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미래세대에게 언제까지 죽은 수학을 가르칠건가"

일취월장7 2017. 12. 11. 11:43

"미래세대에게 언제까지 죽은 수학을 가르칠건가"

김현호 입력 2017.12.02. 09:04 수정 2017.12.02.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빅형주 아주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뉴시스 본사에서 김현호 상임고문과 수학교육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2.01. photothink@newsis.com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생각의 힘을 기르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 푸는 기술만 가르쳐"

<김현호의 넛지 인터뷰>

그는 보통 사람 기준으로 보면 천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읽고는 곧바로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이듬해 서울대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의 기초가 수학인 것을 깨닫고는 미국으로 유학가 (U.C.버클리) 수학을 전공했다.
박형주(53) 교수는 귀국후 포항공대 교수와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아주대 석좌교수로 있다. 2014년 우리나라가 4년마다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를 개최했을 때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역대 최대 규모의 대회를 성공시켰다. 지금은 한국인 최초로 10명뿐인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여기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4년마다 시상)을 운영한다.
그는 “수학의 내적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열심이다. 활발한 저술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수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수능시험이 끝난 후 그를 만나 수능시험과 수학 교육의 문제점, 수학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 보았다. 그가 언론 기고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도 함께 담았다.

-수능이 끝났다. 수학 문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90분간 30문제는 너무 많다. 아무리 수학적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도 유형별 반복 학습이 안 돼 있으면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다 풀 수가 없다. 창의적 특성이 있는 학생일수록 반복학습을 싫어한다. 그런 아이들은 문제를 보고 생각을 하면서 풀게 되는데 반복 훈련이 덜 돼 있으면 속도가 느리고 계산실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변별력을 위해 문제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런 시험 방식은 분명 문제다.”

-서술형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생각 연습의 과정이어야 할 수학 교육은 현행 교육 과정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기술로 변질됐다. 수학의 본질은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답을 구하는 요령만 익히다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집합론의 창시자인 19세기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아는 수학의 본질이 자유로움에 있다고 했다. 공식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보고 해결방안을 찾는다는 뜻이다. 문항수를 줄이고 서술형으로 가야 한다.
200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테오도어 헨슈 교수는 천재성과는 인연이 먼 평범한 학생이었던 자신을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것은 ‘호기심으로 하는 연구’였다고 했다. 호기심의 생산성과 대척점에 있는 게 반복 학습이다. 같은 내용을 반복할수록 흥미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호기심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채점의 공정성 확보라든가, 시험관리의 어려움이 문제 아닌가.

“우리의 수능시험격인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 과목이 서술형이다. 시험 관리에 연간 우리돈 1조원 이상 들어간다. 채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방대한 채점 위원단을 구성하고 예상 유형별로 채점 기준을 정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그래도 나폴레옹시대부터 시작된 바칼로레아는 20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의 SAT 시험에서 최근 서술형 문제를 늘려가며 인공지능 방식의 채점을 실험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도입까지 고려해서 채점 공정성의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2년 전 한 가지 실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수학문제와 프랑스 명문 고등학교 1학년 수학문제를 바꿔서 풀게 해봤다. 한국 학교 시험은 50분에 20문제를 푸는 선다형이었고, 프랑스 학교 시험은 두 시간에 다섯 문제의 서술형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풀이 과정을 쓰지 못한 채 답만 구하려고 했다. 다섯 문제 아래에 소항목들이 있어서 순차적으로 생각을 인도하여 결론에 다다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데도 활용하지 못했다. 반면 프랑스 학생들은 선다형인데도 풀이과정을 써내려가면서 “평생 이렇게 많은 문제를 풀어 본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양쪽 모두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이 실험 하나로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프랑스가 미국 다음으로 필즈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반면 한국은 아직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런 교육 내용의 차이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필즈상 수상자인 세드리크 빌라니 교수는 프랑스 수학의 힘은 전적으로 교육제도와 전통에서 나온다고 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핀란드는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와는 대조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며 분야 간 벽을 허무는 융합교육 쪽으로 강력한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핀란드 현지에서는 이를 ‘현상기반 학습’이라고 부르더라. 자국 기업 노키아의 흥망 경험 때문인지 모르지만 변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각오가 뚜렷하게 읽혔다.
가령 중학교 학생들에게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이 쏟아진 상황을 주고 해결책을 찾아가게 한다. 학생들은 유사한 사례를 찾기 위해 역사를 살피고, 기름 제거 방식과 약품을 찾기 위해 화학공부를 한다. 또 유조선의 인양에 필요한 수학 공부를 하고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생물학도 공부한다. 실험과 토론도 병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각 과목의 공부가 왜 필요한지 저절로 알게 되고 스스로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가게 된다.“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박형주 교수(오른쪽)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뉴시스 본사에서 김현호 상임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7.12.01. photothink@newsis.com

-수학이 어렵다고 포기하는 이른바 ‘수포자’가 늘고 있는데 서술형이 되면 더하지 않겠는가.

“198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7차례의 교육과정 개편이 있었다. 그때마다 수학은 교과내용이 줄어들었다. 학생들이 어려워 하니 부담을 덜어 준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수학 어지럼증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수학시험을 안보고 대학 갈 수 있는 길도 더 넓어지고 있다.
왜 수학은 어렵게만 느껴질까. 우선은 학생들에게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학문의 역사성과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한 활용성이 빠져 있어서 생기는 문제다. 몇 년 지나면 다 잊어버릴 수학문제들을 왜 이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터득하는 논리적 사유의 방식에 집중해야 답이 보인다.
학생들은 어떤 수학 개념의 탄생 배경이나 미래 세상에서의 역할은 모른 채 반복해서 문제나 풀어야 한다. 빤한 내용을 끝없이 반복 학습하면서 실수하지 않는 게 중요한 덕목이 되면서 모험은 사치가 되고 말았다. 수학에 스토리를 더하고 의미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오늘날의 수학 교육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나.

“수학의 출발점은 유용성이었다. 원시시대에 사냥감의 수를 세며 수학은 시작됐고, 농사의 절기를 예측하며 정교해졌다. 페르시아 시장의 그 복잡한 다단계 물물교환이 수학 없이 어찌 가능했을까.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은 심미주의 색깔을 띄게 된다. 기하학적 비율은 미술과 건축의 핵심이 됐다. 플라톤은 기하학을 어디에 쓰느냐고 묻는 제자를 고귀한 것의 가치를 모르는 놈이라고 파문했다.
그러다 계몽주의 시대에 수학의 핵심가치는 다시 유용성이 되었다가 19세기 이후 다시 추상화됐다. 정보량 폭증의 21세기에 수학의 유용성이 다시 부각되는 건 아마도 변증법적 필연일 것이다.
세상의 문제를 수학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요즘은 산업수학이라고 부른다. 순수수학의 모든 영역을 활용해 다양한 세상 문제들을 해결해낸다. 빅데이터로 당뇨병을 진단하는 데 위상수학이 돌파구를 만들었고, 인터넷 해킹에 맞서는 주요 무기는 정수론이다. 기후변화 같은 규모와 복잡도가 너무 커서 수학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학은 결코 지적 유희를 위한 학문이 아니다.
21세기는 지식과잉과 무한정보로 요약된다. 방대한 지식과 정보 속에서 우리에게 닥친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고 해결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통찰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지식을 수평적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계층적으로 분류하는 능력이 통찰이다. 총론과 그에 속한 각론을 여러 단계로 분류할 수 있으면 자기 앞에 닥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상위 가치와 하위 지식의 연계가 보인다. 창의적 사고나 논리적 사고는 통찰력의 핵심 요소다.
교과내용을 줄이고 토론과 개별 활동을 통해 창의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대단한 오해다. 교과 과정은 생각의 재료다. 풍성한 재료가 빠진 토론은 겉만 맴도는 말장난이 되고 만다.“

-인공지능 시대의 수학 교육은?

“1957년 구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에 진입시키자 미국은 엄청난 충격에 빠져 국가개조 수준의 대응책을 추진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항공우주국(NASA)과 국방부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세우고 케네디 대통령은 교육과정의 대수술을 감행해 수학과 과학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국가경쟁력은 이러한 뉴프런티어 개혁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푸트니크는 미국에 축복이었던 것이다.
2016년 3월 서울 한복판에서 알파고가 바둑의 최고수를 꺾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이 충격을 우리는 한국판 스푸트니크의 축복으로 만들고 있는가. 스마트폰 하나면 웬만한 지식은 즉각 얻을 수 있고 데이터만 있으면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식 전수 형 교육은 수명을 다했다. 교육의 키워드는 맞춤형이 아니라 유연함이 되어야 한다.
단조로운 교과내용을 반복하며 ‘실수 안하기 전문가’로 길러진 우리 아이들은 미래의 직장에서 난생 처음 보는 문제들의 해결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이 전혀 안된 무방비 상태에서 말이다.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미래세계로 내모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수학 교육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지금 초등학생의 절반 정도는 사회에 나왔을 때 현재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고 세계경제포럼 보고서가 밝히고 있다. 이들이 어른이 되면 평생 다섯 번 일자리를 바꿀 것이라는 분석 보고서도 있다.
직장에서 자신의 부서나 담당업무, 또는 직장 전체가 당장 없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영역에서 전문성을 터득해 내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연기처럼 사라질 직업과 새로 생겨날 일자리의 종류와 수치에 대한 구체적 추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세대에게 언제까지 죽은 수학을 가르치고 있을건가.” <상임고문>


환경 변화 적응 방안은 ‘교과서대로 살지 않는 것’

[인터뷰] 신간《지구위에서 본 우리 역사》낸 환경역사학자 이진아 작가

공성윤 기자 ㅣ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0(일) 18:14:05


역사로 시작된 대화는 환경, 결혼 등을 거쳐 케이팝으로 이어졌다. 그다지 관련 없어 보이는 소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사이 대화의 배경은 구석기 시대와 21세기를 넘나들었고, 부산 앞바다와 남태평양을 오고갔다. 12월6일 서울 인사동 한옥식당에서 만난 이진아 작가는 이 모든 얘기를 쉴 틈 없이 풀어냈다.

 

역사학의 트렌드 가운데 ‘환경역사학’이란 것이 있다. 이 분야 학자들은 인류의 발자취가 환경 변화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형성돼 왔다고 본다. 예를 들어 백두산 폭발로 형성된 흑요석 산지가 고조선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다. 이진아 작가는 이런 학문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그는 1992년 경실련 환경개발센터를 세우고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다.

 

이진아 작가 © 시사저널 임준선

이진아 작가 © 시사저널 임준선

 

“환경변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작가는 “환경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장황한 역사 얘기가 뒤따를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시점을 바로 오늘날로 당겼다. 그는 해운대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해운대는 옛날에 온통 모래밭이었어요. 지반이 단단하지 못하단 뜻이죠. 게다가 지진재해에도 취약해요. 쓰나미가 덮칠 가능성도 있죠. 그런데 지금 해운대에 뭐가 있죠?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건물이 즐비해요.”

- “왜 갑자기 해운대죠?”

 

“해운대의 풍경이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건축술에만 의존한 결과란 걸 말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나라 건축업자들은 환경의 영향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아요. 포항에서 났던 대규모 지진이 큰 피해를 미쳤던 것도 같은 이유에요.”

 - “내진설계로 대비하면 될까요?”

 

“그러려면 건물의 높이만큼 철심을 깊이 박아넣어야 해요. 제대로 시공했는지 감리하는 것도 어렵고요. 돈도 굉장히 많이 들어요. 건물을 예로 들었지만, 환경변화는 건물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사회 전체를 바꾸고, 역사를 만듭니다. 벌써 환경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긴장감이 최고점을 지났어요. 이젠 대응 방안을 찾을게 아니라 적응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 “그 방안이란 게 뭔가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무조건 높고 큰 것, 빠른 것… 이런 것들이 최고란 인식을 버려야 해요. 외형 확장에 따른 위험을 고려할 때입니다. 또 그 뒤에 누군가의 경제적 이익이 숨겨져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해요. 즉 경제 패러다임 또한 바꿔야겠죠.”

 - “패러다임 전환이 말처럼 쉬울까요?”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답변엔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젊은 분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살지 않는다”면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도심을 피해 농촌에 정착하고, 욜로(YOLO․현재의 행복을 우선시하고 소비하는 태도)가 유행하는 등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이 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도 원치 않으면 하지 마세요.” 일견 파격적일 수도 있는 말을 작가는 서슴없이 꺼냈다. 그는 “미혼률이 높아져 인구가 줄어들어도, 인간은 그 변화에 또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환경 변화 적응의 일환으로 인구 조절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남태평양에선 수많은 섬 문명이 일찍이 사라졌습니다. 기후변화로 식량이 줄어들고 환경이 파괴됐기 때문이죠. 이 와중에 티코피아(Tikopia) 섬 사람들은 3000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인구를 제한했거든요. 끔찍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영아살해를 했습니다. 엄마가 젖을 주지 않고 가만히 놔둬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게 하는 식이었죠. 물론 지금은 피임하는 방법이 있죠.”

이진아 지음│루아크 펴냄│1만4000원

이진아 지음│루아크 펴냄│1만4000원



“결혼도 원치 않으면 하지 마세요”

 

또 작가는 “요즘은 교과서에서 지식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지식을 찾는 곳이 케이팝, 웹툰, 영화, 게임 등 콘텐츠 산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식에 좀 깊이가 없으면 어떤가”라고 반문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지식은 권력과 연계돼있다’고 했어요. 이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런데 바뀐 게 있어요. 권력의 양상이 너무 다양해졌거든요. 하나의 지식을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어요.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지식이 얕다고 주눅 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자신감’은 인터뷰 내내 작가가 강조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선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작가의 아버지는 역사가 이종기 선생이다. 이 선생은《가락국탐사》《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등의 책을 통해 1970년대 최초로 한국 해양사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늘 ‘우리 민족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설명했다.

 

최근 그 뜻을 이어받아 작가는 《지구위에서 본 우리 역사》란 책을 출간했다. 기후변화가 역사에 미친 영향을 고찰함으로써, 축소됐던 한반도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것이 주 목적이다. 작가는 “내 책이 잔잔한 수면에 파동을 일으키는 작은 조약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용하지만 자신감 넘친 말투였다. 말만 들어도 이미 돌은 던져진 것 같았다. 


“항상 의문을 갖는 습관 자녀에게 길러줘야”

중국 고전 전문가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의 《중국 3천년, 명문가의 자녀교육법》

조창완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9(토) 20:00:00 | 1468호



“최근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정부 관료 출신들의 무분별한 예산 집행이 개인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명문가의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한 것이 검소한 삶과 돈에 대한 거리 두기였다. 지금 문제가 돼 검찰 조사를 받는 이들이 이런 교훈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참담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런 문제가 다음에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교육에서부터 이런 부분이 심어져야 한다. 이번 책은 그간 수많은 책을 내면서 얻은 교육의 지혜를 총정리해 내놓았다.”

 우리에게 사마천의 《사기(史記)》 연구가로 잘 알려진 중국 고전 연구가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이 중국 역사 속의 교육적 가치를 집대성해 정리한 《중국 3천년, 명문가의 자녀교육법》을 출간했다. 그동안 50여 권에 가까운 중국 관련서를 출간했고, 2007년 EBS 특별기획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 등으로 강연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김 이사장을 만나 이번 책의 출간 의미와 최근 활동 등을 들어봤다.

 

© 사진=조창완 제공

© 사진=조창완 제공


 ‘근검’ ‘의문제기’ ‘본보기’ 교육 강조

 

이번 책이 몇 번째 책인가를 묻자, 김영수 이사장은 빙그레 웃는다. 이미 출간 숫자의 의미를 잃어버릴 정도로 많은 저서를 냈다. 《사기》 완역본을 포함해 사마천 관련서만 약 20종을 출간했다. 그 밖에 김 이사장의 작업은 중국 고전에서 핵심 가치를 발굴하는 일이었다. 《모략》 《용인》 《성찰》 《위인》 등이 대표적인 저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출간한 책은 약간 궤를 달리한다. 이번 책의 출간도 우연한 곳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진행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나온 ‘딥러닝’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고 배우는 ‘심화학습’인 딥러닝을 보면서 인간의 교육에서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깊어졌다. 그리고 중국 자녀교육에 있는 핵심 키워드들을 발굴해 개념과 ‘편지글’을 연결해 보여준다.

 

요즘 국내 정치 상황 때문인지, 30개의 장(章)으로 정리한 중국 가정교육에서 유독 근검과 돈에 대한 자세가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다. 4번째 자녀교육법으로 제시하는 ‘근검약덕’은 물론이고, 많은 곳에서 중국 가정의 근검 교육이 눈에 띈다. 북송시대 대신이자 역사가로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을 통해 설명하는 이 장에서는 “근검절약은 덕행의 공통된 근본이요, 사치는 죄악 중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중략) 검소에서 사치로 가기는 쉬워도, 사치에서 검소로 가기는 어렵다” 등의 문구를 통해 근검을 이야기한다.

 

또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녀교육의 철학에 대해 의문을 갖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을 통해 질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김 이사장은 “책 100페이지를 죄다 외우는 것보다 가치 있는 질문 하나를 제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며 ‘의문제기’ 교육법을 강조한다. 이 교육법은 남송시대 사상가 육구연을 비롯해 송나라 학자 장재 등이 가장 강조한 교육법이다. 당대 사상가 루쉰 역시 아이에게 동심개발과 더불어 질문을 유도하는 교육을 했다.

 

그러나 이런 중국 가정교육 철학도 현실에서 적용할 수 없으면 전혀 쓸모가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수학 과외에 시달리고, 스스로는 일과 술자리에 매몰된 부모로서 자녀교육에 신경 쓰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몇 가지 팁을 준다. 우선 국가에 법이 있듯이 집에도 가규(家規)나 가훈(家訓)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나라 초기의 명신(名臣) 이적과 북송의 포청천 포승이 유명한데, 이들은 가정의 법도를 어기면 처벌하는 규정을 두었다. 포승의 고향인 안후이성 비동현 대포촌은 지금도 300여 호가 사는데, 지금까지 부정부패로 체포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해방일보’가 보도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자녀교육은 과거뿐만 아니라 근대 인물들의 사례도 많이 있다. 소련 유학 중에 공부에 회의를 품은 아이에게 편지로 가르치는 유소기를 비롯해, 마오쩌둥·진의 등의 교육법도 중간중간에 소개한다. 특히 당대 정치가들의 교육법에서 눈에 띄는 것은 ‘본보기’ 교육이다. 교육은 결국 부모에게서 시작하고 부모에게서 끝나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경우 수학 100점 맞은 것을 자랑하려는 아이에게 부족한 것을 다시 묻고, 아들 마오안잉을 전장(戰場)으로 먼저 보냈다. 중국 10대 원수로 추앙받는 진의도 자식에게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로 진심을 이끌어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일수록 자녀교육 더 깊이 생각해야”

 

그런데 한국은 자녀교육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김영수 이사장은 “저출산·고령화 사회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근본가치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 이런 시간일수록 부모 세대가 더 깊이 자녀교육을 생각해야 한다. 내 아이는 귀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출산을 막기도 한다. 그보다는 가정 속에서 귀한 삶의 가치를 가르치던 중국의 자녀교육법을 전하고 싶다. 지금 다시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는데, 그런 생각의 전환을 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삽화와 이미지가 담겨 있다. 모두 김 이사장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힘에는 김 이사장의 발품이 있다. 20년 전부터 사마천의 고향인 산시성 한성을 방문해 교류를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사마천장학회를 설립해 돕고 있다. 당연히 한성시의 명예시민이 됐다. 한성시(韓城市)는 사마천 관련 행사가 열리면 김 이사장을 꼭 초청해 귀빈석에 앉히고, 사마천을 통해 커가는 한·중 우정을 설명한다. 또 김 이사장을 통해 인구 50만 명의 한성시를 한·중 교류의 거점으로 삼으려는 준비도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중국 고전 연구가로서 사마천의 길은 물론이고 중국 역사 인물의 흔적을 찾기 위해 1년에 두 번씩은 꼭 현지답사를 떠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