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한반도 5월의 운명은?

일취월장7 2018. 3. 26. 10:46

'슈퍼 매파' 볼턴의 등장, 한반도 평화 흔드나

[정욱식 칼럼] 한반도 5월의 운명은?
2018.03.23 17:26:49 
    
'네오콘의 대변인' 존 볼턴이 12년 만에 미국 행정부의 외교 안보계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 및 유엔 대사를 지내면서 이라크 침공을 가장 열렬히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를 무력화시킨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우라늄은 제네바 합의를 깨부술 해머"라며, 2002년 10월 불거진 북한의 우라늄 농축 문제에 대해 초강경 대응을 주도하기도 했었다.

그는 특히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폐기하기(CVID) 전에 북한에 어떤 양보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 초기 대북정책을 입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및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란 끝에 2006년에 유엔 대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랬던 그가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기용됐다. 

볼턴의 매파적 세계관은 다른 현안에도 곳곳에 묻어 있다. 그는 이란 핵 문제의 해법은 협상이 아니라 폭격을 가하거나 이란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하나의 중국 원칙"도 재검토해야 하고 대만 방어를 위해 무기 판매를 늘리고 심지어 미군 주둔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한 전직 이스라엘의 유엔대사가 "볼턴은 이스라엘의 비밀 병기"라고 말했을 정도로 미국 내 대표적인 친 이스라엘 인사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왜 볼턴을 기용했을까? 

<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볼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나 외교 문제에 관한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과의 정상회담 및 이란 핵협정에 주된 화제였을 공산이 크다.  

경질된 허버트 맥매스터는 이들 두 가지 사안에 대해 트럼프와 엇박자를 빚었다. 이란 핵협정 파기 가능성과 북미정상회담에 우려를 표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대표적인 볼턴은 이란 핵협정 파기론자에 가깝다. 또한 북미정상회담도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슈퍼 매파'로 불리는 볼턴이 북미정상회담을 옹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볼턴은 지난 9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3개월이든, 6개월이든, 12개월이든,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한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수락한 것은 그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중략) 협상이 하급에서 시작돼 중급으로 가고 결국 정상급으로 가는 데에는 지금부터 2년은 족히 걸린다. 이 사이에 북한은 운반 가능한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이건 우리가 용납할 수 없다."  

이 발언의 의미는 20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분명해졌다. 볼턴은 예비회담을 건너뛰고 바로 정상회담으로 가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북한이 시간을 벌려 하고 있구나'라고 판단한다면 시간 낭비를 피하고자 아마 회담장을 떠날 것이다." 

주목할 점은 볼턴이 3월에 여러 차례 트럼프를 만나면서 공개적으로 이와 같은 발언을 쏟아냈고, 그리고 트럼프는 결국 그를 안보보좌관으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 존 볼턴(오른쪽)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직후인 22일(현지 시각)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폭스뉴스 갈무리


트럼프는 이전에도 볼턴을 요직에 기용하길 원했었다. 그는 2017년 3월 러시아 스캔들로 안보보좌관에서 사임한 마이클 플린의 후임자로 맥매스터와 볼턴을 놓고 저울질했었다.

백악관 내부 논의 끝에 맥매스터를 발탁하면서 볼턴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는 엄청난 사람이다. 나는 그와 정말 좋은 만남을 가졌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매우 동의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트럼프는 볼턴에게 다른 자리를 제안했지만, 볼턴은 이를 사양했고 결국 1년 만에 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의 전격적인 볼턴 기용은 "최대의 압박"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핵무기를 포기할래, 아니면 그 후과를 감당할래'라는 식의 '최후통첩'의 자리로 삼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정상회담의 성사 자체도 불투명해질 뿐만 아니라 성사되어도 문제의 끝이 아니라 더 큰 문제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북미 정상회담이 자신의 일방적인 핵포기를 강요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정상회담에 나설 동기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의 무력사용을 포함한 "적대시정책" 강화의 빌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전망은 볼턴의 최근 발언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그는 20일 RF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포기의 대가로 "미국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경제적 지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반도 비핵화와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는 평화협정 체결마저 기피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예방전쟁은 "정당하다"고 주장해왔다. 2018년 2월 28일 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가 수개월밖에 남지 않은 북한은 임박한 위협"이라며, 미국을 지키기 위해 "북한을 먼저 공격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루 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는 "군사행동이 가해질 것이라면, 반드시 북한이 미 본토 타격 역량을 갖추기 전이 돼야 한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안보보좌관으로 사실상 내정된 3월 20일에는 강경 발언을 다소 누그러뜨렸다. "군사적 행동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군사 행동보다 더 위험한 것은 북한이 핵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볼턴은 왜 선제공격으로 해서라도 북핵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는 2018년 3월 15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냉전 시대에 소련을 봉쇄하고 억제했던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의 지론은 북한은 미쳤기 때문에 억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누구한테든 팔 수 있다고 여겨왔다.

북미 정상회담,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물론 과거의 언행을 두고 볼턴의 향후 행보를 재단할 필요는 없다. 또한 안보보좌관이라는 중책은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함이지 개인의 세계관을 펼치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도화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보면서 '대화는 북한의 속임수'라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내면화시켰다.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마이크 폼페이오도 오십보백보이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이들과의 '견제와 균형'을 이룰 만한 인물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가 "5월 이내"로 희망한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상 가장 준비 안된, 그러나 가장 기대 수준이 높은 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상회담을 중재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유념해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5월 이내" 북미 정상회담이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정상회담이 열리면 트럼프는 최후통첩의 장으로 만들려고 할 수도 있다. 아울러 한미간의 대북정책의 의제와 목표를 두고 폼페이오-볼턴 콤비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칫 북미정상회담이 물 건너갈 수도 있고, 열리더라도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닉슨과 레이건의 길 따라가길
[기고] 미국의 외교안보 사령탑, 존 볼턴은 누구인가
2018.03.24 12:15:49  
    
존 볼턴. 우리에게도 낯익은 인물이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 당시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었고,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지냈다. 당시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과 함께 부시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네오콘의 핵심이었다.

네오콘의 생각은 미국의 힘으로 세계평화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쟁이나 정권교체(regime change)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요 대상은 그들이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불렀던 이란, 이라크, 그리고 북한이었다.

그런 볼턴이 돌아왔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큰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는 상원 인준이 필요 없는데, 인준에 약한 볼턴에게 있어서는 다행인 셈이다. 그는 2005년 8월 유엔대사에 임명됐을 당시에도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히자 의회가 여름 휴회에 들어간 틈에 임명됐다.

미국 헌법은 의회가 휴회하고 있은 때에는 대통령이 상원 인준 없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를 '휴회 중 임명'(recess appointment)이라고 한다. 당시 민주당은 볼턴의 강경한 대외정책 입장과 신뢰도를 문제삼아 임명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볼턴은 13년 전보다 훨씬 중요하고 권한이 많은 직책을 인준절차 없이 맡게 됐다.

그런데 볼턴의 중책 임명이 우리에게도 중차대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그가 지금의 2차 북핵 위기와 직접 관련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차 북핵 위기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은 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 국무부 통아태 차관보의 방북이다. 방북 첫날 켈리는 북한 외무성 부상 김계관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켈리는 'HEU(High-enriched Uranium. 고농축 우라늄)을 개발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집중 추궁했다. 김계관은 부인했다. 다음날에는 외무성 제1부상 강석주를 만나 비슷하게 다그쳤다. 강석주는 '고농축 우라늄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답했다.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켈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미국 국무부 안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논쟁이 벌어졌다. 2004년 미국 현지 취재 당시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원(Center for International Policy) 연구위원으로부터 이후 진행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해리슨은 <워싱턴포스트>에서의 오랜 취재경력을 통한 네트워크로 관련 정보를 취합해 놓고 있었다. 당시 KBS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필자에게 그는 국무부 내 강온파 논쟁이 10일 이상 계속됐고 그 와중에 관련 정보가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유출됐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내용이었다.

<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이를 크게 보도했고, 이후 각 언론이 받으면서 북한의 HEU 보유는 북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당시 정보를 유출한 측은 국무부 내 강경파였고, 그 핵심은 군축담당 차관 볼턴이었다. 온건파는 'HEU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을 크게 문제삼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맞서 강경파는 '강석주의 얘기는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진행되면서 강경파는 국무부가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신문에 정보를 유출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깨는 길로 가고, 북한은 핵을 본격 개발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북핵 위기가 다시 시작됐다.

▲ 지난달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컨퍼런스(CPAC)에서 연설하고 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 ⓒAP=연합뉴스


해리슨은 당시 이런 얘기도 전해줬다. 자신이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외교관으로부터 들었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미국외교관들을 통해서도 확인했는데, 당시 북한이 켈리에게 중대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그 제안은 미국이 대화만 시작하면, 북한이 갖고 있던 사용후 핵연료봉을 즉각 국외로 반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북한입장에서는 큰 양보였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 이전에 5메가와트 원자로를 가동해 확보한 사용후 핵연료봉 8010개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즉각 밖으로 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과 미국은 이면합의로 핵연료봉을 제3국으로 반출하기로 했다. 경수로 2개 가운데 첫 번째 것의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시작하면 핵연료봉을 제3국으로 운반하기로 한 것이다. 2002년 10월 당시 핵심부품이 인도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북한은 북미대화 시작을 위해 핵연료봉 반출을 제의한 것이다.  

국무부 온건파는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면서 북한과 대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강경파는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싫어했다. 북한을 계속 압박해 핵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는 강온파가 대립하고 있다. 크게 보면 국무부는 온건파가 많고, 백악관과 국방부, CIA에는 강경파가 많다. 세밀하게 들어가면 부처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그 내부에서도 강온대립이 존재한다.  

북핵문제의 해결방안을 놓고,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강온파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공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도를 가지고 달려들면 얼마든지 이용 가능한 것이 북한정보다. 어차피 확인되기 어려운 것이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흘려도 되는 것이다.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재진입 기술까지 완성했다', '북한이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체제)를 뚫을 수 있는 신무기를 개발 중이다' 등등의 미국발 대형기사가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에 관계없이 이런 기사는 북한을 다시 악마로 만들고, 국제사회는 그 악마에게 일제히 창을 겨누게 될 것이다.  

2002년 10월 당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될 때였다. 북일 간에도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관계 개선의 무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남북관계, 북일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이 현상유지(status quo) 세력이 되어 가면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은 떨어져 간다. 지금은 남쪽 진보 정부의 냉전해체 의지와 북쪽 김정은 정권의 인민생활개선 의지가 공유지역을 찾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볼턴의 강경 대북인식이 어떤 수를 두고 나올지 우려스럽다. 미국의 언론들도 그의 국가안보보좌관 임명을 두고 강경파(hard-liner, hawk)가 대북정책을 주도하게 됐다며 염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온건파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물러나고 새로운 국무장관에 CIA국장 마이크 폼페이오가 지명된 이후 볼턴까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등용돼 이들이 어떤 합작품을 내놓을지 염려가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공화당 행정부가 '빅 딜'을 잘 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희망을 걸어 보아야 하겠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개혁개방으로 나오게 했고, 닉슨이 마오쩌둥과 정상회담을 통해 데탕트 시대를 열지 않았던가. 트럼프도 볼턴, 폼페이오를 이끌고 성큼 그 대열에 올라서길 기대해 본다. 
  

기꺼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8년 03월 23일 금요일 제548호


북한 핵과 관련한 가장 큰 의문은 북핵과 미사일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퍼즐을 맞춰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다. 경제력이나 재래식 무기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단순하게 보기는 힘들다. 핵을 개발하기 전에도 북한은 한국 국민 전체와 미군을 장사정포와 미사일, 심지어는 생물화학무기의 사정권 안에 가둠으로써 수십 년간 성공적으로 선제공격당할 위험을 제거해오지 않았던가. 사생결단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에 선전포고를 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전 세계에서 핵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에 맞서기 위한 정의의 보검(북한식 표현이다)’을 가지려 한다고 믿기도 힘들다. 중동의 일부 반미 무슬림은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환성을 지르지만, 자기 코가 석 자인 북한이 전 세계 약자를 대표해 미국과 맞서려고 할 리는 없다. 그런데도 인민을 굶겨가며 굳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한성원 그림

미국이나 한국 보수 강경파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동안 미국 상·하원 청문회나 보수 언론 지면에서 그들이 해온 얘기는 대동소이하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언제나 흔들림 없는 북한의 목표는 단 두 가지이다. 체제 유지와 남한을 그들의 체제로 흡수 통일하는 것이다. 특히 남한 인민을 해방시키는 마지막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과정은 얼마든지 유연할 수 있다. 그들은 핵을 통해 미국에 접근해 체제 유지를 강고히 하고 한·미 동맹에 쐐기를 박아 균열을 내고 싶어 한다. 한국을 미국 손아귀에서 떼어내 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차츰 강화해가겠다는 것이 그들이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미국에 접근하려는 근본 이유이다.’ 아마 통일대교에 드러누웠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생각도 비슷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강경파가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북한은 이미 그런 의도를 드러낸 예가 있다. 197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며 주한 미군 철수를 공약했던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하자 북한은 미국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북한은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군과 핵무기 철수 계획을 환영한다며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협상을 당장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한국 측은 이 협상에 나중에 참여해야 하며, 한국 측 대표는 한국 정부가 아닌 북한이 지명하는 정치나 사회집단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경파들은 상황이 유리해지자 북한이 성급하게 본색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을 염두에 뒀던 카터 행정부는 북한이 협상에서 한국은 빠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주한 미군 철수 계획을 철회하고 대화를 중단했다. 이런 전례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 주변 장성들 가운데는 북한의 평화 공세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과 한국 협상파들의 생각은 달랐다. 1970년대까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고 냉전이 끝난 뒤 북한 처지는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주장을 간추리자면 이런 거다. ‘북한은 사회주의 형제국을 잃고 대기근을 겪은 뒤 미국과 그 동맹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지 않고서는 체제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인권유린 국가, 독재국가로 낙인찍힌 이상 국제무대에서 정상 국가로 행세하기는 힘들다. 경제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보증이 절대로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북한에는 미국이 탐낼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역점을 두고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핵이며 미사일이다. 미사일은 외화를 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9·11 테러 이후 사담 후세인과 같은 운명을 맞지 않기 위해 북한이 움켜쥔 지푸라기이기도 하다.’ 이런 믿음을 가진 대표적인 이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선할 의향이 있다고 확인하면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려던 노선을 변경하리라고 보았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에 북한이 응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용도를 공개 검증할 기회를 맞았다. 북한 지도자와 그 체제가 국제사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평양에 가서 직접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보고 그 체제를 둘러본 김대중 대통령의 평가는 후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한다면, 그리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준다면 핵이든 미사일이든, 또 어떤 대량살상무기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 전반에, 특히 한국에 해박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중재로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 행정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냉전 종식 이후 주한 미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군 지도부나 외무성 관료 사이에는 찬반이 엇비슷하지만 그는 미군이 앞으로도 지역에서 안정화를 위한 역할을 수행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군 주둔은) 관계 정상화 여부에 달린 문제라고 분명히 정리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보기에 김정일 위원장은 예의 바르게 자랐으며, 자기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나중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 특사와의 대화에서 올브라이트가 마치 검사처럼 자기를 심문하더라고 회고한 일이 있다.

그로부터 무려 18년이나 지났지만 북한 핵무기가 궁극적으로 한국을 겨냥한 것인지 아닌지, 북한이 진정으로 평화와 핵무기를 맞교환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국제사회는 확인하지 못했다. 공정하게 얘기하자면 사실 그 책임을 북한에 묻기는 힘들다. 클린턴의 후계자였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낙선하는 바람에 임기 말 클린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동력을 잃고 말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초반 임기 6년 동안 내내 기본 합의를 폐기하고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그 뒤 한국에서 북한에 적대적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등장하는 바람에 북한은 미국에 접근할 통로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18년간 잃어버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 선언


최근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회담 일정을 확정하고 비핵화 논의를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은 한국 특사단의 방북 성과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돌고 돌아 18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시점으로 간신히 돌아왔을 뿐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궁극적인 목표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바꾸고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 있다(2003년 8월28일 6자회담 전체회의에서 북한 김영일 외무성 부상의 발표).’ 북한은 이번 특사단과의 합의문과 거의 같은 내용을 20년 가까이 말과 문서로 반복해 발표해왔다. 미국과 한국은 그동안 검증을 거부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후 미국 국무부 조사국장이 백악관에 보낸 보고서는 이렇다. “북한 사람들이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자주적이고 깐깐한 태도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이념적으로 엄격한 대외정책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한반도 내부와 주변의 환경 변화에 적응해왔다.”

반면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종종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특히 미국은 북한과 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머리와 가슴이 다투는 통에 쩔쩔매는 듯 보였다. 미국은 북한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화가 나 있을 때가 많았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부시 대통령은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김정일 위원장을 혐오했다. 그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김정일 위원장을 피그미, 폭군, 위험한 사람, 버릇없는 아이라고 불렀다. 부시 정권의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북한이 사악한 동기를 가진, 시한부로 연명하는 불량 국가”라고 말했다. 체니 부통령은 “우리는 악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쳐부술 뿐이다”라고 호언하고 다녔다. 북한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언사는 사실 그리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북·미 협상을 취재해온 마이크 치노이 전 CNN 기자에 따르면 도덕적 분노와 대결적인 수사, 무력시위에 바탕을 둔 미국의 북핵 정책은 내부 갈등·비일관성·외교적 무능으로 점철된 대실패였다.

이번에는 우리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켜 잃어버린 18년을 완벽하게 되찾을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다행히 정말 오랜만에 한국 대통령도, 미국 대통령도 임기가 많이 남았다. 주한 미국 대사로 거론됐던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에 따르면, 북한은 예전부터 미국의 선거와는 관계없는 합의를 하고 싶어 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말이 달라지는 데 질려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좋은 기회를 맞았다. 한·미 FTA 재협상과 주한 미군 주둔 비용 분담, 무역분쟁 등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카드 하나를 쥐게 된 셈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뒤 밝혔듯 북·미 정상회담은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말 햄버거를 나눠 먹으며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오는 11월6일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선전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북·미 간, 그리고 남북 간 대화가 잘 진전된다면 어쩌면 한국 국민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간절히 바라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응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북한이 협상 파기를 선언하고 미국이 군사 옵션을 만지작거리는 데자뷔를 겪고 싶지 않다.


참고한 활자:<북핵 롤러코스터>(시사IN북), <이코노미스트> <워싱턴포스트>



북미 정상회담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다른백년 칼럼] CVID와 CVIG 간의 위험한 곡예
2018.03.24 14:49:43

2017년 일년 내내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필자의 화두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었다. 북미 양국의 지도자간에 오고 가는 말폭탄의 수준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위의 단어, 즉 사태가 극점에 이르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다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2018년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평화를 향해 전개되는 절묘하고 긴박한 상황에 대하여 노련한 사회 원로는 문 대통령에게 '신이 역사 속을 지나는 순간, 그의 옷자락을 움켜잡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매번 배움과 성찰의 글을 올려 주는 북한 전문가 인제대 김연철 교수는 '설레이는 희망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라는 표현으로 이중적 변주의 위험을 암시한다. 

한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철부지들의 조급함이 설치는 가운데, 배달민족의 소망인 한반도 비핵화(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e for Peace process)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CVIG,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e for Peace process)이 마치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듯 착각하는 글들이 난무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날이 선 칼끝 위에서 춤을 추는 위험한 곡예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다. 함석헌 선생님은 '뜻으로 읽는 한국역사'라는 저술 속에서 하늘이 기회를 내렸을 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재앙이 뒤따른다는 말씀을 주셨다. 지금부터 정신을 다시 바짝 차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 사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비록 쌍방의 체제와 권력을 강고히 하기 위해 악용되었던 1972년 7.4공동성명에서 비롯하여 6,15 선언과 10.4합의로 이루어지는 연장선상에서 공히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고 상호 불간섭과 공존공영하는 원칙을 수십 년 간 유지해 온 셈이다. 다만 지난 9년간 어리석고 사악한 이명박근혜의 반민족적 수구집단에 의해 남북간의 갈등이 조장되고 대화가 단절되고, 이전의 김대중 정부시절에 애써 시작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협력사업이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되고 새로운 계기가 주어지면 오히려 지난 9년간의 뼈아픈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보다 확실한 신뢰관계 속에서 전면적인 협력의 확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 속에서 이루어진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가능한 모든 인도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유엔 제재의 근본 취지 역시 핵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전쟁물자에 전용될 수 있는 통상과 거래를 금지하고자 한 것일 뿐, 같은 유엔 내 인권 부처에서는 북한을 위해 1억불 이상의 지원금을 모금하면서 인도적 조치는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예건데 유엔의 북한 인권보고서에 의하면 수백만의 북한동포가 각종 질병과 전염병으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약품과 의료시설의 태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북한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천만 명 이상이 영양 부족 상태에 있으며, 특히 십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아사직전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니다. 4월말 이루어질 남북정상 회담은 전세계인들에게 향한 동아시아 역내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확고부동한 선언이어야 하며, 회담 이후에는 즉각적으로 북한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한다. 더불어 유엔 제제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조업의 재개를 검토해야 한다. 

한반도 위기해결과 평화정착을 가로막는 장애는 남북간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냉전적 상황 속에서 여전히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 내부의 혼선과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 지점에 현실적인 어려움과 심각성이 있다. 미국인들보다 미국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중앙대 이혜정 교수는 3월 21일자 <프레시안> 기고문 '(한미)동맹파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바로가기)를 통해서 미국 내 복잡하게 얽힌 내막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아래의 글을 통해서 이를 보다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미국 주류사회의 흐름과 분위기이다.  

미국의 주류사회는 한반도에서 이루지고 있는 평화의 흐름에 불안을 느낀다(Liberals, Conservatives Worry About Korean Peace Threat)는 미국 내 진보인사의 기고문이 상징하듯이, 대부분 미국인들에게는 북한은 인류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국제법을 어기고 합의를 해놓고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비밀리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진행하여 온 불량국가, 거짓말투성이의 상대로 인식하고 있다. 주류 언론들 조차 지난 20 여 년간 북미간 진행되어온 비핵 협상의 과정이 북한에 의해 농락을 당하고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벌기로 악용되어온 것으로 보도하면서 북한을 결코 정상적인 국가간 일대일의 대화상대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연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국무장관 출신이자 지난 대통령선거 경쟁상대 이었던 힐러러는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하는 트럼프의 외교적 미숙함을 비난하면서 경험과 전문성의 결여(lack of dossier & experts)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정치상황이 11월 초 예정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거나 또는 가까운 시일 내 트럼프가 탄핵을 당하는 모습으로 급반전하면, 미국 주류 정치인들이 트럼프에 의해 이루어진 북미정상회담의 주도적 성과를 손쉽게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차기 대선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를 중심으로 개혁파 정치 인사들은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를 첨언하면, 1994년 제네바협정 이래 북미간 비핵화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시한 측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 자신이었다. 이는 미국 내 양심적이며 소신이 있는 진보적 학자들과 합의 과정에 실제 참여하였던 책임있는 인사들이 고백하고 인정하는 분명한 팩트이다. 협상 과정에 임했던 미국의 입장은 한마디로 기만적이었으며 ‘수년 내에 예상되는 북한붕괴론’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예상과는 다르게, 반드시 붕괴되었어야 하는 북한정권이 1995-1998년간에 있었던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최소 수십만 내지 최대 이백만 명이 굶어 죽는 고통과 희생 위에서 재기한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 내 보수집단 입장이다.  

공화당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집단에게는 북한은 냉전구조의 마지막 연장으로서 상징 조작의 대상이다. 국방 예산을 증액하고자 하는 구실과 근거로 북한은 언제나 호전적인 집단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각색되어야 했고, 태평양을 너머로 대중국과 대러시아의 봉쇄를 위한 외교적 군사적 전략의 핑계로 활용되어 왔다. 격대로 집권한 부시 부자 정권 기간 동안에는 북한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 나오는 악의 제국, 악의 축으로 존재하여야만 했고, 이는 마치 전래의 신화처럼 보수 집단 내에 확고한 신념으로 굳혀져 왔다. 트럼프가 지난 해에 발언한 분노의 화염(fury & fire), 확실한 파괴(totally destroy) 그리고 최근에 검토되었다는 코피 전략과 비핵국가에게도 선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Mini-Nuke' 개념 뒤에는 항상 이들 호전적 집단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반증이며, 영어로 표시된 위의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여전히 유효한 옵션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언제라도 핑계와 기회가 주어지면 북한에게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집단들이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조석지변하는 트럼프의 변덕에 이들이 항시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라는 점에 있다.. 

더구나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급격히 퇴조하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그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주적으로 명백히 명시하면서 신냉전체제의 도래를 암시했다. 한편에서는 외교적 통상적 분야에서 이미 이들과 전면적 상황으로 돌입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 시절 몇 년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유지를 위해 작동하였던 6자회의 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보증할 수 있는 하나의 구도, 기존의 틀이 사라진 셈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 싸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이다. 

최근 미국무장관의 교체, 그나마 트럼프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던 매티스 국방장관의 발언권 후퇴, 테러범에 대한 잔인한 고문과 전쟁범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여성인사의 중앙정보국장 발탁,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을 극단적 호전주의자이며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던 전 유엔대사 볼턴으로 교체하는 등, 일련의 백악관 인사의 변동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반영한다. 한국정부와 언론들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북미간 정상회담의 진행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지만, 속을 가름할 수 없는 호전적 인물들의 가연성을 그저 눈가림으로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준비작업 과정부터 잘 작동하고 있다는 서훈과 폼페이오 라인이 회담의 성공적 진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안이한 기대는 오히려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고, 만약의 악화되는 사태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할 수 있다.  

이미 이란 핵합의를 무력화하고 파기하는 수순으로 들러간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의 한 칼럼리스트는 기고를 통해서 이러한 인사변동의 성격을 '시온주의자와 극우호전주의자로 채워진 완결적 구조(has closed the grip of WH inner group with Zionists & Neoconservatives)' 라고 평했듯이, 더 이상 트럼프 주위에는 보수이나마 합리적인 논리와 판단을 구사할 수 인사들이 모두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대체로 이들 인사들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취할 입장은, 자신들이 구상하는 시대역행적 패권의 전략구도에 북한이 투항해 들어오는 것을 요구하면서 당연히 그러한 방향으로 북한을 고강도로 압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은 북미정상 회담 이후에 전개되는 예상경로에 관한 것이다. 

미국 국제전략 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중앙일보> 기고를 통해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을 40%, 성사가 되더라도 합의에 이르지 못할 확률을 40%, 합의에 이르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못할 가능성이 18%라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해정 교수도 정상회담의 결렬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이런 경우에도 전쟁을 회피하고 불편하지만 '핵억제의 평화정책'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소망하건대, 트럼프가 여하한의 여건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평화를 향한 프로세스에 합의를 한다면, 다음의 문제는 이러한 합의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하에 실천으로 이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확실하고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치가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대선 과정에 벌어진 러시아 게이트와 폐북을 통한 데이터 누출, 전 중앙정보국장 해임과정의 적절성 여부, 특별검사인 뮬러 등과의 극한적 반목, 공화당내에서 조차 누적되는 피로감, 백악관내의 측근 참모들 사이 그리고 가족들과 권력투쟁설에 더하여, 최근에 봇물 터지듯 등장한 여러 여성들과 성스캔들 등 트럼프의 장래를 매우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며, 설령 탄핵을 면한다 하더라도 향후 그의 주도하에 결정된 정책을 책임있게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제네바 합의가 이후 연방의회의 다수를 장악한 공화당 보수집단들에 의해 지연되고 무력화가 된 사례가 있듯이, 어렵게 합의에 이른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이 실행단계에 들어가기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예상된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이를 이미 염두에 두었다는 모양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미 삼자 정상회담을 추가로 제안하였다. 합의된 내용의 실행을 분명히 강제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의 서보혁 교수는 과거처럼 선언(announcement)과 합의(agreement) 만으로는 실행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제법 수준의 조약(treaty) 또는 이에 준하는 강제적 조항을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위에도 언급하였듯이 6자회의 구조는 미중과 미러 간 점증하는 갈등으로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 정부가 움직이고 있듯이 한중, 한러, 한일 정상회담을 매개로 하여 북중, 북러, 북일 정상회담을 동시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자의 회담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식의 개별적 이자 또는 삼자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에서 깊이 협의했음직한 주제로 평양에 신속하게 미국의 임시대사관을 개설하여 양국 관계정상화 과정에 비가역적인 속도를 보태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유럽연합도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유엔 역시 모든 역할과 지원을 다할 것을 공언하고 있는 현재, 유엔이 중심이 되어 가칭 세계(또는 한반도)특별평화위원회를 사무총장 직할로 편성하고 이의 위상과 기능을 안보리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요청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평화위원회의 구성에는 안보리를 입맛대로 좌지우지 하는 주요 패권 국가들인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을 배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반도 상황의 향후 전개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기대 또는 신뢰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다만 선제공격 등 예상되는 극단적 위험행위를 막아야 하는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관점과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고난의 역사를 이겨낸 북한을 이제 대한민국은 당당한 형제적 주권국가로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흐름속에 민족적 사명과 동포애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미국 당국은 북한의 붕괴론을 포기하고 동시에 군사적 협박을 중단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 분단의 원인과 북한 핵무장의 구실을 제공한 당사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예의와 책무로 반드시 실행하여야 하는 사항이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재미교포들은 미국 내 진보세력과 시민사회와 함께 손잡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미국의 일차적 책임을 분명히 요구하는 국제적 여론 작업에 불을 힘껏 댕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