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문재인 대통령 방중이 남긴 교훈 - 숭배와 배척, 그리고 우리 안의 쇄국주의

일취월장7 2017. 12. 18. 11:20

정상회담 속도 냈던 韓, 中 협상술에 말렸다

박혁진 기자·모종혁 베이징 통신원 ㅣ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8(월) 09:22:43 | 1469호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對笑顔唾亦難)’.

 우리 속담으로 알려진 이 속담은 중국에서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 청와대는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이러한 정서적 유대감을 잘 활용하고자 했다. 12월14일 문 대통령이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인근 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것도 사실 이를 고려한 일정이었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문 대통령이 중국 국영방송 CCTV에 출연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 대해 ‘신뢰할 만한 지도자’라고 한 것이나 우리 주최 행사에 한류스타들을 대거 출연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 측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웃는 얼굴에 침을 뱉는 결례를 방중 기간 내내 범했다. 차관보의 공항영접, 사진기자 폭행, CCTV 편집논란 등 우리 정상의 해외순방 중 이렇게 많은 논란이 동시에 일어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중국의 국빈대접은 허술하고 무례했다. 청와대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지만, 내부에서는 지난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당시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당시 윤창중 전 대변인이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정상회담 소식이 주목받지 못했다”며 “이번에도 양국 정상 간 회담 내용이 기자 폭행이나 외교 결례 논란에 휩싸여 빛이 바래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방중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큰 고민 보따리를 하나 떠안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셈이 됐다. 미국의 독자적 북한 선제타격론이 나올 정도로 한·미 동맹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든 중국을 설득해 북핵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어느 정도의 당위성을 갖췄었다. 하지만 중국과 원론적 합의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 우방인 미국과 일본과의 협상도 향후 쉽지 않게 됐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양측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 언론은 한·중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며 양국 간 합의 내용보다는 이견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리춘푸(李春福) 중국 난카이대학 아시아연구센터 부주임교수의 말을 빌려 “한국 측이 관계 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것 같지만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속도를 중시하며 한·중 정상회담을 빠르게 추진한 우리 정부에 뼈아픈 지적이다.

 

© 일러스트 신춘성

© 일러스트 신춘성


 中, ‘사드’ 그리고 또 ‘사드’

 

이번에도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것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였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독일, 베트남에서에 이어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두 번의 만남이 사드 문제로 인한 양국 간 갈등을 해소하는 자리였다면, 이번만큼은 사드가 아닌 북핵 문제와 경제협력 등 양국 현안에 대한 보다 실질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 측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번 방중 기간에도 중국은 ‘사드’ 그리고 또 ‘사드’를 이야기했다. 비록 시 주석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문제’란 표현으로 사드 문제를 우회적으로만 한 차례 언급했지만, 중국 정부와 언론은 사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청와대와 여당은 시 주석이 사드 문제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성공적이라 자평하지만, 정작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속내는 국영방송인 CCTV를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12월11일 밤 10시30분 중국 국영 CCTV 뉴스채널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를 내보냈다. CCTV 간판스타인 수이쥔이(水均益) 기자가 진행하는 ‘글로벌 워치(環球視線)’에서 23분 동안 문 대통령 인터뷰를 방영했던 것.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아주 특별한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CCTV나 관영 신화통신이 외국 정상의 방중을 앞두고 관행적으로 진행했던 방식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날 방송에서는 수이 기자가 오프닝 멘트에서 “‘한국 정부의 특별한 요청’으로 이뤄진 단독 인터뷰”라고 설명했다. 마치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특별히 이뤄진 방송인 것 같은 냄새를 풍기기에 충분했다. 

 

인터뷰 질문은 노골적이고 무례했다. 수이 기자는 모두 8개의 질문을 던졌는데, 3개가 사드와 관련된 문제였다. CCTV는 ‘언론’이라기보다 ‘선전 기관’이다. CCTV의 녜천시(辰席) 사장은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이면서 중국의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당서기 겸 국장이다. 그 방송사 앵커의 질문은 언론의 질문이라기보다 중국 정부의 ‘해명 요구’로 봐야 한다. CCTV 측은 “양국 간 해빙무드가 감지되지만 사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향후 양국 관계는 한국이 ‘3불(三不)’의 표명 입장을 어느 정도로 이행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등 한국의 책임을 일관되게 물었다. 클로징 멘트에서는 “한국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길 바란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사실 기자 폭행 사건으로 인해 다른 외교 결례가 주목받지 못했지만, CCTV의 인터뷰는 ‘역대급 결례’였다. 지난 22년 동안 중국에서 CCTV의 수많은 외국 정상 인터뷰를 시청했던 모종혁 시사저널 중국 통신원은 “이렇게 한 가지 사안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문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해 “말과 행동에서 아주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며 친근함을 표시했음에도 이 같은 질문 공세를 퍼부은 것은 더욱 이례적이었다고도 했다.

 

사실 중국의 이런 결례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상대를 강하게 밀어붙여 길들이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중국은 발군의 외교술을 가진 나라다. 평소 국제분쟁에서 직접 대화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일관되고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뿐만 아니라 한국처럼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계획 아래 상대국을 때로는 겁박하고 때로는 달래면서 굴복시킨다.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맨 오른쪽)이 12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맨 오른쪽)이 12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1년 중·일 갈등과 비슷한 국면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2011년 12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일본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상황과 흡사하다. 양국은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 열도)를 두고 영토분쟁을 겪고 있었다. 2010년 9월 일본은 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고 선장을 체포했다. 중국 정부는 맹렬히 반발했다. 중국 단체관광객의 일본 관광 금지, 희토류 원소의 대일 수출 중지 등을 앞세우며 일본을 압박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선장을 즉각 석방하는 굴욕을 맛봤다.

 

그 뒤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소소한 충돌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의 상대국 방문은 미뤄졌다. 노다 총리의 방중도 한 차례 연기되어 간신히 이뤄졌다. 그마저도 1박2일의 경제협력 관련 일정으로 채워졌다. 2012년 4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太) 당시 도쿄도지사가 댜오위다오 매입을 발표하면서 분쟁이 재발했다. 중국 정부는 각종 대일 무역보복 조치를 취했고 단체관광객의 일본 관광을 금지시켰다. 또한 중국 각지에서는 대규모 반일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이 취한 조치나 행동 양상과 동일하다. 당시 노다 총리도 방중 내내 냉랭한 대접을 받았다. 따라서 문 대통령만 특별히 홀대받았던 외국 정상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과 달리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지난 10·31 합의로 일거에 해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의 전례로 볼 때 흔치 않은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이었다. 중국이 취한 일련의 보복 조치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한국의 대중 수출은 2010년 이래 최고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2~3분기 큰 매출 하락을 겪었지만, 4분기부터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다. 중국인들의 반한(反韓) 감정도 중·일 영토분쟁 때와 비교해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8월말 우리 정부는 일본과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을 1년 더 연장했다. 집권 전 문재인 대통령은 이 협정에 반대했었다. 또한 얼마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인도·태평양 라인’ 구축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 내에서는 한·미·일 3국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형성됐다. 즉 10·31 합의는 이 같은 국내외 정세를 고려해 중국이 필요해서 응한 것이지, 결코 우리가 매달려 한·중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매달리는 모양새까지 보이며 한·중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관련 행사 참석 차 베이징에 온 한 기업인은 “국빈방문이라고는 하지만 두 나라 간 향후 진로를 밝히는 이렇다 할 메시지가 없는 데다 이번 국빈방문을 바라보는 중국 언론의 관심도 크지 않아 솔직히 몹시 놀랐다. 한·중 관계 회복을 바라는 기업인 입장에서는 이번 국빈방문을 통해 한·중 간 앙금이 해소되리라 봤는데 중국 언론을 유심히 살펴본 입장으로서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한·중 수교 25주년에 매달려 너무 급하게 국빈방문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구체적 실익을 취했어야 했지만 모양새만 구겼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은 향후에도 사드 문제를 계속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향후 지속될 중국 정부의 사드 대응에 좀 더 강단 있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중국의 대외전략과 경제협력에서 꼭 필요한 파트너임을 제대로 주입시키진 못했다. 중국인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이에게 더 힘을 휘두른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개발로 촉발됐고, 북한 동맹국인 중국도 문제 해결에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는 공세가 필요한 때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북대청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북대청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익 못 취하고 모양만 구겨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도출한 합의가 추상적이라는 데 있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12월1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4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두 정상이 합의한 4대 원칙은 △한반도 전쟁 불용 △한반도 비핵화 원칙 확고히 견지 △북한 비핵화 등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 △남북한 관계 개선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 등이다. 기존에 양측이 했던 외교적 수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다.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압박 같은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4대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대북제재와 압박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우리 정부가 독자 대북제재를 취하는 상황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제재와 압박’에 대한 중국 측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대북 문제를 바라보는 한·중 간 엇박자로 비치면서 앞으로도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두 나라의 앙금을 완전 해소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양국 ‘공동발표문’이 나오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두 나라는 1992년 수교 이후 양국 정상이 만날 때마다 의미 있는 협약 등을 내놨고 김대중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 때까지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두 나라 정상의 국빈방문이 있을 때마다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외교적 전례를 가져왔었지만 이번엔 아주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수확을 거둔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두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양한 소통 수단을 활용,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을 구축해 긴밀한 소통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정상회담 후 브리핑에서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 방중이 남긴 교훈

[기고] 현 정부 외교라인, 진지한 반성 필요
2017.12.17 16:10:06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굴욕외교'라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중국 정부의 외교적 결례 때문이다. 의전 무시나 기자 폭행 사건은 물론이고, '국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중국 내 주요 인사들과의 접촉이 불발되었고 면담도 형식적인 수준이었다. 더욱이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도 채택하지 못하고 정상회담 주요 의제나 내용조차 공개되지 않은 것을 보면, 단지 중국의 대국적 오만 때문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중국은 결코 한국을 허투루 대하지 못한다. 큰 나라인 중국에 오랜 기간 눌려 살던 한국은 중국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지만, 중국 또한 한국에 대해 깊은 트라우마가 있다. 중국 역대 왕조의 대륙 경영에서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정세변화는 그들의 정치적 존립 자체의 중요한 변수였다. 당태종과 청태종이 한겨울 만주의 삭풍을 뚫고 한반도로 친정까지 하면서 군사적 공략을 하려 했던 것이나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상황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을 건 한판 승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중 당시, 시진핑 주석이 보여준 극진한 환대도 그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예다. 한국이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였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이 문재인 대통령을 허투루 대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중국의 외교 결례는 국빈방문 교섭 당시부터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정상외교의 핵심은 상대국이 보내는 고단위의 외교 메시지를 해석(디코딩)해내는 것이다. 문제가 된 중국 정부의 외교 결례는 고압적이거나 오만하다기보다는 무관심으로 보인다. 중국은 애당초 이번 방문이나 회담에 깊은 관심이 없었다. 19차 당대회 직후 중국 지도부는 아직 한중간 핵심 의제에 대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속내가 문 대통령 방중 기간 중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외교팀이 성급한 기대감에 급히 방문을 추진하다보니 의전과 성과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외교는 얼마나 주변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고 핵심의제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꼭 강대국이라고 유리한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 상대방을 압박할 카드가 필요하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을 미국으로 초청한 존슨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한국으로 보내 박 대통령이 타고 오도록 했다. 더욱이 워싱턴 중심가에서 카 퍼레이드를 열어주고, 백악관에는 쌀밥과 김치를 준비하였으며, 환영만찬장에서는 '아리랑'을 연주했다. 당시 최빈국이었던 한국 대통령에게 미국으로서 가히 파격적인 대우를 한 것이다. 다름 아닌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때문이었다. 이번 방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의 '베트남 파병' 같은 결정적 카드가 없었다.  


하지만 국빈 방문의 격에 맞는 의전과 성과를 도출할 나름의 복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최소한 방중 직전에 실시했던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방중 이후로 연기했어야 했다. 이는 평화와 공동번영을 논의하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이자, 무엇보다 중국을 압박할 히든카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인 '쌍중단'을 국빈 방문 직전 정면으로 무시하고 대접을 받겠다고 기대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양측의 무역, 투자 및 문화 교류의 크기를 고려하면 중국도 한중관계를 조속히 복원시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결국 양측 사이에 사드 문제를 포함한 용인될 수준의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현실은 매우 예민하며 엄중하다. 이웃나라인 일본이 굳건히 미국만 붙들고 있으면 되는 것에 비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변화하는 상황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대응 수위를 조절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중국은 오랑캐, 미국은 우리를 도와준 나라'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중견국가에게 요구되는 대외 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방중 외교에 관해 일차적 책임이 있는 외교라인도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나아가 장기적인 외교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해 청와대 외교정책실을 국가안보실에서 독립시키는 방안 또한 고려해봄직 하다.   



문재인 정부, 지금이 북핵 진검 승부할 때

[현안진단] '피방기의식'에서 벗어나 운전대 잡아야
2017.12.17 16:13:03 
  
미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 공은 북한에게!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2월 13일 북한이 먼저 핵 포기를 약속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꿔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미국의 <포린폴리시>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래 평양에 내놓은 가장 명확한 외교적 접근법"이라고 평가했고, CNN은 '평양에 대한 공개초청장'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동안 <현안진단>은 제177호를 비롯해 비연계 병행의 접근법에 따라 조건 없는 대화에서 시작할 것을 여러 번 촉구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일관되게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고 한국과 일본이 이러한 입장에 동참했다. 문재인 정부도 미국과의 공조를 내세워 이러한 전제조건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번 틸러슨 장관의 조건 없는 대북 대화 제안은 그 자체로 환영할 일이지만, 과연 미 행정부 내에서 조율된 의견인지는 단정 짓기 어려우며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틸러슨 국무장관이 경질설에 맞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어,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 국무장관의 입장이 미국 외교당국의 공식 입장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국무부 내에서는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으로 연결 짓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 시점에서 미국이 최대한의 유연성을 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조건 없는 대화의 재개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밝혀온 대북정책 기조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미국 발 국면전환의 신호를 과연 북한이 수신(受信)할 것인지에 있다. 지난 9월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한이 60일 동안 추가 도발을 하지 않으면 이것을 대화 조건의 이행으로 간주한다'는 이른바 '60일 법칙(the 60-day Rule)'을 제시하였고, 10월에는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이를 재확인한 바 있다. 북한이 60일 넘게 추가적인 핵·미사일 시험을 자제한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 12일(현지 시각) 애틀랜틱 카운슬과 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북한의 ICBM 추가발사와 대북 군사행동론의 한계 

단군신화에 따르면, 호랑이는 굴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만 견디면 인간이 될 수 있었지만 결국은 이를 다 채우지 못하고 굴을 뛰쳐나왔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이 약속한 60일을 넘기면서 추가적인 탄도미사일 발사를 자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자, 11월 29일 또다시 ICBM급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여 굴을 뛰쳐나왔다.  

이번의 미사일은 정상 각도로 발사했으면 미국 수도 워싱턴까지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되었다. 북한이 '60일 법칙'을 지켰음에도 미국이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강행한 데 대한 반발인지, 아니면 당초 계획대로 발사한 것인지 의견이 갈린다. 그보다는 꾸준히 준비해 오다가 테러지원국에 재지정 되자 이를 핑계로 시험 발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일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에 따라 미국사회가 또다시 들끓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3개월 내 북핵 해결설', '대북 선제타격론'이 횡행하면서 또다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의 군사행동론은 커다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군사행동에 나서기에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한참 넘어 레드존의 한복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도 실효성 없는 대북 군사행동론의 허점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기술적인 완성이 채 검증되지 않은 화성-15형의 시험발사를 놓고 '국가핵무력의 완성'을 서둘러 선언한 데 대한 북한정권의 다급함을 간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국이 열어놓은 기회의 창을 최대한 활용해 남북관계 복원과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만들어내느냐 여부이다.

'미국의 판단'이나 '북한의 선의'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번에 잠시 열린 '기회의 창'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최근의 상황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북한은 9월 15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시험 발사한 뒤 추가적인 도발이 없이 60일을 넘겼지만, 미국은 아무런 보상을 제공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도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북한이 미사일의 추가 발사를 멈춘 지 63일째인 11월 17일,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조셉 윤 미국 한반도특별대표는 제주도에서 만나 '60일 법칙'의 수정을 시도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실제로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선언을 통해 이를 공개적으로 약속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제재와 압박 조치를 내놓았다. 11월 20일(현지 시각)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의회에서 올라온 테러지원국 재지정 법안에 서명했다. 또한 미 공군의 최신예 스텔스전투기 24대를 비롯해 한미공군의 항공기 230대가 동원된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가 12월 4~8일 실시된다고 예고됐다.

미국이 '60일 법칙'의 수정을 시도하고 고강도 제재·압박 조치를 추가로 내놓은 데는 북한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북한은 10월 7일에 열린 당중앙위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국가 핵 무력 건설 완수, 자력자강을 강조하면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부인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국장도 10월 20일 모스크바 비확산 회의에서 "핵무기를 대상으로 한 협상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며 대화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미국 내 협상파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이 추가도발의 일시중지가 제재와 압박의 성과라고 과신한 듯 스스로 설정한 '60일 법칙'을 어기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북한 역시 추가 도발을 일시중지하면서도 '60일'이 채 지나기 전에 핵·미사일 개발과 실전배치를 계속하겠다는 강경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미국의 불신을 자초했다.

현재의 한반도 위기상황을 미국의 판단이나 북한의 선의(善意)에만 맡겨놓아서는 평화의 다리로 넘어갈 수 없다. '60일' 동안의 국면관리가 실패한 데는 미국과 북한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그렇다고 우리 정부의 책임도 결코 적지 않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조건 없는 대화를 얘기했지만,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정작 어떻게 대화와 협상의 동력을 살려 나갈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전쟁 이후 적대세력에 포위되어 있다는 피포위의식(被包圍意識, siege mentality)에 사로 잡혀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한국이 러시아, 중국 등 옛 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하자 북한 특유의 피포위의식은 더욱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피포위의식이 오늘날과 같은 핵·미사일 개발과 보유로까지 나아가게 됐다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북한뿐만이 아니다. 우리 한국의 많은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혹시 미국이 우리를 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를 '피방기의식'(被放棄意識, sense of abandonment)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를 먼저 살피고 미국에 매달리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미국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한국의 정치인이나 언론이 먼저 나서 미국의 이익과 입장을 옹호한다. 미국은 한국이 추진하려는 어떤 외교정책이나 대북정책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당연히 우려를 표명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언론들은 우리의 국익을 고려하기보다 미국의 국익에 따른 우려를 대서특필한다. 

결국 국가전략에 입각한 우리 정부의 정책은 그것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지기도 전에 미국의 전략과 상충되는 것 아니냐가 먼저 따져지고, 필경 한국이 무슨 힘이 있어 한반도 문제를 주도할 수 있겠는가 라는 냉소를 받으며 비판의 무대에 세워지는 것이 구조화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2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군수공업대회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피방기의식'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일부 정당과 언론은 국내 전문가들이 조건 없는 대화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북한과 대화에 나서기보다 미국, 일본과의 대북 압박공조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문재인 정부의 일부 관료들조차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다가 틸러슨 국무장관이 조건 없는 대화를 말하니까 적지 않게 당황하는 눈치다. 

이제 우리 정부는 상대적으로 여론의 부담을 덜 안은 채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또다시 미국의 눈치를 보다가 남북관계 복원의 기회를 실기해서는 안 되며, 적극적인 자세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면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만약 남북대화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 정부는 비정치적인 교류·협력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정치·군사적인 현안을 주제로 내걸고 정면 승부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교류·협력에서 시작해 점차로 정치·군사문제로 넘어가는 기능주의적인 접근에 머물기에는 너무 심각하고 긴박하다. 그런 점에서 남북대화가 시작되면,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규율할 새로운 법규범으로서 남북 기본협정의 추진 문제를 주된 의제로 남북대화의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는 북핵 해법으로서 '입구로서의 동결, 출구로서의 폐기'라는 단계적 해법을 내놓고 있다. 현재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기 때문에 쉽게 핵무기 폐기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동결 단계'에만 협상의 초점을 맞출 경우 자칫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해 준다는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조건 없이 대화국면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진정성과 고도의 협상전략을 통해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이 북한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마지막 대화의 장이라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동력의 확보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의 추진 문제를 남북대화나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한반도평화포럼의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은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이 아무리 국가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해도 국제법적인 체제 안전보장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평화협정 논의는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국내외적으로 적지 않은 난관과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70%를 넘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어 국정의 동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국내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아야 한다. 우리가 운전대를 확실하게 잡게 된다면 북한당국도 결코 우리 정부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대화·협상으로 끌어당겨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진검승부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 


숭배와 배척, 그리고 우리 안의 쇄국주의

[기고] 중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 문제 없나?
2017.12.20 16:04:50

임진왜란, 남한산성 그리고 시대착오적 숭명(崇明) 사상

임진왜란 직전, 조선의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일본 통신사 보고도 당파에 따라 서로 달리 하고 당쟁으로만 치닫다가 결국 전쟁의 참극을 맞았다. 조선은 일본을 줄곧 '왜놈'이라 칭하면서 업신여겼지만, 사실 당시 일본은 전 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조총의 숫자보다 더 많은 조총을 보유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이미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의 치욕을 겪고도 조선의 대응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임진왜란 뒤 조선은 이미 극도로 쇠락해진 명나라만을 숭배하는 숭명(崇明)사상에만 매달렸다. 그러면서 신흥 강자로 부상한 청나라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오랑캐'로 깔보고 업신여기다가 임진왜란 후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남한산성 삼전도의 굴욕을 당해야 했다. 청나라는 세계 최강국으로서 세계 GDP의 1/3을 점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제 사라진 명나라를 대신해 스스로 시대착오적인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면서 외부세계에는 더욱 눈과 귀를 닫았다.

쇄국주의와 '근거 없는' 배타성 

모두가 아는 것처럼, 구한말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 쇄국정책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결국 위정자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자 함이었다. 조정은 수구파와 개화파 그리고 위정척사파로 분열돼 반목하고 허송세월하다가 마침내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외부의 세계는 급변했지만, 내 마음은 오로지 일편단심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어떻게 하든 자신이 쥔 기득권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탐욕과 권력욕이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나라를 잃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쇄국주의라는 배타성은 모두 외부자에 대한 근거 없는 멸시와 조롱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놈', 병자호란 때는 '오랑캐' 그리고 대원군 당시에는 '서양오랑캐(洋夷)'였다.  

우리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하게 미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외부의 세계에 대단히 둔감하다. 엄청난 해외여행 붐으로 우리의 여행수지는 갈수록 큰 적자를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국제 감각의 발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반면 국내 차원의 논쟁과 무조건 반대에는 모두들 특별하게 예민하고 치열하다. 역사와 전통의 많은 부분은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지만, 다만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의 역사와 전통은 계승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일본과 군사협력? 자위대가 한반도에서 활동? 불가능하다

이웃하는 국가 간에는 모름지기 상호 우호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과도 당연히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다만 일본이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고 심지어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일언반구 사과조차 없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우호 관계는 어렵다.  

가령 일본 자위대가 우리 영토에 다시 진입해 군사훈련을 한다면, 과연 우리 국민들이 용인할까? 아마 절대다수가 반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이란 미국과 일본이 아무리 희망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에 대한 언론보도, 역지사지의 시각 필요 

오늘 이 나라의 외교국방 분야를 주름잡고 있는 이른바 전문가 그룹의 구성은 단순히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다. 가히 100% 순혈의 보수 일색이라 할 정도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른바 균형외교와 자주국방은 처음부터 상상하기도 어렵다. 숲이란 그것을 구성하는 수종이 다양할수록 번성하는 법이다.  

최근 대통령의 방중을 둘러싸고 발생한 언론 보도의 '경향성'은 기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투영하는 현상이었다. 가령 우리 민족이 가장 뛰어나고 우수하다는 민족적 자부심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타민족을 모욕하거나 조롱하는 논리로 발전돼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언론과 학자들은 쉽게 중국의 '독재'나 '공안의 폭력성', 혹은 '강제철거' 등등으로써 '후진성'을 매일같이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도 불과 10년 전이나 2,30년 전에 그러한 일들을 겪었고, 사실 1년 전 박근혜 시대에 그러한 일들이 있었지 않은가? 미국에서도 막무가내 경찰의 폭력성은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가? 또 중국 하면 우리는 흔히 '짝퉁'을 연상한다. 하지만 2016년 중국이 출원한 특허 건수는 압도적인 세계 1위로서 2~4위를 차지한 미국, 일본, 한국의 특허 건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았다.  

온라인 가상세계가 보편화된 오늘날, 언론 보도는 실시간으로 전파돼 해당 국가의 민족감정을 극심하게 자극할 수 있다. 모쪼록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신중해져야만 한다. 만약 중국 언론에서 터무니없이 우리를 모욕하거나 조롱하는 보도를 한다면, 우리의 민족감정은 필연적으로 악화되고 이로 인해 결국 양국관계도 해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부 간의 외교만이 외교와 국익의 전부가 아니고, 언론 보도 역시 외교와 국익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