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변호사가 본 재밌는 미국] 94세 지미 카터, ‘미국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 등극 재임 동안 비판 받았지만 퇴임 후엔 반대자들도 지지해
3월22일 미국에서 잔잔한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란 기록을 세운 것. 그의 나이 94세하고도 172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미 카터 전엔 그보다 4개월 정도 먼저 태어난 41대 대통령 조지 H.W.부시(아버지 부시)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시는 지난해 11월에 세상을 떠났고, 4개월 뒤 카터가 최장수 대통령으로 등극했다.
2018년 9월18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에 중간선거 지원 나온 지미 카터 ⓒ 연합뉴스
‘최장수 미국 대통령’ 된 지미 카터
1976년 11월 지미 카터가 미국 3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한국 정부는 제럴드 포드의 재선을 바라고 있었다. 카터의 선거 공약 중 하나가 주한미군의 철수였기 때문이다.
12선 하원의원 포드는 1973년 리차드 닉슨의 부통령이었던 스피로 애그뉴(Spiro Agnew)가 탈세와 돈세탁 스캔들로 사임한 뒤 닉슨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됐다. 그는 공화당원이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로부터 전적인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다. 미국 수정헌법 25조에 의해 닉슨이 지명한 그를 상원이 ‘찬성92표 반대 3표’로 동의, 부통령이 됐다.
이듬해인 1974년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했다. 이로써 포드는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승계한다’는 원칙에 따라 3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포드는 운이 좋은 사람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원의원에서 선거를 한 번도 거치지 않고 졸지에 부통령과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2년은 닉슨의 사임으로 갈라진 나라를 봉합하고 이끌어 나가야 했던 힘든 시기였다. 포드는 나라의 상처를 봉합하는 차원에서 닉슨을 사면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 치명적인 선택임을 알았지만, 갈라진 나라를 하루 빨리 치유하고 새 출발을 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40년이 넘은 후 현재 미국에선 포드의 결정에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돌이켜 보니 사면이 최선이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당시 많은 미국 국민들은 닉슨을 사면한 포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1976년 11월 대선에서 포드는 남부 조지아 출신의 민주당 후보 카터에게 패했다. 그의 생애 최초의 선거 패배였다.
취임한 카터는 당시 3만 명에 이르던 주한 미군의 철수를 밀어 붙였다. 1979년 그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환영식장에 박정희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모습을 봤다. 당시 어렸던 내가 보기에도 방금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다 나온 듯한 얼굴이었다. 그만큼 둘은 주한미군 주둔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했다. 훗날 카터는 외국 정상들과 나눈 대화 중 가장 언짢았던 경험으로 박 대통령와의 대화를 꼽았다. 개인적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나빴다.
카터는 고집했지만 미군 철수는 거의 백지화되다시피 했다. 미국 내 반발도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터는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란 저서로 유명한 미국의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는 책에서 “카터가 유독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서만큼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집착했다”는 말을 한다.
때문에 그 당시 한국인들에게 카터는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게 사실이다. 반미 감정이라는 게 거의 없던 시절, 국민들이 미국 대통령을 그토록 혐오하는 걸 처음 본 것 같았다.
‘주한미군 철수’ 밀어붙여 원망 산 카터
한국과의 외교관계 경색 이외에 대통령으로서도 카터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미국 경제는 만성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1979년 미국 외교관과 민간인들이 이란에 억류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그의 인기는 곤두박질쳤다. 인질 석방을 위한 외교적 협상이 결렬됐고, 구출 작전마저 참담하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결국 카터는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했다.
카터의 지지자들은 몇몇 공적을 들어 그를 치켜세운다. 공적이 ‘제로(0)’인 대통령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단 전반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카터의 재임 기간은 크고 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랬던 카터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게 된 것은 대통령에 낙선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부터다.
그는 ‘카터재단’을 세워 세계 80개국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다. 특히 1986년부터 오염된 물을 통해 인간 몸속에 들어가 서식하는 기니아충 박멸에 많은 공헌을 해왔다.
2018년 8월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미셔와카에서 '해비타트 포 휴매니티(Habitat for Humanity)' 활동에 참가 중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잘린 여사가 손을 잡고 이동하고 있다. 해비타트는 저소득층을 위해 무료로 주택을 지어주는 국제자선단체로 카터 전 대통령은 부인과 함께 35년째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84년부턴 매년 1주일 씩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운동에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기부했다. 목수가 돼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집을 지었던 것이다. 특히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 지방을 강타했을 때, 해비타트 운동의 일환으로 재난지역을 찾아 무너진 집들을 복구했던 일은 유명하다.
2002년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간 분쟁지역의 평화를 위한 외교 사절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은 것이다. 또 1994년 김일성 주석을 만나 외교적 담판을 벌여 전쟁 위협을 해소한 것은 그의 대표적 외교 성과로 꼽힌다.
2015년 8월엔 치사율 높은 암의 일종인 멜라노마가 뇌로 전이된 사실을 스스로 기자회견을 열어 밝혔다. 카터는 이 자리에서 여유롭게 웃음을 잃지 않고 얘기했다. 이후 새로운 암 치료요법인 면역치료법(Immunotherapy)을 받으면서 상태가 나아졌다.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카터는 기다렸다는 듯 해비타트 운동에 복귀했다. 지금은 암의 증후가 모두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부자는 단 한 번도 관심사가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들은 퇴임을 하면 평생 연금을 받으며 한 회에 수억 원을 받고 강연을 한다. 민생을 책임지겠다는 한국의 장관 후보들은 청문회 때마다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인다.
그에 비해 카터는 한국 돈으로 2억 원이 채 안 되는 집에 살며 달러스토어(1달러 안팎에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소매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역대 백악관의 요리사를 인터뷰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카터 시절 요리사는 “카터가 워낙 건강식 위주로 소식하는 검소한 식단을 찾아 오히려 주방장으로서는 재미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근검과 절약이 몸에 밴 그는 스스로 불편함 없는 삶을 살았다. 부자가 되는 건 단 한 번도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흔히 장수를 오복(五福)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카터가 지나온 삶과 현재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가 오래도록 미국인들 곁에 있다는 게 그들의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로 청와대가 바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두 나라 입장을 절충하는 운전자로서 한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가 성공적이라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스페인 공관 피습 사건에 미국 정보기관이 연루된 사실을 비판하지만, 북미 대화의 여지는 남기되 적극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향후 전망은 여전히 깜깜하다.
비핵화와 관련해 제갈량의 수와 같은 절묘한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런 해법이 존재하는가? 오늘날과 같이 정보통신이 발달한 상황에서 남들이 몰랐던 해법을 제시할 깜짝 쇼가 가능할까? 실은 비핵화 관련 당사국들이 서로의 속내를 다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 인내력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현재까지 드러난 구도를 보면 미국은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대화를 압박한다는 전략 아래 시간은 자기편이라는 확신을 가진 듯하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추진 등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지난해부터 취해 온 대미협상 전략을 상당 부분 손질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선 북미협상이 톱다운 방식이 지속될지 여부가 중요하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식 협상 스타일의 전모가 드러난 이상, 북한이 톱다운 방식에 계속 응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미국은 대북 제재 등 여러 개의 카드를 흔들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트럼프 협상 스타일에 자신감을 갖고 있어 톱다운 방식을 계속 고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리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보는 북한이 실무선에서 완벽한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북미정상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북한과 중국은 트럼프가 국내 문제 등으로 인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궁색한 입장이라는 쪽으로 분석한 것 같은데,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법이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의 특검 수사에서 일단 큰 위기를 모면한 이상, 한반도 비핵화가 내년 미국 대선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계산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비핵화 협상 '톱다운 방식' 지속 가능성 불투명
북미협상은 트럼프가 프로 장사꾼 수완을 발휘하는 장으로 비춰진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을 사랑한다'고 해 놓고 비핵화 협상에서는 북한이 받을 수 없는 일괄타결안을 내밀었다. 그런가 하면 '대북 제재로 북한 주민이 고통 받고 있다'고 하면서 톱다운 협상 방식에 올 인한 입장인데, 이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 내 입장을 약화시키는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교착 상태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미국 입장은 '북한 선 비핵화 후 대북 제재 해제'이고 북한은 '단계적 동시적 이행'이다. 이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확인된 것으로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미국 정부도 이에 대해 부정은 하지 않는 상태이다. 북한은 스페인 북한 대사관 피습 사건 등과 맞물려 아직은 내부 입장이 정리가 덜 된 것 같은 모습이다.
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협상을 진행시키지 않고 있는데, 지난 20여 년 간 지속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을 달러 위폐 제조국으로 몰아가면서 판을 깨는 등 몰지각한 행동을 다수 저질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한반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미국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 책임론만 앞세우는 것도 향후 비핵화 협상을 가로막는 중대한 걸림돌이다. 특히 리비아 카다피, 이란 후세인을 상대로 미국이 저지른 추악한 행위로 인해 일괄타결 방식으로 북한 비핵화를 실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는 등 중요 국제적 갈등, 분쟁 국면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듯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캠프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대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강행, 이스라엘에 대한 부적절한 지원 등을 행하면서 자신의 맹목적 국가이기주의나 인종차별주의 등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대북 협상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를 포함해 미국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소지는 차고 넘친다.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에서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현상유지가 미 국익에 최상이라는 결론에 따른 선택일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진정 동북아의 평화를 원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상대방의 진정성을 손가락질하는 형식이 아니라 과학적 검증을 필수 과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소련, 러시아 핵감축 협상에서 실증되었듯이 미국이 감시위성과 육상 점검 등으로 상대방의 진실성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단계적 동시적 이행이 역시 적절한 방식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북한 상공에는 수십 개의 정찰 위성이 가동되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보전은 가공할만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런 과학기술을 비핵화 검증용으로 사용할 경우 진정성이라는 애매한 논리가 파고들 공간은 사라질 것이다.
미국은 향후 독자적 제재 및 유엔의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할 여지가 있고 대북 전면전 카드도 옵션의 하나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 휘두를 카드는 핵무기나 우주선 발사, 탄도미사일 실험 정도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실험은 중국, 러시아가 강력 반대하고 있다. 우주선 발사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그래도 유연한 입장이다. 그러나 유엔 대북 제재에는 우주선 발사도 포함되어 있어 중국과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대북 동정론의 입지는 매우 좁다.
미국의 한반도 전면전 카드가 비핵화 협상 정교화 망쳐
앞으로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북 정책을 합리적 방향으로 진행시킬만한 변수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제재 강화로 더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핵 또는 로켓실험을 한 두 번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중국의 대북 견제가 강해지면서 미국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이 경우 미국의 대북 군사작전 카드도 동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미동맹이 이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권리로 보장해 주고 있고, 한국군의 전시작전지휘권을 미군이 장악하게끔 규정했다.
향후 수년 내에 전시작전지휘권이 한국군 장성에게 넘겨질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작권 전환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 연계되어 있어서 그 시기가 언제일지 불투명하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부사령관을 맡는 주한미군사령관의 권한이 더 강력하리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이미 나온 바 있다. 참고로 미군은 해외 파병 역사에서 외국군의 지휘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최고의 전통으로 자랑해왔다.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면전 카드를 휘두를 수 있는 이유는 불평등한 한미동맹, 즉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이다. 이 조약이 미국으로 하여금 자국 국익만을 우선하고 한반도 당사국이나 주변 국가들의 이익을 외면하는 정책 수립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만약 한반도 전면전쟁이라는 카드를 대북 전략에서 배제한다면 훨씬 정교하고 현실적인 대북 정책이 추진될 개연성이 크다.
한미동맹으로 인해 미국은 한반도 전쟁을 수행할 경우 그에 필요한 미군사력의 남한 배치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만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다면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 옵션 비중은 매우 작아질 것이다. 미국이 국제 깡패 소리를 듣는 패권주의를 지양하고 세계 최강 군사대국의 위상을 정당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는 절대 필요하다.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전제된다 해도 필리핀과 미국의 방위협정처럼 평등국가의 원칙을 지키면서 한국은 미국과 대등한 군사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최선책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전략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우선 군사적으로 볼 때, 중국과 러시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응해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등 군사대응조치를 취했다고 밝혀 향후 강대국의 군사적 충돌 발생 시 한국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은 이미 사드와 관련해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인 한국에 경제 보복을 취한 바 있으며, 아직도 관광통제 등을 풀지 않고 있다.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 없이는 경제 강국이 된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게 되어 이런 구조적 취약성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 냉전 시대의 불평등한 내용으로 점철된 한미 군사동맹은 평화 시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한국대통령이 한미동맹 정상화에 앞장서야
한미동맹 정상화 방법의 하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7조에 따라 한국 대통령이 폐기를 선언하고 개정 여부를 협상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력으로 세계 10위권 국가이고 해외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의 하나다. 한국전쟁 직후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맺은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21세기에도 금과옥조처럼 모시는 것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는 점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 언론 등은 한반도 명운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직결된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한국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미국도 제국주의적 입장을 버린 정상적인 국가의 입장에서 협상에 임할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공동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는 사람들도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념대결은 이미 냉전 종식과 함께 끝났다. 남북 전면전쟁은 상호파멸을 부른다는 점에서 피해야 한다면 유일한 답은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공존공영과 평화통일을 향한 노력이다. 여전히 이념대결이라는 과거의 유물에 매달려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을 종북몰이로 몰아 논의를 중단시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냉전시대에 수구세력에게 부당하고 비윤리적인 정치적 이익을 챙겨주면서 상상의 자유조차 억압하고 한반도 대치 구도에 대한 상식적인 문제제기를 저지해 온 국가보안법은 개폐되어야 한다.
정치적 자유와 언론 자유가 없고 정보 통제가 심각한 북한이 독재국가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남북 대치 상태에서 그에 대한 외부의 문제제기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어렵다. 지금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논의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권 문제 등은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 수구 보수도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대북 정책 수립을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집권 과정과 그 이후 드러낸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정치스타일로 보아 그가 언제 북미협상을 전면 백지화하고 한반도 상황을 최악으로 악화시킬지 알 수 없다. 한국 최대의 경제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가 한미동맹으로 인해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날 국가이기주의 경향이 심화되는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느 상황에서든 크게 위태롭지 않게 평화통일이라는 대장정을 향해 순항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운전자론은 세치 혀만으로는 안 돼
한국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와 안전의 정착이라는 목표에 기여하기 위해 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지금은 한미동맹관계 정상화가 급선무다. 두 나라 동맹 관계를 국제적 상식으로 보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동시에 정상적인 남북교류협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의 족쇄를 풀어 없애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미동맹이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던 것은 국보법 때문이다. 국보법은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제기를 친북행위로 단죄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시급히 해결했을 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운전자론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것’인데, 이는 세치 혀만으로 되지 않는다. 상당한 역량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에서 확실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한 몸인지 여부가 구별되지 않는 현재의 한미동맹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 미래를 동시에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게끔 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 드러나는 전횡에 대한 책임 일부는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제공하는 한국에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