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시진핑 당혹시킨 트럼프의 전화 한통, 그 의미는?

일취월장7 2018. 5. 14. 15:55

시진핑 당혹시킨 트럼프의 전화 한통, 그 의미는?

[인터뷰]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
2018.05.14 08:21:26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지 열흘 만에 중국으로 향했다. 지난 3월 말 베이징 방문에 이어 이번에는 다롄(大連)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 취임 이후 5년 정도 서먹했던 북중 관계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는 "정상외교는 한 번 상대국에 방문하면 그다음에는 상대국의 정상을 자국으로 초청하는 게 일반적이다. 김 위원장의 두 번 연속 방중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8일 다롄(大連)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온 보도문에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양자 관계는 중대한 전략적 의의를 갖고 있다'는 대목이 있다"며 "이는 북중 양측이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유사성을 강조한 셈인데, 최근 북중 관계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관계가 강화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동안 북중 관계가 대단히 나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중국을 배제하고 지금의 판을 움직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같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이유로,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결국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다는 상황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기댄다기보다는 북한이 여러 외교적 전략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선거로 행정부가 바뀌는 국가다. 정부가 바뀌면 대북 정책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북미 관계에는 그러한 가변성이 있어서 북한이 설사 친미 국가가 되고 싶다고 해도 안정적인 친미 국가로 계속 남아있기는 쉽지 않다"며 북한은 자신들의 외교적 전략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과 관련,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차이나 패싱' 논란이 나오고 있는데, 중국도 종전선언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그런데 중국은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모두 참여하고 싶어한다. 중국이 종전선언부터 참여하겠다고 하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종전선언 자체가 고정되거나 제도화된 프로세스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만 그는 "그런데 사실 종전선언 자체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쟁은 종전선언과 같은 절차 없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전쟁이 끝나면 영토 문제가 남아있지 않는 한 외교 관계 회복으로 정상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래서 종전선언의 함의와 참여자 등에 대해 정확히 규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중국이 참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가능한 빨리 전쟁 상황을 종식시키는 것이 평화협정 체결 동력을 이어가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든다면 남북미 3자의 종전선언을 서둘러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중국도 종전선언 자체가 이후 한반도 질서에 대한 심각한 합의를 담고 있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남북미 3자로 한다고 해도 크게 기분 나빠할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지난 11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월 말에 이어 지난 7~8일 이틀 일정으로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제의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북한이 현 국면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이남주 : 지난해 11월 29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이후 올해 1월까지만 해도 북중 관계는 좋지 않았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제제와 압박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수사적인 측면에서도 북한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했다.

당시 제가 만났던 중국 학자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고, 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마 미국이 통보 정도는 해주지 않겠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에 대한 불만과 중국의 현재 입장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핵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변한 것도 북중 관계를 어렵게 한 요인 중 하나였다. 북한은 핵 카드를 처음 사용할 때, 핵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변경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핵 보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북한에서는 내부적인 어려움과 미국의 압력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목표까지는 간다는, 즉 ICBM에 핵탄두를 올리는 정도까지 가겠다는 프로세스가 있었다.  

바로 이 지점이 북한과 중국 사이에 전략적 차이를 벌린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국도 섣불리 김정은을 불러 정상회담을 가질 수는 없었다. 다만 중국은 북한의 계산법을 바꿔야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더 강하게 나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행보가 이전과 달라졌다. 물론 이때도 중국 내부에서는 북한이 잠깐 저러다가 말 것이고, 또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회의론이 우세했다.

그러다 중국은 지난 3월 8일(현지 시각) 한국 특사단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이후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발표하자 상당히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및 특사단 일행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발표한 이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공유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25일 김정은 위원장은 취임 최초로 해외 순방길에 올라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이 방문을 통해 북한이 미국 카드를 본격적으로 쓰는 것 아니냐는 중국의 우려를 해소시켰다. 

김 위원장은 이 만남에서 "첫 외국 방문의 발걸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라면서 "조중(북중) 친선을 대를 이어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이어나가야 할 나의 숭고한 의무"라고 말했다.  

당시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에 방문했다고 했지만, 북한 쪽에서 가겠다는 사인을 보냈기 때문에 가능했고 또 김 위원장이 저런 말을 했다는 것으로 미뤄볼 때 북한의 주도성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7일 김 위원장은 또 중국에 방문해 시 주석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실 원래 정상외교는 한 번 상대국에 방문하면 그다음에는 상대국의 정상을 자국으로 초청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두 번 연속 중국에 방문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김 위원장이 이같은 행보를 보인 이유를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시 주석은 "두 나라 간 전략적 소통이라는 전통적 '법보'(法寶)"를 적극 활용하자고 합의했다. 중대 문제에 대한 의견교환을 활성화시켰던 것이 과거 중조 관계의 빛나는 전통이라고도 강조했는데 여기에는 고위급들이 언제든지 오고갈 수 있는 소통을 하자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8일 다롄(大連)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온 보도문에도 전략적 소통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신화통신>은 양당 고위 관계자들은 교류를 강화할 것이라면서 이와 함께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양자 관계는 중대한 전략적 의의를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즉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유사성을 강조한 것인데, 최근 북중 관계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관계가 강화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로 미뤄볼 때 그동안 양측 관계가 대단히 나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중국을 배제하고 지금의 판을 움직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저변에 깔려있는 북중 사이의 불신이 완전히 해소됐는지는 미지수다. 중국 역시 지금의 프로세스가 계속 진행될 수 있을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눈치다. 중국은 만약 중간에 일이 잘못되고 북한이 세게 치고 나오면 자기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우려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지난 7~8일 이틀 일정으로 중국을 찾은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북중 정상회담을 하려면 이제는 시진핑 주석이 평양에 한 번 방문할 차례다. 시 주석이 평양으로 갈 수 있을까?

이남주 : 거의 확실히 움직일 것이라고 본다. 중국은 미북 간 합의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전반적인 회담에 대한 브리핑을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 주석이 평양에 갈 가능성이 높다.  

또 군사적인 문제가 풀려서 한반도나 동북아가 안정과 정상적인 발전의 궤도로 갈 경우 경제적인 문제에서 중국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지역협력 측면에서 봐도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프레시안 : 최근 두 달 정도 북한이 취해온 외교 행보를 보면 나름대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가 혼란스럽지 않고 핵무기가 없는 안정된 상태를 원했다. 현재 이런 방향으로 국면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북한이 미국의 품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한반도와 친미적으로 변하는 북한 사이에 딜레마가 있을 것 같은데?  

이남주 : 중국은 세 가지의 대(對)한반도 정책을 가지고 있다. 우선 한반도의 안정이다. 중국은 주변 상황을 변경시키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럴 능력도 없다. 아직까지는 추격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반도 비핵화다. 이는 중국에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이익이다. 그런데 현재 한반도 현실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행위자는 북한이다. 현상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북한은 뜻대로 되지 않자 핵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한반도의 군사적인 옵션을 고려했고, 이에 중국은 한반도 안정과 비핵화 중에 무엇을 더 중시해야 하느냐는 딜레마에 놓였다. 그런데 이 문제는 결국 미국과 북한에 의해 해결되려고 하는 과정이긴 하다. 중국은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건 중국 힘의 한계라고 본다.

세 번째는 한반도에서 중국에 적대적인 세력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중국은 북한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망'의 한 축으로 포함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즉 북한이 친미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 북한과 주로 비교되는 것이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수교 이후 군사협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 조금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국 봉쇄망'의 한 축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물론 베트남이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구도는 있지만 베트남이 대놓고 '반중친미' 노선으로 가기는 어렵다. 베트남은 중국을 경계하기 위해 미국이라는 카드를 활용하는 수준이다.  

프레시안 : 북한은 위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 기댈 곳은 결국 중국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을까?

이남주 : 기댄다기보다는 북한이 여러 외교적 전략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라고 본다. 미국과 관계를 잘 풀어서 아주 극단적으로 가면 중국보다는 미국과 관계가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 스스로가 그러한 길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은 선거로 행정부가 바뀌는 국가다. 정부가 바뀌면 대북 정책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북미 관계에는 그러한 가변성이 있어서 북한이 설사 친미 국가가 되고 싶다고 해도 안정적인 친미 국가로 계속 남아있기는 쉽지 않다.  

종전선언, 중국도 함께?  

프레시안 :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는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과 관련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고 적혀 있다. 이를 두고 중국을 배제한 것 아니냐며 '차이나 패싱' 논란이 나오고 있는데, 중국도 종전선언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남주 : 그런데 종전선언 자체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전쟁은 종전선언과 같은 절차 없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쟁이 끝나면 영토 문제가 남아있지 않는 한 외교 관계 회복으로 정상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은 과거 평화협정을 체결을 주장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도 같이 제기했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대목이었다. 따라서 2007년 10.4 선언 당시 군사적인 대치 상황을 종식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종전선언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다만 이 과정에서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이 나온 배경은 중국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10.4 선언을 추진할 당시 중국이 여기에 참여하겠다는 반응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을 당사자로 확정지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 이남주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그런데 중국은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모두 참여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중국이 종전선언부터 참여하겠다고 하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종전선언 자체가 고정되거나 제도화된 프로세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종전선언의 함의와 참여자 등에 대해 정확히 규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중국이 참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평화협정의 경우는 4자만이 아니라 동북아를 넘어 유럽연합(EU)도 참여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가능한 빨리 전쟁 상황을 종식시키는 것이 평화협정 체결 동력을 이어가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든다면 남북미 3자의 종전선언을 서둘러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때는 중국에 양해를 구하면 된다. 중국도 종전선언 자체가 이후 한반도 질서에 대한 심각한 합의를 담고 있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남북미 3자로 한다고 해도 크게 기분 나빠할 것 같지는 않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 수순을 밟게 되면 북한의 경제가 주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은 북한 경제에 어떤 식으로 참여하게 될까?  

이남주 : 중국은 지원금을 주는 방식보다는 인프라 구축을 시도할 것 같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带一路)'와 연관시켜서 본다면 교통, 특히 철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중심으로 할 수도 있는데 이는 대부분 우대 조건이 있는 차관의 형식을 띄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이 실시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차관이 들어가면 중국 기술자들도 같이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 물론 북한이 인프라 건설에 나서는 경우 중국만이 아니라 남한 및 다른 행위자도 고려해 사업방식을 정할 것이다.

또 중국은 동북3성 차원에서 북한과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동북 지방의 경제적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동북3성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활로는 북한밖에 없다. 북중 국경까지 뻗어있는 고속철도가 북한에도 연결된다면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로서 유대성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북한 내부의 정치적 안정과 관련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북한이 개방되기 시작하면 인권 문제 등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북한은 중국과 입장을 같이 하면서 공동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중국 입장에서 현재의 한반도 평화 국면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남주 : 나쁘다고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미국과 손잡고 북한을 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북미 양측이 손을 잡는다고 하니까 좀 당황했을 것이다. 북한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카드를 받아 버린 미국 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해제 시점은 

프레시안 : 북미 정상회담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정됐다. 당초 평양이나 판문점이 아닌,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열리게 돼 양측 정상 간 합의 수준이 다소 낮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는데, 북미 간 어떤 합의를 이끌어 낼 것으로 전망하는지?

이남주 : 올해 초에 한국 특사가 북한을 들러 미국까지 가서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갈 때 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상황이 이 정도로 진전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 프로세스를 당기면서 지금과 같이 속도가 붙기 시작됐다. 이후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단계들을 거치면서 진행돼 왔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판문점에서 진행하면 남북미 3자 구도도 빨리 만들어질 수 있다.  

평양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 깜짝쇼나 리얼리티쇼를 좋아하는 그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사실 북미 양측은 오랫동안 좋지 않은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아무리 관계를 푼다고 해도 디테일적인 부분에 들어가면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즉 여전히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어려운 문제들을 점검해보면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싱가포르에서의 회담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제는 북미 간에 실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싱가포르가 더 적절할 수 있다.

또 싱가포르 결정이 북미 간 난항을 거치면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분위기에서 회담을 하고 나서 발표됐기 때문에 북미 간 합의 수준의 문제와는 크게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 9일 평양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


프레시안 :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 보장을 받고 세계 경제로 편입하기 위해 비핵화를 결심한 것 같다. 그런데 체제 안전은 비핵화를 통해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경제 문제는 당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어려운 문제 아닌가?

이남주 :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프로세스 중 핵 '동결(freeze)' 단계에 진입하면 가장 최근에 나온 유엔 안보리 제재인 2397호는 해제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22일(현지 시각) 안보리 이사국들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이 제재 결의안에는 민간 부문에 영향을 주는 제재가 많다. 군사적인 부분은 남겨두더라도 민간 경제에 타격을 주는 제재는 걷어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9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평양에서 다시 만남을 가진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 이에 동결 단계에서의 제재 해제보다 더 진전된 합의를 이룬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안보 문제와 경제 문제가 연관돼있기 때문에 이같은 전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우선 안보 문제는 주한미군의 경우 당분간 문제 삼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에 임할 수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 핵 폐기까지 가는 것을 두고 북한이 상당히 양보한 것이라고 본다면, 미국이 북한의 체제 안전 우려를 해소할만한 무엇인가 더 진전된 조치가 있어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이 곧 적대시 정책의 상징인데,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을 것임을 무엇으로 보여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제재 해제 등을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서 북한과 미국이 밸런스를 맞춰나갈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북한은 중국식과 베트남식 중에 어떤 개혁 방식을 택하게 될까?

이남주 : 중국과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공산당 권력을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똑같다. 하지만 구체적 발전 전략으로 보자면 차이를 발견할 수는 있다.

중국은 지난 1978년 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에서 당과 국가사업의 중점을 계급투쟁에서 경제 건설로 이동한다고 밝히면서 개혁개방의 포문을 열었다. 북한 역시 지난 4월 2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로선(노선)"이라고 밝히며 경제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국은 이렇게 북한이 중국과 유사한 표현을 쓴 것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중국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베트남보다는 경제 발전에 대한 집중력이 높았다고 본다. 경제 발전 목표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중국은 국제적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러 여건이 있었다. 베트남보다 외부 자원을 흡수하기에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다. 북한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한반도 운명 가른 도보다리 위 40분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은 4·27 남북 정상회담의 백미로 꼽힌다. 두 정상은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문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 경협 구상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관련 자료가 담긴 USB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건네줬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8년 05월 14일 월요일 제556호

남북 정상의 판문점 도보다리 ‘밀담’은 한반도 운명을 가른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두 정상이 도보다리 벤치에서 약 40분간 ‘독대’한 데 이어 평화의 집 접견실에서 10~15분 2차 독대를 이어갔다고 했다. 50분 넘는 둘만의 대화야말로 4·27 남북 정상회담의 백미였다.

두 정상은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로 묻고 문재인 대통령이 답하는 식의 대화였다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더 이상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 경협 구상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관련 자료가 담긴 이동식 저장 매체(USB)를 김 위원장에게 건네줬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의 직접 논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잘되어 본격적으로 교류와 경제협력의 물꼬가 트이면 이러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전달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공동사진기자단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도보다리 밀담의 반향은 컸다. 남북 정상회담 다음 날 4월28일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장시간 통화한 뒤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이 급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거푸 트위터나 기자들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판문점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을 유력 장소로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5월1일자 CNN 방송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 때부터 판문점을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설득한 이가 문 대통령이다. 순서상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설득에 성공한 뒤, 이를 발판으로 트럼프 대통령까지 설득에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론인 남·북·미 연쇄 회담 개최와 3자 간 종전 선언을 위해 판문점만 한 장소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 전후 갑자기 다급해진 중국의 움직임까지 해석해야 도보다리 밀담의 실체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4월25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미 정상회담 전에 북한을 방문하길 희망했지만 북측이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 신문>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가 방북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주한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은 데 대해 중국이 불만을 표시했다”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즉 폼페이오 방북 때 북한이 주한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자,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 전에 시진핑 방북을 통해 이 문제를 분명히 하려 했으나 방북을 거절당했다는 얘기다.

4월27일 발표된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서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주체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동시에 거론됐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하였다(판문점 선언 3조 3항).’ 중국이 종전 선언뿐 아니라 평화협정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는 점이 공개적으로 천명된 것이다. 정부 움직임에 밝은 한 전문가는 “종전 선언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협정에서도 중국을 뺄 수 있다는 게 현재 정부 분위기이다”라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 이후 중국이 받은 충격이 꽤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지만, 시진핑 주석과는 통화를 하지 못했다. 시진핑 주석이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미루는 사이 왕이 외교부장이 5월2일 북한을 찾았다. 중국 외교부장의 방북은 11년 만이다. 리용호 외무상의 초청 형식이지만 시진핑 주석 방북을 거절했던 북한이 먼저 초청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중국이 ‘차이나 패싱’ 쇼크에 북한을 집중 공략하는 모양새지만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이 녹록하게 응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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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일 경북 포항에서 이루어진 한·미 연합훈련 모습.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와 한·미 연합훈련을 수용했다.

중국을 뺀 남·북·미 3자 종전 선언, 종전 선언 이후 주한 미군 문제, 그리고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건넨 한반도 신경제지도. 맥락이 닿지 않는 3개 장면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서로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의 운명을 둘러싼 수 싸움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3개 장면의 의미를 해석해보자.

거대한 소용돌이의 시작은 극적이었다. 지난 3월5일 대북 특사단 방문 때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와 한·미 연합훈련을 수용했다. 이것이 출발점이었다. 특사단 방북의 성과를 청와대는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여론도 우호적이었다. 중국에는 충격이었다. 당시 중국이 받은 충격을 심각하게 여긴 국내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북·중 관계에 밝은 한 고위급 탈북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 특사단에게 한·미 연합훈련을 이해한다고 말한 데 대해 중국이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중국은 ‘쌍궤 병행’이라며 북한의 핵 동결과 동시에 중단할 것을 주장해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것처럼 포장을 단단히 해왔다.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를 선언하고 평시 수준의 한·미 연합훈련을 수용하겠다고 하자, 중국으로서는 더 이상 이런 포장이 어려워졌다. ‘쌍궤’에서 한·미 연합훈련만 남고 북핵이 빠져버린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도 신경 써온 사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미 연합훈련 용인이 주한 미군 주둔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가 풀리면 어느 시점에 주한 미군도 한반도에서 떠나리라 예상했다. 그 이후 중화 체제 복원이라는 장밋빛 꿈을 꾸어왔는데,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라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

트럼프 정부뿐 아니라 역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 목표는 비핵화였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 주류 사회는 비핵화가 실제로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핵은 생명과도 같기에 절대 포기할 리 없다고 본 것이다. 북한과 전쟁을 벌인다면 모를까, 강제할 방법이 미국으로서는 딱히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의 대북 정책을 미국의 그것과 일치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거부할 수 없는 인센티브를 주고,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핵 동결을 유지하게 하거나 비핵화를 강제토록 하는 것이다. 중국이 거부할 수 없는 인센티브가 바로 주한 미군 카드였다. 즉, 주한 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를 담보로 중국을 통한 북한 핵 동결 내지 비핵화를 유도하자는 게 그동안 미국 주류 사회의 암묵적 합의였다. 2016년 9월 미국외교협회(CFR) 보고서가 바로 그 효시였다면, 현실주의 세력의 대표 격인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주장한 이른바 ‘로버트 게이츠 플랜’은 가장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로버트 게이츠 플랜’과 ‘헨리 키신저 방안’

지난해 8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 후버 연구소 소속 폴 R. 그레고리 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에서의 그랜드 바겐(A Grand Bargain on Korea)>이라는 논문에서 ‘로버트 게이츠 플랜’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이 중국에 북한을 승인하는 평화조약 안을 전달하고 ‘레짐 체인지’를 포기하는 동시에 주한 미군의 구조 변경을 승인하는 조약을 체결한다. 대신 중국은 국제사회의 감시자들과 함께 북한 핵 동결의 엄격한 이행을 담보한다. 김정은은 핵을 일부 보유하되 한반도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지 않고 두 개의 국가로 남는다는 것을 보증한다. 주는 것은 많고 얻는 것은 적은 것처럼 보이나 게이츠의 계획은 지속적인 안정감의 기초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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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월25일부터 방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했다.
위는 3월 열린 ‘김정은 위원장 환영 만찬’.

로버트 게이츠 플랜에 비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주한 미군 카드를 활용한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분리)’ 방안은 좀 더 과격하다. 키신저는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북한 위기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미·중의 빅딜(대타협)’을 제안한 바 있다. 그가 렉스 틸러슨 장관에게 했다는 디커플링 조언의 요지는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ICBM 핵 위협을 막기 위해, 중국과 빅딜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대신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상실을 우려하는 중국에게는 주한 미군 철수를 약속해주자’는 것이다. 지난해 워싱턴 정가에 키신저의 과격한 방안이 급속히 퍼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핵으로 경제를 일으킬 게 아니라면 그 상태로는 버틸 수 없다. 핵을 포기하는 대신 그 보상으로 경제협력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대상이 중국일까? 과거 김정일 위원장 시절 중국은 경제협력의 대가로 북한에 조차지를 요구하는 행태를 일관되게 보여왔다. 대표적인 게 신의주 특구이다. 북·중 관계가 험악해진 이유가 바로 신의주 특구를 둘러싼 조차 논쟁 때문인데, 중국 외에는 자금을 끌어올 곳이 없었던 당시 북한 처지에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트럼프 정부가 전쟁을 불사할 정도의 결기를 보이며 상황을 여기까지 진척시킨 능력은 인정한다. 협상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북한이 말로만 비핵화를 약속하고 실제로는 비협조적일 경우 특별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게 그동안 미국 내 전문가들의 우려였다. 트럼프 정부도 겉으로는 비핵화를 요구하지만 뉴욕 채널을 통해 북·미 연락사무소를 추진하는 등 장기전 태세를 준비했다. 즉 핵 동결 수준에서 일단 타결하고 비핵화는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 이후 장기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비핵화가 장기 과제로 넘어가면 결국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경협을 하든 압박을 하든 이는 북·중 간에 해결할 문제로 남는다. 이 경우 미국으로서는 중국에 줄 인센티브, 주한 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시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된다. 결국 로버츠 게이츠 플랜으로 귀결할 가능성이 높았던 셈이다.

로버트 게이츠 플랜대로라면 주한 미군이 철수한 채,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 북한의 핵 동결을 국제적으로 관리하는 권한과 책임을 중국이 갖게 되어 중국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것이 자명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중 관계는 과거 중화 체제의 사대 관계로 급속히 재편될 수도 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던 비핵화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한·미 연합훈련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 주한 미군 주둔도 허용할 태세다. 비핵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가설이 무너졌다. 결국 ‘김정은의 결단’은 로버트 게이츠 플랜도 무력화시켰다. 이로써 남과 북 모두 자칫하면 중화 체제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뻔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앞의 고위급 탈북자의 지적대로 중국이 얼마나 급했으면 지난 7년간의 불화도 잊은 채 부랴부랴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해 국빈 이상의 극진한 대접을 했을까? 중국은 ‘전략적 선택’ 등 용어를 구사하며 북한에 한·미 연합훈련 반대 및 주한 미군 철수 입장을 계속 견지해줄 것을 요구 내지 압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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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김영남(오른쪽 두 번째부터) 등 북한 고위 지도부가 참석했다.

물론 그 반대급부도 있다. 4월17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대규모 경협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경협 내용은 “에너지 지원과 이전에 계획된 적이 있는 북·중 국경 지대에서의 경제특구 구상 등의 조치가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했다. ‘신의주 조차 개발 계획’이 다시 등장했을 수 있다. 2004년 8월20일 북한 내각이 신의주 특구를 중단한 이유는 200억~300억 달러의 인프라 비용을 조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중국이 그 정도는 투자하겠다고 나섰을 수 있다. 중국의 신의주 특구 개발 계획은 경의선 철도·도로를 타고 평양까지 영향권에 끌어넣으려는 북한 예속화 전략의 일환이다.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게 당하는 모습을 본 김정은 위원장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국과의 대규모 경협 뉴스는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 협상이 지난 3월31일~4월1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의 방북 때 어느 정도 이뤄졌다. 폼페이오 방북에 대해 일부에서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통전부장 라인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 정확하게는 서훈·폼페이오·김영철 세 사람이 평창 동계올림픽 초기부터 삼각 편대를 이뤄 같이 움직였다. 맹경일 북한 통전부 부부장이 지난 2월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지원 명목으로 방남한 그는 워커힐호텔에 숙소를 마련하고 국정원 김상균 차장 및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센터 센터장과 한 팀을 이뤘다. 앤드루 김 센터장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5촌 관계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남북한과 미국 정보기관의 공조는 서훈-폼페이오-김영철의 사령탑을 거쳐 각국 정상에 직보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해빙의 드라마를 써왔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특사단의 보고를 받고 45분 만에 북·미 정상회담을 결정한 게 아니라 사실은 45일 만에 결정한 것’이라는 얘기가 돌기도 한다.

우리 대북 특사단이 1차로 방북해 비핵화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을 타진했다면, 폼페이오 방북은 양측의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폼페이오가 북한을 다녀온 후 열린 4월12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한 발언을 세밀히 분석해보면, 북한과 미국 양측이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해서는 기존 핵무기에 대한 검증과 사찰까지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미국이 요구해온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CVID)’ 요건을 충족시켜준 셈이다. 폼페이오 인준 청문회 발언 중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중요한 얘기도 나왔다. 바로 경제 보상에 대한 대목이다. 그는 청문회에서 “‘보상’을 주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인 결과를 얻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방북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으나, 방북 사실이 알려진 뒤 북한에 대한 경제 보상 가능성을 거론한 발언으로 평가받는다. 4월13일자 일본 <도쿄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3월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확실한 체제 보장과 전면적인 보상을 한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 적대 정책이 중단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체제 보장과 더불어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USB를 건넨 것이 ‘신의 한 수’인 까닭

ⓒ백악관 제공
3월31일~4월1일 방북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왼쪽)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은 ‘가난한 핵보유국보다 핵 없는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4월20일 당 전원회의에서 5년간 끌어온 핵·경제 병진전략을 결속(하던 일에 결말을 가져오는 것)하고, 경제 건설에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채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결단은 폼페이오와의 대화 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미국이 경제 보상을 해주리라는 믿음이 섰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5월3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당국자와 핵 전문가 3명이 4월 하순부터 일주일간 방북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북한과 협의를 한 결과 북한이 12개로 추산되는 핵무기 사찰을 포함해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방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양측이 합의문에 쓸 수 있을 정도의 합의를 이미 도출한 것이다. 다만 보상에 대해서는 체제 보장, 국교 정상화, 경제제재 해제 등과 더불어 비핵화를 진행하면서 대가를 받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고 <아사히 신문>은 전했다.


핵·경제 병진전략까지 내려놓고 경제 집중 노선을 인민들에게 천명한 김 위원장으로서는 북한 개발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직접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제재를 해제해주고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회원 자격의 문턱을 낮춰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 차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을 선호한다. 베트남의 사례에서 보듯 해외 직접 투자 유치가 가능하도록 미국 시장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 결국 테이크 오프(take off:한 나라의 경제가 비약적인 공업화 사회로 진행되는 단계)를 위한 청사진은 미국이 아닌 누군가 대신 제시하고 앞에서 끌어줘야 한다. 그 역할을 해줄 곳이 바로 한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구상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건넨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굳히기 위한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건넨 한반도 신경제지도 USB와 김 위원장의 결단으로 남과 북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새로운 미래는 남과 북과 미국이 서로에 대한 적대 정책을 내려놓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종전 선언이다. 2007년 10·4 선언 당시 이 개념을 창안했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박사에 따르면, 종전 선언은 정전협정의 법적 전환하고는 관계없는 개념이다. 그보다는 현재 한반도 내에 무력을 유지하며 서로를 적대시해온 남북한과 미국이 적대 정책을 종식시키자는 ‘정치적인 선언’이다. 중국이 여기에 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중국은 남북한과 미국 사이에 종전 선언이 이뤄지면 한반도에서 주한 미군의 지위를 흔들 마지막 기회가 사라진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는지 모른다. 남과 북 사이에 혈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홍준표식 북·미 정상회담 독해법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다른 야당과 달리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대표의 입인 당 대변인만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혹평을 이어가고 있다. 홍준표 대표의 강경 발언, 왜 그럴까?

김연희·이상원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5월 14일 월요일 제556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요즘 혼자 화가 나 있다. 남북 정상회담 당일인 4월27일 홍 대표는 페이스북에 신랄한 글을 올렸다. “남북 위장 평화쇼에 불과했다.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었다.” 곧이어 자유한국당은 “실망스럽고 앞으로 한반도의 상황이 우려스럽다”라는 논평을 냈다. 반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다른 야당은 일제히 환영 논평을 냈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각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긍정 평가가 많게는 90%에 육박한다. 오직 자유한국당 대표와, 대표의 입인 당 대변인들만 혹평을 이어가고 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강경 노선은 보수 내에서도 동조자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큰 틀에서 보수 정당으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은 5월2일 “(홍 대표의) 원색적 비난과 반대를 위한 반대는 건강한 보수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라고 논평했다. 자유한국당 당내에서도 남경필 경기지사·김태호 전 경남지사·유정복 인천시장 등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고 홍 대표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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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아래)는 리비아 사례를 거론하며 대북 강경 노선을 주장한다.

표 계산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표를 센다면 회담의 의미를 깎아내리기보다는, 총론을 환영하면서 각론의 흠결을 비판하는 전략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바른미래당이 이런 노선을 잡았다.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한나라당 이명박 캠프도 그랬다. 홍 대표가 이런 스탠스만 잡아도 차후 남북관계가 꼬인다면 반사이익은 자유한국당의 몫이다. 남북관계가 평화체제 구축까지 잘 풀려나갈 경우, 지금 홍 대표의 노선은 ‘자해’에 가깝다.

그러면 왜 그러는 걸까. 일각의 냉소적 평가처럼 ‘뜻밖의 정상회담 성공에 당황한 이판사판 도박’일까. 홍 대표의 논리를 선입견 없이 최대한 그대로 따라가 보면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막말과 거친 표현 아래로, 홍 대표는 그 나름의 일관된 세계관과 논리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북핵은 김정은 정권을 지지하는 중심축이다. 북핵이 제거되면 아마 김정은 정권은 무너질 거다. 그런 정권이 핵 포기를 쉽게 할 수 있겠나. 자기의 명운이 달렸는데. 미국이 나선다고 체제 보장이 되지 않는다. 체제 보장은 자기 나라, 주민들이 하는 거다. 개혁·개방을 하면 (김정은이) 온전하게 통치할 수 있을지, 나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4월30일 홍준표 대표의 남북 정상회담 비판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이다. 홍 대표는 비핵화 모델 중 하나로 꼽히는 리비아 사례를 들었다. 독재자였던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으로부터 정권 유지를 보장받았지만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2011년 민주화 투쟁으로 결국 축출당했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의 ‘봉쇄론’ 시각에서 보자면


간단히 말해, 협상으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핵을 포기하면 정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홍 대표 한 사람의 즉흥적 분석이 아니다. 보수 진영에서 오랜 기간 정립되어온 안보 전략의 핵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봉쇄론’으로 부를 수 있는 노선이다.

봉쇄론 시각으로 보면 북한은 국가라면 갖춰야 할 정치·경제·사상적 기반이 모두 파산해 정권의 정당성이 위태롭다. 이 같은 국가 실패를 딛고 정당성을 지탱해줄 유일한 보루가 핵이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김정은 정권은 체제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어떤 혜택을 제공하든, 김정은 정권은 핵을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이 불가침과 방위를 약속해도 소용없다. 내부로부터의 붕괴는 미국이라도 막아줄 수 없고, 김정은 정권도 그걸 안다. 협상을 통해 북핵을 폐기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봉쇄론은 예측한다.

나아가 봉쇄론이 역대 두 차례의 북핵 위기를 보는 관점은 이렇다. 북핵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당근을 제시했다. 1차 핵 위기에 뒤이은 1994년 제네바 합의는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매년 중유 50만t을 제공했다. 2차 핵 위기 당시 6자회담은 테러지원국 지위 해제와 중유 100만t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북한은 보상은 ‘현찰’로 받으면서 핵 폐기 약속이라는 ‘어음’을 발행했다. 이 ‘어음’을 실제로 지불할 때가 오면, 어김없이 판을 깼다. 애초에 핵 폐기라는 현찰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4월29일 페이스북에서 “세 번 속으면 공범”이라고 썼다. 3차 핵 위기 이후 북한 정권의 태도가 1·2차 핵 위기 때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이 문장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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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며 나온 시민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있다.

이 논리의 결론은 자명하다. 고강도 제재를 정권의 존망을 좌우하는 수준까지 밀어붙여야 비로소 북한은 핵 폐기를 고려할 것이다. 협상으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없다. 만약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면, 북에 속았거나 북에 동조하는 것이다. ‘위장 평화쇼’라며 홍 대표가 비난하는 논리는 이래서 나온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시사IN>과 통화에서 북한에 대해 “건전한 회의주의”를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빗장은 풀어줬는데 완전한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에 그칠 수 있다. 여덟 번 거짓말했던 북한을 어떻게 믿나. 경제적 지원은 받고 문을 걸어 잠그면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역풍이 분다 해도 제1야당으로서 이를 지적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장 대변인이 말하는 건전한 회의주의가 곧 봉쇄론의 논리다.

이런 맥락을 짚어보면 홍 대표가 화가 나 있는 이유를 ‘극우 유권자만 잡자는 표 계산’이나 ‘이판사판에 몰려 쏟아내는 막말’로 조롱할 필요는 없다. 홍 대표와 한국 보수 주류가 가진 북핵 문제 사고 틀에서는 현재 진행되는 상황이 우려스럽고, 남한이 또 북한에 속고 있다는 결론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홍 대표는 4월30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한국당도 다른 정당들처럼 적당히 환영하고 실천을 촉구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지방선거에 더 유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념적 확신을 갖고 던진 주장이 여론에서 고립되자 홍 대표는 현실을 비튼다. ‘막말’이 여기서 나온다. 그가 보기에 핵 폐기 없는 판문점 선언은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우호적인 여론에 대해서는 “내 나라 국민들을 탓해야 하는지 가짜 여론조사를 탓해야 하는지” 한탄스럽다.

결국 기댈 곳은 미국이다(4월28일 홍준표 대표 페이스북 “미국은 위장 평화회담을 하지 않을 것”). 미국은 이런 북한의 기만전술을 꿰뚫어보고 있으므로 북한의 ‘위장 평화쇼’에 걸려들 리가 없다. 여기서 홍 대표의 사고 틀을 뒤흔들 사건이 등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고, 김정은 정권에 전향적인 메시지를 잇달아 쏟아내며, 심지어 노벨 평화상까지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어느 대목을 보나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다. 이것은 홍준표 대표의 봉쇄론 세계관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결론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무언가 결론을 낼 것이라면 홍 대표는 그 새로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북·미 정상회담이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5월1일 홍 대표는 “핵물질·핵기술 이전 금지, 핵실험 중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 등 미국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정도로 합의가 될 경우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비참한 처지가 된다”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이런 얘기다.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는 북한(봉쇄론의 교리)과 중간선거를 앞두고 성과를 내야 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은 핵 확산이나 ICBM 등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만 차단하고, 남한의 머리 위에 있는 핵은 나 몰라라 한 채 협상을 타결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향적 신호도 설명이 된다. 홍 대표는 새로운 현실을 기존 세계관에 이어 붙였다.

봉쇄론의 전제, 현실과 들어맞나


홍 대표의 ‘일관된 논리 체계’는 지나치게 일관된 나머지 현실의 변화를 반영할 여지가 없다. 만약 현실이 바뀐 것이라면, 봉쇄론이 가정하는 ‘북한 핵 포기 불가능성 테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런 관점에서 읽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2016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기술자들을 만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군부에서 노동당으로 통치의 중심을 옮기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던 외화벌이 사업권이나 인허가 권한을 노동당과 내각의 전문 부서로 이관했다. 집권 5년차였던 2016년 5월에는 당 대회를 열었다. 1980년 10월 6차 당 대회 이후 36년 만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한 번도 당 대회를 열지 않았다. 선군정치의 후퇴 조짐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정상회담 다음 날인 4월28일 북한 <노동신문>은 ‘완전한 비핵화’ 문구가 들어간 판문점 선언 전문을 게재했다. 북한이 해석의 차이를 이유로 합의 내용을 변질시킬 여지가 줄어든다. 봉쇄론의 전제와 달리 이제 북한은 핵 폐기 이후에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핵이 북한 정권을 떠받치는 유일한 기둥이라는 봉쇄론의 가정 자체도 그리 탄탄하지 않다. 2013년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논문 <북한은 왜 ‘붕괴’도 ‘개혁·개방’도 하지 않았을까?>에서 다른 전망을 내놓는다. ‘수령제’가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통계상 절대다수의 독재자는 대중이 아니라 주변 통치 엘리트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온다. 그런데 수령제와 같은 확고한 독재(established autocracy)에서, 통치 엘리트들은 독재자의 행정 요원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권력을 분점하지 못한다. 확고한 독재 권력이 붕괴할 확률은 일반 독재의 5분의 1쯤이다. 북한 정권은 핵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봉쇄론의 전제가 흔들린다면 ‘협상과 설득을 통한 외교적 해결’도 옵션이 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장악력이 강해질수록 봉쇄론의 전제는 흔들린다.

무엇보다도 봉쇄론의 이론적 세계와 실제 현실의 차이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성과 없이 워싱턴에 돌아가기에는 그는 북·미 정상회담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놓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나는 사실이 바뀌면 생각을 바꾼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금까지 홍 대표가 보여준 접근법은 정확히 반대다. “생각이 그대로면 사실도 그대로다”에 가깝다. 그런데 사실이 바뀌었다는 신호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