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만' 해결은 불가능하다"
'5자회담'이 창조적 대안? 부시 때부터 있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선 양탄일성을 손에 쥐고 병진노선을 성공시키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여전히 없다는 점도, 중국은 속수무책에 가깝다는 현실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무능 그 자체이다. 이렇듯 북한의 집착과 한미동맹의 실패한 정책이 되풀이 되면서 한반도는 제2의 핵시대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야 전문가 취급을 받을 정도다. 하지만 물리학의 결정체인 핵과 변화무쌍한 인간 의식이 만나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건 김정은도 예외일 수 없다. 그 '케미'를 찾는 여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필자)
정책을 세울 때는 실효성이 중요하다. 실효성은 두 가지의 조합이다. 하나는 실현 가능성이고 또 하나는 효과성이다. 이 두 가지를 고루 갖출 때, 정책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최악의 정책은 두 가지 모두 결여될 때 나타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밝힌 5자회담이 이에 해당된다. 그는 청와대에서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3개 부처로부터 합동 업무보고를 받고는 이렇게 말했다.
"6자회담을 열더라도 북한 비핵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시도하는 등 다양하고 창의적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외교안보분야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박 대통령이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하면서 5자회담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5자회담은 대통령 본인이 강조한 것처럼 "창의적인 방법"일까?
그렇지 않다. 6자회담 무용론과 5자회담 추진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단골메뉴처럼 등장했었다. 애당초 부시 행정부가 북미 직접대화를 거부하고 다자회담을 고집한 데에는 '5대1', 혹은 '국제사회 대 북한'의 구도를 만들고자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5자회담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는 2007년부터 북미 직접대화와 6자회담 병행을 선택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5자회담은 이명박 정부 때 다시 거론됐다. 이명박은 2009년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과거 방식대로 6자회담을 끌고 가는 것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해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미-일-중-러 5개국이 모여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조치를 협의하는 방안을 오는 6월 16일 한미 정상회담 때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염불로 끝났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한 5자회담은 새롭지도 창의적이지도 못한 것이다. 실패한 제안의 되풀이일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제안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실현 가능성과 적실성이 있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은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 여부에 달려 있다. 박근혜 정부가 기대하는 적실성도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하고도 포괄적인 대북 제재에 동참할 때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두 나라는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도, 북한을 "뼈아프게 하는 제재"에도 부정적이다. 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며,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의 5자회담론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부분은 또 있다. 그는 1월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며 중국에게 강력한 대북 제재 동참을 호소했다. 하지만 정작 박근혜 정부는 중국의 처지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 대북 확성기를 서둘러 틀어 "한반도의 안정과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는 중국의 호소를 외면했다. 미국의 전략 폭격기 B-52 출동을 요구해 중국의 전략적 우려를 자극했다. 중국이 직간접적으로 '한중관계의 마지노선'이라고 경고했던 사드(THAAD) 배치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6자회담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로, 대화는 6자회담 재개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도 줄곧 요구해왔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이 6자회담 무용론을 말하면서 5자회담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것도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결국 통일"이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중국이 이런 한국을 "어렵고 힘들지"라고 여겨 손을 잡아줄 리는 만무하다.
기실 북핵 상황 악화로 어렵고 힘들어지기는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한미일에게는 '북한의 핵무장을 막는 데 한 일이 뭐가 있냐'며 타박받기 일쑤다. 북한으로부터는 '우리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느냐'는 핀잔도 듣는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 때까지 한중관계는 일종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다.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북한의 핵 개발 시도로 최대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한중 두 나라라는 인식을 함께 하면서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맞잡았던 손을 놓고는 삿대질하는 사이로 바뀌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정부의 일방주의로 인해 "한중관계 역사상 최상"이라는 청와대의 자화자찬도 허무 개그로 입증될 날이 멀지 않은 느낌이다.
어쨌든 최고 지도자가 '5자회담론'을 들고나온 만큼, 외교안보 라인은 이를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대통령에게 잘못된 보고를 일삼고, 그래서 대통령의 잘못된 지시를 받아야 하며, 이에 따라 그걸 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바로 현 정부의 민낯이다.
그런데 시늉조차 내기 힘들어졌다. 중국 외교부가 즉각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며 박근혜의 '5자회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또 하나의 외교 참사로 기록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국내외 상당수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6자회담은 정말 쓸모없어진 것일까? 2008년 12월 이후 8년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고, 당사국들의 의지와 열망도 싸늘하게 식은 오늘날, 부질없는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6자회담이 쓸모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이 회담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는다. 더구나 성급하게 무용론을 내세우면서 산소마스크를 떼어버리면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6자회담의 역사를 복기해보면서 그 성과와 한계를 함께 들여다봐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6자회담을 생각하면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격'이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우선 그 탄생부터가 필연보다는 우연에 가깝다.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고 2차 한반도 핵위기가 불거지자,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을, 미국은 다자회담을 주장했다. 첫 만남부터 어색했다. 중국의 주선으로 북-미-중이 처음 만났다. 2003년 4월에 일이었다.
그런데 마치 소개팅하듯 주선자 중국은 '잘 얘기해보라'며 빠졌다. 이를 두고 북한은 양자회담이라고, 미국은 다자회담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양자회담 '불가', 다자회담 '가능' 입장을 견지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도 참여하는 5자회담이 거론되었고, 러시아가 우리도 참여하고 싶다고 요구해 6자회담이 된 것이다. 미중간의 논의 끝에 중국이 의장국이 되었고 첫 회담은 2003년 8월에 열렸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얼떨결에 시작된 6자회담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인 동북아 다자간 안보회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동북아에선 안보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공식적인 회담틀이 없었다는 지적이 많았었다. 그런데 북핵 및 관련된 문제를 풀기 위해 동북아 주요 6개국이 처음으로 모였다. 더구나 이 회담은 한반도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도 목표로 삼고 있다. 적어도 문서 상으로는 말이다. 일방주의의 화신이라는 부시 행정부 때 동북아 다자주의 틀이 만들어진 것은 지독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백미는 6자회담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평가이다. 부시 행정부는 퇴임 직전인 2009년 1월 3일 <미국인들이 모르는 부시 행정부의 100가지 기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외교정책의 최대 성과로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및 핵 프로그램 폐기 약속을 받아낸 것"을 뽑았다. 임기 초에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하면서 '협상 불가'를 외쳤던 부시 행정부가 임기 말에 6자회담을 통한 북한과의 협상을 외교적 업적으로 내세운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6자회담은 크게 네 차례의 변화를 겪어왔다. 첫째는 2003년 8월 1차 회담부터 2004년 6월 3차 회담 때까지로 '북미 양자 대화 없는 6자회담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시기 6자회담을 바라보는 북미 간의 동상이몽이 컸다. 북한은 이를 북미대화의 틀로 간주한 반면에,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기피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성과 없이 북미 간의 공방전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이때에도 6자회담 무용론이 나왔는데, 이는 주로 북미대화가 핵심이라는 논리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둘째는 2005년 8월 1단계 4차 회담부터 2006년 12월 2단계 5차 회담까지로 '6자회담 내에서 북미 양자 접촉이 병행된 시기'다.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한사코 거부했던 미국은 6자회담 내에서 북미대화를 병행할 수 있다며 다소 유연해진 입장을 보였고, 이를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변화로 간주한 북한도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북미 간의 입장 차이를 조율하고 중재안을 내놓는데 외교력을 집중했다. 이에 힘입어 2005년 9월에는 포괄적인 문제 해결 원칙을 담은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7년이 지났지만 북핵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사진은 성명 합의 직후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왼쪽부터 당시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로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연합뉴스
그러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불거지면서 9.19 공동성명 이행은 지체됐고, 결국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러자 6자회담 무용론이 빗발쳤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본격적인 협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셋째는 2007~2008년으로, '북미회담에서의 타결과 6자회담에서의 추인 시기'이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북미대화가 6자회담과 별도로 진행되면서 주도적 위치를 점했다는 데에 있다. 2007년 1월에는 북미 대표가 독일 베를린에서 회담을 갖고 BDA 문제 해결 및 대북 중유 제공과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합의가 이뤄졌고, 한 달 후에 열린 6자회담의 2.13 합의를 통해 이를 추인했다.
그 이후 북미간에는 여러 차례 직접 회담이 있었고 그 결과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 및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종료를 골자로 하는 10.3 합의를 내놓았다.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 문제로 난항을 겪던 2008년 4월에도 북미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만나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의 조속한 이행을 골자로 하는 합의를 이뤘고, 7월 6자회담에서 이를 확인했다.
북핵 검증과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으로 갈등이 고조되었던 2008년 10월에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열린 6자회담에서 검증에 대한 최종 합의 도달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넷째는 2008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시기로 '6자회담 결렬의 장기화 국면'이다. 이 사이에 6자회담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북미 고위급 대화는 2009년 12월과 2012년 2월에 있었지만 둘 모두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6자회담 개최에 대한 핵심 당사국들의 입장이 뒤바뀌었다는 점에 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게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요구했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철회를 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내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에는 대체로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반면에, 한국과 미국이 '비핵화 선행 조치' 등 전제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사이에 북핵 능력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협상에 대한 기대는 '눈 녹듯' 사라졌다.
이러한 6자회담 약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선 각각 네 차례 있었던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는 6자회담이 결렬된 시기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6자회담이 북한이 핵무기를 더 고도화하는 데 시간만 벌어 줄 뿐"이라는 주류의 주장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오히려 6자회담이 최소한 북한의 핵과 로켓 능력 강화를 억제하는 데에는 유용했다는 평가가 진실에 가깝다.
둘째로 6자회담이 한미 양국의 '조건없는 6자회담 개최'에 대한 일관된 입장, 실질적인 북미대화, 남북관계의 개선, 한국과 중국의 중재자 역할 등이 맞물렸을 때 성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끝으로 6자회담이 결렬된 배경에는 북한의 경직성과 핵에 대한 집착 못지않게 한미 양국의 의지 상실과 딴 마음을 품었던 것이 주효했다. 여기서 딴 마음이란 미국은 북핵을 이유로 미사일방어체제(MD)와 한미일 삼각동맹 등 군사패권주의를, 한국은 흡수통일론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5자회담에서 '더하기와 빼기 1'을 하면 된다. 6자회담 재개와 남-북-미-중 4자 회담의 병행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한반도 비핵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후자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이 둘의 선순환적 융합이야말로 한국 국가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 간단한 셈법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북핵'만' 해결은 불가능하다"

이론적으로 볼 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에는 무력 사용, 정권교체, 강압, 협상 등이 있다. 1994년과 2003년 등 한때 미국에서 대북 선제공격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미 정부 차원에서 이 방법은 더 이상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북한 정권교체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팽배하지만, 이건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는 점도 명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20년을 훌쩍 넘긴 북핵 대처는 강압과 협상으로 크게 나뉜다. 강압은 '고통의 크기'를 높여 핵 포기를 강제하는 방법이다. 대북 제재와 압박이 주로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협상은 '인센티브'를 제시해 핵 포기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핵심은 핵 포기에 대가로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주는 것이다. 흔히 이 두 가지는 '채찍론'과 '당근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부터 자제되어야 한다. 북한을 말을 듣지 않는, 그래서 길들여야 하는 '말'(horse)로 비유하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이한 접근법에는 북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강압적인 방식은 북한의 핵 개발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고 다짐한다. 대신에 북한에게 고통을 가해 잘못을 깨닫게 하거나 끝까지 잘못된 길을 고집한다면 아예 숨통을 끊으려고 한다.
반면 협상 위주의 접근은 '북핵 불용' 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북한이 핵 개발을 하는 동기와 북한의 요구에도 주목한다. 그래서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핵심은 북한에게 핵무장을 통한 안보가 아니라 '다른 방식을 통한 안보'를 제시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남한의 흡수통일 시도 배제 등이 포함된다.

▲ 16일 일본 도쿄 리쿠라 게스트화우스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에서 한국 임성남(오른쪽 부터) 외교부 제1차관, 일본 사이키 아키타카 외무성 사무차관, 미국 토니 블링큰 국무부 부장관이 북한 4차 핵실험 관련 추가 대북 제재에 대해 논의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제재 만능주의가 실패하는 이유
북핵 역사를 복기해보면 제재는 길었고 협상은 짧았다. 때로는 두 가지가 병행되기도 했지만, 협상다운 협상은 거의 없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제재 만능주의가 판을 쳐왔다. 미국은 '전략적 인내'라는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면서 군비 증강에 몰두해왔고, 한국은 흡수통일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양국 모두 대북 제재에 몰두해왔다. 그런데 이 사이에 북한은 세 차례의 핵실험과 세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된 제재라는 수단이 그 목표를 더욱 멀게 만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제재는 '북한에게 핵개발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북한은 '잘하고 있다'거나 '불가피하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대북 제재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북한의 결기 역시 강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온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북핵 문제 해결에 실패한 가장 본질적인 이유라고 본다.
주목해야 할 것은 또 있다. 제재의 강도를 높여 북한의 굴복이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는 힘은 중국에게 있다. 그런데 중국은 여기까지 가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 강경한 태도로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의 반항심만 더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양탄일성에 힘입어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중국이 북한은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게는 '불공정하다'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중국이 북한에게 핵 포기를 압박할수록, 북한에게 핵무기는 '자주의 무기'라는 속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한미일은 대북 제재 강화를 중국 역할론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런데 북한이 바라보는 중국 역할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건 바로 중국이 미국을 설득해 중국이 말하는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소해달라는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평화협상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도 미국을 설득하려고 종종 시도했지만, 우이독경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중국이 미국을 불신하는 본질적인 이유이자, 중국의 대북 발언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반면 인센티브를 제시해 북한과의 대담 판에 나설 수 있는 힘은 미국에게 있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 북미 관계 정상화, 경제제재 해제 등에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미국도 여기까지 가려 하지 않는다. 협상의 성공을 자신할 수 없는 탓도 있지만,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더 근본적이다.
핵문제라는 존재는 관계의 산물이다. 이에 따라 북핵'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기한 다른 문제들'도' 해결될 때 비로소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은 주저하거나 마다한다. 왜? 북핵은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꽃놀이패'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결정체와 인간 의식의 상호 작용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이 할 일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한국 독자적으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강압적인 수단도,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인센티브의 제시에도 한계는 있다. 제재 위주의 '중국 역할론'도 짝사랑에 불과하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북핵을 이유로 군사패권주의를 강화하려는 미국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절망감이 때때로 한국의 핵무장론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이건 '자위'가 아니라 '자해' 행위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없을까? 오히려 상기한 이유 때문에 한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창의적인 해법을 만들어 관련국들의 입장을 조율·중재할 수 있는 당사자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는 미국을 설득해 '팀 스피릿' 훈련 중단 선언을 이끌어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를 탄생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페리 프로세스'를 주도해 북미 관계를 정상화의 문턱까지 안내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중국과 함께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채택을 주도한 바 있다.
그 결과가 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결국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된 게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잘 살펴봐야 한다. ‘팀 스피릿’ 훈련 중단 선언으로 만들어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는 한미 군부가 이 훈련의 재개를 선언하면서 사문화됐다. 문턱까지 갔던 북미 관계 정상화도 미국의 정권교체로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9.19 공동선언이 사문화된 결정적인 이유도 3단계에서 논의키로 했던 북핵 검증을 한미 양국이 2단계로 끌어냈던 데에 있었다. 그리고 2009년부터 협상다운 협상은 사라졌고 한국의 역할도 역방향으로 흘러왔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협상은 사라지고 북핵 능력은 커지면서 '북한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론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의 결정체인 핵무기와 변화무쌍한 인간 의식이 만나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김정은과 핵은 부정적인 화학 작용이 주를 이뤘다. 이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바로 김정은 정권에게 핵무장에 의한 안보가 아니라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가 훨씬 이롭다는 점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평화체제에 대한 능동적인 입장을 갖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화체제는 그 자체로도 중대한 목적이자 비핵화의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체제가 한국의 전략적 목표에서 사라진 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나고 있다. 오히려 평화체제를 말하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다며 '종북'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북핵을 이념 공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나쁜 버릇 때문이다.
북핵은 이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 문제를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 수 있는 해법, 그리고 기어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안목과 해법 그리고 의지의 삼위일체는 실력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이런 실력을 갖춘 지도자와 정부를 뽑는 건 결국 국민의 몫이다. 실력 있는 국민이 실력 있는 정부를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핵무기가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로 향하는 길고도 험한 여정의 첫걸음이 아닐까?
박근혜, 미국·중국에 조른다고 해결되나

대표적인 장면이 2014년 4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임박설이 나올 때 나왔다. 당시 미국은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러자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한 마디로 응수했다.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동상이몽과 동문서답
북한이 '수소폭탄' 이라고 주장한 4차 핵실험 이후에도 이런 광경은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핵실험 직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이 원하는 특별한 대북 접근법이 있었고 중국이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존중했으나 이 방식이 작동하지 않았다"며 중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요구했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는 "한반도 핵문제는 중국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중국이 매듭을 만든 것도 아니며 중국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도 아니다"며 불쾌감을 피력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3원칙(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정 유지, 대화를 통한 해결)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이건 '결일불과'(缺一不可,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도 '핵 문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은 생억지'란 제목의 사설에서 "문제의 원인은 미국에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27일에 있었던 미중 외교 장관의 기자회견에서도 이러한 입장 차이는 거듭 확인되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5시간 동안의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섰다. 이 자리에서 케리는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북한을 옥죄야 한다"며 "미국은 중국의 특별한 능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왕이는 "제재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며, "북핵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하고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을 그었다.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두 나라의 인식이 오히려 분기(分岐)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 27일(현지시각) 존 케리(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 외교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다. 케리는 "평양이 문을 열고 새로운 선택을 한다면 경제, 에너지, 식량 등에 대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 전형적인 동문서답이다. 북한은 줄곧 "핵 문제는 경제적 흥정물이 아니다"라고 못 박아왔다. 중국 역시 핵 문제 해결에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왔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는 물론 미국이다. 이걸 모를 리 없는 케리는 또다시 하나마나한 얘기만 늘어놓은 셈이다. 미국이 북핵 해결의 문을 열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에 관심이 없다는 점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중 핑퐁 게임의 배경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중간의 갈등 구조는 다차원적이다. 우선 미국은 중국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지렛대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여긴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의 행동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중국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미국은 중국의 안보 이익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겠다는 으름장도 놓는다. 중국이 우려하는 미국 주도의 동맹 강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사력 강화, 미사일 방어체제(MD) 본격 추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아울러 중국이 북핵을 방관하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지도국이 될 수 없다고도 경고한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론도 매섭다. 우선 북핵 문제는 북미간의 적대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이 강하다. 특히 미국이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지 않아 북핵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본다. 중국이 어렵게 북한을 설득해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이끌어냈는데도, 대화를 거부한 쪽은 미국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이 북핵 해결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면서 그 책임을 중국에게 떠넘기고, 북핵 위협을 이유로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박차를 가한다고 본다. 원유 공급 중단 등 강력한 대북 제재 역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약화시켜 역효과만 낸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익숙한 패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 책임론과 역할론을 부각시켜 '전략적 인내'의 실패를 은폐하면서 재균형 전략에 힘을 쏟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 규탄 대열에는 합류하면서도 냉각기를 거쳐 북중 관계를 관리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이 재균형 전략을 강화할수록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서의 북한의 전략적 가치도 높아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중간의 전략적 틈새를 이용해 북한은 핵 억제력을 계속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유체이탈'한 한국
이처럼 핵문제를 둘러싼 미중간의 동상이몽이 커지고 북한이 그 틈을 이용해 핵 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면, 가장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할 당사자는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이 구도에서 제3자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유체이탈'형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미국한테는 '김정은을 벌벌 떨게 할 수 있는 전략 무기를 보내달라'고 조르고, 중국한테는 '북한을 혼내 달라'고 압박한다. 정작 한국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일종의 '게임 체인저'로 규정한다. "동북아 안보지형을 바꾸는 중대한 사건"이고 "북핵 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거 제시가 일체 없다. 오히려 국방부와 국정원은 4차 북핵 실험이 수소폭탄 실험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이전 단계인 증폭 원자탄 실험이라고 하더라도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3차 핵실험보다 폭발력이 약하다는 분석 결과까지 내놓고 있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게임 체인저'로 규정하는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외교안보분야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박 대통령의 말대로 4차 핵실험이 '게임 체인저'라면, 그에 걸맞은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헛발질만 계속하면서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일만 터지면 미국과 중국을 조르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박근혜 정부가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나는 앞선 글에서 북핵'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고 있다. 북핵을 해결하려면 북미간의 적대관계와 한반도 정전체제로 대표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사안에는 관심이 없고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통일이 북핵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 백미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정치인, 특히 집권 여당 대표가 가져야 할 '책임성'(accountability)을 망각한 무대포식 발언이다. 본인은 이러한 발언을 통해 '안보에 강한 남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겠지만, '묻지마식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와 국익을 위태롭게 할 '트로이의 목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배치 '검토' 발언 이후 국방부는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고 한다. 미국 정부와 군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집권 여당 대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사드 배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함으로써 '사드의 정치화'는 불가피해졌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일부 언론은 야당의 입장이 뭐냐고 다그칠 것이고, 이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반대 입장을 밝히면 '종북주의'와 '친중 사대주의'로 몰아가려고 할 것이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 속에 내포된 사드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다. 그는 마치 사드가 없어서 한국의 안보가 생사의 기로에 놓인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대북 억제의 힘은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체제(MD)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핵우산을 비롯한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한미동맹의 보복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더구나 사드는 북핵을 막는데 별로 실효성도 없고,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단거리 미사일 등 사드 회피 수단을 늘리려고 할 것이다.
김 대표는 또한 사드가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단세포적 이해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 능력을 갖고 있는 쪽이 방어력까지 강해지면, 그 방어용 무기는 어떠한 공격용 무기보다 강한 것이 된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이 1972년 탄도미사일 방어(ABM) 조약을 체결했고, 40년 동안 이 조약을 '전략적 안정과 세계 평화의 초석'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무대포 정신의 백미는 '중국의 눈치를 보지 말자'는 것이다. 화끈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김 대표의 '책임성' 결핍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발언을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주가를 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국익 손실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중국의 입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직접 나서 사드를 챙길 정도로 국가적 문제로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사드 배치를 수용하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질 수밖에 없다. 양국 내 민족주의 감정이 충돌해 한중 관계의 악화는 불가피해진다. 이미 노란불이 켜진 한국 경제가 빨간불로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사드 배치는 전략적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약'이 될 수도 없다.
또 주목할 것이 있다. 사드 배치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은 사드를 회피할 다양한 투발 수단을 갖고 있거나 개발 중이다. 반면 사드 배치로 인해 한중 관계와 미중 관계는 일대 파란을 피할 수 없다. 이는 북핵에 대한 국제공조의 균열을 키워 북한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사드와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우려가 합리적인 것인가의 여부이다. '눈치' 운운하면서 감정적으로 접근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한결같은' 공식 입장은 "모든 국가가 자신의 안전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다른 국가의 안전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국 내 사드 배치는 중국 안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입장이 '기우'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면 된다. 그런데 한국이든, 미국이든, 사드 논란이 불거진 지 2년이 넘도록 중국을 설득하는 데 실패해 왔다. 왜 그럴까? 미국의 '이중 게임' 속에 그 답이 담겨 있다.
미국은 한 입으로 두말을 하고 있다. 어떨 때는 사드가 중국과 무관하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입으로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미국도 중국의 안보 우려를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위협한다. 사드는 '지역 MD'의 핵심적인 무기체계라는 점에서 사드 역시 중국 견제용과 무관치 않다.
결론적으로 사드 배치론을 들고나온 김무성 대표는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발언을 통해, 그리고 실제로 이게 이뤄지면 김 대표 개인적으로 손해 볼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내 반대파와 중국이 강하게 반발할수록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대다수 국민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이 '가짜 안보 프레임'에 장단을 맞춰져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