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몽상가들의 천국 CES를 가다

일취월장7 2019. 2. 1. 10:20


몽상가들의 천국 CES를 가다

매년 1월 열리는 CES(소비자 전자제품 전시회)는 전 세계 창업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투자자와의 협력을 유도한다. 인류의 집단 지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라스베이거스·이효석 (네오펙트 최고알고리즘 책임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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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를 다녀왔다. 참석 횟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전 세계의 몽상가들이 가져온 다양한 아이디어를 즐기는 게 CES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아이디어에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물론 기술에 기반한 해결책도 들어 있었다. 비록 어떤 이는 시제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그저 부스에 앉아 아이디어만을 이야기했다.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 세상에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다음 해 그런 멋진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켜 CES에 제품으로 만들어오는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필자는 아이디어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합뉴스
1월7일 ‘CES 2019’ LG전자 전시관 입구에 설치된 올레드 조형물에 관람객의 발길이 몰렸다.

CES는 매년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Consumer) 전자제품(Electronics) 전시회(Show)이다. IT 기술의 발전은 센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의 기술과 더불어 일상의 거의 모든 도구를 전자제품으로 바꾸고 있다. CES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특정 분야의 전시회로 스스로 규정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비롯해 온갖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받아들인다. 20만명에 가까운 인원을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의 특성도 한몫했다. 여느 IT 전시회와는 차별화된, 규모와 미디어의 관심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시회로 거듭났다.


CES를 즐기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다. 최신 기술 트렌드를 중심에 두고 대기업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는 이들과, 특정 문제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보는 이들이다. CES의 전시장 구조 또한 이런 구분에 충실하다. 원래 전시장은 세 곳으로 나뉜다. 사람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위치한 샌즈(Sands) 전시장, 주요 대기업이 있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이다. 물론 최근 참가 기업이 크게 늘어난 까닭에, 공간이 넓은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 특정 분야 중소기업이 점점 더 많이 배치되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발견되는 곳은 초기 스타트업들이 자리 잡은 샌즈 1층 전시장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유레카 파크’라 부른다. 매년 유레카 파크를 둘러보면 올해 어떤 몽상가들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왔는지, 그리고 지난해 등장한 아이디어가 올해에는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이디어가 훌륭하면 다른 이들 또한 조금씩 다른 방식, 혹은 다른 목적으로 그 아이디어를 활용한다. 복제나 특허 같은 문제와 무관하게, 그 아이디어의 뛰어남을 말해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즉,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려 하기보다 누군가가 먼저 제시한 아이디어를 조금씩 바꾸어 시도하는 것이다. 아이디어 자체가 공공재처럼 사용되며 발전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세상에 소개된 뒤 많은 이들이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은 이카로스(Icaros)라는 VR 운동장치가 있다. 이카로스는 발명가인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든 날개를 달고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신화 속 인물이다. 하늘을 나는 것은 인간의 오랜 꿈이다. VR로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면 어떨까? 몸에 좋은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면? 플랭크 운동이라는 자연스러운 요소를 더해, 즐거움과 유익함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당시 이 제품은 약 1000만원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에 꽂힌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올해 플라이저(Flyser)라는 벨라루스의 회사가 거의 같은 기능을 가진 제품을 전시했다. 그들은 자기 제품이 약 700만원으로 조금 더 저렴하다고 소개했다. 또 콘텐츠를 이용해 고소공포증 같은 증상을 치료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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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CES 2019’에서 한 관람객이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가상현실 시뮬레이터 ‘버들리(Birdly)’를 체험하고 있다.

사실 하늘을 나는 경험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하늘을 날고자 하는 마음을 이용해 위 두 제품이 운동이나 치료라는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면, 버들리(Birdly)는 아예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사용자는 두 팔로 날갯짓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이 하늘을 나는 새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얼굴 앞에 위치한 선풍기가 일으키는 바람은 자신이 정말로 하늘을 날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쉽게도 이 제품은 위시리스트에 올리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인 약 1억원이다. 버들리 관계자는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개인이 아니라 놀이공원과 같은 시설이 자신들의 고객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비슷한 제품이 잇달아 출시되는 경우는 많다. 아이디어가 좋다면 누구나 따라해 확산된다. 최근 IoT와 웨어러블, AI 스피커 열풍에서 보듯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아이디어 확산 현상이 일어난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최근 푸른빛이 생체리듬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눈에 특정한 파장의 빛을 쐬어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여러 제품이 등장했다. 올해에는 오스람과 같은 대기업이 CES에서 빛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갈구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적어도 제품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돈(자본), 곧 투자를 바란다. 유레카 파크 부스에서는 투자자를 찾는다. 투자자 처지에서 생각해보자. 투자자들은 수많은 아이디어를 거의 매일 접한다. 투자자 시각에서는 아이디어의 독창성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훌륭한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그 아이디어가 현실에 구현되고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대박을 꿈꾸는 창업가만큼이나 대박을 꿈꾸는 자본가도 많다. 아이디어와 돈이 만나는 접점에서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실행 능력이다.

‘유레카 파크’ 졸업하면 샌즈 2층 부스로

ⓒAFP PHOTO
바디프랜드의 ‘람보르기니 안마의자’.

실행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창업자의 경험과 지식이다. 빠르게 실행 가능한 제품(MVP: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드는 린스타트업(Lean startup) 창업론도 실행을 강조한 방법론이다.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제품과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어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이를 끊임없이 반영해 기능을 개선하며 제품으로서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창업자는 다음 단계에 필요한 인재를 구하고, 계획을 수정해가며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창업자에게 필요한 이런 능력에 한 가지를 더 꼽으라면, 집념에 가까운 확신이다. 좀 더 과장하면 광기라고 할 수도 있다.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빌 게이츠가 몇 년 전 올해의 책으로 꼽았던 <슈독(Shoe Dog)>을 읽었다. 슈독이란 ‘신발에 미친 사람’을 말한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인 이 책에서 그의 모든 행동은 이 한 단어로 설명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자본, 그리고 창업자의 실행능력과 확신이 만나 제품을 출시하면, 이제 이들은 샌즈 1층 전시장인 유레카 파크를 졸업하고, 샌즈 2층에 위치한 중소기업 부스로 올라갈 준비가 된 것이다. 샌즈 2층 전시장은 스마트홈, 건강, 웨어러블, 모바일, 스포츠 등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에 올해에는 바디프랜드, 인바디, 코웨이, 골프존 등 국내 회사들이 대형 부스를 차려 주목을 끌었다. 사실 샌즈 2층 전시장에서 이 정도 크기의 부스를 만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다. 바디프랜드의 ‘람보르기니 안마의자’는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골프존의 골프 게임과 야구, 테니스 게임을 경험해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미국·일본 압도한 국내 기업 전시

ⓒ연합뉴스
하이브리드 항공 택시 모델인 ‘벨 넥서스(Bell Nexus)'.

샌즈 2층 전시장에 부스를 차린 회사들은 적당한 업력과 매출, 투자금, 그리고 고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신제품을 출시하고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며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등 성장의 트레드밀에서 발을 삐끗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성공에 한 가지 확실한 공식이 있다면 바로 공식이 없다는 말이다. 한번 성공한 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중소기업들이 꾸준한 성장을 이루는 것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투자자를 찾고 제품을 구현해 시장에 출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불확실성이라는 요소가 점점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나름 성공한 중소기업도 사소한 경영상의 실수, 아니면 시장의 변화 때문에 명멸을 거듭한다.

샌즈 2층 전시장에서 부스의 크기를 키워나가던 이들은 대기업이 위치한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로 넘어가는 꿈을 꾸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올해 삼성과 LG는 적어도 전시장의 규모와 제품의 인기에서 소니, 샤프 같은 일본 회사뿐 아니라 퀄컴, 인텔 같은 미국 회사들도 압도했다. 특히 LG의 롤러블 TV는 보는 이들이 실시간으로 경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최근 몇 년간 텔레비전 산업이라는 오래된 분야에서 이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 제품이 있었나 싶다. 또 삼성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219인치 ‘더월’ 역시, 가만히 벽 앞에 서서 끝없이 화면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감동을 주었다.

물론 CES에서 전시 규모가 이들 대기업의 실제 실력이나 성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대기업도 성장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위기가 존재한다. 이들 또한 끊임없이 신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며, 모기업의 투자를 받기 위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고, 그렇게 이 사업을 책임진 이의 강력한 리더십을 따라 제품을 출시하고, 마지막으로 운이 따르기를 바랄 것이다.
아이디어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아이디어 없이 사업을 시작할 순 없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 창업자가 자신의 목표를 꿈꾸게 만들기 때문에 중요하다. 창업자의 이런 꿈에 투자자의 돈이 더해지고, 다시 실행이 이루어진 뒤, 운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만나 인류의 삶이 개선되고 각자의 꿈 또한 이루어진다.

CES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확신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창업자를 만났다. CES를 그저 둘러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열정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돌아가게 만든다. 올해 관람객이 내년에는 어딘가 작은 부스를 열고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서 자신의 아이템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열정을 발하게 될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떤 나라의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가 계속 기억에 남아, 자신의 제품을 개선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며, 그렇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다. 이렇게 CES는 전 세계 몽상가들의 아이디어를 화학적으로 반응시키고, 투자자와 창업가들의 협력을 유도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며 세상을 더 발전시킨다. CES는 인류의 집단 지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언론이 비꼰 한국판 CES의 진짜 모습은 달랐다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1.31 16:33
[르포] ‘졸속 추진’ 비판 쏟아진 ‘한국 전자IT산업 융합전시회’ 가보니
현장에선 “좋은 기회” 등 호평 나오기도

1월 초 미국 CES에서 공개됐던 우리 IT기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1월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다. 행사 이름은 ‘한국 전자IT산업 융합전시회.’ 하지만 ‘한국판 CES’란 이름이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취지는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도 국내 언론들은 마치 공동전선을 구축한 마냥 일제히 비판의 총알을 쏘아댔다. 공통된 지적은 “정부가 급조한 쇼”라는 것. 정말 이번 전시회는 빛도 내지 못한 개살구였을까. 

1월 30일 오전 서울 DDP에서 열린 'ICT(정보통신기술) 혁신과 제조업의 미래'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관람을 하고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1월 30일 오전 서울 DDP에서 열린 'ICT(정보통신기술) 혁신과 제조업의 미래'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관람을 하고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야. 저거 대박 아니냐?” 회사원 정용석(46)씨가 삼성전자의 TV ‘더 월(The Wall)’ 앞에서 외쳤다. 전시회 둘째 날인 1월30일 행사장을 찾은 정씨는 “늘 보던 쇼가 아니라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씨는 ‘홍보 부족’이라고 꼬집던 기사들을 보고 이번 전시회의 개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정씨는 “기사 몇 줄로만 봤던 CES 출품작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찬준(28)씨는 “미국 CES에 가보고 싶었지만 못 가서 아쉬웠다”며 “궁금하던 차에 이렇게 규모는 작지만 국내 기술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좋다”고 했다.   

 

“규모 작지만 국내 기술력 볼 수 있어 좋다”

실제 전시회의 규모는 크다고 하긴 힘들었다. CES 때 부스 전체를 ‘스마트시티’로 꾸몄던 삼성전자는 1018평의 공간을 혼자 썼다. 하지만 이번 부스 면적은 108평으로 약 10분의 1에 불과했다. 전시회가 열린 DDP 알림 1관 전체가 905평에 그쳤다. 이 안에 CES에 참여했던 대기업 4곳과 중소기업․스타트업 등 총 35곳이 부스를 마련했다. CES 때만큼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기 힘들 수밖에 없는 면적이다. 

그러다 보니 LG전자의 OLED 폭포처럼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작품은 이번 전시회에 설치되지 않았다. SK텔레콤이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선보였던 ‘디제잉 로봇’과 ‘소셜 VR’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 대기업 관계자들은 “핵심 제품들은 모두 가져 왔다”는 데 입을 모았다. 업무차 전시회를 찾았다는 삼성SDS 직원 이아무개씨(31)는 “미국에 가지 못했던 국내 소비자들을 위해 경험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마련한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출품작을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삼성전자가 마련한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출품작을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네이버랩스의 지능형 로봇팔 '앰비덱스' ⓒ 시사저널 고성준
네이버랩스의 지능형 로봇팔 '앰비덱스' ⓒ 시사저널 고성준

좁은 공간에도 핵심 제품 모두 선보인 대기업들

그럼에도 이번 전시회는 개막 전부터 도마에 올랐다. 조선일보는 1월25일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판 CES가 대통령 지시로 급히 준비됐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업이 먼저 건의했다”며 곧바로 반박했다. 하지만 ‘졸속 추진’이란 비판의 봇물을 막진 못했다. 전시회에 참가한 대기업 중 한곳의 관계자는 “예정된 행사가 아니다 보니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달랐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언론에서 부정적인 면만 부각됐다고 꼬집었다. 의료기기 업체 인트인의 이유진 실장은 “언론 기사를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부정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계속 던져서 불쾌했다. ‘힘들었죠’라고 물어보면 ‘힘들었다’라고 답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관계자를 빌려 아무렇게나 기사를 썼다고 본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중견 로봇기업 '유진로봇'의 부스. 관계자는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정부 강요로 참여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중견 로봇기업 '유진로봇'의 부스. 관계자는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정부 강요로 참여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문제는 ‘언론’…“부정적 답변 계속 유도해”

보안솔루션 업체 비티비엘의 이상록 부사장은 “CES 참가가 쉽지 않은 국내 중소기업으로선 이런 전시회가 좋은 기회”라며 “서둘러 준비했지만 부담은 없었다”고 했다. 정부는 전시회참가 기업에 부스와 장비를 무료로 지원했다. CES는 부스 한 곳당 600여만원을 받고 빌려줬다고 한다. 

오히려 CES 때보다 더 유익한 자리였다는 중소기업도 있었다. 블록체인 업체 위즈블은 이번 전시회에서 부스 3개를 연결, 참여 중소기업 중 가장 넓은 공간을 썼다. 기자가 CES에서 본 위즈블 부스는 1개가 전부였다. 유오수 위즈블 대표는 “부스가 넓어져 CES 때 공개한 위즈블페이(가상화폐 결제플랫폼)뿐만 아니라 전자처방전 시스템도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위즈블은 이번 전시회에 핀테크 기업으론 유일하게 참가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키네틱랩의 부스도 더 커졌다. 이곳은 전시회 개막날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방문한 부스이기도 하다. 키네틱랩은 사람의 동작을 인지하는 댄스 게임을 CES에 이어 이번에도 선보였다. 임예준 기술이사는 “CES는 성인만 입장이 가능했고 관람객들이 케이팝에 관심이 적어 피드백을 받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누구나 참관할 수 있어 소비자의 반응을 깊게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키네틱랩 부스에서 기술 설명을 하고 있는 임예준 기술이사 ⓒ 시사저널 공성윤
소프트웨어 업체 키네틱랩 부스에서 기술 설명을 하고 있는 임예준 기술이사
ⓒ 시사저널 공성윤
보안솔루션 업체 비티비엘의 이상록 부사장 ⓒ 시사저널 공성윤
보안솔루션 업체 비티비엘의 이상록 부사장 ⓒ 시사저널 공성윤

‘흥행 실패’ 예상했는데 “개막날보다 많이 찾아와”

“홍보 부족으로 흥행에 실패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섣부르다는 의견이 있다. SK텔레콤이 ‘댄싱 VR 캐릭터’ 공연을 펼칠 땐 수십 명의 관람객이 한 번에 몰려 뒤에서 지켜봐야 했다. 네이버랩스 관계자는 “개막날인 어제보다 많은 일반인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전시회를 주관한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관계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언론 보도가 과장됐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특히 CES 때 관심을 모았던 LG 롤러블 TV가 개막 날 하루만 공개돼 관람객에게 실망을 안겼다. 좁은 규모가 원인은 아니었다. 수량이 한정돼 있어 다음 날 네덜란드 전시회로 날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정 조율이 부실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관람객으로 참여한 60대 구글 엔지니어 A씨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CES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규모가 예상보다 너무 작다”면서 “관계자들의 기술 설명도 허술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졸속으로 준비했다는 티가 난다”고 했다. 반대로 따져보면 규모와 준비기간, 전문성 등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CES에 이어 이번에도 참가한 블록체인 업체 위즈블이 가상화폐 결제플랫폼 '위즈블페이'를 선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CES에 이어 이번에도 참가한 블록체인 업체 위즈블이 가상화폐 결제플랫폼 '위즈블페이'를 선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그래도 남는 아쉬움… 진짜 ‘한국판 CES’ 되려면

또 무엇이 고쳐져야 할까. 관람객 장석호(67)씨는 “우리나라 하드웨어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며 “이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기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 ‘더 월’을 가리키며 “저 선명한 화면 뒤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줘야 진정한 한국판 CES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유오수 위즈블 대표는 “이번 행사도 CES처럼 참여 기업을 산업 부문별로 나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기왕이면 아시아 IT기업들을 유치해 글로벌 연례행사로 키워야 한다”며 “그때야 비로소 진짜 ‘K-CES’라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