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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미국을 버리고 중국을 취한다!

일취월장7 2015. 7. 29. 12:46

이란, 미국을 버리고 중국을 취한다!

[유라시아 견문] SCO : 천하의 지정학
이병한 역사학자2015.07.28 07:43:41
 
이란 : Look East

캄보디아 견문에 앞서 이란부터 짚는다. 원체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핵 협상이 타결되었다. 녹록치는 않았다. 예정되었던 6월을 넘겨 지루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몇 차례 합의 무산의 위기도 넘겼다. 앞으로도 합의 이행 과정에서 갈등과 마찰이 빚어질 소지는 있다. 그럼에도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짧게는 12년 서방의 경제 봉쇄가 일단락되었고, 길게는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이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새 천년 '그레이트 게임'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이 각별하다. 유라시아 대통합의 마지막 단추가 채워진 것이다. 이란의 '정상 국가화'야말로 유라시아 대동단결의 화룡점정이다. 새로운 세계 체제에 한발 짝 더 다가섰다.

서방의 경제 봉쇄가 해제됨에 따라 이란은 점진적으로 중동의 대국이라는 위상을 회복해 갈 것이다. 벌써 8000만 내수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여럿이다. 더 많은 투자, 더 많은 교역으로 이란 붐이 예상된다. 특히 이란의 지리-문명적 위치가 백미이다. 유라시아의 한 복판에 자리한다.

이미 다양한 유라시아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신 실크로드, 러시아의 유라시아 경제 연합, 브릭스(BRICs) 개발 은행, SCO(상하이협력기구), 아시아 인프라 은행 등 가지가지다. 핵심은 이 모든 프로젝트들이 동일한 관심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교류와 통합의 완성이다.

이 신유라시아 프로젝트에서 이란은 허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길(교통망, 통신망, 에너지 망 등)이 이란을 지나고 통과하기 때문이다. 20세기형 분리-통치에서 21세기형 통합-공치(共治)로 가는 길목에 이란이 자리한다. 전략적 요충지가 아닐 수 없다.

서방의 제재가 해제된다는 것이 곧 이란과 서방의 관계가 한층 밀접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란은 더 더욱 동방과 긴밀해질 것이다. 인도의 'LOOK EAST' 정책이 이란으로 옮겨가는 꼴이다. 빈에서 핵 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기어코 짬을 내어서 러시아의 우파(Ufa)에 다녀왔음을 크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파에서는 브릭스 정상 회의와 SCO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란은 브릭스의 일원도 아니고, SCO 또한 정식 회원국이 되려면 최종 승인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파에 친히 찾아감으로써 향후 이란 외교의 축이 '동방 정책(Pivot to Asia)'에 있을 것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돌아온 것이다.

당장은 파키스탄과의 파이프라인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슬라바마드(파키스탄 수도)는 이란의 핵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파키스탄 또한 이란 핵 문제의 해결을 오래 기다려왔다. 중국과의 경제 회랑을 이란까지 연결하는 '一帶(일대)'와 '一路(일로)'의 가교 역할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파키스탄은 과다르 항을 이란의 국경까지 연결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거리는 불과 80킬로미터 남짓이다. 과다르 항이 왕년의 중화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을 잇는 유라시아의 '신경 중추'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럴수록 파키스탄 또한 이란과 중국, 이슬람 세계와 중화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 국가(Gateway State)가 되어간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반서구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반서구 자체가 서구에 결박되어 있는 20세기형 탈식민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노정한다. 그래서 점차 서구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는 이란이 반갑기 그지없다. 반서구적/반근대적 이슬람에서 '이슬람적 근대화'로의 반전을 기대케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이란은 점점 더 유라시아의 일원이 되어갈 것이다. 그럼으로써 동(공산주의/사회주의)도 서(자본주의/자유주의)도 대안이 아니라던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의 예지에 더욱 가까워진다. 역사의 역설이고, 奸智(간지)이다.

이슬람 세계는 내년(2016년)에 견문할 계획이다. 짐작컨대 이란의 지리-문명적 잠재력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이르면 내년, 늦어도 후년이면 SCO의 정식 회원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 천년 이란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더욱 소상하게 짚을 것을 기약한다. 이번에는 SCO부터 정리해두기로 한다.

진화하는 SCO

올해 SCO 정상 회의에서는 획기적인 결정이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동시 가입을 승인한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또한 남아시아의 '분단 국가'이다. 1947년 대영제국에서 독립하면서 두 국가로 갈라섰다. 간디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반목으로 끝내 등을 진 것이다. 이후에도 줄곧 앙숙이었다. 헌데 SCO는 양국이 화해 과정에 진입해야 동시 가입을 인정하겠다는 방침을 견지해왔다. 양국이 옵서버 자격의 준회원이 된 것이 2005년이었으니, 10년 만의 결실이다.

변화의 계기는 인도였다. 지난해 모디 정권이 출범했다. 힌두 민족주의자로서 모디는 인도 문명의 재건을 표방하는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동방 문명의 중흥이라는 대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도 밀접하게 다가서고 있다. 올해 5월 중국 국빈 방문이 상징적이다. 대당제국의 수도인 시안부터 방문하여 시진핑과 손을 잡는 기지와 총기를 선보였다. SCO의 정식 회원 승격도 작년 9월에 일찌감치 신청해 두었다.

SCO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비교해볼 수 있겠다. 나토는 가맹국 중 일국이 공격을 받으면 회원국 전체가 반격을 가하는 것을 의무로 삼고 있다. 냉전형 동맹을 제도화하여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명실상부한 집단 안보 기구라고 하겠다. 반면 SCO는 합동 군사 훈련을 전개하되, 회원국들에 대한 통제가 느슨하고 유연한 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친목 단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내 보기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중국과 러시아를 축으로 유라시아의 통합을 이끌어가는 국제 기구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SCO의 전신은 '상하이 파이브(5)'였다. 1996년 설립되었다. 중국 서부 개발의 연장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지역 경제권을 확대하는 것이 출범 취지였다. 실질적인 과제는 중앙아시아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사이에 이슬람 급진 세력의 왕래를 방지하는 '테러 대책'에 있었다.

변화의 계기는 북방에서 비롯되었다. 푸틴이 등장(2000년)했다. 2001년 러시아가 가입함으로써 상하이협력기구로 개명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러가 협조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안정과 번영을 도모하고, 미국의 일극 체제를 허무는 과업을 추진해가기 시작했다. 양국이 누리고 있는 군사적 독립, '자주 국방'이 독자 행보의 밑천이었다.

중국과 세계의 관계를 전공으로 삼아온 역사학자로서는 SCO의 구성 방식이 특히 흥미롭다. 정식 가맹국 외에, 옵서버, 대화 파트너 등으로 준회원의 위계를 두고 있다. SCO 밖에 있는 나라들을 배제하고 적대하기보다는, 차등적 방식을 통하여 더 많은 유라시아 국가들을 점점 더 폭넓게 포섭해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 20세기형 동맹과는 일선을 긋는다. 오히려 왕년의 중화제국을 연상시킨다. 자국과의 친밀한 정도의 여부를 따져서 국가들을 분화하고 상이하게 대응했던 외교 방식과 흡사한 것이다. 학문적 용어를 빌자면 '차서(差序)'적 발상에 가깝다. 차서란 다른 문화를 포용해가는 중화 세계 특유의 기제를 일컫는다. 중원-번부-조공-호시-조약의 중층적 질서를 통하여 다양한 문명권을 아울러 갔던 것처럼, SCO 또한 '차서의 근대화'를 통하여 유라시아를 한층 크고 넓게 품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돌아보면 2005년 옵서버 자격을 부여한 나라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그치지 않았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도 있었다. 미국이 한창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란까지도 장기적으로 포용해가는 전략을 세워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차서적 발상의 근대화를 곧 조공-책봉 체제의 부활로 곡해할 것은 없겠다.

오히려 중화 세계가 번영과 평화를 구가했던 태평성대의 저비용 고효율 방책으로서 곰곰이, 또 꼼꼼히 되새겨볼 일이다. 혹여 SCO가 차서적 원리를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맞추어 제도적으로 쇄신하고 갱신하고 있는 것이라면, 유심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편이 나라의 장래에도 득이 된다. 남북 분단을 해소해가는 뜻밖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소련의 속국에서 벗어난 (외)몽골이 SCO에 옵서버로 참가한 것은 2004년이었다. 유럽연합 가입에 안달하던 터키가 SCO로 선회하여 대화 파트너가 된 것은 2012년이었다. 그리고 올해 우파 회의에서는 벨라루스가 새 옵서버로 참가했으며,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캄보디아, 네팔은 처음으로 대화 파트너가 되었다.

나아가 '아랍의 봄' 이후를 모색하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맹주 이집트까지도 SCO의 대화 파트너가 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로써 SCO는 갈수록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국가들을 각기 다른 형태로 수용해가는 꼴을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여태 별다른 호응이 없는 국가로는 조지아(그루지야)와 방글라데시, 부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조지아는 최근에도 나토의 군사 훈련이 진행되었을 만큼 미국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는 '현대화된 속국'이다. 방글라데시와 부탄은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아시아의 국가들이다. 아무래도 인도의 입김이 미친다. 인도가 SCO의 정식 회원이 된 이상, 변화의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올해 SCO 정상 회의는 시리아 내전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20세기 영국과 미국이 분탕질을 쳤던 이래 혼란과 혼돈이 가시지 않고 있는 중동 문제까지 SCO가 능동적으로 개입할 조짐이다. 역사의 추세와 대국을 보노라면 장기적으로는 이스라엘마저도 국가의 존속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SCO와 등을 질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여 '유라시아 견문'을 일단락 지을 2018년이면 SCO는 대략 유라시아의 7할, 35억 인구를 아우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한 군사 안보 기구에 그치지 않고, 범 유라시아의 '대동 세계', '조화 세계'를 선도해가는 문명 간 통합 기구로 진화하는 것이다.

▲ SCO(상하이협력기구). 옵서버 국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동시에 회원국이 되면서 그 영역이 더욱더 넓어졌다. ⓒicf.org


천하의 지정학

지난 200년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과 미국은 국가들과 세력들 간의 대립을 부추겨 어부지리를 얻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았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아프가니스탄, 이란/이라크/사우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수니파/시아파,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등 도처에서 나누고 쪼개어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다.

한반도의 분단 또한 그 일환이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확립하고 재생산하는 핵심 기제였다. 이러한 패권 전략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것이 소위 '지정학(Geo-Politics)'이다. 그리고 이 지정학은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유명한 비유처럼, 유라시아를 분할하고 분단하는 것을 핵심 교리로 삼는다. 해양 제국 영국과 그 후계 패권국 미국(및 영미의 대리인 일본)이 대륙을 포위하고 지배하기 위한 학문의 이름을 빈 책략이었다.

그 지정학에 빗대어 보더라도 앞으로의 세계는 미국보다는 중국이 주도하지 싶다. 영미 패권 아래서 의도적으로 저지되거나 방치되었던 유라시아 연결망이 신 실크로드라는 이름 아래 차근차근, 착착,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갈래는 여럿이다. 초원길, 바다길, 하늘길 등 육해공은 물론이요 온라인/디지털 연결망까지 겹겹이다. 100년만의 지정학적 대반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동시 가입을 견인해낸 것처럼 SCO가 추진하고 있는 세계 경영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영미의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모으고, 잇고, 엮고, 통합하고 융합한다. 이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립,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분열 또한 SCO의 틀 아래서 해결을 도모하게 될 공산이 크다. SCO가 유라시아 전체를 아울러 평화와 안정의 공공재를 제공하는 큼지막한 우산을 제공하는 것이다.

흡사 왕년의 '天下(천하)'에 방불하다. 옛 사람들은 국가 또한 私(사)에 그친다고 여겼다. 20세기처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서세동점에 직면한 계몽기 지식인들은 '민족의식'과 '국가 의식'이 없음을 개탄했다. 민족주의를 고취한다며 고대사까지 창작하기 일쑤였다. 실상은 없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고 단련했던 것이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공공 의식으로 무장해 있었던 것이다. 내 나라만을 위해서는 내 나라의 태평 또한 이루기 어려움을 터득하고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지 천하만이 公(공)이라며 누누이 가르치고 다그쳤던 것이다. 만시지탄이로되 天下爲公(천하위공)을 교시로 삼았던, 천하의 지정학을 공부할 때가 되었다. 너무 늦지는 말아야 하겠다.

 

 답답한 진실…"이란과 북한은 다르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압박으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겠다?
이재호 기자2015.07.29 11:41:02
 
13년 동안 계속됐던 이란 핵 문제가 역사적인 타결을 이뤄냈다. 다음은 북핵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한은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과 이란은 다르다고 못 박았다.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는 지난 28일(현지 시각) 기자 회견에서 자신들은 이란과 실정이 다르며, "핵 억제력은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핵 위협과 적대 정책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흥정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재룡 대사의 언급대로 북한과 이란이 처한 상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아직 명백히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란은 협상 당시 핵무기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란은 핵 협상만 잘 풀리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눈앞에 확실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석유와 선박에 붙은 제재가 풀리면 세계 4위 산유국 이란은 석유를 내다 팔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위축됐던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북한은 다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핵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그 대가로 거둘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면서 "이란의 석유와 같이 확실한 내부 자원이 없는 북한은 외부로부터 경제적 확신이 있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6자 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에 어떤 경제적 반대급부를 얼마나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망이 서지 않으면, 북한은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압박과 설득을 병행해서 요지부동인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에 한-미-일 6자 회담 차석 대표가 오는 31일 도쿄에서 회동을 갖는 것을 비롯해 6자 회담 관계자들은 활발한 상호 방문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실제 문제 해결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정 전 장관의 지적이다. 그는 "한-미-일 대표가 만날 것이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대표들이 미국으로 가야 한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의를 보이겠다는 사인을 주면 그걸 들고 평양으로 가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이런 전략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 언저리만 돌고 있으니 답답하다"며 "북한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조정자가 되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어야 한다. 중국 역할론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이 돼야 한다. 우리가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란 핵 문제가 타결된 이후 다음은 북핵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실제 27일에는 시드니 사일러 미국 국무부 6자 회담 특사가 방한했고 오는 31일에는 한-미-일 6자 회담 차석 대표가 도쿄에서 만날 예정입니다. 한국의 6자 회담 수석 대표인 황준국 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주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6자 회담과 관련해 곳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실제 이러한 움직임이 6자 회담 재개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장난이 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북한을 제외한 6자 회담 관련 국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북한 때문이라는, 책임을 넘기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정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식의 행정과 비슷한 이른바 '전시외교'를 하는 것 같습니다.

6자 회담 수석 대표를 포함해 관련 국가들이 분주히 움직이면 북핵 해결의 길이 열릴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먹느라고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것밖에 안됩니다. 떡 줄 사람, 즉 문제를 해결할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인데, 이 둘이 만나지 않은 채 언저리만 돌고 있는 겁니다.

물론 우리도 북핵 문제의 당사자이긴 합니다. 다만 우리는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당사자이지, 해결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사자는 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1993년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것들은 모두 미국과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입니다. 북한은 미국과 수교,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994년에는 제네바 합의를 통해 수교와 경제적 지원으로 핵 활동을 중지시키겠다는 데 합의를 이뤘고, 2005년 9.19 공동 성명에서는 평화 협정 문제까지 어젠다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측면을 생각해보면 6자 회담 수석 대표든 차석 대표든 북한과 미국으로 가야 합니다. 중국이나 일본 등 북한과 미국을 제외한 곳들을 돌아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31일 6자 회담 차석 대표들이 도쿄에서 만난다는데, 밥먹는 것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6자 회담 참가국들이 정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우선 미국의 마음을 바꿔놓아야 합니다. 미국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북한의 마음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의 첫 번째 조건으로 '중국 역할론'을 내세웠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제스처를 먼저 취하게끔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든 압박하든 나름의 역할을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이 이러한 역할을 하려면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사인'이 와야 합니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고 현재 핵 활동을 중지하는 것에 대해 반대급부를 얻어내려고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이 확실한 보장을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6자 회담 참가국들은 이를 보증하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얼마 전 한-미-일 6자 회담 수석 대표들이 중국에서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문제 특별대표를 잇따라 만났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한-미-일 3국이 인권 문제까지 포함해 북한을 압박하자고 했지만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 자기들 방식대로 노력하겠다는 입장만 밝혔습니다.

한-미-일이 모여봐야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북한 입장을 바꾸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김건(오른쪽)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과 시드니 사일러 미 국무부 북핵 특사가 27일 오후 서울 도렴동에 위치한 외교부 청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미-일 수석 대표가 만날 것이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대표들이 미국으로 가야 합니다. 미국에 가서 메시지를 받고 이를 북한에 전달해야 합니다. 미국이 이란 핵 문제도 해결했으니,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의를 보이겠다는 사인을 주면 그걸 들고 평양으로 가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전략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꾸 언저리만 돌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북한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조정자가 되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 역할론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는 북한 붕괴를 믿고 있기 때문인 건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통일 문제는 거창하게 이야기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상황을 조성하는 역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중국 역할론', '북한 선(先)행동론'만 합창하면서 사실상 북핵 문제를 방관하는 이유가, 망해가는 북한을 괜히 6자 회담이니 뭐니 하며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면, 체제가 더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란, 핵 포기할 만한 확실한 대가 있지만…북한은?

프레시안 : 그런데 이란 핵 문제가 풀리고 나니 북한도 잘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과 이란을 비교하지 말라면서 자신들은 '핵 보유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화에 쉽게 응할 것 같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한데요.

정세현 : 이란은 핵 활동을 막 시작하려는 시기에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핵 능력이 고도화되기 전에 협상으로 막은 것입니다. 이란이 만약 지금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협상을 통해 받아내려는 반대급부가 더 커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자기들이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핵 보유국이라고 선언했고 미국에서도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 버렸습니다.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초빙연구원은 북한이 현재의 추세로 핵 개발을 지속할 경우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물론 위트는 그렇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빨리 협상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은 절대로 이를 그냥 놓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몸값이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협상 전략 측면에서 보자면 위트의 발언으로 북한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아낼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북한을 굉장히 유리하게 만들어준 측면이 있는 것이죠. 또 북한 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키워주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핵 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은 이제 6자 회담은 필요 없고 동북아에서는 핵 군축 회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핵이 없는 한국과 일본은 빠지고, 미국·중국·러시아와 해결을 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북한의 본심일까요? 이 역시 몸값을 높이기 위한 차원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핵 군축 회담만 가지고는 북한이 원하는 평화 협정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협상해도 소용없다는 협상 '무용론'이 북한 내에 퍼져있는 것도 이란과 다른 점입니다. 이란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미국 의회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연설에서 북한과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정한 이후부터 협상을 시작, 13년 만에 타결을 이뤄냈습니다. 게다가 본래 이란은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란과 다릅니다. 2005년 9.19 공동 성명에 합의했지만 미국 재무부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는 북한 자금을 동결시켰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9.19 공동 성명의 순조로운 이행을 어렵게 했고, 북한은 미국과 핵 협상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핵 협상 무용론'에 빠진 겁니다. 서로가 무용론을 견지하면서 샅바 싸움만 하다가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습니다.

▲ 지난 28일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의 기자 회견. 지 대사는 북한은 핵 보유국이며 북핵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그런데 정부는 이란 핵 협상을 예로 들면서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 테이블에 나올 수 있도록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요.

정세현 : 1993~94년 제네바 합의와 2003년 6자 회담으로 시작해서 2005년 9.19 공동 성명을 이끌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북한은 압박한다고 대화 테이블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란의 경우에는 걸프만 주변 지역 국가와 관계도 있지만, 핵 협상을 타결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너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렇다고 핵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아서 몸값도 높지 않은데, 핵 활동만 멈추면 경제적으로 굉장히 풍족해질 수 있으니까 협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핵 문제를 해결하면 당장 제재는 풀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거둘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란의 석유와 같이 확실한 내부 자원이 없는 북한은 외부로부터 경제적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6자 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에 어떤 경제적 반대급부를 얼마나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망이 서지 않으면, 북한은 회담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압박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과 설득을 동시에 하는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을 쓰겠다는 건데, 사실 이란 핵 협상이 이런 전략을 써서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이란 핵 협상은 제재가 해제되면 그 순간부터 이란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핵을 포기한 겁니다.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내부적인 조건이 갖춰진 곳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내부적 조건도 갖추지 못한 곳이니 더 세게 압박을 가하면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회담에 나올까요?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와 제가 상대해 본 북한을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없는 살림에도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북한 특유의 기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6자 회담 조정자 한국?…남북 관계도 갈피 못 잡아

프레시안 : 한국이 6자 회담에서 협상의 조정자 역할을 하려면 남북 간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데요. 정부는 내년부터 남북협력기금의 예산 구조를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존에 북한을 지원하는 개념에서 개별 협력 사업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쌀이나 비료의 대규모 지원은 사실상 없어지게 됩니다. 북한이 사실 남한에게 바라는 것이 이러한 형식의 지원인데 남북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요?

정세현 : 우리가 예전에 미국에서 원조를 받을 때 'Food for work' 방식이었습니다. 일하면 먹을 것을 준다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한테 일방적으로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대가로 줘야 한다는 겁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도 쌀과 비료를 그냥 주지 말고 이같은 개념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모자 보건 사업이나 복합 농촌 단지 사업 등을 중심으로 대북 지원을 바꿔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지난해 드레스덴 선언에서 언급됐던 사업들인데, 결국 드레스덴 선언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죠. 나무 심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농촌을 개량하는데 필요한 자재 장비를 준다는 식으로, 소위 프로젝트별로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인데 북한이 이걸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존심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나라가 이렇게 한다고 하면 상관 없습니다. 가령 중국이나 미국이 일한 만큼 주겠다고 하면 북한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한이 이런 방식으로 준다고 하면 자존심 문제가 나옵니다. 우리가 북한이 그냥 다른 나라가 아니듯이 북한 역시 우리가 '남'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쌀과 비료를 대규모로 지원했다고 하는데, 지원 수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2조 원 정도입니다. 쌀과 비료 지원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기반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면, 무기를 사들이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관광과 5.24 조치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관계의 옳고 그름을 넘어서 이러한 발언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까요?

정세현 :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묶어서 해보자는 의도로 보입니다. 어차피 이산가족 상봉을 하려면 금강산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고, 또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상징성이 큰 사업을 위해서 금강산 관광까지는 재개해줄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그런데 이것이 5.24 조치와 별개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입장을 표명한 것 같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5.24 조치만큼은 쉽게 풀어주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반면 북한은 5.24 조치를 해제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6월 15일에 발표된 공화국 정부 성명에서도 5.24 조치를 거론했습니다. 5.24 조치 해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국내 정치적으로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만 하려고 하면 북한과 대화가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북한은 6자 회담뿐만 아니라 남북 대화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단 문제와 5.24 조치 해결하라는 건데,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고 우리가 제시하는 대화 형식에 응답하라고 하면 북한이 여기에 호응할까요?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의 요구를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가 국내 정치적인 수요가 있다면 북한에도 이러한 수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북한이 가난해도 명색이 체제, 정권이 있는 국가입니다. 남한과 관련된 사안들을 결정하는 통일전선부나 국방위원회 사람들이 '이거 장사 되겠는데? 이정도 되면 우리가 나가줘야지.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졌으니까'라는 생각이 들도록 조치를 취해가면서 북한과 대화에 접근해야 합니다.

대화가 성사될 여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묶어서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북한이 나오겠습니까? 게다가 남한 정부마저 지금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이 북한 붕괴를 확신하는 바람에 남북 접촉이나 대화가 일체 없었던 상황이랑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프레시안 : 남북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한동안 소원했던 북-중 관계가 가까워지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년 만에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에 화환을 보내면서 중국 인민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시기적으로 묘하게도 오는 9월 초에 있을 중국 전승 기념식을 앞두고 양국이 가까워지는 모양새가 보이고 있습니다.

정세현 : 중국 입장에서는 전승 기념식에 김정은 제1위원장 같은 인사를 불러들이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 북한 역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 기념 행사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인대 상무위원장 아니면 서열 5위 이내의 인사가 오기를 바랄 것입니다. 실제 중국 당국은 지난해 말,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김정일 위원장 3주기 행사에 공산당 내 서열 5위인 류윈산(劉云山) 정치국 상무위원을 파견한 바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항일 항쟁의 근거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의 고위 대표단이 와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의 정치적인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확고히 하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뜻대로 하려면 지금부터 어느 정도 물밑 작업을 해놓아야 합니다. 또 9월 중국에서 열릴 전승 기념식 행사 때 어떤 인사를 보낼 것인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즉 10월 10일에 중국에서 고위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게 하려면 북한도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미묘한 작업에 들어간 겁니다.

▲ 훈춘 지역 개발을 홍보하고 있는 대형 간판. ⓒ황재옥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한 관계로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의 선양 방문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신호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건데요. 27~28일에 이뤄진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랴오닝성(辽宁省)이 추진하고 있는 대외 개방 정책 등 주로 경제 분야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열흘 전인 16~18일 지린성(吉林省)을 방문한 이후 북한과 가까운 동북 3성 지역을 잇따라 찾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사실 북-중 경제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랴오닝성(辽宁省)과 지린성(吉林省)이 중요한 거점이기도 합니다. 함경도와 지린성 간의 경제 협력 관계와 훈춘을 통해 나진-선봉 지역으로 진출해야 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김정은 시대의 위상을 과시한다면서 10월 10일에 맞춰 장거리 미사일과 핵실험을 해버리면 중국이 상당히 곤란합니다. 실제 북한의 군사적 행위가 현실화되면 국제 여론은 중국에 그 화살을 돌릴 겁니다. 사전에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영향력도 없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등등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겁니다. 중국은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차원에서라도 북한과 관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10.10을 전후로 북한의 도발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북한이 소위 핵·경제 병진 노선을 국가 운영의 기본 방침으로 제시해 놓은 상황에서 핵을 실전에 쓸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북한이 이렇게 나가면 경제 활동은 제대로 못 한다고 봐야 합니다. 중국으로써는 이런 점을 활용해서 북한에 "경제는 우리가 좀 도와줄테니까 핵은 구호로만 남겨두고 실제로는 쓰지 말자"는 식으로 북한을 관리하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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