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미·중 무역전쟁 본질은 하나부터 열까지 북한? - 중국, 위기의 고령화냐 기회의 고령화냐

일취월장7 2019. 6. 5. 09:42

미·중 무역전쟁 본질은 하나부터 열까지 북한?

미·중 무역전쟁은 양국 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면에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국 공화당의 로드맵이 있다. 미국 중간선거와 타이완 지방선거도 영향을 미쳤다. 무역협상은 엇나갈 수밖에 없었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9년 06월 04일 화요일 제611호



미·중 무역전쟁을 이해하려면 지난해 하반기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두 개의 선거가 치러졌다. 하나는, 지난해 11월6일(현지 시각) 미국 중간선거다. 다른 하나는 11월24일 시행된 타이완 지방선거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공화당은 상원 과반수를 지켰지만 하원 주도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한다. 당시 상황에서 볼 때, 하원 구성이 마무리되는 올해 2월쯤이면 민주당이 각 상임위 위원장을 모두 차지하게 될 것이었다. 물론 민주당도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인) 제재에 기초한 대북 압박 정책을 지지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 경우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당이 하원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기 전에 북한과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최선이었다. 즉 하원 구성이 마무리되는 지난 2월 이전에 비핵화 협상의 윤곽을 도출해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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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맨 왼쪽)이 2018년 12월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난해 남북 정상 간의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이어 10월7일에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까지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후속 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8일 뉴욕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북측 대표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갑자기 불참을 통보했다. 그 뒤 북·미 간 협상 채널이 중단되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당시까지 북측 파트너와 소통 채널조차 만들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압박 수위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 무기 수출 분야 전문가인 브루스 벡톨 미국 에인절로 주립대학 교수가 방한해 ‘북한이 매년 중동과 아프리카로 3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출해 김정은 위원장 통치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라고 폭로한 시점도 지난해 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북한의 무기 수출’이 새로운 대북 압박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은 또한 공해상에서 북한이 정유 불법 환적으로 이미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에서 정한 ‘연간 5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초과했다고 지적하면서 대북 원유 공급 문제를 이슈화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역대 정부와 다른 점

미국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도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북한을 압박할 수 없다. 미국은 해상에서 이뤄지는 북한의 정유 환적이나 무기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을 통해 육로로 이뤄지는 (북한으로의) 원유 공급과 (북한으로부터의) 무기 수출은 통제하기 어렵다. 미국의 해법은 간단했다. 중국이 북한에 공급하는 원유량을 줄이면 된다. 또 중국이 북한에 열어준 육로 수출 길을 차단하면 된다.

과거에는 북한이 주로 석탄 수출로 통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고 의심받았다. 노동당 39호실이 석탄 수출로 매년 10억 달러 정도의 수입을 거뒀다. 이 경로가 2017년 8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2371호로 차단되었다. 남은 경로는, 원유와 무기 판매를 통한 수입이다. 이런 수입 덕분에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틸 수 있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었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하려면 통치 자금의 원천인 원유와 무기 판매에 압박을 가해야 했다. 이 같은 수단이 유효하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중국이 협조할 리 없었다. 중국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와 무기 수입에 손을 대는 것은 북·중 관계의 파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엔안보리 제재 사항인 ‘북한에서의 의류 임가공 금지’ ‘북한 수산물 수입 금지’ 등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결국 미국이 자신의 의지에 중국을 복속시키려면, 중국을 압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일환이 바로 무역전쟁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겉으로는 양국 간의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면에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압박을 가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무역 불균형 시정의 관점에서 상황을 본다. 북한에 대한 압박과 관련된 인식은 결여되어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미국이 북한과 관련된 요구를 제기하는 경우 주로 ‘협조 요청’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이로 인해 중국 측은 그 요구의 무게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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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에 압류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 미국 법무부가 5월9일 사진을 공개했다.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이야말로,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다른 역대 정부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미국 공화당은 2016년 대선 전 정강정책을 발표했다. 그해 7월18일 공화당은 대선 후보로 트럼프를 확정한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었을 때 펴나갈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북한과 중국에 관한 내용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이란 항목에 들어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시사IN> 제585호 ‘미국, 북한 볼모로 중국 잡는다’ 기사 참조).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타이 등 조약 동맹국들과 경제적·군사적·문화적 유대를 가진 태평양 국가로서 그들과 함께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 “김씨 가문이 이끄는 노예국가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핵 재앙으로부터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긍정적 변화를 앞당기도록 중국 정부에 촉구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리더십을 확보한다고 하면서 모두 북한 관련 내용으로 채워졌다. 첫 번째는 ‘북한 주민의 인권 확립’, 두 번째는 ‘중국의 협조를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이다. 세 번째는 핵문제 해결 방법으로서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다. 즉, 2016년 7월의 시점에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확립하기 위해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모두 북한 문제 해결이었던 셈이다. 그 수단은 ‘중국의 협조’였다. 바꿔 말하자면,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중국이 협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라는 이야기다. 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무역전쟁이라 할 수 있다. 먹이사슬 구조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미국 공화당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서 정강정책을 지키도록 트럼프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협조하도록 시진핑 주석을 압박한다. 시진핑 주석은 다시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압력을 넣는 구조다.

이런 와중에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협조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오히려 방해하는 사태가 지난해 여러 차례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해 5월 다롄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이다. 그 뒤부터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믿고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고 미국은 판단했다. 지난해 6월 미국은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 관세전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중국은 보복관세로 맞대응하고, 심지어 9·9절 때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까지 추진하는 등 미국에 계속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했다. 이 상품들에 대한 관세는 2019년 1월1일부터 25%로 인상될 예정이었다.

무역전쟁 중에 치러진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게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을 서둘러야 하는 형편으로 몰렸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도 폭주하게 되었다. 트럼프 주변의 전략가들 사이에서 중국을 압박할 추가 카드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다.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명선인 원유와 무기 공급 루트를 차단하게 만들려면, 중국을 더욱 압박할 추가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미국은 무역전쟁을 벌일 때부터 중국의 대응 여하에 따른 시나리오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중에는, 지난 5월5일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언급한 대로 ‘추가로 325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을 선정해서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관세를 부과한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과 합치면 사실상 중국의 모든 대미 수출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된다는 이야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거론된 내용 중에는 중국에서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상품들 역시 모두 관세 인상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도 있다. 무역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의 수출업자들이 반제품 형태로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로 보내 완제품을 만든 뒤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이 액수도 약 2000억~3000억 달러 수준이라 하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이래도 중국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중국 기업이 미국이나 유럽 등의 은행에 빚진 채무를 모두 상환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주특기인 환율이나 금융 분야로 확대하기 전인 실물거래 단계에서 동원할 수 있는 ‘빅 카드’들이 이처럼 많이 남아 있다.

‘타이완 카드’ 무산되면서 무역전쟁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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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가운데)이 지난해 8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했다.

중국의 대북 압력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통상 압박 수단을 거론하긴 했지만 구상 단계로 여겨졌다. 타이완 카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완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을 흔들 뇌관이다. 타이완 독립에 적극적인 차이잉원 총통의 워싱턴 방문을 정식으로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시진핑 주석을 흔들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24일 타이완 지방선거에서 예상외로 국민당이 약진하고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이 참패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당분간 타이완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무역전쟁을 통한 정면 돌파의 압박감이 더 커졌다고 할 수도 있다.

미국에게 민진당 참패는 타격이었다. 상황 관리를 위해 당분간 휴전이 필요했다. 지난해 12월1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25% 부과 시점을 2019년 3월1일로 90일 유예하는 조치가 취해진 배경이다. 그런데 같은 날 미국 수사 당국의 요청으로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되었다. 타이완 카드를 잃은 대신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을 상징하는 화웨이 카드를 확보한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국이 보인 모습은 지난해 여름 미국에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맞서던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8월의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 등 중국공산당 원로들이 시진핑 주석에게 미국에 맞서지 말고 유화적으로 접근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 결과로 본다. 지난해 12월19일 <홍콩 경제일보>는 시진핑 주석이 대미 강경 노선에서 전술적 후퇴를 의미하는 ‘21자 방침’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대항하지 않고, 냉전을 종식하며, 점진적 지속적으로 개방을 향해 나아가고, 국가의 핵심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다(不對抗 不打冷戰 按步伐開放 國家核心利益不退讓)’는 내용이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이뤄지는 의류 임가공이나 수산물 교역, 중국인들의 북한 단체관광을 중단하고 원유 공급을 대폭 삭감해서라도 김정은 위원장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라는 주문이 구체적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졌다.

중국도 노력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지난 1월8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과감한 비핵화 계획’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2월27~28일 하노이 회담에서 보인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과감한 비핵화’는 영변으로 축소되었다. 북한은 그 대가로 미국에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해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해제 요구는 시진핑 주석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처지에서는, ‘중국에 25% 관세까지 유예해주면서 핵문제 해결에 건설적 협조를 요구했는데,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을 앞세워 교란 행위만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무역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협상 결렬을 선택한 이유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협상 결렬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트럼프가 중국에게 약하다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민주당 후보들로부터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러스트 벨트 유권자도 의식한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6월 05일 수요일 제611호



세계 1, 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10여 차례 무역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10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전격 인상했다. 이와 함께 추가로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도 고율 관세를 부과할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산 제품들에 대해 5~25%의 보복관세를 부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지난해 서막이 오른 양국의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느낌이다.

급기야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수출 제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런 조치에 부응해서 구글은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구글에 이어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의 다른 IT 거대 업체들도 부품 공급을 중단할 태세다. 중국공산당의 기관지 격인 <환구시보>는 화웨이 제재에 대해 “미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타협에 실패할 경우, 농민 유권자들이 집중돼 있는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미네소타 등 이른바 ‘팜 벨트(farm belt)’ 지역의 표가 떨어져나가고 주식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협상 결렬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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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5월20일 펜실베이니아주 몬투어스빌에서 열린 2020년 대선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먼저, 미국 경제의 실적이 최근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반세기 만에 최저이고 올해 상반기의 국내총생산 성장률 역시 지난해 대비 3.2% 상승하리라 예측된다. 이에 따라 무역 갈등에 따른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나름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고 보인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적 프리즘을 통해 미·중 무역분쟁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 때 백악관 선임고문을 지낸 대중 강경파 스티브 배넌은 “미국이 중국에 부드럽게 나가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정치가 경제를 추동한다”라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실제로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지지부진한 미·중 무역협상에 조바심을 보이며 참모들에게 협상 타결을 종용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2월 미·중 양측 협상가들이 최종 문안 작업을 벌이던 상황에서 트럼프는 미국 측 협상가들에게 중국 시진핑 주석과 자신의 개인 별장인 마러라고에서 만나 협정문에 서명하는 방안을 거론할 정도로 미·중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4월 들어 분위기 변화가 감지됐다. 당시 미·중 양국은 막판 타결을 위해 150쪽에 달하는 잠정 합의문까지 작성했지만 마지막 7개 핵심 조항은 여전히 답보 상태였다. 핵심은,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강요 등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 같은 조항을 중국 측이 법제화하고, 이를 합의문에 명기하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였다. 중국은 이런 내용을 법률이 아니라 ‘국무원 행정명령’에 담겠다고 맞섰다. 이 문제로 진통을 겪자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경제적 요인 외에 4월 하순이라는 정치적 시점을 주목한다. 4월25일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면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두 번이나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에 대해서는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가 대권 도전을 선언한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여러 차례 올리며 극도의 경계감을 드러내는 등 바이든 전 부통령을 민주당 라이벌로 기정사실화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중국에 유화적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매파적 이미지로 자신을 부각하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양보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의 요구가 최종 협상안에서 후퇴했다는 내용이 보도되면 ‘트럼프는 중국에게 약하다’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민주당 대권 후보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대중 무역협상에 관한 한 강공 모드가 대세다. 샌더스 후보는 당선하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불공정 무역관행을 손봐주겠다는 등 중국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중국 경제 전문가인 데렉 시저스 박사는 “미·중 무역협상에서 취약한 합의문이 나올 경우 누가 민주당 후보로 나서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 맞을 수도


미·중 무역협상 파국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법도 흥미롭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보복관세로 피해가 불가피한 농민들에게 향후 보조금 지급을 통해 충격을 흡수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대선에서 농민 유권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약 150억 달러에 달하는 농가 피해액을 보전해주겠다”라고 말했다. 미·중 교역액 가운데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과 2013년 각각 260억 달러에 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에는 195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은 ‘팜 벨트’보다 오히려 제조업 중심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노동자를 더 의식했을 수도 있다. 백악관 참모들은 대중 강경 방침이 내년 대선 때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 러스트 벨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제조업체들 태반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 주장대로 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돌아오게 만들려면 대중 관세 인상도 나쁠 게 없다는 것이다. 무역 갈등으로 인해 해당 지역도 단기에는 피해를 입겠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호황인 이 지역들의 경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만큼 심각하지 않으리라는 낙관론을 깔고 있다. 러스트 벨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재선하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지역이다.

문제는 미·중 무역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고 양측의 보복전이 확대되면서 장기전으로 가는 경우다. 일반 소비자들까지 큰 피해를 보면서 2020년 대선의 표심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이치 증권의 토르스텐 슬록 선임 분석가는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하면서 “앞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백화점에 가서 상품 가격이 종전보다 25%(미국이 중국 상품에 부과한 관세율)나 갑자기 오른 것을 발견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라며, 내년 대선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법이 틀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경제 부문의 전문가들은 6월 하순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주목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만나 최종 담판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협상이 결렬된 직후 트위터에 “시 주석과 나와의 관계는 아주 훌륭하고, 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대중 관세는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철회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라며 협상 여지를 남겼다.


위기의 고령화냐 기회의 고령화냐

2018년 기준으로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2억4949만명에 이른다. 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는 중국은 양로 시스템 개선, 관광 양로 등 실버산업을 창출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고 한다.

베이징·양광모 통신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6월 05일 수요일 제611호
중국이 늙어가고 있다. 과거 중국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구가 가져오는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려왔다. 소위 ‘인구 보너스’(노동력의 증가로 인한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생산가능인구의 절대적인 수와 꾸준한 증가는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의 힘이었다. 이런 중국에 생산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가 놓여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국의 총인구(홍콩과 마카오, 해외 화교 인구 제외)는 13억9538만명이다. 이 중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2억4949만명,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억6658만명에 이른다. 각각 전체 인구의 17.9%, 11.9%를 차지한다. 중국은 60세 이후를 노인으로 규정한다. 50대 중반부터 60대까지 인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베이비붐 세대이다. 이들은 1980년부터 시행된 ‘한 자녀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은 부모 세대이기도 하다. 중국 개혁개방의 일선에서 활약한 산업 역군이자 어쩌면 중국에서 형성된 최초의 중산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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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3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위는 단체 생일 축하 행사에 참석한 중국 어르신들.
중국의 노인 인구 비율은 한국(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약 14.9%)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노인층의 절대적인 수는 한국과 일본의 총인구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중국 노령화업무위원회(全國老齡辦) 왕젠쥔 부주임은 2025년이 되면 중국의 60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3억명, 2033년에는 4억명을 돌파해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이르며, 2050년 전후로 4억8700만명에 근접해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를 것이라 예상한다. 노인층을 위한 사회 시스템 구축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고령화 대책에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많다. 수요층은 급증하지만, 아직까지 서비스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첸잔산업연구원(前瞻産業硏究院)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까지 중국 양로기관에 공급된 침상 수는 약 746만 개 수준이다. 노인 인구 1000명당 평균 30개 정도다. 중국의 목표치(1000명당 35~40개)와 OECD 평균(1000명당 50개)에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난카이 대학 사회건설관리대학원 관신핑 원장은 우수한 공립 양로원은 자리를 구하기 어렵지만 일반 민간 양로원은 침상이 넘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급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양로금 운용도 걱정이다. 학계에서는 2035년이면 중국의 양로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 정부는 상황에 맞는 대응조치를 통해 충분히 지급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점점 커지는 부양비는 당연히 부담일 수밖에 없다. 베이징시 고령산업협회에서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징시 민영 양로기관 중 수익을 낸 기관은 8%에 불과하고, 65%가 적자에 허덕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로기관의 특성상 투자 규모가 크지만 투자 수익을 회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다년간 운영해야 손익 균형을 실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고령화 위기와 도전이 이어지자 다양한 계획과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먼저 중국은 향후 노인 인구의 잠재 소비력에 주목한다. 높은 수준의 경제력을 보유한 새로운 노인층이 대상이다. 중국 노령산업발전 보고서는 중국 노인 인구의 잠재 소비력이 2050년 약 106조 위안 규모로 성장하리라 전망하고 있다.

인공지능 이용한 스마트 양로산업 각광

양로 시스템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중국 정부는 3월15일 폐막한 양회에서도 민생 개선을 위한 실행 계획 가운데 하나로 양로 서비스를 강조했다. 리커창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양로 서비스업을 발전시키고, 세제 감면과 상수도 요금 지원 등의 우대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양로 서비스에 대한 외자 개방과 민간자본 투자 지원이 강화되었다.

지난 3월 중국은행보험관리위원회는 중국과 영국의 합작보험사인 ‘헝안 스탠더드라이프(Heng An Standard Life)’가 양로보험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중국의 첫 외자 양로보험사가 탄생한 것이다. 4월16일 중국 국무원은 ‘양로 서비스 발전 촉진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며 양로기관의 설립 허가제를 폐지하고 점차적으로 업계의 진입 문턱을 낮춰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로 기업의 채권 발행 규모 확대, 외자 설립 양로기관의 내국민 대우 등이 포함되었다.

이런 변화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양로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 양로(智能養老)’가 떠오르고 있다. 양로원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침상 위에 있는 노인이 음성으로 양로원의 모든 시스템을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다. 자택에 있는 노인들은 자기 집에서 양로 서비스 정보를 휴대전화 단말기에 집대성하여 자녀 호출, 응급신고, 병원 접수, 건강관리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2018년에 발표한 ‘중국 스마트 양로산업 발전보고서’에서는 2018~2020년을 스마트 양로산업 발전의 성장기로 규정하고 이 부문에 기업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어 2020년이 되면 점차 성숙기에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광과 융합된 ‘관광 양로(旅居養老)’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 지역에서 열흘, 길게는 수개월 동안 체류하며 요양하는 방식이다. 노인들은 요양과 함께 그 지역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취향과 목적에 따라 생태풍경 관광, 보양온천 관광, 역사문화 관광, 문화예술 관광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 간 분가가 보편화되고 노인도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최근 세태를 반영한 서비스 유형이다. 즉, 향유형 소비가 증가한 결과다.

중국의 대표 여행사 씨트립(Ctrip·携程)이 조사한 ‘2018년 노인 단체관광 소비확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노인 관광객 수는 이미 중국 전체 관광객의 20%를 넘어섰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대 세대들이 가장 돈을 아끼지 않는 집단으로 나타났다. 이 세대는 한 번 여행할 때마다 평균 3115위안(약 53만원)을 쓰고 있다(국내외 불문).

고령화라는 위기 앞에 놓인 중국이 오히려 실버산업 창출이라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양로 업종이 중국 내수시장을 촉진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지난 3월31일부터 4월2일 사흘간 중국 베이징 국제엑스포센터에서는 중국 국제양로산업박람회가 열렸다. 400여 개 기업이 다양한 양로 상품을 선보였다. 한국관에서는 적적한 노인 옆에서 대화하며 벗이 되어줄 수 있는 로봇인형과 한의학식 혈액순환 효과를 강조한 쑥찜질 베개 등을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중국의 고령화가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