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지금 대한민국에 '산업정책' 있습니까? - “우린 편의점 알바가 직업이에요”

일취월장7 2018. 8. 9. 12:29

지금 대한민국에 '산업정책' 있습니까?

이종태 기자 입력 2018.08.02.



7월19일 <시사in> 이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를 만나 한국 경제의 현안에 대해 물었다. 장하준 교수는 산업정책의 정립과 복지, 적극적 재정정책 등을 제안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는 최근 한국 경제의 난국에 대한 대안으로 산업정책의 정립과 복지, 적극적 재정정책 등을 제안했다. 7월19일 <시사IN>이 그를 만났다.

소득주도 성장론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편의점주 등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한다.

그분들(편의점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와 얽혀 있는 문제다. 한국은 노동인구 중 자영업자 비율이 너무 높다. OECD 평균은 15%, 미국 6%, 독일 10% 정도인데,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무려 25%를 웃돈다. 더욱이 생계형 영세 자영업자가 많으니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자체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른 선진국에서는 (타인을 고용하는) 자본가 입장에 서지 않을 분들이 한국에선 어쩔 수 없이 자본가로 살아가게 되어버렸다. 그 원인은 복지 시스템에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40대까지 직장 다니다 퇴출되었을 때 다시 노동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통로인 재교육이나 실업보호 제도가 허술하고, 실업급여나 노령연금 등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너도나도 퇴직금으로 편의점, 치킨집 등을 연다. 소자영업 부문에서 엄청난 경쟁 환경이 형성되고 상당수 창업자는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방치된 상태에서 최저임금까지 오르니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결국 (소자영업자들이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신을 착취하거나, 저임금을 줘야 먹고살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다.

ⓒ시사IN 조남진 장하준 교수는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그 상당 부분이 투자다. 전체 경제의 생산성 향상에도 이롭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3개월 남짓 되었다. 일부 언론과 학계에서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국 경제를 망친 것처럼 몰아간다.

문재인 정부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최저임금은 당연히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은 ‘운전면허’ 같은 제도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 사고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면허를 따게 하는데, 최저임금도 비슷한 경우다. 사업을 하기 위한 일종의 면허증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잘 운영되고 있었는데,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나빠진 것이 아니다. 최근 우리 경제의 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쌓이고 쌓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총체적 난국이란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제조업이 어려워졌고 전망도 밝지 않다.

제조업에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제외하면 거의 중국에 따라잡혔다. 앞으로는 반도체 산업도 위험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제조업을 사실상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의료관광 등 (첨단) 서비스업 육성 같은 이야기만 해왔다. 오늘도 의료 규제 완화에 대한 기사가 나왔더라. 의료 산업을 키우고 국제화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너무 규모가 작아서 제조업의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에서 내는 수출 흑자를 의료에서 메우려면, 지금보다 1000배 이상 규모를 키워야 한다. 전 국민이 의사가 되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dpa 독일 폭스바겐은 창업자·노동자·정부 등 ‘세력 간의 협력’이 정착된 기업이다. 위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폭스바겐 생산 조립 라인.

결국 제조업 부문에서 한국이 다른 나라에 눌려 아직 진입하지 못한 기계, 소재, 제약 같은 부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한국이 성공적으로 진출한 업종이 휴대전화와 반도체 외에는 없다. 하다못해 반도체 산업도 메모리칩에서만 잘하고 있지, 좀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부문에서는 국제시장 점유율을 높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세계 1위인데, 반도체를 만드는 (설비와) 기술은 독일, 일본 등에서 사와야 한다. 이런 부문에서 성과를 거두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도 의료관광 같은 서비스 부문에서 잘하자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과거에도 지금 같은 기조였다면,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에도 자동차 산업에도 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를 양산한 뒤 7년 동안 적자였는데, 지금 같은 (단기수익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면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 되지 못했다.

신산업(생명공학 나노 기술, 인공지능 등)에서도 한국이 중국에 뒤처지는 듯하다.

나노 기술이나 태양전지 같은 첨단 부문에서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 신소재 부문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추격만 당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산업정책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한국이 1960~1970년대에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비결은 결국 ‘5개년 계획’ 등의 산업정책이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당시부터 차츰 폐지하고 말았다. 혁신, 신산업 같은 건 ‘비전 있는 기업가’ 개인들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정부, 자본, 노동, 교육 부문까지 힘을 합쳐야 한다. 미국은 산업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과 혁신 중 상당수는 국방연구원에서 나왔다. 다만 미국은 산업정책을 국방정책이라고 부른다.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신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지원한다. 한국이 기존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신산업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업정책 포기’다. 또한 한국의 상장 대기업들은 장기 투자를 못하게 되어 있다. (단기 수익을 노리는) 외부 투자자들이 수익 가운데 대부분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쓰라고 하는데, 그 압박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2016년부터 분기별로 배당하도록 경영정책을 바꾸지 않았나. 영국이나 미국처럼 주주의 압박이 강한 나라에서는 기업 수익의 90% 이상이 (투자가 아니라)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의 형태로 주주에게 빠져나간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핵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 경제가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사진은 가방공장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

그러나 미국에서 혁신이 가장 활발하다는데?

미국 정부의 연구와 지원 덕분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이미 1970~1980년대부터 ‘기업으로 돈이 들어가는’ 통로가 아니라 ‘기업으로부터 돈을 빼내는’ 장치였다. 또한 구글 같은 혁신 기업의 경우, 창업자들의 경영권이 안정되어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로 창업자들이 가진 주식보다 몇 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경우, 다른 IT 기업들과는 달리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가 매우 부실한 듯하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 사후, 주주들의 압박에 못 이겨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통계를 보면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으로 들어가는 돈보다 나오는 돈이 3배 정도 된다. 금융시장의 경우, 은행들이 기업들에 대출하기보다는 소비자들에게 대출해서 이익을 남기려 한다. 이런 상황이니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기 어렵다.

최근 한국에서도 재벌 개혁 논의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현대차의 기업구조 개편에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끼어들어 좌절시키기도 했다.

재벌 개혁의 목표를 잘 설정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우리 경제에 더 공헌하고 하청기업과 노동자들에게 적합한 대우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엘리엇 같은) 해외 펀드들이 원하는 대로 놔두면 안 된다. 만약 해외 펀드들이 우리 대기업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 지금보다 하청기업과 노동자들을 더 착취하고 쥐어짜는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더욱이 수익을 많이 내도 그 대부분을 투자 대신 주주들에게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도 어려워진다. 재벌 개혁의 목표가 금융 투자자들만 배불리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독일 폭스바겐의 경우를 참조할 수 있다. 글로벌 대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창업자 가족이 주식의 50% 이상을 갖고 있는 회사다. 그렇다고 창업자 가족 마음대로 회사를 운영하지 못한다. 2대 주주가 주정부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절반을 차지하는 감독이사회가 회사 운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폭스바겐의 지배구조에는 한국의 우파가 싫어하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국유, 한국의 좌파가 나라 망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가족 지배가 섞여 있다. 그러나 요즘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기업이다.

기업지배구조의 원칙이 있다면?

폭스바겐의 경우, ‘기업이 장기적으로 발전해야 자신에게도 이익이 돌아오는 창업자·노동자·정부 등이 힘을 모아 장기적 관점의 경영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세력 간의 협력’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최근 기업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주주에게 이익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장기 보유하는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더 많은 의결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전체 차원에서의 도입도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재벌 개혁 역시 ‘장기적 안목을 가진 기업경영’이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산업정책을 입안해야 하나?

그렇다. 여러 업종에 맞춤형 산업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경제개발기에 그렇게 했다. 상당수의 산업에는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지만 봉제, 완구, 의류 등에는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봉제, 완구, 의류 등의 역할은 산업구조 고도화가 아니라 외화 획득이었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외국 기술과 설비를 사와서 한국 경제의 능력을 높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먼저 한국 정부는 계속 키워나가야 할 주축 산업과 버릴 산업들을 잘 선정해야 한다. 주축 산업의 경우, 어떻게 업그레이드해야 할지 경영계·노동계 등과 협의해서 성장 전략을 짜야 한다. 그리고 한국이 아직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기계, 부품, 소재 등이 주로 중소기업 업종이란 것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을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대한 방안도 필요하다. 독일에는 우리가 들어보지 못했지만 250~2000명 정도의 직원들이 일하는 강한 중견기업들이 많다. 독일뿐 아니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중소기업 육성 경험도 배워야 한다.

첨단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정부의 기초연구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기초연구에 투자하고, 여의치 않다면 국영기업을 만들어서라도 적극적으로 첨단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예전에 포항제철을, 국내외의 반발과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설립했던 것처럼 말이다. 첨단 부문에서는 ‘산업 간 융합’도 필요하다. 현대차에서 직원들이 하는 일의 절반이 ‘전자’ 부문에 속한다. 자동차가 이젠 기계공업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자율주행차량 개발 같은 부문에서 정부가 대기업 간 협력이 필요한 대규모 신산업 프로젝트를 주선하고 관리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세계 첨단 전자업체인 삼성전자와 세계 최고 자동차 기술을 가진 현대차가 모두 한국에 있다.

한편, 자영업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복지제도를 제대로 갖추려면 세금을 늘리는 것이 맞다. 세금을 왜 ‘조세 부담’이라고 부르나. 시민들이 사용하는 공공서비스를 위한 돈이 바로 세금이다. 세금이 단지 부담일 뿐이라면 왜 부자들은 최고 소득세율이 10%에 불과한 파라과이로 가지 않고 고세율 국가인 스웨덴에 사는 것일까? 왜 법인세율 낮은 마케도니아가 아니라 30%인 독일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일까? 스웨덴과 독일의 공공서비스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복지를 늘리면 국가 재정이 악화되어 그리스나 남미 같은 나라로 전락한다고 한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그 상당 부분이 투자다. 실업자들을 재교육으로 재기하게 만들어주고 노후 생활을 안정시켜, 생계형 자영업을 영위하다가 망하는 사태를 차단하려면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전체 경제의 생산성 향상에도 이롭다. 더욱이 한국만큼 재정 운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국민소득(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미국이 100% 내외지만 한국은 43%에 불과하다. 필요하다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2000년 이후 한국 정부는 단 두 차례를 빼면 줄곧 재정흑자를 기록했고 이에 따라 재정흑자가 쌓여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왜 그 돈을 쓰지 않는가? 자린고비나 스크루지처럼 돈을 엄청 쌓아놓고도 비참하게 생활하는 것은 개인에겐 모르지만 국가경제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다. 그 돈을 활발히 투자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하는 방향이 맞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경제 차원에서는 시점에 따라 재정흑자가 좋을 수도 재정적자가 옳을 수도 있다. 무조건 흑자가 좋은 것이 아니다.

북·미 간 핵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북한 경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김정은 정권 역시 경제 발전에 대한 의욕이 대단한 듯하다.

북한의 경우, 경제 발전과 체제 이행의 문제가 함께 걸려 있다. 최근 베트남에 갔다 왔는데, 한국이 비슷한 소득이었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자본주의적이었다.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고급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데, 호찌민 동상도 여전히 위용을 자랑한다. 간판은 공산주의지만, 내실은 자본주의적이다. 북한도 경제를 개방하면 자본주의 논리를 도입할 텐데 기존 공산주의 이념과의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지 모르겠다. 독일의 경우, 정치적으로 완전히 통일한 상태에서 부자 형제(서독)가 가난한 형제(동독)에게 자금을 지원했는데, 한국은 그런 통일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그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 15~20년 동안은 남북이 다른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 경제 교류가 차츰 이루어져도, 한국인들이 북한 인민들을 착취하는 경우가 나타나면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경제제재가 풀리기 시작하면, 국제 자본이 북한에 대규모 투자되어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북한이 원래 산업지대이다. 일제강점기에 제대로 된 공업 부문은 거의 다 북한에 있었다. 자연 조건이 좋고, 산업 전통도 있는 지역이다. 운이 맞으면 경제 발전이 굉장히 잘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무조건 자유화해서 외국 자본을 받아들이고 저임금 가공무역에나 종사하는 나라로 떨어지면 경제구조 고도화를 이룰 수 없다. 베트남에서는 벌써 그런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외국 자본을 유입시켜 기초적 발전을 이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스리랑카나 필리핀의 경우, (한국보다 먼저 경제개발과 개방을 시작했는데) 기술을 스스로 발전시키지 못해 외국에서 가져오고, 내국인들은 저임금 노동만 한다. 중국은 좀 특이한 경우인데 워낙 큰 나라이기 때문에 국내로 들어온 외국 자본을 잡아둘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외국 자본을 많이 받았지만 국영기업 역시 많았다. 지금도 GDP의 4분의 1 정도가 국영기업 부문에서 나온다.

결국 외국 자본이 들어가서 그 나라를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해당 국가 스스로 외국 자본을 잘 활용해서 자국의 사회간접자본, 노동력 등의 질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외국 기술을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그런 방식으로 자동차 엔진을 만들었다. 국산 자동차 엔진이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북한 역시 (경제 고도화를 위한 전략을 세워) 성공하면 좋은 결과를 이룰 것이다. 다만 수많은 나라가 그걸 못해서 발전 과정에서 꺾이고 말았다.



“우린 편의점 알바가 직업이에요”

취업난과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프리터족 급증…세수 감소나 국가 경쟁력 하락 우려

박견혜 시사저널e. 기자 ㅣ knhy@sisajournal-e.com | 승인 2018.08.02(목) 11:00:00 | 1502호


수년간 계속되는 취업난과 최저임금 인상 등의 이슈가 맞물려 프리터(Freeter)족(族)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프리터족은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특정한 직업 없이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프리터족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장기불황으로 일본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 집단이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취업에 목매지 않고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겠다는 청년들의 자조 섞인 선택인 것이다. 

 

7월23일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청년층(15~29세) 중 건설노동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청년은 올해 5월 기준으로 25만3000명이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고치다. 최악의 실업률과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라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인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단순노무직에 뛰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 모두를 프리터족으로 부를 순 없지만, 취업난에 치여 차선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프리터족이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시·도별 청년실업률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청년실업률은 8~10%대가 지속되고 있다.    

 

실제 청년들도 자신을 스스로 프리터족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이 지난해 성인 알바생 1053명을 대상으로 프리터족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가 자신을 프리터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9.8%는 프리터족이 늘어나는 이유로 “정규직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수년간 계속된 취업난과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프리터족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시사저널 포토

수년간 계속된 취업난과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프리터족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시사저널 포토

 

자발보다 비자발적 프리터 크게 늘어

 

프리터족은 일반적으로 자발적 프리터족과 비자발적 프리터족으로 분류된다. 프리터라는 용어는 1987년 리크루트사가 구인잡지 ‘프롬A’에서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처음 사용했다. 초반에는 집단의 규율과 원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경제생활을 한다는 자발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높은 실업률과 취업난이 동시에 닥치면서 취업을 하고 싶어도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비자발적 프리터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나슬기씨(31)는 올해로 2년째 프리터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비자발적 프리터’라고 칭한다. 2015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계속 언론사, 대기업 등의 입사시험을 준비했지만 취업 문턱은 높기만 했다. 현재 나씨는 월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7시간씩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를 통해 버는 나씨의 한 달 월급은 100만원 정도.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혼자 사는 나씨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월세, 통신비 등을 더해 70만원이다. 

 

나씨가 2년 전 PC방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취업난 때문이었다. 나씨는 “졸업하고 취업이 잘 안 됐다. 서울에서 혼자 살기 위한 생활비가 필요한데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면서 “이 생활의 장점은 출근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이다. 다만 불안정성을 느낀다. 그렇다고 취직을 아예 포기한 건 아니다. 취직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것에 대해서는 실제 가계에 큰 보탬이 돼 소득이 달라졌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년 두 자릿수씩 오르고 있는 최저임금도 프리터족 양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최저임금은 지난해에 비해 16.4% 오른 7530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이다. 2007년 12.3% 오른 이후 계속 한 자릿수 상승률에 그쳤다가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두 자릿수씩 오르고 있다. 일본 프리터족이 2000년대 초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당시 크게 올랐던 최저임금에 기인한다. 일본의 프리터 수는 1990년 182만 명에서 2001년 417만 명으로 급증했다. 

 

7월17일 서울 동작구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간담회 모습 ⓒ연합뉴스

7월17일 서울 동작구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간담회 모습 ⓒ연합뉴스


 아르바이트와 9급 공무원 월급 차 10만원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르바이트로도 공무원 수준의 월급을 벌 수 있게 됐다. 내년도 최저임금 8350원을 기준으로 소정근로시간 209시간을 일했을 때 받는 월급은 174만5150원(주휴수당 포함)이다. 올해 기준 일반직 공무원 9급 1호봉의 세전 월급(184만원)과 견줘도 불과 10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로도 공무원 수준의 월급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제도와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프리터족을 택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선 선택이 아니게 됐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이 프리터족에게 마냥 좋은 상황만은 아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기존 인원을 감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7월22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자영업자와 소상인 300명을 대상으로 최근 경기 상황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74.7%가 내년도 최저임금 8350원을 감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경영난에 처한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과반인 53%는 위기 해결 방안으로 직원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 프리터족의 등장을 겪은 나라다. 《일본사회의 키워드, 프리터족》(다이아몬드, 2007년)이라는 책에서 저자 마루야마 은 ‘프리터가 증가하면 안 되는 이유’로 △세수(稅收)의 부족 △보험료 부족 △소비의 부족 △저축의 부족 △출산율 저하 등을 꼽았다. 일반 정규직보다 소득이 낮은 프리터는 동시에 납부할 세금이나 보험료, 소비, 저축률도 낮은 탓에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청년층을 중심으로 프리터족이 늘어나면 국가 경쟁력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제조업이 몰락하는 등 경기 불황이 25년씩 진행되다 보니 일자리가 없어지고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게 됐다. 이를 우리나라가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프리터족의 증가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운명과도 맞닿아 있다. 젊은 층 수혈이 안 되니 기업이 활력을 잃게 되고, 청년층의 소득 창출이 안 되면 국가의 세원 확보도 어려워진다”면서 “과거 일본의 국가부채가 급증했던 이유다. 일본의 엔화는 그나마 국제 결제통화지만 우리나라는 이것도 아니라 외국 자본 대거 철수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앞서 소개한 책은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 마루야마는 “직업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청년층이 사회로 나올 때, 기업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프리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2018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 



왜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에 민감한가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할까? <골목의 전쟁>을 집필한 김영준씨에게 물었다. 그는 “언젠가 터질 문제에 최저임금 인상이 방아쇠를 당겼다”라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8년 08월 08일 수요일 제568호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이 높다. 7월14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올린 8350원으로 결정했다. 7월24일 소상공인연합회, 한국외식업중앙회 등은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를 출범해 고용노동부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말하는 자영업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지난해 <골목의 전쟁>을 집필한 김영준씨에게 물었다. ‘전통적’ 업종인 편의점·치킨집의 침체부터 ‘대만 카스테라·무한 리필 연어’ 같은 유행 아이템의 명멸까지 자영업 전반을 다룬 책이다. 한국 자영업자들의 고민이 어디서 출발하고 어떻게 끝맺어야 하는지 들었다.


ⓒ시사IN 이명익
<골목의 전쟁>의 저자 김영준씨는 ‘김바비’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그는 “자영업 논의는 업계가 포화 상태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골목의 전쟁>을 쓰게 된 배경은?


2007년부터 ‘김바비’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블로그에 경제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 해외 금융 자격증을 준비하다 보니 개인적 정리가 필요해서 시작했다. 은행을 다니다가 퇴사하고 영업 일을 하던 중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3분의 1 정도는 블로그에서 발췌하고 나머지는 새로 썼다.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창업자들은 주로 이렇게 망한다”쯤 된다. 뒤집으면 “더 철저히 준비하면 덜 망한다”이겠지만, 사실 철저히 준비하면 뛰어들기 어려운 게 자영업이다.

자영업의 위기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가?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이 자영업자들의 예상을 넘어선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터질 문제에 최저임금 인상이 방아쇠를 당겼다고 본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에 속한다. 그런데 자영업의 근간인 서비스업은 수출이 어렵기에 생산성 향상에 한계가 있다. 편의점 맥주를 네 캔씩 사먹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스무 캔씩 먹지는 않는다. 자영업 논의는 업계가 포화 상태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누군가는 시장을 떠나야 하는 구조다.

자영업자에게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임차료 상승이 더 위협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업종과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모든 자영업자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외식업계의 총지출 비용 가운데 임차료는 전체의 8~9%가량이다. 반면 인건비는 25%, 재료비는 40%쯤 된다. 물론 서울 성수동, 망원동, 연남동처럼 임차료가 가파르게 오르는 곳도 있다. 이렇게 대형 변인이 생겨서 ‘뜨는 상권’으로 소문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상권의 임차료 인상은 예측 가능한 수준이다. 상가가 외진 곳에 있으면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린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은 전국 모든 업주들에게 확실하게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편의점주들의 반발이 눈에 띈다. 최저임금 인상이 편의점에 더 치명적인 이유가 있나?

우선 시장 규모에 비해 점포가 너무 많다. 점포당 매출이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임차료나 본사 로열티도 부담인 건 맞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점주는 이 비용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대개는 대비할 수 있다. 반면 최저임금 10% 인상은 일종의 예측 불가능한 ‘사고’다. 고스란히 손실이 된다. 특히 편의점이란 분야는 점주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인테리어, 가격, 품질 등 모두 본사가 관리하므로 각 점포가 상황에 맞춰 매출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이는 편의점뿐 아니라 대부분 프랜차이즈 점주들에게도 적용된다.

여러 제약이 있더라도 자영업자들이 프랜차이즈에 몰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창업 진입 장벽이 낮아서다. 레시피나 직원 교육 등 많은 부분을 본사가 해결해준다. 별다른 기술과 노하우가 없는 창업자 처지에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가 되는 것은 쉬운 선택이다. 소비자도 프랜차이즈에 몰린다. 한국 소비시장의 짧은 역사가 한 원인이다. 광복 뒤 저품질의 자영업점이 난립했다. 표준화라는 방법으로 이 상황을 단번에 정리한 게 프랜차이즈다. 소비자들은 ‘프랜차이즈 간판을 단 가게는 일정 수준 이상의 균질한 상품을 만든다’는 신뢰를 갖게 됐다. 자영업자들이 로열티를 감수하면서 프랜차이즈에 몰리는 이유다.

프랜차이즈에 속하지 않는 자영업자들은 상황이 어떤가?

보통은 더 불안정하다. 프랜차이즈 외의 자영업자들은 5년 안에 폐업하는 비율이 더 높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2년간 개업한 자영업자들의 약 90%가 1년 미만 준비한 뒤 창업했다. 전체의 절반가량은 3개월 미만이었다. ‘반짝 아이템’에 혹하면 대부분 이렇게 된다. 몇 년 전 유행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연어 무한 리필 가게가 여기에 속한다. 2015년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 가격이 폭락하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사실 이전 10년간 가격 등락을 살피면 그리 예외적 수치는 아니었다. 결국 2017년 1월 연어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왜 그렇게 많은 자영업자들이 비합리적 판단을 기반으로 성급히 창업하는가?


의외로 스스로에 대해 낙관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자영업의 가장 큰 특징이야말로 일정치 않은 소득과 고용 불안정성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 하지만 꽤 많은 창업자들이 근거 없는 낙관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들은 아이템 선정부터 가격 책정, 입지 선정까지 기초적인 사항조차 안일하게 판단한다. 최저임금을 지급 못할 정도의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은 애초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고수익을 내기 어렵게 설계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인건비를 이 정도로 잡으면 먹고살 수는 있겠지’ 하고 시작한다. 물론 개인만 탓할 수 없는 문제다. 창업을 긍정적으로만 묘사하는 자기계발 서적이나 성공 경험담이 퍼져 있고, 창업설명회의 노련한 ‘영업맨’들은 바람을 넣는다. 냉철하게 따져볼 시간이 없기에 더 흔들린다. 보통 40대나 50대부터는 자녀에게 큰돈이 고정적으로 들어간다. 당장 수입이 없어지는 퇴직자로서는 수년간 이것저것 따지면서 준비할 여유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 구조조정의 적절한 수단인가?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인데, 우선 자영업자들을 무조건 보호해 나쁜 일자리라도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 지금처럼 최저임금 상승만으로 퇴출된 자영업자들은 갈 곳이 없다. 더 영세한 자영업자가 될 뿐이다. 자영업자가 아니라 그들의 비즈니스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재고용될 만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인기 없고 시간도 들겠지만, 그렇기에 인기 많은 정부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