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열풍] 어벤져스: 히어로들을 떠나보내며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3 08:00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히어로 영화를 향해 “3000만큼 사랑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경험은 희귀한 것이다. 그 드문 일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에서 벌어지고 있다. 당최, 무슨 일인가.
《엔드게임》은 ‘지구 절반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타노스에 맞서 잃어버린 5년의 시간을 회복하고자 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라고만 요약해 버리면 살짝 허무하다. 관객들의 정서를 건드리고 급기야 눈물 흘리게 하는 감흥의 정수는 아이언맨이라 불렸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은퇴식이었다.
토니 스타크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머리가 비상해 15세에 MIT 공대에 입학했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린 나이에 ‘스탁 엔터프라이즈’ 회장이 됐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그는 타인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 윤리에 둔감했다. 치명적인 살상 무기를 팔아 부를 축적했다. 사생활은 방탕했다. 술과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토니 스타크로 태어나 영웅으로 떠나다
그러던 중 게릴라군에 납치돼 무기 제작을 강요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곳에서 그는 전쟁 무기의 참상을 본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한 토니 스타크는 이전의 토니 스타크가 아니었다.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후 지구를 지키는 일에 앞장섰다. 영웅으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트라우마도 겪었다. 상실감도 맛봤다. 그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이기적이었던 이 남자는 여정의 끝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세상을 살린다. 개인의 행복 대신 대의를 선택한다. “나는 아이언맨!(I am Iron Man!)” 토니 스타크로 태어나, 영웅으로 죽는다.
혹자는 슈트가 없는 토니 스타크는 평범한 억만장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핑거 스냅을 선택한 건 슈트가 아니다. 토니 스타크의 마음이 한 일이다. 슈트를 입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건 어렵다. 슈트가 없어도 토니 스타크는 영웅이었다.
아이언맨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지금의 마블 공화국을 이끈 개국공신이다. 2008년 《아이언맨》 이후 총 11개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짧고 굵게 출연했다. 11년 동안 아이언맨은 곧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곧 아이언맨이기도 했다. 토니 스타크가 방탕한 삶을 살다가 변화하는 과정은 마약으로 자신의 삶을 망가뜨렸다가 재기한 다우니의 인생과 겹친다. 캐릭터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분신처럼 붙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 경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남기고 간 슈트는 또 다른 배우가 입을 테지만, 그 누구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을 순 없을 것이다.
지난 4월 《엔드게임》을 들고 내한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시아 정킷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8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젊었고 여러분 대다수는 어렸습니다. 멋지게 성장한 여러분을 보니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MCU는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다. 하지만 이 세계 안에 쌓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팬들의 추억은 리얼이다. 그의 마지막을 자꾸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엔드게임》은 슈퍼히어로가 퇴장하는 방법에 대한 좋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영웅으로 살았던 울버린, 아버지 로건으로 죽다
아이언맨을 떠나보내며 울버린이라 불렸던 로건(휴 잭맨)을 떠올렸다. 마블의 개국공신이 아이언맨이라면, 《엑스맨》 시리즈의 출발은 휴 잭맨이다. 그는 2000년 《엑스맨》을 시작으로 카메오 출연을 포함해 이 시리즈에 총 9번 출연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로건》을 통해 팬들과 안녕을 고했다.
울버린/로건은 늘 외로웠다. 자가 치유 능력인 ‘힐링 팩터’는 타인에겐 부러움일 줄 모르나 그에겐 재앙이었다. 그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홀로 남겨진 상실감, 누군가를 지켜내지 못한 미안함이 그의 인생을 지배했다.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다. 그래서 그가 가장 두려워한 건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는 방법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을 벌했다. 이 아련한 사내의 삶을 무엇으로 구원할 수 있을까. 아니, 애당초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울버린/로건은 《로건》에 이르러 강한 힘을 지닌 ‘히어로 울버린’이 아닌, 늙고 지친 모습으로 등장해 충격을 안겼다. 그런 로건 앞에 정체불명의 집단에 쫓기는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나타난다. 울버린의 DNA에서 배양돼 태어난 돌연변이, 즉 딸이다. 로건은 두려웠다. 또다시 지켜야 하는 것이 생긴다는 것이. 하지만 외면하지 못했다. 특유의 기질 때문이기도 했지만, 로라에게서 자신을 봤기 때문이리라. 로라를 구하기 위해 떠난 여정은 어떻게 보면 지독히도 고독했던 울버린을 구원하는 여정이었다. 노쇠한 로건은 로라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초능력이 감퇴한 로건을 지탱한 건 마음이었다. 의지였고, 안간힘이었다. 지켜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로건은 로라를 지켜냄으로써 자신과도 화해한다. “So, this is what it feels like(이런 느낌이었군).” 로건은 세상과 작별하며 죽음의 감각을, 그리고 가족이란 이름의 정의를 온몸에 새겼다. 영웅으로 살았던 울버린은 아버지 로건으로 죽는다.
이 영화에서 휴 잭맨의 주름과 휘청거리는 육체는 그 자체가 서사로 기능했다. 31세에 《엑스맨》에 입사한 휴 잭맨은 울버린과 함께 늙었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로건》은 17년간 장기 근속한 휴 잭맨에 대한 더없이 아름다운 헌사였다.
울버린을 내려놓으면서 휴 잭맨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제가 사랑했던 캐릭터와 이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됐어요. 영화는 끝이 났지만 역할은 내면에 남아요. 단순히 캐릭터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가기 때문이죠.” 울버린은 떠났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 마음속에서. 그들은 고통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고 있을까.
캐릭터와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
팬들과 아름답게 작별한 캐릭터는 아이언맨과 울버린 외에도 있다. 전 세계에 마법 돌풍을 일으킨 《해리포터》 시리즈는 16년 동안 총 8편의 작품이 팬들을 만났다. 시리즈 1편이 시작할 때 귀여운 꼬마였던 세 주인공 해리(대니얼 래드클리프),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론(루퍼트 그린트)은 마지막 편에 모두 어엿한 청년이 됐다. 누군가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건, 그리고 세간의 관심 속에서 성장한다는 건, 배우에게도 팬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비록 컴백을 예고하긴 했지만) 15년간 이어진 《토이스토리》 3부작의 엔딩은 전 세계에 눈물 주의보를 발령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어느덧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된 앤디(존 모르스)와 장난감들의 마지막은 성숙한 이별의 정의를 새기며 커다란 감흥을 안겼다.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엔드게임》은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은퇴식으로 바라봐도 당연히, 충분히, 굉장히, 유의미한 작품이다. 그의 퇴장은 아이언맨과는 또 다른 색깔의 감흥을 안긴다. 1편 《퍼스트 어벤져》에서 사랑하는 여인 페기 카터(헤일리 앳웰)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스티브 로저스는 긴 시간을 돌고 돌아 그 약속을 지킨다. 이토록 로맨틱한 은퇴식을 본 기억이 없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3 08:00
훨씬 강력한 ‘현실의 세계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저 그렇던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배들에게 둘러싸였다. 입사 이래 이런 분위기가 연출된 적은 없었다. 아군은 없었다. 겨우 용기를 내 외쳤다. “재미없다고 느낀 이유를 설명해 줄게!” 그렇다. 이 기사는 ‘다름’ 때문에 시작됐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그저 그렇게’ 본 죄. 그 이유를 낱낱이 고하고,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영화는 전작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친절한 방식으로 내러티브가 구성됐다. 곳곳에 마블의 역사를 훤히 꿰는 관객만 이해할 수 있는 유머와 디테일(가령 디즈니를 상징하는 생쥐가 나오는 장면처럼)이 있었겠지만, 서사의 큰 흐름은 전편들을 보지 않아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도록 짜였다.
문제는 ‘너무 친절했다’는 점이다. 시간 여행을 하기까지 히어로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너무 자세히’ 설명을 했다. 러닝타임의 절반가량을 할애해서! 말 그대로 히어로들이 모인 ‘어벤져스’이기에 불가피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히어로 모두의 서사를 설명하려는(telling) 욕심을 조금 내려놓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다 보니 영화가 전반전·후반전으로 나눠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인간 같은’ 히어로들이 그리는 서사의 한계
‘마블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은 거대했고 새롭기까지 했지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어떤 화두를 던져주지도 못했다. 물론 히어로들이 인간처럼 상실과 부재의 쓰라린 아픔에 고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도망치고, 갈등하고 다투지만 끝내 힘을 모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인간다웠다.
하지만 ‘인간처럼’의 한계는 분명했다. 오히려 히어로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적은 분명했다. 그리고 ‘하나 되어’ 싸웠다. 이 점이 감동을 반감시켰다. 사실 적이 분명하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타노스처럼 적이 강해도 하나 되어 싸울 수 있다면 그 싸움은 할 만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동지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해도 그 죽음은 기억된다.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히어로도 아닌 우리는 매일 홀로 싸우고, 겨우 버틴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못하지만 그렇게 매일 살아낸다. 마블 유니버스가 그럴듯한 판타지일 수는 있지만 공감할 만한 무언가를 남기지 않았던 이유다.
이번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 비결 중 하나였던 영화사의 영리한 ‘스포일러 마케팅’은 영화의 감정선을 충분히 느끼게 하지 못하는 ‘독’으로 작동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아이언맨이 비극을 맞이한다는 암시를 너무 또렷이 알려줬다. 예고된 비극은 히어로가 비극적으로 사라질 때의 슬픔과 울림을 반감시켰다.
오히려 그 순간 현실에서 존재했던, 우리의 히어로들이 떠올랐다.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됐던 강원도 산불을 끄기 위해 전국에서 밤새 달려간 영웅들 말이다. 목숨을 걸고 국가와 국민을 지켜냈고, 그리고 자신들도 ‘살아남은’ 우리의 히어로들. 맞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감동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켜지는 그런 ‘유니버스’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비극적 결말로 가슴이 흔들리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2019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훨씬 더 극적이고 서사적이었다.
자본시장의 어벤저스 'ESG', 한국서도 가능할까

▲표1. 주요국의 SRI 비율. ⓒ백정현

▲ 표2. 일본의 SRI 증가율은 무려 6692%에 달한다. ⓒ백정현
<어벤져스> 히어로들은 때로 응원하고 때로 욕하는 친근한 이들이다. 촘촘한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함께 흐른다. 그렇게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소통을 이야기한다.
![]() |
ⓒ연합뉴스 4월15일 <어벤져스:엔드게임> 제작진과 출연진이 서울에서 열린 팬 이벤트에서 인사하고 있다. |
팔에 새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 기념으로 했겠거니 하며 웃어넘겼다. 주요 멤버들이 마블 스튜디오와 계약한 출연 회차가 곧 만료된다거나, 이번이 원년 멤버들의 마지막을 알리는 작품이 될 거라거나 하는 소식이며, 심지어 최종장을 뜻하는 <어벤져스:엔드게임>이라는 제목 앞에서도 애써 모른 척했다.
하지만 결국 모를 수 없었다. 이번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인사가 되리라는 걸 말이다. 온 마음으로 보내주고 싶어서 영화 관람 전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 빠르게 영화 예매를 하고, 커뮤니티와 SNS에는 당분간 발을 끊고, 혹시나 스포일러 내용을 전송받는 ‘테러’를 당할까 봐 스마트폰의 무선 공유 기능(에어드롭)도 꺼두었다. 그랬으면서도 이번에는 속편 예고 영상이 없으니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먼저 본 지인의 말에 괜스레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러고는 이 마지막이 어떤 형태의 의식이 될까 그려봤다. 졸업식, 은퇴식 혹은 장례식일까.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고별
영화 시작과 함께 빨려 들어갔다. 지난 <어벤져스:인피티니 워>의 마지막에서 전 우주 생명체의 반이 먼지가 되어 사라질 때, 그 자리의 히어로들은 최소한 그게 타노스에 의한 것이라는 연유라도 알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아무런 단계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보통 사람들의 슬픔과 무력감은 아주 다른 무게로 그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영화는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수많은 기념비와 회색빛의 텅 빈 뉴욕 메츠 구장으로 전했다. 이 거대한 트라우마 속에서 히어로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고뇌하며, 또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는 잊은 척하고, 누군가는 자신만은 기억하고자 하고, 누군가는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말하고, 누군가는 아직 남아 있겠다 한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이도 있으며, 부딪치는 자신의 내면을 화해시키고 한 단계 성장한 이도 있다. 모두가 너무나 그럴 만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 차이들은 퍼즐처럼 맞춰져 마침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낸다. 필연적인 운명 혹은 이미 다 끝나버렸다고 여긴 현실에 도전하는 인간 군상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가슴을 울린다.
그렇게 한 시대가 끝났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은 10여 년을 지나오며 히어로 영화의 상징과도 같아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보내주는 의식이다. 그러자면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래서 영화는 2012년, 어벤져스가 처음으로 팀을 꾸렸던 뉴욕으로 돌아갔다. 시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이미 풀린 뉴욕 배경 촬영장 사진을 통해서도 이번 영화에서 당시의 모습이 등장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막상 그 시공간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벅찬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팬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장면이 가득했다.
![]() |
ⓒ연합뉴스 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마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 선 모습. |
팬들 역시 같이 자랐고 어벤져스 멤버들과 서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됐다. 이번 영화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아이언맨 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시리즈와 같이 성장한 팬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번 영화가 원년 멤버 팬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전체 서사에서는 아이언맨이, 주요 장면에서는 캡틴 아메리카가 돋보였던 탓이다. 이후 시리즈 출연이 예상되는 멤버들의 비중을 줄여가면서라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에게 확실하고도 완벽한 마지막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없이도 히어로 세계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마블 스튜디오의 자신감과 각오마저 느껴졌다.
새 시대가 시작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끝은 아니다. 이 역시 진짜 삶의 한 부분임을 마주한다. 영원히 살아가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보내고 또 새로 만나왔다. 원년 멤버들이 물러나며 만들어준 다리를 건너 새로운 세대들을 맞아들일 준비를 한다. 능력과 성격뿐 아니라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에서 이전보다 더욱 다채로운 면모를 지닌 히어로들에 기대하는 바도 남다르다. 두근두근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래도 아직은 추억에 잠겨 있고 싶다. 오늘 저녁엔 치즈버거를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