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미리 보는 6.12 북미회담과 그 이후

일취월장7 2018. 6. 5. 17:53

미리 보는 6.12 북미회담과 그 이후

[다른백년 칼럼]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
2018.06.05 16:29:57

이제 일주일 남짓 남은 싱가포르의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차분히 기다리면 될 일이지 구태여 미리 전망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힐문하는 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의 글을 쓰는 뜻은 이후에 전개될 상황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고자 함이다.

지난 해부터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관점에서 상황의 급반전을 예상하였지만, 필자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필자의 염려와는 반대로 우여곡절의 과정 끝에 6.25 전쟁 이후 60여 년간을 극한 대치하던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회담을 진행하게 되었으니 이는 한반도의 경사 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역사적 사변이라 부를 만 하다.

우선 본 회담을 둘러싼 주요 관계국들의 저변을 잠깐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은 소비에트 붕괴 직전에 김일성 수상의 제안을 통하여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미군의 한반도내 주둔을 인정하면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북미간에 국가관계를 정상화하여 국제사회에 정상적인 국가로 등장할 것을 희망하였고, 이후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정상회담의 요청을 되풀이 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단호한 거부로 기대했던 한반도를 둘러싼 4대국의 교차승인은 불발로 그치고, 유엔의 동시가입은 다행스레 성사되었으나 남한의 일방적 북방 정책으로 외교적으로 고립된 처지에 빠지게 된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뒤늦게 발동이 걸린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은 대통령 임기라는 시간적 제한으로 불발로 끝나고 호전적인 아들 부시 이후 기대를 담고 출발한 오바마 행정부는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맹목적인 발목잡기와 함께 북한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전략적 인내'라는 최악의 한반도 전략을 구사해 왔다. 돌연히 북한 핵무력 완성 국면과 남한 내 촛불시민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라는 새로운 흐름에 더하여, 트럼프라는 변종의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모두가 깜짝 놀랄 북미정상회담이 목전에 현실로 다가왔다. 이는 북한이 지난 1987 년 이래 지속적으로 꿈꾸던 희망 사항으로,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 진출과 산업화 및 경제재건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북한에게 주어진 셈이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의 언론들이 간혹 '패싱'으로 표현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사실은 미국보다 결정적인 측면이 있다. 이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에 대해서 언급한 트위터의 분석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국가의 이름이 북한도 남한도 아닌 중국이라는 점에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행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역의 80%를 의존하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 적극 호응했을 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북한을 지원해 왔던 러시아와 대비하여, 완고하리만큼 유엔 결의를 실행에 옮기면서 북한에 압력을 크게 행사하여온 배경을 유의하여 분석하여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는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 불안 요소로서 북핵이 제 3차대전의 불씨가 될 염려도 있지만, 지난 십여 년간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여온 양국관계에 더하여 북핵 개발의 목표가 단순히 미국을 향한 것에 더하여 중국도 포함될 수 있다는 북한의 공공연한 암시 역시 크게 작용한 듯하다.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고자 중화대국으로 굴기하는 과정에서 국경을 접한 북한을 관리하고 때대로 개입하고자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보유가 주는 현실적 부담과 위협을 지리적 인접성이라는 측면에서 미국보다 분명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 동안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미국보다도 중국이 비타협적으로 강경했다고 말할 수 있다.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김정은 위원장은 상기 맥락의 이해 속에서 상황을 반전시키고 이를 활용하고자, 최근 시진핑 주석과 두 번의 만남을 통해서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다짐을 제공하는 대가로 유엔 재제 결의와 무관하게 상당한 경제적 외교적 지원과 혈맹적 우방으로서의 관계 회복을 약속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미국의 주류 세력들은 일관되게 북한을 자신의 세계 전략 구도 속에 희생양으로 활용해 온 측면이 크다. 동유럽 사회주의 동맹국가들이 해체되었듯이 북한도 붕괴하리라는 자신들의 기대가 어긋나자, 국제적 여론의 흐름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서방 미디어의 강점을 활용하여 조작과 허위를 일삼으면서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불량 국가'의 이미지를 덧씌워 소위 레짐-체인지 전략을 정당화하면서 군사적 협박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실제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하려는 목적으로 구축한 한미일 동맹과 세계 최대규모의 한미 군사합동훈련의 표면적 구실로 북한의 존재를 십분 조작하고 활용하여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트럼프 등장이라는 이변이 돌출하였다. 그는 위에 언급한 지난 60여 년간 미국 사회의 주류적 세력에 의해 형성된 대북한 전략과 이미지를 전적으로 묵살하고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판단과 이해라는 시각에서 한반도 전략의 재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WP과 CNN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언론 매체인 NYT 조차 비판적인 기사를 지속적으로 게재하여 왔으며, 정치권 역시 민주 공화 양당 모두 부정적인 견제의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지난 대선 시 러시아 개입 여부와 포르노 배우와 성매수 사건 등이다. 이에 더하여 뮬러 특별검사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비판 여론에 발끈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스스로 사면할 권리가 있다고 공언하는 등, 바야흐로 미국 정치는 한치를 내다 보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한반도의 장래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는 6.12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구축은 동전의 양면인 동시에 매우 복잡하게 꼬인 고르디우스의 매듭 성격을 지닌다. 일괄타결은 동시에 단계적이고 쌍무적인(steps in synchronization) 실행조치를 후속적으로 요구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정상이 만난다는 팩트 하나만으로도 매우 주요한 전진과 희망을 제시한다. 장기간의 극한적인 대결과 불신의 과정에서 정상간에 얼굴을 맞대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신뢰의 출발이며, 신뢰가 전제가 되지 않는 국가간 어떠한 합의와 약속도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다. 

곧 있을 두 사람의 만남이 단순히 서로의 탐색전 수준에서 쌍방의 입장을 확인하는 성명(announcement)에 그칠 수 있다. 한걸음 더 나가 공유의 부분을 묶어서 합의(agreement)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 예컨대 비핵화의 중간 과정으로 사찰을 통해 최소 수준의 핵보유와 억지력을 인정하는 파키스탄 모델 수준과 함께, 유엔 제재 결의를 단계적으로 풀고 쌍방간에 연락사무소를 평양과 워싱턴에 설치하는 정도의 합의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의 시각에서 트럼프의 현재 불안정한 정치적 입지를 감안하면 단기간 내 실제적 성과를 내기 위하여 불가침을 포함한 종전선언 및 완전 타결과 이행을 위한 선언(declaration)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선언이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트럼프에 비협조적인 미 연방의회의 3분의 2가 동의를 해야 한다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 이 상황에서 완전타결과 이행을 선언하는 것은 아무래도 역풍과 후유증이 예상된다. 

현재 단계에서는 북한이 미국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ICBM을 폐기하는 수준에서 트럼프의 체면을 살려주는 타협적 봉합을 이루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보인다. 

남북한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사항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통해서 이루려는 목표와 배경을 읽어내는 것이다. 일견 트럼프가 주도한 현상과 정책은 매우 상호모순적이고 상충적이며 예측이 어려운 주제이다. 한반도에서는 역사적 기회로 작동하고 있지만 국제적 지형에서는 일방적인 행보를,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격추시키는 위험한 패권적 행보를 반복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대대적인 감세와 복지 축소를 통해 기득권 체계를 강화하는 수구적 정책을 펴면서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보수파까지 반발하는 파시스트적 성격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성격과 흐름은 한반도의 향후 중장기적인 정책을 트럼프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근본적으로 미국과의 약속과 협약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최근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이 눈에 띈다. 그동안 단호히 주장해 온 '일괄적 타결'이라는 조건을 떠나 돌연 '회담은 과정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일면 북한의 입장을 한층 깊이 이해하는 듯도 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일괄적 타결에서 선회하여 합의 이행 과정의 단계적 쌍무적 실행과 조치를 수용하는 듯도 하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노밸평화상도 수상하고 미국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긍정적 공명심도 작동하는 한편, 북핵 문제를 단순히 자신의 정치적 위기에서 탈출하는 정치적 승부수로 극적인 활용을 위해 숨을 고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채널 방송의 앵커맨 출신답게 팔로워가 5000만 명이 넘는 트위터를 통해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북미협상의 극적인 성과를 11월 초 중간선거 직전에 설정하여 이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재구축하고 재선의 길로 나서려 것으로도 예상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 문제와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가 자신의 정치적 구도와 진행에 도움이 되는 한 적극적인 기회를 계속 제공하겠지만, 그것이 실효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자신에게 부담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우리에겐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가져 올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남북한 당국은 단순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회담과 한반도 평화구축에 대한 주제를 트럼프와 측근에게만 의존할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견지하고 있는 미국의 주류 사회에도 채널을 가동해 지지와 동의를 획득해야 하며, 평화를 갈망하는 미국 시민 사회와도 연대를 강화해야 하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의 절대적 지지를 조직해 내야 하는 것이다. 

6.12 북미회담이 단순히 성명 수준에 그칠지 합의와 선언의 수준에 이를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회담 이후에는 이를 계기로 비핵과 평화라는 군사외교적 주제를 넘어 북한사회의 개방과 경제 재건이라는 또 하나의 핵심 이슈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드시 그렇게 실현되어야 한다. 이 지점부터는 미국보다는 남한과 중국이 주도하게 될 것이고, 종국에는 일본까지 참여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측은 6.12 이후에도 비핵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유엔 결의를 통한 제재와 압박이 지속된다고 공언하고는 있지만, 이는 이미 약효가 떨어진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 결의의 분명한 메시지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미국과의 협상테이블에 나오라는 충고이다. 이미 풍계리 핵 실험장을 공개적으로 폭파했고 양국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회담을 한 이상, 대북 제재를 지속한다는 것은 사실상 북한과 대결을 지속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북한 붕괴와 레짐-체인지라는 미국의 기존의 목표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스스로 폭로하는 셈이다. 진즉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결의와 무관하게 무역과 거래를 재개했다. 문제는 남한 당국이다. 

이제부터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따른 대리운전에서,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자가운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난의 행군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산업화의 시동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과 금융 인프라 구축 및 경제 재건에 필요한 자본의 축적이고, 국내 저축이 빈약한 조건에서 이를 받쳐줄 외부적 지원이다. 

이 점에서는 남한 사회는 동포 국가라는 점을 떠나서도 누구보다도 경험과 사례가 풍부한 파트너이다. 비록 현재 제조업 분야에서는 세계 7위권, 경제규모에선 11위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헬조선'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사회다. 사회양극화가 미국과 함께 OECD 국가들 중 최악의 상태를 보이고 있고, 성공과 지속가능 여부에는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다. 긍정과 부정 요소가 공존하는 사회다. 향후 북한과 협력 과정에서 남한은 그 동안 이룬 양가적(兩價的) 성과 속에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긍정적 요소는 진솔하게 전수하고 사회경제적 악폐 요소는 제거하도록 조언해야 한다.  

60년대 이래 연평균 14%의 인플레를 이용한 강제 저축, 월남 파병 등 수십만 젊은이의 생명으로 끌어온 외화로 키워낸 재벌 체제,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 넘긴 8억 달러 수준의 대일 배상 청구, 경제 쿠데타로 불리는 8.3 사채 동결, 유신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민중 탄압과 기득권 독점체제 등 남한이 개발독재 과정 속에서 겪은 일들을 북한이 되풀이하게 해서는 안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에 제안한 경제 협력안에 대해 필자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 당시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남한의 대기업 중심 산업 재벌과 독점 자본의 이익 실현 및 불황 탈출을 위해 북한을 임노동 가공공장화, 하청기지화 하려는 구도에서 기획되어 있었다.
  
국제화와 개방 경제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21세기적 시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박현채 선생이 민족경제론에서 제기한 '내포적 자립경제'라는 기본 개념이 여전히 북한에게 유효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현재 북한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남한이 겪어왔던 일제 청산, 재벌 독점, 기득권 체계, 양극화, 적폐 누적이 없는 백지상태이다. 자본주의의 병폐와 한계를 이야기하는 현 시점에서 인류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참여-협력-혁신-공유-순환이라는 이상적 사회 경제 시스템을 북한에 도입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다. 기후변화 등 지속가능 조건도 심각하게 취급되어야 할 주제이다. 가급적 석탄 발전을 배제하고 자급적 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면서 러시아로부터 남한으로 연결되는 PNG 라인을 이용하고 몽골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수퍼그리드 전력망으로 에너지와 전력 수요를 해결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자체 저축률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 경제특구를 통해 외국 투자를 유치하여 임가공을 통한 외화 획득을 계획하되 이는 초기 단계로 머물려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의 우애 원조, 정치적 타협을 통한 일본의 배상지원금, AIIB 및 IMF 가입을 통한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등 장기거치 차관, 상당량에 이른다는 희토류 등 지하 자원의 부가가치 공정을 통한 수출 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남한 정부가 적극 협력하고 지원해야 한다. 당연히 철로, 육로, 통신, 발전 등 인프라 건설에 한국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되 이익 실현에 앞서 동포애적 지원이라는 원칙이 만들어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는 산업과 서비스업을 육성하도록 경험을 전수하고 조언해야 한다.

한마디로 산업화와 경제 재건에 필요한 자금과 경험을 지원하고 제공하되, 국제적 금융이 가지는 수탈적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탐욕적인 국제적 기업들에 종속 당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남한 측이 북한을 돕고 조언해야 한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재건되어 국제사회에서 이상적이고 선진화된 국가로 우뚝서는 것이 남한 사회에게도 새로운 기회와 비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각자 독자적인 양국체제를 경과하면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통일한국으로 나가는 민족역사의 미래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게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민족을 우선하는 주권외교와 자주국방, 남북경협이다. 


'종전선언의 역설'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욱식 칼럼] 남북미 종전선언은 끝이 아니다
2018.06.05 10:43:48

한국전쟁 발발 이후 68년 만에 '종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각)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직후 기자들에게 "한국전쟁은 가장 긴 전쟁"이라며 "한국전쟁 종식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의 핵심 당사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이처럼 종전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는 특히 '종전 문서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논의할 것"이라며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남북한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올해에 종전 선언을 추진키로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미 확대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 혹은 종전을 위한 선언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시간차 최소화해야 

하지만 종전 선언이 가져올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들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책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종전과 정전체제의 '불편한 동거'이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종전 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적대관계와 대립 관계를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이에 따라 종전 선언이 나와도 법적·제도적으로는 정전체제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시간차가 길어질수록 불편함은 가중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종전 선언이 평화협정 체결을 늦추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경계하고 평화협정의 촉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종전 선언에 "조속히 평화협정을 체결해 법적 제도적으로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목표 시한을 명시하면 더욱 좋다. 

또 하나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사이의 기간 동안에 실질적인 조치와 준비를 하나둘씩 취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그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전문 첫머리에 담긴 '부전(不戰)의 약속'에서부터, 2조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담긴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 및 "비무장지대의 실질적인 평화지대"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만들기, 그리고 3조에 담긴 "불가침 합의" 및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라도 이들 합의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이행하면 앞서 강조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시간차도 최소화할 수 있고 내실도 기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단계적 군축"이 중요하다. 비핵화가 가시화되더라도 한미 양국 내에선 북한의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이유로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커질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 이후 한미동맹과의 군사적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평화협정 이전에라도 남북한의 군사력 및 주한미군의 감축 계획을 논의하고 일부 실행할 필요가 있다. 

▲ 지난 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만남을 가진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반도 탈냉전과 아시아 신냉전의 조우?
 

남북미 종전 선언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우려는 한반도의 탈냉전과 아시아의 신냉전이 조우할 가능성에 있다. 이는 1차적으로는 '차이나 패싱론'과 관련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앞선 글에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를 표명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트럼프가 거론한 '중국의 영향력'이 아니라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부절적한 대북 강경 발언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보기)

그런데 트럼프는 '중국 배후설'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 때리기'를 통해 '차이나 패싱론'을 재부각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5월 22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청와대는 "두 정상이 남북한이 연내 추진키로 합의한 종전선언을 북미정상회담 이후 3국이 함께 선언하는 방안에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5월 26일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서 종전 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5월 초 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전화통화를 갖고 종전 선언 단계에서부터 양국간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문 대통령 발언 직후 중국의 관영매체와 전문가들이 "중국의 힘을 과소평가 말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낼 정도로 한중관계에 또다시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그런데 종전 선언에서 중국을 배제하자고 한 쪽은 트럼프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1일 (현지 시각) 기자회견에서 '중국도 참여하느냐'는 질문에 시진핑이 "위대한 사람"이고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도 확답을 피했다. 대신 중국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 것이다.

문제는 '차이나 패싱'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종선 선언에서는 중국이 빠지더라도 평화협정 단계에서는 중국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국도 평화협정에 당사국 지위로 참여하길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에 동의할지의 여부가 불확실하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트럼프의 기질상 다른 정상이나 나라가 참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국이 평화협정 협상에 참여해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미국이 경계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중 양국이 남중국해 및 대만 문제를 놓고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점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자칫 미중간의 신경전과 평화협정 당사자 문제가 뒤섞이면서 평화협정 자체에 난기류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한반도 탈냉전 프로세스가 아시아의 신냉전을 재촉하는 과정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전쟁·정전이 세계 냉전이라는 구조적 힘의 발현이었다면, 아시아 신냉전의 출현은 한반도 탈냉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보면 지독한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한반도의 불안한 정전체제가 미중간의 대결을 일정 정도 가려주는 가림막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동맹 추진에서부터 최근 사드 배치에 이르기까지 그 최대 구실을 '북한위협론'으로 삼았었다. 중국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북한 때문이라고 응수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가시화될수록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게 될 것이다. 가령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드가 철수되지 않는다면, '그 사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이냐'는 의문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미국의 대중 강경파들은 끊임없이 중국위협론을 유포하면서 한중관계를 이간질시키려고 한다. 이를 통해 혹시라도 북핵 문제가 풀리면 중국위협론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차이나 패싱론'에 대한 조바심의 이면에는 미국의 이러한 전략적 의도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까?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대안의 일부를 찾을 수 있다. 이 성명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중 4자간의 "별도의 포럼"을 열기로 한 만큼, 3자 종전 선언 이후 4자회담을 조속히 여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6자회담 실무그룹 가운데 하나였던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도 본격적인 논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