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낙태 리포트]
[청소년 낙태 리포트①]“수술 도와줄게”…임신 여고생 유인하는 ‘검은 손길’ (영상)
- 임신 상담글 올리자 ‘도와준다’는 사람들…취재진, 여고생 가장해 한 남성과 만나
- 여고생 절박한 마음 이용해 “집에 말하면 쫓겨날 것” 가출 유인
- 수술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성매매’ 알려주기도
<편집자주>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태아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이러는 사이 정작 소외된 곳은 따로 있다. 청소년들의 임신이다.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그에 비례해 청소년들의 임신 사례는 늘어난다. 그러나 청소년 임신 문제은 관련 통계조차 없다. 헤럴드경제는 ‘있지만 없는 것’으로 외면받는 10대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 실태,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 “일단 가출부터 해”, “인생 힘들지 않게 살게 해줄게. 그거 하나 약속한다.”
본지 기자는 인터넷에 직접 임신한 고2 여학생인 것처럼 고민 글을 올렸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연락해달라고 적었다. 그러자 몇시간 뒤 “미성년자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소개시켜 준다”며 한 20대 남성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임신중절 수술을 위해선 가출을 먼저해야 한다고 했다. 가출 결정을 머뭇대자 그는 “나 믿고 따라올래, 네가 알아서 할래?”라고 했다. 사실상의 협박에 다름 없었다. 다음은 임신한 여고생을 가장한 기자가 그를 만난 ‘실제 상황’이다.
![]() |
지난 27일 오후 7시께. 경기도 평택의 한 카페에서 가출을 하면 임신중절 수술을 도와주겠다던 20대 남성과 만났다.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
▶능수능란 한 그 “나 세명이나 도와줬어”= 지난 27일 오후 7시께. 경기도 평택의 한 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그를 만났다. 기자는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자와 마스크로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검정 코트에 안경을 끼고 나온 그는 불안한 듯 주변을 계속 살폈다.
기자는 카페 테이블에 그를 마주하고 앉았다. 그는 능수능란 했다. 우선 본인이 믿을만한 사람이란 점을 강조했다. 이미 수차례 임신한 청소년의 수술을 도왔다고했다. 미성년자를 수술 해주는 병원도 소개시켜 줄 수 있고, 수술을 위해 성인 여성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주거나 보호자로 함께 가줄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 후 자신의 집에 머물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3명의 임신한 청소년을 ‘도와줬다’고 했다.
그는 또 “도와주겠다는 99%가 다 나쁜 사람들이야. 성관계만 하고 쫓아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런 사람들 만나면 너만 손해야.” 기자가 겁 먹은 표정을 짓자 그는 “괜찮아. 내가 너 책임져줄게” 안정시켰다. 그는 임신 여고생의 마음 상태를 읽고 다독인 뒤 해법까지 제시했다. 대신 가출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도 조언했다. 그가 말한 ‘조건’에 대해 기자가 “조건일이 뭘 말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소위 고수익 알바에 대해서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고수익 보장’이라 쓰인 광고를 보이며 “이런 게 다 조건(성매매)인데 여기서 돈 벌어서 병원에 웃돈 쥐어주고 수술을 해. 수술 전에 한번, 수술 후에 수술비로 한번 돈 먹이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연결해줄 수 있는 조건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여기는 듣는 귀가 많아 말해줄 수 없다”고 대답을 피했다.
“나머지는 집 가서 얘기하자”고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이상 그를 자리에 붙잡아 두기가 힘들어진 뒤 취재진은 그에게 신원을 밝혔다. 왜 임신한 여고생을 집으로 유인했느냐고 묻자 그는 “원래 집에 있는 게 맞는데…쫓겨날까봐”라며 횡설수설했다. 미성년자 가출을 유인하고 성매매를 안내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당당했다. “당신은 미성년자가 아니잖아요. 카메라 찍은 거 다 지워요.”
현행법상 미성년자를 가출하게 유인하면 약취유인죄다.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제안하는 행위도 성매매 특별법 위반이다. 다행히 그의 이번 대상은 10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법적 책임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진정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라고 묻자 그는 도망치듯 나가 자신의 차를 타고 사라졌다.
![]() |
취재진이 여고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자 도망가는 모습.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
▶만남 전부터 …절박함 쥐락펴락= ‘고등학생이 임신하는 게 얼마나 힘들지. 나도 내 여자친구가 그런 적 있어서 알아.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어’
오픈채팅방에서 만난 그는 임신한 여고생의 마음을 다독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수술비용, 수술 방법 등에 대해 유창하게 설명했다. 그는 임신한 여고생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돈이 가장 급하네. 너 학교 그만 두는 건 싫잖아. 부모님에게 알리기도 그렇고.”
“네…”
“부모님한테 말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난리 날 것 같아요…욕하시겠죠.”
“뭐 그거야 당연 한거지, 쫓겨나려나?”
“아…” 한숨을 쉬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가출이 답이구만”
결국 임신중절 수술을 위해선 집을 나올 수밖에 없다던 그는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자인 듯 말했다. 다른 사람을 따라가면 섬이나 술집에 ‘팔려간다’고 겁을 줬다. “돈을 왜 빌려주겠니? 그걸 미끼 삼아 만나서 어디 좀 가자고 해서 팔아버리는 거지. 너 같은 애들 당하는 거 수십번 봤다. 섬이나 술집에 팔려가지. 그럼 도망도 못가.” 벼랑 끝에선 이에게 누군가가 건넨 ‘도와주겠다’는 말은 달콤했다. 그는 독심술을 하듯 임신한 여고생의 고민을 읽어냈고 심지어 걱정거리들을 직접 해결해준다고 유혹하고 있었다.
“너 관계는 많이 해봤어?” 수술비 걱정을 하는 기자에게 남성은 대뜸 성관계 여부를 물었다. 키와 몸무게도 함께 물어봤다. 그는 30분에 15만원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이를 ‘조건’이라 칭했다. 이후 이 방법이 얼마나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알려줬다. 한달 전 그가 낙태를 도와줬다던 17살 여고생 얘기를 꺼냈다. “걔는 나중에 결국 조건 한다고 집을 나가더라. 30분에 15만원이 생기니까 그걸 알아버리면 못 끊지. 내가 아무리 하지 말래도 뭐…”기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속삭였다. “왜 너도 하고 싶어? 굳이 숨길 필요 없어. 솔직해져봐.” 이 능수능란함에 누군가는 인생이 달린 고민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 기자는 숨이 막혔다.
벼랑 끝에 매달린 여고생의 절박한 마음을 그는 쥐락펴락했다. “그러게 임신하지 않게 조심했어야지” 질책하다가도 “너 하나는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또 자신의 집에 언니들 두 명이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집 사진과 함께 같이 살고 있다는 여성의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청소년 낙태 리포트②]열일곱살 때 임신중절 경험한 청소년 활동가가 보내는 편지
[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 안녕하세요. 라일락입니다. 저는 23살 여성으로 지금은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어요. 라일락은 제 활동명이에요. 청소년인권행동 시민단체 ‘아수나로’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저의 얘기가 임신 청소년에게, 임신중절을 경험한 청소년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냅니다.
제가 임신을 했을 때는 한국 나이로 19살, 만으로는 17살이었어요. 당시 애인과의 관계에서 임신이 됐어요. 그때 저는 집을 나온 상태였어요. 피임을 하려고 피임약을 먹고 있었어요. 임신을 원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이틀인가 사흘인가 바빠서 피임약을 못 챙겨 먹은 기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생리가 멈추고 젖꼭지가 아픈 증상이 있었어요. 혹시나 하고 산부인과를 방문했는데 임신 3~4주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예상을 하지 못했던 임신이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어요. 임신을 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그저 인터넷 검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죠. 물론 아이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를 낳더라도 우리나라는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차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경제적으로 아이를 안정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만 임신중절을 결심한 후에도 수술을 해줄 병원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처음 임신 진단을 받은 산부인과는 “보호자가 없으면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했어요. 제가 사는 지역의 여러 산부인과에 방문했지만 모두 청소년이기 때문에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며 거절했어요. 결국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만 하고 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몸이 안 좋아졌어요. 허리 통증과 질염 증상이 생겼어요. 임신중절이 현행법상 범죄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솔직하게 수술 경험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어요.
돌이켜보면 저도 한동안 임신중절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낙인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임신중절은 잘못된 거야’라는 인식이 제게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중학교 때 학교에서 보여준 낙태 동영상이 생각났어요. 여학생들만 음악실에 모아두고 임신 후기의 태아를 낙태하는 영상이었어요. 그때 학생들은 소리지르면서 무서워했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그 영상을 보여주는 이유가 ’낙태는 죄이고, (특히 여성은) 문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려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임신중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임신 중절과 관련된 일련의 경험을 겪는 동안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어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니까 우울증이 심해지더라고요.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했죠. 사실 많은 청소년들이 저 같은 상황이라면 비슷하지 않을까요?
임신중절 후에도 1년 정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다가, 결국 애인의 무책임함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친한 친구에게 털어놨어요. 근데 그 친구가 제 이야기에 너무 공감을 잘 해줘서 거기에서 용기를 얻어 주변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말하기 시작했죠.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점점 용기가 생겼어요. 활동하는 청소년 단체의 신문에 ‘청소년으로서 경험한 임신과 임신중절’ 인터뷰를 하며 저의 경험을 사회에 알렸습니다. 여성단체의 ‘임신중절 당사자 말하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나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배틀그라운드 269’라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 프로젝트에 모델로 참여도 했고요.
캐나다에서 1년 산 적이 있어요. 캐나다는 임신중절이 1980년대에 합법화됐대요. 거기서는 임신중절 클리닉을 청소년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어요. 한국도 임신중절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없었다면 그때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요.
완벽한 피임은 없어요. 임신과 임신중절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청소년도 똑같아요. 청소년도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해요. 아직 우리 사회는 낙태나 성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거나 순수해야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성적인 삶을 누리고 있을 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죠. 특히 여성 청소년에게는 더욱요. 저는 그런 시선과 편견이 없어져야 하고 청소년이 성적인 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보낸 그해 겨울처럼 시리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도 싸워나갈 겁니다. 임신중절을 경험한 청소년에게, 그리고 과거의 저에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절대 그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청소년 낙태 리포트③]첫 성관계 평균연령 13세…통계조차 안잡히는 임신 청소년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태아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이러는 사이 정작 소외된 곳은 따로 있다. 청소년들의 임신이다.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그에 비례해 청소년들의 임신 사례는 늘어난다. 그러나 청소년 임신 문제은 관련 통계조차 없다. 헤럴드경제는 ‘있지만 없는 것’으로 외면받는 10대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 실태,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1. “부모님은 물론 친구한테도 말 못해요. 남자친구와 잠자리했다는 것 자체를 비난할텐데 임신까지 했다고 하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임신중절 수술을 했던 김 모(25)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에게도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용기를 내 말했다. 비용문제는 또다른 문턱이었다. 남자친구가 대출까지 받은 뒤에야 수술비 1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그때 얼마나 내 몸이 망가졌을지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2. “고등학생 10명중 8명은 (남자와 잠자리를) 해봤다고 보면 돼요. 빠르면 중학교이고요.”
지난달 일산 킨텍스에서 여고생 20여명이 모였다. ‘성(性) 이야기’는 봇물터지 듯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진실게임의 단골 질문이 “(성관계) 해본 적 있냐”는 것이라고 했다. 있지만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청소년의 성이다. 특히 청소년 임신의 경우 사회적 낙인, 수술비용, 학업중단 문제로 비화된다. 여고생들은 청소년들의 성관계와 임신에 대해 “어른들만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
어른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 아이들끼리만 공유하는 이야기. 청소년 임신과 낙태 문제를 이제는 양지로 끌어내 상처를 치료하고 본격적인 대책과 해법을 제시해야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성관계 평균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피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끼리의 성관계와 임신중절은 현재까지 유의미한 통계조차 없었다. 그만큼 정부의 지원과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였다는 의미다. ▶관련기사 3·9면
청소년의 성관계는 이미 중학생 나이대부터 이뤄지고 있다. 교육부ㆍ보건복지부ㆍ질병관리본부가 2018년 청소년 6만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14차(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세였다.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5.7%였다.
문제는 청소년의 낮은 피임실천율이다. 같은 조사에서 청소년 피임률은 59.3%에 그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은 ‘피임 도구를 준비하지 못하거나’(49.2%) ‘상대방이 피임을 원하지 않아서’(33.1%) 피임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성관계를 하는 연령이 낮아지는 가운데 피임을 지키지 않는다면 청소년 임신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청소년 임신 경로는 다양하다. 크게 ▷이성친구와의 성관계 ▷성폭행 피해 ▷즉석만남 ▷성매매 등 네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2년 발표한 ‘청소년 한부모의 발생과정에 따른 예방 및 지원정책 연구’ 에 따르면 청소년 성관계는 애인이나 이성친구 뿐 아니라 즉석만남, 성구매 등을 통해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 청소년단체 관계자는 “청소년 임신은 소수의 일탈 행동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좋아하는 이성친구와 피임 없이 성관계를 맺다가 임신하는 경우도 많고, 요즘은 인터넷 조건만남 등이 발달해 모르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청소년 임신중절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올해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1년 조사 이후 7년 만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발표했지만 청소년에 대한 조사는 미흡했다.
조사 대상 중 19세 이하 인공임신중절 경험자는 13명에 그쳤다. 오래된 통계지만 대한가족계획협회가 1996년 실시한 조사에선 한해 시술되는 150만건의 인공유산 중 1/3이 십대청소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나마 가장 최근 연구로는 이동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2013∼2015년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다. 조사에 따르면 성경험이 있는 여학생 중 0.2%는 임신을 했고, 임신한 경험이 있는 여학생 중 73.6%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했다.
하지만 실제 임신을 하고 임신중절을 경험하는 청소년의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현행법상 임신중절 수술은 불법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수술은 통계에서 누락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사회가 10대의 성관계와 임신, 출산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는 태도를 취해왔다는 의미다. 사회복지 정책에서도 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전문가들은 임신 청소년을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청소년 시기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인데 사회적으로 쉬쉬하고만 있다. 지금처럼 ‘청소년은 절대 안돼’만 있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도움을 청하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청소년 낙태 리포트④] “욕 먹을까…돈 없어서…” 수술시기 놓쳐 몸 망가지는 아이들
<편집자주>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태아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이러는 사이 정작 소외된 곳은 따로 있다. 청소년들의 임신이다.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그에 비례해 청소년들의 임신 사례는 늘어난다. 그러나 청소년 임신 문제은 관련 통계조차 없다. 헤럴드경제는 ‘있지만 없는 것’으로 외면받는 10대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 실태,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일러스트=김소금 프리랜서 디자이너] |
[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 “부모님한테도 친구한테도 말 못했어요. 남자친구와 잠자리했다는 것 자체를 비난할 텐데 임신했다고 하면 대부분 욕할 것 같았어요. 고민만 하다가 며칠이 흘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임신중절을 했던 김모(25) 씨의 말이다. 그는 남자친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털어놨다. 갖고 있던 10만원과 대학생 남자친구가 소액대출을 받아 이를 합쳐 수술할 수 있었다. 금요일 오후 조퇴를 하고 몰래 한 수술은 후유증이 컸다. 임신중절 수술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곧바로 학교와 학원을 가야만 했다. 김 씨는 “성인이 되고 임신과 피임에 대해서 더 알게 된 지금, 그때 얼마나 내 몸이 망가졌을지 생각하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임신 청소년은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미성년인 청소년이 성관계를 했다는 자체가 1차적 비난 대상이다. 청소년 성문화에 유달리 보수적인 한국에선 성관계에 대해 일단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고 임신 사실이 알려졌을 경우엔 마냥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다. 임신중절을 고민하고 있는 한 청소년은 “임신 사실을 밝히고 도움을 구하고 싶어도 ‘발랑 까진 게 아니냐’, ‘얼마나 문란하면 벌써부터 임신을 하느냐’ 등 비난할 게 두려워 움츠러든다”고 토로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평균 50~70만원 정도지만 임신 주 수가 높아지면 수백만원까지 오른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는 청소년에게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에게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임신중절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송이 탁틴내일 상담사는 “학생이 30만원 모아서 갔는데 100만원이라고 하면 돈 모으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한 달 뒤에 가면 임신 기간이 늘어나 비용이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진다”라며 “임신 5개월이면 합법적인 경우라도 수술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학습권도 보장받기 어렵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임신을 하게 되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퇴학 처리를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한 ‘2018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임신중절을 선택하게 된 주된 이유로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55.9%)’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연인, 배우자 등과의 관계가 불안정해서(37.5%)’,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22.6%)’가 뒤를 이었다.
음지에서 행해지는 중절 수술은 청소년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임신중절 약을 오남용해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심지어 심한 후유증을 앓는 경우도 많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소속 관계자는 “한 여고생이 인터넷에서 임신중절 약을 잘못 먹고 와서 자궁에 문제가 많은 상태로 방문한 적이 있다”며 “수술을 안 했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신한 청소년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겪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없애고 안전하게 임신중절을 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청소년도 똑같이 중요하다”며 “청소년 임신에 대해서 낙태를 종용하면서도 보장해주지 않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청소년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의료보험이 실시돼야 하고 필요하다면 요양의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낙태 리포트⑤]“배를 발로 차면 돼요”…가짜 낙태정보 넘치는 온라인 세상
-당사자들 “학교에도 인터넷에도 도움 구할 곳 없어” 답답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상담글 캡처] |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남자친구랑 잔 것부터가 이해가 안되네요. 고등학생 2학년이라면서 부모님께 그냥 친구라고 속이면서까지 자고 싶었나요?’
한 고등학생이 자신의 임신 고민 글을 온라인에 올리자 그 글 아래 덧붙여진 한 답변이다. 질문자는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못하겠다”면서 고민을 털어놨으나, 답변자는 “질문자가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 않은 것을 보면 님도 남친이랑 자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네요”라고 꼬집었다.
인터넷 공간은 임신 청소년들에게 가장 손쉬운 상담창구다. 가족은 물론 친한 친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수많은 임신 청소년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비공개 상담글을 올리며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고, 청소년을 비난하거나 정확치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일들로 넘쳐났다.
실제 본지 기자가 네이버 지식인에 ‘임신을 해서 걱정이다. 낙태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상담글을 올려봤다. 해당 글에는 순식간에 수개의 답변이 달렸다. 부모님에게 말해야 한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글을 올린이를 비난하거나 공포심을 돋우는 이들도 있었다. 한 작성자는 “부모님한테 말 안 하면 자궁 속에서 아이가 죽어버려서 피와 함께 배출해내야 한다. (끔찍) 낙태 경험자 말 들어봤자 어떻게 편법으로 부모 몰래 아기를 죽였는지 정도 말해준다”며 “부모님이 무서우면 인자한 할머니에게라도 말해야 뺨이라도 안 맞는다”고 말했다. 상담글을 올린 이의 불안감만 증폭시키는 답변이었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임신중절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글에는 “어차피 학교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추궁하는 이도 있었다. 또다른 답변자는 “고3이라면 곧 졸업이니까 버티라”고 말했다. 네이버 지식인 등 오픈 상담코너는 질문을 올린 작성자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청소년도 모두 고민글과 고민글에 덧붙여진 답변내용을 모두 볼 수 있다. 공포심을 키우고 ‘니가 잘못했네’라는 비난글들을 많은 청소년들이 볼수 있게 돼 있다는 의미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도 다수였다. ‘사후 피임약을 먹을 때는 유산균을 먹으면 안된다’, ‘지금이라도 사후피임약을 먹으면 아이가 지워진다’, ‘한번 낙태를 하면 다음에 임신이 어렵게 된다’, ‘배를 발로 차면 낙태된다’ 등 잘못된 지식이 수없이 올라왔다. 미성년자인 청소년이 임신과 낙태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같은 정보를 그대로 믿을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 네이버 지식인에 임신 고민 글을 올린 한 청소년은 취재진에게 “며칠 전 공포영화를 봤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산모가 급격한 충격을 받으면 애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사실이느냐”고 묻기도 했다.
본지 기자가 작성한 ‘고민글’에는 산부인과 병원 브로커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산부인과 병원 영업 이메일도 접수됐다. 한 브로커는 “임신 주수가 긴 산모도 수술이 가능하다”며 병원 사진과 연락처를 남겼다. 기자가 해당 연락처에 직접 전화를 해보니 “최대 24주까지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하고 20주 초반의 경우 수술비용은 200만원이 넘는다. 구체적인 상담은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다른 브로커 역시 “지역을 알려주면 근처에 있는 병원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유의할 점을 묻자 “현행법상 수술이 불법이기 때문에 기록이 남지 않게 현금을 준비해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청소년들은 학교나 가족에게도 말 못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불확실한 정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을까봐 두렵다는 한모(19) 군은 “막막한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인터넷에 글을 올렸지만 장난을 치거나 무작정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만 받았다”며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른 채 여자친구와 매일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낙태 리포트⑥]헌법불합치에도…여전한 사각지대로 남은 ‘청소년 낙태’
[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에 대해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음에도 여전히 청소년 낙태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청소년은 ‘미성년자가 성관계를 했다’는 사회적 비난에 시달려야 하고 임신사실을 알리지 못해 수술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임신 즉시 학업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모와 떨어져 지내기 힘든 청소년들의 양육 환경과 청소년들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사회적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청소년을 성적인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청소년을 성이 없거나 성적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 성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건교사로 36년간 근무한 정연희 한세사이버고등학교 교사는 “어른들이 청소년이 가진 성 욕구를 무시하는 게 문제를 키운다. 학생들은 더이상 성문제에 대해 어른들과 상의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최소한의 정보를 주는 피상적인 학교 성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건교사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혜란 교사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 전 충분한 정보를 줘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성관계를 해서 임신을 하게 되거나 낙태하게 되면 내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신과 임신중절을 청소년의 건강의 문제로 보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소년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는 “청소년 임신에 대해서는 낙태를 종용하는 분위기이면서도 보장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모순”이라며 “청소년의 낙태문제는 학생들의 건강과도 관련됐다.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해결돼야 안전하고 비용을 마련하느라 수술을 못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또 요양의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임신청소년이 학업 등에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적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송이 탁틴내일 기획실장은 “어른들이 청소년은 단순히 성관계를 하지 말라고만 하는 것은 ‘학생들이 잘못했으니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고 외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것은 이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임신청소년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와 사회 안전망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낙태 리포트⑦] “어른들만 몰라요”…10대들의 ‘진짜 性이야기’
[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 “수련회 가도 다 그 얘기해요. 진실게임할 때도 서로 ‘해본 적 있냐’고 물어요. 고등학교 10명중 8명은 했다고 보면 돼요. 빠르면 중학교 때도 하고.”
청소년에게 10대의 임신문제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이었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킨텍스의 한 강의실에서 만난 25여명의 학생 대다수는 청소년 성관계에 대해 “어른들만 모르는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주변에서 보고 들은 얘기를 털어놓으며 청소년 임신 문제는 당사자 개인을 비난할 일이 아니라, 현실을 무시하고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와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을 무성적 존재로 바라보고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는 지금의 성교육으로는 청소년 임신, 낙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쓴소리도 터져 나왔다.
▶또래 성관계 얘기 놀랄 일 아냐…어른들만 몰라요= “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청소년 임신중절 문제를 논하기 앞서 청소년들의 현재 성문화를 물었더니 여기저기서 다양한 목격담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고등학교 3학년 한 학생은 “룸카페, 노래방에서도 하고 성숙해 보이는 친구를 통해 모텔, 호텔도 뚫어서도 한다”라고 말했다. 주변의 다른 학생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 사이에서 ‘성관계 경험담’은 흔한 얘기로 통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성친구와 언제 했는지’는 단골 이야깃거리였고, 이성친구와 언제 얼마나 진도를 나가야 하는지 역시 주된 고민거리였다.
학생들은 학교에선 이러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성교육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단순암기식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생식기 구조나 월경주기만 암기하게 하는 교육만으로는 실제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 성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구암고등학교 박민경양은 “학교에서는 피임방법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성기 구조에 대해서 알려주고 끝이었다”며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성관계가 이뤄지는 이상 학교는 어떻게 피임을 해야 하는지, 만약 피임에 실패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피임 방법을 알려주면 성관계를 하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피임 방법을 안다고 해서 없던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피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 경우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효자중학교 3학년 김가람 양은 “피임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주면 애들이 성적 호기심이 더 커진다고 걱정하면서 왜 정부는 당장 페이스북만 들어가도 나오는 포르노는 왜 규제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
지난달 30일 경기도 킨텍스의 한 강의실에서 모인 청소년 25명의 학생들. 이들은 ‘청소년 성교육 실태’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
▶“청소년 임신중절 찬반의 문제 아냐…지원 늘려야”
= 청소년들은 또래집단의 임신중절에 대해 입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나쁜 것’이라고 막연하게 배웠지만 실제 주변 친구들이 임신 문제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는 학생들도 다수 있었다.
화원고 1학년 김민정 양은 청소년이 왜 임신중절을 하게 됐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양은 “학교는 ‘낙태는 나쁜 것’이라고만 가르치지, 실제 청소년의 성적 욕구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고 있다. 외국은 콘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약국이나 이런데 콘돔사면 눈치 봐서 피임하기 꺼린다고 들었다”며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생긴 경우에도 청소년이 어떻게 아이를 낳을 거냐, 인생이 망했다 손가락질 하지 않느냐. 결국 청소년이 임신중절을 하게 만든 건 어른들, 사회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임신 청소년이 사회에서 차별 받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부산 경원고등학교 선혜인 양은 “외국에서는 어린 엄마들이 학교 다닐 수 있는 게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학교 이미지 떨어지고 사람들 시선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임신한 학생을 퇴학시키고 있는 현실”이라며 “만약 아이를 낳겠다는 학생이 있다면 학업중단이 생기지 않게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 |
지난달 30일 경기도 킨텍스의 한 강의실에서 모인 청소년 25명의 학생들. 이들은 ‘청소년 성교육 실태’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
▶“어차피 알게 될 거 더 적나라하게, 정확하게 알려주세요”
=청소년들은 성관계에 대해서 보다 실용적인 교육을 해야 원치 않는 임신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관광경영고 1학년 김세나 양은 “피임 방법에 대해서도 물론 필요하지만, 임신과정, 그리고 임신중절에 대해서도 다뤄야 한다”며 “만약의 경우 임신했다고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두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문산제일고등학교 1학년 강현수 양도 “중학교 때 피임 방법 배우긴 배웠지만 시험에 나와서 외우는 방법으로 배웠다. 시험 끝나고는 다 까먹었다”며 “엄숙한 분위기에서 피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임신을 한 사람의 이야기, 그렇게 청소년이 겪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알려줘야 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성관계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실제 학교에서 현실적인 성교육을 해 오히려 성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광주 광덕중학교 3학년 이윤 군은 “선생님이 성은 나쁜 게 아니라고 피임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줬는데 성에 대해서 소중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며 “청소년들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해주는 게 안전하다”라고 전했다.
전문가 역시 청소년을 성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청소년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전제하는 게 오히려 청소년 성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보건교사회 자문위원 이혜란 선생님은 “어릴 때 식욕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젓가락질 배우듯이 학생들에게 성욕을 어떻게 할지를 가르쳐야 한다”며 “임신, 출산, 피임뿐만 아니라 사랑, 이성친구간의 의사소통, 연애 방법 그리고 자기 몸에 대한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 등 다채롭게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송이 탁틴내일 기획실장은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할 때 성관계는 합의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이 합의는 ‘동등한 관계’에서 ‘맨정신’에,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충분히 설명을 한다”며 “더 나아가인간은 누구다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 의지로 막기는 어려울 때는 콘돔이라도 사용해야 하고, 그것조차 못하겠다면 관계를 갖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이들의 고민을 풀어 줄만큼의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라고 강조했다.
헌법불합치에도 여전히 사각지대...전문가 “청소년, 無性존재 아니다”
청소년 낙태 리포트 <끝>
실용적 성교육…충분한 정보 필요
“임신 청소년 실수 만회 기회줘야”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에 대해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음에도 여전히 청소년 낙태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청소년은 ‘미성년자가 성관계를 했다’는 사회적 비난에 시달려야 하고 임신사실을 알리지 못해 수술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임신 즉시 학업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모와 떨어져 지내기 힘든 청소년들의 양육 환경과 청소년들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사회적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청소년을 성적인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청소년을 성이 없거나 성적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 성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건교사로 36년간 근무한 정연희 한세사이버고등학교 교사는 “어른들이 청소년이 가진 성 욕구를 무시하는 게 문제를 키운다. 학생들은 더이상 성문제에 대해 어른들과 상의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최소한의 정보를 주는 피상적인 학교 성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건교사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혜란 교사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 전 충분한 정보를 줘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성관계를 해서 임신을 하게 되거나 낙태하게 되면 내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임신청소년이 학업 등에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적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송이 탁틴내일 기획실장은 “어른들이 청소년은 단순히 성관계를 하지 말라고만 하는 것은 ‘학생들이 잘못했으니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고 외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것은 이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임신청소년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와 사회 안전망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