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특히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폐기하기(CVID) 전에 북한에 어떤 양보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 초기 대북정책을 입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및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란 끝에 2006년에 유엔 대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랬던 그가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기용됐다.
볼턴의 매파적 세계관은 다른 현안에도 곳곳에 묻어 있다. 그는 이란 핵 문제의 해법은 협상이 아니라 폭격을 가하거나 이란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하나의 중국 원칙"도 재검토해야 하고 대만 방어를 위해 무기 판매를 늘리고 심지어 미군 주둔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한 전직 이스라엘의 유엔대사가 "볼턴은 이스라엘의 비밀 병기"라고 말했을 정도로 미국 내 대표적인 친 이스라엘 인사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왜 볼턴을 기용했을까?
<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볼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나 외교 문제에 관한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과의 정상회담 및 이란 핵협정에 주된 화제였을 공산이 크다.
경질된 허버트 맥매스터는 이들 두 가지 사안에 대해 트럼프와 엇박자를 빚었다. 이란 핵협정 파기 가능성과 북미정상회담에 우려를 표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대표적인 볼턴은 이란 핵협정 파기론자에 가깝다. 또한 북미정상회담도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슈퍼 매파'로 불리는 볼턴이 북미정상회담을 옹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볼턴은 지난 9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3개월이든, 6개월이든, 12개월이든,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한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수락한 것은 그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중략) 협상이 하급에서 시작돼 중급으로 가고 결국 정상급으로 가는 데에는 지금부터 2년은 족히 걸린다. 이 사이에 북한은 운반 가능한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이건 우리가 용납할 수 없다."
이 발언의 의미는 20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분명해졌다. 볼턴은 예비회담을 건너뛰고 바로 정상회담으로 가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북한이 시간을 벌려 하고 있구나'라고 판단한다면 시간 낭비를 피하고자 아마 회담장을 떠날 것이다."
주목할 점은 볼턴이 3월에 여러 차례 트럼프를 만나면서 공개적으로 이와 같은 발언을 쏟아냈고, 그리고 트럼프는 결국 그를 안보보좌관으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 존 볼턴(오른쪽)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직후인 22일(현지 시각)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폭스뉴스 갈무리
트럼프는 이전에도 볼턴을 요직에 기용하길 원했었다. 그는 2017년 3월 러시아 스캔들로 안보보좌관에서 사임한 마이클 플린의 후임자로 맥매스터와 볼턴을 놓고 저울질했었다.
백악관 내부 논의 끝에 맥매스터를 발탁하면서 볼턴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는 엄청난 사람이다. 나는 그와 정말 좋은 만남을 가졌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매우 동의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트럼프는 볼턴에게 다른 자리를 제안했지만, 볼턴은 이를 사양했고 결국 1년 만에 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의 전격적인 볼턴 기용은 "최대의 압박"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핵무기를 포기할래, 아니면 그 후과를 감당할래'라는 식의 '최후통첩'의 자리로 삼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정상회담의 성사 자체도 불투명해질 뿐만 아니라 성사되어도 문제의 끝이 아니라 더 큰 문제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북미 정상회담이 자신의 일방적인 핵포기를 강요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정상회담에 나설 동기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의 무력사용을 포함한 "적대시정책" 강화의 빌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전망은 볼턴의 최근 발언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그는 20일 RF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포기의 대가로 "미국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경제적 지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반도 비핵화와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는 평화협정 체결마저 기피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예방전쟁은 "정당하다"고 주장해왔다. 2018년 2월 28일 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가 수개월밖에 남지 않은 북한은 임박한 위협"이라며, 미국을 지키기 위해 "북한을 먼저 공격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루 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는 "군사행동이 가해질 것이라면, 반드시 북한이 미 본토 타격 역량을 갖추기 전이 돼야 한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안보보좌관으로 사실상 내정된 3월 20일에는 강경 발언을 다소 누그러뜨렸다. "군사적 행동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군사 행동보다 더 위험한 것은 북한이 핵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볼턴은 왜 선제공격으로 해서라도 북핵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는 2018년 3월 15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냉전 시대에 소련을 봉쇄하고 억제했던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의 지론은 북한은 미쳤기 때문에 억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누구한테든 팔 수 있다고 여겨왔다.
북미 정상회담,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물론 과거의 언행을 두고 볼턴의 향후 행보를 재단할 필요는 없다. 또한 안보보좌관이라는 중책은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함이지 개인의 세계관을 펼치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도화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보면서 '대화는 북한의 속임수'라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내면화시켰다.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마이크 폼페이오도 오십보백보이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이들과의 '견제와 균형'을 이룰 만한 인물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가 "5월 이내"로 희망한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상 가장 준비 안된, 그러나 가장 기대 수준이 높은 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상회담을 중재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유념해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5월 이내" 북미 정상회담이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정상회담이 열리면 트럼프는 최후통첩의 장으로 만들려고 할 수도 있다. 아울러 한미간의 대북정책의 의제와 목표를 두고 폼페이오-볼턴 콤비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칫 북미정상회담이 물 건너갈 수도 있고, 열리더라도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오콘의 생각은 미국의 힘으로 세계평화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쟁이나 정권교체(regime change)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요 대상은 그들이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불렀던 이란, 이라크, 그리고 북한이었다.
그런 볼턴이 돌아왔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큰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는 상원 인준이 필요 없는데, 인준에 약한 볼턴에게 있어서는 다행인 셈이다. 그는 2005년 8월 유엔대사에 임명됐을 당시에도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히자 의회가 여름 휴회에 들어간 틈에 임명됐다.
미국 헌법은 의회가 휴회하고 있은 때에는 대통령이 상원 인준 없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를 '휴회 중 임명'(recess appointment)이라고 한다. 당시 민주당은 볼턴의 강경한 대외정책 입장과 신뢰도를 문제삼아 임명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볼턴은 13년 전보다 훨씬 중요하고 권한이 많은 직책을 인준절차 없이 맡게 됐다.
그런데 볼턴의 중책 임명이 우리에게도 중차대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그가 지금의 2차 북핵 위기와 직접 관련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차 북핵 위기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은 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 국무부 통아태 차관보의 방북이다. 방북 첫날 켈리는 북한 외무성 부상 김계관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켈리는 'HEU(High-enriched Uranium. 고농축 우라늄)을 개발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집중 추궁했다. 김계관은 부인했다. 다음날에는 외무성 제1부상 강석주를 만나 비슷하게 다그쳤다. 강석주는 '고농축 우라늄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답했다.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켈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미국 국무부 안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논쟁이 벌어졌다. 2004년 미국 현지 취재 당시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원(Center for International Policy) 연구위원으로부터 이후 진행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해리슨은 <워싱턴포스트>에서의 오랜 취재경력을 통한 네트워크로 관련 정보를 취합해 놓고 있었다. 당시 KBS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필자에게 그는 국무부 내 강온파 논쟁이 10일 이상 계속됐고 그 와중에 관련 정보가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유출됐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내용이었다.
<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이를 크게 보도했고, 이후 각 언론이 받으면서 북한의 HEU 보유는 북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당시 정보를 유출한 측은 국무부 내 강경파였고, 그 핵심은 군축담당 차관 볼턴이었다. 온건파는 'HEU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을 크게 문제삼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맞서 강경파는 '강석주의 얘기는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진행되면서 강경파는 국무부가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신문에 정보를 유출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깨는 길로 가고, 북한은 핵을 본격 개발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북핵 위기가 다시 시작됐다.

▲ 지난달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컨퍼런스(CPAC)에서 연설하고 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 ⓒAP=연합뉴스
해리슨은 당시 이런 얘기도 전해줬다. 자신이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외교관으로부터 들었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미국외교관들을 통해서도 확인했는데, 당시 북한이 켈리에게 중대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그 제안은 미국이 대화만 시작하면, 북한이 갖고 있던 사용후 핵연료봉을 즉각 국외로 반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북한입장에서는 큰 양보였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 이전에 5메가와트 원자로를 가동해 확보한 사용후 핵연료봉 8010개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즉각 밖으로 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과 미국은 이면합의로 핵연료봉을 제3국으로 반출하기로 했다. 경수로 2개 가운데 첫 번째 것의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시작하면 핵연료봉을 제3국으로 운반하기로 한 것이다. 2002년 10월 당시 핵심부품이 인도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북한은 북미대화 시작을 위해 핵연료봉 반출을 제의한 것이다.
국무부 온건파는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면서 북한과 대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강경파는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싫어했다. 북한을 계속 압박해 핵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는 강온파가 대립하고 있다. 크게 보면 국무부는 온건파가 많고, 백악관과 국방부, CIA에는 강경파가 많다. 세밀하게 들어가면 부처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그 내부에서도 강온대립이 존재한다.
북핵문제의 해결방안을 놓고,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강온파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공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도를 가지고 달려들면 얼마든지 이용 가능한 것이 북한정보다. 어차피 확인되기 어려운 것이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흘려도 되는 것이다.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재진입 기술까지 완성했다', '북한이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체제)를 뚫을 수 있는 신무기를 개발 중이다' 등등의 미국발 대형기사가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에 관계없이 이런 기사는 북한을 다시 악마로 만들고, 국제사회는 그 악마에게 일제히 창을 겨누게 될 것이다.
2002년 10월 당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될 때였다. 북일 간에도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관계 개선의 무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남북관계, 북일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이 현상유지(status quo) 세력이 되어 가면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은 떨어져 간다. 지금은 남쪽 진보 정부의 냉전해체 의지와 북쪽 김정은 정권의 인민생활개선 의지가 공유지역을 찾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볼턴의 강경 대북인식이 어떤 수를 두고 나올지 우려스럽다. 미국의 언론들도 그의 국가안보보좌관 임명을 두고 강경파(hard-liner, hawk)가 대북정책을 주도하게 됐다며 염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온건파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물러나고 새로운 국무장관에 CIA국장 마이크 폼페이오가 지명된 이후 볼턴까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등용돼 이들이 어떤 합작품을 내놓을지 염려가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공화당 행정부가 '빅 딜'을 잘 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희망을 걸어 보아야 하겠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개혁개방으로 나오게 했고, 닉슨이 마오쩌둥과 정상회담을 통해 데탕트 시대를 열지 않았던가. 트럼프도 볼턴, 폼페이오를 이끌고 성큼 그 대열에 올라서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