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사드 배치, 중국 뒤통수 맞았다 생각"
"한반도 사드 배치, 중국 뒤통수 맞았다 생각"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사드 배치를 언급하며 불을 지피기 시작하더니, 랭크 로즈 국무부 군축·검증 담당 차관보는 급기야 "한반도에 사드 포대의 영구 주둔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중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디펜스21플러스> 김종대 편집장은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이 미국에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김 편집장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과 막후 접촉을 통해 센카쿠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분쟁 발생을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고려해 미국의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일종의 '배려‘를 해준 셈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 사이에 중국을 견제하는 한반도의 사드 배치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국 측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지난 4월 말 필리핀과 방위협력확대협정을 체결하고 일본과는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자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임을 확신하게 됐다.
이에 중국은 국방비 증액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김 편집장은 "중국 국방부는 이미 시진핑(習近平)주석한테 향후 중국 국방비를 매년 400억 달러 정도 증액해서 3년 후에는 지금의 250%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안을 보고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실제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양측은 자국의 영토에서 부딪히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편집장은 "강대국의 변함없는 속성은 절대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국경 밖에서 적의 세력을 차단하는 방식을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주요 충돌 지역으로 타이완과 난사(南沙)군도, 센카쿠, 서해 등을 꼽았다. 그런데 이 중에 서해의 경우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자주 발발하는 지역이다. 북한이 강대국의 싸움에 끼어들어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 편집장은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해 각종 무기를 시험하는 이유는 자국을 헤비급(강대국)의 싸움에 끼워달라는 뜻"이라며 "북한은 핵을 비롯한 군비 강화를 통해 미국 등 다른 헤비급 행위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벌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남한은 사실상 젖혀두겠다는 심산"이라고 진단했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최근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안보 전문가들과 한반도 사드 배치 논의와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등에 대한 중국의 솔직한 입장을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 동북아에서 미·중 간 군사 대결이 고조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는데 실제 중국이 느끼는 현 상황은 어떤지?
김종대 : '강대국 정치'가 말하는 시기다. 미국과 중국은 마치 월드컵 결승전처럼, 모든 전략을 최종 한 경기에 맞춰 구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언제까지 참고 있어야 하느냐"는 현실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이 대미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충격이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와 미국과 필리핀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체결,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등이다.
사드는 중국에 남다른 충격이었다. 중국의 핵심 안보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의 사드 배치는 완전히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하더라. 그는 최근에 센카쿠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가 조용했는데 이는 미·중 간 꾸준한 막후 접촉을 통해 중국이 힘의 사용을 자제한 조치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바로 한반도의 사드 배치 문제였다.
한편으로 미국과 필리핀의 방위협력확대협정으로 미군은 1991년 이후 철군했던 병력들이 거의 대부분 필리핀에 복귀하게 됐다. 아시아에서 미군의 가장 큰 기지는 수비크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인데, 이번 협정으로 미국은 위 기지를 포함해 필리핀 내 8개 기지 모두를 대중국 전진기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필리핀 헌법 위반이다. 필리핀은 헌법에 비핵을 명기하고 있는데 이번 협정으로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무기를 탑재한 미군이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리핀 정부는 이를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결국 이러한 조치들로 지금까지 동아시아 번영의 토대였던 역내 세력 균형이 상당히 불안정해졌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대응으로 2~3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은 누가 뭐래도 국방비 증액이다. 힘에는 힘으로 맞받아칠 수 있는 국방력을 보유한 것 이상으로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국방부는 이미 시진핑(習近平) 주석한테 향후 중국 국방비를 매년 400억 달러 (한화 43조 7600억 원) 정도 증액해서 3년 후에는 지금의 250%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안을 보고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외교적인 돌파구 마련이다. 동남아 국가들과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중국이 경제를 앞세워서 이들 국가들과 관계 형성에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또 한 가지는 미국 패권의 압력을 받는 국가인 러시아와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이 중 중국 입장에서 최고의 대안은 국방비 증액이다. 국방비를 늘리면 중국 연안의 미군 함대 접근을 거부하는 반(反)접근전략으로서 둥펑(東風)미사일과 같은 지대함 미사일이라든가, 미국의 MD 망을 돌파하는 다탄두 미사일, 미군 위성체계를 요격할 수 있는 전력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실제 중국은 지난 2013년 초속 5km의 속도로 날아가는 미사일로 초속 7km를 비행하는 폐 인공위성을 격추시킨 사례가 있다.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이러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둥펑 21-D와 같은 지대함 미사일은 중국 어디에 배치돼있는지 미국도 파악을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이처럼 강한 한 방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인파이터 복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맷집이 좋으면서 카운터 펀치가 센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고 있는 미국은 전형적인 아웃복서 스타일이다. 미군은 말라카해협에서 서해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동아시아 전 지역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미군은 동아시아의 전략적 관문에 있는 해군 기지를 활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 입장에서는 어디서 스텔스나 토마호크 같은 전략 무기들이 날아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른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매우 빠르고 민첩하면서 동시에 현란한 아웃복서 스타일의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은 일본과 필리핀 등을 앞세우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일제히 진출했다. 미국은 전방위에서 입체적으로 중국에 접근하면서 중국의 억제력을 무력화시킨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강대국의 변함없는 속성이자 본질은 절대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국경 밖에서 적의 세력을 차단하는 방식을 쓴다. 중국은 얼마나 자국의 국경에서 떨어진 곳에서부터 미국을 차단하느냐가 최대의 관심거리다. 미국은 반대로 중국을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부터 압박하느냐가 중요하다.
▲ 사드의 실험 발사 장면 ⓒAP=연합뉴스
여기서 전 세계의 전략적 안보 지도를 정리해보자면 총 3개의 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헤비급들이 싸우는 특설 링, 중간급들이 싸우는 본선 링, 그리고 동네 체육관에서 싸우는 예선 링이 있다. 북극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헤비급들의 안보 지도가 보인다. 우선 캐나다와 미국이 있고 반대편에 러시아와 아래쪽으로 중국이 있다. 러시아의 양옆에는 일본과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붙어 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 북극권을 보자면, 캐나다·미국과 덴마크·영국·독일 등이 구성하고 있는 MD가 자신들을 양옆에서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해 탄도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이유는 자국을 특설 링인 헤비급에 끼워달라는 뜻이다. 이 링에 하나의 행위자로 들어오고 싶다는 것이 북한의 전략적인 목표다. 즉 핵을 비롯한 군비 강화를 통해 미국 등 다른 헤비급 행위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벌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남한은 사실상 젖혀두겠다는 심산이다.
본선 링은 주로 아시아에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미국이나 중국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난사군도, 센카쿠 열도 같은 곳이 대표적인데, 이 링의 가장 위험한 구석들로 말라카 해협 해상 교통로 라인에 있는 지역이 포함된다. 타이완, 난사군도, 센카쿠, 서해 등이다.
중국은 제1, 2 도련선(제1도련선은 일본-대만-필리핀, 제2도련선은 오가사와라(일본)-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을 각각 설정해서 세력 균형선으로 삼으려고 했다. 여기서 미국이 이를 돌파하고 가장 근접한 자리에 미국의 전략 자산을 투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을 압박하는 지정학적인 전략은 강한 투사력을 발휘하는 것인데, 이는 곧 미국이 자국이 원하는 곳에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가져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한 방 쳤을 때 상대방의 코 정도는 부러뜨릴 수 있는 카운터 펀치는 보유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그런데 싸움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면 인파이터인 중국이 지치게 된다.
무하마드 알리랑 조지 포먼이 싸운 경기를 봐도 인파이터인 조지 포먼이 결국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핵 펀치로 무장한 조지 포먼이 우세할 것 같지만, 당시 경기 초반 포먼의 핵 펀치가 연이어 빗나갔다. 중반 이후에는 포먼의 체력이 저하돼 몸놀림이 눈에 띄게 둔해졌고, 알리는 적절하게 잽을 날린 후 링을 빙빙 돌며 포먼의 체력을 소진시켰다. 8라운드에서 알 리가 포먼의 주먹을 슬쩍 피하면서 카운터펀치를 날렸고 결국은 포먼이 링에 쓰러졌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은 현재 거의 모든 전략적 관문을 확보하고 압박하고 있다. 중국이 아무리 센 주먹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이 주먹을 어디에 쓸지 모르는 혼란에 빠지다가 주먹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빗나가거나 제압당할 수 있다.
예선 링은 우리나라의 서해 같은 곳이다. 미·중이 전혀 개입하지 않으면서 남북한이 싸우면 강대국이 뒤처리하는 분쟁지역이다. 그런데 결승전으로 가려면 예선전을 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특설 링에서 싸우고 싶은 북한은 예선과 본선도 치러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이걸 전부 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정은이 김정일과 달라진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김정일이 전략적인 선택을 추구했다면 김정은은 예선전과 결승전을 동시에 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서해 NLL을 위협하고 또 바로 SLBM 공개해서 미국을 위협하고, 이런 식의 행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전략을 쓰려면 북한은 재래식 무기부터 전략 무기까지 다 가져야 하는 것인데, 더 이상 방어적인 자세에 안주하는 군사전략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최근에 나타난 북한의 과도한 군사주의의 배경이다.
프레시안 : 북한은 결국 자신들의 살길은 '군비 강화'라는 결론에 이른 것인가?
김종대 : 김정은이 야전군 지휘관에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방침을 내렸다고 한다. 큰 판을 벌이겠다는 것인데, 핵을 실전에 배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막 도박을 하는 시기라고 자기들 스스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이는 결승전을 하기 위한, 링 위에 올라가기 위한 어떤 몸부림 같은 것이다.
2015년을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한 해로 만들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머지 '예선전'에 해당하는 부분은 관리만 하는 전술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은 NLL에서 남한에 밀려서는 안되며 본인들이 확고한 위상을 갖추겠다는 것은 분명한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의 서해 분쟁은 현재로써는 예선전이지만 열점이 확산되면 잘하면 본선 정도까지는 될 수 있다. 이 분쟁에 미국과 중국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간 전략적 갈등이 심해지면 북한이 기회를 포착하려고 할 것이고, 이때가 북한이 목소리를 높이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적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측면은 한국 전쟁이래 지금까지 남북한에 불변의 지정학이었다. 강대국 정치가 말을 할 때 한반도에서는 항상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국전쟁도 냉전의 초기 단계에서 일어났고, 결국 국제전이 되지 않았나?
2010년 연평도 당시에도 미국의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에 진입하는 문제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을 통해 하나의 행위자로 나선 것이다. 다만 당시 미·중이 잡아먹을 듯이 난리를 치다가 막상 포격전이 일어나니까 일제히 연루되지 않으려고 발을 빼버렸다는 점이 뜻밖이었다. 북한 입장에서 서해 연평도 포격전이 본선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미·중이 철수해버리는 바람에 예선전이 돼버렸다.
연평도 포격, 독사 앞에서 "물어봐" 라고 손 내밀어 준 꼴
프레시안 :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100% 북한 책임이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서해전쟁>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김종대 : 당시 남한은 북한이 계속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많은 포탄을 연평도 바다 앞에 쏟아 부었다. G20 정상회의 때문에 미뤘던 것을 한꺼번에 하느라 5개월 치의 포탄을 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북한의 공격에 대비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포격이 일어난 당일, 아침부터 합참 정보본부는 북한의 도발이 예상된다는 보고를 두 번이나 작전 본부에 통보했다. 그러나 합참 작전본부장은 "쏘려면 쏘든가"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분명히 정보가 들어갔는데도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 ⓒ해양경찰청
이런데도 '북한이 나쁜 행위를 했기 때문에' 남한군의 대비 태세는 면책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당시 군은 대비하기는커녕 오히려 독사가 독을 잔뜩 품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그 앞에서 "물어봐 물어봐"라는 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북한이 나쁜 놈이라고 한들 그것이 우리의 무능력을 변호해주는 요인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안보를 하지 말자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가 된다.
최고의 안보는 적의 의도를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남한은 적이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안보는 이순신이 아니라 원균의 안보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당시 작전본부장은 연평도 포격을 제대로 막지 못한 가장 책임 있는 직위자임에도 불구하고 후에 4성 장군으로 진급했다.
프레시안 : 연평도 사태에 대한 우리 측 대응에 대해 냉철한 평가가 없었다는 것인가?
김종대 : 보수 정권이 안보를 할 때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인데, 천안함 당시 작전 라인 전체가 마비됐다. 군단·사단 작전만 해본 육군 장성들로 채워버리니까, 주요 작전 직위자가 서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는 육군 야전 출신이었던 것이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합참에 합동작전 전문가가 없는 상태에서 리더십이 완전히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다. 그해 6월 합참을 물갈이했는데 새로 온 사람마저 여전히 무경험자 또는 비전문가, 아니면 TK 출신이었다. 무개념 군대 아닌가?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곧 서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지정학적인 요소에 무감각하다는 방증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서해에서 분쟁 수역을 관리하는 것은 당시 우리로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어야 했는데, 5.24조치 발표 이후 대책이 끝났다고 보고 안일해진 것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북한의 해안포 사격이 무서워서 천안함이 백령도 뒤에 숨은 것인데, 이때는 잠수함에 격침당했고, 다음에는 그 '무서운' 화력 도발이 예상되는데도 무시해서 또 당한 것이다. 두 번 다 북한이 의도하는 바에 맞춰준 셈인데, 이는 분쟁 수역을 직면하고 있으면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전문가들답지 못한 매우 무능력한 처사다. 실제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 당시 합참 주요 직위자들 중 용어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입시지도를 영어선생이 더 잘하냐, 국어 선생이 더 잘하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하겠나? 이건 질문 자체가 틀렸다. 입시 지도는 입시 전문 선생님이 잘하지 않겠나? 합참 역시 마찬가지다. 합동작전 전문가가 근무해야 한다. 육군이 더 잘할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육군이 합참을 움직이는 것은, 국어 선생이 입시지도를 하라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다. 단지 숫자가 많고 중요한 과목이라는 이유로 입시지도까지 확장해버리면 진학에 실패하지 않겠나? 군 작전도 그렇게 실패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수에 1~2명은 합동작전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합참에서만 진급했다. 그런데 MB 정부 들어와서 정치논리 때문에 이러한 전문가를 다 쫓아냈다. 지난 정부의 좌파장교라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합참은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연평도에 해병부대가 있는데 이 부대에 대한 사격 통제권을 어디서 행사하는지 합참도 모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해병대 사령관인지 2함대 사령관인지, 합참이 직접 하는 건지 확실한 답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 작전계획을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까. 사격 명령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도 몰랐다.
연평도 포격 다음 해 서북도서사령부가 만들어지면서 그해 8월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북한이 서해 NLL 선상에 포를 쐈다. 연평도에서 2km 범위 이내에는 해병대 사령관이 작전권을 통제하고, 2km밖에는 2함대 사령관이 행사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북한이 쏜 포가 2km 밖인지 안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시 서북도서사령관, 2함대 사령관, 해군 작전사령관 셋이 모여서 사격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50분 동안 화상회의를 했다고 한다.
합참의장은 이런 내막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직접 연평부대장에게 왜 자위권 행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연평 부대는 누구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지 혼선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50분 동안의 화상회의 끝에 연평부대에 내려온 지시는 2함대 사령관은 NLL 이남에 3발, 해군 작전 사령관은 NLL 걸쳐서 5발, 서북도서 사령관은 NLL 넘어서 5발을 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결국 현장 지휘관이 NLL 선상에 5발을 쏘는 것으로 절충했다.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똑똑한 장군 2명보다 멍청한 장군 1명이 지휘하는 것이 낫다고. 지휘통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인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서북해역과 관련한 작전 계획이 애초에 없었다. 북한이 서해 5도를 점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지정학적인 상황이 달라졌다. 천안함 사건 이후 서해가 분쟁의 열점이 되고 강대국이 행위자로 들어오면서 예전과 똑같은 작전계획, 의사결정, 교전수칙으로는 방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당하고도 여전히 안일하게 대비하다가 또 연평도 포격에 당했다는 것 자체가 서해가 갖는 지정학적인 의미를 완전히 도외시했던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런 부분을 고려할 만한 사람이 합참에 없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연이어 얻어맞고 터지고 이듬해 지휘혼선 겪고 나서야 우리나라 군대가 얼마나 관료주의 형태에 빠져 폐단이 극심했는지를 보게 된 것이다. 축구시합에서 11명을 그라운드에서 뛰게 할 때 전략이나 전술도 있는 것인지, 100명을 투입하면 전술을 쓸 수 있겠나? 드리블할 때 아군에 걸리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한국군도 이와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이고 있다. 과잉 지휘와 군사 자산들이 서로 충돌하다가 작전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우리가 스스로 쳐놓은 복잡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스템이 붕괴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사격 통제권을 놓고 50분 동안 화상회의를 했다고 하지 않나? 그 급박한 순간에. 그래서 북한이 예기치 않은 행동만 하면 우리 군대는 그대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참사 때 정부 기관이 없어서 구조에 혼선이 있었나?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당시 정보 상황실이 8군데에 마련됐는데, 너무 많으니까 나중에 총리가 나서서 정부 통합 상황실을 다시 만들지 않았나.
사고의 90% 이상은 안전 자산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전체 전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이익에 따라 자산을 늘려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 자산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국군은 군사적 에너지를 좀 줄이고 지위를 단순화해서 경쾌하게 반응할 수 있는 군으로 개편돼야 한다. 그래야 안보가 가능하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유약한 박근혜, 사드 절대 추진 못한다!"
북한이 SLBM 사출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주장한 것을 놓고서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누가 보더라도 쇼"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선수가 야구공 한번 잘 던졌다고 박찬호, 류현진 선수가 될 수 있나"라며 북한의 SLBM은 실전 배치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SLBM에 대한 정확한 기술적 분석에 앞서 NSC와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이와 더불어 한쪽에서는 SLBM을 막아낼 대책이 없다면서 더 많은 무기 자산이 필요하다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편집장은 "일종의 '공포 영업'"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북한의 위협을 소비해야 보수 언론과 권력이 유지될 수 있다"면서 "이러한 교착상태 자체가 하나의 기득권이 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김 편집장은 북한에 대한 공포가 이른바 '영업'을 위한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공포'였다면 "벌써 상당수가 이민을 갔거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주민 등록을 옮겨야 하지 않았을까?"라며 "이제는 북한의 공포를 소비해야만 유지되는 사회가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렇게 군비가 증강되고 대결적인 분위기가 동북아에 팽배해지면 남한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김 편집장은 "아시아에서 평화 공존과 지역주의, 동아시아 공동체 등 이상주의가 주류를 형성했을 때는 한국이 상황을 주도했고 일본은 곁다리였다. 대표적으로 6자 회담만 봐도 우리가 일본을 끼워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북아 역내 갈등이 고조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그는 "우리가 북한의 SLBM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아우성 거리면, 결국 미국과 일본에 안보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일본의 군사화를 비판할 수 있겠나? 일본의 폭주하는 과거사 관련 망동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이니셔티브도 쥐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김 편집장은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한국이 절대 6자 회담을 주도할 수가 없다. 강대국 간 막후 협상이 잘돼서 6자회담이 열린다면 어떻게든 끼어드는 요행을 바라고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우리가 무언가를 주도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려워졌다. 더 문제는 이게 왜 심각한 일인지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김 편집장은 "한국이 할 수 있는 주도권은 다자간 안보 협력이라든가 남북 관계를 개선해서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를 정탐하러 오게끔 하는 정도다. 이런 식의 주도권 행사가 현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입증된 것"이라며 한국은 평화 지향적인 동북아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관련 기사 : ① "한반도 사드 배치, 중국 뒤통수 맞았다 생각")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이 결승전에 끼기 위해 SLBM으로 추정되는 무기를 공개한 것이라고 설명하셨는데, 한국에서는 이 무기가 등장하니까 정말 이 무기가 무엇인지. 실제 SLBM이 맞는지 점검도 하지 않고 벌써부터 사드로도 방어가 안 된다면서 난리를 치고 있다.
김종대 : SLBM 문제만 해도, 우리가 한국군은 대책 없다고 먼저 결론 내리는데, 초등학교 선수가 야구공 한 번 잘 던진다고 박찬호, 류현진 선수 될 수 있나? 북한이 SLBM을 발사했다고 주장하는 사진에서 옆에 배가 하나 있다. 만약 정말 SLBM을 발사한 것이었다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실제 잠수함에서 발사했다면 어떻게 배가 저렇게 평온하게 떠 있나? 저렇게 나올 수가 없다. 이거 누가 보더라도 쇼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SLBM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하기도 전에 NSC와 안보관계장관회의를 먼저 열고 새누리당과 당정 협의를 하고 이후 매일 외교안보장관회의를 하고 있다. 일단 위기라고 보는 거다. 정부가 이렇게 나서면 국민들에게는 북한이 SLBM을 보유했다고 기정사실로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사드나 킬체인을 도입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무기들도 소용없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북한이 보여줄 것이 많다는 점이다. 내년쯤 되면 북한은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고. 대형 잠수함을 공개할 수도 있다. SLBM을 화살이라고 한다면 이걸 쏠 수 있는 활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아직 정확하게 기술적인 검증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일부에서 북한의 SLBM이 정말 SLBM인지 의심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모조품이라도 잠수함을 보여줄 것이다. 그다음에 개량된 SLBM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을 또 찾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 슬쩍슬쩍 하나씩 보여주는 행태를 보일 것이다.
만약 북한이 정말 개발에 성공했다면 미국의 해커 박사 같은 양반을 초청해서라도 반드시 자신들의 성과를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헤비급 특설 링에서 뛰고 싶은데 안 믿어주면 안 되지 않나. 특설 링에 북한이라는 군사 지도가 들어가야 그걸 갖고 미국과 평화 협정을 체결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수도 없이 북한의 무기 쇼가 벌어질 것이다.
프레시안 : 대책이 없다고만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종대 : 일종의 '공포 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세계 안보 지도에서 결승전에 진출하는 헤비급 선수의 이미지를 살포하고, 남한은 이걸 소비한다. 이러한 구도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재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정도로 보수 언론과 권력은 심각한 중독증에 빠져 있다. 북한의 위협을 소비해야만 언론과 권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교착상태 자체가 하나의 기득권이 된 셈인데, 이를 적대적 의존 관계라고도 이야기한다. 전쟁을 소비하고 향유하고 확산시키는 것은 인간의 불행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득권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보험 회사와 다를 바 없는 행태다. 즉, 국방비를 흔히 국가의 보험료라고 이야기하는데 공포 자체가 서식처가 됐고, 이제는 이것을 소비해야만 유지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여기서 창출되는 부가 가치 없이 사회가 존재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북한이 이런 무기들을 보여주면 거의 기정 사실로 몰아가야 기사가 되는 언론의 환경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대책이 있으면 기사가 안 된다. 무인기가 나타날 때도, 공기부양정 기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해커 부대도, SLBM도 대책 없다고만 한다.
북한에서 뭔가 슬쩍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신기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뉴스가 없다면 보수 언론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공포를 소비하는 행위다. 만일 이 공포가 일종의 여흥이 아니라 실제 체감할 수 있는 공포였다면 어땠을까? 모든 언론에서 이렇게 북한 무기에 대해 떠들어대는데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벌써 상당수가 이민을 갔거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주민 등록을 옮겨야 하지 않았을까?
분쟁이 만연하는 동북아, 한국 설 자리 없다
프레시안 : 2000년대 중후반, 동아시아가 평화를 지향했을 때 한국은 중요한 행위자로 국제 사회에서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면 우리는 동북아 질서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남북 관계 개선을 포함한 평화 지향적인 동북아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종대 :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평화 공존의 흐름으로 갈 때는 우리가 주도자 입장이었고 일본은 그 흐름에 편승하는 후발 주자 내지 곁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모멘텀이 깨지니까 입장 역시 역전된 것이다.
한때 아시아에서 평화 공존과 지역주의, 동아시아 공동체 등 이상주의가 주류를 형성했을 때는 한국이 상황을 주도했고 일본은 곁다리였다. 대표적으로 6자 회담만 봐도 우리가 일본을 끼워준 것이었다. 6자 회담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자가 중요한 행위자였다.
▲ 2005년 9.19 공동성명 발표 직후 손을 모으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6자 수석대표들 ⓒ연합뉴스
그러나 분쟁의 지도가 펼쳐지는 순간, 이 관계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일본은 해상 초계기 100대에 이지스함이 8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만 고려했을 때 미국보다 해군력이 더 우위에 있다. 미국이 해군을 전 세계에 분산 배치해 놓았을 때 일본이 아시아 최대 해군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의 SLBM를 대서특필하면서 군사적인 대책이 없다고 아우성거린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일본에 안보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는데, 그러면 앞으로 일본의 군사화를 우리가 비판할 수 있겠나? 일본의 폭주하는 과거사 관련 망동에 우리가 어떠한 이니셔티브도 쥐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분쟁의 흐름에서도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북한과 전쟁을 불사하고 한반도에서 북진 통일을 하겠다고 천명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한 시나리오인지 의문이다.
한반도는 분쟁이나 전쟁을 할 수 없는 구도에 있다.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 분쟁을 이야기하다가 주도권을 놓치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해서라도 주도권을 그렇게 잡고 싶었다면, 김관진 장관이 이야기했던 '적극적·능동적 억제'를 가열차게 추진했어야 한다.
당시 김관진 장관은 왜 모든 군사적 주도권을 북한이 쥐고 우리는 대응만 하느냐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전략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당시 북한 지휘부 타격, 평양 시내 김정일 동상 파괴, 제4의 전쟁 등의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김 장관은 이러한 담론들에 대해 항상 '자위권' 차원의 구상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서의 자위권이란 미군과 관계없는 한국군 단독 작전을 의미한다. 유엔사 정전 시 교전규칙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보수 정권 내에서도 신뢰를 받지 못했다. 바로 직후에 부임했던 한민구 장관 역시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에서 한민구 당시 전 합참의장을 불러서 김관진 장관이 왜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이냐며, 혹시 자신들이 모르는 신무기라도 구입한 것이 있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한민구 장관은 무기 도입한 것도 별로 없다고 대답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결국 한국은 군사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주도권은 다자 간 안보 협력이라든가 남북 관계를 개선해서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를 정탐하러 오게끔 하는 정도다. 이런 식의 주도권 행사가 현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입증된 것이다. 지금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김태효 비서관은 북한에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추진해서 남한이 주도권을 잡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됐다면 오늘날 왜 우리가 일본한테 뺨 맞고 미국한테 무시를 받는지 설명이 안된다. 주도권을 잃어버렸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세계 안보 지도에서 예선전에 속해 있는 국가이며 그것도 방어형 선수다. 사실 우리는 조선조 이래 지금까지 정규군과 상비군으로 안보에 성공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나마 국가가 여태까지 연명해 온 것은 정규군이나 상비군이 아니라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외교를 통해 그나마 유지해 온 것이다. 우리 스스로 국방력만 가지고 안보를 보장하지 못할 때 이를 보완해준 것이 외교였다. 그리고 그 외교가 활약을 할 때 한국이 한반도 주변 정세를 주도했던 것이다.
프레시안 : 정치·외교·군사문제에 있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대책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집권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도 주체적인 대응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김종대 : 이미 정신 분열을 한번 겪은 상태다. 우리의 국가적 취약성이 극대화됐던 경험인데, 안보는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되다 보니 안보와 경제 양쪽에서 대외 의존도가 나날이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갈등 관계에 놓이면 우리가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자율성이 거의 소진된다. 여기서 국가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예를 들어 사드 배치의 경우, 박근혜 정부는 절대 추진하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정도의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한국 정부는 말리기만 하면서 양쪽 모두로부터 불신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자신들이 수천억 달러를 투입해 개발한 엠디(MD)를 동맹국인 한국이 불신하는 모습에 상처를 받았고,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한국 편을 들어줬는데 사드 배치로 뒤통수 치는 미국에 꼼짝 못 하는 한국을 보고 상당히 상처받았다.
▲ 사드의 실험 발사 장면. ⓒAP=연합뉴스
이렇게 되면 한국이 절대 6자 회담을 주도할 수가 없다. 강대국 간 막후 협상이 잘돼서 6자 회담이 열린다면 어떻게든 끼어드는 요행을 바라고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국가적으로 대외 의존도가 너무 높은 취약성을 가진 나라에 감당할 수 없는 북한발 공포를 뿌려댔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언가를 주도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려워졌다. 더 문제는 이게 왜 심각한 일인지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 너무 오랫동안 적응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역사를 만들자고 나서면 설치는, 까부는 놈이 돼버린다.
우리도 북한식으로 흉내 내고 싶어했던 적은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군사력을 앞세워서 뭘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걸 좀 바꿔보려고 했던 박근혜 정부도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짜 위기인 것 같다.
김종대 : 전국시대에 '합종연횡'이라는 말이 나왔다. 패권국 진나라에 군소 국가 6개가 동쪽으로 배치돼 있었는데, 그 국가가 뭉쳐서 세력 균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합종' 이었다. 그런데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6개 국가가 협조가 잘 될리가 없다. 그래서 진나라가 6개 국가와 각기 관계를 맺고서 서로를 견제하게 하는 전략이 '연횡'이었다.
과거에는 제3지대론, 비동맹국가론, 동아시아 지역주의 등 합종 전략이 있었는데, 지금은 국가끼리 다자 간에 모여서 평화나 질서를 만드는 것들이 어려워졌다고 본다. 연횡 전략과 비슷한 게 우세해졌다. 약소국 입장에서는 각자도생하되 강대국의 바짓가랑이를 잘 붙잡는 놈이 최고라는 전략이다. 그리고 불안해질수록 이러한 전략이 더 빛을 발하게 된다.
실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전쟁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재밌으면 계속 그렇게 하시라. 상황이 더 악화되느니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 정부는 대책이 없다. 이명박 정부 때처럼 독사 앞에 가서 손 흔드는 식으로 양보해서 물려버리는 것보다는, 말로 하고 언론에서 떠드는 정도로 앞으로 남은 3년을 전쟁 없이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나름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지 않나? 지금은 전쟁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니까.
어차피 당분간 사드나 SLBM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물론 현 정부와 언론의 '공포 상업주의'의 사회적 폐해는 우려스럽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면 떠드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공포를 소비하는 중독증에 치료제가 없는 현실이 답답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