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5일도 그런 ‘평범한’ 날로 지나갈 수 있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상이 공개되기 이틀 전인 5월13일 밤 10시, 서울 구로구의 한 술집 앞에서 취객 한 명이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남성 경찰관의 뺨을 때렸다. 해당 경찰관이 제압에 나서자, 이를 지켜보던 다른 취객이 여경을 밀치고 달려들어 남성 경찰관을 끌어냈다. 이 장면을 담은 14초짜리 영상 하나에 온라인은 ‘여경 무용론’으로 들끓었다. 5월17일 구로경찰서는 “여경이 다시 취객을 무릎으로 눌러 체포했으므로 대응이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고, 5월21일 민갑룡 경찰청장 역시 “여경의 조치가 적절했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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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가정폭력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홍익지구대 현지나 순경이 현장에서 여성을 구급대원에게 이송하고 있다. |
5월21일 오후 5시, 3팀 소속 손병목 경위와 올해 1월 임용된 ‘막내’ 현지나 순경이 순찰을 위해 41번 순마(경찰차)에 탔다. 홍익지구대에 근무하는 86명은 4개 팀으로 나눠 ‘주간-야간-휴무-비번’ 순서로 돌아간다. 각 팀에 소속된 경찰관 약 20명은 항상 2인1조로 짝을 이뤄 움직인다. 현 순경을 비롯해 홍익지구대에 근무하는 여성 경찰관은 이지은 지구대장을 포함해 총 6명으로 전체 대비 약 6.9%에 불과하다.
입사 5개월차인 현지나 순경은 현장에 나갈 때마다 허리 벨트에 테이저 건(전자 충격 총)과 삼단 봉을 찬다. 아직 실제로 사용해본 적은 없다. 현 순경만이 아니라 경력 28년의 손병목 경위도 마찬가지다. 테이저 건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고, 삼단 봉도 딱 한 번 꺼내봤다. 무기를 사용했다가 의도했던 바와 달리 피의자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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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손님과 종업원 간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홍대입구역 인근 의류 매장으로 출동한 현지나 순경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
주목할 점은 공무집행방해 사범의 74.4%가 주취자라는 사실이다. 손 경위는 술에 취한 사람 한 명당 최소한 경찰관 두 명이 붙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 명이 주취자를 제압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수갑을 채워야 한다. 그만큼 주취자 제압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손 경위는 대림동 사건을 예로 들며 “나도 주취자가 밀면 밀릴 수밖에 없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되밀면 그 사람이 넘어져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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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현지나 순경은 20명 팀원 중에 유일한 여성 경찰이다. |
다음 날인 5월22일 저녁 7시30분, 야간 근무를 맡은 3팀 경찰관들이 속속 모였다. 10분 남짓한 ‘석회(저녁 회의)’가 끝나고 출동 준비로 지구대가 분주해졌다. 현 순경은 주간 근무를 마치고 들어온 김지현 경위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른 팀이더라도 여성 동료를 보면 반갑고 편하다고 했다. 손병목 경위가 덧붙였다. “여경 비율이 좀 늘어나야 한다. 만약 거꾸로 한 팀에 여성이 19명이고 남성이 1명뿐이라면, 남성도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2019년 3월 기준으로 전체 경찰관 12만487명 중 여성 경찰관은 1만3594명으로 11.3%에 불과하다.
출동 준비를 마치자마자 신고가 들어왔다. 옷 가게에서 점원과 손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가는 도중 현 순경이 신고자인 건물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 순경은 ‘119 구급차량이 필요한 상황이냐’고 묻는 등 사건의 자초지종을 파악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현 순경은 옷 가게 점원을, 함께 출동한 류정안 경위는 옷 가게 손님을 서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피의자들이 언성을 높이거나 상대방 쪽으로 다가갈 때마다 현 순경은 앞을 막아서며 더 큰 목소리로 “선생님, (제 말씀을) 들어보세요”라며 진정시켰다. 현 순경은 양측에게 임의동행 시 피의자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고지한 뒤 지구대까지 함께 동행했다. 지구대에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마포경찰서로 사건을 인계하는 작업이 계속됐다. 한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약 2시간이 걸렸다.
잠시 쉬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현 순경이 갑자기 무전기에 귀를 가까이 댔다. “41?” 현 순경과 류 경위가 그날 배정받은 순마 번호가 41번이었다. 이번에는 가정폭력 신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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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사건 당사자들을 지구대로 데려와 조서를 작성하고 있다. |
“여경·남경 따질 문제가 아니다”
류 경위도 경찰 업무를 여경과 남경으로 나눠서 보는 것은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류 경위는 대림동 사건에 대해 “현장에서 주취자를 다루는 일은 예측할 수가 없다. 주취자가 밀면 누구나 밀릴 수 있다. 여경·남경을 나눠 따질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관을 폭행하는 주취자와, 주취자를 단호하게 제압할 수 없는 업무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 대신 엉뚱한 ‘여경 무용론’이 번지고 있는 상황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건 일선 경찰관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