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전문가가 ‘삼성’ 칭찬하고 ‘현대차’ 비판한 이유
중국 경제 전문가가 ‘삼성’ 칭찬하고 ‘현대차’ 비판한 이유
[인터뷰] 중국 경제 전문가 앤디 셰, “미·중 무역전쟁으로 경기 침체 장기화 불가피”
김종일 기자 ㅣ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30(화) 11:00:00 | 1515호
“한국 경제의 위기와 돌파구는 삼성과 현대자동차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앤디 셰(Andy Xie) 전(前)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월24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무슨 말일까. 그는 우선 한국 경제 앞에 두 가지 거시적인 변수가 있다고 진단했다. 하나는 세계 경제의 두 축을 양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사생결단식으로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이다. 중국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24.8%·홍콩 포함 31.6%)이 가장 높은 국가다. 중국 다음으로 수출이 많은 미국(1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규모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68.8%에 달한다. 무역전쟁의 나비효과가 쓰나미처럼 한국에 몰려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거시적 경기 둔화는 당분간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은 중국에 무섭게 추격당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분야는 이미 큰 내홍을 겪으며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셰는 한국 경제 위기의 상징은 자동차 산업이며, 경쟁력을 갖고 기회를 만들고 있는 산업은 전자라고 진단했다. 둘의 차이는 뭘까. 바로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다. 훌륭한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는 삼성은 때때로 부진을 겪기도 하지만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면 시장이 여전히 반응한다. 한국의 화장품 산업도 마찬가지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악재 속에서도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셰는 “한국 자동차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보려는 전략을 버려야 한다. 그래선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 배우라고 조언했다. 세계적인 수요 부진 속에서도 독일 차가 잘 팔리는 이유는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독일 차를 마치 프랑스 명품 옷을 사듯 구매한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이런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개혁을 하면 한국 경제는 더 큰 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 경제를 언급할 때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인 ‘the most important thing’을 반복하며 이 점을 강조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성장 방식이 대충돌한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셰는 미·중 무역전쟁은 신(新)냉전시대라고 부를 만큼 역사적 사건이고, 이로 인해 지난 70년간 진행됐던 세계화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주식시장 대폭락 등으로 세계 경제가 상당한 장기 침체를 겪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셰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1999년 닷컴 거품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을 예견해 명성을 떨쳤다. 모건스탠리 홍콩 본부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를 분석할 때에는 국제 금융가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가 쓴 리포트에 따라 월가(街)가 중국 경제를 판단할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경제 비관론을 펼쳐 중국 정부로부터 ‘미국의 앵무새’라고 불리기도 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나.
“미·중 무역전쟁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다. 신(新)냉전시대의 개막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역사적인 사건이며, 지난 70년간 진행됐던 세계화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거시적으로 자산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화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다. 생산 단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4~5%대까지 올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떨어지게 돼 있다. 즉 지난 10년간 자산 시장에서 벌어졌던 일과는 정반대의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장기 침체가 불가피하다.”
미·중 무역전쟁의 근본 원인은 뭔가.
“미국과 중국 경제의 성장 방식이 충돌한 게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이다. 미국은 중산층의 불만을 해결해야 하고, 중국은 과잉설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출을 장려해야 한다. 특히 미국 중산층은 더 이상 이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 미국 경제가 좋다고 하지만 정작 지난 몇 년간 실질임금은 상승하지 않았다. 반면 교육·의료비 등 지출은 크게 늘었다. 세계화가 70년간 진행되면서 기존의 경쟁우위는 다 사라졌다. 즉 희망이 사라진 셈이다. 희망이 없으면 정치적 동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유례가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출된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중국을 겨냥했다.”
중국의 과잉설비 문제는 무슨 뜻인가.
“중국 제조업의 과잉설비 문제는 심각하다. 과잉설비는 과잉투자가 원인이고 이는 곧 거품이다. 자국에서 만든 상품을 내수로 다 소비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답은 수출밖에 없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위안화 평가절하와 수출 장려 정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다.”
향후 미·중 무역전쟁은 어떻게 진행될까.
“단기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본다.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계속 잡음이 나올 거다. 미국은 중국에 고(高)관세를 부과하면 쉽게 손을 들 줄 알았는데,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 카드로 맞서고 있다. 장기전에 돌입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세계화가 끊어지면 장기 침체는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산시장에 낀 거품이 터지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주식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폭락할 수도 있다.”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중국은 지금 위안화 절하로 대처하고 있다. 현재 달러당 6.93위안대인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조만간 7위안(위안화 약세)을 넘을 것이다. 중국은 무역전쟁에서 더 버틸 생각이다. 위안화 절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본 유출 우려로 중국 정부가 더 이상 위안화 절하를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중국은 자본 유출과 관련해 많은 장벽을 쳐놨다. 다만 이런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은 경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 효율성을 높여서 비용을 낮추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또 다른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중국은 다른 교역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할 것이다. 특히 중국 내 투자를 늘릴 수 있게 유럽 등의 기업에 특혜를 줄 수도 있다. 일본과의 교역 개선에 나서거나 아시아·태평양 11개국으로 구성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중국의 한국 수출 전략이 바뀔 수도 있나.
“가능하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더 확대하는 식의 움직임도 나올 수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은 ‘무역의 지역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북미 지역의 무역블록, 동아시아의 무역블록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오랫동안 논의해 왔던 한·중·일 FTA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고 본다. 새로운 무역 규칙이 나올 수 있는 시기다. 이미 중국은 아세안과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여기에 한·중·일 FTA가 더해진다면 동아시아 무역공동체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오히려 이 기회를 중국이 잘 활용하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내 단일 통화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유로화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유로는 성공적인 단일 경제 공동체 사례라고 보지 않는다. 북유럽과 남유럽의 격차가 너무 크다. 오히려 동아시아가 단일 통화 시스템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중국의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가령 중국 제조공장에서 스파이칩을 넣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퍼뜨려 중국 공급망의 신뢰에 위기를 낳는 식이다. 미국은 고관세 전략만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서면 그 효과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결국 양국은 정보전과 심리전 등을 점점 더 많이 벌이게 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가장 큰 피해를 한국이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거시적으로 경기가 둔화되는 걸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의 주력 산업 위축이 우려된다. 특히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충격으로 올 게 자동차 산업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자동차 판매는 계속 줄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중국에 따라잡혔다는 지적이 많다.
“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극명히 대비된다. 삼성은 올바른 전략으로 가고 있다. 삼성은 중국에 진출할 때부터 좋은 기술력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파워를 제고하려 노력했다. 때때로 부진을 겪었지만 삼성은 브랜드 파워가 확고해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시장이 늘 반응했다. 반면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큰 경쟁력은 없다. 가격 경쟁력은 이미 중국과 너무 큰 차이가 난다. 가격 경쟁력에 집착해선 중국을 이길 수 없다. 전략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2000만 대 규모다. 이 시장을 놓쳐선 답이 없다.”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강조한다.
“한 국가의 주력 산업 경쟁력이 무엇인지 통찰력을 가져야 할 때다. 중국의 강점은 ‘규모와 속도’다. 어느 나라가 10이라는 비용을 들여 만드는 걸 중국은 1에 만든다. 가격경쟁력은 탈락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주목받지만 아이디어는 금방 전파된다. 독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는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 독일이 바로 기술과 브랜드에 집중했다. 독일 자동차를 봐라. 브랜드가 훌륭하다. 소비자들은 마치 명품을 사듯 독일 차를 산다. 전반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줄어도 독일 차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한국 화장품 산업이 이런 부분을 잘하고 있다. 브랜드 파워가 잘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 있어 이 점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은 브랜드 파워를 키워 문화를 팔아야 한다. 근본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면 한국 경제는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판빙빙은 돌아왔지만, 그들은 어디로 끌려갔을까
인권변호사·사업가·고위관료 실종 잇따라…中 의법치국의 어두운 이면
모종혁 중국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31(수) 08:00:00 | 1515호
지난 10월15일 중국 언론은 홍콩 출신 월드스타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의 발언을 일제히 보도했다. 저우는 영화 홍보차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8040억원)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부터 저우는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그날 이 약속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저우는 1980년대 영화 《영웅본색》 시리즈로 한국에 잘 알려진 홍콩 톱스타다. 최근까지 중화권과 할리우드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중국 언론매체는 “그는 진정한 다거(大哥·큰형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일부 언론은 탈세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중국 인기 여배우 판빙빙(范冰冰)과 비교했다. “어떤 이는 돈을 벌어서 탈세하고, 어떤 이는 돈 벌어 사회에 공헌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은 곧 중국 온라인을 달궜다. 각 포털사이트의 관련 기사에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 저우의 ‘56억 홍콩달러 기부’ 소식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한데 중국 네티즌들 반응은 사뭇 달랐다. “연예인은 정말 돈을 엄청나게 버는구나” “중국 사회복지기관에는 기부하지 말라” “세금 내는 걸 피하기 위한 방법일 것” 등 각양각색이었다.
판빙빙은 중국에서 몸값이 가장 높았던 여배우다. 1998년 드라마 《황제의 딸(還珠格格)》로 데뷔했다. 한때 “중국에서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손꼽혔다. 동시에 영화·드라마·CF 등을 넘나들며 엄청난 출연료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지난 6월 중국 국영 CCTV의 인기 MC인 추이융위안(崔永元)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판의 탈세 의혹을 폭로했다. 추이는 “판이 4일간 드라마에 출연해 6000만 위안(약 98억원)의 출연료를 받았는데,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이를 은닉했다”고 주장했다.

넉 달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배우 판빙빙(왼쪽) 관련 사태는 중국의 민낯을 드러냈다. ‘의법치국’을 강조하는 시진핑 주석의 외침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 EPA 연합
135일 만에 모습 드러낸 판빙빙
추이의 폭로 이후 판이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판빙빙공작실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며칠 뒤 판은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활발하게 팬들과 접촉했던 SNS는 물론이고 자택과 공작실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7월말부터 공작실에는 직원들마저 출근하지 않았다. 이처럼 판의 돌연한 ‘실종’은 곧 해외를 떠들썩하게 했다. 중화권 매체는 “판이 관계당국에 감금당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판빙빙의 갑작스러운 실종은 해외에서 “판이 탈세 사건 외에 중국 최고위층과 연루돼 사라진 게 아니냐”는 의문마저 불러일으켰다. 한때는 “판이 미국에 망명하기 위해 입국했다”는 목격담까지 떠돌았다. 한국 포털사이트에서도 판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여러 차례 올랐다. 이에 대해 중국 언론매체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지난 수개월 동안 중국인들 사이에서 판의 구속설·망명설 등 온갖 루머가 회자됐다.
넉 달 만에 논란은 마무리됐다. 지난 10월3일 중국 세무총국이 “판이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여러 차례 탈세를 자행했다”고 발표하면서 모든 의혹을 잠재웠다. 세무총국은 판과 관계회사에 벌금 5억9500만 위안, 미납 세금 2억8800만 위안 등 총 8억8394만 위안(약 1437억원)을 내라고 고시했다. 그제야 중국 언론은 판의 행적을 보도했다. 판이 지난 8월부터 소유한 아파트 41채를 급매물로 팔아 납부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시가보다 30% 싸게 내놓았지만, 매물 가치가 10억 위안(약 1630억원)에 달했다. 또한 판의 재산이 50억~60억 위안으로 납부금을 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추정했다. 세무총국의 발표 직후 판은 SNS를 통해 반성문을 공개하며 사과했다. 10월15일에는 135일 만에 베이징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폭풍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판의 탈세 의혹을 제기한 추이융위안이 “판을 비호하는 관계당국에 조사받았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10월7일 추이는 “상하이(上海)공안국 경제정찰대에 무려 세 차례나 소환당해 보복성 조사를 받았다”며 “이번 판의 사건은 연예계 실력자와 상하이 권력기관 책임자도 관여돼 있다”고 웨이보에 썼다. 10월10일에는 미국에 도피한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郭文貴)가 “판이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궈는 “판과 왕의 섹스 비디오를 봤다”면서 “판은 유력 사업가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해 줘 거액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말했다. 왕치산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이자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지냈던 권력자다.
의법치국? 시진핑의 공허한 외침
이번 사태의 이면엔 중국 관계당국의 대응 문제가 있다. 정해진 법과 절차 없이 판을 ‘실종’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사건은 중국 연예인의 천문학적인 출연료와 연예계에 횡행했던 탈세가 배경이었다. 중국에선 “한 번 뜨면 3대가 먹고살 돈을 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인기 연예인이 높은 출연료를 받는다. 관계당국은 대중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해 여러 차례 출연료 상한선을 제시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연예인은 이중계약을 요구해 왔다. 연예계의 온갖 비밀을 알고 있는 추이융위안이 개인적인 원한이 있던 판빙빙을 겨냥해 이를 폭로했던 것이다.
판의 실종 사태 과정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다가 사라진 장웨이제(張偉杰)까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장웨이제는 ‘다롄TV’ 아나운서로 일했는데, 당시 다롄시장이었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내연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98년 임신 8개월 상태에서 갑자기 사라졌고, 지금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화권 언론은 장의 실종 배후로 보의 부인인 구카이라이(谷開來)를 지목했다. 보의 불륜을 알게 된 구가 장을 납치해 살해했을 거라는 의혹이었다. 구는 2011년 내연남이던 영국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독살했다. 그 사실을 왕리쥔(王立軍) 당시 충칭시 공안국장이 인지해 조사하다 보의 질책을 받았다. 2012년 2월 왕이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미국 총영사관에 가서 망명을 신청하는 사건을 일으키면서 모든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보는 실각했고 구도 살인죄로 구속됐다. 구가 장을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최근에는 인권변호사, 사업가, 고위관료 등의 강제 실종도 잇따르고 있다. 그들이 끌려가는 장소는 경찰서나 검찰청의 조사실이 아니다. 한 인권변호사는 홍콩 언론에 “알 수 없는 건물에 검은 커튼이 드리운 방에서 외부와 연락이 완전 단절된 채 24시간 감시당했다”고 폭로했다. 물론 중국도 형법이 있다. 엄연히 범죄 혐의자를 조사하고 인신을 구속하는 절차가 있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시진핑 주석은 틈만 나면 의법치국(依法治國)을 부르짖는다. 중국 언론은 “누구든 법 앞에 평등하다”고 강변한다. 절차와 인권을 무시하는 상황엔 눈감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