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북미회담①] 트럼프式 비핵화냐 파키스탄 모델이냐

일취월장7 2019. 1. 29. 10:01


[북미회담①] 트럼프式 비핵화냐 파키스탄 모델이냐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9 09:27
2차 북·미 정상회담 3大 관전 포인트
복잡해진 北 비핵화 해법

1월17일부터 19일(현지 시각)까지 2박3일간 진행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미(訪美) 일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이번 미국 방문은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백악관 방문 직후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월말 개최’라는 큰 틀만 만들어졌을 뿐이다.  

ⓒ AP 연합·연합뉴스
ⓒ AP 연합·연합뉴스

1. 2차 회담서 북·미 ‘스몰딜’ 나오나

올 초 북한 신년사는 앞으로의 비핵화 행보를 살펴보는 좋은 판단 기준이다.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공화국(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신년사에서 외신이 주목한 단어는 ‘새로운 길’이다. 경우에 따라선 2017년과 같은 대결구도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엄포로 해석된다. 김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을 통해 북한은 미국 측에 이러한 뜻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좋은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또 1월21일 자신의 트위터 글을 통해선 “2월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길 고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볼 때 판 자체를 뒤엎을 것 같지는 않다. 

북한도 1차 때와 마찬가지로 ‘톱다운(하향식)’ 방식 선호가 뚜렷하다. 회담장에서 정상끼리 만나 해법을 찾자는 거다. 그런 면에서 현재로선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취소될 가능성보단 높다. 양측 모두 대리인을 통한 협상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는 만큼, 양국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최고 의사결정권자끼리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속도는 더딜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식(式) 모델’이다. 1차 북·미 회담 전까지만 해도 외신은 북·미 협상이 성공할 경우 트럼프식 모델엔 미국의 일괄 타결 방안과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방안을 절충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1차 회담은 만나는 데만 의미를 둘 뿐 성과는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북·미 협상은 이대로 좌초될까. 이 상황에서 새삼 다시 주목받는 것이 ‘트럼프식 모델’이다. 외교가에선 올해를 북한 비핵화의 변곡점으로 본다. 내년 11월 미국에선 대선이 열린다. 다시 말해, 북·미 양측 모두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북한은 내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정권이 바뀔 경우 지금까지의 관계 개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대화 파트너인 남한의 문재인 정권도 내년이 집권 4년 차에 들어가 초반처럼 화해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없다. 

북한은 김 부위원장이 평양으로 돌아간 뒤인 1월24일 관련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장소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김 위원장이 제시한 정상회담 실무준비를 위한 과업 등도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의 움직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양측 모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이번 2차 회담을 앞두곤 양측 모두 의제 조율부터 신중한 모습”이라면서 “매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보다 사고가 유연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실무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대목”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2차 정상회담에서 북·미 양측은 어떤 카드를 내놓을까. 문재인 정부 들어 세 차례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쇄카드를 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을 빌려 말했지만,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을 경우 영변 핵시설을 폐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미국 싱크탱크들은 트럼프 모델을 ‘단계적 비핵화’로 본다. 내년 대선 전까지 미국을 위협할 잠재력을 제거하고 핵물질 확산 억제에 우선적으로 주력할 거라는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단계는 핵동결, 2단계는 핵폐기다. 

만약 북한이 핵동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경우 미국이 내줄 수 있는 카드는 제재의 부분 완화다. 단적으로 남북 경협이나 금강산 관광에 한해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부분적 유류 공급도 가능하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 조야에선 북한이 ICBM 폐기와 핵물질 동결 정도만 들고나와도 경제제재에 대한 부분적 완화를 해 줘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일각에선 ‘스몰딜’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실험 시설에 대한 국제기구 사찰과 핵물질 해외 반출이라는 확실히 진일보된 카드를 선제적으로 내놓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을 향해 북한은 연락사무소 개설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다자회담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월18일(현지 시각) 북·미 고위급회담을 시작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P 연합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월18일(현지 시각) 북·미 고위급회담을 시작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P 연합

2. 北 핵동결 진짜 의도, 파키스탄 모델?

올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은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를 취해 왔다”고 밝혔다. 이는 국제사회가 요구해 온 ‘북한판 핵동결 4대 원칙’인 생산·시험·사용·전파 포기를 최고지도자가 수용한 거라고 봐야 한다. 핵동결은 ‘미래 핵’에 대한 포기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한다면 이는 ‘과거·미래 핵’에 대한 포기다. 남은 것은 ‘현재 핵’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한·미 보수층에선 북한의 핵동결 전략에 트럼프 행정부가 말려들어가는 거 아니냐고 우려한다. 최근 미국 내에서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만 중단하고 실질적인 핵 무력 증강을 위한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 NBC방송은 지난해 말 “현재의 생산 속도라면 북한이 2020년까지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1월20일 프랑스 파리 국제관계연구소 강연에서 “북한은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 모델로 가려고 한다”며 “가급적이면 핵을 가지고 가려 한다”고 말했다. 주일미군 사령부가 지난해 말 자체 제작한 동영상(USFJ Mission Video)에서 중국, 러시아와 함께 북한을 동북아 3대 핵 보유 선언국으로 규정하고 핵무기 보유량을 15개 이상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우려를 낳게 만든다. 

미국과 우리의 비핵화 목표가 다르다는 점은 초기부터 우려됐던 부분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 본토에 대한 위협 요소만 제거하고, 대안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 카드를 던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겉으론 ‘핵 보유’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속내는 ‘이미 핵 보유국으로서 협상에 임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부분에 관심을 보일 수 있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핵 동결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북한의 의도대로 ‘파키스탄 모델’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실장은 “본토를 겨냥한 ICBM을 폐기한 상황에서 남한이나 일본을 직접 타격하는 것은 한·미, 미·일 방위동맹 체제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트럼프 행정부도 핵 동결이라는 어정쩡한 상태로 북한과 합의할 경우 미국 내 여론에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왼쪽)이 1월21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남·북·미 회의를 마치고 현지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 AP 연합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왼쪽)이 1월21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남·북·미 회의를 마치고 현지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 AP 연합

3. 南·中·러시아 활용한 對美 압박

미국과의 대화와 함께 북한의 또 다른 외교전략은 ‘반미(反美)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난해 북한은 미겔 마리오 디아스카넬 베르무데스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쿠바 역시 미국과 오랜 기간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나라다. 

새해 들어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중국을 찾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 일정은 사실상 실시간으로 대내외에 보도됐다. 통상 중국을 다녀온 뒤 북한의 관영매체들이 관련 소식을 쏟아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대중관계에 있어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답방도 예고돼 소원했던 북·중 관계는 단숨에 봉합됐다.  

문제는 북한의 의도대로 우방들이 움직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당장 최우방인 중국은 미국과 무역협상을 진행 중이다. 무역협상이 실패로 끝나 올해 중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6%에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내 한·미 동맹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입장만 대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손기웅 한국DMZ학회 회장은 “북·미 대화의 ‘종속변수’였던 남북관계가 경우에 따라선 ‘독립변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언론들이 한·미 관계를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로 비유하고 있는 것도 문재인 정부로선 부담거리다. 

또 다른 우방인 러시아를 활용하기도 마땅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내 비난을 무릅쓰고 시리아 철군을 결정한 마당에 또다시 러시아가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북미회담②] 통치자금 고갈, 김정은 ‘속이 타들어간다’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9 09:27
대북제재로 北 경제난 심각
對北협상 주도권 쥔 트럼프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만 해도 전체적인 주도권은 북한이 쥐고 있는 듯했다. 회담 직전 협상을 깨는 초강수를 뒀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측 협상단은 첫 만남에 의미를 두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번 2차 회담은 상황이 다르다. 1차 때처럼 국내정치 용도로 쓸 수도 없다. 지난해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하원이 민주당으로 넘어가 의회 협력마저 기대할 수 없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대북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두 번째마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북·미 정상회담은 실패”라며 트럼프를 압박하고 있다.    

1월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방송을 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1월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방송을 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北, 작년 對中무역 사상 최대 적자

최근 미국 정부는 신중한 모습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입장 변화는 지난해 말부터 감지됐다. 지난해 중간선거 지원유세에서 트럼프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Take your time)”는 말을 수도 없이 강조했다. 1차 회담을 앞둔 지난해 4~5월 ‘일괄타결’을 강조하던 것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왜 그럴까. 북핵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조기 타결에 따른 정치적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데다 완전한 비핵화가 쉽지 않은 현실론에 부딪혔다고 보고 있다. 

사정이 다급해진 것은 북한이다. 협상의 ‘등가성(等價性)’만 놓고 보면, 북한은 불만을 쏟아낼 만하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기, 억류 인질을 석방했지만 여전히 북한 경제는 국제사회의 제재 아래 놓여 있다.

경제난도 심상치 않다. 1월14일 발표된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19억7000만 달러(약 2조2200억원)였다. 양국 간 무역 규모가 공개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최대치다.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통치자금이 올 상반기부터 고갈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통치자금의 성격을 ‘당과 군 등의 간부에게 선물 등을 전달하고 충성을 맹세하게 만드는 돈’으로 규정하면서 “현재 30억~50억 달러(약 3조3800억~5조6300억원)가량의 통치자금이 있지만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빠르게 줄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에서 북한은 2차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요구하면서 즉각적인 경제제재 해제도 동시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뚜렷한 답을 주지 않고 ‘2월말 회담 개최’만을 약속한 상태다. 되레 미 정부 2인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월20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의사소통은 정말 놀랍다”면서도 “2차 회담에서는 구체적인 이행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압박했다. 김영철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이면서도 북한을 압박한 것이나, 지난해와 달리 김영철을 적극 환대하지 않은 것도 미국의 느긋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년사에서도 밝혔듯 북한은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다. 문인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이 부정부패 근절과 관료주의 타파를 주문한 것은 경제발전에서 존재하는 방해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자는 뜻”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이번에 물꼬를 튼 ‘친서 외교’ 역시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전달이 시작이었다고 분석했다. 



[북미회담③] GP 철거 한 달, ‘DMZ 155마일’ 현장

        강원·경기도 DMZ=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9 09:27
[르포] 달라진 것은 없다, 긴장감 여전

2018년 12월12일 남북 군 관계자들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비무장지대(DMZ)에 설치된 상대측 GP(Guard Post·감시초소)를 들여다봤다. 남북이 상호 합의하에 서로의 군사시설을 들여다본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 고지에선 양측 지역을 전술도로로 연결하는 행사도 열렸다. 이 역시 휴전 후 처음이다. 

DMZ는 분단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GP는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 군사 대치를 압축한 상징물이다. 이런 이유로 남북은 군사적 긴장 상태가 완화되기 위해선 GP 철수를 필수적인 것으로 봤다. 오판으로 단 한 방의 실탄만 서로를 향해 발사돼도 전면전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는 상존해 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GP를 중심으로 한 DMZ엔 늘 긴장감이 감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은 DMZ 내 긴장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실천적 조치로 나온 것이 ‘9·19 남북 군사 분야 합의’다. ‘연내 GP 시범철수’는 여기서 나왔다. 

1월7일 파주 통일대교. 영하 3도였던 서울의 찬 공기가 이 지역에선 영하 6도로 돌변했다. 군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통일대교를 건넜다. 다리 양편에 자리 잡은 임진강도 추위에 꽁꽁 얼어 있다. 차창을 내리니 임진강의 매서운 바람은 체감온도를 영하 10도까지 떨어트렸다. 이곳 서부전선의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은 통일대교부터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자, ‘장단콩’으로 유명한 파주 통일촌이 나왔다. 이 일대는 분단 전까지 ‘장단군’으로 불렸던 곳이다. 거기서 300m가량 가니 도라삼거리다. 더 이상의 차량 주행은 힘들다. 직진하면 판문점과 최북단 민간인 지역 대성동마을이 나오는데 이곳부턴 출입이 더욱 엄격하다. 유엔사와 군사정전위의 허락을 받아야만 진입이 가능하다.   

❶ 1월9일 새벽 강원도 고성군 해안철책 인근에서 국군 장병들이 경계근무 중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❷ 이번에 시범 철수된 강원도 동부전선에 위치한 우리 측 GP ❸ 1월7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마을 ⓒ 시사저널 고성준
❶ 1월9일 새벽 강원도 고성군 해안철책 인근에서 국군 장병들이 경계근무 중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❷ 이번에 시범 철수된 강원도 동부전선에 위치한 우리 측 GP ❸ 1월7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마을 ⓒ 시사저널 고성준

GP, 총부리 겨눈 남북 군사대치 상징

아쉬움을 뒤로하고 핸들을 돌려, 도라산역으로 가는데 건너편 도로로 미 CNN 소속 차량이 시원스럽게 달렸다. 순간 ‘새해 들어 2차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북·미 실무자들이 판문점에서 비밀리에 만난다던데, 혹시 그것 때문에 취재 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경의선 기준 우리 측 최북단인 도라산역과 남북출입사무소는 도라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남북관계가 한창 좋을 때는 이곳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개성공단을 오가는 차량이 하루에도 수십 대씩 드나들었다. 그러나 5·24조치와 개성공단 폐쇄 이후부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22일 새롭게 지어진 도라전망대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아래편에 위치한 제3땅굴과 함께 인근 지역 각급 학교의 안보교육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기자가 찾은 이날은 정기휴무일이었다. 4층 전망대에 오르니 지난해 12월 없앤 우리 측 GP가 눈에 들어왔다. 155마일 DMZ에 설치된 우리 측 GP는 대체로 외부로 돌출돼 있다. 대신 건물 주변은 거대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반면, 북측 GP는 대부분 벙커형이다. 양측 모두 소대급 병력이 GP 내 주둔하고 있는데, 북측 GP 시설은 모두 지하에 있다. 이 때문에 군 관계자 설명 없이 육안으로 찾기는 힘들다. 서부전선에서도 우리 측 GP는 잔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반면, 북측은 정확히 식별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북측이 허위로 GP를 철거했다는 건 아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양측은 지난해 12월 실무단을 꾸려 상대편 GP가 정확히 파괴됐는지를 확인 검증했다. 이곳 파주 서부전선에서 양측은 2곳씩 없앴다. 서부전선은 최근 남북관계 개선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다. 이러한 화해무드는 지난해 5월 대북확성기 철수 이후부터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군사분계선 일대에 배치된 대북확성기는 40여 대(고정형, 이동형 포함)다. 현장을 안내한 군 관계자는 “대성동마을 주민들의 경우, 남북 양측이 24시간 시끄럽게 확성기를 틀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5월부터 양측 간 심리전이 중단되면서 한층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희 파주시 장단출장소 소장은 “지난해부터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많아졌고 덩달아 농가소득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장단은 콩 외에 인삼, 쌀로 유명했다. 통일촌에 사는 주민은 303세대, 조산리는 51세대, 해마루촌으로 불리는 동파리는 76세대다. 


남북, 작년 12월 각각 11곳 GP 파괴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2㎞ 떨어진 곳에서 동서로 그은 선을 북방한계선, 남쪽으로 2㎞ 떨어진 지점은 남방한계선으로 부른다. 남방·북방한계선 4㎞ 이내는 유엔사가 관리·감독한다. 이번에 철거된 GP는 남방·북방한계선 안에 있는 최전방 감시초소다. GP 뒤쪽에는 155마일 감시 철책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GOP(General OutPost)선이다. 남북 양측은 이 GOP선을 따라 중간중간에 OP(Observation Post·전방관측소)를 두고 있다. 민간인은 이보다 5~6㎞ 떨어진 민통선 지역부터 신분을 확인해야만 출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르는 DMZ는 민통선 안쪽을 통칭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 쪽 철책은 이미 상당부분 디지털화가 진행돼 있다. 철책선을 따라 병사가 경계근무를 나서는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철조망이 사라진 자리엔 최첨단 ‘광망’이 덮여 있다. ‘스마트철책’으로 불리는 이 장비로 더 이상 장병들이 육안으로 관련 시설을 점검할 필요가 없게 됐다. 토끼 한 마리 통과하기 힘들 정도의 작은 구멍이 촘촘하게 이어진 이 스마트철책은 약간의 하중에도 곧장 반응한다. 그물이 일부 파손되면 바로 지휘통제실로 연결되기 때문에 북한군의 도발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너구리, 토끼 등 야생동물이 그물을 이빨로 찢는 일도 종종 생긴다.  

또한 중간중간에 움직이는 물체를 식별하는 무인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OP 지휘통제소에선 카메라 모니터를 통해 북한군의 움직임을 관측한다. 군 관계자는 “복무기간 단축과 현역근무자 감소를 디지털 기기가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백두대간을 타고 호랑이가 넘어온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이곳에 사는 야생동물들에게 DMZ는 거대한 우리”라고 말했다. 

❶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구선봉과 군사분계선 ❷ 경기도 파주시 옛 도라전망대 ❸ 폭파 방식으로 철거된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 GP ❹ 동해선 최북단 제진역. 현재 동해선은 강릉까지만 간다. 제진역 다음은 북한의 감호역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❶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구선봉과 군사분계선 ❷ 경기도 파주시 옛 도라전망대 ❸ 폭파 방식으로 철거된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 GP ❹ 동해선 최북단 제진역. 현재 동해선은 강릉까지만 간다. 제진역 다음은 북한의 감호역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北, 김정은 방문한 까칠봉 GP 보존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에 위치한 A GP. 그 앞으로 해발 1020m의 오성산이 솟아 있다. 주변은 넓은 평야지대다. 오성산은 전략적 요충지다. 이 산만 확보하면 남쪽으로는 포천, 북쪽으로는 평양까지 단숨에 진격할 수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도 이 오성산을 따라 남하했다. A GP로 가는 민통선 초소 옆에 병자호란 당시 철원군 김화읍에서 청나라 군대를 맞아 싸운 홍명구와 유림 장군의 위패가 모셔진 충렬사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전엔 우리 쪽 지역인 철원, 김화와 북측 평강군을 합쳐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렀다. 지금은 문이 닫힌 월정리역에서 철길(경원선)만 연결하면 원산까지 시원하게 달린다. 그 길목에 오성산이 자리하고 있다. 북측 평강군의 지명은 고구려 평강공주의 바보 신랑 온달이 훗날 장군이 돼 혁혁한 전과를 이룬 것에서 따왔다는 전설이 있다. 평강군 동쪽으로 회양군이 있다. 현재 이곳은 북한군 25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국군, 북한군, 중공군은 이곳에서 43일간 전투를 벌였다. 중공군 1만5000명, 국군 5000명이 전사하는 과정에서 고지 주인은 33번 바뀌었다. 

오성산 남쪽은 완만하다. 이곳엔 여전히 우리 측 GP가 위치해 있다. 대신 오성산을 마주 보고 있는 해발 600m 계웅산에 위치한 GP는 폭파 방식으로 없앴다. 멀리 OP에서 바라보니 콘크리트 잔해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군 관계자는 “포클레인의 현장 진입이 힘들어 폭파 방식으로 철거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12일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찾은 현장도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서 직선으로 700m 거리에 있는 까칠봉엔 북한군 최남단 GP가 있다. 전략적 요충지여서 그런지 오성산은 북한군 수뇌가 자주 찾는 곳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2013년 6월 이곳을 찾았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시범적으로 철수한 DMZ 내 11곳의 GP 중 까칠봉 GP만큼은 없애지 않고 보존키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제10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이다. 당시 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1곳을 제외한 나머지 시설물을 완전히 파괴한다”고 합의했다. 북한이 보존키로 결정한 곳이 바로 이 까칠봉 GP다.  

우리가 보존키로 결정한 동부전선 B GP는 북한군 초소와 직전으로 580m 거리에 있다. DMZ 내 GP 중 북측과 가장 근거리에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B GP는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가장 처음으로 지어졌다는 역사적 가치도 있다. 

강원도 고성군 최북단에 위치한 통일전망대. 7번국도의 끝 지점이다. 제진검문소를 거쳐 차로 5분 정도 가니 남북출입국사무소가 나온다. 여기서 출경(出境) 신고를 한 후 차로 10분 정도 내달리면 군사분계선이다. 파주에 위치한 남북출입국사무소가 개성공단 입·출경을 위한 곳이라면, 이곳은 금강산 관광객을 위해 세워졌다. 과거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시절엔 하루 7000~8000명가량이 이곳을 통과해 금강산 육로관광에 나섰다. 

지난해 말 새롭게 문을 연 통일전망대에 서니 한눈에 금강산과 해금강의 비경이 들어왔다. 《관동별곡》을 쓴 송강 정철이 금강산을 보며 “아아 조물주의 솜씨가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저 많은 봉우리들은 나는 듯하면 뛰는 듯하고, 우뚝 섰으면서도 솟은 듯하니 참으로 장관이로다”라고 말했는데, 허언은 아닌 듯하다. 해금강 맨 끝자락에 위치한 송도섬은 금강산의 절경을 바다로 옮겨온 듯하다. 북측 군사분계선을 넘어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서린 ‘감호’가 보인다. 군 관계자는 “봄날이면 북한군 몇 명이 감호에 나와 낚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전망대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안내하는 고성군 관계자는 “이번에 보존된 우리 측 GP와 북측 전망대가 위치한 351고지는 영화 《고지전》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철도를 이용한 금강산 관광은 동해선의 오랜 꿈이다. 현재 동해선은 종착역이 강릉까지다. 강릉에서 속초를 거쳐 고성까지 오는 구간은 현재 계획만 잡혀 있다. 고성군 남북출입국사무소 옆에 들어선 제진역은 훗날 동해선이 북측과 연결될 것을 감안해 2006년에 지었다. 2007년 5월엔 시범운행 차원에서 금강산에서 출발한 북측 열차가 이곳을 찾기도 했다. 다음 정차역인 북측 감호역까지 10.5㎞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 철로가 노후화돼 27㎞에 불과한 금강산까지 열차로 40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서로의 체제를 자랑하고 상대편 체제를 비난하던 대북·대남 확성기가 사라진 DMZ엔 고요함이 깃들어 있다. GP 파괴로 겉으론 화해무드가 완연해 보이지만 정작 관할 군 관계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DMZ 외곽으로 병력을 이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직까진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정전협정에 따라 북방·남방한계선 밖으로 병력을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북관계가 좋아진다고 해도 지금의 GOP 철책선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북측 GP, 우리보다 2~3배 많아

현재 군 당국은 DMZ 내 북측 GP가 160개가량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우리 GP는 60여 개다. 단순 계산해 북한이 우리보다 2~3배 더 많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시범 폐쇄 때 북측과 차등 적용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몰사진을 찍기 위해 중부전선 A GOP에서 4~5시간을 보내니 발이 꽁꽁 얼었다. 이날 낮 기온은 영상 5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최전방 OP 초소엔 칼바람이 불면서 체감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다. 민통선 밖이 봄날처럼 평화와 화해 속에 있는 것과 달리 OP와 GP는 여전히 긴장이 감돈다. 마음속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그 이하다. 초소 밖엔 살을 에는 한파가 계속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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