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반일 감정과 현실의 딜레마

일취월장7 2019. 7. 23. 11:44

[유창선의 시시비비]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반일 감정과 현실의 딜레마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대한민국에 들어섰던 모든 정권들이 부딪혔던 문제다. 일본의 결자해지(結者解之) 태도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는 국민의 반일 감정을 대변할 것인가, 아니면 한·일 협력이 요구되는 현실을 우선할 것인가 사이의 딜레마로 정권마다 고민은 깊었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라는 초강수 보복 조치에 나선 데 이어 추가 보복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는 비상한 국면을 맞고 있다.

현재 최악의 상황이 된 한·일 관계의 전사(前史)를 돌아보자. 2012년 8월10일, 임기말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았던 초강경 대일 카드였다. 그의 독도 방문이 돌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자신의 집권 4년여 동안의 대일관계 기조를 단숨에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3·1절 기념사에서 “한국과 일본도 서로 실용의 자세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라며 과거사보다는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일관된 철학 부재

대통령이 된 후 이렇게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해 왔고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잠시 기다려 달라”는 발언 논란에까지 휩싸였던 그가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한 배경에 대해 여러 정치적 해석이 대두되었다. 그해 상반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는 밀실 추진이라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결국 이를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친인척 비리 등으로 대통령 지지율은 20%를 하회하며 정권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는 악화된 국내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카드라는 해석이 따라붙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대일관계에 대한 지론을 접고 반일 감정에 불을 붙이는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비난하며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대한민국 영토 수호 의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논평을 냈다. 정작 그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일본의 보복 조치 직후 아베 정부의 행동에는 사실상 침묵한 채 문재인 정부의 무능력만 비판해 여론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 뒤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대일관계에서 이명박 정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집권 기간 내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초강경으로 돌아섰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거꾸로였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강경한 대일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의 칼을 빼든 지금은 보수정당이 아베 정부보다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보수정권이 언제나 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말했던 ‘역사적 입장’은 천년이 아니라 2년도 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기조는 임기 중반을 지나면서 유턴하게 된다. 2015년 3·1절 기념사부터는 “이제는 더 성숙한 미래 50년의 동반자가 돼 새 역사를 함께 써나가야 할 때”라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정립에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해 12월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합의 사항의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굴욕 협상이었다는 국내의 비판에 직면하고 문재인 정부 들어 결국 합의가 파기되기에 이르러, 오히려 한·일 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잘못 끼운 단추가 되어 버렸다.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부에서 나타난 특징은 대일관계에 대한 일관된 철학과 역사의식의 부재였다.

日 정부를 설득·압박할 외교 능력 절실

두 정부가 넘긴 공은 문재인 정부로 넘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첫해에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8년 우리 대법원에서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두 가지 사안 모두 일본의 강한 반발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은 일본 제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시민들은 일본 제품 목록을 전파하며 구입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고,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인증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조치에 분개한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은 당연한 의사 표현이다. 하지만 불매운동은 일본에 대한 장기전의 힘 있는 무기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결국은 정부의 몫이며 책임이다. 국민의 반일 감정 분출은 결과적으로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정부가 거기에 기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장기화해 우리 기업들에 타격을 주고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줄 때 국민들의 분노는 우선은 비열한 일본 정부를 향하겠지만,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부도 결국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일본 정부가 갑작스럽게 수출규제 조치를 내렸다고 하지만, 그들은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들을 검토하고 준비해 왔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취할 수 있는 조치들 가운데 한국의 급소를 가장 아프게 찌르면서도 국제법상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을 치밀하게 준비해 왔음이 드러난다. 그러는 동안 우리 정부는 예상되는 보복에 대비해 무엇을 해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정된 위기 앞에서 그냥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지금은 국민들이 한목소리로 일본을 비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정부의 안이함을 질타하는 소리가 적을 뿐, 일본의 보복이 예상되는 결정들을 내놓은 이후 별다른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정부를 잘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반일 감정에 기대는 것도, 미국 정부가 우리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낙관론도,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달라질 것이라는 단견도 지금 국면에서 정부나 여당이 드러낼 태도는 아니다. 결국은 일본 정부를 한발 뒤로 물러서도록 설득하고 압박할 수 있는 외교적 능력, 급소가 드러난 우리 산업구조의 취약점을 개선해 나가는 경제적 능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주문하게 되는 것은 전투력이 아닌 외교적 능력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창의적인 대안들을 갖고 일본을 한발 뒤로 물러서게 하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일본 제국주의 민낯 보여준 1919년, 그리고 100년 후

일본의 주요 신문 중 하나인 아사히신문은 올해 2월 27일자 지면에 3·1운동을 상세히 소개하며 당시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군중이 가득 모인 채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당시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상대를 침략해서 전쟁하는 것만이 이익을 남겨준다”는 오만에 빠졌다는 점을 스스로 비판했다. 독립선언서에는“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아시아에 책임을 다해야 하며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는 끝나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끝내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19년 일본의 민낯이다.

역사는 결국 되풀이되고 말았다. 1919년 ‘상대를 침략하는 것만이 이익을 보장한다’는 100년 전 일본의 타락한 망령은 2019년 부활해 경제봉쇄를 하는 것만이 이익을 보장한다는 논리로 다시 대한민국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을 압박하는 논리도 일본답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의 이유를 강제징용 판결에서 순식간에 국내 수출 화학물질의 북한 관련설로 변경시켰다. 그 후, 일본은 자국의 국민을 결집시키기 위해 사린가스 등 독가스 무기 등을 전용할 수 있는 에칭가스 생산 등의 이유로 대한민국을 안보상 부적절한 국가라며 비난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어처구니없고 근거도 없다. ‘대한민국=북한’, ‘대한민국=독가스’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대한민국은 북한과 긴밀한 관계이며 일본 국민에게 공포감을 던져준 독가스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분석한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은 11년 전부터 고급승용차, 화장품, 피아노 등 생필품부터 대북 제재 품목인 무인기 카메라, RC 수신기 등을 북한에 수출했다. 유엔 안보리의 북한 반입 금지 품목 다수를 수출했음에도 여전히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9년 일본의 민낯이다.

일본이 대한민국을 조롱하고 압박하는 이유

100년이 지났음에도 일본이 대한민국을 대하는 행태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고 변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일왕의 사죄를 발언했던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일본의 고노 외무상은 “한·일 의원연맹의 회장까지 역임한 인간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심각하다”며 외교 관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표현을 공식적 자리에서 사용했다. 일본 실무진은 창고 같은 회의장에서 한국 실무진을 응대하며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더욱이 고노 외무상은 주일대사를 불러 통역 도중 말을 끊고 ‘무례하게 굴지 말라’는 도를 넘는 결례를 범했다.

현재까지 일본이 한국에 깊이 있는 사죄와 반성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의 공식적 사과 요청에 대해 틈만 나면 돈으로 이를 보상, 역사적 과오가 드러나는 것을 막았다. 때로는 일본이 지배했기에 한국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막장 논리를 들이밀었다. 더 나아가 지금도 독도는 자신들의 땅이라며 교과서에 이를 반영,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이 전범 국가로서 유럽에 지금도 사죄를 표명하는데 비해 일본은 지금도 ‘침략만이 이익을 만든다’는 논리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다.

2019년 7월 1일 일본의 경제 침략으로 알려진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출 규제 이유는 단순하다.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아베 정부의 태도에서 3권 분립과 민주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몰상식이 느껴지며 정치 논리로 경제를 압박하는 그들의 침략 행위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준수하려는 정상 국가의 모습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무리할 정도로 일본이 대한민국 경제를 봉쇄하고 압박하는 의도를 확인해봐야 한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770회 우리를 침략하면서 터득한 학습 효과는 간단하다. 일본과의 대립이 결코 가능하지 않음을 대한민국의 지배층에 인식시키며 국론을 분열시키면 자연스럽게 목덜미를 쥘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과거 칼과 총으로 압박했다면, 현재는 국가 경제성장의 버팀목인 반도체 부품의 수출품목 제한으로 압박하고 있다. 그 결과 국론은 일본과의 대립 또는 화해로 분열될 것이고, 이를 통해 한국경제 침체 위기를 조장할 수 있고 결국 정부의 신뢰도까지 꺾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다. 그러므로 일본은 단기간에 이 행패를 끝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부메랑이 될 아베의 경제 침략

일본의 의도대로 언론은 양극단으로 갈렸다. 일부 언론은 당장 대통령이 아베를 만나 국민을 위해서라도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내 경제 및 기술력으로 일본을 당해내지 못하기에 일본에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일본 여행 취소에 대해 성급한 대응이라고 훈계하는 칼럼도 등장했다. 이에 반해 일부 언론은 강경하게 대립, 일본의 제국주의 망령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예상한대로 결국 자신들의 경제 침략으로 정치권 및 언론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침략은 결국 부메랑이 될 것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들이 최근 아베 정부의 수출품목 규제와 삼성에 대한 압박을 걱정하는 이유는 또 다른 측면에 있다. 대한민국은 위기 상황을 맞이하면 국가적으로 단단하게 결집, 침략 행위를 역사적 교훈으로 두고두고 새기며 또 다른 대응 방향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일본 경제에 우호적이었던 국내 기업가에게까지 극일(克日)을 불러 일으켰으며 스포츠에서만 보여준 한국 국민들의 반일(反日)의지를 일본 전방위로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한국 국민의 의지를 건드렸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판단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년간 기초 및 원천기술 강화, 산업생태계 강조, 소재부품 수입 다변화 등은 경영학, 공학 등에서 수없이 논문 및 보고서로 쏟아져 나왔으나 국내 정책기관 및 기업에서는 당연한 얘기라며 이를 깊이 있게 경청하지 않았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침략으로 당장 국내 대기업부터 일본을 경계하고 수입 다변화, 원천기술 투자 등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국민들 역시 일본 제품 및 일본 여행을 전국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제 침략이 단기적으로 유리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그들은 악수(惡手)를 두었다.

과거 필자가 만난 일본인 교수는 “한국의 냄비근성은 강한데 유독 일본과의 역사는 지독할 정도로 잊지 않고 기억한다”며 한국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일본에게도 좋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일본의 경제 침략은 역설적으로 국내 기업의 혁신과 국민들의 저항 및 응징 의지를 초래하기에 이번 경제 침략 행위는 일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침략 행위는 언제나 몰락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2019년 일본의 경제 침략 역시 동일한 결말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명료하다. 역사는 늘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트럼프의 '각주' 아베, 자유주의의 부고를 쓰다

[장석준 칼럼] 한-미-일 반공 동맹의 분열, 촛불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


일본 자유민주당 정부의 대한국 수출 규제로 한일관계가 최대 긴장 상태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이유 삼아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생산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수출 품목 규제에 착수했다. 한국에서는 이에 맞서 시민들이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나섰고, 정부 역시 강경 대응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에 없던 일인지라 파장 또한 전례 없다. 요 며칠 새 국내 언론은 온통 이 사태의 보도와 분석 일색이다. 극우파인 아베 신조 총리의 국내외 정치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가 하면, 대법원 판결 이후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과연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에 대해서도 여러 전망을 내놓고, 일본산 부품-소재의 국산화 가능성을 놓고도 갑론을박을 벌인다. 지난 주말부터는 미국의 중재 가능성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렇게 쏟아지는 기사와 칼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이번 사태가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는 도무지 오리무중이지만, 더는 논의할 필요도 없이 이미 명백해진 사실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한 교리의 사망 선고가 그것이다. 그런데도 부고 기사 하나, 추모 칼럼 하나 없다.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외로이 생을 마친 그 사망자는 바로 경제적 자유주의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사망 선고  

칼 폴라니의 고전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홍기빈 옮김, 길, 2009)은 한 가지 커다란 물음으로 시작한다. 19세기의 백년평화 뒤에 어찌하여 양차 대전과 대공황 같은 대혼돈의 시기가 도래했는가?  

유럽인들은 19세기를 '백년평화' 시대라 불렀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로는 적어도 유럽 한복판에서는 커다란 전쟁이 없었다는 것이다.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들은 이 백년평화의 밑바탕에 경제적 자유주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각 나라 경제가 자유시장체제로 묶여 있는 한, 열강은 서로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폴라니의 대작은 이런 믿음이 거대한 환상에 불과했음을 파헤친다. 열강 간 평화의 토대라 믿었던 자유시장체제야말로 20세기 초에 전 지구적 환란을 몰고 온 원흉임을 폭로한다. 한 세대에 걸친 이 환란이 종지부를 찍는 것처럼 보이던 1944년에 폴라니는 자신의 저작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한 세대 뒤에 인류는 다시 100년 전 모험을 반복하는 길을 선택했다. 19세기를 지배하던 경제적 자유주의의 깃발을 창고에서 끄집어내 또 다시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이 흐름에 앞장 선 이들은 전 지구적 자유시장체제가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를 열고 있다고 외쳤다. 이제는 1차 산품을 수출하는 지역과 공산품을 수출하는 지역의 자유 무역 정도가 아니었다. 국경을 횡단하는 제조업 생산 사슬이 구축됐다. 특히 반도체 같은 제3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에서 이런 초국적 생산 사슬이 나타났다. 이렇듯 지구 경제가 권력 정치와 분리돼 자기만의 합리성에 따라 작동하고 있으니 이는 또 다른 백년평화 시대의 시작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면, '차이메리카'를 보라. 이게 불과 몇 년 전까지 주류 자유주의의 주장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두 번째 전성기가 첫 번째 시기보다 더 빠르고 급격하게 붕괴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중이다. 물론 이 드라마의 주연은 미국의 트럼프 정부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 경제 전쟁을 벌이면서 '차이메리카' 질서를 미련 없이 허물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행태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바탕으로 지구 자본주의를 칭송하던 자유주의자들을 가장 우스꽝스러운 광대로 만든다. 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다만 "포퓰리스트들"을 저주하는 단말마의 외침뿐이다.

한데 이번에 일본 자유민주당 정부도 이 드라마에서 조연 한 자리를 꿰차고 나섰다. 한국에 대한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은 단지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허구를 무너뜨리는 또 다른 일격이다. 트럼프를 모방하면서도 오히려 트럼프보다 더 잔인하게 내리친 한 방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보다 더 노골적으로 초국적 생산 사슬에서 자국이 차지하는 지위를 무기로 삼았다. 더구나 대상이 한국이고, 수단은 반도체 산업이다. 미국의 상대인 중국은 어쨌든 자유주의의 철저한 신자는 아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중국 경제 전쟁은, 물론 위선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유주의의 수사로 치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상대인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어찌 보면 어리석을 정도로 경제적 자유주의 교리의 신자를 자처한 나라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성공한다면, 이는 자유주의의 충직한 신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보여주는 세계사적 사례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여러 산업 중에서도 하필 반도체를 노렸다. 반도체 생산은 정보화 시대의 모든 첨단산업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각국의 안보와도 직결돼 있다. 그럼에도 그 동안은 마치 안보 리스크는 없을 것처럼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국제 분업을 통해 생산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은 이 불문율을 깨뜨렸다. 생산 사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정치-군사적 힘으로 전용할 수 있음을 스스로 '선언'해버렸다. 이제 세상은 전과 같을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가 부품-소재 국산화를 부르짖는 것처럼,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더는 기존 생산 사슬을 당연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세계사 교과서의 한 모퉁이를 차지할만한 사건이라 할만하다. 진주만 공습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세계인의 뒤통수를 친 점에서는 가히 그 재연이라 하겠다. 인류에게 22세기에도 생존이 허락된다면, 그때 사학자들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두 번째 죽음을 다루는 장에서 아베 신조의 이름을 결코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주인공인 장(章)의 각주로라도 말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죽음을 부른 '1965년 체제'의 균열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경제적 자유주의에 따른 질서가 이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다면, 지난 몇 십 년 동안은 과연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가? 바꿔 말하면, 이렇다. 그래도 한 세대 넘게 지탱하던 질서가 지금에 와서 이렇게 무참히 파기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진짜로 강제 징용 피해 배상 문제 때문인가? 1965년에 조인된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 피해 청구권은 소멸했는데 한국 대법원이 이러한 '1965년 체제'에 어긋나는 판결을 내리는 바람에 정말 이 사달이 난 것인가? 그래서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이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가 한 발 물러서기만 하면 지금의 이 경제 전쟁 분위기도 없던 일이 될 수 있는가?

오직 끊임없이 떠들어대기 좋아하는 지식병자들만이 이 물음에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큰 사건은 큰 흐름 속에서 봐야 하는 법이다. 자잘한 이유를 따져봐야 소용없다. 지구 위의 어느 나라 정부도 위 물음들이 전제하는 과거사 논란 정도로 국제 경제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렇게 보는 것이야말로 아베 정부를 비선 실세의 꼭두각시나 극우 미치광이쯤으로 무시하는 태도다. 

나는 법률가들이 말하는 '1965년 체제'를 그들이 뜻하는 것보다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해야만 이 사태의 맥락을 제대로 짚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체결이란 일제 식민 지배 책임을 어정쩡하게 정리하고 국교를 수립한 사건이기도 했지만, 미국의 뜻에 따른 한국-일본 간 동맹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것은 소련-중국-북한이라는 동아시아 사회주의 블록에 맞서는 정치-군사-이념 동맹, 한 마디로 반공 동맹이었다.

이 반공 동맹은 최근까지도 강력히 존속했다. 물론 소련이야 지도에서 사라졌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남았고 또한 북한이 남았다. 중국이야 지구 자본주의에 스스로 합류했기에 오랫동안 노골적으로 적대시할 수 없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 "핵 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은 동아시아에서 미국-한국-일본의 동맹이 21세기까지 지속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이 반공(반북) 동맹은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자유주의가 순탄하게 확산되고 작동하게 해주는 안전판이었다. 사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어느 지역에서든 이렇게 그다지 자유주의적이지 못한(illiberal) 정치-군사-이념 질서와 결합해야만 안정을 구가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21세기까지 끈질기게 잔존한 반공 동맹이 그런 역할을 했다면,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결합된 위로부터의 유럽 통합 과정이 비슷한 구실을 했다.

반공 정치-군사-이념 동맹과 경제적 자유주의의 동시 발전, 이것이 동아시아의 '1965년 체제'다. 만약 이 체제가 계속 안정적으로 작동했다면, 일본 정부가 지금처럼 경제 보복을 단행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한일협정 해석과 한국 측의 그것이 충돌하더라도 반도체 관련 품목 수출 규제까지 선택지에 놓고 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1965년 체제의 두 축 가운데 하나인 정치-군사-이념 동맹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측할 수 없었던 어떤 충격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 그 충격이란 다름 아닌 2016-17년 한국의 촛불 항쟁이다.  

그 전까지도 반공 동맹의 연장인 반북 동맹은 동아시아에서 안정을 구가하고 있었다. 북한은 북한대로 핵 미사일 실험을 착착 진행했고, 미국-한국-일본, 세 나라는 이를 빌미로 철저히 공조했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네 나라에 동시에 들어선 세습, 혹은 준 세습 정부(북한의 김정은, 남한의 박근혜, 일본의 아베 신조, 중국의 시진핑)가 이러한 세력 균형을 고정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2016년 가을까지도 그랬고, 이후에도 이것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느닷없이 촛불 항쟁이 일어나 네 세습 정부 가운데 하나가 무너졌다. 이를 통해 새롭게 들어선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협상장에서 만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돌연 미국, 북한, 남한이 참여하는 협상 무대가 열렸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이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물론 아직까지 일본 지배 세력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실질적 결정이나 합의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등장한 정부가 전혀 개입의 여지없이 열어놓은 한반도 협상을 바라보며 이들이 1965년 체제의 생사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기존 체제가 무너진 게 확실하다면, 이후 국면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뭔가 주도권을 발휘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주도권은 오직 행동할 때에만 행사될 수 있다. 일본 정부에게는 그런 어떤 '행동'이 간절히 필요했고, 지금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란 어쩌면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한 경제 보복뿐이었을 것이다.

뜻밖에 중요해진 우리, 그러나 과연 그만큼 준비돼 있는가?

지금까지의 진단이 조금이라도 진실의 한 자락을 잡고 있다면,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가 뜻밖에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쩌면 촛불 항쟁의 주역임에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사건이 지금 동아시아에 열린 변화와 재편의 기회 혹은 소용돌이의 중대한 계기 중 하나였음을 촛불 시민 자신만이 실감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뒤늦게야 한국의 시민들은 놀랐고, 아래로부터의 불매 운동으로 답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과연 이것이 사태의 핵심을 겨냥한 대응의 전부일까?

그간 그나마 동아시아의 한 쪽 편을 인도하던 가치와 지향, 규범은 반공(-반북) 동맹의 이완과 경제적 자유주의의 돌연한 사망 선고, 즉 1965년 체제의 와해로 이제 과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혼돈의 시작이다. '문명'을 다시 묻고 재정초해야 할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 답의 단초를 알고 있다. 우리가 뜻밖에 중요해진 것이 촛불 광장의 '민주주의' 때문이라면, 이 민주주의야말로 우리가 내놓을 답의 단서다. 단순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말고 시민이 주도해 자유, 평등, 연대의 내용을 채워가는 민주주의 말이다.

작금의 불매운동에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그림자는 남아 있다. 하지만 촛불 이후 민주주의가 하나의 문명이라 할 만한 수준으로 확장되고 풍부해지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뜻밖의 질시와 공격 속에서, 난민을 향한 공포와 혐오 속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 속에서 민주주의는 길을 잃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우리 내부의 장애물을 극복하지 않고서 우리가 과연 일본 제국주의-파시즘 부활이라는 바깥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뜬금없는 결말이라 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경제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고민거리다. 부품-소재 국산화도 필요하지만, 필요한 게 정말 그것뿐일까? 저 옛날 우금티의 안타까운 무장 상태를 슬퍼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지만, 우리의 혼은 과연 그때의 동학만큼 깨어 있는가? 우리에게 정녕 "사람은 하늘"인가?



모종의 불매가 필요하다면 '김앤장'부터 하자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노동기본권에 구멍 뚫어 댐 무너뜨리나


"시급한 국산화를 위한 신속한 실증 테스트 등으로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경우 특별연장근로를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연구개발 인력 등의 재량근로제가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재량근로와 관련한 지침 등도 제공" 

지난주 금요일(1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 결과를 보면서 또다시 타고난 삐딱함이 발동했다. ‘특별연장근로’라니, 한국에 저런 제도가 있었나? 나름대로 노동법 관련 웬만한 쟁점은 다 꿰고 있다고 자부해온 터라 자존심도 함께 발동되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천재지변? 

어렵지 않게 검색질 한 번으로 팩트 체크가 가능했다. 그래서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여하튼 그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근로기준법 제53조 4항에 이렇게 규정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 조항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과연 ‘특별한 사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 자연재해(지진·홍수·낙뢰 등과 같은 천재지변)가 발생하거나 또는 △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른 ‘재난’이 발생하여, 이를 수습하기 위해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경우를 의미한다.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제9조 2항)

이런 법률적 쟁점의 경우 '어떤 경우에 되는가'라는 지점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 안 된다는 것인가’를 살펴야 이해가 쉽다. 이를테면 단순한 업무량 증가 또는 일시적 필요에 의한 연장근로는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기계고장 또는 우기(雨期)나 강풍으로 인한 작업 지연 및 공사기간 단축을 위한 경우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과 시행령·시행규칙 어디를 뜯어봐도, 그리고 각종 포털에 소개된 법률 해석을 보더라도 일본의 수출규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미국 트럼프 정권이 한국산 자동차에 관세를 25% 매기려고 할 때에도 이 사태를 천재지변이나 재난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을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신박한 법 해석 : ‘사회재난에 준하는 사고’?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걸 ‘재난’으로 둔갑시키고 말았다. 22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 규제를 "직접적인 재해‧재난은 아니나 '사회재난에 준하는 사고’에 해당한다"는 논리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고 한다. 재난은 아니지만 재난에 준하는 사고다? 박근혜의 창조경제가 울고 갈만한 신박한 법 해석 아닌가.



나. 사회재난 :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항공사고·해상사고 포함)·화생방사고·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와 에너지·통신·교통·금융·의료·수도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염병 또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른 가축전염병의 확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피해


내친 김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에서 정의하고 있는 ‘사회재난’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화재·붕괴 등의 사고로 국가기반체계가 마비되는 경우를 ‘사회재난’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수출규제를 어떻게 ‘사회재난’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국유화된 기업도 아닌 반도체 업계 문제를 ‘국가기반체계 마비’라니?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을 ‘사회재난에 준하는 사고’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경우 정부는 노동자와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각종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장근로 제한’이라는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특별 연장근로를 허용하는데 사용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사회재난이라는 규정을 빌미로 앞으로 온갖 기본권 제한 조치들이 줄을 잇게 될 것이다.

소재 국산화에 일자리 창출도 가능한 길을 마다하고 


고용노동부가 적시한 특별연장근로 허용의 적용대상을 보면 일본 수출규제 대상품목의 △시급한 국산화 △신속한 실증 테스트가 필요한 경우라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상품목의 국산화와 제3국 대체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특별연장근로 허용'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가? R&D 역량과 테스트 관련 인력을 추가 고용하는 대책도 가능한데 말이다. 

이들 대상품목의 국산화를 위한 기술을 갖춘 한국의 업체들은 손가락에 꼽을 수준이다. 게다가 그런 업체들은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직후 주식시장에서 연일 상한가를 치며 돈벼락을 맞고 있다. (포털에서 '포토레지스트 관련주' '에칭가스 관련주' '폴리이미드 관련주' 등의 키워드로 검색만 한 번 해보시라.) 

만일 이들 업체가 국산화 기술개발에 성공할 경우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세계시장에 파열구를 내며 엄청난 떼돈을 벌어들일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 업체가 자기 자본을 투자해 R&D 역량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이 정당한 일 아닌가. 타국으로 수출 길까지 열리게 되면 어차피 이들 업체 입장에서 R&D 역량이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힘을 주어 강조하는 소재 국산화에다 일자리 창출까지 가능해진다. 그런데 특별연장근로의 길을 여는 순간 일자리 창출은 날아가고, 소중한 R&D 역량들만 밤샘노동과 특별연장근로에 갈아넣게 된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주식시장에서 연일 대박이 터지며 돈을 긁어모으는 업체들인데 말이다. 

디테일에 숨은 악마 : 반도체 관련 모든 노동자로 확대 가능

그런데 고용노동부 발표 내용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심각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산화를 위한 'R&D', 그리고 제3국 대체 조달시 '테스트'를 위해 집중근로가 필요한 노동자라는 표현이다. 언뜻 보면 수출규제 대상물질의 개발에만 관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도체 생산라인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가 가능하다.

R&D나 테스트를 위해서는 생산 라인에서 돌려보는 것이 필수적이며, 결국 반도체 생산 관련 업무가 모두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 수입에 90% 이상 의존하고 있는 리지스트(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감광액인데, 직접 생산과정에 적용한 후 식각(에칭, etching) 작업까지 하고 다시 돌리는 전 과정을 거쳐야만 개발이 가능하다.

물론 특별연장근로를 위해서는 해당 노동자의 동의를 거쳐 어떤 경우에 필요한지를 노동부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으나, 진짜로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지 노동부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어떤 명목이던지 ‘대상물질 개발을 위한 테스트’라고만 기입하면 무사통과가 된다. 

가동률 대책이 아니라 연장근로 확대? 

일본의 수출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의 원료 공급이 끊기게 되므로 반도체 최종조립을 담당하는 한국 공장의 생산물량이 줄어든다. 즉, 반도체 공장 가동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가동률 저하 관련 대책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는 대책이다. 앞뒤가 안 맞는 정책 아닌가?

물론 일본의 수출 규제 소식이 들린 순간부터 재고물량 비축이 시작되어 아마도 2~3개월 가량은 재고를 활용한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단기’ 대책일 뿐 장기적으로는 가동률 저하에 따른 고용불안 해소 대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무리한 ‘재난’ 해석에 이은 장시간 노동 허용 대책 아닌가.

최근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나서 '애국 vs 이적' '친일' 논란을 이끌고 있는 상황은, 조만간 문재인 정부가 내놓을 "허리띠를 졸라매자" "노동자들이 고통분담에 나서라" 공세의 예고편이자 스포일러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벌어질 상황에 특별연장근로·재량근로 등 장시간노동을 갈아넣어 해결하려는 것이다.

노동자들 죽어나가건 말건? 

"제품 개발을 위한 R&D 등 꼭 필요한 부분에 한해 화학물질 등에 대한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필요시 신규 화학물질의 신속한 출시도 지원하는 방안 추진"

그런데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산화나 제3국 대체 과정에 필요한 화학물질들이 무엇인가. 대표적인 물질이 포토레지스트나 에칭가스에 사용되는 불산 물질들이다. 불산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그리고 구미공단에서 불산가스 유출사고가 벌어지며 노동자들을 사망으로 몰아넣은 바로 그 화학물질이다. 

故 김용균 노동자 장례를 치른지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위험천만한 △화학물질 인허가 기간 단축 △신규 화학물질 신속한 출시를 지원한다는 입장이 나온 것이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수많은 타협으로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천신만고 끝에 김용균 법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 시행령·시행규칙을 개판으로 만들더니 이제 일본 수출규제를 빌미로 김용균 법 자체를 무력화 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노동기본권에 구멍 뚫어 댐을 무너뜨리려 

특별연장근로 허용과 재량근로 역시 주 40시간제를 근간으로 하는 연장근로 합산 최장한도 52시간을 무너뜨리는 방향이다. 게다가 일본의 수출 규제는 이제 서막이 시작되었을 뿐이며, 조만간 화이트리스트 배제 그리고 한국인의 일본 기업 취업 규제나 자금 관련 규제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특별연장근로 허용과 재량근로 지침은, 다른 정책수단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수출규제와 반일 감정에 편승해 노동기본권에 작은 구멍과 파열구를 내겠다는 것이다. 작은 구멍을 통해 이후 이어질 일본의 2차, 3차 공격이 벌어지면 이 구멍을 더 키워 노동기본권이라는 댐 전체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재벌과 자본가들에게 물어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노동자들에게 책임과 대가를 전가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분명 잘못된 것이며, 이 조치의 출발점이 된 강제노역 사건 판결에 대한 일본의 항의도 옳지 않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1910년 일본 제국주의 한반도 강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부당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아베 정권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군국주의·제국주의·패권주의에 온힘을 다해 맞서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노동기본권에 구멍과 파열구를 내는 방식이라면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허리띠를 졸라매자" "노동자도 고통분담에 동참하라"는 목소리로 또다시 노동개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진짜 아베 정권에 맞서기 위해 국내에서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면, 특별연장근로나 재량근로라는 구멍을 뚫을 게 아니라 강제노역 사건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변호한 김&장부터 손을 봄이 마땅하다. 김&장 출신으로 청와대 또는 고위 관직에 앉아 있는 자들부터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 점에서 애국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이 김&장 출신을 민정수석실에 두고 있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최근 조국 민정수석이 극찬했던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재벌과 대기업들 대부분이 자신의 법률자문으로 김&장과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점도 가만히 두고 볼 성격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현재 상황에서 모종의 불매운동이 필요하다면 김&장에 대한 불매부터 시작됨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