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일본은 왜 한국보다 정치후진국인가

일취월장7 2019. 8. 1. 18:56

일본은 왜 한국보다 정치후진국인가

[기고] 민중 주도 혁명이 없는 나라의 당연한 귀결
2019.08.01 08:42:38

최근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쟁점은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이다.


1905년에 실질적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이래 40년 동안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하고 갖은 악정과 약탈을 자행한 일본은 1965년 6월 22일 대한민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날 두 나라 대표가 서명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에는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에 관한 사죄 표명'이 전혀 없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청구권 자금 3억 달러(10년 동안)와 장기 저리 차관 2억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한일기본조약'을 서둘러 맺도록 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이 '굴욕적 한일회담'을 막으려고 시위와 집회를 끈질기게 벌였지만 박정희는 6월 5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국의 모든 대학에 3개월 휴교령을 내린 뒤 헐값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면죄부를 주어버렸다. 


그렇게 애초부터 잘못 열린 한국과 일본의 국교는 반세기가 넘도록 두 나라의 관계를 '호혜·평등'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근자에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대한민국과 주권자들을 농락하는 언동을 일삼고 있는 행태의 뿌리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아베는 그것을 빌미 삼아 지난 7월 4일 '한국과의 신뢰관계'와 '수출 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 발생'을 이유로 일본의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품목들의 주요 소비자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큰 타격을 입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한국 정부는 그런 소재를 자체 개발하는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단 기간에 그 일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이런 약점을 익히 알고 있는 아베는 "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며 일본의 반도체 소재가 북한으로 넘어갈 소지가 있다는 뜻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과거의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한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아베의 행태는 뿌리가 아주 깊다. 근대 들어 일본을 좌지우지해 온 '극우 세습 세력'의 민낯을 그가 드러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10월 치러진 중의원 선거, 이중 소선거구에서 당선된 자민당 의원 218명 가운데 세습의원은 7명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최근 자민당이 배출한 총리들도 대부분 세습 정치인들이다. 현 총리인 아베 신조 외에 아소 다로, 후쿠다 야스오, 고이즈미 준이치로, 오부치 게이오 등이다. 또 현재 아베 내각 대신(장관)들의 절반이 세습의원이다. 세습 정치인 없이는 도무지 굴러가지 않는 나라인 셈이다."(중앙일보 2018년 7월 23일자 기사-"'세습정치' 왕국 일본, 각료 절반이 물려받은 정치인").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일본 자민당은 1955년에 창당되었다. 현재까지 정권을 빼앗긴 것은 단 두 차례, 기간은 5년 8개월에 불과하니 무려 58년 넘게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은 중의원 465석 중 282석, 참의원 242석 중 122석을 차지하고 있다. 거기다 연립여당인 공명당 의석(중의원 29석, 참의원 25석)을 합하면 중의원 66.8%, 참의원 60%가 여당이다. 아베가 전쟁이 불가능한 '평화헌법'을 고쳐 신군국주의로 치닫고 싶어 하는 배경에는 그런 정치 환경이 있다.  


일본의 집권세력은 철저히 극우 또는 수구보수의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 나라의 역대 총리 면모를 보면 그런 성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1885년에 초대 '총리대신'이 된 이토 히로부미부터 아베까지 68명 가운데 절대 다수가 '그런 정당의 그런 인물들'이다. 


한국은 어떤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국정농단으로 장기형을 선고받은 이명박과 박근혜 말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민주체제를 세우려고 노력했고, 현재 문재인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정치후진국'이라는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나라에 혁명의 역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에서는 1884년에 봉건왕조와 외세에 저항하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1919년에는 일제의 압제와 착취에 맞서 민중이 궐기한 3·1혁명이 터졌다. 1960년 학생들이 선도해 일으킨 4월혁명은 독재자 이승만을 권좌에서 몰아낸 뒤 공명선거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게 했다. 1979년 10월의 부산·마산 항쟁은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을 불러오는 중대한 단초였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은 결과적으로는 좌절되었지만 1987년 6월 항쟁의 씨앗이 되었다. 1987년의 6월항쟁은 군사독재로 장기집권을 꾀하던 전두환이 사퇴하고 노태우가 한 동안 어정쩡한 군사독재를 되풀이 한 뒤 김영삼(비록 '3당 합당'이라는 야합에 기대기는 했지만)이 '문민정부' 수장이 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이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의 혈통은 일본 역사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바로 안다면, 아베는 왜 일본이 한국보다 정치후진국인지를 겸허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베의 출구전략 시작되나

한국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면서 일본이 노린 것은 문재인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과 국내외 역풍 탓에 ‘끝장’을 보기 어려워졌다. 일본의 출구전략은 무엇일까.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9년 08월 01일 목요일 제620호

아베 정부는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당초 일정대로라면, 7월24일까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조치) 국가에서 배제할지를 묻는 국민 여론 수렴이 끝났으니 다음 단계로 나가야 했다. 일본 측 추계로는 1만명 이상의 시민이 찬성 의사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배제’를 결정하는 절차다. 그로부터 3주(21일) 뒤부터 한국은 화이트리스트 국가로서 누리던 혜택을 상실하게 된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수많은 품목들에 대한 ‘3년 단위 포괄승인’ 혜택이 사라지고 ‘개별승인 체제(수출 건별로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가 작동하게 된다. 사실상의 수출통제다. 7월4일부터 실행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3가지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는 ‘맛보기’였던 셈이다.
7월25일 현재, 아베 정부는 예정대로 강행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7월24일에도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장관이 ‘한국 배제’ 절차를 밟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Reuter
아베 일본 총리(왼쪽)가 감행한 ‘대한민국 정부 때리기’는 트럼프 정부에 의해 급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베 정부의 심중을 투명하게 파악하긴 힘들다. 정말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절차를 강행할지, 혹은 한국의 양보를 노리고 압박을 가하는 것인지 명확히 알긴 힘들다. ‘한국 배제’가 실제로 결정된다 해도 그 실행은 3주 뒤다. 그사이에 어떤 정세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실행하기로 결정했다가 철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일본 내의 분위기가 한풀 꺾인 것으로 보는 관측자들도 많다. 아베 정부에게 남은 것은 ‘모양새 있는 출구전략’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시사IN>이 일본 정가에 밝은 소식통들로부터 입수한 내용에 따르면, 아베 정부의 ‘한국 배제’ 전략엔 일단 급제동이 걸렸다. 바로 미국 트럼프 정부에 의해서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도쿄를 방문한 날은 7월22일이다. ‘한국 배제’ 관련 국민 여론 수렴의 마감일(7월24일)로부터 이틀 전이었다. 볼턴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장과 고노 다로 외무장관, 이와야 다케시 방위장관 등 외교 안보 핵심 인사를 모두 만났다. 언론에는 고노 다로 외무장관을 만난 얘기가 비교적 자세히 소개됐다. 7월24일자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배제에 대해) 미국의 중재를 원치 않는다”라는 견해를 밝혔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한·일 관계에 대해 적극적인 중재 의사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지나칠 정도로 의례적인 수사들이다.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볼턴은 고노와의 만남에서 “(최근 한·일 간 사태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일 연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우려하며 “당사국 간 해결을 촉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교도통신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은 발언이라고 부연했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일본 정가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통해 아베 정부 측에 좀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사IN>이 입수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지 말라’는 것. 더 이상 통상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두 번째는,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 구상에 일본 자위대도 동참하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지난 7월1일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로 한·일 간 분쟁이 격화되던 20일 가까이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그가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7월19일(미국 현지 시각)이다. “한·일 갈등과 관련된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이 있었다. 그들(한국과 일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원한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다.” 이와 함께 “양국의 요청이 있으면 돕겠다”라고 밝혔기 때문에 ‘일본의 요청이 없는 한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AFP PHOTO
지난 7월22일 고노 일본 외무장관(오른쪽)과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트럼프, 아베가 무시할 수 없는 볼턴 급파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다. 위의 발언을 내놓은 지 3일 만에 볼턴 보좌관을 한·일 양국에 특사로 보내 ‘더 이상의 사태 확대를 원치 않는다’는 자신의 뜻을 명확히 전한 것이다. 그는 볼턴을 통해 ‘현재 북한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3자 간의 협력 구도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한·미 간에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추진 중’이라는 점, 그리고 ‘미국의 동북아 구도에서 한국과 일본이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 등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대일 특사로 볼턴 보좌관을 보낸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볼턴은 트럼프와 워싱턴 주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북핵 문제에서는 일본 측의 강경한 태도를 워싱턴에서 대변해오기도 했다. 볼턴 이전에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동아태 차관보가 한·일 간 중재를 위해 도쿄에서 한·미·일 고위급 협의체를 제안했다가 일본의 거절로 불발에 그쳤다. 따라서 아베 정부가 차마 무시할 수 없는 볼턴을 특급 소방수로 급파한 것으로 보인다.

볼턴은 볼턴대로 자신의 관심사인 이란 문제로 한국과 일본의 관심사를 돌릴 필요가 있다. 이란에 대한 강경책의 일환으로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추진해온 그로서는 한·일 간의 충돌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자위대 역시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관심이 많다. 2015년 가을 안보법제 개정으로 병참 지원을 명분으로 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지만 실전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볼턴의 제안에 일본 자위대는 ‘물 만난 고기’ 같은 분위기라고 한다. 한·일 갈등보다 호르무즈 파병에 관심이 많은 볼턴을 대일 소방수로 투입한 트럼프 대통령의 고단수 안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애초 노렸던 효과보다 역풍에 시달려 고심 중이던 일본 내부는 미국 변수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당장 호르무즈 파병에 대해 자위대는 환영하겠지만 일반 국민들의 여론까지 좋을 리는 없다. 이에 트럼프의 메시지까지 거부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배제라는 강수를 두게 되면, 아베 정부로서는 전선이 너무 많고 복잡해진다. 정권에 대한 역풍 우려까지 존재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판을 끌고 왔는데 흐지부지하기도 어렵다.


ⓒAP Photo
지난 5월9일 스가 일본 관방장관(왼쪽)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다.
아베 정부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문재인 정부의 항복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한국을 실제로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한국 내 보수 언론이나 이른바 일본 전문가들이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된 한국이 얼마나 힘들어질지 열심히 선전해주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현재 일본 내 상황은 끝까지 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출구전략을 위한 간보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아베 정부 내부적으로는 이미 강온 양파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쪽은 내각관방실과 경제산업성 내 무역관리부 그리고 외무성 일부 부서들이다. 반면 역사 문제는 역사 문제대로 따져야 하지만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 통상조치는 중단하자는 온건파도 있다.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우려를 표시해온 일본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 외무성 내 일부 세력, 경단련과 비슷한 시각인 경제산업성의 지역경제담당 부서들이다. 지역경제 담당에 ‘한국실’도 있다. 당초 한국실이 수출규제 실무를 맡게 되었으나 이 조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강온파 구도는 7월 초 수출규제 시행의 연장선상에 있다. 수출규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집단은 내각관방실이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실장이 핵심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베 총리가 내각의 중심일 것 같지만, 일본 권력 내부에서 아베는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스가 관방장관이 사실상의 총리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출규제 역시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스가 관방장관이 주도해왔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올해 초부터 ‘한국을 손보자’는 분위기가 아베 정부 내부에서 형성돼왔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은 4월부터라고 한다.
당시 일본 정치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5월9일부터 12일까지 스가 장관의 워싱턴 방문이다. 내각 관방장관은 일본의 내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야 하는 장거리 여행을 꺼린다. 그래서 스가 장관의 방미에 대해 ‘지난 4월 초 레이와 연호를 발표하면서 대중적 인기가 오르기 시작하자, 차기 총리를 염두에 둔 외교 행보에 나섰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한국 때리기에 앞서 워싱턴 주류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방미 기간에 스가 장관은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을 만났다.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의 태도에 대해 일본이 대응조치를 강구하려 하는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없이 ‘통상안보관리(수출관리)를 잘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통보했다고 한다. 즉, 아베 정부가 취하려는 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지에 대해 당시 트럼프 정부도 몰랐다는 이야기다.

아베, 문재인 정부의 특사 파견 기대?

스가의 워싱턴 방문 이후 거행된 5월25~28일의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다. 그때는 아베 총리가 직접 한국에 대해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면서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요청에 끝내 긍정적인 답을 주지 않았다. 트럼프와  함께 남·북·미 간의 핵문제 해결에 주력해온 미국 국무부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미국 국무부는 일본이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에 대해 시비를 걸자 한국을 두둔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어쨌거나 워싱턴 보수 주류의 묵인을 얻었다고 판단한 아베 정부는 내각관방실이 주축이 되고 경제산업성이 실무를 맡는 형태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준비해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외무성은 배제됐다. 실무 작업은 경제산업성에서 전략물자 수출관리를 담당하는 무역관리부와 지역경제 파트 중 한국실이 담당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의 핵심 소재 3가지를 우선 선정해 7월1일 1차 조치를 발표하게 된다.

당시 이 조치를 취하면서 일본이 노린 것은 문재인 정부였지 삼성은 아니었다. 즉, 일본이 공격하면 한국의 일부 극우 언론과 자유한국당이 함께 들고일어나 문재인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는 이야기다. 그런 방식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면 기꺼이 실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런 거대한 목표를 현실에서 관철하기에는 실행 과정이 너무나 허술했다. 일본 실무자들은 나름 한국의 급소라고 생각해 3개의 핵심 소재를 선정했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 재계인 경단련 측과 깊이 상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 제품을 둘러싼 국제적인 ‘공급 사슬’에 대해 짧은 시간에 파악하는 것은 아베 정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 소재 기업에 대한 부메랑 가능성이나 대체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여부 등 체크할 항목이 많은 전략을, 몇 사람의 말과 머리만 믿고 서툴게 강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하는 일이라면 치밀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보수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 역시 근거 없는 낭설일 수 있다. 경제산업성의 일처리에 분개한 경단련 측이 <니혼게이자이 신문>을 통해 연속적으로 비판 기사를 쏟아내게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가해 야당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아베 정부의 당초 목표와 달리 오히려 문 정부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자유한국당은 친일 프레임에 갇혀 꼼짝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아베 정부는 한국 기업들의 탈일본화에 기폭제가 될 만한 조치를 취했다. 이를 통해 일본 소재산업의 국제 신뢰도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아베 정부로서는 이번 조치를 더 이상 끌고 나갈 실익이 없다. 모양 좋게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특사라도 파견해서 어떤 식으로라도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 최선이다. 일본 외무성이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으로 ‘1+1+1 해법(일본 기업, 한국 기업, 한국 정부의 자금 출자에 의한 해법)’이면 검토해볼 수 있다는 식으로 흘리는 게 바로 그 내용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빠져버리고 한국 정부만 배상 주체가 되라는 것을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일이 없었으면 모를까 이미 한국 국민의 대일 경각심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