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승부수]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7
‘불안한 승부사’ 김정은의 다음 노림수
南·中 지렛대 활용 美와 핵 담판 시도
2019년처럼 북한 지도자의 신년사가 주목받은 때가 있었을까. 조선노동당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의 새해 첫 공식 연설이라는 점에서 북한 신년사는 서구 사회의 연두교서(Annual Message) 성격이 짙다. 김일성 주석은 정권 수립 이전인 1946년 ‘신년을 맞이하면서 전국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신년사를 매해 발표했다. 이러한 통치 행위는 1994년 사망 전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북한 신년사는 취약한 권력구조를 미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통치 수단이다. 주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도 ‘승리하자’ ‘쟁취하자’ ‘점령하자’ 등 상당히 전투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년사엔 전통적으로 북한 대외정책의 밑그림이 담긴다. 그런 점에서 2019년 신년사는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다. 2018년 한반도 해빙 무드의 출발점 역시 신년사였다.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 교류를 언급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규모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계올림픽 폐막 이후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통령 특사단을 보내, 4월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6월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것도 2018년 신년사에서 비롯됐다.
2019년 신년사가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올해가 분기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018년 초반까지만 해도 북·미는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리며 적대관계를 이어 나갔다. 이 때문에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은 세계의 화약고로 주저 없이 한반도를 지목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던 두 나라 정상이 만나, 악수할 줄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2018년 6월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 달리 비핵화 협상은 장기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현재로선 양측 모두 평행선을 이어 가고 있다.
시사저널은 2018년 5월 특집기사에서 인상 전문가 주선희 원광디지털대 교수의 말을 빌려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살이 두툼하며 피부가 두꺼운데 이는 참을성이 강하고 시련이 닥쳐도 잘 이겨내는 타입”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반대로 처진 입꼬리와 좁은 인중은 성급한 성격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인상에 위기와 기회가 모두 있다는 것이다. 2018년과 마찬가지로 2019년 역시 두 가지 상황은 모두 상존하고 있다.

■ 종전 이후 서울서 열릴 첫 남북 정상회담
2018년부터 북한의 비핵화 전략은 남한 정부와의 교류·협력을 통해 미국 및 국제사회와 화해를 이뤄내겠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최종 담판은 미국과 짓되, 필요할 경우 남한 정부와 우방인 중국의 도움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새해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중요한 분수령이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의 동력 역할을 해 왔다. 4월 판문점 선언 이후 북·미 간 대화가 답보 상태를 보이자, 약식이지만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두 정상이 만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9월 평양 방문은 하반기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사전 회담 성격도 있었다.
9월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가진 공동언론발표에서 김 위원장은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약속하였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가까운 시일’이라는 시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서울 방문을 요청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 여기서 가까운 시일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올해(2018년) 안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답방은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중요한 변화다. 문재인 정부보다 앞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못한 일이 바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남한 답방이다. 역대 정부 때마다 남북 정상회담은 판문점을 제외하곤 모두 평양에서 열렸다. 남측 지역에서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2018년 4월27일 김 위원장이 판문점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집’을 찾은 것이 유일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2월2일 뉴질랜드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진다면 그 자체로 세계에 보내는 평화 메시지, 비핵화에 대한 의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의지 등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해 “연내(2018년) 답방을 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는 없다”면서도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자체가 큰 의미가 있고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초 우리 정부는 2018년 11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연말께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다시 만나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문 대통령이 2018년 9월 평양에서 연내 서울 답방을 희망한 것엔 이러한 복안이 숨겨져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9월말까지만 해도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남북 정상회담이 어떠한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랬기에 ‘선(先) 북·미, 후(後) 남북대화’라는 정책기조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북·미 대화 중단되고 남북대화만 진전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18년 10월말, 11월초로 예상됐던 북·미 정상회담이 무기한 연기되면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양측 실무자 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의 2018년 개최는 물 건너갔다.
이때부터 청와대 내에선 답답한 한반도 비핵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또다시 남북 정상이 만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미 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차원에서 미국 쪽 사전 동의도 구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아주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김 위원장을 좋아한다. 그런 만큼 김 위원장과 함께 남은 합의를 다 마저 이행하기를 바라고, 또 김 위원장이 바라는 바를 ‘자기가 이뤄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외교가에선 “2018년 12월 중순 경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 형식을 빌려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조금씩 퍼져 나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해 11월26일 “2차 북·미 회담 전이 좋을지 후가 좋을지, 어떤 것이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데 더 효과적일지 여러 가지 생각과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답방 또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고 말해 가능성을 내비쳤다.
당초 양측이 예상한 답방 시기는 지난해 12월15일이었다. 12월16일은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일이며 24일은 김 위원장의 할머니인 ‘김정숙 탄생일’, 27일은 헌법절이다. 30일은 김 위원장이 최고사령관에 오른 날이다. 이 때문에 대북 정보라인에선 “12월 하순으로 접어들면 북한 내 대형 이벤트가 많기 때문에 연내 답방은 어려워진다”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했다. 12월 중순 한 대북소식통은 “북한은 국가적 행사에 정부 내 모든 기구가 참여하는 소위 ‘멀티플레이’가 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12월에 회담을 열어야 했다면 초순경이 낫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청와대의 구상은 경호, 의전상의 이유로 북측이 난색을 표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은 ‘남한 내 반발’이다. 문 대통령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 북한에서 가장 신경을 쓸 부분이 경호나 안전의 문제일 것 같다”며 “그 부분들은 우리가 철저하게 보장을 해야 한다. 혹시 국민들의 불편이 초래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국민들께서 조금 양해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측 입장에서 ‘북·미 간 대화가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이 또다시 만나봤자 얻을 게 별로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북측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군부보다 오히려 외교부 라인 내에 김 위원장의 답방에 부정적인 기류 많았다”면서 “일부 인사들은 남한 정부가 미국 쪽에 북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전달해 주길 바랐는데 그게 여의치 않은 것에 대해 상당히 서운해했다”고 말했다. 12월 중순 답방을 위해 청와대는 서울 시내 한 유명 특급호텔의 한 층을 통째로 빌려 놓기도 했다.

남북, 2018년 말 서울 답방 놓고 막판까지 협상
이 와중에도 청와대의 연내 답방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두 번째로 제안한 시점은 12월30일, 31일이었다. 30일은 김 위원장이 최고사령관에 오른 날이고 31일은 신년사가 발표되기 직전일이기 때문에 정상회담과 같은 굵직한 행사가 열리기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측이 ‘연내 답방’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실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시사저널은 12월24일 온라인판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12월30일부터 31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남한을 공식 방문할 것이 유력시된다”고 보도했다. 당시 시사저널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빌려 관련 사실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권혁기 청와대 춘추관장 명의로 출입기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 “김정은 위원장 답방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대외적으로 부인하는 과정에서도 통일·외교·안보라인에선 여전히 비밀리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추진했다. 보도가 나간 뒤 청와대 관계자는 오히려 시사저널에 “남한 내 갈등을 우려해 양측은 육로가 아닌 항공기를 이용해 서울을 찾는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실무선에선 김 위원장이 전용기를 타고 서울공항에 내려 여기서 헬기로 갈아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것과 헬기를 타고 바로 서울에 진입하는 것을 두고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헬기를 이용할 경우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사용하는 대형 헬기 시코르스키 S-92를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됐다. 현재 국내에 3대가 있는 이 헬기는 공군 15전투비행단 3호전투대대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 위원장 일행은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청와대 안가를 숙소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또 국회 방문도 고려했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를 감안, 적극적으로 추진하진 않았다. 1박2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방문해 두 정상이 헬기를 타고 한라산에 오르는 이벤트도 구상됐다.
연말 서울 답방은 북측이 난색을 표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대신 김 위원장의 친서가 전달됐다. 청와대는 북측이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답방 예정일이었던 12월30일 언론에 공개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김 위원장은 두 정상이 평양에서 합의한 대로 올해 서울 방문이 실현되기를 고대했으나 이뤄지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며 “김 위원장은 앞으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동분서주한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이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다”면서 “정확한 이유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30일 답방 대신 친서를 보낸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2019년 초 서울 답방이 실현될진 미지수다. 만약 추진된다면 전제조건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장기전에 돌입하는 경우다. 양 정상이 만나 북한과 미국의 조건 없는 회담을 촉구하는 모양새가 현재로선 유력하다. 변수는 미국의 반대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있어 남한 정부의 단독 행동을 문제 삼을 경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2018년 12월30일 북측 친서를 공개하면서 김 위원장이 2019년에도 자주 만나자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7 11:00
■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화해·협력 도모
김 위원장은 새해 신년사에서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며 “다만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 등 서방언론은 ‘적극적인 대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보수 성향의 미 폭스뉴스는 북한 신년사 내용을 전하면서 “김정은은 트럼프와 언제든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USA투데이도 “김 위원장이 트럼프와 핵 정상회담 재개를 희망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도 “북한 지도자가 지난해(2018년)의 분위기를 계속 이어 가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협상 파트너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1일(이하 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나도 북한이 위대한 경제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한다”고 밝혀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보다 앞선 2018년 12월24일엔 “북한과 관련해서 일하는 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며 “(북·미회담은) 진전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다음 정상회담을 고대하며”라고 덧붙였다.

시간대별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2차 회담 필요성에 김 위원장이 화답했으며, 이를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월1일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도, 실험하지도, 남들에게 전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언제라도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미국 공영방송 PBS 보도를 인용했다.
반면 미 조야(朝野), 행정부, 싱크탱크의 시선은 싸늘하다. 북한의 반응에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이는 트럼프 대통령 혼자뿐이다. 북한의 신년사에 1월1일 미 국무부가 이례적으로 논평조차 하지 않은 것은 북한을 바라보는 행정부 내 기류가 좋지 않아서다.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이 화해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내밀면서 아주 날카로운 가시도 함께 내밀었다”고 꼬집었다.
미 주류 언론들은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이 밝힌 ‘새로운 길’이 뭔지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모습이다. 트럼프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CNN은 이를 ‘미국에 대한 경고’로 해석했다.
2018년 연말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우리는 잘하고 있으며 서두르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속내가 읽힌다. 미국 내 소식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지난해(2018년) 하반기 의회 중간선거처럼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미국 국내 정치에 활용할 만한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면서도 “탄핵 등의 이슈가 현실화될 경우 전격적으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북·미 간 대화 채널은 사실상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북·미 양측 모두 협상 대리인인 김영철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대리인 간 대화보단 최고지도자가 만나 톱다운 형식으로 해결점을 찾아내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북·미 양측 모두 비핵화 톱다운 방식 선호
트럼프 대통령이 1월2일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AP통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김정은으로부터 방금 훌륭한 친서를 받았다”며 “우리는 또 하나의 회담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회담이 열릴 경우 시점은 1~2월로 보는 시각이 많다. 우선 트럼프 자신이 지난해 12월초 그렇게 말했다.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는 전용기 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2019년) 1~2월 중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장소 3곳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회담의 전제조건이다. 현재 양측은 서로를 향해 의미 있는 행동을 먼저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북한은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달성’이라는 목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는 2018년 12월18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약속한 것을 이행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이후에 제재 해제가 뒤따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7
■ 핵무장 회귀 가능성도
조선중앙TV를 통해 녹화 중계된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 분위기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마치 서방국가의 정상처럼 양복을 입고 집무실로 내려와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신년사를 낭독했다. 뒤로는 선대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상화가 걸려 있다. 외신들은 마치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노변정담(爐邊情談) 같은 느낌이었다고 평가했다. 단상에 서서 다소 딱딱하고 강한 톤으로 신년사를 낭독하던 한 해 전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올해 신년사의 특징은 과거와 달리 경제 및 대남, 대미 관계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는 점이다. 대남, 대미 관계가 좋아져야 궁극적으로 북한의 숙원인 경제 재건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이 세 가지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
2018년 신년사에서 22회씩이나 언급했던 핵 관련 단어는 두 번밖에 말하지 않은 반면, ‘평화’라는 단어는 10회에서 25회로 배 이상 늘어났다. 당분간 대화 모드를 깰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제’와 관련된 단어의 사용 빈도도 한층 높아졌다.
그러면서도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이를 두고 보수층 일각에선 ‘한·미 동맹’ 균열을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갖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당분간 한·미 양국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군사행동을 자제할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가 남북관계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적다”고 전망했다.
우방세력을 활용한 경제제재 해제도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은 최대 우방인 중국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것과 2018년 11월 또 다른 반미(反美) 국가인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의장의 방북을 높이 평가했다.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선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해 앞으로의 평화체제 협상에 중국을 포함시키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올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 해 전보다 경제 재건 의지를 더더욱 분명하게 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됐다. 동시에 남한 정부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검증 과정에 포함돼 있는 국제기구의 영변 핵시설 사찰 및 영구폐기가 이루어질 경우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은 곧장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번 신년사에서 “만약 미국이 북한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해 일방적으로 북한의 양보만을 강요하고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만 매달린다면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우 과거의 경제·핵 병진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손기웅 한국DMZ학회 회장·前 통일연구원 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7 11:00
화두는 경제다. 2018년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의 새해 신년사는 경제난 고백서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펼쳤던 평화 대공세에도, 핵과 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집중으로의 수정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여유로운 신년사 발표와 달리 밤잠을 설치고 있을지 모른다.
점점 임계선에 다가가고 있다. 경제난을 뚫기 위한 비핵화의 승부가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의 대북제재 완화가 단기간엔 별 진전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김 위원장 자신은 예견했다. 그 스스로 미국이 바라는 만큼의 속도와 범위로 비핵화를 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과정과 단계에서 대가로 외부로부터 무엇을 받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받은 것이 그의 권력 안정과 경제난 극복에 실제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나 비핵화의 과정을 걸을 심산이다. 다만 그가 핵실험장 폐쇄,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인질 석방 등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제재 완화는 기대했던 것만은 분명하고,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실망감은 크다. 더 불만인 것은 남쪽 정부에 대해서다. 정상회담 합의서에 민족 주체성을 강조했고 관계 개선에 남쪽이 그것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했지만, 남쪽 정부로부터 얻은 것이 별로 없다.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는커녕 비핵화 과정에서 제재 지속에 합의한 것이 못내 아쉬울 것이다.

北 경제난, 점점 한계치 다다라
어떻게 할 것인가. 평화공세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성과는 크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국제사회에 정상국가의 정치지도자로 등장했다. 다시 대결노선으로 가는 데는 국내적 부담이 크다. 그의 판단과 정책의 실패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현 노선으로 성과를 위해 노력하되, 현 노선이 잘못된다면 좀 더 외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 의지는 보여주되 미국의 반응에 따라 강도를 달리할 것이다. 중간선거로 한숨을 돌리고 있으나 곧 다가올 재선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한번 북에 협상의 문을 넓힐 시기를 준비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로드맵에는 따르지 않지만, 이미 자신이 폐쇄했거나 중단 중인 실험장을 대상으로 사찰 등 국제사회의 요구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미국의 양보를 유도한다.
‘관광입국(觀光入國)’으로 경제난을 견뎌내고자 한다. 김 위원장 자신이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가 없는 한 대북제재의 대폭 해소는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타개책은 국제 제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관광을 통해 외화를 확보하는 길이다. 사실 김 위원장이 남쪽 정부에 가장 바랐던 것이 이 부분이다. 미국을 설득해 대북 관광 금지를 해제하게 하고, ‘우리민족끼리’에 입각한 민족 간 교류의 일환으로 남쪽 주민들의 대북 관광을 재개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단순 관광, 이산가족 상봉, 다양한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경제난의 숨통을 터줄 외화를 획득하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해 15만 명 주민 앞에 연설의 기회를 준 것도, 자신의 남한 방문의 핵심 목표도 관광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의 촉진이다. ‘5·24 조치’를 형해화(形骸化)시키고, 남남 갈등과 한·미 이간질은 부산물이다.
물론 여기엔 중국 관광객의 유치도 포함된다. 중국의 경우, 비핵화와 관련해 더 이상 북한 일변도의 동조는 곤란하다. 이미 대북제재 완화의 목소리는 냈고 중·북 경협도 다소 활기를 띠었지만, 미국과의 무역전쟁 와중에 대북제재를 크게 벗어나는 북한 편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고, ‘세컨더리 보이콧’도 현실화가 가능한 상황에서 일탈적인 중·북 경협도 한계가 있다. 결국 가능한 것은 단순 관광의 물꼬다.
러시아 역시 눈에 띄는 경협의 부담이 크다. 트럼프의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 발표로 뒤돌아서서 웃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심기를 공개적으로 거스를 이유가 없다. 김정은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적당하게 러·북 관계를 유지하는 방편이 인도적 협력이나 관광이다.
우리 정부 역시 북한이 기대하는 요구를 그나마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관광이다. 개성공단의 재개는 직접적으로 대북제재와 맞물려 있다. 민족 간 이질성 해소라는 인도적 입장에서 대북 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가장 무리가 없는 방편이라 판단하고, 그것이 북·미 대화의 재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미국을 설득하고자 한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은 ‘화전양면’(和戰兩面) 전략을 구사하면서 실리는 관광으로 챙기고자 할 것이다. 금강산으로부터 원산에 이르는 동해 관광지, 남·북·유엔의 인력이 함께 어우러지는 판문점, 백두산을 포함한 기타 명승지를 활용해 남한, 중국, 미국, 기타 국제사회로부터의 관광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미국의 핵심 국가이익인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개발과 핵능력의 제3국 확산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그 외의 핵무력을 견실히 공고화하면서 경제난을 그럭저럭 헤쳐가려는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가 김정은의 당면 목표다. 그리고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을 미국과 겨뤄볼 심산이다. 남북관계에서는 교류를 활용해 연방제적 통일 기반을 조성하고자 한다.
핵무력 유지하면서 경제난 극복에 전력할 듯
동독의 대(對)서독 정책은 ‘차단정책’이었다. 서독이 내미는 접촉과 교류의 손을 잡으면 달콤한 마르크화를 손에 쥘 수 있으나 서독의 자본주의 영향이 자국에 미친다. 서독으로부터 돈을 벌되 어떻게 자국민에 대한 서독의 영향을 최대한 막을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였다. 서독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는, 동독 주민의 마음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의적’ 자신감과 더불어 서독에 기대지 않고는 통치자금을 확보할 다른 수단이 없었던 현실로 인해 서독과의 접촉과 교류는 증가했다. 동독 주민의 눈과 귀는 열려졌고, 베를린장벽은 무너졌다.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며 남한이 먼저 관광과 교류의 물꼬를 뚫어주기를 바라는 김정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의 생존 전략에 응하되 우리의 국가이익을 반영해야 한다. 개혁과 개방으로의 북한 변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 그리고 민족 이질감 해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관광과 교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교류협력을 우리 국민들이, 국제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내용과 방법으로 판을 다시 짤 기회다. 그렇지 않은 대북 관광과 교류 재개는 북한 비핵화의 실패, 김정은 독재체제의 안정, 분단 고착이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억제’와 ‘협력’, 우리의 양면전략을 국내외적 공감 속에 세련되게 추진해야 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 나가자’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 방안을 적극 모색’ 등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통일’을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나, ‘통일을 가슴에 담은 평화’를 진척시켜야 할 새해는 밝았다.
김원식 한국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7 11:00
“국방부는 ‘현재’ 주한미군의 숫자를 감축하는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크리스토퍼 로건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대변인이 최근 주한미군의 전격 감축·철군 가능성에 관해 기자에게 내놓은 답변이다. 기자는 본능적으로 그의 답변에서 ‘현재(currently)’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사실 2년 가까이 기자와 질의·응답을 반복해 온 로건 대변인은 어떤 질문에 어떠한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할 정도로 익숙하다. 그가 보낸 위의 답변도 그냥 넘어가면 되지만, 기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한·미) 동맹은 강하다”는 말도 잊지는 않았다. 하지만 2년 전만 하더라도 한·미 관계에 관한 질문이라면, ‘철통같은(ironclad)’을 강조하던 때와는 사뭇 뉘앙스가 달랐다. 그만큼 주한미군의 감축·철군 가능성이 ‘말도 안 되는(ridiculous)’ 질문에서 어느새 ‘미묘한(delicate)’ 질문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미 국방부는 시리아 주둔 미군의 감축은 물론 철군 가능성에 관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두세 달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전격 철군을 명령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 감축·철군 문제를 답변해야 하는 로건 대변인 나름의 고충이 묻은 답변이었다.

주한미군 전격 감축·철군 가능 증거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에 불려간 미군 장성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내용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도저히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부 장성들이 ‘전략적 동맹’의 이해관계를 설명해도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구름 잡는 이야기 그만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는 것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주둔이 중국 견제를 통해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얼마, 일본·한국과의 무역적자가 얼마인데 당신 월급으로 감당하겠느냐”고 일축한다는 것이다.
최근 시리아 주둔 미군의 전격 철군 사태를 둘러싸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이 “동맹을 중시하라”며 사표를 던진 것이 이러한 사실을 대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의 전격 철군을 명령하자, 세계의 시선은 북·미 협상의 소용돌이에 서 있는 주한미군의 위상에 쏠리고 있다. ‘한다면 한다’는 그가 어쩌면 북·미 협상의 진행과 맞물려 주한미군 감축·철군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 들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셈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철군 카드를 꺼낼까. 이 질문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나 공약의 ‘호불호(好不好)’가 아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한번 내뱉은 말을 공격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나 이란과의 핵협정 파기가 대표적이다. 이미 대선후보 시절부터 “중동의 경찰 노릇은 그만두겠다”며 약속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전격 단행했다. 이어 아프간 주둔 미군마저 줄이고 있다. 최근엔 “세계 경찰 노릇을 관두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이미 대선후보 시절인 2016년 3월에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나 일본이 (방위비) 증강에 상당한 기여를 하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그런 일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같은 입장을 줄기차게 펼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펜타곤(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보도까지 나와 파문이 일었다. 이는 단순히 주둔 비용 부담금 인상만을 요구하는 목적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필요할 때 항공모함으로 가면 되지, 주둔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군부 장성들을 다그쳤다는 말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입장에서 미국 내부 문제에 우선해야지, 굳이 미군을 주둔시키면서까지 타국 방어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시작된 북·미 관계 개선 기류는 주한미군 철군·감축 카드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언젠가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물론 “당장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이 주둔 비용을 과다하게 부담하고 있다는 토를 달기는 했다. 주한미군의 전격 감축·철군 가능성에 관해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만큼 흥미 있는 카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 카드가 한반도 상황과 맞물려 돌아간다면, 더블 스코어를 줄 수 있다”며 “평화를 달성했다는 이미지와 함께 해외 주둔 미군의 본토 복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격 감축·철군 카드’ D데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과연 이 카드를 언제 써먹으려고 할 것인가.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가 재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따라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는 2020년을 앞두고 이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전망된다. 그동안 그의 발언 내용을 잘 살펴본다면, 최근 한국과 논란이 되는 주둔 비용 인상 문제는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한화로 몇천억원이나 몇조원 단위의 승부에 집착할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 측이 주한미군 방위비 협약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하자고 했다는 보도가 매우 의미심장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인상해 주지 않으면, 그냥 1년짜리 협약만 하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내심 더욱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후보 시절부터 주장해 온 주한미군의 전격 감축·철군 카드를 재선을 위해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북·미 협상이 성과를 나타내고 대선과 맞물린다면, 전격적인 최종 합의를 발표하면서 내놓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관해 다른 외교 전문가는 “미국 내부는 물론 당사국 한국이나 우방의 반대도 없는 매우 역사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주한미군 철수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 돼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