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실패 = 국가의 재앙’
‘대통령의 실패 = 국가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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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승인 2015.10.16 20:51:17 |
박근혜 대통령은 강력한 대통령일까. 지난여름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찍어내기에 이어 최근 김무성 대표까지 코너로 모는 모습을 보면 강력한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성공할 대통령일까.
이 질문 앞에서는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같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시민들은 대통령의 적절한 문제 해결을 기대했지만, 박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무능력이었다. 권력투쟁에는 유능했지만, 민생을 살리지도 국민 통합을 이루어내지도 못했다.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경제민주화 같은 거창한 슬로건은 이제 기억조차 흐릿하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라는 극심한 후유증만 남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실패=국가의 재앙’임을 많은 이들이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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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김창호 전 참여정부 국정홍보처장은 실제 사례를 담아 <대통령의 권력과 선택>을 썼다. |
대통령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세간에는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회의도 커지고 있다.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가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지난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외교와 내치를 분리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했다가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김 대표뿐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 상당수가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개헌’은 이미 다가온 미래 같은 것이다.
그러나 김창호 전 참여정부 국정홍보처장은 이런 흐름에 반론을 제기한다.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 제기에 앞서 대통령직의 ‘운영’에 새로운 검토 혹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정 대통령의 실패는 당사자의 직무에 대한 몰이해와 무능에서 비롯된 것일 뿐, 이를 제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 설정의 오류라는 비판이다. 그는 최근 <대통령의 권력과 선택>(더플랜 펴냄)이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김창호 전 처장을 중심으로 박용수·신현기·최선·김가나 등 정치학자들이 1년 동안의 세미나를 통해 내놓은 공동 저작물이다.
이 책은 ‘대통령학’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 ‘대통령 통치 스타일 비교’와 같이 대통령 개인의 특수성에 무게를 둔 국내 연구는 제법 있었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3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대통령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찾기 힘들었다. ‘대통령의 권력과 선택’이라는 딱딱한 제목만 놓고 보면 학구적인 내용일 것 같지만, 저자 자신이 참여정부에서 3년 동안 정부 조직을 이끌었던 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생생하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유승민 파동 등 단원마다 실제 사례를 들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흡사 장편 정치 칼럼을 읽는 기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6년 만에 지킨 약속
대통령과 여당의 갈등, 대통령의 소통 전략, 관료 통제 등 모든 대통령이 맞닥뜨리는 딜레마에 대해 조목조목 질문을 던진다. 뚜렷한 해법을 내놓았다기보다는, 이제 우리 정치권과 유권자가 이런 문제를 들여다볼 때가 되었다는 ‘학습 제안’ 같은 것이다.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공부 없이 지금처럼 인기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구조에서는 끊임없이 실패한 대통령이 나올 수밖에 없다”라는 게 저자의 핵심 메시지다.
국정홍보처장 퇴임 이후 그는 몇 차례 선거에 도전했다가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가운데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약속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통령제를 논하는 책을 펴내는 것은 노 전 대통령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퇴임 이후 미국 백악관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을 거론하며 한국에서는 이런 드라마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경험한 대통령직을 이론화한 책을 쓸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서거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 처장에게는 이 계획이 오랜 빚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김 처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6년여 만에 약속을 지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