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김정은 편이다 - 북한이 정말 미국과 전쟁을 하고 싶을까?
[한강로에서] 시간은 김정은 편이다
박영철 편집국장 ㅣ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1(목) 14:30:00 | 1457호
1457호 커버스토리는 백령도 르폽니다.
백령도 커버스토리의 직접적인 계기는 북한이 제공했습니다. 지난 8월25일 ‘선군절’을 맞아 북한 조선중앙TV에서는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최전방 섬들을 점령하는 가상훈련 모습을 대대적으로 방영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북한이 서해 섬들을 기습 점령하겠다고 발표까지 한 것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말을 들어도 “에이~ 그냥 해 보는 말이겠지” 하고 넘겼을 텐데 요즘은 때가 때이니만큼 예사롭게 들리지 않더군요. 그만큼 북한의 도발로 국지전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첫 대상이 백령도가 될 공산이 큽니다.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지금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은 위험한 핵폭주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9월15일에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습니다. 이 미사일은 무려 3700km를 날아갔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북한이 쏘아올린 탄도미사일 중 가장 먼 거리를 비행한 것입니다. 북한은 올 들어서만 벌써 15차례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습니다.

백령도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 시사저널 고성준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김정은은 점차 미사일 발사거리를 늘려 미국에 근접한 태평양 공해상에 미사일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공해상에 쏘면 미국이 어떡할 길이 없는 것을 노린 ‘영리한 도발’을 계속할 것입니다. 고각으로 쏴도 미국 근접한 공해상에 도달한다는 것은 정상 각도로 쏘면 미 동부까지 충분히 타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의 행보로 볼 때 북한이 이런 능력을 갖추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능력을 갖출 때까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지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한통속입니다.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선제타격하는 것도 현실적으론 거의 불가능합니다. 김정은은 자신이 원하는 핵강국 반열에 북한을 올려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하고 핵탄두를 50기가량 보유하게 되면 미국으로서도 북한에 위협을 안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자고 달려들 공산이 커집니다. 이때 한국이 지금처럼 분열돼 있으면 미국은 “우리가 북한에 핵위협까지 받으면서 남한을 지켜줘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수 있습니다. 북한이 그토록 원하던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가 생각보다 빨리 실현될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미국을 상대로 한 핵실험을 일단 마치고 나면 남한을 상대로 국지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왜 국지전이냐고요? 김정은이 핵을 완성해도 주한미군이 있는 한 서울을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주한미군을 공격한다는 것은 곧 미국을 공격한다는 뜻이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전쟁한다는 것은 자멸입니다. 김정은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시일 내에 김정은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방안이 서해 섬들을 기습 공격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미 연평도 포격에서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자의 전쟁의지(戰爭意志)인데, 북한은 이때 남한이 전쟁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남한 정부는 연평도 사태 때 북한이 자국민을 학살해도 가만히 보고만 있었습니다. 연평도 해병대 병사들은 용감히 반격했지만 북한이 볼 때 이건 그리 중요한 대목이 아닙니다.
김정은은 남한의 전쟁의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 서해5도든 동부전선이든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남한의 고질적인 국론분열을 부추기겠다는 속셈도 있습니다. 제반사항이 확인되면 김정은은 미국을 상대로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 딜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이대로라면 시간은 김정은 편입니다.
북한이 정말 미국과 전쟁을 하고 싶을까?
북한이 겪는 전쟁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사상 최강의 대북 제재', '제재의 최종결정판'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하는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가 북한 사회에 가하는 충격은 엄청나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근대 분업사회에서 대외교역이 막힌 사회는 존속하기 어렵다. 북한이 1990년대 중반 겪었던 대기근은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고립된 북한 사회가 직면해야 했던 현실이었다. 석유, 화학비료, 식료품, 의약품의 부족은 굶주림과 추위를 불러오고 적절한 휴식과 치료를 불가능하게 한다. 제재는 압박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잔혹한 공격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에 일본은 공포에 휩싸였다.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신문은 호외를 발행하고 신칸센은 비상 정차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아시아 주둔 미군의 군사훈련을 한국, 일본과 함께 최첨단 살상무기들을 동원해 매년 진행한다. 우리에겐 '훈련'이고 '연례행사'지만 북한에겐 눈앞에 실재하는 공포이자 폭력이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보다도 호전적이며, 지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전쟁에 모두 관여한 유일한 나라다. 이라크 전쟁, 리비아 폭격이 우리에게 중동의 분쟁이었다면 북한에겐 현실이었다. 그러니 북한의 행동을 종잡을 수 없다느니,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들은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거들고 있는 처절한 전쟁 한복판에 있다.
북한이 정말 미국과 전쟁을 하고 싶을까?
북한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이들조차 문제의 원인을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서 찾는다. 북한의 선택에 대한 평가와 문제의 원인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 원인은 북미 적대관계, 정확하게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다. 이는 한반도 핵 위기 역사를 조금만 돌아봐도 확인할 수 있다. 80년대 시작된 탈냉전 흐름은 오히려 한반도에서 핵 위기를 촉발했다. 미중, 미소 간의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가 한중, 한소 수교로 이어졌지만 북한은 철저히 고립됐다.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 원자력안전협정을 체결하며 남북협상, 북미협상, 북일수교 교섭에 적극 나서지만 모두 실패한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적대세력으로서 북한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도 북한에게 핵무기는 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협상의 지렛대 역할이 컸다. 2000년 북미 공동성명,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은 그 성과였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북한은 침략 의도가 분명한 전쟁 집단으로 인식된다. 탈냉전 이후 30여 년 동안 북한은 저강도 전쟁을 겪으면서도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목표로 일관된 행동을 해왔다. 자신들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면, 핵무기가 필요 없는 안보환경을 보장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전 배치 가능한 핵무기를 손에 쥔 지금도 북한의 목표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북한이 정말 미국과 전쟁을 하고 싶겠는가? 미국의 공격을 받고 싶어서 핵무기를 개발했을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북한은 생존하려는 것일 뿐이다. 생존의 희망이 미국이 만든 동아시아 패권 질서를 흔든다는 점이 한반도 위기의 실체다.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미국의 패권전략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지금, 전쟁을 반대하는 많은 이들은 북미가 상대를 자극하는 군사행동을 일단 중단하고, 핵무기 동결부터 시작하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합리적 요구처럼 보이지만 지난 30년을 돌아본다면 분명 실패할 프로세스다. 여느 때처럼 핵개발이 불러온 긴장고조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긴장수준을 낮출 것이다. 하지만 대북 적대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는 미국에게 이는 일시적-제한적 조치일 뿐이다. 핵협상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까지 바라는 북한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해 협상은 결렬되고 핵개발은 다시 시작된다. 최소한 북한에게 핵무기는 미국의 선제 공격을 억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에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 적대정책은 충돌하지 않는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전제되지 않는, 핵보유국의 비확산 전략일 뿐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던 시기에는 핵보유를 막기 위한 수준의 협상이 진행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현재, 한반도 비핵화는 전쟁까지도 고려하는 강력한 비확산 전략으로 기능한다. 가장 강력한 유엔 제재가 실행되고, 트럼프가 유엔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는 말을 내뱉는 자신감은 '비핵화'라는 기만적인 이데올로기에 힘입어서다.
평화체제가 비핵화를 가능케 한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지금까지의 단계적 방식이 아닌 포괄적 협상으로 핵포기-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할지 모르지만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다. 핵을 매개로 한 적대관계 해소는 요원해지고 핵능력을 고도화할수록 국제사회의 압박은 강력해질 것이다.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핵이 아닌 한반도 평화가 문제 설정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핵문제는 한반도 적대구조가 낳은 역사적 결과이며, 그 안에서 작동한다. 이 적대구조가 해소되지 않고서 핵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대구조의 해소로서 전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적대구조 해소로서 평화협정 체결이 한반도 주민의 요구로 국제사회에 울려 퍼져야 한다. 현재의 위기는 정전협정이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준다. 정전협정의 소멸은 전쟁이 아닌 평화협정이어야 한다. 미국에겐 동아시아 군사패권 전략의 일부일 뿐이지만 남북한 주민들에게 평화협정은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문제다. 핵에 붙들려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자. 한반도 적대구조에 기생하는 비핵화를 넘어, 평화체제가 들어설 때 진짜 비핵화의 길도 열릴 수 있다.
‘통제불능’ 김정은과 트럼프의 치킨 게임
北․美 관계 ‘사상 최악’ 치닫나…김정은 “美 늙다리 미치광이, 불로 다스릴 것”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2(금) 13:00:00
북미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대해 북한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처음으로 직접 성명을 발표하며 군사 도발을 예고했다. 지난 8월 괌 포위사격 위협 이후 다소 녹아내렸던 북미 관계가 다시 얼어붙는 모양새다.

© 일러스트 신춘성
김정은, 전례 없는 직접 성명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9월22일 “김정은 동지께서 미 합중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했다”며 “최고영도자(김정은) 동지께서는 21일 당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김정은은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에게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나는 트럼프가 우리의 어떤 정도의 반발까지 예상하고 그런 괴이한 말을 내뱉었을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그 무엇을 생각했든 간에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미국 집권자는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발언은 고사하고 우리 국가의 ‘완전 파괴’라는 역대 그 어느 미국 대통령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무지막지한 미치광이 나발을 불어댔다”고 비난했다.
그는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레 짖어대는 법”이라며 “우리의 정권을 교체하거나 제도를 전복하겠다는 위협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한 주권국가를 완전히 괴멸시키겠다는 반인륜적인 의지를 유엔 무대에서 공공연히 떠벌이는 미국 대통령의 정신병적인 광태는 정상 사람마저 사리분별과 침착성을 잃게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의 초강경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물이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9월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은 강력한 힘과 인내심을 갖고 있지만 미국 스스로와 동맹국들을 방어해야한다면 어쩔 수 없이 북한을 완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부르면서 북한의 핵개발 시도에 대해 ‘자살 미션’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연설에서 북한과 북한 주민이라는 단어를 총 8번 언급했다.
北 추가도발 우려 상승…7차 핵실험 가능성도
곧바로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 능력 확보를 위해 7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에 나설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고 평가했다. 국방부도 국회 현안보고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은 상시 핵실험 가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찾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을 고려하겠다’는 김정은의 성명에 대해 “아마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 상에서 하는 것으로 되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유력한 도발 시점은 노동당 창건일인 10월10일. 북한은 노동당 창건일에 대규모 열병식을 열고 군사력을 과시했다. 북한 정권수립일(9월9일) 전후로 6차 핵실험 도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여러 차례 발사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를 통틀어서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 명의의 성명이 나온 것은 처음으로 파악 된다”며 “성명의 형식이나 내용으로 볼 때 실제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김정은의 성명이 발표된 직후 코스피는 북한 리스크가 다시 부각되며 2400선 밑으로 후퇴했다. 이날 개장 직후 보합권에서 움직이다가 김정은의 발언이 알려진 후 완연한 하락세를 보였다. 외국인과 기관이 물량을 쏟아내며 장중 2380선까지 밀리기도 했다. 유엔총회를 기점으로 북미 간 물밑 접촉을 기대했던 시장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