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여성혐오 그 후 - 스웨덴 화장실엔 남녀 표시 없다

일취월장7 2017. 7. 21. 11:09

그날 이후, 변이체와 비체가 왔다

장정일 (소설가)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7월 20일 목요일 제513호

윤김지영의 <헬페미니스트 선언-그날 이후의 페미니즘>(일곱번째숲, 2017)과 이현재의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들녘, 2016)은 현재 상태를 뒤흔든 하나의 공통 사건에서 출발한다. 제목과 부제에 나란히 들어가 있는 ‘이후/그 후’가 그것을 입증한다. 각기 프랑스 철학과 독일 철학을 전공한 두 저자는 2016년 5월17일 서울 강남역에서 일어난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후, 여성들의 자각과 궐기에 철학적 개념 도구를 지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강남역 사건 현장에는 많은 여성이 희생자를 애도하는 글귀를 적은 형형색색의 포스트잇(post it)으로 넘쳐났다. 윤김지영은 붙이는 메모지를 뜻하는 상품명 포스트잇에서, 이전의 여성운동과는 뚜렷이 다른 ‘그 이후(=post it)’의 여성주의를 읽는다. 윤김지영은 새로 생겨난 여성주의자를 ‘헬페미니스트(Hell Feminist)’라고 명명하면서 이들의 운동을 변이체들의 비범한 혼란으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이지영 그림

“5·17 페미사이드 이후의 헬페미니스트는 남성 사회의 승인을 기대한 적이 없으며, 아카데미 페미니즘에 판정을 요청한 적도 없습니다. 헬페미니스트는 좀 더 온건하게 말하면 승인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헬조선에서 태어난 헬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 교과서에 자신들이 등록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헬페미니스트는 끊임없이 사건을 발명해내는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헬페미니스트는 여성혐오주의자들이 겨냥하는 지점을 끊임없이 비껴가며, 그들이 단정 짓는 그 무엇으로도 축소되거나 환원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은이는 메갈리아를 헬페미니스트 전략을 창안하고 실천한 대표적인 여성운동으로 본다. 메갈리아가 거부한 것은 ‘착한 페미니즘’이자 남성의 척도에 맞는 페미니즘이다. 메갈리아가 전시한 미러링은 남성 가부장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여성이라는 기표를 거부하고 전복하는 데 최적화된 무기였다. 이로써 메갈리아는 ‘여자 일베’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메갈리안은 사회가 부여한 여성의 자리에 머물지 않으려고 했을 뿐 아니라, 남성 사회와 공생하는 것에 강한 의문을 품었다. 실제로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여성은 남성의 억압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여성만의 분리주의적 공동체를 꿈꾸고 실험”해왔는데, 그런 실험이 메갈리아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 앞에 드러난 것이다. 기존의 일부 여성 운동가들과 남성 지식인들이 메갈리아와 거리를 두거나 비난하고 나선 것도 메갈리아가 가진 근원적 페미니즘 충동 때문이다.

<헬페미니스트 선언-그날 이후의 페미니즘>, 윤김지영 지음, 일곱번째숲 펴냄

좌우 막론하고 메갈리아 죽이기에 남성이 대동단결했던 까닭은 페미니즘과 달리 남성은 유사 이래 한 번도 여성으로부터의 전적인 분리를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남성 가부장제가 여성을 정치·사회적 권력의 정점에서는 열외로 취급하면서도 여성과 분리된 독립 공동체를 꿈꾸어보지 않은 이유는 뻔하다. “이 땅에서 주류적 남성성, 승자와 강자로서의 남성이 된다는 것은 여성이라는 최종적 식민지의 착취를 통해서만 유지 가능”하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과 분리된 공동체를 아예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런 까닭으로 가부장에 기반한 남성 사회와 공생하기를 거부한 메갈리아는 호환이나 마마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되었으며, 남성 연대에 의해 타도되어야 했다. 하지만 강남역에 붙은 포스트잇이 훼손된 즉시 금세 새로운 포스트잇으로 메워진 것처럼 메갈리아 또한 이름을 바꾸어가며 재탄생했다.


한편 이현재는 남성들의 여성혐오 기제와 5·17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여성 주체 모두를 ‘비체(卑/非體:abj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비체(鼻涕)란 콧물·침·분비물 등 내 몸 안에 있으면서 나의 순수성이나 정체성을 교란하고 오염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절히 관리되거나 내 몸 밖으로 방출되어야 한다. 유대인·무슬림·성 소수자·이주 노동자 등은 내 몸속의 비체가 사회적 은유로 확장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불러낸 남성들의 여성혐오

“비체는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서 더럽다고 여겨졌던 것이며 잡힐 수 없기에 공포스러운 것이다. 비체는 철통 방어라고 여겨졌던 경계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존재이며, 따라서 특정 사회적 질서와 동일성을 강화하려는 자들에게 경계를 위협하는 비체는 공포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를 여성혐오에 적용해보자. 자신을 여성과 뚜렷이 구분되는 경계를 갖는 주체, 즉 남성으로 이해하고 있는 남성들이 있다. 이 남성들은 남성 정체성의 경계를 교란하고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여성을 오염되고 불순한 것, 공포스러운 비체로 간주하여 혐오하게 된다.”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들녘 펴냄

남성 중심 사회에서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 남자를 추월하는 여성, 결혼하지 않으려는 여성, 모성을 거부한 여성 등은 비체처럼 공포스럽고 혐오스럽다. 아니, 남성이 보기에 창녀·성녀·어머니 등으로 고정되지 않고 변환하는 여성은 그 자체로 남성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남성 가부장 사회는 그 질서 속에 여성을 고정해놓기 위해 명예살인이나 음핵 절제 같은 폭력을 제도화했다. 다행히도 한국에는 저런 악습이 없지만,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여성혐오를 제어하지는 못했다. 재시동된 페미니즘은 여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와 자본주의 도시 문화(성취 경쟁)에 포획되지 않는 비체를 선택하고, 다양한 비체와 연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는 인터넷 여초 커뮤니티의 동성애 혐오를 비판적으로 본다.


이현재의 책을 보면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남성뿐 아니라 여성과 경쟁하게 된 남성들이 남성성의 위기와 열등감을 느끼게 된 198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경제적 위기감 및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부터 남성들의 여성혐오가 부상했다. “위기감에 봉착한 남성들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보다, 자신의 우월성을 확보해줄 지배적 남성성을 유일한 안전장치로 활용”하면서 “물질적·제도적 변화”를 주장하는 여성을 적대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악셀 호네트와 낸시 프레이저 같은 학자들은 젠더 문제의 해결책으로 페미니즘과 같은 정체성 정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문화적 인정투쟁이 경제적 재분배를 대체할 수 없으며, 젠더 관계에 대한 비판과 재구성은 양자를 함께 고려하는 가운데 마련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후’ 또는 ‘그 후’를 출발점으로 삼은 <헬페미니스트 선언-그날 이후의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은 기질과 방법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가부장제에 고착되지 않는 ‘변이체/비체’들의 공감과 연대라는 공동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스웨덴 화장실엔 남녀 표시 없다

스웨덴 화장실 70% 이상 ‘性 중립 화장실’…미국·영국 등도 증가 추세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0(목) 19:00:00 | 1448호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여름이 아름다운 도시다. 멜라렌 호수 위 14개의 섬으로 이뤄진 스톡홀름은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에는 찬란하게 빛난다. 발걸음을 조금만 움직이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새파랗게 물든 호수가 중세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룬다. 섬들을 잇는 다리를 건널 때마다 발트해로 향하는 호수의 물결은 사람들을 들뜨게 해 유럽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가 된다.

 

그런데 스톡홀름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게 있다. 화장실이다. 커피숍이나 호텔 공중화장실 앞에서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고 주춤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 여행자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어렵게 화장실을 찾았지만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스웨덴의 거의 모든 화장실에는 남녀 표시가 모호하다. 남녀 표시가 아예 없거나 같이 돼 있다. 심지어는 남녀는 물론 장애인 표시도 함께 돼 있고, 흔치 않지만 아기 표시까지 된 경우도 있다. 즉, 스톡홀름을 비롯해 스웨덴에는 화장실의 남녀 표시가 없는 것이다.

 

스웨덴 공중화장실 대부분엔 남녀 표시가 없거나 이처럼 같이 돼 있다. 성 소수자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다. © 사진=이석원 제공

스웨덴 공중화장실 대부분엔 남녀 표시가 없거나 이처럼 같이 돼 있다. 성 소수자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다. © 사진=이석원 제공


 

“남녀 같이 쓰는 게 왜 이상한가”

 

이런 화장실을 ‘성 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이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 전통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사람들, 흔히 성 소수자라고 부르는 ‘중립 정체성 성 소유자’들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배려라는 것도 어폐가 있다. 그들을 배려해 그들을 위한 화장실 공간을 따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냥 모든 사람들이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다 보면 중립 성 소유자나 장애인, 그 누구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성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실제 성 정체성은 여성인 사람이 남성의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말 그대로 여성이 남성의 화장실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고충이다. 성적 모욕감이 생길 수 있는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위한 별도의 화장실을 만든다는 것은, 그들을 다른 성 정체성의 사람들과 구분을 지어놓는 게 된다. 배려라고 하지만 ‘구분’이다. 그런 ‘구분’에 대한 불쾌감은 장애인들도 많이 겪는 문제다. 그래서 아예 화장실에 성 구분은 물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도 두지 않는 것이다.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한 논의는 미국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시카고는 이미 일부 대학 내 화장실이나 몇몇 카페에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영국도 성 중립 화장실이 늘어가는 추세다.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가 심하고, 성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권단체의 주도하에 설치가 늘어가고 있다. 프랑스나 네덜란드는 영국보다 활발하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얼마 전 르몽드가 비공식 자료라고 전제했지만 전체 화장실의 30% 이상이 성 중립 화장실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스웨덴은 전체 화장실의 70% 이상이 성 중립 화장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한 논의가 가장 먼저 이뤄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이 아주 일찍부터 성 정체성에 대해 특별히 진보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게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높았다. 당연히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스웨덴에 성 중립 화장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전후로 추측된다.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해 스웨덴 시민은 특별한 반응이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톡홀름 시내 중심가 NK 백화점 건너편 스타벅스 화장실 줄에서 만난 스톡홀름 왕립공과대학(KTH) 재학생 스테판 보른은 ‘남녀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면 이상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르는 남녀가 함께 들어가는 건 이상할지 몰라도 화장실 안에는 나 혼자 있는데 그게 왜 이상하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스톡홀름 중심가인 한 고급 호텔 화장실에서 만난 20대 여성인 알레한드라 야콥손은 ‘방금 남성이 사용했던 변기를 사용하는 게 불쾌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어렸을 때 집에서도 늘 아빠나 오빠, 남동생이 사용한 변기를 사용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며 “화장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지 화장실을 남녀가 같이 쓰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역시 한국인들의 대답은 달랐다. 스웨덴에 워킹 홀리데이로 온 지 7개월째인 여성 강아무개씨는 “아직도 남성이 사용하고 나온 화장실에 들어가는 게 찜찜하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온 한 남학생은 “여성이 나오면서 나를 쳐다보는 눈길에 마치 몰래 훔쳐보기라도 하다 걸린 듯 죄지은 느낌이 든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반면 아기를 자주 돌보는 주재원 ‘라테 파파(한 손에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끄는 아빠,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를 뜻하는 신조어)’ 김영환씨는 “한국 같으면 기저귀를 갈기 위해 아기 테이블이 있는 여자 화장실 앞에서 안절부절못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스웨덴으로 유학을 온 전아무개씨는 “그동안 한국에서 불가피했지만 얼마나 엄청난 성적 학대를 당했는지 실감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性 중립 인칭대명사 ‘Hen’ 사전 등재

 

스웨덴은 2015년 3월 ‘스웨덴어 공식 사전(SAOL)’에 성 중립 인칭대명사인 ‘Hen’을 정식으로 추가했다. 우리로 따지면 국립국어원 성격의 스웨덴 학술원은 남성 3인칭 대명사인 ‘Han’과 여성 3인칭 대명사인 ‘Hon’과는 별도로 중립 성 3인칭 대명사인 ‘Hen’을 사전에 넣은 것이다. 당시 학술원은 “‘Hen’은 성별을 밝히지 않는 사람, 성별이 확인되지 않는 사람, 성 전환 수술을 한 사람들에 대한 인칭대명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청담동과 신사동을 중심으로 성 중립 화장실의 발걸음이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 화장실 자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세면대를 사용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강남역 공중화장실 묻지마 살인 사건’ 이후 남녀 공동 화장실은 오히려 여성 인권의 침해로 여겨지기도 하니 스웨덴의 경우와 비교하면 거꾸로 가는 셈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저술가 시몬 드 보봐르가 1949년 《제2의 성》을 발표한 지 50여 년 만에 ‘제3의 성’을 보편화하고 있는 스웨덴의 ‘성 중립 화장실’은 시사하는 바가 충분하다.