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20세기식 가족'의 종말
일취월장7
2019. 3. 25. 12:07
'20세기식 가족'의 종말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21세기 한국 가족제도를 되돌아 '본다'
2019.03.18 13:48:16
20세기 초반 성립되어 지난 100년간 정착되었던 근대의 '정상 가족' 개념은 흔들리고 있다. '자연스러운(것으로 믿어온)' 사회의 기본 단위이자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마주치는 첫 사회 집단인 가족. 21세기 한국은 '정상가족'의 관념과 제도가 붕괴되는 현상을 사회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가족 붕괴와 한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연일 보도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혼외 결혼을 통한 출산에 관해서 여전히 관대하지 못하며, 입양을 통한 자녀 양육이 드물고, 외국인과 가정을 이룬 사람을 색안경을 쓰고 본다. 완고함과 취약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한국의 가족제도는 대체 어떤 변주를 겪어온 것일까? 이 글은 영화 속 가족 이미지와 현실 가족의 모습을 살펴보며, 근대 가족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 조심스럽게 되짚어 본다. 영화는 현실의 조각들을 예리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여성들이 4비(非)(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시대를 외치고,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한다. 2017년 조혼인률(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은 5.2명에 불과하며, 평균 결혼 나이는 여성은 30.24세, 남성은 32.94세이다. 2016년 조이혼률(인구 천 명당 이혼 건수)은 2.1명에 달한다. 조혼인률에 5.2명과 비교해보면, 결혼한 커플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혼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혼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이에 대한 사회적 반향도 거세다.
2018년 합계 출산이 0.98로 떨어졌다. 2016년부터 정부는 '출산지도'를 그려가며 '인구문제'를 대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곧 여성을 재생산의 도구로만 본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1인 가구가 가족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렇듯 지난 100년간 만들어지고 정착되었던 근대의 '정상 가족' 개념은 이제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스러운(것으로 믿어온)' 사회의 기본 단위이자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마주치는 첫 사회 집단인 가족. 이 '정상가족'의 관념과 제도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 붕괴에 대한 불안이 연일 보도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혼외 결혼을 통한 출산에 관해서 여전히 관대하지 못하며, 입양을 통한 자녀 양육이 드물고, 외국인과 가정을 이룬 사람을 색안경을 쓰고 본다. 완고함과 취약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한국의 가족제도는 대체 어떤 변주를 겪어온 것일까? 이 글은 영화 속 이미지로 만들어진 가족과 현실 가족의 모습을 살펴보며, 근대 가족이 우리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 조심스럽게 되짚어 보고자 한다. 영화는 현실의 조각들을 예리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가족' 제도의 탄생
20세기 초에 등장한 근대 가족 제도는 전근대 시대의 가족 제도를 붕괴시키며 성립하였다. 전근대 시대의 가족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가부장 중심의 대가족 제도에 있다. 집안과 문중이 중심이 되는 남성 가부장과 그를 둘러싼 방계 가족, 그리고 그 안의 고정적인 성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의 모습이었다. 근대적 가족 제도는 1920~1930년대부터 정착하기 시작하여 전근대 시대의 일부다처, 신분제에 바탕을 둔 대가족 제도를 거부했다. 개인의 자유의사를 바탕으로 한 결혼, 낭만적 사랑과 자유의지(자유연애)에 기반한 일부일처 결혼 제도는 전근대의 가족 제도 보다 평등하고 합리적이고 우월한 가족 제도로 담론화 되었다. 1920년대부터 이혼소송이 급증하기 시작했던 것도, 구시대의 결혼(조혼/ 집안끼리의 결혼/ 첩을 두는 관습) 관습을 버리고 애정에 기반한 일부일처의 근대 가족제도가 재정비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회 풍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 풍경을 그려낸 영화는 대표적으로 1936년에 개봉된 <미몽>을 들 수 있다.<미몽>은 가정 밖의 사랑을 갈구하는 유부녀의 일탈과 처벌을 다루고 있다. 이는 당시의 많은 신여성이 추구한 자유연애의 단면을 결혼한 여성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많은 신여성/모던 걸들이 (조혼한)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지만 첩으로 머물지 않고자 하거나(물론 제 2부인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정사(사랑해서 죽음)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연도 구시대의 남녀관계에서는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이런 면에서 <미몽>은 과거의 일부다처의 가족제도가 일부일처제로, 집안 사이에 맺어졌던 가족관계가 애정에 기반한 남, 여 개인의 사랑에 의해 무너지는 위기의 순간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몽>에서 여성이 남성 중심의 가정에서 일탈을 꿈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일탈이 가능한 배경에는 애정을 기반으로 한 남녀 관계와,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근대 결혼 제도의 법적 도입이라는 사회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근대적 결혼 관계는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재정의 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변혁적 제도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압축적 근대, 산업화 사회의 가족
한국에서 자유의사에 기반한 일부일처제, 그리고 법률혼이 정착된 것은 1960년대 말이나 되어서다. 근대법 체제가 시작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부부 사이에 ‘법적 혼인 관계’를 이루는 것이 지금처럼 당연히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첩을 두고 있는 남성들도 여전히 많았다. 1956년대에 생긴 가정 법률 사무소가 가장 시급한 캠페인으로 여겼던 것도 사실혼 관계를 법률혼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사실혼 가정이 이혼했을 때 대개 여성이 보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신장된 여권과 법적 혼인을 토대로 한 근대적 ‘정상 가족’은 새롭게 주조되기 시작했고, 산업화 시대에 이르자 국가 경제의 기본 단위로서 사회적 역할이 더욱 강조되었다.
1950년대의 영화 <자유부인>에서 여주인공이 바람을 피다 처벌 받으며 가정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과, <자유결혼>속 애정에 기반한 동등한 남녀 사이의 로맨스, <로맨스 빠빠>를 위시한 많은 1960년대 가족 드라마 속 수많은 소시민 가부장이 재구축 되는 것도, 법률로 정비된 “정상 가족”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했던, 전쟁을 겪고 사회 재건이 필요했던 국가의 요구와 맞물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시기의 가족 영화들은 프로파간다 적이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 있다. 1968년 최고의 흥행 기록을 갱신하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유부남이 처녀와 혼외 관계를 맺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신파 멜로드라마는 축첩을 용인하지 않고, 사생아는 본처와 남편으로 이루어진 호적법 안으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법적 변화를 내포한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커플이나 성매매 여성들을 정상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낯선 풍경도 이 시대에는 종종 벌어졌던 일이었다. 남자와 여자 1대 1로 이루어지는 핵가족, 법률혼 중심의 가족 관계는 이렇게 1950~1960년대를 거쳐 차차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가부장제는 핵가족 중심의 가부장제로 재편되었고 남성은 국가의 기둥으로 여성은 이를 보조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개발독재 체제의 충실한 일원이 되어야 했다.
1970~1980년대에는 정상적 가족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상당히 정착했고 남과여로 이루어진 이성애적 법률혼이 일상화 되었다. 이 시기에는 영화 속에 '가족'의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영화 속 가족 이미지의 부재는 오히려 현실에 건재하는 가족을 역설하는 듯하다. 1960년대 말을 거쳐서 가족은 거의 법제화 되었고, 사랑하는 부부와 알토란같은 자식을 기반으로 한 가족의 모습은 정상화 되었다. 가족의 문제는 부부 사이에 아이를 셋을 둘 것인가, 둘을 둘 것인가, 하나를 둘 것인가 하는 인구의 문제로 직결되기 시작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와 같은 슬로건 아래에 낙태와 정관수술은 폭력적으로 행해졌으며, 개인의 몸에 대한 권리는 억압적 국가에 의해 크게 손상되었다.
이 시기 영화에 '가족'이 부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를 소비하던 관객의 변화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텔레비전 산업의 부상으로 소위 '고무신부대'가 '안방극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전원일기>와 같은 TV 드라마에는 계속 소소한 가족의 모습이 나온다),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변두리 영화관의 증가와 남성관객 주도적 관람 문화는 음성적 관음증 문화를 태동시켰다. 1980년대에 '통금'이 풀리면서는 가증된 성매매나 밤 문화는 남성들을 자본화된 혼외정사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다시 말해 가족이 법제도적으로 구축되었으나, 현실의 '가족'은 법제도가 추구하는 신성한 가족 제도와 대단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 붕괴되다 : 순혈, 이성애, 혈연적 가족 상상의 균열
이렇게 역사를 거치며 정립, 유지되던 가족 제도는 1990년대가 되면서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근대 가족제도가 남-녀 사이의 평등에 기반한 관계를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여성과 남성이 담지하는 본질주의적 '성차(sexual difference)'는 지속적으로 남성이 보편이 되고 여성이 주변부가 되는 가부장제의 다른 얼굴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한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자연화해 온 이성애적 가부장 제도에서는 동성결혼과 같은 "주변적 성(marginal sexualities)"을 가진 사람들의 공간이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과거 100년 동안 지속해온 근대 가족 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기보다 근대에 이르러 특정한 인간과 사회관계를 새롭게 '정형화'하였을 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1990년대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가족법 개정과 2005년 호주제 폐지는 개발 성장기를 통해 발화가 지연되었던 여성의 보편적 권리를 찾고, 이데올로기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법적 평등을 추구한 '사건'이었다. 법 개정을 통해 여성의 권리는 한층 보장되었고 여성의 교육과 경제권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산업화 시대가 규정했던 성 역할이 지배적인 가부장적 가족 구조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이후 <정사>, <바람난 가족>, <아내가 결혼했다>, <가족의 탄생>,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의 영화에서 ‘가족’이 또 다시 화두가 되는 것도 이러한 현실의 맥락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가족의 근간이었던 경제적 안정이 붕괴된 이후로 영화에는 각종 '붕괴된' 가족의 모습이 등장한다.

▲ 영화 <바람난 가족> 포스터.
과거에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사랑이 넘치는 공간으로 그려졌던 '가족'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여성은 자신의 욕망에 더욱 충실해지고 더 이상 처벌받지 않으며(<정사>), 혼외 정사를 그리는 것은 그다지 불경스럽게 묘사되지 않거나 심지어 신나는 탈출로 여겨진다(<바람난 가족>). 일처다부의 모습을 '귀엽게' 그리기까지 한다(<아내가 결혼했다>). 동성 결혼이 행복한 엔딩으로 그려지는가 하면(<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혈연이 아니어도 같이 사는 공동체가 즐거운 ‘가족 공동체’로 제시된다(<가족의 탄생>).
이 영화들에서는 약 100년간의 제도화를 통해 정착되었던 일부일처의 '정상가족'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1920년대에 전근대의 가족 제도가 생명을 다하고 무수한 이혼 소송이 생겨났듯이, 1990년대 이후에 한국은 또 다른 가족의 상황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부부 사이의 정절의 의무를 법으로 제지하던 '간통법'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옹호하며 2015년 폐지되었다. 이제 부부 관계, 혹은 가족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법적인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의지’에 의한 것임이 명확해 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결혼 이민자의 증가로 기존의 순수한 한국 혈통의 대물림을 상정하던 '가족'의 모습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흔히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지는 가족의 모습은 한국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어왔던 '인종'의 문제를 가족제도 안으로 끌어왔다. 그러나 순혈적 민족을 시민의 기본으로 상상하던 한국의 가족제도 속에서 인종이 섞인 가족을 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영화 <완득이>는 인종적으로 상이한 ‘그들’을 우리의 '가족' 안으로 포용하는데 필요한 우리 사회의 법적, 문화적, 사회적 태도를 예시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 외국인 엄마로 등장했던 이자스민이 현실에서 전략적으로 국회에 보내지고 외국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자 곧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일은 한국 사회가 가진 '인종'에 대한 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실감하게 한다.
3편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영화 <가족 시네마 (2012)>에서는 결혼을 둘러싼 많은 행위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출산과 양육마저도 공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예리하게 묘사된다. 경제적으로 파탄에 빠진 남성은 다가오는 아이의 출산일에 자살 충동을 느낀다. 난자 제공을 통해 학비를 충당했던 성공한 여성은 뜻하지 않게 자신의 난자에서 자란 아이를 만나자, 매정하게 양육을 거부한다. 모성의 신화는 부서진다. 4.16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이 사회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키울 수 없는 '안전하지 못한' 사회임에 통곡하게 한다. 이제 이 '헬조선'에서 정상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공포에 가까운 어떤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족의 미래
20세기 초반에 전근대적 일부다처제가 일부일처제로 변모했듯이, 21세기에는 일부일처제가 일부다처제(<아내가 결혼했다>)로 변화할지 다부다처제로 변화할지, 혹은 가정을 통한 사회 재생산이라는 구조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정자/난자 은행이 후속 인류를 생산하는 주요 재생산 기관(?)이 될지는 아직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과 가족 제도의 흔들림이 보여주는 것은 20세기가 만들어낸 근대 가족 제도가 실상은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통을 통해서만 성립 (불)가능한지 절실히 깨달은 21세기 인류가 내는 비명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바람직한 제도를 하나로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이 급격히 변화한 21세기의 글로벌 지형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회 구성원의 변동은 한 국가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경제, 문화, 사회 체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 변화는 사회 전 구성원의 삶과 연동되는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법이 규정하는 '정상 가족'은 비혼인/ 동거인 가정에 대한 차별적 과세 제도를 가지고 있다.
다문화 가구에는 충분한 혜택과 교육이 주어지지 않으며, 가정 밖의 출산과 양육에 관한 사회적 도움은 찾기 어렵다. 다양한 성적, 신체적 소수자들의 권리도 가족의 형태로 보장받지 못한다. 이러한 산재한 문제들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제도 개선을 이루냐에 따라 미래의 가족의 형태는 결정될 것이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법과 교육 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이들을 대면하는 감정과 윤리의 리터러시(literacy)를 키우는 것도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숙제일 것이다.
한계에 달한 20세기적 근대 가족 제도를 넘어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각양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 가족은 인간 사이의 가장 친밀한 유대를 가진,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각기 다른 모습의 가족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편견 없이 받아들여질 때, 한국 사회는 수명을 다해가는 가족제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가부장에 갇힌 천만영화, 새로운 가족 영화의 모습은?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한국영화사에 재현된 가족
2019.03.25 10:19:49
지난 세기 동안 한국 영화는, 특히 가족 문제를 다룬 영화는 한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대중문화보다 영화는 대중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영화와 사회는 깊은 연관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매체에서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속 가족의 변화를 통해 사회의 변화와 시대적 변화, 나아가 미래의 가족 형태까지 살펴보았다. 흥미롭게도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한편에서는 가부장이 죽은 후 다양한 대안 가족이 등장하는가 하면, 대중이 즐겨보는 천만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부재를 그리거나 강한 아버지를 욕망하고 있다. 이 모순적인 현상을 통해 미래의 가족 형태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왜 가족인가?
가족의 변화 양상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린다. 핵심은 4인 가족이라는, 매우 친숙한 형태의 가족이 이제는 많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1인 가족이 가장 많다고 한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가족 구성원의 숫자대로 1인 가족이 1위, 2인 가족이 2위, 3인 가족이 3위가 되어, 이제 4인 가족은 대가족이 된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사회의 많은 부분도 바뀌었다. 주거 형태는 말할 것도 없고 생활 패턴도 바뀐 것이다.
이런 흥미로운 뉴스를 접하면서 한국의 가족 형태가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도 직접적인 통계가 아니라 지난 100년 동안의 가족 변화상을 한국영화사를 통해 짧게나마 살펴보려 한다. 한국영화사에 재현된 가족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는 그 시대의 관객들이 욕망하는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많은 소재 가운데 가족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것은 가족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기 때문에 가족의 변화상을 보면 그 시대의 변화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사를 통해 본 가족의 변화상
가족이라는 시각에서 지나간 100년의 한국영화사를 살펴보면 결국 가부장제라는 억압적 제도에서 기인한 남성 중심의 폭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성적인 차원으로 좁히자면, 남성 중심의 폭력과 간섭,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성들의 반란의 역사라고 할 수 있고, 아주 구체적으로 작품 명으로 거론하면 <미몽>의 반복적 재현 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의 연이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몽>은 일제강점기에는 도저히 등장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조선의 유교적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여성의 자유로운 연애와 가출, 일탈을 그린 영화가 등장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당시에 쏟아졌던, 신여성 담론과 자유 연애론에 입각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면서 이런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오히려 영화가 등장할 시기에는 현모양처 담론이 강해지는 보수적인 사회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미몽> 같은 영화가 등장할 수 있었다. 즉, 신여성 담론을 타락한 여성 담론을 규정하면서 동시에 경계하고자 하는 의도가 <미몽>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의도 때문에 지금 봐도 매우 충격적인 내용의 여성 일탈이 감행될 수 있었고, 이에 맞게 강력한 처벌이 행해질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영화 직후에는 일제의 병참기지로 변한 조선의 사정을 고려해 군국주의를 체화한 가족이 등장하거나, 황군의 사명을 영광으로 아는 젊은 남성들을 그린 영화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되었다. ‘천황제 가족주의’가 조선에 등장한 것이다. 이제 여성은 현모양처를 넘어 총후부인이나 군국의 어머니가 되어야 했다.
흥미롭게도 해방 후에 다시 <미몽>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본이 물러간 자리를 차지한 미군은 개인주의와 근대화의 문물을 지니고 해방된 조선 땅에 들어왔다. <자유부인>은 그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가장이 있는 집에서 가정을 지키던 아내가 외부에서 일을 하면서 바람이 나지만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 <미몽>은 자신의 과오 때문에 딸이 죽자 자살하고 마는데, <자유부인>은 잘못을 뉘우치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아들이 눈물로 그녀를 붙잡으면서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미국의 문화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바람 난 부인을 처벌하고 뉘우치게 할 만큼 유교적 질서는 여전히 공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여성을 집으로 불러들이게 한 것은 여전히 모성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역으로 모성 이데올로기를 저버린 여성은 마땅히 처벌 받아야 한다는 프레임이 공고화된 시대였던 것인데, 이 프레임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세대 교체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마부>, <박서방> 등을 비롯한 그 숱한 가족희극영화에서 구세대는 근대화의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없는 낡은 세대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신세대에게 밀려났다. 이때 등장한 신세대는 주로 아들과 사위로 구성된 남성들인데, 이들은 박정희 군부정권과 결탁해 새로운 가부장이 되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집안의 가장이 된 새로운 세대가 얼마나 확고한 가부장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젊은 시절 바람이 나서 낳은 아들을 남성은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지만, 두 여성들은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다. 제도적으로 남성에게 속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은 아이와 두 엄마 사이에서 발생하고 아버지는 갈등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강한 가부장의 시대는 1970년대의 호스티스영화, 1980년대의 성애영화로 무한증식을 하면서 여성을 성적 상대나 관음의 대상으로 그리도록 했다. 한국영화사 가운데 가부장제가 가장 확고했던 시대를 꼽으라면 단연 ‘1970년대∼1980년대’를 거론해야 한다. 이 시기는 군부 정권이 강한 힘을 발휘했던 시기로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한 수직적인 명령 체계로 국가와 사회가 지탱되던 때였다. 이런 시기에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 되거나, 많은 새마을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동원된 일꾼이 되어야 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애마부인>은 <자유부인>보다는 <미몽>에 가깝다. 바람을 피운 부인은 남편에게 사죄하거나 스스로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정부와 남편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갈등한다. 이렇게만 보면 <애마 부인>은 한국영화사에서 혁신적인 영화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애마부인>은 남성의 관음증 범위 내에서만 작동한다. 그녀는 철저하게 남성의 손길에서 성애를 느끼고 흥분한다. 그녀는 남성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 것 이다. 심지어 강간을 당하면서도 흥분을 하던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만났음에도 남편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가정을 무시하던 사람 아니었던가. 결국 <애마부인>은 <미몽>에서 시작해 <자유부인>으로 엔딩을 장식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정사>야말로 ‘혁명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에 와서야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진정으로 실천한다. 고분고분하게 자란 여성은 의외로 늦게 찾아온 사랑과 진실하게 대면한다. 그 결과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유한 환경,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 등을 모두 거부한 채 집을 나오고 만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정부와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와 모성 이데올로기를 모두 버리고서. 한국영화사에서 이 영화에 와서야 비로소 모성 이데올로기에서 어머니가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야 드디어 <미몽>, <자유부인>, <애마부인> 등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성이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고, 누구의 부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개인이 된 것이다.
가부장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을 그리려면 먼저 가부장을 스크린에서 죽이는 영화가 등장해야 한다. <바람난 가족>이 그 역할을 했다. 가족이 전부 바람이 났지만 죽어가는 가부장은 더러운 피를 토하면서 자신의 한계에 직면해야 한다. 그는 이제 권력도 별로 없고 육체적 힘도 없어 수명이 다해 간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였던 부인은 새로운 연인을 만나 연애에 빠져 있고, 며느리도 아들 몰래 임신을 했다. 정작 바람을 피우고 있던 아들은 자신 때문에 아이가 죽게 되고, 나중에는 정부에게도 차이고 만다. 무엇보다 아들은 며느리에게도 버림 받는다. 가부장은 죽고 아들은 이혼을 당해 홀로 살아가지만, 부인은 새로운 출발을 하고 며느리는 새롭게 애를 키우며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가부장은 죽었고 여성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침내 스크린에서 ‘여성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한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안가족이 등장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부다처제를 뒤집어 일처다부제를 그린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보여주던 일부다처제가 무너진 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일처다부제를 그리고 있는 것. 어쩌면 이것은 대모 사회를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혈연주의의 강고한 집착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가부장의 혈연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그것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결혼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바로 이 지점에 정확히 머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지 영화에서는 혈연주의를 확인한 뒤에야 안심을 하고, 그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이것은 영화의 한계인가 현실의 한계인가?
<가족의 탄생>은 혈연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넘어서려고 한다. 혈연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이기주의와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비혈연 가족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성이 배제되고 여성이 부드러운 엄마의 기능을 하는 가족을 만들었는데, 영화 속에 그려진 가족은 그들이 기른 딸을 통해 남을 배려하는 엄마들의 습성을 지닌, 매우 다정다감한 인물로 재현된다. 그런 여성들의 심성은 헤픈 것이 아니라 정이 많은 것이다. 거친 남성들이 도저히 만들지 못하는 가족을 여성들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여성 공동체면서 대모 가족이다. 이래저래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대안가족은 여성이 중심이 되는 가족이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는 동성애 가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지독히도 강한 동성애에 대한 혐오 속에서 동성애 커플은 부모를 속이고 동료들을 속이면서 거짓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가 판타지에 가까운 스타일로 동성애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마이 페어 웨딩>에서는 김조광수 감독의 실제 다큐를 통해 이들의 결혼식이 얼마나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거꾸로 말하면) 그 고단한 과정을 넘어 결국에는 결혼식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지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이들의 결혼은 합법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싸우고 있다.
천만 영화에 나타난 가부장의 모습
200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를 보면 가부장이 죽고 가부장제에서 차별을 받던 여성이나 동성애자 같은 약자를 중심으로 한 대안 가족이 활발하게 재현되고 있어, 마치 그런 움직임이 대세인 것처럼 착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상황은 그렇지 않은데, 대중들이 가장 많이 관람하는 천만 영화를 보면 이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천만 이상의 관객이 특정 영화를 관람했다는 것은 남녀, 노소, 지역, 종교, 학력 등의 차이를 넘어서는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천만 영화에 재현된 가족 이데올로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다.
천만 영화의 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아버지의 재현에 관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많은 영화는 아버지의 부재를 그린다. 당장 보더라도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해운대>, <도둑들>,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암살>, <택시운전사>, <신과 함께-죄와 벌>, <신과 함께-인과 연> 등이 그러한데, 한국영화로 한정하면 총 16편의 천만 영화 가운데 11편이 아버지의 부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자식이 고생을 하는 내용이거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 또는 아버지의 부재가 불러온 불안을 그리고 있다.

▲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그런데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 있다. 천만 영화 가운데 몇 영화는, 아버지의 부재와는 정반대로 강한 아버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 같은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아버지(<명량>), 정의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아버지(<변호인>),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아버지인 재벌 회장(<베테랑>), 백성의 어버이인 왕(<광해, 왕이 된 남자>),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가 딸을 기쁘게 하는 경찰 아버지(<극한 직업>) 등이 그렇다. 두 현상은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한 것도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천만 영화가 어머니를 그리는 방식이다. 아버지가 부재하나 지나치게 강한 아버지가 등장하면, 모성으로서의 어머니를 그려 평안한 가족 이미지를 스크린 속에 재현하는 것이 정상적인 가족이고, 가족 이미지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성의 존재로서의 집, 그 따뜻한 품이 천만 영화에는 없다. 어머니는 죽었거나 떠났거나 조용한 존재들이다. 어디에도 모성의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니 아버지의 부재가 강조되거나 강한 아버지가 더욱 부각된다. 결국 천만 영화에서 어머니는 단지 배경으로 작용하거나 그나마 배경도 되지 못한다.
천만 영화는 아버지의 부재나 고난에 처한 아버지의 상황을 그려 비극적 정서를 극대화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이런 서사에서 어머니는 존재감이 없거나 미약하다. 이런 재현은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그리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적 이미지로서의 현대 아버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서 가속화된 가장의 위기는 가족의 위기가 되었고, 그런 위기를 영화는 신파적 정서로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천만 영화가 이런 정서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근원적으로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기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영화는 지금 퇴행적이다.
어떤 가족이 등장할 것인가?
간략하게 요약하면, 2000년대 이전까지 한국영화는 가부장과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시발점이 <미몽>이었고, 다음이 <자유부인>이었다. 이후 영화들은 가부장 질서와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두 편의 영화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고, 드디어 <정사>에서 성공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천만 영화를 보면 여전히 가부장을 그리워하거나 그가 없어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앞으로의 가족 형태는 결국 두 종류의 영화가 재현한 그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이것만은 명확하다.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1인 가족이나 2인 가족 가운데 노년층이 아니라 젊은 층으로 국한하면, 그래서 결혼을 하려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들의 생각이 투영된 가족의 형태가 많아지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두 영화적 상황에서 공히 영향을 받았다고. 즉 가부장제의 그 엄한 질서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결혼의 거부와 출산의 거부로 이어져 생긴 현상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경제를 지탱해 주던 강한 아버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결혼을 할 수 없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세대의 현실이 반영된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앞으로의 가족 형태는 1인 가족과 2인 가족의 형태로, 지금보다 더 빠르게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한국영화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