해역으로 항해하는 ‘항해의 자유’ 전략을 통해 중국의 남중국해 성역화를 막고 있다. 또 군사기술 첨단화를 통한 제3차 상쇄전략(Third Offset Strategy)으로 대응한다. ‘제3차 상쇄전략’은 1차 상쇄(전략 핵무기), 2차 상쇄(위성 위치확인 시스템 활용)에 이은 것으로 드론 등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개념을 적용한 군사무기 활용을 말한다. 지난 2014년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미국이 글로벌 파워로서 지위를 유지하려면 아시아·태평양은 이제 동맹국에 맡기고 미국은 중·러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척 헤이글이 국방장관이던 시절 시작해 애시턴 카터 현 장관이 구체화하고 있는 ‘제3차 상쇄전략’이다. 첨단 군사기술을 통해 중국·러시아 등 경쟁국을 따돌리겠다는 구상이다. 냉전 시대 전략핵무기 등을 증강했던 두 차례 상쇄전략에 이은 세 번째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은 3차 상쇄전략의 일환으로 최첨단 무기들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무인비행기(드론)나 무인잠수함 그리고 음속의 7배라는 레일건을 탑재한 구축함을 남중국해에 투입하는 방안도 그 연장선상에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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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미 군사방어선 가운데 하나인 ‘제1열도선’(오른쪽) 방어를 위해 미국이 한국 사드 배치를 서둘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제3차 상쇄전략은 국방비를 군사기술 혁신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의도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는 제1열도선 방위는 제1열도선상 국가들이 ‘반중국 네트워크’를 결성해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인 곤도 다이스케의 분석은 바로 한국이 사드 배치를 통해 제1열도선의 반중국 전선 국가로 급속히 빨려들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제1열도선을 ‘캄차카 반도-일본 열도-한국-타이완-필리핀-대(大)순다 열도를 잇는 남북 라인’이라고 규정했다. 즉, 한국을 포함했다. 국제정치학계에서 여러 주장이 있지만 제1열도선은 대체로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1950년 1월 주장한 애치슨 라인과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2011년 1월 일본 <교도 통신>이 보도한 용어 해설에서도 ‘제1열도선은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알류샨 열도-일본-필리핀을 잇는 라인을 ‘서방 측 방위선’이라고 연설에서 밝힌 것이 기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제1열도선을 설명할 때 일본을 기점으로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을 잇는 방어선으로 봤지 한국을 기점으로 보지는 않았다. 물론 한국의 이어도가 제1열도선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제1열도선 국가인 것은 아니다. 이게 바로 국제정치의 상식이다.
사드의 X밴드 레이더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은 미국 공해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MD 강화다. 또 ‘상대보다 멀리서 먼저 보고 때린다’는 상쇄전략 교리와도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드 배치로 한국은 ‘반중국 네트워크’에 가입했을 뿐 아니라 졸지에 분쟁지역의 열점이 된 셈이다. 한국의 사드 배치로 한반도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은 제3의 전선이 된 것이다. 미·중 간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터지는 화약고라는 의미다.
중국이 제1열도선의 국가들로 분류한 일본·타이완·필리핀 등은 모두 중국과 영토 문제로 대립 중인 분쟁국가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이지만 그 동맹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대북억지 동맹이지 중국에 반하는 동맹은 아니었다. 더구나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할 만큼 중국은 한국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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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냉전 해체의 기폭제가 된 ‘이중 결정’을 주도한 서독 헬무트 슈미트(가운데)와 헬무트 콜(왼쪽). |
“미국이 판단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는 청와대
또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 처지에서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대중국 군사 대립만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급성장은 미국에도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이후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중국-러시아 다음 순위 국가들인 영국·프랑스·이스라엘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6월22일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실험에서 미국의 태평양 군사거점인 괌을 타격할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핵탄두를 장착한 무수단 미사일 단 한 발만 떨어져도 미군 병사 8만명이 사망한다는 게 미국 군사전문가의 분석이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북한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러는 오랜 대화와 협상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통제 불능이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에서는 중국과 대립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던 게 지금까지 미국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얼개였다. 그런데 사드 배치 선언 이후 이런 구도가 급속하게 헝클어졌다. 북한과 대화 채널이 중단됐고, 중·러를 통한 대북 통제 역시 어려워진 상황으로 가고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군사 압박을 분산하기 위해 중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국의 사드 배치 선언은 곤도 다이스케가 주장하듯 미국이 중국이나 북한과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충격요법을 통해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의도가 일부 작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완전한 오판이었던 셈이다. 1년 뒤에나 배치될지 말지도 모를 사드를 배치한다고 요란하게 선언했지만, 당장 미국 역시 별로 건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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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은 7월1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한국 사드 배치 판단은 미국이 한다”라고 말했다. |
주변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신무기 체계를 들여올 때 국제정치적으로 지켜야 할 상식이 있다. 상대 국가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조건이나 방안에 대한 메시지를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다. 군비 증강 조치를 할 경우 조건부 군축 제안을 동시에 한다든지 억지력(deterrence) 강화와 관여(engagement)의 확대와 관련한 메시지를 동시에 발표한다. 안보를 위해 군비를 강화했지만 상대방의 군비도 강화돼 오히려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안보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 대표 사례가 바로 1979년 12월12일 있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이중 결정(Double-Track Decision)’이다. 1977년 소련이 동유럽에 배치했던 SS-4와 SS-5 중거리미사일을 최신형인 SS-20 중거리 핵미사일로 교체함으로써 유럽의 군사력 균형이 위태로워졌다. 그러자 나토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과 퍼싱Ⅱ 미사일을 나토 국가에 배치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양측에 배치되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최소 수준으로 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 양국에 압력을 넣어 군비통제 협상을 진행시킬 것을 결의했다.
당시 이 제안을 주도한 이는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였다. 사민당 출신으로 자신의 지지 기반과는 배치되는 결단이었지만 그 결단은 냉전 해체의 기폭제가 됐다. 1982년 정권을 이어받은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그의 정책을 계승했다. 콜 총리는 비록 보수적인 기민당 출신이지만 중거리미사일 배치와 더불어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 및 동독에 대한 20억 마르크의 차관 지원을 단행하는 외교력을 발휘해 1987년 미·소의 중거리핵전력(INF)협정 타결에 일조했다. 결국 냉전의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 통일 등 20세기의 역사적 사건들은 바로 헬무트 슈미트의 이중 결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은 미국이 한다. 미국이 (판단)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7월13일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주권국가인 한국의 안보를 책임진 사람의 발언이 맞는지 귀를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위기가 바로 기회이다. 위기의 순간에 ‘남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에 따라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해법의 내용에 ‘우리의 문제뿐 아니라 남의 문제에 대한 해법’도 함께 포함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를 자국 안보의 방파제로 여겨왔다. 그런데 사드 배치 이후의 한반도는 방파제가 아니라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했다. 혹자는 지금 중국이, 청일전쟁 패배 이후 일본 지배하의 한반도나 한국전쟁으로 미군이 압록강까지 북진했을 때의 한반도 상황과 같은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이 판단했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같은 무책임한 말로는 중국의 보복과 대응 행동을 피해갈 수 없다. 더 이상 늪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사드 위기’ 5단계 해법
사드 배치 선언 이후 지금이라도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정세 전문가들로부터 5단계에 걸친 ‘사드 해법’을 들어보았다. 평화 없는 70년’의 고통을 겪어온 한국이 아시아 평화의 근원지가 될 수도 있다.
| [464호] 승인 2016.08.11 16:59:22 |
7월8일 한·미 양국이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실제 배치 시점으로 잡은 내년 연말까지는 앞으로 1년 이상 남았다. 얼마든지 상황이 변할 수 있다. 동유럽에서도 미국이 2008년 폴란드에 미사일방어체계(MD)를 도입하려 했으나 러시아가 강력 반발해 철회한 적이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 역시 변수가 많다. 중국의 반발 변수가 크다. 중국은 경제 및 인적 교류 제한부터 한국 정부에 대해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분명한 점은 지금처럼 배치 선언만 해놓고 후속 조처가 없다면 상황에 끌려다니다 갈피를 못 잡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와 동북아 정세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해법을 들어보았다. 아래는 전문가들이 내놓은 5단계 해법이다.
■ 1단계 한국판 핵·경협 병진전략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를 북한 핵·미사일 방어용이라고 주장했다.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방법이 있다면 제시해달라”고 박 대통령은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사드로 북한 핵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박 대통령 말대로라면 대통령이 되어 지금까지 북핵에 속박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비로소 벗어날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로 그동안 대통령과 보수 세력이 사로잡혔던 ‘북핵포비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제 남북 간에 유의미한 뭔가를 해볼 만한 상황이 된 셈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기존 핵연계 전략에서 스스로 걸어나와야 한다. 북핵 때문에 중단했던 남북 경협의 족쇄를 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한 ‘5·24 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 임기 1년6개월여 남은 대통령으로서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중단해야 했던 ‘박근혜표 대북 구상’도 이제 실천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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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사진제공 박 대통령은 ‘박근혜표 대북 구상’을 실천에 옮길 때가 왔다. |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직전까지만 해도 외교가에는 청와대발 대북 프로젝트 얘기가 흘러나왔다. 임기 4년차인 올해 남북관계 돌파구를 열기 위해 대담한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였다. 외교·안보·통일 부처의 인적 쇄신도 그중에 하나였다. 사드 배치 선언 과정에서 군 출신으로 구성된 현 청와대 안보팀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인적 쇄신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준비만 하고 중단한 경원선 북쪽 구간 연결 사업과 북한 경제개발구에 농공복합단지를 건설하는 사업도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사드를 계기로 핵연계 전략을 ‘한국판 핵·경협 병진전략’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 2단계 한반도판 중거리핵전력(INF) 감축협정
1980년대 중반 서독이 미·소 양국을 중재했던 것처럼 우리가 북·미 양측을 중재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사드 배치 선언으로 북한과 뉴욕 대화 채널뿐 아니라 중국을 통한 대북 통로도 사라졌다. 미국 처지에서 시급하게 북한과 대화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북한 무수단 미사일의 발사 실험 및 배치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은 장래의 위협이지만 무수단은 현재의 위협이다. 2013년 4월 미국이 원래 계획보다 앞당겨 괌에 사드를 배치한 것도 당시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에 거치한 무수단 미사일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또 지난 6월22일의 무수단 발사 성공도 이번에 사드 배치 선언을 앞당기게 한 요인 중 하나이다.
사드 배치와 북한 무수단의 실전 배치를 상호 연계해 동결하는 미니 중거리핵전력(INF) 감축협상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 미국은 아직 배치하지 않은 사드로 북한의 무수단 위협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북한은 그다음 단계인 북·미 대화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사드 배치 선언으로 야기된 현재의 어정쩡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출구전략으로서 가치가 있다. 즉, 사드를 한반도판 군축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북·미 대화를 심화해 북한 비핵화협상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미·중 간 군축협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병행 진행될 필요가 있다.
■ 3단계 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실험을 거듭한 이유는 무수단 사정거리에 있는 괌이 바로 한·미 군사훈련에 동원되는 미군 전략기지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핵실험을 중지하는 대가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을 여러 차례 제안했다. 지난 4월 초 중국 군부 채널로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5월 말 방미 의사를 타진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의 제안을 무시했던 것은 협상의 실익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이 현저하게 진화했다. 이제 미국 처지에서도 북·미 대화가 실익이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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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 홈페이지 갈무리 2013년 8월 괌 앤더슨 공군기지 사드 포대 앞에 모인 미군 장병들. 같은 해 4월 사드가 배치됐다. |
■ 4단계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회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제안한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에 대해 존 케리 국무장관 역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 7월6일 정부 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5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남조선에서의 미국 핵무기 공개,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핵기지 폐쇄 및 검증, 미국이 조선반도와 주변에 핵 타격 수단을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담보, 어떤 경우에도 북한에 대해 핵 위협을 하거나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약, 남조선에서 미군의 철수 선포”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북핵 전문가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 대학 연구원은 미군 철수를 주장한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4개 항목은 1992년 남북 비핵화공동성명의 합의 사안이거나 미국이 이미 충족 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조선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한다”라는 다섯 번째 요구 사항도 협상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로버트 칼린은 ‘선포’라는 대목에 주목했다. 북한이 ‘철수’ 대신 굳이 ‘철수를 선포’할 것을 요구한 대목에 대해 칼린은 “주한미군 철수 요구안이 신축적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5단계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
사드 문제의 본질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에 걸친 미·중 군사 대결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어 미국의 새로운 군비확장 전략인 제3차 상쇄전략과 이에 대응하는 중·러의 신무기 개발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바야흐로 21세기판 냉전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미·중 양국은, 패권국과 신흥대국 사이 패권의 교대는 반드시 전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을 알면서도 점점 빠져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함정을 피할 방법이 있다. 과거 미·소 냉전과 달리 양국은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대결 일변도로 가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냉전 시대에 동서 유럽이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 군축을 시작했듯이 동북아 관련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유럽식의 안보협력 시스템인데, 1975년 헬싱키 선언을 시작으로 냉전 시대 동서 유럽 35개국이 안보협력을 위해 헬싱키 협약을 체결하고 이를 이행하면서 통합의 기반을 닦았다. 나토 사무총장을 역임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덴마크 총리 등이 방한해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를 제안하는 등,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 공감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자신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헬싱키 프로세스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서독이 유럽 평화의 발신지가 되었듯 ‘평화 없는 70년’의 고통을 겪어온 한국이, 5단계 해법을 추진한다면 아시아 평화의 근원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군 출신 인사들을 중용한 박근혜 정부가 이 해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